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차이나 붐-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
중국에 대한 환상과 진실
《차이나 붐》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에 먼저 훙호펑의 사상적 배경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2 조반니 아리기는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사회를 ‘비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규정했다. 세계체계론자들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서로 다른 의미로 보기 때문에 ‘비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썼던 것이다.
훙호펑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나 조반니 아리기가 주창한 세계체계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체계론자들의 자본주의 설명은 프랑스 아날학파의 시조인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브로델은 근대 사회경제가 물질문명, 시장경제, 자본주의라는 세 층위로 구성돼 있다고 봤다. 물질문명 또는 물질생활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들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영역, 즉 일상생활의 영역이다. 시장경제는 유통의 영역으로, 가장 투명하고 평등하며 분석하기 쉬운 영역이라고 브로델은 봤다. 반면, 자본주의는 기록이 불충분하고 관찰하기 힘들며 독점과 특권이 존재하는 영역이다.3 월러스틴은 16세기 근대 세계체계가 손쉽게 재구성될 수 있었던 것은 13세기 세계체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 세계체계의 개념은 무엇인가? 이때 세계체계 개념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와 다르다. 재닛 아부-루고드가 쓴 《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에서 세계체계 개념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부-루고드는 1250~1350년경 유럽에서 중국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이 그 내부에 다양한 경제적 중심지를 포괄하는 상업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며, 이를 “13세기 세계체계”라고 규정했다.세계체계론자들이 주장하는 세계체계는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형성될 수 있다. 또 세계체계는 전 세계를 포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장될 동력을 지니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용어다. 전 세계를 포괄하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에 복수의 세계체계들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쓸 당시 자본주의 체제가 서유럽에 한정돼 있었을지라도 자본주의를 세계적 체제라고 규정한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체계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세계체계론의 특징과 약점이 잘 드러난다. 세계체계론자들은 세계체계 내부에 주도적인 패권국가(또는 중심국가)가 존재하고 그 나머지 국가들(주변국가 또는 반주변국가)과는 위계적 구조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근대 세계체계에서 헤게모니 국가는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그리고 영국을 지나 잠깐의 휴지기를 거쳐 미국으로 옮겨갔다고 본다(175쪽). 조반니 아리기나 훙호펑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쟁점은 미국 헤게모니를 이을 국가가 중국일지 아니면 다른 국가일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세계체계론자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세계체계론은 헤게모니 국가의 변동 또는 중심지의 이동을 설명할 수 없고 사태의 변화를 서술敍述하거나 묘사描寫하기만 하는 이론이다.
세계체계론의 또 다른 약점은 자본주의를 유통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는 점이다. 세계체계의 본령은 유통 또는 교환 영역이라고 본다거나, 중심부가 주변부한테서 잉여를 탈취dispossession해 축적한다고 주장하는 데서 유통주의적 관점이 잘 드러난다. 《차이나 붐》 원문에는 ‘착취’exploitation라는 단어가 네 번 나오는데,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는 대목(33쪽)을 제외하면 중심국이 주변국을 약탈하거나 탈취한다는 의미(32쪽, 253쪽)이거나 신중국 초기 자본 축적을 위해 도시가 농촌의 잉여를 빼앗아 온다는 의미(119쪽)로 사용됐다. 두 경우 모두 생산과정에서 인간 집단이 맺는 관계에 기반한 착취라는 개념과는 다른 의미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마오쩌둥이 통치하던 시절 중국 사회가 급속한 자본 축적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이 생산한 잉여를 수탈한 점은 지적하면서 정작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언급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한국어 판에는 위에서 지적한 대목 말고 두 번 더 착취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각각 “지방의 세금 착취 재출현”(66쪽), “중심부가 속국을 착취한다는 논리”(198쪽)라는 구절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착취라고 번역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착취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제 《차이나 붐》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 책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주장들을 많이 담고 있다. 그 몇 가지 사례들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훙호펑은 1978년 개혁·개방 이전과 이후의 중국 경제가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국가 주도의 도시-공업 자본의 시초 축적은 그 한계에 도달했고 경제는 장기 침체의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국유기업과 기반 시설 네트워크, 잘 교육받고 건강한 농촌의 대규모 노동력, 외국 정부와 국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국가 자율성 등”(89~91쪽)과 같은 마오쩌둥 시기의 유산들은 시장 개혁이 성공하는 기반이 됐다고 지적한다. 마오쩌둥 시기 중국 경제는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때 위기가 있었지만 대체로는 선진국이나 당시 신흥국들에 비해 꽤 좋은 성적을 거뒀다. 훙호펑의 이런 설명은 중국에 대한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판에 박힌 논리, 즉 마오쩌둥 시기 경제가 저성장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덩샤오핑의 시장 개방 이후 경제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을 훌륭하게 반박한다.
