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아프가니스탄 재파병과 지방재건팀의 정치경제학
2월 25일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해서 2012년 말까지 한국군 3백여 명이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에 지방재건팀으로서 주둔하게 됐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유혈 전투는 불가피하다’는 섬뜩한 말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재파병이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것이라는 거짓말도 잊지 않는다. 이 글은 지방재건팀의 구실과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명분으로 수행한 점령 보조 구실을 소상히 밝히고자 쓴 것이다.
지방재건팀 — 식민화 정책 맞춤형 군대
1 산하의 비정규 군대다. 일각에서는 ‘지방재건팀’을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봉사하는 민사기구라고 호도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만의 말씀이다. 지방재건팀은 정규군에 속해 있으면서 각종 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하는, 민간인을 상대로 작전을 펼치는 군대다.
지방재건팀PRT: Provincial Restruction Team은 국제안보지원군ISAF지방재건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앙정부의 입맛에 따라 움직일 지방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까지 통치력을 행사하지 못해 ‘카불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카르자이가 탈레반 세력이 강성한 가르데즈[아프가니스탄 동부 팍티아 주(州)의 주도 ― M21]에서부터 지방재건팀을 운용해야 한다고 간청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2002년 12월부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8개 지방행정구역으로 분할하고 지방재건팀을 동원해 ‘민사작전’을 실행했다.
지방정부를 세운다는 것이 현실에서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프가니스탄 33개 주정부의 치안과 행정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점령군에 고분고분하면서도 주민들을 잘 통제할 꼭두각시 정부가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점령군은 현지인들의 ‘민심’을 얻어 게릴라군과 일반 대중 사이의 연계를 끊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고 싶어한다.
2 특히, 오바마는 군사 행동과 개발 계획을 통합한 지방재건팀을 모델 삼아 작전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다시 말해, 지방재건팀은 개발 원조와 무력을 이용해 꼭두각시 정부에 봉사할 지역 하수인들을 획득하려는 점령군의 식민 정책에 봉사하는 수단이다. ‘국가 건설’이나 ‘국가 재건’이라는 표어의 함의는 중앙정부의 통치력을 확장하고, 옛 하수인들을 종속적 관계로 확실하게 재편하고, 적절한 하수인들을 새로 발굴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발 원조 혜택은 전쟁에 협력하고 중앙정부에 충성하는 현지 실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2001년부터 CIA와 미 국방부는 크고 작은 군벌들의 주요 후원자가 됐다. 한마디로 지방재건팀은 아프가니스탄 식민화 정책 맞춤형 군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나토는 개발 원조를 이용해 “전쟁 동맹”, 즉 하수인을 포섭하려는 노력을 강화했다.식민화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무력이 필수적이다. 지방재건팀의 활동이 단지 주민들을 상대로 한 봉사 활동일 뿐이라는 말은 순전한 거짓말이다. 주민들이 점령군을 적대하지 않도록 각종 심리전, 치안 유지, 인도적 구호, 건설 등의 활동을 수행하지만, 이런 ‘재건 지원 활동’은 전투 작전에 종속된다. 이 점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던 한국군 지휘관의 다음 말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지방재건팀은] 과도정부의 영향력을 증대[하고자] … 이동 순찰, 검문소 운용, 도로 차단, 방호수단 설치, 치안 위협 정보 수집[을 하고] … 현지에 정치적 공백이 생길 경우에는 동맹군 및 아프간 육군 병력[을] 투입할 수 있[고] … 지역 내에 아프가니스탄 정규 군단 및 국경수비대 창설 과정을 감독[한다. 무엇보다 지방재건팀은] 신속대응군을 요청할 수 있는 요원을 편성하여 비상시[에] 대비하[는 상시 전투부대다.]
4 점령군이 주민들 속에서 ‘암약’하는 탈레반 세력을 물리치려면 민간인을 상대로 작전을 펼치는 군대의 임무가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재건팀은 건설 공병 활동을 하면서도 비정규 전투도 일상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파견군 지휘관들은 지방재건팀의 성공 여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 작전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고 입을 모은다.지방재건팀의 일상이 어떤지는 촘스키가 “극우 국수주의자”라고 일컬은 미국 언론인 로버트 카플란이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을 밀착 취재해 쓴 르포에 잘 나와 있다.
