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반자본주의적이지만 이론적 결함도 많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연설문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묻는다. ‘이런 문제 투성이의 자본주의가 계속 존재해야 하나?’
그는 더 심각해진 불평등과 기후 변화를 문제를 꼽은 뒤 코로나19 이후 자본주의가 더 해괴망측해졌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 부자 8명의 재산이 하위 50퍼센트의 재산과 맞먹는 지금, 탄소 농도도 임계치를 넘기 직전이다.
1 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고 밀어붙인 영국의 전 총리 대처는 “경제체제를 신자유주의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경제 문화 전반을 바꾸려 했”고, “개인주의, 개인의 책임, 자기 계발 등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주입”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능력을 탓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져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들어서자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2 이라고 자책하도록 만든다.
하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능력주의’를 끊임없이 내면화시킨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기업가가 되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는데, 가난에 허덕이는 이유는 바로 “자신에게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삶이 더 팍팍해지는 것은 우리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웅변한다. 정작 “자본주의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 건 노동자 민중이다.”
예컨대 “코로나19는 폭력적이고 무절제한 신자유주의자들이 40년에 걸쳐서 자연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고 남용한 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인데 그 피해는 노동자 민중이 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의 삶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 문제의 배후에도 “끊임없이 복리 이자율로 축적되는 자본”이 있다.
3 이 책에는 자본주의가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게 할 유용한 사례들이 가득하다.
하비는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기에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자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대안 사회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절호의 기회입니다.”그러나 하비의 원인 진단과 대안은 모호하고 빗나가 있다.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모호하고 잘못된 분석들
4 금융 자본의 힘이 산업 자본을 눌러, 최고경영자들과 기업 이사회 중역들, 금융 법률, 기술 엘리트들이 새로운 계급권력으로 떠올랐다. 노조까지 무력화됐고 그 결과 노동자들은 더한층 불안정 노동과 빚더미에 내몰리게 됐다. 신자유주의적 우파 포퓰리즘과 동맹을 맺으며 더 큰 힘을 가진 기업인들은 전 세계를 약탈해 나갔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억제될수록 강탈에 의한 축적은 더 노골화됐고 지구촌의 불평등은 더 깊어졌다. 미국을 위시한 일부 강대국들은 자본 집약적인 기술력을 가지려는 국가들(대표적으로 중국)에 진입 장벽을 쳐 무역 갈등은 더 깊어진다.
일단 하비의 신자유주의 개념부터 짚어 보자. 그는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이 사단을 일으켰다고 진단한다. 하비가 ‘견고히 뿌리박은 자유주의’라 부르는 시기, 즉 1970년대 중반 이전의 미국·서유럽·일본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 타협”을 바탕으로 팽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는 GDP에 명함도 못 내밀었던” 하비는 신자유주의를 유효 수요에 차질을 빚게 하는 축적 양식으로 규정한다. 그의 이전 저작인 《신자유주의》, 《신제국주의》 등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전 시기에 비해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락해 대중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자본은 시장을 확보하려고 사업 이권을 확장(사유화)하고 토지를 약탈하는 시초축적에 의존하게 됐다.’그러나 첫째, 하비는 신자유주의 이전 시대 경제 성장의 원인을 잘못 짚고 있다. 하비 말대로 ‘포드주의 타협’이 성장의 비결일까? 만약 이런 계급 타협이 장기적인 성장의 동력이었고, 그래서 장기 호황기에는 산업 자본이 이에 만족해 하면서 금융 자본의 주도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째서 1970년대 중반 이후에 금융 자본이 주도권을 확립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6 이윤율이 회복됐던 것이다. 게다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인 군비 지출(상시적 무기 경제) 덕택에 이윤의 상당 부분이 무기 생산에 사용되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이는 투자 증대의 압력이 줄어들어 이윤율 하락을 막을 수 있었다. 즉, 하비가 거부하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 대한 상쇄 요인이 작동한 결과였던 것이다. 국가가 완전고용과 서민복지에 집중하는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요컨대, 장기 호황의 진정한 비결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대불황과 제2차세계대전 속에서 불변자본이 대량으로 파괴되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력 대비 기계와 같은 불변자본의 투자 비율)이 낮아져둘째, 하비는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을 신자유주의의 모순이자 강탈에 의한 축적의 동기로 보고 현대 자본주의 모순을 과소소비론으로 설명한다.