둘째, 훙호펑은 1990년대 이래 중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뤘던 주된 배경이 지구적 신자유주의 질서였고, 중국도 이 질서에 깊이 편입됐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훙호펑은 “중국이 이 지구적 신자유주의 질서, 이 질서와 연관된 제도들 혹은 이 질서 기저의 미국 권력을 전복시키려 한다면, 이는 자기 발등을 찍는 꼴이 될 것”(212쪽)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2000년대 미국과 중국의 긴밀한 연관을 “중국의 미국 국채 중독”(187쪽)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중국이 저렴한 소비재를 미국에 수출하고 그 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미 국채 매입에 사용하는 순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이 겪고 있는 모순들, 즉 “미미한 가계 소비, 국유 부문의 과잉 투자, 수출 부문에 대한 의존”(223쪽) 등은 중국의 경제 발전 모델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6 이라고 지적한다. 훙호펑이 조반니 아리기처럼 21세기에 미국 헤게모니에서 중국 헤게모니로 바뀔 것이라고 단언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미래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던 것이다. 7 이는 미국이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진앙지였던 반면 중국은 잠깐의 경기 위축을 뒤로하고 세계경제의 구원 투수 구실을 한 것이 강한 인상을 남긴 듯하다. 하지만 《차이나 붐》에서 훙호펑은 “위기의 원천인 미국에서 위기의 해결사인 중국으로 권력의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주장”(212쪽)에 대해 중국이 “위기의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위기를 촉발시키는 세계 경제 불균형 기저의 원인”(213쪽)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훙호펑의 전망이 약간 바뀌었다는 점이다.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에서 훙호펑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무게 중심이 일반적으로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며, 21세기의 새로운 국제 질서가 만들어질 것”훙호펑의 주장이 중국을 모종의 진보적인 사회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언짢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질서 하에서 경제 발전을 해 왔고, 이 경제 발전 모델이 오늘날 중국 사회가 겪는 모순과 불균형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동력도 의지도 없다는 훙호펑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사실, 훙호펑이 《차이나 붐》에서 주장하는 바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거의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2016년에 출판돼 미·중 무역갈등을 다루지 못한 점은 아쉽다. 미국과 중국은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서로 협력하며 발전해 왔지만 중국이 미국의 실질적 경쟁자로 부상함에 따라 미중 갈등이 첨예해졌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이의 대립도 아니고 제국주의 국가와 비제국주의(또는 비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대립도 아니다. 미중 갈등은 세계적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제국주의 경쟁의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제국주의 경쟁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초래했던 사례를 포함해 매우 많이 있었다.
9 이 지적은 중국이 서방 자본주의의 많은 일자리를 빼앗아 갔고, 서방 노동자들의 실직은 모두 중국 때문이라는 주장을 훌륭하게 반박하는 셈이다.
셋째, 훙호펑은 2000년대 들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됐지만 그 과정에서 국유부문의 많은 일자리를 없앴다고 지적했다(114쪽).더 나아가 훙호펑은 불평등 문제에서 중국이 크게 후퇴했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계급 불평등, 도시-농촌 간 불평등, 성 간 불평등이 모두 증가하며 중국에서는 전체적으로 빠른 속도로 불평등이 증가했다.”(146쪽) 소득 분배의 불평등 이전에 생산수단의 불평등한 분배가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훙호펑은 중국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쟁점의 제시나 논리 전개 과정 모두에서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쓰여졌다는 점이 《차이나 붐》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0 그러면서 훙호펑은 “유럽과 달리 대를 이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도시 기업가 엘리트가 부재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방대한 농업 부문의 잉여에도 불구하고 자생적인 자본주의적 산업 도약이 없었다”(53쪽)고 지적한다. 훙호펑은 청나라 시기에 수익성 있는 사업을 독점하면서 부를 축적한 안후이성 출신의 휘주 상인들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였다.
첫째는 중국 자본주의의 기원에 관한 문제다. 훙호펑은 “18세기 영국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산업 자본주의가 출현하지도 않았고 일본에서처럼 정부의 의식적인 추진으로 산업 자본주의가 뿌리내리지도 않았다”(50쪽)고 지적했는데, 이 점에서 그는 케네스 포메란츠(한국어 판에서는 케네스 포머랜즈로 번역 표기돼 있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훙호펑이 내린 결론은 청나라의 가부장적 국가 성격 때문에 중국에서 자본가 계급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즉 18세기 영국에서는 도시의 기업가 엘리트들은 국가의 절대적 지원을 받아 자본축적에 성공하고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했지만 중국의 기업가 엘리트들은 국가의 상대적이고 조건부 지원을 받았을 뿐이고 또 가부장적 국가 또는 유교 국가인 청나라는 상인 외에도 기타 평민들에게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은혜를 베풀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나라가 가부장적 국가이기에 상인들을 자본가 계급으로 육성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핵심에서 벗어난 말이다. 영국의 차지농업가들과는 달리, 중국의 상인들은 국가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부를 지키지도 못했고, 자신들의 부를 축적할 메커니즘도 확립하지 못했으며, 새로운 경제적 관계를 보호해 줄 국가권력을 확립하지도 못했다.
