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스베르들로프대학교에서 한 강연 *
동지 여러분. 동지들이 정해 준 계획에 따르면 오늘 이 강의 주제는 국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동지들의 교과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됐고,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건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 강의에서 이 어려운 문제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신경 쓰지 마세요. 국가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 뿐 아니라 부르주아 학자나 작가, 철학자들이 혼란스럽게 만들어 놨습니다. 따라서 이 짧은 토론 한 번으로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오늘 토론이 끝나면 잘 이해되지 않거나 분명치 않은 부분을 메모해 두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도 끝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독서나 강연과 토론으로 보완하고 명료하게 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한 번 더 만나길 바랍니다. 그러면 보충 질문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어떤 점이 가장 분명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겠죠. 또 토론이나 강의에 더해 마르크스와 엥겔스 주요 저작을 몇 권이라도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소비에트 학교나 당 학교의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도서관의 도서 목록과 안내서에서 그들의 책 목록을 틀림없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면 어려워서 당황할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처음 읽을 때 몰랐던 부분도 여러 번 읽거나, 나중에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유념하길 거듭 당부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할 뿐 아니라 부르주아 학자나 작가들 때문에 혼란스럽게 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스스로 파악하려는 사람은 누구라도 몇 번이고 이 문제를 되새기며 여러 방향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뚜렷하고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이 문제는 모든 정치에서 아주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기뿐 아니라 평화로운 시기에도 여러분은 날마다 신문에서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들을 접할 것이고, 그럴수록 국가 문제로 돌아가기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이러저러한 맥락에서 그 문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즉,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본질은 무엇인가? 국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당, 즉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공산당의 국가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나 토론과 강의를 통해 국가 문제를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겁니다. 여러분이 종종 아주 다양한 경우에 매우 사소한 문제와 관련돼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이 문제로 반대파와 토론하거나 논쟁하는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됐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고, 또 상대가 누구든 언제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충분히 주장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렇게 몇 가지 당부를 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국가는 무엇인가? 국가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자본주의의 철저한 전복을 목표로 싸우는 노동계급의 당, 공산당은 국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미 말했듯이, 의도적이든 부지불식간이든 부르주아 과학·철학·법학·경제학·정치학·언론의 대리인들이 국가 문제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어 놨습니다. 지금까지 이 문제는 종교 문제와 헷갈리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종교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뿐만 아니라(그들이 그러는 건 매우 당연합니다) 자신이 종교적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종교 문제와 교리(매우 자주 이데올로기적·철학적 접근과 논증으로 복잡한)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국가의 특수한 문제와 자주 혼동했습니다. 국가는 신성하고, 초자연적이며,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하는 어떤 힘이며, 인간이 따르거나 따라야만 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밖에서 주어진 신성한 기원을 가진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지주와 자본가 같은 착취 계급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교리는 부르주아지를 대표하는 신사들의 모든 습관, 관점, 과학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동지들은 도처에서, 심지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의 국가관에서도 그 자취를 마주하게 될 겁니다. 비록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자신들이 종교적 편견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점을 완강하게 부인하며 국가를 냉정하게 본다고 믿고 있지만 말입니다. 국가 문제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은 국가가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이런 면에서 국가 문제에 필적하는 것은 경제학의 근본 토대 문제 정도일 것입니다.) 국가에 관한 교리는 사회적 특권, 착취, 자본주의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그리고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공평무사하거나 순수하게 과학적인 견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동지들이 이 문제에 깊이 파고들수록 매번 국가 문제, 국가에 관한 교리, 국가론에서 여러 계급들이 벌이는 투쟁을 간파하게 될 겁니다. 이 투쟁은 국가에 대한 관점을 둘러싼 논쟁이나 국가의 구실과 의미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거나 표현됩니다.
