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고전 읽기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이 발전시킨 조직 방식은 오늘날에도 유용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
레닌의 저작 《무엇을 할 것인가?》는 많은 오해를 사고 비난을 받았던 책이다. 우파는 물론이고 자유주의자·사회민주주의자·아니키스트 등이 모두 이 저작을 스탈린주의의 근원 중 하나로 지목해 왔기 때문이다.
레닌에 대한 주류적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레닌은 노동자 대중을 불신하고, 그들의 ‘자발성’을 경멸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외부의 지도를 받아야만 사회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즉, 지식인들로 구성된 ‘직업 혁명가들’의 조직이 상명하달식으로 이끌어야만 노동자들이 혁명적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몇몇 문구들이 원래 맥락을 거세당한 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에 쓰였다.
1 《무엇을 할 것인가?》의 핵심 주장을 엘리트주의로 보는 것도 반박했다. 그중에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저작으로는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1》, 존 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와 정당》(책갈피, 2013), 크리스 하먼의 ‘당과 계급’ 2 등이 있다.
혁명적 좌파들은 레닌에 관한 이런 주류적 설명에 도전해 왔다. 토니 클리프, 폴 르블랑, 마르셀 리브만의 저작이 대표적이다.그런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사뭇 다르게 주장하는 책이 2006년에 나와 국제 급진 좌파들 사이에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바로 역사가 라스 리Lars T. Lih의 저작 《레닌의 재발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맥락 속에서 보기》Lenin Rediscovered: “What is to be Done?” in Context였다. 라스 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영역본에서 몇몇 핵심 개념들이 부정확하게 번역돼 오해를 자아냈다며, 그 책을 영어로 새로 번역했다. 그리고 방대한 증거를 들어 레닌이 러시아 노동계급의 정치적 역량과 잠재력을 가장 낙관적으로 본 인물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라스 리는 볼셰비즘의 정치적 독특함을 부인했고 레닌이 카우츠키의 사회주의 운동 개념을 러시아 조건에 적용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책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 모델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효과를 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대체 어떤 저작이길래 이런 숱한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그리고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경제주의의 문제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1901년에 썼다. 당시 그는 러시아 ‘경제주의’와 독일 수정주의의 등장을 우려하며, 분산된 경제 투쟁 강조에서 전국적인 정당 건설 강조 방향으로 막대기를 구부리고 있었다.
경제주의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차르에 맞선 정치 투쟁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에 지원하는 데 힘쓰고 경제 투쟁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의 정치 활동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경제주의자들이 생각한 노동자 정치 활동은 차르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를 지지하는 활동이었다. 즉, 계급투쟁의 정치가 아니라 부르주아 야당을 지지하자는 노선이었다.
이렇게 되면 정치 활동은 부르주아지가 주도하고 노동자들은 경제 투쟁만 하는, 정치와 경제의 분업이 이뤄지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관점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개혁주의의 접근법이었다.
레닌은 이런 노선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다가올 혁명을 일관되게 이끌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레닌이 보기에, 차르에 맞서는 혁명을 지도할 임무는 – 비록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 현대적인 대공업 속에서 성장하고 있던 프롤레타리아에게 있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를 위한 모든 투쟁에 앞장서야 했다.
그러나 경제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이런 막중한 과제를 포기했고,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는 데에 반대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레닌이 경제주의를 사회주의 운동 내부의 개혁주의·수정주의라는 국제적 흐름과 연결지은 것은 정확한 통찰이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베른슈타인이 사회민주주의의 “궁극 목표”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는데, 러시아 경제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레닌은 러시아 경제주의자들이 “비판의 자유라는 요구를 들고 베른슈타인주의를 옹호하며 나섰다” 하고 비판했다. 그리고 경제주의자들이 비판의 자유를 오용해 실제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들춰냈다.
