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 폭력의 정치학 *
[2022년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총기 범죄가 미국 아동·청소년 사망 원인 1위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다시금 일깨워 줬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이래 미국에서는 최소 193곳의 초·중등학교에서 18만 7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총격 사건을 겪었다.
하지만 총기 제조업체와 로비스트들에게 미국은 병든 것이 아니라 정상 작동 중이다. 총기를 소유하려는 욕망은 공포와 좌절감, 미국 자본주의의 병폐에서 자라나는 환멸과 절망에 의해 끊임없이 강화된다. 2021년에 한 총기 판매원은 이렇게 말했다. “총기 사업은 술 사업과 똑같다. 시절이 좋을 때는 꽤 잘나가고, 시절이 어려울 때는 죽여주게 잘나간다.”
시절은 10여 년 이상 어려웠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때문에 더 어려워졌다. 1990년대 이래 총기 사건은 증가했다. 갈수록 살상력이 높은 총기를 구하기 쉬워진 데다가 그런 무기를 제조해서 득을 보는 자들, 그런 자들을 대변하는 로비 단체들, 인종차별과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인들이 총기 사건의 증가를 부추겼다.
콜럼바인 고교에서 총기 난사로 13명이 사망했을 때,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32명, 2012년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26명이 사망했을 때도 사람들은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우파 언론인 댄 하지스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보면, 샌디 훅 사건은 미국의 총기 규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것이 감당할 만한 일이라고 미국이 판단했으니, 논쟁은 끝난 것이다.” 텍사스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이를 다시 확인해 주는 듯하다. 불과 3일 후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와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총기 옹호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 연례 총회에서 연설했다. 총회 장소인 휴스턴에서 유밸디까지는 300마일[약 480킬로미터]도 안 된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때는 사건의 충격이 2000년 미국 대선 표심을 술렁이게 했다. 총기 규제 강화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한 NRA는 중견 배우 찰턴 헤스턴을 앞세워 대선 경합주 도시 16곳을 순회하며 조지 부시 지지를 호소했다. 헤스턴의 요란스런 NRA 집회들은 트럼프의 격앙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집회의 선례가 됐다. 참가자들은 “앨 고어는 공산당 쓰레기” 등이 적힌 팻말을 들었고[앨 고어는 당시 부시와 경합한 민주당 후보였다], 민주당원들을 목매달자느니, 그들을 두들겨 팰 무리를 꾸리자느니 하고 떠들어댔다.
NRA는 기금 모금 만찬을 열어 20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모금해 부시의 선거운동에 지원했다. NRA 부회장 케인 로빈슨은 부시의 대선 승리에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우리의 본부로 만들 대통령이 당선했다.”
2001년 1월 부시 취임 당시, 미국 총기 산업은 매년 약 150만 정의 소총을 판매했다. 이후 9·11 공격이 벌어지고, 이라크 전쟁이 개전하고, 이슬람 혐오가 확산되고, 부시 임기가 끝날 무렵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AR-15 돌격소총이 매일 7000정 가까이 팔렸다. 군용 화기는 애국심의 상징이자 남성적 권위,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이 됐다. NRA와 전미사격스포츠재단NSSR은 막대한 수익을 올릴 기회를 포착했다. 2004년에는 1994년에 도입된 반자동 돌격 소총에 대한 판매 제한이 해제돼 수익성이 높은 새 시장이 생겨났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하자 총기 로비 단체들은 대응에 나섰다. 음모론을 조장하고 인종차별과 공포를 부추기는 캠페인을 벌였다. [오바마 임기 첫해인] 2008년에 800만 정 미만이었던 총기 판매량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에 1600만 정 이상으로 급증했다. 오바마 첫 임기 4년 동안 총기 판매량은 4300만 정에 이르렀고(증가율은 무려 52퍼센트), 300만 명이었던 NRA 회원 수는 500만 명으로 늘었다.
