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본 한국의 인종차별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없었고,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한 뒤에 나타난 새로운 특징이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가 세계적 수준에서 가장 유력한 생산양식으로 발전하던 시기에 그 기반이 된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려고 개발됐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는 노골적인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노예의 존재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간주되는 자본주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백인 노동자와 노예들이 단결해 저항할 가능성은 지배계급에게 실질적 위협이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자본가 계급은 흑인이 인간 이하의 존재이고 따라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상을 고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인종차별 사상은 노예제도가 폐지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배계급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변화에 맞게 그 형태를 바꿔가며 인종차별을 지속했다.
오늘날 인종차별의 유력한 형태 중 하나는 이주민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인종차별의 주된 대상은 이주민과 그 자녀들이다. 2022년 1월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민은 약 195만 명이다. 통계청은 이주민 2세나 귀화자 등을 포함한 이주배경인구가 2020년 기준 222만 명(총인구의 4.3퍼센트)이며, 2040년에 352만 명(6.9퍼센트)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역에 따라서 이주민 인구의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 나는 한국의 인종차별의 현실과 원인을 다루고, 그것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살펴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인종차별을 어떻게 분석하는지를 간단히 밝히고자 한다.
인종차별은 무엇인가?
인종차별에 대한 간단한 정의는 ‘피부색처럼 선천적이라고 여겨지는 인종적 특성을 이유로 한 체계적(사회적·정치적·경제적) 차별’이다.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구분된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인종 간 차이라는 관념은 날조된 것이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이 계속 존재하는 것은 그저 편견이나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종차별이 자본주의 체제의 특정한 조건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첫째는 경쟁, 특히 노동자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이다. 자본가는 (경쟁과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의 숙련 노동자를 더 싸고 기술 수준이 낮은 노동자로 대체하고 싶어 하는데, 특히 노동이 탈숙련화되는 자본 구조조정 시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때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숙련/미숙련 두 노동자 집단의 국적과 언어와 전통이 다르면, 인종에 따른 적대를 부추기기가 용이하다.
한국에서 이에 잘 들어맞는 사례는 건설업일 것이다. 기술보다는 근력이 더 요구되는 새로운 공법이 도입되면서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이 자리에 많이 유입됐다. 그러자 기존의 고령화된 일부 내국인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여기게 됐다.
하지만 경쟁만으로는 인종차별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다. 둘째 이유인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백인’(또는 내국인) 노동자에게 미치는 호소력 역시 중요하다.
사실 인종차별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은 ‘백인’(내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 계급이다. 두 노동자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집단 사이에 인종 적대가 발생해 경제적 경쟁의 골이 깊어지면, 자본가들은 두 집단 사이의 경쟁을 이용해 둘 모두의 임금 및 노동조건 수준을 낮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였던 미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전 위원장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용인에서 일할 때 한국인 노동자들은 원래 한 사람당 2000개의 칩을 점검해야 했다. 하지만 필리핀 노동자들이 들어온 이후 4000개로 늘어났다. 이제 그들은 이주노동자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이주노동자들이 해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들도 노동 환경의 악화로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는 ‘백인’ 노동자들에게 비록 현실이 팍팍해도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유력한 집단에 속했다는 위안과 안도감을 준다. 그리고 그들이 현실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가상의 해법, 즉 흑인(이주민)에 대한 배척을 속죄양으로 제시한다.
이와 연관해, 지배계급이 아주 의식적으로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인종차별이 유지되는 세 번째 조건이다. 마르크스는 영국 노동계급과 아일랜드의 민족자결권 투쟁의 관계를 다룬 편지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두 노동자 집단 사이의 – 인용자] 적대는 언론, 설교, 만화, 신문 등 한마디로 지배계급이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수단에 의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됩니다. 이 적대는 왜 영국인 노동계급이 자체의 조직을 갖추고도 완전히 무력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권력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인종차별을 그저 자본가들의 음모가 낳은 현상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인종에 따른 분열을 낳는 객관적 조건이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인종차별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일조한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임을 지적한 것이다.