하비는 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소비 추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비의 과소소비론은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노동의 소외를 주되게 1970년대까지 작동했던 일명 ‘보상적 소비주의’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결과로 보는 듯하다. 그리고 이 ‘보상적 소비주의’가 1980년대부터 붕괴돼 노동자들의 유효 수요가 제대로 창출되지 않은 것을 신자유주의의 신호탄으로 여긴다. “1980년대가 무르익어 가면서 이후 자동화와 첨단기술 제품군의 제조 활성화로 부유한 노동자 계급이 공격을 받아” “구매력을 가진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소소비론은 위기 분석에 약점이 있다. 애초에 임금이 자신의 생활 밑천인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생산물 전체를 소비할 수가 없다. 자본가들이 이윤으로 가져가는 것을 생산적 소비(투자)에 사용해야만 생산물 전체가 소비될 수 있다. 만약 노동계급의 구매력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자본가들이 충분히 투자를 한다면 ‘과소소비’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이윤율이 떨어지면 자본가들의 투자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사회적인 수요가 줄어들면서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과소소비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문제가 드러나는 한 현상일 뿐이다.
즉, 근본 문제는 자본가들의 축적 경쟁 때문에 발생하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다. 이윤율 저하는 자본가들이 경쟁자들을 따돌리려다 보니 이윤의 원천인 노동보다 기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하게 하는 자본축적 방식(확대재생산)에서 비롯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도 가장 낭비적인 체제가 됐다. 그러나 하비 저작을 보면 확대재생산은 자본주의 모순을 파헤칠 중심 동력이 아니다.
8 토지 사유화와 농민 강제 이주, 수많은 사람들을 빚의 노예로 전락시키기, 신용과 주가 조작을 통한 자산 몰수, 특허권 사용료 부과, 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제 허물기 등.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하에서 이런 일들은 횡행한다. 하비가 사례로 든 하버드대학교의 기부금 재단이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땅을 많이 사들이는 바람에 아프리카 땅값이 껑충 뛰어오른 사례를 포함해서 말이다. 9
셋째, 잉여가치 생산과정의 모순을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분석하지 않다 보니 하비는 강탈을 통한 축적을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보다 우세한 축적 형식으로 규정한다. 하비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공장과 사무실을 가동시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강탈’(도둑질)이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잘 집약한다고 본다.10 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특정 시기’나 ‘특정 조건’에서 주된 특징이었던 원시적 자본축적을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축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강탈에 의한 축적을 중심에 놓게 되면 자본주의의 연료인 이윤(잉여가치)이 만들어지는 곳은 부차화될 수밖에 없다. 연료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차단시켜야 자본주의적 생산이 멈출 수 있는데 말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원시적 자본축적 이론이 전 세계적인 임금노동 집단의 형성을 다루기 위한 이론” 생산이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강탈의 방식으로 부를 모으는 상인 자본주의의 특징을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축적 방식으로 설명하다 보니, 하비는 구글이나 애플 같은 거대 IT 기업도 상인 자본이라고 분석한다. “상인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생산 역량을 조직하고 생산할 때 산 노동을 착취하는 형태가 아니라 더욱더 도용하고 강탈해서 축적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12 구글이나 애플은 상품(검색 서비스이든 휴대폰 등의 재화이든)의 생산 과정에서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벌기 때문에 상인 자본이 아니라 산업 자본의 일부이다.
물론 구글이나 애플은 인수합병 등으로 여러 기업들의 기술력을 빼앗고(“도용”) 우리의 개인정보를 약탈한다. 거대 기업들이 강탈을 일삼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이런 탐욕은 반드시 제어돼야 한다. 그러나 구글이나 애플의 막대한 이윤의 배후에는 엔지니어를 비롯한 IT 노동자들에 대한 고강도 착취가 있다.13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 결론이 가지는 문제점에 관해 이렇게 비판한다. “자원을 가차없이 약탈하는 것이 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중요한 측면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자본이 관계임을 무시하면 오늘날 자본축적의 독특한 형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또 자본과 노동의 상호의존도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자본과 노동의 상호의존은 노동자 착취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방해하고 마비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능력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14
하비의 입장은 자본축적이 생산과정 외부에서 이뤄지는 어떤 공통적인 것을 수탈하는 형태를 띤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넷째, 하비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기각해 왔는데, 최근에는 “비율이 아니라 총량” 즉, 이윤율이 아니라 이윤량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핵심에서 완전히 후퇴한 것이다. 그는 추상과 구체라는 마르크스의 방법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복잡한 양상을 분석하기 위해 현상적인 것을 분석상에서 일단 제거한 뒤 궁극적인 원인(잉여가치의 원천인 노동력보다 노동력을 절감시키는 불변자본 투자의 증대)을 알아내 결국 궁극 원인에 작용하는 각종 계기를 포착해 내는 마르크스의 방법론 말이다. 궁극적인 원인과 거기에 작용하는 각종 계기들을 구분하지 않은 채 뒤섞는 하비의 산만한 서술 곳곳에는 절충주의와 편의적 해석의 위험이 있다.
