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란 무엇인가?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활동가 주디 콕스가 지난해(2022년) 7월 런던대학교에서 한 강연과 정리 발언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대괄호([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삽입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몇 가지 일반적인 점들을 먼저 짚고 싶습니다.
제국주의 이론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는 우리 전통의 제국주의론이 숱한 검증 대결에서 거듭 이겨 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론에 반대하는 우파나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제국주의가 끝났고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체제가 변화해서 제국주의는 이제 문제가 아니게 됐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런 주장들은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지는 현실과 충돌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전통의 제국주의론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검증을 이겨내 왔음을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둘째, 우리의 전통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분석에 근거하고 있지만, 동시에 후대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재능과 통찰력, 헌신적인 기여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제국주의론의 토대를 놓은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였지만, 두 사람이 제시한 이론의 뼈대를 가져와 그 핵심 원리를 고수하면서도 변화하는 세계에 맞게 살을 붙인 것은 레닌·룩셈부르크·부하린이었고, 우리 시대에 와서는 크리스 하먼과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은 사람들이 그런 작업을 했습니다.
셋째, 제국주의론은 우리의 지적 무기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무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파악하고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국주의 이론을 절대적으로 중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국주의론은 편리한 점검 항목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다섯 가지 특징이 제국주의의 기준인데, 이 나라는 모두 해당하네? 그럼 제국주의로군. 저 나라에는 몇 가지가 빠져 있네? 그럼 아류 제국주의이거나 민족해방 투쟁이겠구만.” 제국주의론은 각 나라의 세력 관계가 어떻고 어떤 정책을 펴는지 등 모든 상황을 실사구시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을 편리한 점검 항목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국주의론은 우리가 제국주의 열강의 편으로 이끌리는 것을 막고,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원칙을 놓치지 않게 해 주는 이론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 전쟁은 종류가 완전히 다르고, 과거와 달리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해방 전쟁, 민주주의를 지키는 전쟁, 사람들을 구하는 전쟁이야” 하고 주장하는 폴 메이슨[영국의 노동당 인사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호전성과 서구 민주주의의 진보성 등을 이유로 러시아에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같은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을 막아 주는 거죠.
부유한 강대국들이 토착 원주민을 살육하고, 노예로 삼고, 그들의 부를 빼앗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서 식량을 털어간 오래된 끔찍한 역사가 있고, 그 유산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1914년 영국 제국의 지도입니다.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했죠. 위대한 차티스트 운동 지도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어니스트 존스는 “피가 마르지 않는” 제국이라고 했죠. 아주 악랄하고 잔혹한 제국이었고, “식민주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국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하지만 오늘 제가 설명하려는 제국주의는 국가 간 불평등이나 원주민 학살·수탈을 일반적으로 묘사하는 개념이 아니라, 최근 150년 동안에 나타난 독특한 현상을 말합니다.
이 제국주의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대 자본들, 즉 이윤 획득을 위해 움직이는 거대 기업들의 경제적 경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민 국가들의 지정학적 경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지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빌 게이츠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전화해서 “어디어디를 폭격해 주세요” 하고 요청해서 미국의 폭격이 이뤄지는 게 아니죠.
국가와 자본은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국가는 그저 대자본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고, 대자본도 국가를 자신들의 하인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결국 그 둘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회에서 전쟁은 예외적 일탈이 아닌 것입니다.
지구상 대부분의 지역이 대부분의 기간에 평화롭고 무사한 생활을 누리다가 가끔씩 전쟁이 터져서 무사태평이 깨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하고, 인류가 보유한 자산의 상당 부분을 살상 기술 개발과 무기에 씁니다. 실제로 사용된다면 지구를 400번이나 날려 버릴 만큼 강력한 무기들이죠. 끊임없는 전쟁은 자본주의의 불가결한 특징입니다. 안타깝지만 자본주의에서 이는 일탈이 아니라 일상입니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맞서는 저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을 팔 사람을 만들어 낸다”던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국제적 확산은 국제적 수준에서 제국주의의 무덤을 팔 사람들을 만들어 냅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서 벌어진 반反제국주의 운동들이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커다란 타격을 주기도 하죠. 베트남 전쟁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등이 미국의 침공에 맞서 벌인 영웅적 투쟁은 미국 국내 정치를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을 낳고, 제국주의는 국제적 저항을 낳습니다.