3 그래서 인종차별의 구체적 형태를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상태와 연관 지어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렇듯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필요에 따라 조장된 것이라, 그 양상도 자본주의의 조건에 따라 변해 왔다.한국의 인종차별
한국 자본주의에서 인종차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말부터다. 그전에도 한국인들에게 인종적 편견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지배자들이 인종적 적대를 부추길 만한 대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60년대 한국은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파독 광원 등의 방식으로) 해외로 노동자를 보내는 나라였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바뀌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지나면서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이주노동자들은 대개 3D 산업과 농축산업 등에 종사했다.) 2000년대가 되면 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민(특히 여성)이 크게 늘어났다.
한국 국가는 점증하는 이주민을 한국 경제의 필요에 맞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주민을 노동력이 필요한 산업 부문에 저임금으로 고용하되, 유입 이주민 인구가 지배계급의 필요보다 늘지 않도록 관리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출산율 감소 등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대처하는 데에 결혼 이주민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이용을 편리하게 하려면 한국 국가는 이주민을 낮은 처지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를 정당화하려고 인종차별을 동원했던 것이다.
4 이는 그 나라들에서 노동조건을 공격하고 복지를 삭감하는 것, 즉 신자유주의 공격과 연관돼 벌어졌다.
이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 벌어진 상황과 비슷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대호황 와중에 서유럽 주요 국가들은 이주 노동력을 적극 유치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 상황과 그에 따른 필요가 바뀌면서 서유럽 국가들은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인종차별을 부추겼다.일부 논자들은 한국의 인종차별이 식민지 시절과 미국의 영향으로 서구의 인종차별적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잠재돼 있다가, 이주민들과 접촉하게 되자 수면 위로 올라와 법과 제도 등에 스며든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한국 지배계급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국가가 핵심 구실을 해 왔다.(필자는 이 글에서 지배계급의 또 다른 축인 자본가 계급의 구실보다는 국가의 구실에 집중했다.)
이동 통제
현재 한국에서 인종차별의 주된 형태는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이다. 특히 한국보다 위상이 비교적 낮은 나라들에서 온 유색 이주민들이 그 대상이 되고, 그러면서 이 차별은 국적에 따른 차별과 결합된다.
뒤에서 더 서술하겠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 자유를 제약하는 고용허가제와 이주 여성, 난민 등에 대한 차별적인 제도가 존재하고, 이를 벗어난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해 심각한 억압을 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 국가는 ‘주권’이라는 이유로 이를 정당화하는데, 평등한 (최소한 평등하다고 간주되는) 다른 인간의 권리 박탈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인종차별이 노예제를 정당화하던 것과 유사성이 있다.(이런 인종차별은 ‘이주민은 한국인과 근본에서 다른 존재이고, 믿을 수 없는 외부의 적’으로 간주하는 우파적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
한국 국가는 국경을 넘는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고, 그 이동(입국과 거주)을 허용하는 대가로 이주민들의 권리를 제약하거나 박탈한다.5 을 ‘내국인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는 존재’,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미등록 이주민뿐 아니라 이주민 전체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6 노골적인 인종차별 부추기기다.
그래서 한국 국가는 이주민 통제 강화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미등록 이주민이는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이주민 2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 오는 이주민이 문젯거리라면, 먼저 들어와 있는 이주민도 문젯거리로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7 이에 대한 미등록 이주민들의 공포는 엄청나서, 단속을 피하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단속된 미등록 이주민을 출국시키기 전까지 구금하는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소 당국이 구금된 난민 신청자에게 이른바 ‘새우꺾기’ 고문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8
한국 국가의 인종차별은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직접적인 물리력도 동원된다. 개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야만적인 단속·추방이다.이주민들은 제도적 차별도 당한다. 예컨대 미등록 이주민은 각종 공공서비스에서 배제된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인종차별에 맞서려면 이동 통제와 이를 근거로 한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 그런 차별의 대표적 사례는 고용허가제다.