이 문제를 가능한 한 과학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사, 국가의 등장과 발전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회과학의 문제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고, 세부 사항들이나 온갖 상충하는 견해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이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습관을 실제로 획득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이 문제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면, 근원적인 역사적 관계를 잊지 말고, 특정 현상이 역사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역사 발전에서 주요 국면들은 무엇이었는지 하는 관점으로 모든 문제를 살펴보며, 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오늘날 상태를 조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가 문제를 탐구할 때 엥겔스의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대해 능통하기를 권합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주의의 근간이 되는 저작 중 하나입니다. 단언컨대 아무렇게나 말한 게 아니라 방대한 역사적·정치적 자료에 근거했고, 모든 문장을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책의 모든 부분이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설명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분은 역사와 경제에 대한 지식을 이미 어느 정도 가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을 읽고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황하지 마세요.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중에 관심이 생겨 이 책을 다시 보면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거의 대부분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관점으로 국가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국가의 기원에 대해 역사적 개요를 그리며 시작합니다.
다른 모든 문제들 — 가령, 자본주의의 기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어떻게 등장하는지, 어떤 조건들이 사회주의를 만들어 내는지 — 과 마찬가지로, 국가 문제를 철저하게 다루려면 국가의 역사적 전개 과정 전체를 되짚어 봐야 합니다. 국가 문제에서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국가가 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가가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국가는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해 착취하는 사람과 착취당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는, 계급으로 분열된 최초 형태(노예 소유주와 노예)가 나타나기 전에는 가부장적 가족이나 씨족(당시 사람들은 씨족을 이루며 생활했습니다)이 있었습니다. 원시 시대의 흔적들이 상당히 뚜렷하게 많은 원시인들의 생활에 남아 있습니다. 원시 문화를 다룬 아무 책들을 펴 보면, 여러분은 거의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는 점을 거의 분명하게 기술하고 암시하고 상기하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사회가 노예 소유주와 노예로 분열하기 전인 원시 공산주의가 그것이죠. 그 시기에는 국가, 무력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무력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특수한 기구가 없었습니다. 이런 기구를 국가라고 부릅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소규모 가족 집단으로 살았고, 발전 단계도 극히 낮은 거의 야만적인 상태였습니다. 현대적이고 문명화된 인간 사회로 갈라져 나온 시대는 수천 년쯤 됐습니다. 아직은 국가가 존재할 기미가 없습니다. 씨족 연장자가 우세한 관습, 권위, 존경, 권한을 누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권한이 종종 여성에게 있었는데, 당시 여성의 지위는 짓밟히고 차별받는 오늘날 여성의 조건과는 달랐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범주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구분되고, 그들이 체계적이고 항구적으로 지배할 목적으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기구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알고 있듯이, 오늘날 그런 기구는 무장한 군대, 감옥, 타인의 의지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수단들을 뜻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국가의 본질을 이룹니다.
부르주아 학자들이 펴는 종교적 교리, 난해한 주장, 철학적 담론이나 여타 견해들에서 벗어나 문제의 진정한 핵심을 파악하면, 사실 국가는 전체 사회의 외부에 세워진 지배 기구에 해당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겁니다. 특별한 인간 집단이 정부를 단독으로 차지하고 지배를 위해 타인의 의지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특수한 강압 기구(감옥, 특수 부대, 군대 등)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나타나면 국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없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보편적 유대, 공동체, 규율, 노동 규칙이 관습과 전통의 힘으로, 그리고 씨족 연장자들이나 여성이 누린 권위나 존경으로 유지됐습니다. 이 시기에 여성들은 종종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을 뿐 아니라 드물게는 더 높은 지위를 누렸습니다. 지배를 전업으로 하는 특별한 범주의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하기 시작할 때면 어디에서든, 다시 말해 항구적으로 타인의 노동을 갈취하는 지위에 있는 일부와 나머지 인간 집단으로 분열해 일부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착취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을 강압하는 특수한 기구로서 국가가 등장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사회가 계급들로 분열해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역사적 사실임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수천 년 동안 예외 없이 모든 나라들에서 인간 사회의 발전은 대체로 법칙과 규칙과 일관성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즉, 처음에는 계급이 없는 사회였습니다. 최초의 가부장적 원시 사회에서는 귀족이 없었죠. 다음에는 노예제에 기반한 사회가 나타났습니다. 노예 소유주의 사회였죠. 오늘날 문명화된 유럽 전체가 이 단계를 거쳤습니다. 2000년 전에는 노예제가 가장 지배적이었습니다.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도 압도 다수의 사람은 이 단계를 거쳤습니다. 지금도 덜 발전된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 노예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령, 지금도 아프리카에는 노예 시설이 있습니다. 노예 소유주와 노예 사이의 분열이 최초의 중요한 계급 분열이었습니다. 노예 소유주들이 당시에는 보잘것없고 원시적이었을지라도 토지와 도구 같은 생산수단을 전부 소유했을 뿐 아니라 사람도 소유했습니다. 이 집단이 이른바 노예 소유주였습니다. 한편, 타인을 위해 일하고 노동을 제공했던 사람들은 노예로 불렸습니다.
