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회주의 고전 읽기 《국가와 혁명》
마르크스주의적 국가 이론을 가장 잘 설명한 책
레닌은 1917년 8~9월에 《국가와 혁명》을 썼다. 10월 혁명을 두 달 앞둔 때였다. 십중팔구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국가와 혁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카우츠키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자신들의 개혁주의적 실천을 정당화하려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국가론을 왜곡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 계급은 단순히 기성의 국가 기구를 접수하여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 정당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해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고, 자본주의 국가 분쇄 필요성을 거부했다. 이는 제1차세계대전에서 다른 나라 노동계급을 학살하는 자국 정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멘셰비키도 비슷한 관점으로 1917년 이원권력 상황에서 소비에트가 아닌 임시정부를 지지했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방어하고 사회주의 혁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국가와 혁명》을 썼다. 그리고 10월 혁명을 승리로 이끌며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스탈린의 반혁명 전까지 소비에트는 역사상 가장 발전한 민주주의를 보여 줬다.
오늘날 많은 좌파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활용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좌파 정당이 집권하면 국가를 노동계급의 이익에 맞게 고쳐 쓸 수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국가가 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을 사회주의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전망에 따라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보다 선거를 더 중시한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노동계급 혁명으로만 가능하다. 트리니다드 출신 혁명가 C L R 제임스의 말처럼 “프롤레타리아가 자신과 대다수 민중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바로 그만큼 사회주의 혁명은 전진한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노동자 정당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포로가 되거나 쿠데타에 의해 강제로 실각됐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국가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활용할 수 없다. 국가에 대한 태도는 혁명의 성패를 가를 뿐 아니라, 일상적 시기에도 노동계급의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에서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려는 사람들에게 《국가와 혁명》 은 여전히 중요한 책이다. “사회주의 혁명과 국가의 관계 문제는 실천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족쇄에서 해방되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대중에게 설명해 주는 문제라는 점에서 매우 급박한 중요성을 갖는다.”
계급 사회의 산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고 본다. 착취 계급과 피착취 계급 사이의 투쟁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흔히 주류 사회학자들이 사회를 본질적으로 조화로운 것으로 보고 일시적 갈등을 조정해 계급 화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달리,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이 본질적이라고 봤다.”
3 그런데 생산력이 발전하고 잉여생산물이 생겨나자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었다. 사회적 노동을 하지 않고 잉여생산물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람들은 지배계급이 돼 피지배 계급을 착취했다. 지배계급은 외적을 막고 피지배 계급을 억압할 수단을 만들었다. 레닌은 엥겔스의 중요한 저작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인용해 국가를 정의한다.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면서 국가가 생겨났다. “국가 없이도 사회는 존재했으며, 국가와 국가권력에 관한 개념이 없었던 사회도 있었다.”국가는 착취 계급과 피착취 계급이 서로 객관적 이해관계가 달라 평화롭게 조화 · 공존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즉, “국가의 출현은 계급대립이 화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국가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른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라는 존재는 그러한 사회가 해결 불가능한 자기모순에 봉착했고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화해 불가능한 대립물들로 분열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립물들,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지닌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않게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갈등을 완화하고 ‘질서’의 한계 내에서 제어할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생겨났지만 사회 위에 서서 사회로부터 점점 더 소외되어가는 이러한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특수한 무장 집단
5 국가는 “계급지배의 기관이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관이며 계급 간의 갈등을 완화해 그러한 억압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6 즉, 국가는 착취구조를 유지하고 피착취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다. 레닌은 엥겔스의 말을 인용하며 국가가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레닌은 “계급 간의 화해가 가능했다면, 국가는 생겨날 수도 없었고 존속할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국가는 계급 간의 대립을 억제할 필요에서 생겨났지만 동시에 계급 간의 충돌 가운데서 생겨났기 때문에, 그 국가는 일반적으로 가장 힘 있고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의 국가이다. 이 계급은 국가의 힘을 빌려 정치적으로도 지배적인 계급이 되며, 그리하여 피억압계급을 압박하고 착취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획득한다. 고대국가와 봉건국가가 노예와 농노를 착취하기 위한 기관이었듯이 근대의 대의제 국가 역시 자본에 의한 임노동 착취의 도구이다.