고용허가제
2003년에 국회를 통과한 고용허가제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관리하는 대표적 수단으로,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 때 논의가 시작돼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됐다.
9 ).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통제하고, 유입된 노동자들이 한국에 정주하지 못하게 하고(가족 동반 금지), 필요하면 출국시킬 수 있도록 한다(체류 기간 제한).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자본주의에 필요한 부문(영세업체, 농축산업)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고 일하게 하려고 이주노동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약한다(사업장 변경 원칙적 금지그런데 직업 선택의 자유는 자본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기와 연관돼 있다. 자본주의 시장 관계를 떠받치는 이데올로기적 가정은 누구나 특정 거래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공평하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노동력 구매자를 선택할 권리를 제약한다.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노동부가 발행한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 도입 방안’ 연구보고서는 이렇게 썼다.
[고용허가제와 같은 – 인용자] 일시적 이주근로자 수입 제도는 자본가에게 ‘저렴하고’ 단결력이 없는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규정짓는 ‘자유로운 노동’이란 한 국가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그 나라 국민에게 한정된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과 함께 사라질 존재로 간주되었던 ‘부자유근로자’(unfree wage labor)가 현대 자본주의 재생산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자유”를 체계적으로 강요하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린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임금 체불과 산재가 빈발한다. 형편없는 기숙사를 제공하며 숙식비 명목으로 수십만 원을 임금에서 공제해도 거부할 수 없다. 폭언과 폭행,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해도 사업장을 변경하기 어렵다.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해 자살한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현대판 노예제”라는 규탄이 공감을 얻는 까닭이다. 고용허가제는 완전히 폐지돼야 한다.
결혼 이주 여성
10 2019년 6월 기준으로 결혼 이민자가 16만 명, 혼인 귀화자 13만 명이다. 이 중 압도 다수는 여성이다.
한국 국가는 2000년대 중반부터 결혼 이민자의 유입을 유도했다. “중앙정부나 지역 자치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국 남성의 국제결혼을 장려했으며, 여기에 영리를 목적으로 결혼을 중개하는 업자들이 결합하면서 짧은 기간에 국제결혼이 대폭 늘어났다.”결혼 이민을 장려한 배경은 출산율 감소였다. 1991년 여성 1명당 1.71명이었던 출산율은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에도 2005년 1.08명으로 감소했다. 이에 대응하고자 이주 여성을 결혼으로 유입하는 정책을 쓴 것이다.
이런 의도 때문에 한국 국가는 결혼 이주 여성이 노동력 재생산과 돌봄이라는 구실에만 충실하게끔 하려 했는데, 이는 1998년 국적법 개정에서도 드러나 있다. 개정 전에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에게 자동으로 국적이 부여됐는데, 개정 후에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는 귀화 허가를 받아야만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그러고는 결혼 이주 여성의 체류 자격을 결혼 관계 유지나 한국 국적의 자녀 양육 여부와 연동시켰다.
단독으로 체류 자격을 연장할 수 있다.
결혼 이주를 희망하는 여성이 한국에 입국하려면 한국인 남성의 초청을 받아야 한다. 체류 자격 연장에도 배우자의 존재가 결정적이다. 결혼 이주민은 1) 한국인 배우자가 사망했거나 혹은 실종됐거나 2) 한국인과 혼인해 그 사이에서 출생한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3) 혼인 상태가 아니라 해도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자신에게 없어야 (입증 책임이 결혼 이주민에게 있다) 이런 제도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결혼 이주 여성의 일부는 귀화를 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한 조건이 까다롭고, 배우자의 협조가 없으면 힘든 경우가 많다. 귀화 신청에 필요한 가족관계등록부·재직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구비하려면 배우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의 아이를 양육할 목적이 아니면 체류 자체를 매우 어렵게 해 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적에 조금치라도 어긋나 보이면 ‘경제적 목적으로 입국하려 위장 결혼한 사람’으로, 즉 돈을 위해 편법과 위법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으로 의심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 배우자에 대한 종속이 심해지고, 가정 폭력에 취약해지기도 한다.