역사에서 뒤이어 나타난 형태가 봉건제였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노예제는 발전 과정을 거쳐 농노제로 진화했습니다. 이제 사회의 근본적 분열은 봉건 영주와 소작 농노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이 변했습니다. 노예 소유주는 노예를 자기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법은 이런 생각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노예를 노예 소유주가 전적으로 소유한 동산動産으로 간주했습니다. 소작 농노의 입장에서는 계급 억압과 예속이 여전했지만, 봉건 영주가 소작농을 동산으로 소유하지는 않았고, 다만 농노들의 노동과 의무적인 봉사 수행에 대한 권리만 가졌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현실에서, 특히 농노제가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가장 노골적인 형태를 띤 러시아에서 농노제는 노예제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후 무역이 발달하고 세계 시장이 생기고 화폐 유통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계급이 봉건 사회 내부에서 출현했습니다. 자본가 계급입니다. 자본의 힘은 상품, 상품 교환, 증대되는 화폐의 힘에서 생겨났습니다. 18세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사이에 세계 도처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봉건제가 서유럽의 모든 나라들에서 폐지됐습니다. 러시아는 이런 변화가 마지막으로 일어났습니다. 1861년에 러시아에서도 급진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바뀐 겁니다. 자본주의에서도 계급 분열이 유지되고 농노제의 다양한 흔적들과 유물들이 남아 있었지만, 계급 분열은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를 띠었습니다.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자본·토지·공장을 소유한 자들은 인구에서 얼마 안 되는 소수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들이 모든 사람의 노동을 전적으로 통제하고, 그 결과 노동 대중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노동 대중의 다수는 프롤레타리아, 임금 노동자인데, 이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 노동력을 팔아 생산 과정에서 생계 수단을 구합니다.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봉건 시대에 분열되고 짓밟혔던 농민들 중 일부(다수)는 프롤레타리아가 되고, 다른 일부(소수)는 부농으로 변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농촌 부르주아지가 됐습니다.
사회가 원시 노예 형태에서 농노제로, 마침내 자본주의로 이행해 왔다는 근본적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이 근본적 사실을 기억하고 모든 정치 원칙을 오로지 이 핵심 기획에 놓고 검토해야만 여러분이 이 원칙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예 소유 시대, 봉건 시대, 자본주의 시대 같은 인류사의 거대한 시대들은 각각 수십, 수백 세기에 걸쳐 있고, 아주 다양한 정치 형태들, 정치 신조들, 견해들, 혁명들을 보여 줍니다. 기본적 길잡이로서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하고 계급 지배의 형태가 바뀌어 왔다는 점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이런 관점에서 (경제·정치·정신·종교 등) 모든 사회 문제들을 검토해야만, (특히 부르주아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정치적·철학적 교리들과 연결돼) 극도로 상이하고 매우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분열의 관점에서 국가를 살펴보면, 내가 이미 말했듯이,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기 전에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하고 그 분열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려 계급 사회가 나타나면서 국가도 출현하고 확고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인류사를 보면, 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를 거쳤거나 거치고 있는 나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 나라들에서 거대한 역사적 변화가 있었고, 인류가 발전해 노예제에서 봉건제를 거쳐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현재 자본주의에 맞선 세계적 규모의 투쟁이 벌어지는 등 정치적 부침과 혁명들이 있었는데도, 항상 국가가 출현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겁니다. 국가는 언제나 사회 밖에 존재하며, 오로지 또는 거의 오로지 또는 주되게 지배에 관여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기구입니다. 