몸에 걸친 빛나는 제복이나 스스로 갖다 붙인 떠들썩한 별명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실제 무엇을 선동하는가를 보고 사람들을 판단한다면 “비판의 자유”란 사회민주주의[이때 사회민주주의는 오늘날로 치면 개혁주의가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를 뜻한다 - 필자] 내 기회주의적 경향의 자유, 사회민주주의를 민주 개혁 정당으로 바꾸어 놓을 자유, 사회주의에 부르주아적 사상들과 부르주아적 요소들을 도입할 자유라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레닌의 경제주의 비판과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
‘경제주의’는 국제 노동운동 안에서 자주 나타났다.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은 두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노동력 착취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기반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력은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상품의 형태로 표현된다. 전자의 측면은 노동계급을 계급투쟁과 계급 의식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반면, 후자의 측면은 노동력의 판매 조건을 두고 더 열심히 협상해야 한다는 관념을 부추겨 노동자들이 보수적인 노동조합 관료를 따르게 한다. 그람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이 모순적이라고 했다. 한 노동자의 머릿속에서도 상식(지배 이데올로기)과 양식(사회주의적 의식)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혁명적 정치 조직의 핵심 목적은 노동계급 속에서 상식에 맞서 양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비록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이 점을 정교하게 다루지 않았더라도, 레닌은 그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자발성과 의식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경제주의를 비판하며 직업 혁명가들로 이뤄진 간부층과 전국적 정치 신문을 바탕으로 러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혁명적 정치 조직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여기서 의식성과 자발성의 관계를 놓고 레닌은 경제주의자들과 차이를 보였다. 경제주의자들은 경제 투쟁에서 정치의식이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대중 운동이 사회주의의 “과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닌은 자발적인 투쟁에서 바로 의식과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봤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존 몰리뉴는 자발성과 의식의 관계, 대중 운동과 정당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 개념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평가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런 개념은 숙명론과 철저하게 결별하는 것이므로 진정으로 혁명적인 정당 이론의 출발점이라고 했다.대중 운동이 가장 중요한 현상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노동계급 대중의 운동이 “과제를 결정”할 것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다. 이 말은 둘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운동의 자발성에 굴종하는 것, 즉 사회민주주의의 임무는 노동계급 운동에 그저 굴종하는 것뿐이라고 해석하거나, 아니면 대중 운동이 성장하기 전이었다면 우리가 만족했을지도 모르는 과제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론적·정치적·조직적 과제들이 새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레닌은 의식적 요소를 돕고 자발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혁명가들의 의무라고 봤다.
그러나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노동계급의 자발성을 “과소평가”했고 무시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주장이 그 증거라고 했다.
자발성에 관해 말들이 많다. 하지만 노동계급 운동의 자발적 발전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길이며, [경제주의자들의 문서인] 〈신조〉Credo의 강령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자발적인 노동계급 운동은 노동조합주의이며, 노동조합주의란 바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 사회민주주의의 과제는 자발성과 투쟁하는 것, 즉 노동계급 운동을 부르주아지 진영 아래에 들어가려는 자발적인 노동조합주의에서 끌어내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진영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5 그렇다면 위 주장은 레닌이 노동계급의 자발성을 무시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지리멸렬하고 목적이 불분명한 행동은 혁명적 정치 활동을 거부하는 협소한 경제주의로 쉽사리 빠져들 수 있다고 비판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라스 리는 흔히 ‘자발성’spontaneity으로 번역되는 러시아어가 당대 러시아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리멸렬하고 목적이 결여된’disorganized and lacking purpose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다고 지적했다.레닌은 경제주의와의 논쟁 때문에 의식성과 조직 쪽으로 막대기를 구부렸다. 그래서 얼핏 보면 자발성과 의식성의 차이가 매우 커 보이고, 그 관계가 비변증법적으로 읽힌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정치의식’이 ‘외부에서만’ 노동계급 운동으로 도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나온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회민주주의 의식은 외부에서 노동자들에게 도입돼야 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역사는 노동계급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노동조합 의식을 발전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 그러나 사회주의 이론은 유산계급의 교육받은 대변자들, 즉 지식인들이 정립한 철학·역사·경제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사회적 지위로 보면 부르주아 지식인이었다.
주류적 해석은 이 대목에서 레닌의 엘리트주의가 드러난다고 본다. 지식인들로 구성된 ‘직업 혁명가들’의 정당이 노동자들을 깨우쳐 준다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레닌의 주장을 이해해야 한다. 훗날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이제 ‘경제주의자들’이 한쪽 극단으로 가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누군가는 다른 방향에서 끌어당겨야 했다. 그것이 내가 했던 일이다.”