요컨대 결혼 이주 여성 제도는 이주 여성에게 혼인 관계 유지와 양육 여부에 따라 한국인은 당하지 않는 제도적 불이익을 가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차별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종차별이 각인돼 있다. 법무부가 2020년에 발표한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 교육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진술들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잘못된 일에도 끝까지 변명하고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캄보디아인은 돌변하는 습성이 있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필리핀인은 약속을 기일 내에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태국인은 깊은 사고나 창조적 고통을 기피하고 무슨 일이든 일찍 끝내려고 한다’ 등.
난민
한국에서 난민 문제가 만만찮은 사회적 파장을 낳은 사건은,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입국했을 때 일부 우파가 거세게 반발하며 반대 집회까지 열었던 일이었다. 이들은 무슬림 난민 때문에 테러 위험이 커지고, 성폭력이 늘어나고, 한국인 일자리가 위협받고,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고 비난했다.
비록 한국에서 난민 문제가 서구처럼 공식 정치의 뜨거운 이슈가 돼 있지는 않지만, 이 사건은 한국이 난민 ‘무풍 지대’가 아님을 보여 줬다.
한국으로 오는 난민이 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다른 나라로의 진출이 늘었고 국제 무대에서 위상도 높아진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그런 진출에는 무역협정과 대외 투자 등 경제적 진출과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동참 등도 포함된다.
물론 한국으로 오는 난민 숫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보다 크게 적다. 그럼에도 최근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울산 동구 정착을 두고 찬반 양론이 갈린 것에서 보듯이, 한국에서도 난민 문제는 점점 무시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이 돼 가고 있는 듯하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진지하게 반응해야 한다. 특히, 역대 한국 정부들이 난민 문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동적인 배척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위선적으로 대해 왔기 때문에 이 점을 잘 들춰내야 한다.
한국 정부는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해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 제정 국가”라고 자화자찬한다.(이는 다시 한국 국가의 위상 문제와 연결된다. 사정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인도주의” 운운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자화자찬은 완전한 위선이다.
일단, 한국은 난민 유입 자체를 최대한 억제하려고 한다. 난민 신청·인정 집계가 시작된 1994년 이래 2022년 1월까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2.8퍼센트밖에 안 되고, ‘인도적 체류’ 허가를 포함해도 8.7퍼센트에 불과하다. 특히 2021년 한 해의 난민 인정률은 1퍼센트, 인도적 체류 허가를 포함한 수치는 1.7퍼센트로 역대 최저였다.
12 한국에 온 난민 대다수는 정착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체류 자격도 불안정하고, 각종 사회보장 제도에서 배제돼 있으며,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13
난민이 입국한다 해도 한국 정부는 대개 난민을 없는 양 취급한다.이렇듯 난민을 배척·외면하고 국가의 선전 도구로나 이용하는 것은 한국 국가의 난민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잘 보여 준다. 한국 지배자들은 난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편견을 부추기곤 하는데, 오늘날 세계적으로 두드러진 인종차별 형태인 이슬람 혐오도 적절히 사용한다.
이슬람 혐오
이슬람 혐오는 국제적으로도 최근 현상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인한 체계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들어선 정권이 이슬람주의를 표방했고, 이때부터 이슬람 악마화가 시작됐다. 14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슬람 혐오를 본격적으로 부추기기 시작한 계기는 1979년 이란 혁명이었다. 이란 혁명은 전제 군주이자 중동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였던 무함마드 리자 샤 팔레비를 타도해 미국 제국주의에 큰 타격을 입혔다.한편,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국 지배자들은 동맹을 규합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적이 필요했다. 또한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진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만회할 목적으로, 중동에 개입해 세계 석유 공급을 통제하려고 했다.
