“손상”의 사회적 근원 *
1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관해 몇 가지를 짧게 덧붙이면 유용할 듯하다. 이 문제는 특히 학습장애가 있는 이들의 사례와 연관이 많다.
로디 슬로라크가 쓴 자본주의와 장애에 관한 훌륭한 글[‘마르크스주의와 장애’]이 이 잡지에 실렸다. 이 글에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상식을 거꾸로 세웠다”고 매우 균형 있게 서술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2 로디가 명료하게 보여 줬듯, 이런 위계 질서는 장애 운동이 비교적 늦게 시작됐고, 주로 정치적 반동기이자 노동계급이 후퇴하는 시기에 운동을 전개한 데서 비롯한 정치적 약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지닌 이론적 약점, 특히 “손상”의 본질에 관한 모호함의 영향도 일부 있다.
학습장애 부문에서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자신들을 잘 대변하지 못한다는 정서가 많다. 로디는 자신의 글에서 장애 운동 활동가들이 대개 경험하는 위계 질서 중 몇 가지, 특히 학습장애가 있는 이들이 장애 운동에서 배제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례에 관해 썼다.3 학습장애를 연구하는 가장 뛰어난 학자들은 ─ 포스트구조주의와 미셸 푸코의 저작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 “지적 장애”를 역사적 맥락과 관련된 담론을 통해 형성된 관계적 개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그래서 이들은 학습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근대적 정체성을 일깨워 준 정치적 ─ 그리고 개인적 ─ 투쟁을 적어도 얼마간 고찰한다.) 댄 구들리가 주장했듯, “학습장애가 있는 이들의 저항과 장애에 대한 그들의 경험은 (이들에 대한 차별의 핵심에는 그들의 손상이 자연적 이유로 발생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손상의 재사회화가 가능하다는 산 증거다.” 4
“지적 장애”는 문제가 많은 개념인데,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창안한 마이크 올리버도 이 개념에 관해 신중하게 고찰하지 않았다. 많은 장애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손상”이 의료적 담론의 영역에 내맡겨져 있는 데에 우려를 표해 왔는데, 이 영역에서는 “손상”이 고정불변적이고 자연적이며 개인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여전하다.나는 이런 연구에 유용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특정하게 사회가 구조화되는 과정에 기초해 ‘손상’을 유연하게 이해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학습장애가 있는 이들에 대한 차별이 “자연적 이유로 발생한다는 견해” 때문에 지속된다고 보는 점이다. 이 말인즉, 학습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생각·태도 때문에 차별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별의 근원은 더 깊은 곳에 있다.
5 에 화학·전기·내연기관을 기반으로 노동 분업이 가속화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이 시기에 공교육(1870년 교육법 제정)이 시작됐는데, 그에 따라 일반 교육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분리된 학급과 학교 제도가 발달했다. 이 대목에서 노동 예비군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유용하다. 마르크스는 산업 노동의 요구에 “부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상대적 잉여 노동” 집단에 속한다고 했다. 6
핵심을 ─ 아주 간단히만 ─ 말하자면, 내 생각에 사회주의자들은 오늘날 학습장애의 역사적 뿌리를 에릭 홉스봄이 “2차 산업혁명기”라고 부른 19세기 말7 학습장애가 있는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노동 예비군 신세다. 노동 시장 주변부에 있고 자본의 입장에서는 평균 임금률을 낮추는 데 기여하지만 노동력이 부족한 시기에는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제2차세계대전 동안 그전까지는 “고용될 수 없고” “정신적으로 모자라다”고 여겨지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에 공장들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분리된 [특수] 학교는 새로운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노동을 준비한다는 새로운 요구에 “부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읽기·쓰기·산수는 노동계급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이었지만, 많이들 어려워했다. 그중 일부는 ─ 압도 다수가 도시 빈민가 출신이었다 ─ 분리된 [특수] 학교로 갔다. 이들은 장래에 안정적인 일자리에 정식 고용될 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도 없었고, 이들에 대한 지원도 쥐꼬리만한 수준이었다.8 여기서 “부적합”이란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가장 떨어진다는 뜻이다.
또, 빅토리아 시대 후기[19세기 후반]부터 에드워드 시대 초기[1900년대 초] 사이에, “정신 (그리고/또는 윤리의식) 박약자”라는 새로운 사회 집단을 규정·관리할 목적으로 법률이 제정되기 시작했다(이 법들은 악법으로 유명한 1913년 정신지체법의 일부가 됐다). 이 새로운 집단은 일반 학교에서 거부당해 특수 학교로 분리됐고 ─ 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구빈원에 수용되기 일쑤였다 ─ 그때 이래 지금까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현재 학습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고용률은 7퍼센트 미만이다). 슬로라크가 썼듯, 우생학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되고 발전했던 것도 이 시기였다. “11-플러스”[지능지수를 점수화해 학생들을 다른 학교에 배치하는 영국 중등학교 입학시험 제도]의 창시자 사이럴 버트는 ‘정신 박약자’ 또는 ‘윤리의식 박약자’들을 솎아내는 우생학적 프로젝트를 “부적합 개체군을 제거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나는 학습장애가 있다고 낙인 찍힌 사람들을 주로 이들이 노동 시장과 맺는 관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다른 곳에서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기도 했다). 평균 착취율 아래로밖에 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류에서 배제당한 수많이 이들이 (교육, 주택, 지역사회의) 분리 시스템으로 인해 사회적·지적 잠재력과 정체성 선택권을 역사적으로 제약당해 왔다.
이런 사회 구조와 과정이야말로 구들리가 말한 “자연적으로 비롯했다는 견해”의 근원이자 궁극적으로는 “지적 장애” 자체의 근원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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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umner, Lee 2011, The social roots of “impairment”, International Socialism 130, Apri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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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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