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범죄에 대해 뭐라고 말했나?
살인, 강도, 아동 학대 등 흉악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주류 언론들은 사건의 잔인함과 범인의 냉혹한 성격 등을 부각하며 선정적 보도를 쏟아낸다. 여기에는 흔히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인 범인에 대한 공포가 부추겨진다. 주류 언론뿐 아니라 경찰 등 국가기구도 이런 사건을 흉악한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일반인과 다른 특징을 지녔는지 부각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 환경보다 범죄자 개인의 특성에 주목하는 접근은 뿌리가 깊다. 실증주의 범죄학의 아버지인 체자레 롬브로소(1835~1909)는 최초로 범죄자의 신체를 측정해 그 특징을 일반화했다. 롬브로소는 ‘폭력범은 이마가 넓으나 강간범들은 좁고, 방화범은 얼굴이 길고 말랐으나 사기꾼은 광대뼈가 나오고 살쪘다’는 식으로 범죄 유형별 신체 특징을 정리했다. 그러나 범죄형 신체가 따로 있을까? 그랬다면 성형수술로 범죄성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롬브로소의 주장은 황당하지만, 사실 오늘날 범죄자 DNA 운운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저명한 급진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롬브로소가 범죄학에 끼친 영향을 이렇게 정리했다. “범죄자는 타고난 천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으로, 범죄를 이해하려면 범죄자를 연구해야지 그 사람이 자라난 환경이나 교육, 절도나 약탈을 하게 만드는 곤궁한 상황 따위에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범죄를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때로 사회적 문제가 있다고 인정할 때조차) 생물학이나 정신병리학의 문제로 다루는 접근이 만연하다. 만약 인간 중 일부가 범죄자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그런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범죄적 개인을 사회에서 미리 솎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범죄 문제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정치 문제다. 범죄는 왜 발생할까? 범죄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노동자들이 그런 사회를 만들 능력이 있을까?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경찰 등 국가기구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접근법이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엥겔스와 범죄 문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범죄에 대해 체계적인 글을 남기진 않았다.(사실 다른 많은 쟁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방대한 저작들 곳곳에서 범죄를 언급했고, 범죄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우선, 마르크스·엥겔스는 롬브로소류의 주장에 반대하며 범죄에는 사회적 뿌리가 있다고 봤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신성가족》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범죄는 개별적인 차원에서 처벌돼서는 안 되며 반사회적인 범죄의 원천들이 제거돼야만 한다.”
마르크스·엥겔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눈부신 생산력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을 빈곤과 궁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봉건제가 몰락하며 신분제가 철폐되고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이 널리 퍼졌지만 현실은 결코 그러지 못했다.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반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에게 고용돼 일할 수밖에 없었다. 부르주아지는 노동 과정과 노동 생산물을 소유·통제하고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생산물보다 더 적은 임금을 줌으로써(즉,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써) 이윤을 쌓았다. 이 모든 일들은 ‘신성한’ 재산 소유권에 따른 행위로 정당화됐다.
착취로 인해 적대적 분배 관계가 형성되면서, 사회에 부가 쌓일수록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졌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현실을 폭로했다. 당시 영국 노동자들은 공장주와 관리자의 가혹한 통제 속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해도 방은 돼지우리처럼 불결하고 집세는 터무니없이 비쌌으며, 십수 명이 함께 바글거리는 좁은 집과 도시의 오염된 공기·식수로 인해 노동자들은 신체적으로도 쇠약해졌다.
이런 끔찍한 빈곤을 배경으로 재산 범죄(주로 절도)가 늘어났다. 롬브로소의 실증주의 범죄학이 큰 인기를 끈 것도 19세기 초 자본주의의 확산과 함께 재산 범죄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급증하는 범죄를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시키고 싶지 않았던 부르주아지는 롬브로소의 주장을 크게 반겼다. 그러나 엥겔스는 일찍이 자본주의의 확산과 범죄 증가 경향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꿰뚫어 봤다. 그는 자신의 첫 경제학 논문인 《국민경제학 비판 개관》에서 “공장체계의 확산은 모든 곳에서 범죄의 증가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썼다. “모든 문명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절대다수의 범죄는 재산을 침해하는 범죄이며 따라서 모종의 결핍에서 비롯하는 범죄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훔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열심히 일해도 궁핍과 빈곤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빈둥거리면서도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을 보며 ‘신성한’ 소유권과 사회 질서에 대해 경멸감을 느끼게 된다고 봤다.