15 이 부상한 것도 이슬람 혐오 부추기기를 용이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이란·이라크·시리아 등 무슬림이 많이 거주하는 중동 국가들을 “깡패 국가”로 지목했는데, 이슬람 악마화는 이런 필요에 부합했다. 9·11 공격과 “테러와의 전쟁”은 이를 확대·강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문화적 인종차별한국도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해 파병까지 했지만, 아직 이슬람 혐오가 서구만큼 광범하지는 않다. 이는 중동 전쟁에서 한국이 보조적 구실만 했던 것과 연관 있을 것이다. 서구의 지배계급과 달리 한국 지배계급은 이슬람 혐오를 대중을 분열 지배하는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는 이슬람 혐오를 적절히 이용하기도 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2001년 이래로 한국 정부는 이슬람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을 집중 사찰해 왔다. 무슬림 이주민들은 지금도 금요일 예배 때마다 이슬람 성원 기도방에 지역 경찰, 형사들이 상주한다고 증언한다.
17 를 반한 인사로 규정하고 여러 이주민들을 강제 추방한 바 있다. 18
2004년 노무현 정부는 ‘불법체류자의 반한反韓 활동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시위를 선동하거나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하는’ “불법체류자”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에 노무현 정부가 한국군을 파병한 것 때문에 알카에다가 한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지목하자, 국정원과 법무부는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를 반한 단체로 몰아 탄압했다. 하지만 이 단체는 반한과는 무관한 이슬람 선교 단체였을 뿐이다.
ISIS가 파리의 축구경기장을 공격하자, 박근혜 정부는 이 비극을 테러방지법 제정의 불쏘시개로 이용했다. 테러방지법은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불릴 만큼 억압적인 법률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은 한국이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이유로 “빈번한 국제 교류와 다문화사회의 영향”을 꼽으며 테러방지법안을 제안했다. 국정원은 “시리아 난민 200명이 항공편으로 국내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다”며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시리아 난민 모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매도한 것이다. 19
2015년 11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그러나 한국 국가가 명분으로 삼는 “테러 대상국이 될 위험”은 정부가 미국 제국주의의 이라크 전쟁에 동참하고 지원해 왔던 데서 기인했다. 이주민을 속죄양 삼는다고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 동포의 처지는 어떤가?
한국의 이주민 문제를 다룰 때 중국 동포를 빼놓기 힘들다. 한국 국가가 중국 동포를 대하는 태도와 정책은 최근까지도 변화하고 있어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1988년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노동력이 필요하자 한국 정부가 중국 동포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중국 동포가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20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그 수가 늘었고, 2022년 1월 현재 이주민 약 195만 명 중 61만 명을 차지한다.
처음에 한국 정부는 중국 동포를 다른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대했다. 그래서 당시의 여타 이주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동포의 상당수가 미등록 체류자였다. 일례로, 2007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로 숨진 미등록 이주민 10명 중 4명이 중국 동포였다. 1999년 재외동포법을 제정할 때도 정부는 재외 동포에게 상당히 자유로운 출입국과 취업을 허용하면서도 중국 동포와 고려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선진국 거주 재외 동포들이 한국에 자본을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고급 노동 인력을 끌어들이려는 것이 재외동포법 제정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재외 동포 정책은 “일단 해당 동포의 재산의 많고 적음과 또한 신분의 높고 낮음부터 따진다. 그럴듯하면 재외동포로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외국인이다.”
요컨대, 한국 정부의 재외 동포 정책은 계급 차별적이다. 재외동포법을 제정할 때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 중국이 한국보다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중국 동포는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다름없는 처지에 놓였다.
22 , 그 영향으로 관련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4년에 재외동포법을 개정하면서도 (중국 동포와 고려인 등을 겨냥해) “불법체류다발국가” 출신 동포에 대한 사증 발급을 제한했다.
중국 동포들은 이것이 선진국 국적 동포와의 차별이라며 반발했고對중국 교역·투자 비중도 이전보다 훨씬 커진 것과 관련 있을 듯하다. 그래서 중국 국적자인 중국 동포를 한국보다 위상이 낮은 국가 출신의 이주민과 똑같이 대할 수는 없었을 듯하다.