우리 일행은 도요타 픽업 두 대와 MK-19 40밀리미터 유탄 자동 발사기가 장착된 험비 네 대로 구성된 차량 여섯 대에 나누어 탔다. 재건팀이 이번에 할 일은 남쪽의 파키스탄 국경 근처 샤이코트 산맥에 들어앉은 한 외진 마을로 들어가 공사가 진행중인 학교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 이번 임무는 밀워키 출신의 공수 유격대원 딘 프램링 소령이 지휘했다. 그의 지시 사항은 간단했다. “복병에게 습격당하면 제압 사격을 하며 계속 이동한다.”
6 그리고 행정과·정보과·작전과·군수과·통신과의 본부 지휘 체계에 따라 군사관찰과·전술심리전팀·경계치안관찰팀·경계반이 특별 경호, 주민 관찰, 이동 순찰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7 이번에 파병될 한국군도 ‘민사 활동’과 전투 활동을 펼치면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가슴에 총구를 겨눌 것이다.
이미 한국군은 아프가니스탄의 파르완 지역에서 미군과 함께 지방재건팀 활동을 해 왔다.(공식적으로 한국군은 2007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지만, 2008년 2월 지방재건팀을 파견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파르완 지방재건팀은 민사 업무로 파견된 미군 5명과 한국군 7명, 경비부대로 구성돼 있었다.재건 지원이 남긴 실적의 본질 지방재건팀의 ‘재건’ 실적은 어떨까? 지방재건팀의 활동은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실질적 도움이 됐을까? 9년째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있는 점령 당국의 재건 실적은 너무도 꾀죄죄하다. 2001년에 세계은행은 2008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2백75억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목표를 계속 낮췄다. 45억 달러로 깎고, 다시 17억 달러로 깎더니 결국 아프가니스탄에 실제 들어간 돈은 14억 달러에 불과하다. 2002년 9월 미국은 2004년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 학교와 병원 1천 개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2004년 9월까지 목표의 10퍼센트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기존 건물을 수리하는 수준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재건 사업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완전 부실!”
한국 정부의 실적은 어떨까? 꾀죄죄함의 극치다.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공무원 교육원 건립과 아프가니스탄 이스탈리프 소수력 발전소 건설 등에 총 17억 8천6백만 원을 지급했다지만, 이런 지원에 붙는 조건(한국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한다는)을 제하면 2006년 한 해에 실질적으로 지원된 물자는 고작 3억 4천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0 이조차 완전히 무상 원조였던 것도 아니다. 전 아프가니스탄 주재 한국 대사는 2006년 런던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미국과 나토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무상 원조를 ‘유상 및 무상 원조’로 바꿨다고 했다. 11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아프가니스탄에 직업훈련원, 병원, 보건소, 공무원 교육 등의 프로젝트를 시행했고 많은 한국 NGO가 KOICA의 지원금을 받아 개발 원조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공무원 1천 명에게 컴퓨터 교육을 했고 카불공대 IT센터를 건립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다산부대가 파견된 파르완 주 마을 세 곳에 초등학교를 많이 지었다며, 이를 지방재건팀의 성과라고 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2년간 한국이 새로 지은 학교는 겨우 세 개였다. 카불의 농촌 지역에서 초등학교 14곳을 보수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백만 달러를 들여 응급 병원을 보수했다지만, 이것을 ‘혁혁한 성과’라고 말하기에는 낯뜨겁다.12 서구의 공식 해외 원조는 총액의 40퍼센트가 NGO로 직접 들어가는데, 이 돈의 상당 부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빨리 빠져나가기도 한다. 