지금까지가 서론이었고, 제국주의 이론의 핵심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제국주의론은 마르크스의 분석을 바탕으로 합니다. 마르크스가 이론을 발전시키던 1840~1860년대는 인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또,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국을 떠나고, 중국에서 아편 전쟁이 벌어지고,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쟁탈전을 벌이며 아프리카인들을 굶주리게 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굶어 죽은 사람이 속출한 것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비싼 값을 쳐주는 곳으로 곡물을 수탈해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상세한 제국주의론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경쟁에 의해 돌아간다는 점을 이해했고 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부르주아지는 시장을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욕구에 이끌려 전 지구를 돌아다닌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곳에 둥지를 틀고, 정착하고, 모든 곳과 연관을 맺어야 한다.” 그들은 한 나라 안에 그냥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국제적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시장과 이윤,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통찰이 나중에 제국주의론으로 발전하는 핵심 사상이 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역동적인 체제이고 끝없이 경쟁과 혁신을 해야 하며, 결코 안정되거나 평화로울 수 없고, 언제나 성장을 추구하며, 그 핵심에는 착취가 있고 세계 어디서든 노동계급을 착취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은 20세기 초에 레닌과 부하린이 발전시켰고 룩셈부르크도 어느 정도 기여했습니다. 그 이론은 당시 강대국들의 아프리카 쟁탈전과 제1차세계대전으로 귀결된 무자비한 경쟁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레닌 등이 분석했던 세계의 모습입니다.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나눠 먹었고,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정복으로 많은 식민지가 만들어졌죠.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국주의론을 개발한 것입니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한 상황에서 처참하게 죽어나가던 당시에 제기된 물음 하나는 “이 전쟁은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쟁이 너무도 끔찍했기에 이 전쟁을 끝으로 전쟁 자체가 사라져야 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절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레닌과 부하린은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을 살펴보고는 ‘그럴 리 없다’고 답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은 결코 마지막 전쟁일 수 없고,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고질적 현상이라고 했죠.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했습니다. 인류사에서 국가가 등장한 이래 제국주의가 늘 있었다는 관점을 거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로마 제국, 몽골 제국,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제국들을 모두 제국주의로 뭉뚱그리지만,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난 150년 사이에 등장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단지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 보는 견해를 거부했습니다. 비록 제국주의에는 그런 측면이 있지만 말입니다. 제국주의를 부유한 열강의 식민지 정착과 토착 원주민 학살로만 보는 견해도 거부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제국주의의 한 측면입니다. 그런 일들은 계급 사회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서 거듭 벌어져 왔지만,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특정 발전 단계에서 등장한다고 레닌과 부하린은 주장했습니다.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정책으로 보는 견해도 거부했습니다. 제국주의라는 것은 각국 정부가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특정한 발전 단계로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제국주의를 등장시킨 자본주의의 여러 변화들을 지목했습니다.
제국주의를 등장시킨 변화들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날 때 제국주의는 세계의 지배적 특징이 됩니다.
먼저, 자본의 집적과 집중입니다.
경제 위기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은행이 다른 은행들을 인수하고 큰 기업이 작은 기업들을 흡수하면서 갈수록 기업들의 덩치가 커지고 그들에게 자본이 집중됩니다. 그 결과, 거대한 한 기업이 경제의 한 부문을 독점하게 됩니다.
그런 기업·은행을 두고 흔히 ‘대마불사’라고 하죠. 이들이 위기에 빠지면, 평상시 자유 시장을 예찬하던 자들도 아낌없이 돈을 퍼주며 구해 주기 때문이죠.