레닌은 노동자들보다 지식인들이 우월하다고 본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다른 데서 그는 지식인이 “신중하지 못하고 게으른 버릇이 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레닌은 직업 혁명가로 충원할 대상을 학생이나 지식인에 국한하지 않았다. 이 점은 1905년 혁명에서 더 분명하게 발전돼서 나타났다. 그때 레닌은 당의 문호를 개방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당 위원회의 위원이 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다수의 당 간부들과 의견이 대립했다.
6 여기에는 노동자들도 당연히 포함돼 있었다. 예컨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노동조합professional’nye soiuzy을 뜻하는 러시아어 어구에도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다. 사실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중간계급 전문직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노동조합에 관한 얘기가 많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레닌은 분명히 혁명가들을 노동계급의 일부로 보고 있었다.
라스 리도 레닌이 직업 혁명가로 지식인만을 염두에 뒀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직업 혁명가professional revolutionary에서 ‘직업’professional으로 번역되는 러시아어 단어 ‘professiia’를 레닌은 중간계급 전문직에 국한되는 의미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레닌이 말한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사회주의’는 두 명의 지식인(마르크스와 엥겔스)이 마르크스주의를 정초했고, 그 사상이 노동운동과 결합됐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그런데 ‘외부로부터’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주의를 기계적으로 해석한 카우츠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이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과는 맞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순전히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것이었다. 예컨대 파리 코뮌이 마르크스의 국가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리더십(지도) 문제 대해 레닌은 ‘지식인 대 노동자’라는 식으로 대립시킨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영감을 주고받는 것으로 접근했다. 레닌은 대중을 어린아이 취급하며 그들을 상대로 ‘정치’를 설교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믿는 자들에 반대하고, 노동자들에게 오로지 ‘빵과 버터’의 문제만 얘기하고 노동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자들을 논박하며, 그런 논박의 대상인 경제주의자들이 노동계급 내부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데서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닌도 의식성과 자발성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는 단초를 책에서 언급했다.
파업은 러시아에서 “자발적인” 기계 파괴 등을 수반하며 1860년대와 1870년대에도(심지어 19세기 전반기에도) 일어났다. 이런 ‘반란’과 비교하면 1890년대의 파업은 ‘의식적’이었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당시 노동계급 운동은 엄청나게 진보했던 것이다. 이것은 ‘자발적 요소’가 근본적으로 맹아적 형태의 의식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다만, 레닌은 계급의 꽁무니를 좇는 경제주의를 비판하며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당시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중앙집중적 조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레닌은 1894년에 러시아 혁명 운동의 당면 임무가 ‘사회주의 노동자 당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효율적인 조직의 부재로 인해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차르 경찰의 탄압에 노출돼 있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1895~1902년에 모스크바의 사회주의 그룹들은 경찰의 탄압으로 평균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많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바로 충분한 계획과 활력의 부족, ‘폭 넓은 정치 선전, 선동, 조직의 부족’, 더 광범한 혁명 과업의 설정이라는 ‘계획’의 부족으로 고통받는 바로 그런 시기에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으로 속류화하는 것일 뿐더러, 실천적으로 당을 후퇴시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비춰 보면,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펼친 주장의 핵심은, 대중의 자발적 행동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충분히 효과적이게 할 수 있는 핵심 고리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즉, 레닌은 당시 러시아 상황에서 선진 노동자들로 이뤄진 혁명적 정치 조직 건설이 시급함을 강조하고자 막대기를 구부렸던 것이다. 이 점은 《무엇을 할 것인가?》의 다른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가능한 한 소수의 직업 혁명가들에게 모든 보안 기능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이 혁명가들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생각하고” 대중은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직업 혁명가들은 대중으로부터 점점 더 많이 배출될 것이다. … 조직의 보안 기능을 집중시키자는 것이 운동의 모든 기능을 집중시키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광범한 대중이 불법 신문에 적극 참가하는 것이 줄지 않을 텐데, “10여 명”의 직업 혁명가들이 그런 활동과 관련된 보안 기능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열 배나 증대될 것이다.