정작 돈은 서방 업체와 거래하는 NGO 운영자들의 은행 계좌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비영리 단체 액션에이드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아프가니스탄 재건 비용으로 책정된 미국 세금이 실제로는 결국 부유한 미국 기업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미 국제개발처USAID와 하청계약을 체결한 대체로 무능한 미국인 전문가들의 크게 부풀려진 인건비가 국제개발처에서 미국 은행 계좌로 곧장 입금되기 때문이다.” 13
게다가 이렇게 꾀죄죄한 원조의 진정한 수혜자가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주민인지도 불투명하다. 많은 연구와 현장 조사 결과를 보면, 아프가니스탄 원조는 오히려 공여국(원조 지급 국가)의 배를 불린다. 아프가니스탄 원조 가운데 절반 이상이 조건부 원조로서, 공여국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그 결과, 수혜국이 받은 원조의 70퍼센트는 공여국에 ‘묶이게’ 된다. 원조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사업에서 수주업체들은, 외국계 업체든지 아프가니스탄 업체든지 흔히 20퍼센트 이상의 이윤을 남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50퍼센트 이상의 이윤을 남긴다.재건 비용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에게 가지 않는다. 2002년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4천만 달러를 줬는데 이 중 3천만 달러가 카불에 5성급 호텔을 짓는 데 사용됐다. 아프가니스탄을 재건하는 데 쓰겠다던 서구의 원조 자금은 현지 관리들의 호화 주택을 ‘재건’하는 데 쓰였다. 카르자이의 동료들은 빈민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나토군의 보호를 받는 대형 저택을 지었다. 이 때문에 카불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그래서 피난민 한 식구 정도가 살 수 있는 너절한 진흙 집 가격이 4백~1천5백 달러에서 5천 달러로 치솟았다.
14 재건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부패는 이라크에서도 심각했다. 이라크에서 미국 기업들은 노동자와 시멘트 등을 들여오는 데 원래 가격보다 10곱절 많은 비용을 들였다. 미국 기업 파슨스는 의료 시설 1백42개를 짓는다며 1억 8천6백만 달러를 받았지만, 실제로 완공한 시설은 달랑 6개뿐이었다. 15
또한, 점령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은 기업 부패의 복마전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로 공사 등 재건 사업을 여러 기업에 발주한 USAID와 세계은행은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생활 편익 증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로 시공 프로젝트를 따낸 미국의 루이스 버거 그룹은 이라크에서도 재건 자금만 챙기고 도망간 전력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도 부패의 촉수가 뻗치지 않은 곳이 없어 재건 지원금은 공중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새로운 정부에서 자리를 차지한 특권층들이 외국 원조의 상당 부분을 착복했다. 국제축구연맹과 아시아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등이 해마다 아프가니스탄 축구 대표단에게 지원금을 보내지만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다.17 개발 원조에 쓴다던 공여액은 주로 군사적 목적에 쓰인다. 지방재건팀이 도로 포장 공사를 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로매설폭탄IED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태어나서부터 당나귀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다녀서 이렇게 좋은 도로가 없어도 잘 살았다. 차를 몰 만한 부자는 파르완에서 아주 소수다” 하고 말한다. 18 한국 정부가 보내는 물품과 장비는 대부분 경찰 치안 업무에 쓰였다. 2009년에는 구급차 1백 대, 경찰 순찰용 오토바이 3백 대 등 5백만 달러어치 장비를 지원했다.