레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국주의를 한 마디로 요약해야 한다면, 독점 단계의 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장 간단한 설명인데, 저는 이보다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기업 합병으로 거대 기업이 등장하면서 일국적 규모에서는 경쟁이 줄어들지만, 국제적으로는 경쟁이 더 격화합니다. 레닌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자본주의가 독점 단계와 금융 자본으로[은행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단계로 — 주디 콕스] 접어든 것은, 세계 분할을 둘러싼 쟁투의 격화와 연관성이 있다.” 이처럼 한 나라 안에서 은행이나 타이어 기업, 군수 기업의 개수가 줄더라도, 국제적 규모에서는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것입니다.
세계적 쟁투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자, 제국주의가 출현하는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생산이 국제화하고 투자가 세계적 규모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자본들은 자신의 국민 국가 안에서는 더 발전할 수 없게 되고, 이윤 실현 등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19세기 말이 되면 자본과 국가의 융합이 나타납니다. 경쟁이 세계적 규모에서 벌어지면 기업들은 국가를 필요로 합니다.
영국에서 기업을 하나 운영하는데 독일이나 미국에서 다른 기업과 경쟁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국제적 경쟁 무대에서 그 기업의 이익을 지켜 줄 국가가 필요해집니다. 한편, 국가도 무기를 개발하거나 구입하고, 세금을 거둬 국가 운영 비용을 충당하려면 기업들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한편으로는 거대한 기업들이 자신을 지켜 줄 국민 국가를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국가도 자국의 거대 기업이 번창하기를 바라고 그럴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씁니다.
이런 상호 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세계 시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경쟁에 그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하에서는 국민 국가들의 군사적·영토적 경쟁과 각 국민 국가에 기반을 둔 기업들의 경쟁이 함께 벌어집니다.
그런데 경제적 경쟁이 중요하다고 해서 이를 조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제국주의 전쟁과 정복을 석유나 원자재를 노린 것으로 설명합니다. 뛰어난 [노동당] 좌파 지도자였던 고故 토니 벤은 포클랜드 전쟁[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전쟁]이 포클랜드 섬 연안에 매장된 석유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나름대로 경제적이고 유물론적인 설명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죠.
물론 전쟁의 동기가 경제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핵심은 지정학적 경쟁입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어떤 행동을 막으려고 벌이는 전쟁인 것이죠. 전쟁은 그런 점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위한 것일 때가 많고, 그런 경쟁의 근저에 경제적 경쟁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쟁은 단지 우크라이나의 곡창 지대나 쿠바의 사탕수수, 칠레의 구리 광산 같은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경제적 동기뿐 아니라 정치적 동기에 의해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모순과 긴장이 있습니다.
때때로 제국주의 강대국은 세계에 개입할 자신의 힘을 다시 각인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미국 제국주의가 특히 그렇죠. 그들은 꼭 석유 때문이 아니어도,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 지역의 지배자는 나다, 누가 감히 군사력으로 나에게 맞설 테냐” 하고 천명하려고 전쟁을 벌입니다.
불균등 발전
제국주의가 등장하게 되는 세 번째 변화는 불균등 발전입니다.
불균등 발전이란 영국과 같은 몇몇 제국주의 국가가 남들보다 먼저 발전을 이루고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언제나 그들을 따라잡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체제는 매우 불안정하고 쟁투가 끊이지 않습니다. 예컨대 제1차세계대전은 후발 주자인 독일이 자기 제국의 몫을 확보하고 영국과 경쟁하려 하면서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를 알려면 이런 불균등 발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한 제국주의 국가가 먼저 무역 거점을 마련하거나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면 다른 제국주의 국가도 이내 자신의 무역 거점과 요충지를 확보하려 하고 그래서 이 체제는 결코 안정적일 수 없습니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 생산의 국제화, 불균등 발전 — 이 세 변화가 제국주의의 등장을 가져왔습니다.