레닌은 카우츠키주의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라스 리는 레닌을 권위주의의 화신처럼 여기는 통념을 깨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레닌이 카우츠키의 충실한 제자였고 러시아 조건에 맞게 독일 사회민주당 모델을 적용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쓸 무렵에 레닌은 카우츠키를 신봉했고, 사실 1914년 이전까지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모두 스스로 카우츠키의 정치와 사상을 따른다고 생각했다. 이 점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8 사실 그런 일은 매우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라스 리는 당과 계급의 관계에 관해 레닌이 카우츠키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봤다. 여기서 라스 리가 간과한 점은 저자(카우츠키)가 특정한 의도로 글을 쓰더라도 그 글을 읽고 해석하는 독자(레닌)는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카우츠키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지적으로 풍부하고 쉽게 설명하는 데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1914년 이전까지는 레닌만이 아니라 많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그의 저작에 영향을 꽤 받았다.
하지만 카우츠키의 정치 저작에서 나타난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하는 바(둘 사이의 변증법적 통일)와는 달랐다. 카우츠키에게는, 이론이 실천을 지도하지만 실천은 결코 이론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따라서 언제나 정당이 계급을 가르치지, 계급이 정당을 가르칠 일은 없었다.
레닌의 정치 활동은 이와는 달랐다. 앞서 언급했듯이, 레닌은 정당이 계급을 가르치기만 하는 존재라고 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혁명적 행동에 관여하는 기구로 이해했다. 반면 카우츠키의 독일 사회민주당은 그의 표현대로 “혁명적 정당이지만 혁명을 만드는 정당이 아니었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은 이런 수동성과 거리가 멀었다. 1903년에 멘셰비키와 논쟁하고 분열하면서, 레닌은 노동계급 의식의 불균등성이 당에 고스란히 반영돼서는 안 되고, 오로지 계급의 혁명적 부분만이 당으로 조직돼야 함을 분명히 했다. 그래야 광범한 노동자 운동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폴 르블랑은 이것이 혁명가와 개혁주의자들이 공존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형적인 사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1903년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분열할 때 볼셰비키가 강성파로 알려졌던 것이고, 1905년 12월 모스크바 봉기 당시 멘셰비키가 아니라 볼셰비키가 조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1912~1914년 러시아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이 고조될 때 멘셰비키가 노동자 투쟁의 무질서한 측면을 두려워한 반면, 볼셰비키는 그 투쟁에 열의 있게 관여한 까닭이기도 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레닌은 1918~1923년 독일 혁명에서 카우츠키와 그 지지자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했다. 그리고 레닌이 관여한 시절에 코민테른의 테제와 결의문들은 카우츠키와 독일 사회민주당의 에어푸르트 강령과도 달랐다.
레닌주의 정당은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한때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같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부상하면서, 범좌파 정당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국제 좌파들 사이에 유행했다. 라스 리의 저작은 일부 좌파가 범좌파 정당 모델을 정당화하고 레닌주의 좌파를 공격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이후 시리자와 포데모스 등 좌파 개혁주의의 실망스러운 궤적을 보면, 여전히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고전적 물음은 중요하다. 그리고 최소 강령(당면 요구)과 최대 강령(궁극 목표)의 간극을 정치 선동과 노동계급의 능동적 행동으로 잇고, 이를 위해 혁명적 정치 조직을 건설한다는 레닌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호민관과 신문
경제주의자에 대한 반박에서 드러나듯이, 레닌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투쟁 속에서 노동계급이 훈련받고 의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노동자들이 모든 형태의 억압에 저항할 필요성을 다루면서 레닌은 혁명가와 노동조합 간부를 비교했다.
어떠한 ― 예컨대, 영국의 ― 노동조합 간부라 하더라도 언제나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을 돕기 때문에, 그는 노동자들이 공장 내부의 박해를 폭로하도록 돕고, 파업을 벌이고 피케팅할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과 조처들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중재재판소 판사들의 편파성을 설명하는 등의 일을 한다. 한마디로 노동조합 간부는 모두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는 경제 투쟁을 하며, 그 투쟁을 돕는다.” … 사회민주주의자의 이상은 노동조합 간부가 아니라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 그는 압제와 억압이 어디에서 나타나든, 어떤 계층이나 계급이 압제와 억압을 당하든 간에 그것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도 모든 사건을 활용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확신과 민주적 요구를 설명하고, 모든 사람에게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위한 투쟁의 세계사적 의의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혁명적 좌파가 비정규직·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차별을 시정하려는 운동에 관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혁명적 좌파의 이런 활동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흔히 기자회견을 하고, 성명을 내며, 노조 내에 관련 부서를 만들어 그들에게 문제를 일임하는 것과는 다르다. 또는 개혁주의 정당이 주로 여성이나 성소수자에게 당직·공직을 할당하는 것에 그치는 것과도 다르다. 오히려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조장하는 분열에 맞서 투쟁 속에서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입증하려는 전략과 관련 있다.