사람들은 지배당하는 사람과 지배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분열했습니다. 후자는 사회 위로 올라가 지배자, 정치인으로 불렸습니다. 이 기구, 즉 타인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강압 수단과 물리적 폭력 수단을 소유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원시적 몽둥이로 나타나든, 노예제 시대의 좀 더 나아진 형태의 무기로 나타나든, 중세에 등장한 화기로 나타나든, 마침내 20세기에 경이로운 기술이자 현대 기술의 최신 성과에 전적으로 기반한 현대 무기로 나타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폭력의 방식이 바뀌었지만, 국가가 존재할 때에는 언제든지 통치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시대의 기술 수준에 상응하는 무기로 무장한 물리적 강압 기구와 폭력 기구를 소유한 자들이 모든 사회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보편적 현상을 검토하고, 계급이 없고 따라서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가 없으면 왜 국가도 없었는지 계급이 나타나면 왜 국가도 생겨났는지를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오로지 이렇게 해야만 국가의 성격과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명확하게 답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계속 지배하기 위한 기구입니다. 사회에 계급이 없던 때, 즉 노예제 이전 시기에 사람들은 상당히 평등한 원시적 환경과 아직은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노동했습니다. 원시인은 조잡하고 원초적인 생존을 위한 수단을 거의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에는 사회의 나머지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기능을 하는 특수한 인간 집단이 아직은 출현하지 않았고 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회가 최초로 계급으로 분열한 형태인 노예제가 출현하고, 특정 계급의 사람들이 아주 조야한 농업 노동에 힘을 쏟아 잉여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고, 이 잉여 생산물이 노예의 비참한 생존을 유지하는 데 모두 쓰이지 않게 돼 노예 소유주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런 식으로 노예 소유주 계급의 존재가 보장될 때 비로소 이 상황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가 등장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노예 소유 국가가 생겨났습니다. 노예 소유주들에게 권력을 주고 그들이 노예들을 지배할 수 있게 한 기구입니다. 당시 사회와 국가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그들이 가진 통신 수단은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현대적 통신 수단은 당시에 없었죠. 산, 강, 바다는 지금에 비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장애물이었고, 국가는 매우 협소한 지리적 경계 안에서 형성됐습니다. 국가기구가 기술적으로 취약해서 국가는 비교적 좁은 경계와 행동반경 안에서 활동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노예를 계속 노예 상태로 머물도록 강제하는 기구가 존재했고, 사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지배하고 억압했습니다. 상시적인 강압 기구가 없다면 사회의 더 큰 부분이 다른 부분을 위해 체계적으로 노동하도록 강제할 수가 없습니다. 계급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기구도 없습니다. 도처에서 계급이 상존해, 분열이 증대하고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 특수한 기관인 국가도 생겨납니다. 국가의 형태는 매우 다양했습니다. 노예제 초기에 그 시대 기준에서 보자면 상당히 발전하고 세련되고 문명화된 나라들에서 국가 형태가 상이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적으로 노예제에 기반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그랬습니다. 이미 당시에도 군주 정체와 공화정 사이에, 귀족 정체와 민주주의 사이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군주 정체는 1인 권력이고, 공화정은 선출되지 않은 자는 권한이 없는 정체입니다. 귀족 정체는 상대적으로 극소수의 권력입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권력입니다.(그리스어로 민주주의는 문자 그대로 인민의 권력이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차이가 노예제 시대에 생겨났습니다. 이런 차이, 즉 군주 정체냐 공화정이냐, 귀족 정체냐 민주주의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노예 소유 시대의 국가는 노예 소유 국가였습니다.