제국주의 시대 구분
현실에서 제국주의는 세 차례의 국면 변화를 보였습니다. 우리 이론의 핵심 사항은 변하지 않았고 역사의 검증을 통과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주의가 변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1870년대부터 1945년까지는 고전적 제국주의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쟁탈전과 영국의 인도 지배가 벌어진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가 있습니다. 인도의 경제학자 웃사 파트나익은 1765~1938년에 인도에서 영국으로 이전된 부가 45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그렇게 한 나라의 자원을 약탈한 것이죠.
하지만 모든 제국이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식민지가 꼭 본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 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군사적·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식민지를 세우기도 했죠. 그래서 1876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인들이 90퍼센트를 다스리던 아프리카 대륙이 1900년이 되면 90퍼센트가 유럽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국주의가 이렇게 물밀듯 팽창하는 것을 두고 레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 시기의 특징은 지구의 최종적 분할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최종적’이라는 말은 다른 방식의 분할이 더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의 식민주의 정책이 지구상의 미정복 영토를 모조리 정복했다는 뜻이다. 사상 처음으로 세계가 남김없이 분할됐고, 미래에는 오직 재분할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들은 세계를 다시 분할해 자신의 몫을 늘리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그 다음 국면은 냉전기의 초강대국 제국주의였습니다.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정치적으로 양분됐고, 모두가 양자택일을 강요받았죠. 이 시기에는 전쟁과 불안정이 체제의 주변부에서 주로 나타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시기의 미국 역사를 보면, 미국은 소련에 맞서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아무리 잔혹한 독재자라도 기꺼이 지원하고 뒤를 봐 줬습니다. 좌파 정부를 전복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갓 독립한 나라들에서 거대한 운동과 급진화가 나타났습니다. 콩고의 파트리스 루뭄바 같은 사람들이 당시의 영감과 희망을 대표했습니다. [미국 흑인 평등권 운동의 지도자들인] 마틴 루터 킹이나 마야 안젤루도 그를 만나러 갔을 정도입니다. 당시 콩고는 흑인들이 마침내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루뭄바는 1960년에 독립한 콩고에서 초대 총리로 선출됐습니다. 그런데 그가 좌파적 언사를 하고 실질적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하자 옛 식민 지배 세력이 그를 탄압했습니다. 결국 루뭄바는 벨기에 장교들의 감독하에서 총살됐습니다. 벨기에가 콩고에서 자행한 일들은 식민지 시대를 통틀어 가장 극악무도한 축에 드는데, 오늘 소개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만 적잖은 분들이 그에 관해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콩고가 엄연히 독립했는데도 벨기에는 옛 식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루뭄바를 총살한 부대는 아니나다를까 미국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970년 칠레 대선에서 당선한 좌파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구리 산업을 국유화했습니다. 구리 산업만 국유화했을 뿐 더 나아가 은행을 국유화하거나 미국인들을 내쫓지도 않았지만, 미국은 그것만으로도 치를 떨었습니다. 미국이 지원을 끊자 아옌데는 소련에 손을 내밀었고, 그러자 미국은 1973년 칠레에서 폭격과 더러운 쿠데타를 지원했습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일어난 9·11 공격과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9·11입니다.
전쟁 범죄자인 헨리 키신저는 꽤나 노골적으로 칠레에서 벌이려는 일에 관해 말하고 다녔습니다. 키신저는 칠레에서 쿠데타가 필요하다고 했고, 실제로 그 쿠데타를 후원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정말이지 한도 끝도 없이 들 수 있습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미국은 1957~1965년 동안 인구 밀집 지역들을 융단 폭격했습니다. 미국은 캄보디아에 폭탄 50만 톤을 쏟아부었지만, 그렇게 해서 성취한 것은 크메르 루주의 승리를 잠시 지연시키는 것뿐이었죠. 미국은 그들의 집권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 사진은 헨리 키신저가 캄보디아에 ‘평화와 민주주의’를 선사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물론, 냉전의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련은 1956년에 헝가리를 침공했고, 나중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아프가니스탄에서 저항을 억누르고 점령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 후 소련은 미국과의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고 그것으로 제국주의의 두 번째 국면이 끝났습니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오늘날 우리는 냉전 이후의 제국주의 국면에 있습니다.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적 패권을 공고히 하려고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1991년] 조지 부시가 “신세계 질서”를 천명했고,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죠.