대형 소매업체들은 총기 판매가 늘어나는 것에 주목했다.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총기는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 총포상과 소수의 스포츠 용품 지방 프랜차이즈 점포에서 판매됐다. “오바마 호황” 동안 총기 판매가 빠르게 늘자, 미국의 대규모 소매 체인들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마트들은 지점 수백 곳에서 총기 매장을 신설하거나 확장했다.
2016년 오바마 퇴임 후에도 총기 판매는 전혀 줄지 않았다. 총기 제조업자들에게 트럼프는 최상의 총기 판매원이었다. NRA는 재빨리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선거 자금으로 3000만 달러[약 350억 원]를 기부했다.(비공식 기부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NRA는 경합주들에서 표적 광고를 냈다. 무기가 없는 백인 여성이 침실에 혼자 있다가 침입자를 보고 공포에 질리는 내용이었다. 그 광고는 이렇게 촉구한다. “힐러리가 당신의 안전을 전화기에 내맡기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트럼프와 총기 로비 단체들은 힘을 합쳐 인종차별적·국수주의적 공포를 조장했다. 언론인 엘리엇 우즈는 2018년 4월에 쓴 기사 “공포: 오늘날 NRA가 미국에서 총기를 파는 법”에서 NRA의 전략을 개괄한다. “1990년대 이래 NRA는 백인 미국인들 사이에서 피부색이 어두운 동료 시민들에 대한 공포와, 좌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총을 빼앗으려 한다는 피해망상을 매우 성공적으로 조장했다.”
2020년 중반, 트럼프가 승인한 인종차별과 증오는 극심한 고통을 낳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결합돼 엄청난 총기 판매 매출로 이어졌다. 총기는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일 때 가장 잘 팔린다. 총이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기록된 열 개의 날 중 다섯은 팬데믹 때문에 전 세계가 멈췄던 2020년 3월에 속했다. 3월 20일에는 무려 20만 1308정이 팔렸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일일 판매량이다. 월간 판매량으로 봐도 2020년 3월 동안 약 240만 정이 팔려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인종차별적 피해망상을 조장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대규모 총격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총기 판매량은 급증했고, 폭력과 체계적이고 초법적인 자경단 활동이 무섭게 늘어났다.
총기 로비보다 더 깊은 뿌리
미국의 총기 로비는 막강하지만, 총기 문제는 단지 그들의 책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훨씬 더 깊은 뿌리는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다. 역사가 록샌 던바-오티즈는 저서 《장전 완료: 수정헌법 2조 역사 파헤치기》에서 수정헌법 2조와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둘러싼 신화를 깨트렸다.
1791년에 통과된 수정헌법 2조는 소속 없는 민병대들과 정착민들이 원주민 땅을 침략하는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할 수 있게 했다. 1600년대에 북아메리카에 노예 제도가 도입되자, 원주민의 땅을 정복했던 정착민 민병대는 이제 노예 감시자로 용도가 바뀌었다.
“무기를 소지할 권리”는 언제나 토지 강탈이나 노예제와 관련 있었고, 학살과 대량 총기 살인은 처음부터 미국 사회의 특징이었다. 던바-오티즈는 이렇게 썼다. “미국은 정복지 위에서, 노예제의 형태를 한 자본(그래서 ‘동산動産 노예’라는 표현이 쓰였다)을 통해 세워졌다. 이는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예외적이었던 것으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적 총기 산업은 근대적 기업의 최초 성공 사례의 하나였다. 오늘날의 총기 확산과 총기 폭력은 그 유산의 일부다.”
여러 세기 동안 미국의 모든 흑인은(자유민이든 노예든) 대부분의 주에서 총기 소유가 금지됐다. 그러나 1861~1865년 미국 남북전쟁 기간에 흑인 군인 약 20만 명이 총기 사용법을 배웠고, 많은 수가 소총을 소지한 채 제대했다. 1865년 전쟁 직후에 남부 주州 의원들은 “흑인 법령”을 시행해 해방 노예들의 총기 소지를 불법화했다.