무엇보다 재건 지원이 군사적 목적에 종속돼 있는 구조야말로 인도주의적 재건이 무망한 핵심 요인이다. 실제 2001년 이후 모든 공여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제공한 실질 원조액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쓴 돈의 7퍼센트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한국 공병 부대와 의료 부대는 바그람 미군 기지에 주둔했다. 한국군은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아니라 미군과 다국적군을 위한 임무를 수행했다. 파병 한국군의 재건 지원 업무는 “비행장 활주로 및 기지 … 보수, 건물 신축 및 토목공사, 전기 공사와 주둔지 벙커 작업 … 위험이 상존한 지역에서 생존성 보장을 위해 자체 벙커 제작, 상황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기동타격대 운용, 격주 1회 부대 방호 훈련”이었다. 한국군이 아프가니스탄 주민 수만 명에게 지속적으로 의료 행위를 했다고 홍보하는 것조차 과장된 거짓이다. 파병 목적상 동의부대의 진료 대상은 다국적군이었다. 그래서 노르웨이 난민위원회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주의 사업에 참가한 코너 폴리는 “2004년 이후 모든 인도주의적 사업이 대 게릴라전의 일부가 됐다”고 회고했다.21 출산 중 산모 사망률은 1만 명 당 1천6백 명에 이른다. 이는 미국의 1백30곱절이며 날마다 50~70명씩 사망하는 꼴이다. 빈혈, 태아 발육 저하, 자궁 수축 부전[사산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 M21] 등 영양 부족과 산부인과 응급 처치 부족은 말할 것도 없다. 카불에 사는 미망인 중 65퍼센트가 고통과 슬픔을 잊을 방법으로 자살을 고민한다. 2007년 3월 이후 여성 폭행은 4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22
위선적 재건 지원의 결과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비참한 삶이다. 도시민의 20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만이 상수도를 이용한다. 전화 보급 대수는 1천 명당 두 명밖에 안 된다. 전기는 전체 인구의 6퍼센트에게만 공급된다.23 오로지 점령을 중단해야만 제대로 된 지원과 원조가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점령을 지원하는 한국군 재파병은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삶을 재건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 ‘그러니까 아프가니스탄에 원조를 더 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조건 없는 원조와 지원은 대폭 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점령과 전쟁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미 1년 전에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거의 절반이 원조 개발 노동자들은 들어갈 수 없는 ‘출입 금지’ 지역으로 설정됐다. 국제적십자위원회 같은 NGO들은 대부분 무장 호위를 받으며 분쟁 지역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점령군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미국 정부의 직접 원조를 늘려 NGO의 구실을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원조가 군사화하면 진정한 목표가 전쟁을 지속하려는 것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한국군이 재파병될 파르완 지역을 직접 취재한 김영미 피디는 지방재건팀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재건팀 사업을 하면서 마을 정보를 수집한다는 명분으로 걸핏하면 집집마다 수색을 벌이는 미군을 보며 느끼는 주민들의 반감은 크다.
아프간 민간 방송 아리아나 TV 기자로 파르완에 상주하는 파이샬 씨는 “미군이 PRT라는 간판 뒤에서 정보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주민은 상처를 받았다. 학교 설립을 탈레반 정보 획득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도 생겼다”라고 말했다. … 아프간 신문 ‘카불 타임스’ 파르완 지국 기자인 예나에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8년간 파르완에서 미군 PRT 사업은 주민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 정점이 2005년에 벌어졌던 반미 시위이다. 미군의 재건 사업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주민들은 생각한다. 미군과 공조한 부패 관리도 미워한다. 지역 관리에게 PRT 사업은 돈을 뜯어 낼 좋은 기회다. 어떤 공사든 지역 행정관리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알면서 공사를 강행하는 미군과 이를 악용하는 관리 모두를 경멸한다.”
그 결과 지난 8년 간 파르완에서 미군 43명이 목숨을 잃었다. 따라서 “파르완 지역 민심이 외국군에 적대적이지 않아 안전하다”고 강조한 한국 정부의 설명은 완전한 거짓이다.
제국주의와 글로벌 침략 코리아
25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제2의 베트남이 되었다.