노동자는 풍족한 게으름뱅이보다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은 자신이 이런 처지로 고생해야 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노동자는 재산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태도를 물려받았으나 궁핍을 이기지 못하고 도둑질을 저질렀다.”
엥겔스는 이런 착취 체제와 빈곤이 노동계급 내에서 “도덕적 타락”, 다시 말해 사기저하가 일어나는 배경이 된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혹독한 노동 환경은 노동자들이 인간적 삶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알코올 중독이나 성적 비행에 빠지기도 쉽다. 인간 관계들도 더욱 산산조각 나고 가정불화와 개인 간 싸움도 끊이지 않는다.
노동자의 모든 처지와 환경은 부도덕성을 강하게 부추긴다. 노동자는 빈곤하고 인생에 낙이 없고 거의 어떤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며, 법의 처벌도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여기에 더해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경쟁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것도 범죄의 한 요인으로 지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웃을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거나 기껏해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써먹을 수단으로 여긴다.”
자본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자본들이 상대를 이기기 위해 맹목적으로 이윤 획득을 추구하는 체제다. 자본 간 경쟁은 사회의 다른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노동자들도 일자리·승진·임금 등을 놓고 서로를 경쟁자로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 간 유대는 더 갈기갈기 찢겨진다. 그래서 엥겔스는 ‘엘버펠트에서의 연설’에서 “한 개인과 다른 모든 사람 사이에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오늘날의 사회”가 “잔인하고 야만스러울 만큼 격렬한 형태(범죄)를 취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사회적 전쟁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은 “도덕적 타락”과 경쟁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붕괴 문제를 이론적으로 보강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소외는 대중이 자기 주변 세계를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부를 만들지만 사회를 통제할 권한은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소외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매일 무기력과 불안감을 내면화하며 살아간다. 심한 경우 심사가 뒤틀려 버리거나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 그런데 이런 심적 불안과 열패감이 때로 더 약한 상대에게 분풀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분풀이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이런 소외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간에 벌어지는 범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범죄를 “지배적인 관계들에 대한 고립된 개인들의 투쟁”으로 규정했다. 이것은 당대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사회 곳곳에서 자리잡는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착취에 분노했고, 종종 폭력적 방법으로 부르주아지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했다. 절도뿐 아니라 기계 도입에 반대하는 폭동, 공장 방화, 공장주에 대한 보복 폭력, 파업 배신자에 대한 황산 테러 등등. 다음은 엥겔스가 언급한 사례들이다.
[파업 파괴자만 고용해 미움을 받은 공장주를 겨냥한 공장 폭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구경 나온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전부 날아가 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뿐이었다. … 넉 달 동안 발생한 이 여섯 사건의 유일한 원인은 고용주에게 원한을 품은 노동자들의 적의다. 6
1831년 격렬한 노동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맨체스터에서 가까운 하이드에서 어느 날 저녁에 젊은 제조업자 애슈턴이 들판을 가로지르다가 총에 맞았는데, 암살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심할 바 없이 노동자들의 보복 행위였다. 방화와 폭파 시도도 아주 흔하다. …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런 범죄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가장 미숙했고 가장 성과가 적었던 반항”이라고 봤다. 이런 반항은 기존 질서에 항의하는 것이지만 특정 지역이나 공장에 한정된 일시적 항의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기존 질서에 대한 범행이 성공하더라도 금방 “무방비 상태의 범법자들에게 또다시 사회적인 힘의 폭압이 가해졌으며, 그들은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런 노동자들의 개별적 반항에 공감하면서도, “새로운 저항 형태가 나타나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즉, 노동계급이 착취에 맞서서 집단적으로 저항해야 했다.
실업, 빈곤, 소외
7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전체 범죄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2018~2020년 전체 범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산 범죄(절도, 사기, 횡령 등)였고, 교통사고 등 교통 범죄가 그다음으로 비중이 높았다.