모든 고대사 과목이나 이 주제와 관련한 강의에서 여러분은 군주국과 공화국이 벌인 투쟁에 대해 들을 겁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점은 노예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예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로마법은 노예를 동산動産으로 취급했습니다. 사람 보호에 관한 법률들은 말할 것 없고 살인에 관한 법률도 노예에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법은 노예 소유주들만 지켜 줬는데, 그들은 모든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유일하게 인정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군주 정체든 공화정이든, 각각은 노예 소유주의 군주 정체이고 노예 소유주의 공화정이었습니다. 노예 소유주가 모든 권리를 누린 반면, 노예는 법률상 동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예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을 뿐 아니라 노예를 죽여도 범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노예 소유 공화국도 내부 구조는 다양했는데, 귀족 공화정과 민주 공화정이 있었습니다. 귀족 공화정에서는 소수 특권층만이 선거에 참여했습니다. 민주 공화정에서는 모든 사람이 참가했지만, 이때 모든 사람은 노예 소유주만 뜻했을 뿐 노예는 배제됐습니다. 이 근본적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점이 국가 문제에 대해 다른 무엇보다 더 많이 설명해 주고 국가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이고, 한 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종속된 계급)의 복종을 유지하기 위한 기구입니다. 이 기구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노예 소유 국가는 군주 정체나 귀족 정체, 심지어 민주 공화정일 수 있습니다. 사실 정부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노예는 권리가 없고 억압받는 계급이었습니다. 노예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봉건적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착취 형태가 바뀌면서 노예 소유 국가는 봉건적 국가로 변했습니다. 이 점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노예 소유 사회에서 노예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고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봉건 사회에서 농민은 땅에 매어 있었습니다. 농노제의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은 농민을 토지에 결박돼 있는 것으로 여겼다는 점입니다.(그 당시 농민은 인구의 다수였고, 도시 인구는 여전히 매우 적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농노제”의 근간이었습니다. 농민은 지주가 지정해 준 땅뙈기에서 정해진 날 동안 자신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 나머지 시간에 소작 농노는 주인을 위해 일했습니다. 계급 사회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회는 계급 착취에 근거했습니다. 지주만이 온전한 권리를 누렸습니다. 소작농은 아무 권리가 없었습니다. 현실에서 소작농의 처지는 노예 소유 국가의 노예와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농민이 해방을 향해 가는 길은 더 넓게 열렸습니다. 소작 농노가 지주의 직접적 소유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노는 자기 시간의 일부를 자기 땅뙈기에서 일하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농노는 어느 정도는 자신의 것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환·무역 관계가 발전할 기회들이 확대되자 봉건제는 지속적으로 해체됐고, 농민 해방의 여지가 계속 늘어났습니다. 봉건 사회는 언제나 노예 사회보다 더 복잡했습니다. 상공업이 크게 발전해, 그 무렵 자본주의로 이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봉건제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국가 형태는 다양했고, 여기에서도 군주 정체와 공화정이 있었습니다. 비록 후자가 훨씬 취약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봉건 영주가 유일한 지배자로 여겨졌습니다. 소작 농노의 정치적 권리는 전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노예제에서든 봉건제에서든 소수가 압도 다수를 지배하려면 강제력을 써야 합니다. 역사는 억압받는 계급이 끊임없이 억압을 떨쳐 버리려는 시도로 가득합니다. 노예제의 역사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노예 해방 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독일 공산주의자들의 단체명이 “스파르타쿠스동맹”입니다. 독일에서 자본주의의 굴레에 맞서 진정으로 투쟁하는 유일한 정당입니다. 그들이 이 이름을 채택한 이유는, 스파르타쿠스가 약 2000년 전에 일어난 위대한 노예 반란들에서 가장 중요한 영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전능해 보였던 로마 제국은 전적으로 노예제에 의지했는데, 스파르타쿠스를 중심으로 뭉치고 무장해 대군을 조직한 노예들이 일으킨 광범한 봉기에 충격을 받고 타격을 입었습니다. 노예들은 결국 패배하고 붙잡혀 노예 소유주들한테서 고문을 받게 됩니다. 이런 내전은 계급 사회의 역사 전체에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나는 노예제 시대의 내전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봉건제 시대도 마찬가지로 농민들의 끊임없는 봉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 독일에서 두 계급(지주와 농노) 사이의 투쟁이 광범하게 벌어져 농민과 지주의 내전으로 전환됐습니다. 러시아에서 농민이 봉건 지주에 대항해 거듭 봉기를 일으켰던 비슷한 사례들을 여러분도 잘 알 겁니다.
봉건 영주들은 지배를 유지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예속시키고 특정 법률과 규칙에 종속시켜야 했습니다. 모든 법률은 근본에서 한 가지, 즉 소작 농노에 대한 지주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러시아와 아주 후진적인 아시아 나라들(봉건제가 지금도 우세한 곳)에 존재한 봉건적 국가는 형태가 달랐습니다. 공화정이기도 했고 군주 정체이기도 했습니다. 그 국가가 군주 정체였다면 일인 지배가 인정됐습니다. 공화정이었다면 지주 집단에서 선출된 대표자들의 참여가 얼마간 인정됐습니다. 이것이 봉건 사회였습니다. 봉건 사회는 압도 다수(소작 농노)가 얼마 안 되는 소수(토지 소유자들)에게 철저하게 종속되는 계급 분열을 뜻했습니다.