이 시기에 미국이 벌인 온갖 폭격과 침공은 ‘베트남 신드롬’을 떨치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굴욕적 패배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은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저항이 본국에서의 저항과 맞물린 사례였죠. 이런 패배와 저항으로 미국은 한동안 외국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기를 꺼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또, 군사적 경쟁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실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더는 초강대국이 아니었습니다. 독일과 일본이 미국 경제를 추격했고, 모두 알다시피 오늘날에는 중국이 아주 만만찮은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류 제국주의들이 부상하고, 더 파편화되고 복합적이고 위기에 취약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전쟁, 점령, 기후 변화 등 각종 문제들이 겹치며 서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서 초강대국,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 했지만 그 결과는 재앙이었습니다.
미국은 어마어마한 양의 무기를 소비하고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많은 군비를 지출하는 나라이지만, 제국주의적 프로젝트에서 여러 번 실패를 맛봤습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예멘에서도 실패했습니다.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을 석기 시대로 돌려 놓을 만큼 마구 폭격했는데도 말입니다.
한편 미국의 동맹 블록 바깥에 있는 중국이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로 부상했습니다. 중국은 미국을 아시아에서 밀어내고 태평양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지정학적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푸틴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서방의 결의야말로 중국의 야심을 길들일 최고의 수단이다.” 이런 전략을 개발하는 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을 연결해서 사고합니다. 나토를 강화하는 것은 푸틴을 억제하기 위함이고, 이는 다시 중국에 “까불지 마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제국주의에서는 사태들이 서로를 부채질하는 일이 늘 벌어집니다. 한 나라를 상대로 벌이는 일이 다른 나라에게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까불지 마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죠.
아무튼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려고 바이든은 트럼프가 시작한 대중對中 무역 전쟁을 이어 가면서 중동 등지에서 ‘끝없는 전쟁’을 그만 끝내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드러났죠. 아프가니스탄을 실컷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던 미군이 철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끝내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5월 16일에 미국은 소말리아에 다시 500명을 파병하겠다고 조용히 발표했습니다. 소말리아의 최근 상황을 알거나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미국의 소말리아 개입은 결코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이든은 ‘끝없는 전쟁’의 종결을 선언했지만, 미국의 입지를 다지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 다시 전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쟁에서 발을 빼려 하지만 다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종의 대리전으로, 여기서 미국은 전 세계를 자신의 지도하에 결집시키려 합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날 동유럽은 냉전의 절정기 이래 가장 많은 군사력이 집결해 있다.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들이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서 다시금 대치하고 있다.”
그간 돈이 없다던 영국 정부는 갑자기 돈이 생겨나기라도 했는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20억 파운드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냉전 시기에 일어난 일이 거의 그대로 재현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영국 정부는 나머지 일반 대중에게 이롭게 쓸 생각이 없는 막대한 자원을 제국주의와 전쟁을 위해서 아낌없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실천의 길잡이
지난 몇 년 동안 꽤나 명석한 좌파 이론가들 몇몇이 이런 주장을 폈습니다. ‘자본주의는 사실 제국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불합리하지 않은가? 테스코[영국의 다국적 유통업체] 사장 입장이 돼서 생각해 보면, 도대체 뭐하러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는 데 많은 돈을 쓴다는 말인가?’
물론, 이는 이미 1914년에 카를 카우츠키가 했던 종류의 얘기입니다. 카우츠키는 우리가 제국주의를 뛰어 넘은 “초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했죠. 다만 제1차세계대전이 개전하는 1914년에 그런 주장을 폈으니 설득력을 갖는 데 약간 문제가 있었죠. 그러나 이런 류의 주장들은 오늘날에도 나옵니다.