1865년 인종차별 조직 ‘큐 클럭스 클랜’KKK이 설립됐을 때, 그 조직의 주요 목표는 흑인의 집을 습격해 무기를 압수하고 흑인 사회를 공포에 떨게 해서 흑인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이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위협하려고 소지한 총기는 남부연합기만큼이나 강력한 정치적·인종차별적 상징이 됐다.
1871년에 설립된 NRA는 총기 소지 허가증 제도를 도입하라고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런 제도를 통해 이들은 총기 소지를 “적합하다”고 간주되는 자들로 제한하려 했다. 물론, 여기서 “적합한” 자는 백인이었다. 1956년 흑인 평등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집에서 폭탄이 터진 뒤 킹이 총기 소지 허가증을 신청하자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당국은 발급을 거부했다.
우파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총기 규제를 지지한다. 1964년에 맬컴 엑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종차별에 저항하자고 촉구하며 M1 카빈 소총을 들고 사진을 찍었을 때, 우파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무기 소지 권리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1967년에 흑표범당이 캘리포니아주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무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훗날 대통령이 되는 공화당원 로널드 레이건은 재빨리 총기 소지 금지를 승인했다.
이듬해 킹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고 소요가 미국 북부 도시들을 휩쓸었을 때, NRA는 도심에서 총기 허가제를 도입하라는 운동을 벌였다. 1968년 제정된 총기규제법은 총기가 아니라 흑인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었다. 오늘날 NRA는 총기 규제가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이 맞다면, 그것은 NRA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총기 로비와 무기 제조업계, 총기 소유 이데올로기는 세계 최강 제국주의 국가라는 미국의 위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치인들은 미국 국방부와 무기 산업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열렬히 지지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이며, 전 세계 무기의 거의 40퍼센트를 미국 기업들이 생산한다.
미국은 1776년 독립 이후 10년에 한 번꼴로 전쟁을 벌였다. 그때마다 미국은 민주주의·문명·공공선을 이룩한다고 주장했다. 미군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150만~350만 명 사이로 추산된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00만 명 이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년에 걸친 서방의 점령으로 약 7만 5000명이 사망했다. 한 좌파 신문은 이렇게 논평했다. “자국민을 끔찍한 방식으로 억압하는 국가는 많다. 그러나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보다 더 위험하고 반민주적이며 살인적인 국가는 없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위상을 유지하려고 연간 9000억 달러[약 1127조 원]가 넘는 군비를 지출한다. 매년 미국인 한 명당 2000달러[약 250만 원]를 군대에 지불하는 꼴이다. 이에 비해, 중국의 연간 군비 지출은 3000억 달러[약 376조 원]에 못 미친다. 미국은 사실 군비 지출 2~8위 7개국의 군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군비를 지출한다. 2020년 기준으로 1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 국방부에 고용돼 있다. 신병들은 군대에 들어가면 모험과 교육, 고귀한 목적, 가족같은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짓 약속에 이끌리며, 경제적으로 낙후한 곳에 살다가 등 떠밀리다시피 입대하기도 한다.
전쟁 준비는 미국 경제·사회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공립학교 체계 안으로 침투하는 모병관들과 정교한 홍보 수단, 군대를 미화하는 비디오 게임과 영화들, 군대에 친화적인 논조의 〈폭스뉴스〉 같은 매체들이 군대를 홍보한다. 언론인 닉 터스는 저서 《군산 복합체: 군대는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침략하는가》에서 이러한 관계들을 연구했다. 이 책에서 터스는 국방부가 할리우드나 ‘마블 코믹스’ 등의 출판 기업과 어떻게 협력하고,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친구를 맺고, 군대의 이해관계가 대학의 과학 연구에 어떻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힌다.