8 라고 불렀다. 사회의 소수인 자본가 계급이 사회의 다수인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려면, 무장력은 오직 국가에 집중돼야 한다. 왜냐하면 “문명화된 사회는 ‘자발적’ 무장이 허용되면 서로 무장투쟁을 벌이게 될 적대적 계급들, 그것도 화해 불가능한 적대적 계급들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9
국가는 군대,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 등 ‘공권력’을 활용해 계급 체제를 수호한다. 레닌은 국가를 “무장한 사람들의 특수한 조직체”‘공권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지배자들의 이익에 봉사한다. 군대가 실제로 지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국 자본가들의 재산(개인적 부와 그들이 통제하는 생산수단)과 그들의 국가다. 역사를 봐도 계급투쟁이 격렬해질 때 군대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사례가 굉장히 많다. 경찰도 ‘민중의 지팡이’보다는 ‘민중을 패는 몽둥이’일 때가 더 많고, 그럴 때 더 유능하고 기민하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사회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다. 법은 국가의 무장력 독점과 폭력 행사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한다. ‘불법 파업’을 한 노동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고 사용자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한다. 법관은 대개 사용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 사법부, 검찰, 경찰은 법·질서를 수호한다며 대중의 저항을 탄압한다. “그 법·질서는 자본가들의 법이고 자본가들의 질서다. 결국 사법제도라는 것은 폭력 사용에 의존하는 것이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말이다.”
엥겔스는 “국가 내부의 계급 대립들이 격화되고 인접 국가들이 더 비대해지고 인구수가 늘어남에 따라” 국가의 무장력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레닌은 이에 동의하며 제국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군비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어서 자국 제국주의를 편드는 개혁주의 정당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1914~1917년의 제국주의 전쟁 동안 사회배외주의자들은 ‘조국의 수호’니 ‘공화국과 혁명의 수호’니 하는 따위의 구호로 ‘자기네’ 부르주아지의 약탈적 이익에 대한 옹호를 은폐했다.
오늘날에도 혁명가들은 국가가 무장력을 강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해야 한다. 경제 위기에 더해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하는 상황에서 각국 지배자들은 군비를 엄청나게 늘리고 경찰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중의 삶과 관련된 복지는 삭감하면서 말이다.
12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대표적이다.
한편, 자본가 계급은 탄압만으로는 노동계급을 지배할 수 없다. “안정된 자본주의 국가는 지배를 위해 대중 또는 적어도 대중 일부의 동의와 지지를 조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자본주의적 민주주의
13 국가 기구에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이 즐비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삭감되고 빈약하고 허위에 찬 민주주의, 즉 부자들만을 위한, 소수만을 위한 민주주의가 존재할 뿐이다.” 14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자본가 계급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정치체제이다. 지배자들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이용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환상을 조장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대중은 4~5년에 한 번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표할 사람을 뽑을 때만 민주주의를 누린다. 사장들은 사업장에서 독재적 권력을 휘두른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직장 앞에서 멈춘다.”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한 변화가 최선이라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부추기며 노동계급 대중을 수동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레닌이 말했듯,
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로서는 가능한 최선의 정치적 외피다. 따라서 자본은 이 최선의 외피를 획득하고 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인물이나 제도나 정당이 아무리 교체되더라도 아무런 동요도 없을 만큼 견고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권력을 확립한다.
16 반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오늘날의 국가에서’ 보통선거권을 통해 다수 근로자들의 의사가 정말로 표출될 수 있고 확실히 실현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생각을 인민들에게 불어넣고 있다”고 일갈한다. 17
이어서 레닌은 “엥겔스가 보통선거권을 아주 단호하게 부르주아지의 지배도구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18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발전해도 자본가 지배의 토대가 손상되거나 민중이 국가를 지배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보편적 언어와 호소는 민중이 자신들이 이해하는 대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과정을 촉발시켰다.” 19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해 초좌파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협소하고 제한적인 것은 맞지만, “더 광범하고 더 자유롭고 더 공개적인 형태의 계급투쟁과 계급적 억압은 계급 일반의 폐지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대단히 수월하게 한다.”20 진정한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꽃피울 것이다.
물론 사회의 소수인 자본가 계급이 생산수단과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레닌의 말처럼, “우리는 자본주의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장 좋은 국가형태는 민주공화제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에서도 임금노예제가 인민의 운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그렇다면 민주주의를 계속 확장해 나가면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혁명 없이 자본주의 틀 안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으로만 가능하다. 지배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계급 대립이 사라지고 모든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들도 노동계급 대중이 착취와 차별에 맞서 심각한 수준으로 저항하면 가차없이 공권력을 휘두르며 민주적 권리를 제약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존속하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설하려면 노동자 국가가 필요하다.