그러다 201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국가는 중국 동포에 대한 이주 규제를 상당 부분 완화했다. 현재는 한국 체류 중국 동포 중 과반이 넘는 약 35만 명이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는 중국 경제가 2000년대와 비교해 급성장하고 한국의 대23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계급에 따른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같은 중국 동포라도 소득 수준이나 노동 능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하는 점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예컨대 재외동포법 적용으로 받을 수 있는 비자는 단순 노무 업종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 업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중국 동포일수록 재외동포 비자를 받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변화로 현재 중국 동포가 한국에서 국적에 따른 차별을 받는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단순 노무 업종에서 일을 하려면 방문취업제를 통해 한국에 와야 한다. 이 제도는 자유로운 출입국과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는 등 고용허가제보다 상대적으로 낫지만, 체류 기한(최대 4년 8개월)과 취업 가능 업종을 제한하고 있어 재외동포법을 적용받는 것보다는 불리하다. 또 정부는 “내국인 일자리 대체 문제”를 이유로 방문취업제 중국 동포를 대상으로 건설업 취업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실업의 책임을 중국 동포에게 떠넘기며 이간질하는 데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 동포 중 약 11만 명이 방문취업제로 한국에 와 있다. 이들도 원한다면 조건 없이 재외동포 비자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주민 인종차별에 맞서기
앞서 살펴봤듯이 인종차별은 단순히 편견이나 의식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의 필요에 따라 의식적으로 조장하는 체계적 차별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가 흔히 차별 조장의 중요한 주체가 된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차별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각광받는 것은 정체성 정치다. 예컨대 정체성 정치의 일종인 특권 이론을 따르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지역 도서관에서 대출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다. 이 책과 유사한 종류의 책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에 반대하는 정서를 갖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받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인종차별 문제의 경우, 이주민과 접촉이 늘어난 것이 이런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한 요인인 듯하다.
24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누구나 의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차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어떤 정체성이나 사회적 위치 그 자체가 다른 누군가는 갖지 못한 ‘특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인종)차별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큰 약점도 있다.이는 현상에 대한 묘사일 수는 있어도 차별의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예컨대 어떻게 ‘백인’은 특권적 위치가 됐고 ‘흑인’은 열등한 처지가 됐을까? 로마 황제 중 북아프리카 출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보여 주듯 역사적으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좀 더 중요한 점으로, 차별을 주로 개인 간 갈등 문제로 보게 되는 문제가 있다. 계급을 불문하고 모든 백인이 흑인 차별에서 특권을 누린다고 보면, 노동계급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모두 인종차별에서 손해를 본다는 점, 지배계급은 이를 알고 의식적으로 인종차별을 부추긴다는 점이 흐려진다(그래서인지 저자는 기업들의 ‘핑크워싱’을 긍정적 사례로 언급하기도 한다).
또 그런 관점에 따르면 백인과 흑인이 단결해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다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개인들의 의식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경제 위기, 제국주의 갈등, 노동시장에서의 경쟁, 인종차별을 의식적으로 부추기는 지배계급 등이 사라지지 않으면 개인들의 의식을 개선하는 것은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한편, 이주민 권리 개선 운동에서 오랫동안 유력한 경향 중 하나는 정부(특히 민주당 정부) 로비를 중시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운동이 정부에 로비(청원 압력)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운동이 애초 목표를 효과적으로 성취하려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다음은 반증의 사례다. 이주민 지원 엔지오들의 연대체인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하 외노협)는 1990년대 말부터 김대중 정부와의 거버넌스(협력)를 강화했다. 외노협은 “현대판 노예제”로 악명을 떨치던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기 위해 민주당 정부와 공조하면서 고용허가제 도입에 찬성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국회를 통과한 고용허가제에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형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제외하면) 그 이전 산업연수제의 문제점이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외노협은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제에 비해 차악이라고 여겨 지지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고용허가제 입법 과정에서 거듭 법안을 후퇴시켰고, 결국외노협은 일단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후 독소 조항을 개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후에도 정부는 사용자에게 권한을 더 많이 주는 방향으로 고용허가제를 개악했다. 이런 개악이 계속되자 외노협은 2012년 고용허가제 폐지로 입장을 바꿔야 했다. 25
끝으로,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서 노동조합의 구실에 주목하는 경향에 대해 살펴보자. 이주노동자 운동에 열의가 있는 사회진보연대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구체적인 조직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26 사회진보연대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전후한 시기에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여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 27 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인종차별의 원인을 체제와 연결시키며 의식 개혁보다 정부에 맞선 투쟁을 강조한다.그런데 사회진보연대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지만,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보다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사회를 직접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해나가는 것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조합이 사회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들도 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진출한 경우가 많다.