11 고 지적했다. 이런 점이 18세기 영국과의 큰 차이점이었다.
청나라에서 강력한 국가에 맞서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었던 상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부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 헌금을 내거나 각종 공익사업에 자금을 출연하는 등의 보호 비용을 내야 했다. 휘주 상인을 연구했던 조영헌은 “상인들은 여전히 절대적 권력자, 즉 전제군주제 하의 국가와 신사층과 경쟁하기보다는 그들의 후견에 의존하거나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초기 자본가들이 봉건세력에 맞서 청교도 혁명을 수행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자본주의 경제관계가 확립돼 있었고, 또 자본주의 국가가 이런 생산관계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사회의 주도적인 생산관계의 차이가 뚜렷했던 18세기 영국과 중국(의 강남)을 단순 비교하여 저렴한 원재료의 이용 가능성(석탄이나 아메리카의 자원을 언급했던 포메란츠)이나 국가의 정책 방향이나 지향성(가부장적 국가를 언급한 훙호펑)의 차이를 언급하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셈이다.둘째 쟁점은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부상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 정치 질서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훙호펑은 중국과 아시아 인접국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중화제국과 인근 조공국 소왕조들 사이에 형성된 조공체계가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훙호펑은 중국이 “아시아 신흥독립국과 개발도상국의 자율적인 정치적 공간을 개척하려는 비동맹 운동의 핵심 주도자가 되었”고, 그래서 “중국의 이러한 혁명 체제와 운동의 관계는 중화제국과 인근 조공국 소 왕조들 사이의 후원 관계와 유사하다”(201쪽)고 주장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의 경제 부흥이 도래하면서 중국 중심의 조공 무역 질서의 부활이 좀 더 뚜렷해졌다.”(201쪽)
그런데 바로 몇 페이지 뒤에서 훙호펑은 “중국이 아시아에서 그 비중과 중심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근대 이전 중국 중심의 조공 무역 질서의 단순한 복제와는 거리가 멀다”(203쪽)고 올바로 지적하고 있다. 훙호펑은 “근대 이전 중국 중심의 조공 무역 질서는 문화적으로 유가 사상에 기반하고 있”(203쪽)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지만 이 또한 핵심에서 벗어났다. 자본주의에서의 국가 간 관계는 전자본주의에서의 그것과는 동기나 작동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훙호펑은 중국이 아시아에서 경제적·정치적 중심국가로 부상하면서 생겨난 여러 어려움들과 지정학적 갈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제공한 대가로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인정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 정치적 지지를 얻고자 하는 행태는 최근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지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훙호펑은 “아프리카 대륙에 재정적 지원과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원천으로서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미국과 기타 서구 강대국의 정치적 요구에 저항할 수 있는 자율성도 커지고 있다. 동시에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가 타이완과 달라이 라마 같은 정치적 이슈에서 중국을 지지함으로써 이에 보답하고 있다”(207쪽)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중국 의존이 증대하자 동남아 인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 식민주의’ 논의가 아프리카 내부에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11년 잠비아 선거에서 야당이 반중국 캠페인 정책을 제시해 성공적으로 집권당에 승리했다. 2013년 3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담에서 아프리카 NGO 활동가들이 반대 회의를 조직했는데, 중국을 아亞제국주의로 규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남아공의 한 사회주의자는 브릭스 국가들의 아프리카 진출을 두고 1885년 베를린 회의 이후 유럽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아프리카 쟁탈전’을 닮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훙호펑은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중국을 두고 제국주의 또는 패권국가라고 애써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투자와 천연자원 수입이 예전 서구 강대국의 진출과 똑같은 자본주의 논리와 국가 이익에 의해 추동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253쪽)고 올바르게 지적하지만 바로 앞에서 “중국 정부는 이 빈곤한 경제 대상국들에게 원조와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 중국은 냉전 이후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서구에 대한 경제 의존을 경감시켜주고 있다. … 중국의 존재가 … 세계시장에서 개발도상국들의 협상력을 향상시켰다”(253쪽)고 지적함으로써 앞의 지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훙호펑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도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속에서 혜택을 향유하기 때문에 헤게모니 국가가 아닐 뿐더러 더욱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서방 의존을 낮추고 교섭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209~213쪽).
