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중국 딜레마 -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
시진핑 시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실상 들여다보기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이 된 이래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한겨레〉 박민희 기자가쓴 《중국 딜레마》는 이 물음을 따라가는 책이다. 이 책은 시진핑을 비롯해 여러 인물들을 열전列傳 형식으로 조명해, 중국 정치·경제·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앞 부분에서 시진핑과 그 정부 인사들을 다룬다.
집권한 시진핑은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왔다. 시진핑은 ‘부패와의 전쟁’을 벌여 대중적 인기를 얻은 한편, 경쟁자가 될 만한 고위 관리들을 숙청하고 그 자리에 자기 측근들을 앉혔다. 시진핑에게 도전할 만한 세력은 약화되거나 제거된 것이다.
국가주석 임기 제한까지 없앴기 때문에, 시진핑은 얼마든지 집권을 연장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을 연상케 하는 호칭을 시진핑에게 부여했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란 구절이 당헌과 헌법에 명시됐다.
박민희는 이런 권력 집중을 중국공산당의 위기 의식이 작용한 결과로 설명한다. “시진핑 1인 권력의 강화는 그의 권력욕 같은 개인적 요소보다는 통치 엘리트들의 집단적 위협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27쪽)
그렇다면 중국 통치 엘리트들의 위기 의식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개혁개방 40년 동안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부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커졌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제어하고 공정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할 개혁이 필요했[다.] .. 하지만 점점 개혁보다는 대중의 불만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쪽으로 기울었다.”(27쪽)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을 떠받치는 기둥은 경제성장과 애국주의다.”(34쪽) 그러나 시진핑 시대의 중국 경제는 이전 같은 고속 성장을 하지 못하고 여러 면에서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그리하여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빈부·도농·지역 간의 격차는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동시에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흔들었다.”(60쪽)
이런 와중에 관료 집단의 권력 암투와 분열이 표출되기도 했다. 2012년 초 충칭시市 공산당 서기 보시라이가 숙청됐다. 보시라이는 시진핑의 정치적 라이벌이었고, 반反시진핑 정변을 꾸미다가 제거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보시라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됐다.
시진핑은 통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활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와 농민, 학생들이 21세기 홍위병이 되어 아래로부터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30쪽)을 염려한다. 시진핑 정부가 인권운동가, 소수 민족, 농민공(농민 호구를 가진 노동자) 등을 통제하고 탄압하는 까닭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진핑의 절대 권력이 흔들릴 뻔한 위기였다. 시진핑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고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연행하는 등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하는 데 급급했다.
역설적이게도, 시진핑을 구한 것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으로 빚어진 미국의 참상이 드러나자 … 시진핑 지도부의 비교우위가 두드러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실 대응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중국 때리기를 강화할수록, 중국공산당은 미국에 단호히 맞서는 모습으로 국내에서 애국주의를 강화했다.”(33쪽)
무역 전쟁을 비롯한 미·중 갈등의 심화도 중국 통치 엘리트들이 직면한 난제다.
시진핑 정부는 무역 전쟁에 직면해 내수 시장에 의지하는 지구전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국제 금융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지배자들은 미국의 금융 제재 가능성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등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 지도부는 물러서거나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면, 미국이 약점을 파고들게 되고 국내에선 시진핑의 지도력에 도전하려는 세력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41-42쪽)
실제로 시진핑 정부는 미국의 반중 공세에 대처하면서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위기 상황에서 단결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려고 애썼다. 요컨대, “소련 붕괴의 교훈,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와 함께 미국과의 대결에 대한 위기감은 시진핑 체제를 만들어낸 3대 축이라 할 수 있다.”(42쪽)
신장 문제
시진핑 정부가 내부의 도전에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진핑은 2019년 홍콩 항쟁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그리고 신장·위구르 문제가 있다. 시진핑 정부는 신장·위구르인들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있다. 위구르인들이 중국 신장 곳곳에 세워진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폭로돼 왔다.
박민희는 시진핑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위구르 지식인 2명의 사례를 통해 오늘날 위구르인들의 현실을 조명했다.
위구르 경제학자인 일함 토흐티는 위구르인들이 신장에서 한족에 밀려나 사회적·경제적으로 차별 받는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토흐티는 “위구르인과 한족의 공존”을 꿈꿨지만, 중국 중부는 2014년에 정부 전복 혐의를 씌워 토흐티에게 종신형 및 전재산 몰수형을 선고했다.