이처럼 범죄를 빈곤과 불평등, 사유재산 제도의 모순과 관련지어 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점에는 통찰이 있다. 실업, 빈곤, 소외 등이 범죄의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오늘날에도 범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산 범죄다. 앞서 봤듯이 한국의 주류 언론들은 흉악 범죄 보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미수, 방조 등도 포함)는 총 847건이었다. 최근 3년간(2018~2020) 살인 범죄는 900건을 넘지 않았다.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을 포함한 강력 범죄는 전체 범죄의 1.9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한국에서 벌어진 살인 범죄(그 뒤 몇 년간 증가세가 지속됐다). 또,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화하자 생계난에 몰린 사람들이 늘어 재산 범죄가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2020년 1분기 재산 범죄 발생 건수(15만 5718건)는 전년 동기(13만9967건) 대비 11.3퍼센트 증가했다. 2분기(16만 4918건)와 3분기(17만 524건)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9퍼센트, 6.0퍼센트 증가했다.(2021년 2월 12일, 대검찰청, ‘분기별 범죄 동향 리포트’)
실업과 빈곤이 심각해질수록 사람들의 삶은 황폐해지고 범죄에 내몰릴 공산도 커진다. IMF 경제 위기 시기인 1998년에 범죄율이 급증했다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199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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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범죄 | 2741 | 2848 | 2836 | 3070 | 3081 | 3102 | 3283 | 3457 |
재산범죄 | 426 | 412 | 407 | 431 | 513 | 601 | 682 | 659 |
폭력범죄 | 384 | 377 | 391 | 436 | 448 | 421 | 437 | 442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
전체범죄 | 3815 | 3716 | 3973 | 4193 | 4153 | 4188 | 4327 | 3921 |
재산범죄 | 751 | 703 | 804 | 852 | 891 | 1008 | 950 | 934 |
폭력범죄 | 495 | 611 | 708 | 710 | 595 | 614 | 596 | 601 |
물론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해서 범죄율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매개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 특히 개인 간에 벌어지는 폭력, 살인 등은 더 복잡한 매개가 존재한다. 또한 모든 노동자들이 빈곤한 상황에 직면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엥겔스는 “노동계급 가운데에는 너무나 도덕적이어서 아주 극단적인 상태에서도 도둑질을 하지 않고 굶어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고 썼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붙박이로 붙어 있는 빈곤과 불평등은 일부 개인들을 범죄 행위로 내몬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는 성공하고 행복한 인생의 척도로 넓고 멋진 집, 스포츠카, 명품 등 천편일률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돈이 행복과 동의어고 공공연하게 탐욕과 과시를 부추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극소수만이 이런 목표들에 도달하고 그 결과를 향유한다. 대다수에게는 평생 애써도 가질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뼈 빠지게, 정직하게 일해 푼돈을 벌기보다는 차라리 범죄를 택하는 게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더 큰 위험을 무릅써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부도덕한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 낸다.
법과 경찰
오늘날 절도 등 재산 범죄조차 빈곤층이 부자를 상대로 저지르는 경우는 적다. 부자들은 쾌적하고 사생활 보장이 잘 되는 부촌에 살고, 경찰도 이런 곳에 대해 노동계급 거주지보다 훨씬 더 보안에 신경 쓰고 신속하게 출동한다. 서울 한남동이나 성북동의 부촌이나 강남 타워팰리스 등은 좀도둑은커녕 개미 새끼 하나 침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삼엄한 보안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많은 범죄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부대끼고 사는 곳에서 발생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접근이 더 쉽고 취약한 다른 가난한 사람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범죄 양상이 미치는 한 효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범죄를 없애는 데에 계급을 초월한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또한 범죄를 없애기 위해서 경찰 같은 국가기구들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상식이 된다. 그리고 경찰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기구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국가와 그 핵심 무장력들(경찰, 군대 등)은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찰은 범죄자를 잡거나 치안을 담당하지만, 그 기구의 본질은 자본주의 체제의 질서를 수호하고 부유층과 권력자를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은 범죄의 뿌리를 없애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뿌리인 자본주의 체제와 재산권을 지킨다. 그래서 현실에서 경찰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 호소에는 느리고 무능하게 반응하는 반면, 투쟁을 진압하거나 좌파를 탄압하는 일에는 신속하게 움직인다.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 파업이라도 하면, 경찰 수천 명이 파업을 공격해 해산시키려고 기를 쓴다. 2009년 쌍용차 점거 파업 당시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사건은 경찰의 본질을 보여 준다.
무엇이 범죄가 되는가?