노동자 국가
21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지배계급과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너무 많이 왜곡된 개념이지만, 마르크스에게 이 개념은 노동자 민주주의 / 노동자 권력(국가)를 뜻했다. 레닌은 노동계급 투쟁을 지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가 건설을 전략 목표로 삼아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한 것이다.
레닌은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까지 인정하는 사람만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강조한다.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일찍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에 쓴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으로 올라서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구체적 형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1871년 파리 코뮌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나침반이 돼 줬다. 파리 코뮌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려는 사회주의 혁명의 첫 시도이며 분쇄된 것을 대체할 수 있고 또 반드시 대체하여야 할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태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의 독일어 신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특히 코뮌은 “노동자계급이 기존의 국가기구를 단순히 장악해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운영할 수 없다”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레닌은 이 말의 뜻이 “노동계급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파괴해야지 단순히 그것을 장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코뮌이 세워진 1871년 4월 12일 마르크스는 쿠겔만에게 쓴 편지에서 “관료·군사기구를 한편의 수중에서 다른 편의 수중으로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혁명의 선결 조건”이라고 썼다.
마르크스는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국가가 무엇을 하는지 꼼꼼히 살펴봤다. 첫째, 코뮌은 기존 국가의 군대를 제압하고 스스로 무장했다. ‘주민들의 자발적 무장 조직’이 ‘특수한 무장 집단’을 해체한 것이다. 둘째, 모든 공직자들은 선출됐고 언제든 소환됐다. 공직자들은 노동자 평균 임금을 받았다. 그런 조처들 덕에 노동자들은 사회 운영에 능동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고,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이룩한 적 없는 민주주의를 보여 줬다.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파리 코뮌의 경험에서 도출한 교훈을 러시아에 적용했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라는 4월 테제의 핵심 구호에는 파리 코뮌의 경험이 녹아 있다. 복잡하고 거대한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사회를 직접 운영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노동계급은 충분히 사회를 직접 운영할 잠재력이 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이윤 생산에 필요한 온갖 지식과 기술을 익히게 했다. 노동계급은 역사상 가장 똑똑한 피지배 계급이다. 이미 전 세계의 모든 공장·사무실·관공서·상점·항구·공항·철도·통신 시설 등은 노동자들이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레닌의 말처럼 “우리 노동자들은 이미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것에서 시작해 우리의 노동 경험을 바탕으로 무장 노동자들의 국가권력이 뒷받침하는 엄격한 철의 규율의 도움으로 스스로 대규모의 생산을 조직할 것이다.”
아나키즘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모든 국가를 거부하는 아나키즘도 비판한다.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주의자는 평등하고 계급 없는 사회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아나키스트는 노동자 국가도 반대한다. 그러나 노동자 국가 없이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레닌은 엥겔스의 말을 빌어 아나키즘을 비판한다.
이 신사분들께서는 혁명을 본 적이 있는가? 의심할 나위 없이 혁명이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권위적인 것이다. 혁명이란 주민의 일부분이 소총과 총검과 대포 등 대단히 권위적인 수단을 가지고 주민 일부에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다. … 만일 파리 코뮌이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무장하는 인민의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과연 단 하루라도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우리는 코뮌이 그와 같은 권위를 너무나 적게 사용한 것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코뮌은 자신들의 권위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 파리 코뮌이 그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단명한 것은, 파리를 넘어 프랑스 전체의 권력을 장악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고 경제 권력에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6 자본주의 국가를 무너뜨린 노동계급이 권력 장악을 포기한다면 자본가들의 반혁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도구라면, 노동자 국가는 자본가 계급을 억압하는 도구다. “봉기가 성공하더라도 계급투쟁은 끝나지 않는다.”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오직 일시적으로만 국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목표로서의 국가 폐지의 문제에서는 결코 아나키스트들과 의견이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계급을 폐지하는 데 피억압계급의 일시적 독재가 필요한 것과 같이 국가 폐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착취자들에 반대해서 국가 권력의 도구와 수단 및 방법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국가는 경제를 민주적으로 재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중의 필요에 따라 경제를 조직하려면 노동계급의 통제를 받는 국가 기구가 필요하다. 레닌은 엥겔스의 말을 인용한다.