무역과 상품 교환이 발달하면서 자본가라는 신흥 계급이 출현했습니다. 자본은 중세 말에 형성됐는데, 이때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세계 무역이 대대적으로 성장하고 귀금속의 양이 늘고 은과 금이 교환 수단이 되며 화폐 유통으로 개인들이 막대한 부를 소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은과 금이 세계 곳곳에서 재산으로 인정됐습니다. 지주 계급의 경제력이 쇠퇴하고 새로운 계급(자본의 대표자들)의 힘이 커졌습니다. 모든 시민이 평등한 듯하고 노예 소유주와 노예의 낡은 분열이 사라지고 자본을 얼마나 소유했는지에 상관없이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여겨지는 식으로 사회가 재건됐습니다.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했든 아니면 가진 거라고는 노동력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했습니다. 법은 만인을 평등하게 보호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 번역자] 법은 가진 거라고는 노동력밖에 없어 점점 빈곤해지고 피폐해져 프롤레타리아로 바뀌어 가는 무산 대중의 공격으로부터 가진 자들의 재산을 보호합니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이 문제를 자세히 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당 강령을 토론할 때 이 문제로 다시 돌아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듣게 될 겁니다. 이 사회는 자유의 슬로건을 내세워 농노제와 낡은 봉건제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재산을 가진 자들을 위한 자유였습니다. 그리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러시아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늦은 1861년에) 봉건제가 분쇄되자 봉건적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로 대체됐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모든 사람의 자유라는 슬로건을 선언했고, 모든 사람의 의지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면서 계급 국가임을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회주의자들과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 투쟁이 벌어집니다. 이 투쟁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수립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세계 자본에 맞서 시작된 투쟁과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을 알려면, 자본주의 국가가 봉건적 국가에 반대하면서 자유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투쟁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봉건제 폐지는 자본주의 국가의 대표자들을 위한 자유를 뜻했고 그들의 목적에 기여했습니다. 농노제가 붕괴하자 농민이 보상금이나 부분적으로는 면역지대[봉건 시대 부역 대신 납부한 것]로 구입한 토지를 온전한 재산으로 소유할 기회를 얻게 됐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국가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출처에 상관없이 재산을 보호했습니다. 국가가 사적 소유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문명화된 현대 국가에서 농민은 사적 소유자가 됐습니다. 심지어 지주가 일부 토지를 농민에게 넘겨줬을 때조차 국가는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거나 그가 땅값으로 돈을 받게 해 주는 식으로 사유재산을 보호했습니다. 국가는 공표했던 대로 사유재산을 철저하게 보호하겠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지원과 보호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모든 상인·기업가·제조업자의 재산권을 인정했습니다. 이 사회는 사유재산, 자본의 힘, 재산 없는 노동자와 근로 농민 대중의 복종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지배는 자유에 기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봉건제와 싸우면서, 이 사회는 재산의 자유를 주장했고 특히 국가는 이른바 계급 국가이기를 그만뒀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는 여전히 자본가가 가난한 농민과 노동계급을 지배하도록 돕는 기구입니다. 