15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이윤량을 무시했다는 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마이클 로버츠는 자신의 저서와 블로그 글들에서 이윤율과 이윤량의 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해 왔다. 이윤율이 떨어져도 이윤량이 늘어날 수 있고 늘어날 테지만, 이윤율이 떨어지면 결국에는 이윤량도 떨어져서 ‘절대적 과잉축적’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위기가 터지는 임계점이 된다는 게 로버츠의 답변이다. 이윤율 저하가 이윤량의 증대를 둔화시켜서, 결국 생산에 계속 투자할 만큼 잉여가 충분치 않게 돼 붕괴가 찾아온다는 헨릭 그로스만의 설명도 있다. 16
일단 분명히 해 둘 것은 마르크스의 법칙은 이윤율 하락에 관한 것이지 이윤량 하락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황 직전을 제외하면 한 경제에서 이윤량은 언제나 증가한다.이윤율이 아니라 이윤량이 자본주의 핵심 모순이라는 하비 주장의 실천적 함의는 무엇일까?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이윤율의 저하로 이윤이 불충분해지는 게 아니라 이윤량의 증대로 잉여가 너무 커지는 것이 된다. 이는 유효수요 부족으로 위기가 생긴다는 하비의 과소소비설의 유력 근거가 될 것이다.
17 하비는 성장률이 낮아져도 일자리를 늘려(상품 구매자들을 늘려) 이윤량을 늘려 온 중국에 각별히 주목하자고 한다. 18 하비는 중국이 인공지능 생산에서도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공지능이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배제” 19 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더 이상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자본주의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자고 말한다. 하비는 중국 정부가 내수시장 성장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20
하비는 중국이 2012년 이후 2년 동안 소비한 시멘트의 양이 미국이 과거 100년 동안 소비한 양의 두 배라는 사례를 즐겨 사용한다.중국의 위기 대처가 발 빠르고 기민했다는 하비의 지적까지 염두에 둔다면 ‘비율 대 총량 위기론’의 결말이 무엇이 될지 불길하다. 하비는 소비 진작을 유도하는 케인스주의 정책이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세계경제의 더 큰 회오리 바람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볼 공산이 크다. 미국의 패권 전쟁에 반대하고 제국주의를 폭로하는 지식인이었던 하비가 중국 정부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모습에 씁쓸함마저 느낀다.
전혀 반자본주의적이지 않은 하비의 기후 변화 대안
다섯째는 기후 변화에 관한 하비의 대안이다. 하비는 ‘비율 대 총량’론의 중요 사례로 기후변화를 든다. 하비는 지금이 ‘종말’ 직전의 다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하비의 절실함에 당연히 공감이 간다. 그런데 하비는 탄소를 땅에 묻는 탄소 포집과 저장 기술을 당장 도입하면 배출량을 조금이라도 둔화시켜서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냐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러나 이미 기후변화 운동 내에서도 탄소 포집 방식은 강력한 비판이 제기됐다. 그린피스는 일찍이 탄소 포집 저장 기술이 “새로운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의 명분으로 활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기존 화력 발전소에 탄소 포집 시설을 추가하면 화력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 까닭이다. 근본으로 탄소 포집 기술은 발전소나 공장에서 나오는 탄소를 일부만(그조차 불완전하게) 제거한다. 탄소 포집이 근본 대안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21 에너지 기술 전문 연구원 사이먼은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은 석유회사나 국가가 통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실험에서는 탄소 포집이 되레 탄소 배출량을 더 늘린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들의 연구를 보면, “탄소 포집 및 저장(CCS)은 제거된 톤당 1.44~4.7톤의 가스를 배출한다.”하비는 극단적인 우익 정치인들이나 극도로 탐욕적인 자본가들만 잘 제어해서 인공지능 기술 등 고도의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새로운 사회로 매끄럽게(“평화롭게”) 진입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책 곳곳에 기술결정론을 의심케 하는 대목들이 눈에 띄는 까닭이다.