공장과 철도와 대양의 선박을 생각해 보라. 기계의 사용과 수많은 사람의 계획적 협력을 바탕으로 한 이런 복잡한 기술적 시설물들 중의 어느 하나도 어느 정도의 복종과 어느 정도의 권위나 권력 없이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노동자 국가는 필요 없다고 보는 것은 공상적이다.
국가의 점진적 사멸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생겨난다. 자본주의가 낳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 자본주의가 이룩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다수의 필요에 따라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 사회주의다.
29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노동자 국가는 점점 사멸해 갈 것이다. “더는 자본가도 없고, 계급들도 없고, 따라서 억압해야 할 계급도 없게 되면 국가는 사멸한다.” 30 레닌은 그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면 국가가 사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레닌은 “자본주의가 폐지된다고 해서 그 즉시 그 같은 변화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하지만 우리는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면서,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 발전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인간에 대한 폭력 일반의 필요성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주민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게 복종할 필요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폭력 없이, 복종 없이 사회적 공동생활의 기본 조건들을 준수하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10월 혁명이 임박하면서 너무 바빠졌기 때문이다. 레닌은 초판 후기에서 책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다고 고백하면서 “’혁명의 경험’을 쌓는 것이 그것에 대해 쓰는 것보다 더 즐겁고 유익한 일”이라고 했다.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특히 작고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국가와 자본의 관계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임을 밝혔다. 많은 경우 국가와 자본은 어느 정도 분리돼 있고 심지어 때때로 갈등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서는 이해관계가 같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경쟁력과 기업 경쟁력이 서로 연결돼 있다.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할 때 국가와 자본이 한편이 되는 까닭이다.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 도구인 것이다.
혁명적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혁명이 성공하려면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까지 인정하는 사람”들이 미리 조직돼 있어야 한다. 볼셰비키가 없었다면 러시아 혁명은 임시정부와 반동 세력에게 진압당했을 것이다. 1918~1923년 독일에 볼셰비키 같은 혁명적 정당이 독일 노동계급에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미리 준비돼 있었더라면, 러시아 혁명은 고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와 혁명》의 또 다른 교훈은 그 책을 쓴 레닌이 혁명적 정당의 리더였다는 점이다.
주
- 레닌, 2015, 22쪽. ↩
- 김하영, 2017, 63쪽. ↩
- 엥겔스, 레닌 2015, 40쪽에서 재인용. ↩
- 레닌, 같은 책, 29쪽. ↩
- 같은 책, 30쪽. ↩
- 같은 책, 30쪽. ↩
- 같은 책, 37쪽. ↩
- 같은 책, 33쪽. ↩
- 같은 책, 34쪽. ↩
- 최일붕, 2015, 14쪽. ↩
- 레닌, 같은 책, 35~36쪽. ↩
- 캘리니코스, 알렉스, 2009. ↩
- 최일붕, 같은 책, 22쪽. ↩
- 레닌, 같은 책, 152쪽. ↩
- 같은 책, 39쪽. ↩
- 같은 책, 39쪽. ↩
- 같은 책, 39쪽. ↩
- 같은 책, 136쪽. ↩
- 글럭스틴, 도니 2014. ↩
- 레닌, 같은 책, 46쪽. ↩
- 같은 책, 68~69쪽. ↩
- 같은 책, 74쪽. ↩
- 같은 책, 75쪽. ↩
- 같은 책, 91쪽. ↩
- 같은 책, 111쪽. ↩
- 몰리뉴, 존 2013, 26쪽. ↩
- 레닌, 같은 책, 108쪽. ↩
- 같은 책, 109쪽. ↩
- 같은 책, 159쪽. ↩
- 같은 책, 159쪽. ↩
- 같은 책, 140쪽. ↩
참고 문헌
글룩스타인, 도니 2014, ‘민주주의 ─ 사실과 물신숭배’, 《마르크스21》 14호.
김하영 2017,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 -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책갈피.
레닌, 블라디미르 2015, 《국가와 혁명》, 돌베개.
르블랑, 폴 2014,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마르크스21》 14호.
몰리뉴, 존 2013,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책갈피.
최일붕(엮은이) 2015, 《자본주의 국가 -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책갈피.
캘리니코스, 알렉스 2009, ‘자본주의 국가의 다양한 형태’, 《마르크스21》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