국가는 겉보기에 자유롭습니다. 보통선거권을 선언하고 자신의 대변자·전도사·학자·철학자를 통해 계급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이런 국가에 맞서 투쟁하기 시작한 지금도, 그들은 우리가 자유를 침해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을 탄압하고 강압하는 것에 기반한 국가를 세웠다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를 대표한다고 합니다. 세계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됐고 그 혁명이 일부 나라들에서 성공했으며 세계 자본에 맞선 투쟁이 급성장하는 지금, 국가 문제가 가장 중요해졌으며 가장 화급한 문제이자 현재 정치 문제와 정치 논쟁의 중심이 됐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나 더 문명화된 나라들의 정당들을 보더라도, 지금 거의 모든 정치적인 논쟁·이견·견해는 국가의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집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민주 공화정에서, 특히 스위스나 미국 같은 가장 자유로운 민주 공화정에서, 국가가 대중의 의지를 표현하고 인민의 광범한 결정을 총합하며 국민의 의지를 표현합니까? 아니면 그 국가는 해당 나라 자본가들이 노동계급과 농민에 대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기구입니까? 이것이 지금 세계 도처에서 모든 정치 논쟁의 중심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들은 볼셰비즘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부르주아 신문은 볼셰비키를 매도합니다. 모든 신문이 볼셰비키가 대중의 지배를 침해하고 있다고 진부한 비난을 합니다. 만약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볼셰비키가 자유와 대중의 지배를 침해했다는 비난을 발견하고 발명했다고 순진하게 생각한다면(어쩌면 순진함이 아니거나, 어쩌면 속담에 나오듯 강도보다 더 나쁜 순진함이죠) 어처구니없는 실수입니다. 지금 부국의 부자 신문들은 하나같이 막대한 돈을 들여 엄청난 부수를 찍어 부르주아의 거짓말과 제국주의 정책을 유통하고 퍼뜨립니다. 이 신문들은 하나같이 볼셰비즘을 반대하는 기초적인 주장과 비난을 되풀이합니다. 즉, 미국·영국·스위스는 대중의 지배에 기반한 선진국인 반면, 볼셰비키공화국은 자유가 존재한 적이 없는 강도들의 국가이고 볼셰비키는 대중의 지배라는 생각을 침해했고 제헌의회를 해산하기까지 했다고 말입니다. 볼셰비키를 향해 퍼붓는 지독한 비난들이 세계 도처에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런 비난은 우리에게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는 무엇입니까? 남의 말로 검토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이런 비난들을 알고 탐구하고 완전히 현명한 태도를 가지려면, 국가에 대한 개념이 명확해야 합니다. 이미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 국가와 그 국가를 변호하는 이론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올바르게 답하려면 이 모든 이론들과 견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나는 이미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도움을 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토지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존재하고 (아무리 민주적이라 할지라도) 자본이 지배하는 국가들은 모두 자본주의 국가이고, 그것은 자본가들이 노동계급과 빈농을 계속 지배하는 데 사용하는 기구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보통선거권, 제헌의회, 의회는 단지 형식이자 약속 어음일 뿐이고 실제 상황을 바꾸지 못합니다.
국가의 지배 형태는 다양합니다. 자본이 권력을 나타내는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 자격이나 다른 권리들이 있든 없든 간에, 공화정이 민주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은 본질적으로 자본의 수중에 있습니다. 사실 민주적일수록 자본주의의 지배는 더 노골적이고 냉소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 중 하나가 미국이지만, 미국처럼 사회 전체에 대한 자본 권력과 소수 억만장자의 권력이 그토록 노골적이고 드러내 놓고 부패한 나라는 없습니다.(1905년 이래 그곳을 방문한 사람은 알 겁니다.) 일단 자본이 있으면 자본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민주 공화국이나 선거권도 그 본질을 바꿀 수 없습니다.