브레진스키는 국제 정치의 솔기라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중국의 신장, 카자흐스탄에서 아라비아 해에 이르는 지역)을 “글로벌 발칸”이라고 불렀는데, 이 지역의 심장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따라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은 세계라는 장기판 위에서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는 전략의 결정체다. 미국의 입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건설적인 행동을 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함과 동시에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불안정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국제적으로 필요한 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26 이스라엘, 이집트까지 반소 군대를 지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 반소 군대 무자헤딘의 여러 분파들을 지원한 국가 사이의 동맹 관계는 산산이 해체되고 내전은 더욱 극렬해졌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견제하려 한 이란은 하자라족을, 프랑스는 아마드 샤 마수드를, 소련은 우즈베크족의 도스툼을, CIA와 파키스탄 군부는 탈레반을 지원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지독한 내전에 휩싸였다. 27
흔히들 아프가니스탄을 지독한 내전의 나라로 여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아프가니스탄이 근대화가 덜 된 나라여서도,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미개’해서도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해서 이곳을 장악하면 세계 패권을 행사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과 카스피 해와 중앙아시아의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그동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나토 소속 국가들, 러시아, 파키스탄, 중국 등이 각자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세력들을 지원하면서 내전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뿐 아니라 파키스탄, 중국,이 모든 것은 카스피 해와 중앙아시아의 천연 자원에 더 강력한 빨대를 꽂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국은 이란을 거치지 않고 그곳의 천연 가스와 석유를 인도양으로 빼낼 수 있는 송유관 설치에 집착했다. 러시아 군대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지 10년 후인 1998년에 평화유지군으로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는데, 러시아군의 임무는 중앙아시아에 저장된 석유와 가스를 조사하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옛 소련에 이어 10년 가까이 점령 수렁에서 헤매고 있는 이 땅은 송유관이라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기도 하다. 카스피 해 연안의 석유와 천연 가스가 이란을 거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인도양으로 나가는 노선인 TAPI(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 파이프라인은 1995년에 투르크메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에 건설되기 시작됐다. 1996년 당시 여기에는 주요하게 유노칼(셰브런 계열사)과, 중앙아시아가스파이프라인CentGas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다음의 기업들도 참여했다. 러시아의 가즈프롬, 사우디아라비아의 델타오일, 일본의 인펙스INPEX와 이토추Itochu, 파키스탄의 석유 기업, 그리고 한국의 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중단된 공사는 2008년에 다시 재개됐다.
현대가 여기에 적극 참여한 이유는 중앙아시아에 미개발 자원이 막대하게 매장돼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최대 에너지 수출 시장인 EU가 인접해 있어 개발한 에너지를 수출하기에 지리적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북해산이나 러시아산 우랄유를 수입해 정제해서 수출하는 것보다 중앙아시아에서 바로 정제해 수출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28 2007년에 한국은 추정 매장량 10억 배럴 규모의 대형 유전인 카자흐스탄 잠빌 광구에서 2.7억 배럴을 확보했다. 한국 석유공사는 카스피 해 이남 광구를 탐사했고, 금·몰리브덴·동 등 아제르바이잔에 풍부하게 매장된 광물 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해 최근에는 관련 협정을 모두 체결했다. 2006년 BTC(바쿠-트빌리시-제이한) 송유관과 SCP(남부 캅카스 파이프라인)를 완성해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에너지를 수출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한 아제르바이잔이 카스피 해의 에너지 물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어, 한국 정부는 아제르바이잔 내 석유 광구와 송유관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최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 해의 자원을 얻으려는 한국 기업들의 이권 개입이 매우 두드러진다. 카스피 해 에너지 자원 탐사 전문가는 “한국도 자체적으로 점증하는 에너지 필요 때문에 카스피 해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나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기업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무력 장치라 말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한국군 지휘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PRT의 성공 여부는 … 아프간 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 등으로 한국이 외교적·경제적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우리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다음 글은 한국국방연구원의 연구 결과에서 인용한 것인데,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의 논리에 담긴 소제국주의적 함의를 이보다 더 잘 보여 주는 말도 없을 듯하다.