언론인 제임스 캐럴은 군대가 이라크 전쟁 동안 공적 생활에서 수행한 구실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진술을 통한 젊은 전사들에 대한 찬양, 석방된 미군 포로에 대한 신화화, 영웅에 대한 제의로서 치뤄지는 전사자 장례식, 이 모든 것들은 군복 입은 남녀를 조악하게 소재로 써먹는다는 특성을 띤다. 애초 미심쩍은 상황에서 전쟁을 강요받은 그들은 이제 사후 정당화의 핵심 수단으로 신화화된다. 마치,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를 없애거나 이라크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에 갔던 것처럼 말이다. 전쟁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셈이다.”
총기 폭력은 식민지 정복과 노예 제도의 유산이며, 인종차별과 제국주의가 미국 사회의 모든 곳에 스며드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이는 소외와 고통에 의해 더 심화된다. 미국은 불평등하기로 손꼽히는 사회다. 상위 1퍼센트가 전체 부의 약 20퍼센트를 소유하고, 상위 0.1퍼센트가 차지하는 부는 하위 90퍼센트와 거의 같다.
이 수치 너머에 있는 인간의 고통과 절망은 조기 사망률로 나타난다. 미국의 자살률은 지난 17년 동안 30퍼센트 늘었다. 2020년에는 미국인 4만 6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들은 전체 총기 관련 사망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약물 중독자 비율도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미국의 약물 오남용 사망률은 10만 명당 18.75명으로 세계 1위다. 세계 평균은 10만 명당 2.08명이다. 미국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중독이 급속히 확산돼 2020년 5월에서 2021년 4월까지 10만 300명이 넘는 미국인이 사망했다.
미국 국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폭력에 기대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역겨운 허상을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경찰을 군사화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투옥한다. 오늘날 미국의 수감자 수는 200만 명에 달한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5퍼센트이지만 미국의 수감자는 전 세계 수감자의 25퍼센트를 차지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우파 총기광들에 반대한다고 해서 그저 민주당을 응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어떤 총기(와 총기 사용자)를 단속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뿐, 폭력의 근본 원인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총기 소지와 관련된 형량을 늘리고 “거리에서 총을 몰아내자”며 공세적인 치안 전략을 펴는 것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금속 탐지기를 설치하고 불심 검문(그러나 의심의 대상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을 늘리는 등 학교를 감옥처럼 만드는 보안 조처들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경찰은 총기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찰 자신이 문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권데이터분석그룹HRDAG의 추산에 따르면 낯선 사람에 의한 살인 중 3분의 1이 경찰관에 의한 것이며, 전체 피살자의 약 10퍼센트가 경찰에게 목숨을 잃었다. 정말이지 경찰은 자신들의 총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총기 제조업체가 누리는 특별한 법적 보호는 폐지돼야 한다. 미국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총기 폭력의 원인과 결과에 대처하는 빈곤 퇴치, 보건 정책들이다. 총기 폭력과 그 피해는 의료 서비스, 빈곤, 전쟁, 실업, 가정 폭력, 서열화된 학교 제도, 불안정한 일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총기 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편적 무상 의료, 국방 예산 대폭 삭감, 경찰 예산 삭감 같은 광범한 사회 정의 요구가 실현돼야 한다.
체계적인 부정의와 불평등은 절망을 낳을 수도 있지만 저항을 촉발하기도 한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보여 줬듯, 미국 지배자들은 탄압에 기대어 대중을 예속시킬 수 없다. 미국이 비대한 군사 기구로 베트남·아프가니스탄에서 승리할 수 없었듯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희망으로 절망에 맞서고, 집단적 조직, 연대와 저항에 기반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총기 폭력의 종식을 요구하는 모든 이들과 뜻을 같이하며, 국가 폭력과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자본주의를 번성케 하는 은폐된 사회적 살인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풍요와 안정, 삶의 충만을 가져다준다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헛된 약속을 이르는 또 다른 말일 뿐이다. 텍사스에서든, 바그다드에서든, 카불에서든 아이들이 이유 없이 목숨을 빼앗기는 것만큼이나 이 병든 체제를 타도해야 할 시급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MARX21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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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ox, Judy 2022, ‘The kids will die’ — the politics of gun violence in the US, Socialist Worker, (Posted on 3rd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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