근대의 계몽주의자들은 국가나 법을 사회계약에 의한 ‘일반의지’의 표현으로 봤다. 즉, 국가나 법은 자유로운 개인들이 맺은 계약의 산물이며, 범죄는 합의한 약속(법)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에 반대해 ‘누가 무엇을 범죄로 규정하는가’ 하는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이 범죄인지를 규정하는 국가, 법, 사법제도들의 계급적 본질과 성격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국가와 법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이익을 수호하는 구실을 한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법은 기업주들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체제 전복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한국에서도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등은 지배 질서에 저항하는 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대표적 법들이다. 엥겔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부르주아에게 법이 신성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가 법을 만들고, 법의 제정을 승낙하고, 법의 혜택과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법 하나가 자신에게 해롭더라도 전체 체계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켜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르크스는 청년 시절, 농민들이 관행처럼 산림에서 나뭇가지를 줍던 행위가 ‘도벌’로 규정돼 범죄가 된 것을 보고 분노했다. 이는 산림 소유주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법이었다.
법률이 목재 절도가 될까 말까 한 하나의 행위를 도벌로 명명한다면, 법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빈자가 법률의 거짓말에 희생되는 것이다.”(‘도벌법에 관한 논쟁’, 〈라인신문〉, 1842년)
물론, 노동계급도 때로는 법을 투쟁과 운동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노동자들에게 더 유리한 법을 도입하라고 국가에 요구할 수 있으며, 세력관계가 유리할 때는 개선된 법률을 도입할 수도 있다.
9 따라서 법과 위법 그리고 범죄도 결코 계급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법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며 지배계급에 유리한 수단이다. 판결을 내리는 재판부도 국가 권력의 일부로서 체제 수호를 목적으로 하고, 판사 자신이 권력자들과 온갖 연줄로 얽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법정에서 신속히 유죄 판결을 받지만, 권력자들은 법망의 허술함을 이리저리 이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모습들을 우리는 본다. 빵 몇 개 훔친 ‘장 발장’ 범죄보다 재벌이나 전문 경영인의 탈세, 횡령, 분식회계 등 부패 문제가 더 가볍게 처분된다. ‘화이트 칼라’ 범죄는 일반 범죄에 비해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약 10퍼센트포인트 더 높다. 항소심으로 가면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더 높아진다.앞서 봤듯이 전체 범죄에서 흉악 범죄는 극소수를 차지하지만, 이런 범죄가 발생했을 때 권력자들은 경찰력 강화를 부르짖거나, 도덕적 공황을 부추겨 사회 통제에 이용하는 일들을 볼 수 있다. 범죄의 공포를 조장해, 정권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특정 악마 같은 개인에게 돌리도록 하거나, 국가기구 강화 같은 억압적 조처들을 더 쉽게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서진룸살롱 사건)을 대대적으로 부풀려 경찰에 대한 비난을 피해가려 했다.
그래서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거나 대중 투쟁이 벌어졌을 때 지배자들은 범죄의 공포를 조장해 대중의 시선을 돌리려 하곤 한다. 1986년 6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벌어지자, 경찰은 조폭들의 룸살롱 칼부림 사건(강호순 사건)의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린 증거가 폭로되기도 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강호순 연쇄살인을 의도적으로 띄워 철거민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7명을 죽인 용산참사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청와대가 경찰에 “본 사건[용산참사]을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시키려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한편, 마르크스는 1859년 〈뉴욕 트리뷴〉에 기고한 ‘인구, 범죄, 빈곤’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이 글은 Marx & Engels on Ireland and the Irish Question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에 수록돼 있고, 〈마르크시스트 인터넷 아카이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법 위반은 대개 경제적 행위자들이 입법자의 통제를 벗어난 결과지만, 청소년범죄인법의 운용이 보여 주듯 공적 사회가 어떤 관습의 위반을 예외없이 범죄나 일탈로 낙인 찍어 버리는 데에도 어느 정도 달려 있다.
마르크스는 이런 지배자들의 낙인 찍기가 결코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과 사회의 도덕적 기풍을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지배계급이 범죄 문제를 사회 통제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마초 흡연은 일부 국가에서는 합법화돼 있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그래서 대마초의 유해성이 담배보다도 덜한데도 종종 터지는 연예인들의 ‘대마초 사건’은 거의 어김없이 당시 권력자들에게 불리한 뉴스를 덮거나 더 나아가 사회 통제와 마녀사냥에 이용되곤 한다. 미국에서 1914년 이전만 하더라도 코카인은 범죄가 아니었고(그래서 초기 코카콜라에는 코카인이 함유됐다), 메스암페타민은 1930년대 일반 의약품이었다. 이후 미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마약 범죄는 중요한 사회 통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됐다.