라힐라 다우트는 위구르인들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기록한 문화인류학자였다. 그는 30년 넘게 중국공산당 당원이었다. 그런데 2017년에 다우트가 갑자기 사라졌다. 가족들은 다우트가 ‘재교육 캠프’(중국 당국이 위구르인들을 가두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전부터 중국 권력자들은 한족과는 이질적인 위구르인들의 독립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 그런데다가 미·중 갈등이 커지자 시진핑은 내부 분열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위구르인들을 더한층 강경하게 억압하고 있다. 또, 일대일로의 길목인 신장 지역을 “안정화”시킬 필요도 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틀을 가져다 위구르인들의 이슬람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강제로 한족화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102쪽) 시진핑이 “이슬람 극단주의”를 바이러스나 마약에 비유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시진핑 정부는 “신장 모델”을 중국의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하고 있다. “네이멍구(내몽골)에선 2020년 9월 1일 새 학기를 맞아 몽골어 교육 축소 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 일부 조선족 학교에서도 한국어 부분이 빠지고 중국어로만 된 교과서를 쓰기 시작했다.”(118쪽)
시진핑 정부가 밀어붙이는 “중국화” 정책이 과연 성공할까? 아니면, 커다란 후폭풍이 일어날까?
중국의 “전태일”들
중국에는 시진핑이 지향하는 중국과는 다른 중국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민희는 인권 변호사, 좌파 대학생, 노동자 등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주류 언론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들려 준다.
2018년 광둥성廣東省의 기계제조회사인 자스커지에서 노동자들이 독립 노조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런데 노조 설립을 주도한 노동자 10여 명이 해고되고 체포됐다. 중산대를 졸업한 후 노동운동에 뛰어든 선멍위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좌파 대학생들이 노동자 지원단을 구성해 연대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자신들이 공부한 마르크스주의 및 마오쩌둥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들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2018년 8월에 선멍위를 비롯한 대학생과 자스커지 노동자들이 대거 체포됐다. 그리고 자스커지 지원 활동과 관련 있는 베이징대·런민대·난징대 등의 마르크스주의 학습 조직들이 금지됐다.
시진핑 정부는 이런 작은 움직임에 왜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중국이 눈부시게 경제 성장을 했지만 농민공들의 삶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고, 불만에 찬 농민공들은 곳곳에서 투쟁을 벌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정부는 좌파 학생과 노동자들의 연결을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라 여긴 듯하다.
“1989년 톈안먼 시위의 한계는 학생들이 노동자, 농민과 제대로 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스커지 사건은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에 따라 중국 사회를 바꾸려던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학연대’를 이루고 함께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중국공산당에게는 매우 민감한 경고음이 되었을 것이다.”(176쪽)
시진핑이 집권한 뒤 강화한 탄압으로 막 떠오르던 중국 노동운동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고 알려진다.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체포되거나 지하로 숨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분투는 계속되고 있다.
“중국 최대 쇼핑의 날인 2020년 11월 11일 광군제를 앞두고 배달 노동자들의 파업과 항의 시위가 잇달았다.”(188쪽) 대형 택배 회사들의 무리한 가격 경쟁 때문에 임금이 깎이거나 임금을 떼인 노동자들이 항의에 나선 것이었다.
2021년 1월에는 저장성浙江省 타이저우시台州市에서는 한 음식배달 노동자가 임금 문제로 항의하다가 “내 피땀으로 번 돈을 돌려받고 싶다”며 분신을 시도했다. 분신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웨이보를 타고 확산되자, 그 동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1970년 한국 서울에서 취안타이이[전태일의 중국 발음]란 노동자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50년 뒤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얼마 뒤 배달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한 청년 노동자가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그가 개설한 단체 채팅방들에는 배달 노동자 1만 4000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 우한의 진실을 알리려던 사람들의 얘기, 미투 운동 등 성차별에 맞선 중국 여성들의 얘기도 실려 있다. 반대로, (서평에서 소개하지 못했지만) 정권과 체제에 영합한 자들의 얘기도 더 있다.
시진핑의 권력 집중, 애국주의와 권위주의의 강화를 보면, 중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저항과 변화가 과연 가능할까 하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도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구축한 ‘만리장성’에 도전해 균열을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성공이 쉽지는 않고 탄압의 칼날이 매섭지만, 그럼에도 아래로부터의 도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를 수 있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배 엘리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그 점일 것이다. 《중국 딜레마》는 오늘날 중국의 현실이 궁금한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