마지막 쟁점은 중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경제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대안을 찾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훙호펑은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에 직면한 중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대응했고, 이런 정책이 초래한 드라마틱한 결과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당시 민간 부문의 투자가 얼어붙자 국가 주도의 투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훙호펑은 이런 투자의 대부분은 수익성이 의심스러웠고 그 질이 낮거나 중복투자였음을 지적했다. 그 당시 저명한 중국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는 이런 경기부양책을 두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독약을 마시는” 격이라고 비판했다(235쪽).
14 며 미국의 뉴딜 정책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그는 중국 경제가 직면한 과소소비도 중국 정부의 신뉴딜 정책(사실상 경기부양책)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중국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세계 경제의 재균형을 위해서는 중국에서 국내 소비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좀 더 균형 잡힌 성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238쪽) 하고 지적한다.
투자 위주의 경기부양책으로 생겨난 재정 부담, 악성채권, 과잉 생산능력 악화 등이 그 당시 중국 경제가 직면한 불균형과 모순들이었고, 이를 훙호펑은 과잉투자와 과소소비로 요약했다. 훙호펑은 다른 곳에서 “20세기 전환기에 악덕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무모하고 중단 없는 경로를 따르던 미국 경제 성장이 20세기 중반의 좀 더 지속 가능한 케인즈주의-포드주의적 성장경로를 따르게 되는 변화를 앞당겼다”하지만 훙호펑 자신이 지적했듯이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이후 중국 정부의 정책은 케인스주의적 경기부양책이었고 중국 경제의 불균형과 모순을 심화시켰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과잉투자/과소소비가 아니라 자본축적과 이를 위한 노동자들의 잉여가치의 착취 그리고 투자 자본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인 이윤율의 문제 등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유통이 아니라 생산 영역을 좀더 면밀히 살펴본다면 중국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주
- Hung Ho-feng 2010. ↩
- 훙호펑 2021, pp33-34 참고. 서평 책을 인용할 경우 이하에서는 괄호 안에 페이지 숫자를 표기하겠다. ↩
- 아부-루고드 2006. ↩
- 신중국 초기 국가가 노동자들의 열망을 무시하고 이들을 착취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상대로 힘든 계급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이정구(2021)를 보라. ↩
- “지방의 세금 착취 재출현”은 “지방에서 세금 약탈자의 재등장”reemergence of local tax bullies으로, “중심부가 속국을 착취한다는 논리”는 “[속국에 대한] 중심부의 공납 추출 논리”the logic of tributary extractions from the center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
- 훙호펑 외 2012, p294. ↩
- 아리기 2009의 결론 부분을 참고하라. ↩
-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중시하는 또 다른 입장은 미국과 중국을 “갈등적 상호 의존” 관계로 이해하는 박홍서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행위자라고 여기며,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놓고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박홍서 2020, p212). 이런 견해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로 협력해 세계대전 같은 파국을 피할 수 있다고 본 카우츠키의 제국주의론과 닮았다. ↩
- 이 점은 이미 마틴 하트-랜즈버그가 《중국과 사회주의》(2005)에서 지적한 바 있다. ↩
- 포메란츠는 중국(또는 동양)과 영국(또는 서양)의 경제력 격차가 18세기 중반에 대역전 했고, 영국이 중국을 추월했던 주된 이유가 석탄의 존재와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경제사학자다. 훙호펑은 18세기에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했지만 중국의 강남 지역은 그렇지 못한 이유에 대한 포메란츠의 주장이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51쪽). 훙호펑은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도약하는 데서 아메리카의 자원 활용이 핵심적이었다면 왜 더 일찍 활용하지 못했는가 하고 지적했다. 하지만 포메란츠의 주장이나 훙호펑의 비판 모두 핵심을 빗겨 나갔는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확립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 권력, 즉 자본주의 국가의 등장이 지니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메란츠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분기》(2016)를 참고하라. ↩
- 조영헌 2011, p423. ↩
- Brenner and Isett 2002. ↩
- Bond 2013. ↩
- 훙호펑 외 2012, p293. ↩
참고 문헌
박홍서 2020, 《미중 카르텔》,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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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헌 2011, 《대운하와 중국상인: 회·양 지역 휘주 상인 성장사, 1415-1784》, 민음사.
포메란츠, 케네스 2016, 《대분기》, 김규태 외 옮김, 에코리브르.
하트-랜즈버그, 마틴 2005, 《중국과 사회주의》, 임영일 옮김, 한울.
훙호펑 외 2012,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 하남석 외 옮김,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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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d, Patrick 2013. “Sub-imperialism as Lubricant of Neoliberalism: South African ‘Deputy Sheriff’ Duty Within BRICS”, Third World Quarterly 34, no. 2: 251–70.
Brenner, Robert and Isett, Christopher 2002, “England’s Divergence from China’s Yangzi Delta: Property Relations, Microceconimcs and Patterns of Development”,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61, No.2,(May, 2002): 609-662.
Hung Ho-feng 2010, Uncertainty in the Enclave. New Left Review 66, Nov-Dec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