범죄 없는 사회
범죄의 뿌리가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함으로써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 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범죄를 낳는 사회적 조건들(빈곤, 착취, 소외, 경쟁 등)이 없어진다면 범죄도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엘버펠트에서의 연설’에서 엥겔스는 사회주의 사회가 “범죄의 뿌리에 도끼를 내리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연적 욕구와 정신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분배받는 곳, 사회적 계급 매김과 차별이 없어지는 곳에서는 재산 범죄는 저절로 사라진다. 형사사건과 관련된 재판은 자연히 없어지고, 대부분 소유관계나 적어도 사회적 전쟁 상태로 인해 발생하는 관계들에서 비롯하는 민사사건을 다루는 일도 사라진다. 지금은 갈등이 일반적 적대감의 자연스런 결과인 반면, 그 사회에서 갈등은 단지 보기 드문 예외로만 존재할 수 있고 중재인에 의해 쉽게 해결될 것이다.
이처럼 평등하고 빈곤이 없는 사회, 그리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범죄는 없어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혁명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면서 범죄 없는 사회의 가능성을 힐끗 보여 줬다. 노동자들은 혁명 과정에서 체제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자신들을 변화시킨다.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충동을 억제하고 노동계급의 집단적 이익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871년 파리 코뮌 당시 노동자들은 코뮌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그 기간에 단 한 건의 살인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에서 코뮌을 찬양하며 이렇게 썼다.
시체공시소에 더는 시체들이 쌓이지 않았고 야간 절도가 사라졌으며 강도 행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말로 1848년 2월 이후에 처음으로 파리의 거리는 어떤 종류의 경찰도 없이 평온을 되찾았다.
선출된 치안 판사는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를 받았다. 정의는 자유롭고 이전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경찰이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퇴거시키려 하자 시민군이 퇴거를 막았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 국가는 “성별 구분 없이 선한 성격의 시민 모두”에게 법관직을 개방했다. 판사는 선출됐고 투표에 의해 즉시 해고될 수도 있었다. 1920년 부하린과 프레오브라젠스키는 공저한 《공산주의 ABC》에서 감옥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위험을 가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가해자는 도덕적으로 재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법원은 종종 조건부 선고나 사회적 비판, 사회 봉사 노동 등을 부과했다. 일부 범죄는 사라지고 징역 기간도 단축됐다.
비록 러시아 혁명이 최종적인 사회주의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해 범죄의 뿌리를 뽑을 수 있고 자본주의의 끔찍한 오물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우애와 협력에 기반한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줬다.
주
- 제이 굴드 2003, 235쪽. ↩
- 엥겔스 2014, 181쪽. ↩
- 같은 책, 270쪽. ↩
- 같은 책, 163쪽. ↩
- 같은 책, 182쪽. ↩
- 같은 책, 276~277쪽. ↩
- 그 이유 중 하나는 언론의 선정성이다. 자극적인 범죄 기사가 사람들의 흥미나 걱정을 자극하고 ‘클릭 장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
- 엥겔스 2014, 284쪽. ↩
- 채이배 전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화이트칼라 범죄 피고인들의 1심 재판에서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71.1%에 달했다.” 이후 양형기준을 더 높였지만 “2007년 7월부터 2013년 2월 말까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1심 43.9%, 항소심 53.4%”로 여전히 일반 범죄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과 비교하면 10퍼센트포인트가량 높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더 높아졌다. (‘재벌범죄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내일신문>) ↩
참고 문헌
엥겔스, 프리드리히 2014,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이재만 옮김, 라티오.
정진희 2004, ‘범죄의 신화’, 〈격주간 다함께〉 37호.
제이 굴드, 스티븐 2003, 《인간에 대한 오해》, 김동광 옮김, 사회평론.
케인&헌트, 모린&알란 편저 1991, 《맑스와 엥겔스는 법을 어떻게 보았는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옮김, 터.
Gluckstein, Donny 2007, Crime: Capital’s Punishment, Socialist Review 313.
Taylor & Walton & Young, Ian & Paul & Jock 2013, The New Criminology : For a Social Theory of Deviance,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