혁명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하비의 사회주의적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하비는 사회주의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혁명을 통해서는 아니라고 못 박는다. “혁명주의자라면 자본주의가 붕괴되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그 잿더미 위에 새로운 체제가 서게 될 것이라고 한 번쯤 꿈꿔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런 혁명이 가능한 시대가 아닙니다. 설사 과거에는 그러한 혁명적 전복이 가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당장 굶어 죽지 않으려면 상품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화폐 자본이 순환해야 하는 시스템이 상당 기간 유지되어야 합니다.”
하비는 자본의 흐름이 막히면 생필품 생산과 분배까지 막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증식 과정이 차단된다는 것이 모든 노동이 중단된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를 타도한다는 것은 더는 가치증식과정을 중심으로 생산을 조직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노동과정까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삼성전자 공장을 장악하고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생산하면 가치증식과정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장에서 노동력, 원자재, 기계를 결합해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과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하비는 생산수단이 가치증식 수단(자본)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만의 특징이라는 점을 망각하는 기초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24 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거북함을 드러낸다.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에서 그는 “사회주의 정치는 보수주의의 날을 품고 있”다고도 말했다. 25
하비는 자본주의를 타도하면 노동자들을 비롯한 인민 대중이 생산을 책임질 수 없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비의 기존 저작과 심각하게 충돌하는 바다. 하비는 2000년대 초반에 쓴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 단명한 노동자 국가 파리 코뮌이 “그 미래에서는 연합 원칙과 사회적으로 조직된 행정부와 생산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있을 터”역사는 사회 격변기 때 노동자들이 얼마나 능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파업이 확대되고 반란이 확대되는 시기에 노동자들은 자본과 국가기구에 대적하는 노동자 민주주의 권력체인 소비에트를 만들었다. 이 조직들의 경험은 노동자들이 생산과 분배를 거뜬히 조직할 힘이 있음을 보여 줬다. 하비가 자주 인용하는 파리 코뮌의 경험이 그것을 잘 보여 주지 않았던가. 노동자 정부는 부채를 탕감하고 집세의 지불을 유예하고 전당포에 맡겨졌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필수품을 되돌려 줬다. 선출된 코뮌 위원들은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을 받았다. 그리고 빵 굽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줄이고 누구나 극장에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도 계획했다. 코뮌은 제과 노동자들의 야간 작업을 없애고, 경찰이 임명한 사람들이 독점 운영해 온 직업소개소를 폐지하고 파리 20개 구에서 직업소개소를 새로 운영했다. 4월 30일에 코뮌은 전당포(지금의 은행) 폐업을 명령했다.
문제는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다시 권력을 찾으려는 자본가와 기존 국가기구(경찰, 군대 등)의 힘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하비는 국가의 경제활동을 자본주의 생산 체제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으로는 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큰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26 고 지적한다.
하비는 때로 노동자 계급의 저력을 맛깔지게 묘사한다. 그는 노동자계급 구성이 바뀌었고 특히 “패스트푸드, 공항, 택배 분야 등에서 강력한 노동조직이 등장할 수 있다면, 그 새로운 노동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떻게 힘을 집결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는 “공항 노동자의 사례를 들으며 미국 노동운동의 핵심을 이루는 흑인, 라틴계 및 여성 노동자들이 조직화된다면 이 조직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하비는 노동 분절화 테제를 전제한 뒤 사회적 재생산 부문의 불안정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노동자들의 저력에 관한 그의 언급은 백 번 타당하다. 그런데 그것이 공항, 패스트푸드, 택배 분야에만 한정될 필요가 있겠는가.
하비는 자본이 새로운 곳을 찾아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려는 ‘공간적 해결’을 추구하고 항상 그 뒤에는 불평등이 자라난다고 잘 지적한다. 하비는 그 주자에 한국 자본가들을 포함했다.
그러나 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노동 착취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일상적 시기에 각별히 혁명적이어서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마비시킬 객관적인 힘이 바로 착취당하는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혁명적 의의를 갖는 까닭이다.