민주 공화국과 보통선거권은 봉건제에 비하면 거대한 진보였습니다. 그 덕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지금의 결속과 연대를 이루고, 단호하고 규율 있는 대열을 이뤄 자본에 맞서 체계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게 됐습니다. 노예는 물론이고 소작 농노도 거의 그러지 못했습니다. 알다시피, 노예는 반란과 소요를 일으키고 내전을 시작했지만, 그들은 계급 의식적인 다수와 투쟁을 지도할 정당을 만들어 낼 수 없었고, 자신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깨달을 수 없었으며, 가장 혁명적인 역사적 순간에서조차 그들은 항상 지배계급의 수중에 잡혀 있는 볼모였습니다. 부르주아 공화국, 의회, 보통선거권은 모두 세계적 사회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위대한 진보입니다. 인류는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도시 문화 덕분에 오직 자본주의에서만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의식적이 되고, 세계 노동계급 운동과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있는 정당들을 창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사회주의 정당들이 의식적으로 대중 투쟁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의회 제도나 선거 제도가 없었다면 노동계급의 이런 발전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광범한 인민 대중의 눈에 아주 중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급진적인 변화가 매우 어렵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의식적인 위선자들·과학자들·성직자들만이 국가는 자유롭고 국가의 사명은 모두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는 부르주아의 거짓말을 옹호하고 방어하는 게 아닙니다. 낡은 편견을 진지하게 고수하고 낡은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부르주아지에 직접 의존하거나 자본의 굴레 속에 살거나 자본에 매수된(많은 과학자들, 예술가들, 성직자들 등이 자본에 복무합니다) 사람들뿐 아니라, 단지 부르주아적 자유라는 편견에 영향받을 뿐인 사람들조차 세계 도처에서 볼셰비즘에 반대해 무기를 듭니다. 소비에트공화국이 수립될 때 부르주아의 거짓말을 거부하고 다음 같이 공공연히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국가가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사유재산이 있는 한 당신의 국가는 민주 공화국일지라도 자본가가 노동자를 억압하는 기구일 뿐이다. 그리고 국가가 자유로울수록 이 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스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이 그렇습니다. 비록 민주 공화국이긴 하지만, 아무리 우아하게 색칠을 하고 노동 민주주의와 모든 시민의 평등을 말하긴 해도, 이 나라들만큼 자본의 지배가 그토록 냉소적이고 무자비한 곳도 없고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습니다. 사실은 스위스와 미국에서는 자본이 지배하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조금이라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들은 모두 즉각 내전에 직면합니다. 이 나라들에는 병사들이 거의 없고 상비군도 적습니다. 스위스는 민병제고 모든 스위스인은 집에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꽤 최근까지 상비군이 없었고, 그래서 파업이 일어나면 부르주아지는 무장하고 사병을 고용해 파업을 진압합니다. 스위스와 미국만큼 노동계급 운동이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진압당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이 나라들만큼 자본의 의회 영향력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곳도 없습니다.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이고, 증권거래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의회와 선거는 꼭두각시이고 허수아비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점점 깨어나고, 소비에트 정부라는 사상이 점점 더 넓게 퍼져 나갑니다. 특히 우리가 방금 겪었던 대학살 이후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본가들과의 가차없는 전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노동계급에게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공화국의 외피가 뭐든지 간에, 아무리 민주적이라 해도, 부르주아 공화국이고 토지와 공장의 사적 소유를 유지하며 사적 자본이 사회 전체를 임금 노예로 만든다면, 즉 공화국이 우리 당의 강령과 소비에트 헌법에서 선언된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 국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 권력을 전복해 이 기구를 계급의 수중에 둬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가 보편적 평등을 뜻한다는 낡은 편견을 일절 거부해야 합니다. 사기이기 때문입니다. 착취가 있는 한 평등은 없습니다. 지주는 노동자와 평등할 수 없고, 배고픈 사람은 배부른 사람과 평등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국가로 불리는 기구 앞에 미신적 경외감으로 절하고, 국가는 대중의 지배를 뜻한다는 오래된 이야기를 믿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이 이야기가 부르주아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해체할 기구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기구를 자본가들에게서 빼앗아 장악했습니다. 우리는 이 기구 또는 곤봉을 이용해 모든 착취를 없애야 합니다. 세계 어디에도 착취의 가능성이 없고 지주와 공장주가 없으며 한쪽은 배부르고 다른 쪽은 굶주리는 상황이 없을 때, 오직 이런 가능성이 없을 때 우리는 이 기구를 폐기할 것입니다. 그때는 국가도 없고 착취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당의 관점입니다. 다음 강연에서 이 주제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MARX21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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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글은 레닌이 1919년 7월 11일 모스크바에 있는 스베르들로프대학교에서 한 강연을 기록한 것이다. 스베르들로프대학교는 1919년 6월 1일 개교한 최초의 당 학교였다. 레닌은 이 대학을 조직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며 첫 교안 작성에 참여했다. 레닌은 1919년 7월 11일과 8월 29일 두 차례 국가에 대해 강의했는데, 두 번째 강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속기록은 1929년 1월 18일 <프라우다> 제15호에 처음으로 실렸다. 이 글의 대본은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ages 470-488이고, レーニン全集 第四版, 大月書店, 1958, 第29巻, 477-496ページ를 참조했다(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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