중앙아시아, 캅카스 지역, 중동, 그리고 북부·서부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자원 부국들을 대상으로 군사·외교 지평을 확대하고 그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주목할 사실은 북아프리카 나라들만이 우리 군의 소프트파워를 탐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국 육군의 특수전 역량을 탐내는가 하면 중동과 남미의 크고 작은 국가들도 공군에 파일럿 훈련 위탁을 의뢰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은 해군 창설을 위해 2006년 봄 우리의 퇴역 고속정 3척을 증여받은 것은 물론, 이 시간에도 그 나라 장교들이 우리 해군의 선진기법을 이수하고 있음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부유라시아-아프리카 등지에 산재해 있는 우리 자원 사냥의 먹이 국가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간파해 이들 국가의 오일머니를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한국을 여는 신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31 한마디로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은 글로벌 침략 코리아, 즉 소제국주의적으로 비상하는 날갯짓이다. 그리고 9년째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 빠진 미국과 나토에게 한국군 재파병은 숨통을 틔워주는 구실도 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기 보급로가 막혀 끙끙대고 있던 차에, 최근 미군기지를 폐쇄한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보이 공항 개발권을 따낸 이명박과 한진그룹이 새로운 보급로를 뚫어 주는 구실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원 사냥의 먹이 국가들”이라니, 정말 섬뜩하지 않은가!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 각종 최신 살상 무기들을 열거하며, 지뢰와 매복 공격을 방어하는 첨단 무기를 대량 발주한 미국을 본받아 첨단 군수 기업을 강력하게 육성하자고까지 한다. “초소형 무인정찰기, 스텔스폭격기, 동굴파괴탄, 침투지원용 항공기, 초대형 폭탄 등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 최신 무기들에 대한 정보 기술을 확보하고 정밀타격수단을 극대화시켜야 한다.”이명박과 기업주들은 이런 날갯짓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이라크 파병 이후 한국 기업과 정부는 쿠르드 유전 지역의 채굴권 경쟁에 뛰어들어 현재까지 31억 배럴 규모 초대형 광구들의 채굴권을 따냈다. 이명박 정부는 이것이 사회기반시설 건설 사업과 연계하는 패키지형 사업의 성공 사례라며 자화자찬한다. 이 사업에는 운영권자인 석유공사(지분율 50.4퍼센트)를 비롯해 SK에너지(15.2퍼센트), 대성(7.6퍼센트), 삼천리(7.6퍼센트), 범아(7.6퍼센트), GS홀딩스(3.8퍼센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이곳에서 채굴한 원유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 투자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예상만큼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지역에서 유전 개발권을 얻는 것은 상당히 큰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사담 후세인에게 혹심하게 탄압받던 쿠르드족 지배층의 일부는 철저하게 미국에 동조했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에는 미국과 함께 이라크의 석유와 부를 나눠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미군의 점령을 적극 돕는 부역자로 인식되는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라크 중앙정부와 거듭거듭 갈등을 빚는다. 이로 말미암아 이라크 석유법이 통과되기도 힘들고, 통과되더라도 송유관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을 것이므로 이것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어느 때보다 점령군과 탈레반 사이의 전투가 치열하고 전황은 침략자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침략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렸다. 1839~42년 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영국군은 1만 6천 명 중 극소수만 살아남고 궤멸되다시피 했다. 1878~80년 제2차 전쟁에서는 영국이 승리해 카불에 영국 외교사무소가 설치됐으나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직원이 살해당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 역시 10년 간 사상자 5만 명을 내고 결국 10년 만에 퇴각해야 했다. 그래서 영국의 처칠은 일찍이 아프가니스탄을 가리켜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고 했다. 지금 이명박은 그 지옥에 한국의 청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전란의 포화가 휩쓸고 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잔인한 삶을 산 마리암, 라일라, 아지자(읽는 이를 숨막히게 할 정도로 문체가 뛰어난 세계적 베스트셀러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주인공들) 같은 아프가니스탄의 평범한 여성들을. 이들이 우리에게 ‘점령을 돕는 게 재건이고 정의인가요?’하고 물었을 때 우리는 글로벌 침략 코리아의 위선을 치열하고 일관되게 폭로했노라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