약탈적 갑질을 하는 슈퍼 주체들을 제거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모든 세력들이 뭉쳐 평화로운 이행을 도모하자는 민중주의 주장은 물론 하비만의 것은 아니다. 하비의 견해를 통해 좌파 개혁주의의 약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궁극적인 원인과 그것이 드러나는 이유 및 계기들을 구별하지 않았을 때, 다시 말해 본질과 현상을 가려 내지 않고 편의적으로 절충했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개혁주의의 맹점이다. 하비의 책에서는 이런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
- 하비 2021, 27쪽. ↩
- 하비 2021, 35쪽. ↩
- 하비 2021, 329쪽. ↩
- 하비 2021, 58쪽. ↩
- 하비의 경제 이론과 정치에 관한 정리 및 비판은 이정구 2016을 참고하시오. ↩
- 자세한 것은 최일붕 2020을 보시오. ↩
- 하비 2021, 268~272쪽. ↩
- 하먼 2009, 104~107쪽. 이 책에서 3∼5장, 10∼11장의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
- 하비 2021, 67쪽. ↩
- 하비 2021, 204쪽. ↩
- 하비 2021, 215쪽. ↩
- 지식노동도 추상적 시간에 의해 측정되고 정량화된다. 지식기반경제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연구개발 노동도 “시간 경쟁”에 노출돼 있다. 구글, 삼성전자 등은 지식노동을 규격화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물론 소프트웨어와 기계 사이에 차이는 있다. 소프트웨어는 물리적으로 소모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도 “도덕적 감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즉, 지식이나 기술도 진부화되면서 가치를 잃는다. 구글 수익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 수익은 검색 엔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 들어간 노동, 셀 수 없는 ‘구글링’ 과정에서 드러난 개인 신상이라는 정보 등이 반영된 것이다. 구글 등의 빅테크 기업의 막대한 수익은 노동가치론으로 명징하게 설명 가능하다. 자세한 것은 김어진 2017을 보시오. ↩
- 이런 입장에서는 사적 소유와 신자유주의에 대립하고 국가 규제에도 대립하는 부를 관리하는 한 방식(커먼스)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에 관한 비판으로는 캘리니코스 2020, 202쪽을 보시오. ↩
- 캘리니코스 2020, 262~263쪽. ↩
- 로버츠 2016, 116~123쪽. ↩
- 그로스만 2021의 2부를 보시오. ↩
- 하비 2021, 113쪽. ↩
- 하비 2021, 174~177쪽. ↩
- 하비 2021, 125쪽. ↩
- 하비 2021, 116쪽. ↩
- Pirani 2020. ↩
- 하비 2021, 26~28쪽. ↩
- 김종환 2020. ↩
- 하비 2005, 463쪽. ↩
- 하비 2017, 402쪽. ↩
- 하비 2021, 218~228쪽. ↩
참고 문헌
그로스만, 헨릭 2021, 《자본주의 체제의 축적과 붕괴 법칙 — 동시에 위기이론》, 실크로드.
김어진 2017, ‘구글과 인지자본주의론 그리고 노동가치론’, 《마르크스 21》22호(9∼12월).
김종환 2020, ‘자본주의를 개혁해 사용하는 게 타당한가’, 〈노동자 연대〉 328호,
김종환 2021, ‘유엔기후 총회 글래스고 기후 조약, 마지막 기회라더니 말잔치로 끝낸 지배자들’, 〈노동자 연대〉 395호.
로버츠, 마이클 2017, 《장기불황》, 연암서가.
로버츠, 마이클 2016,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경제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 21》 16호(2016년 10-11월), 책갈피.
이정구 2016, ‘데이비드 하비의 경제이론과 정치 비판’, 《마르크스 21》 15호(2016년 여름).
캘리니코스, 알렉스 2020, 《자본론 행간 읽기》, 책갈피.
최일붕 2020, ‘상시적 군사경제’, 《마르크스 21》(1·2월호).
하비, 데이비드 2005,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생각의 나무.
하비, 데이비드 2007, 《신자유주의》, 한울아카데미.
하비, 데이비드 2017,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창비.
하비, 데이비드 2021,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선순환.
하먼, 크리스 1995,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풀무질. [절판됨]
하먼, 크리스 2009,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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