물론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를 적극 조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내국인 노동자들의 단체가 이주노동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내국인과 이주노동자가 함께 조직돼 단결할 수 있다면, 노동자들 사이에 있는 편견에 맞서고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만으로는 인종차별에 맞서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이고 부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인종차별에 맞선 운동에 지지를 표명하고 참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노조의 태생적 성격 때문에 차별에 맞선 운동에 조합원들을 실질적으로 동원하는 일은 드물다.
예컨대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입국이 쟁점이 됐을 때, 난민 반대 세력이 수차례 집회를 개최하는 것에 맞서 9월 16일 난민 연대 집회가 조직됐다. 이때 민주노총은 자신이 속해 있던 이주노동자 운동 연대체의 일원으로 참가하며 여러 지원을 했지만, 조합원들을 집회에 동원하지는 않았다. 이주노조도 난민 쟁점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행동에 나서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필자가 속한 노동자연대는 당시 집회를 발의하고 개최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단체 중 하나였다. 노동조합 안팎에 혁명적 조직이 건설돼 있는 것이 이런 운동을 제때 효과적으로 건설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이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국제적 투쟁의 사례는 좋은 교훈을 제시한다. 1950~1960년대 영국으로 온 이주민들이 경험했던 인종차별은 친숙함, 계급투쟁,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라는 요인들의 결합으로 도전받았다.
친숙함이란 서로 다른 인종 집단의 사람들이 이웃해 살게 되면서 가장 조야한 형태의 편견이 허물어졌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이주민과 내국인의 교류를 넓히고, 일상에서 제기되는 온갖 편견과 지배계급이 조장하는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물론 이웃해 살며 편견이 허물어지는 과정이 순탄하거나 자동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 이때에도 기층에 조직된 혁명적 조직이 있다면 이를 극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예컨대 정부가 데려온 아프가니스탄 난민 중 일부가 현대중공업 협력사에 취업해 가족을 포함한 157명이 울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자, 일부 지역 주민들이 이를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노동자연대 울산지회와 현대중공업 모임의 회원들은 신속하게 이들을 방어하는 글을 기고하고, 공장 안팎에 환영 현수막을 걸고, 지역에서 환영 캠페인과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에 나섰다.
이것이 더 큰 규모로 이루어지고 인종차별에 더 근본적으로 맞서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나머지 두 가지 요인과도 연결돼야 한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요구 사항을 관철하면 지배계급이 퍼뜨리는 희생양 삼기가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의 힘과 행동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런 투쟁이 효과적으로 건설되는 데에는, 평소 차별받고 위축돼 있는 사람들 스스로의 행동을 고무하고 인종적 분열을 극복하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런 투쟁 속에서 연대와 단결을 구축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정치를 갖고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런 정치는 인종차별이 자본주의와 뿌리부터 연결돼 있음을 이해하고 인종차별을 낳는 자본주의의 논리에도 일관되게 반대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정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기층의 캠퍼스와 노동조합, 작업장에서 혁명적 조직으로 결속돼 있어야 인종차별에 맞서는 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할 수 있다.