- 국제안보지원군은 유엔군은 아니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86호에 따라 결성된 군대로 유엔 책임 하에 임무를 수행한다. 2003년부터 나토가 지원하고 주도하고 있다. 원래 미국 중심의 동맹국은 연합군사령부CFC-A를 구성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치안 유지 업무도 병행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토군이 계속 밀린 뒤부터 CFC-A는 2006년 7월 아프가니스탄 작전권을 대부분 ISAF로 인계했다. ↩
- 이런 친미 군벌들은 마약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미국은 마약 퇴치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마약 밀매에 연루된 군벌들을 비호하는데, 군벌들이야말로 마약 밀매를 주도하는 핵심 세력이다. 뉴욕대학 국제협력본부의 연구 결과를 보면, 탈레반을 축출하는 미국을 도와 민병을 제공한 지방 군벌들은 마약 거래에 세금을 매겨 수익을 얻는다.(Barret R Rubin, ‘Road to Rubin: Afghanistan’s Booming Opium Industry.’ pp. 10-11. http://www.cic.nyu.eud/archive/RoadtoRubun.pdf) 따라서 점령군이 탈레반의 마약 거래를 퇴치하겠다며 호들갑 떠는 것은 위선의 극치다. 게다가, 지방의 거대 군벌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교역세를 걷어 돈을 벌고, 군소 군벌들도 지역 도로에서 통행세를 챙긴다. 흉작 때문에 올라간 식량 가격은 탈레반이 폐지했던 국내 통행세가 부활하면서 더 폭등했다. 점령군은 주요 지방 세력들의 악행을 묵인·방조한다. ↩
- 채수문, ‘아프간에서의 21세기형 신개념 민사작전 고찰: PRT 작전개념과 운용을 중심으로’, 《군사평론》 363호, 97~99쪽. ↩
- 같은 글, 104쪽. ↩
- 로버트 카플란, 《제국의 최전선》, 갈라파고스, 2007, 323~324쪽. ↩
- http://www.globalsecurity.org ↩
- 채수문, 앞의 글, 91~98쪽. ↩
- 정기만, ‘아프가니스탄 국가 건설 제한 요인 분석’,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06), 78쪽. ↩
- 곽숙희, ‘아프가니스탄 개발 원조와 여성을 위한 과제’, 《젠더리뷰》(2008년 여름), 103~108쪽에서 재인용. ↩
- KOICA,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 사업’, 《지구촌가족》(2007년 가을). ↩
- 유영방,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한국 정부의 원조’, 《국제개발협력》 3호(2006년 10월). ↩
- Malt Waldman, Aid Effectiveness in Afghanistan-failing Shot(Acbar Advocacy series), 2008 March. Agency Coordinating Body for Afghan Relief(ACBAR), p. 1. 곽숙희, 앞의 글, 103~108쪽에서 재인용. ↩
- 조너선 닐 외,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 책갈피, 2009, 104쪽. ↩
- 도로 복구 사업에 한국의 삼환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삼환기업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안전 조처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 노동조합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
- 나오미 클라인, 《쇼크 독트린》, 살림BIZ, 2008, 415~458쪽. ↩
- 김정현, 《아프가니스탄 — 그 절망과 희망 사이》, 휴먼비전. 2007, 178쪽. ↩
- 곽숙희, 앞의 글에서 재인용. ↩
- 김영미 분쟁 지역 전문 편집위원, ‘아프가니스탄 파병지 파르완이 안전하다고?’, 《시사IN》 115호(2009년 11월 23일자 호). ↩
- 파병반대국민행동, 《이라크 파병 연장 반대의 논리》, 2005. ↩
- 반전평화연대 2009년 10월 27일 긴급성명. ↩
- KOICA, ‘아프가니스탄 원조 실시 개요’(2004년 3월). http://www.koica.or.kr/data ↩
- 강은희,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경험하는 삶의 질과 PTSD 증상과의 관계’, 한동대학교 상담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08), 5쪽. ↩
- 조너선 닐 외, 앞의 책, 113~114쪽. ↩
- 김영미, 앞의 글. ↩
- 미국 국방전략 2008(US National Defense Strategy : USNDS 2008). ↩
- 중국이 반소 군대를 지원한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맞닿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무슬림들을 골칫거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
- 타리크 알리, 《근본주의의 충돌》, 미토, 2003, 360쪽. ↩
- 마이클 클레어, 《21세기 국제 자원 쟁탈전》, 한국해양전략연구소, 2008, 255쪽. ↩
- 채수문, 앞의 글, 111쪽. ↩
- 한국국방연구원, 《2009 연례전략보고서 — 한국의 안보와 국방》, 457~458쪽. ↩
- 합동참모본부, 《합참》 19호(2002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