레닌은 신문이 혁명적 정치 조직을 건설하는 데 중요한 무기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기 전에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그는 신문의 구실을 “집단적 선전가이자 집단적 선동가일 뿐 아니라 집단적 조직가”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집단적 조직가라는 점에서 건축 중인 건물 주위의 비계에 비유할 수 있다. … 신문의 도움으로, 그리고 신문을 통해서 지역 활동뿐 아니라 정규적인 일반 활동에도 참여하며, 정치적 사건들을 신중하게 추적하고, 그 사건들이 다양한 계층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효과를 미쳤는지 평가하고, 그 사건들에 혁명적 정당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들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조직원들을 훈련할 상시적 조직이 자연스럽게 모양을 갖출 것이다. … [신문] 배포자망은 명백히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조직 골격을 형성할 것이다. 즉, 엄밀하고 세부적인 분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광범하고 다재다능한 조직,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급작스런 전환’에서도, 어떠한 돌발 사고에 직면해서도 꾸준히 자신의 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잘 단련된 조직, 한편으로 적이 자신의 힘을 모두 한 지점에 집중할 때 압도적인 적에 대항하는 공개 전투를 피할 수 있으면서도, 적이 결코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적이 출동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공격을 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한 조직 말이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분산된 지역 신문들에 만족하는 경제주의자들을 반박하며 그런 신문들로는 차르에 맞서 “공동의 공격과 통일된 투쟁의 지도를 위해 혁명가들의 모든 역량을 모으고 조직할 수 없을 것이다” 하고 주장했다. 중앙집중적 조직의 신문이 있어야만, 혁명가들은 개별 작업장에서 “수공업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전제정에 대한 혁명적 공격 일체를 반영하는 광범한 계획의 참여자로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레닌은 신문 배포자망이 장차 무장봉기를 조직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 신문을 중심으로 형성될 조직은 … 암울한 혁명의 ‘침체’기에 당의 명예, 위신,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에서 전국적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감행 시점을 정하고 결행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준비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혁명적 신문은 필요할까?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주로 온라인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 그런 양태를 보면, 수고스럽게 종이 신문을 만들고 이를 배포하는 일상 활동과 조직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인가 반문하기 쉬울 것이다.(물론 혁명적 좌파가 온라인에서의 선전과 선동을 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혁명가들에게 신문은 여전히 필수적 수단이다. 혁명적 종이 신문은 독자와 판매자들이 스스로를 신문과 동일시하게 하며, 다양한 쟁점들을 한데 연결하는 구실을 한다. 신문에 직접 기사를 쓰고, 자기 일터의 소식을 기고하며, 직접 돈을 내고 신문을 구독하고 후원하는 것 하나하나가 중요한데, 이 모든 것이 신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이 된다. 자기 일터 소식만을 보는 게 아니라, 기후 위기 같은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을 포함해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사고할 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당원들과 그들의 주변 사람들 모두에 교육적 구실을 하면서, 신문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게 해 준다.
혁명적 종이 신문이 하는 이런 구실들 때문에, 국가와 사용자들은 혁명적 종이 신문에 항상 적대적이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노동자 연대〉 신문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연행한 적이 있다.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안보 위기를 조성한다고 신문이 비판했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혁명가들의 실천과 조직에 관한 날카로운 논쟁 속에 쓰여진 저작이다. 이 책에는 당과 계급의 관계, 혁명적 정치와 조직 형태의 관계, 혁명적 신문의 구실 등에 관한 매우 실천적이고 날카로운 주장이 담겨 있다.
레닌은 혁명적 조직이 혁명적 정치의 표현이라고 봤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드러난 레닌의 생각은 시간과 조건에 따라 달라졌고, 이후 볼셰비키당도 변화해 왔다. 게다가 오늘날의 세계는 분명 레닌이 살던 세계와는 다르다.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혁명가들이 SNS를 슬기롭게 이용하는 법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전은 우리에게 정답을 가르쳐 줘서 의미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방법과 영감을 준다는 의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우리가 여전히 읽어 봐야 할 필독서다.
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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