주
- 더 상세한 논의는 캘리니코스 2020, 5장에서 볼 수 있다. 이하의 서술은 이를 많이 참고했다. ↩
- 장서연 2013, 141쪽에서 재인용. ↩
- 캘리니코스 2020을 보시오. ↩
- 서유럽에서 이주민 규제가 처음 본격화됐을 때는 노동력 수요가 줄어들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각국이 이주노동자 유입을 규제하는 조처를 시행하는 양상은 경제 상황에 따른 노동력 수요 변동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었다. 관련 논의는 시모어 2011을 보시오. ↩
- 2022년 1월 기준 한국 거주 이주민의 20퍼센트가 미등록 이주민이다. ↩
- 정부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신고하라’고 수시로 홍보하는데, 이주민의 외모만 보고 미등록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다. 따라서 그 효과는 모든 이주민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
- 2000년대에는 전기충격기와 그물총 등을 동원해 인간 사냥을 방불케 했다. ↩
- 임준형 2021b. ↩
-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고용허가제의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는지 입증할 책임은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한국의 법, 제도,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에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
- 김현미 2014, 28쪽. ↩
- 반면,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으면 귀화 절차가 간소화된다. ↩
-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2021년 8월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391명을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이들은 한국 정부가 파병한 군부대, 한국 대사관, 미군 주둔 기지 내에서 한국이 운영한 병원 등에서 근무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이다. 이들은 전란으로 파탄 난 자국의 불안정한 상황을 피해 온 난민들이므로, 입국을 환영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인도적”인 것보다는 한국 국가의 필요가 우선했다. 한국 정부는 구출 작전을 샅샅이 공개하며 ‘국제 사회’에 위상을 과시했는데, 그 ‘구출’은 ‘이용 가치’가 있는 소수만 입국시켰지 수많은 사람들을 뒤에 남겨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소수에게조차 영주권·국적을 쉽게 취득하는 길은 모두 막았다. 이는 관련해 임준형 2021c를 보시오.
또 2022년 1월 관련 법령을 개정해 그들에게 사실상 난민 인정자와 동등한 처우를 보장하면서도, 난민 지위가 아니라 “특별 기여자”라는 별도의 체류 자격을 신설해 부여했다. 그들에게 난민 지위를 주면, 행여라도 이미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을 포함해 더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 - 김어진 외 2019를 보시오. ↩
- 이슬람주의도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제3세계를 식민 통치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일붕 2016을 보시오. ↩
- 문화적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시모어 2011을 보시오. ↩
- 임준형 2021a. 필자는 이 기사에 인용된 폭로 외에도 시리아 출신 이주민으로부터 동일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
- 당시 이주노동자의 다수가 ‘불법체류자’였다. ↩
- 김영익 2015. ↩
- 당시 정부가 조성한 분위기는 정선영 2015를 보시오. ↩
- 조승희 2003. ↩
- 곽재석 2017. ↩
- 이때부터 중국 동포 운동은 재외동포법 적용을 요구하며 다른 국적의 이주노동자 운동과 분화되기 시작한다. ↩
-
다만, 중국 동포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제도적 차별로부터 피해를 보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에 이주민 건강보험제도를 개악한 것이 그 사례다. 이 제도는 외국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수준에 상관 없이 전년도 전체 지역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 이상(2022년에는 12만 4770원이 부과되며, 장기요양보험료까지 더하면 14만 70원이다)을 내도록 해 놓고는 외국인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보험료를 4회 이상 체납하면 체류 자격이 발탁된다. 특히 가난한 동포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 법은 원칙적으로 이주민 1인을 한 세대로 보고 예외적으로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세대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개악되기도 했다. 즉, 고령의 부모, 성인이지만 대학에 다니거나 장애가 있는 등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별도로 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족 단위로 체류하는 중국 동포들 중에는 수십만 원이 나오는 고지서를 받은 경우도 있다.
개악 과정에서 정부는 “도덕적 해이”, “부정수급”을 방지한다는 명분을 들었는데, 이는 중국 동포 등 이주민이 복지 재정을 갉아먹는 존재라는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 - 정체성 정치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는 양효영 2022를 보시오. ↩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2012. ↩
-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진보연대 주요 활동가의 분석은 임월산 2011을 보시오. ↩
- 사회진보연대 2006. ↩
- 올렌데 2017, p288. ↩
- 김지태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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