카우츠키의 논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분쟁은 경제를 위협하기 때문에 “선견지명이 있는 자본가들은 동료 자본가에게 호소해야 한다. 만국의 자본가여 단결하라!”
하지만 자본가들은 1914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단 한 번도 ‘단결’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은 공상입니다. 지배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쟁의 채찍질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세계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동구권의 몰락으로 ‘역사의 종말’이 도래하고 세계화로 인해 군국주의와 분쟁은 과거지사가 됐다면서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도대체 왜 전쟁을 벌인단 말인가. 민족주의도, 국민 국가도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민족주의와 국민국가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역사의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제국이 제국주의를 대체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세계는 미국의 헤게모니와 법치, 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했죠.
그러나 이런 류의 이론들이 등장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전쟁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전쟁 앞에서 정치적으로 무장 해제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추악한 전쟁과 파괴를 낳는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제국주의론은 사태를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노리는 것이 석유인가? 곡창 지대인가? 설탕인가?” 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경제적 경쟁과 함께 군사적·지정학적 경쟁이 벌어지고, 그것들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봅니다. 전쟁과 갈등에는 경제적 동기뿐 아니라 정치적 동기도 있습니다.
또, 이데올로기와 명분도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봐야 합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면서 “여성 해방”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같은 “B-52 폭격기 페미니스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립스틱 페미니즘”을 전파하겠다고 떠들었지만, 지금 그런 말에 솔깃할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임신중지 금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또, 미국은 체계적으로 인종차별적인 국가기구와 경찰력, 그리고 유독 흑인만 감옥에 잡아넣는 이유에 관해 해명해야 하는 나라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도주의적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맞서야 합니다. 여성 해방,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말은 굉장히 솔깃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무장 해제되기 쉽습니다.
제국주의론의 의의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은 지배계급과 제국주의자들의 자기 정당화 이면에 있는 것을 보고,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정치적 경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갈등과 전쟁을 파악합니다.
제국주의론이 각 상황에 대한 신중한 분석을 대체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제국주의론은 이론적 접근법입니다.
제국주의는 오늘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의 군비 지출은 2022년에 90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그런 돈을 다른 데 쓴다면 무엇이 가능할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는 모든 미국인이 각자 군대에 2000달러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 중국의 국방비는 3000억 달러입니다. 물론 계속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미국의 3분의 1에 해당하죠. 미국의 군비 지출은 그다음으로 군비 지출이 많은 7개국의 군비 지출을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2020년에 134만 명의 미국인이 미국 국방부에 고용돼 있었습니다.
지구 전체로 보면 미국은 가장 많은 살상을 저지르는 국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대결하는 세력을 모두 무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 규모에서 봤을 때 주적이 미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전략은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전쟁이 자본주의에서 고질적인 것임을 압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에 이렇게 썼습니다:
“세계 평화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외교관들로 이뤄진 국제 재판소나 ‘군축’을 위한 외교 협정, 유럽 연방, 중부 유럽 관세 동맹, 민족 완충 국가와 같은 공상적이거나 본질적으로 반동적인 수단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 자본가 계급의 지배가 도전받지 않는 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전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제국주의는 저항을 부릅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패배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패배했고, 소말리아에서도 성공을 거둘 성싶지 않으며, 예멘에서도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희생자들을 지지할 뿐 아니라 다른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국제주의를 사회주의자들의 중요한 사명의 하나로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애국주의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우연한 사실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려는 주장에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국제주의는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1916년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썼습니다.
“역사 속에서 노동운동은 다음과 같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숱하게 직면했다. 애국주의를 받아들이고 ‘국민 방위’와 전쟁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주의를 위해 싸울 것인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 운명적 선택이 중요한 순간마다 역사의 향방을 결정했다.”
그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우리가 올바른 편에 서려면, 즉 제국주의와 전쟁의 편이 아니라 국제적 연대의 편에 서려면 제국주의론이 필요합니다.
주디 콕스의 정리
흥미로운 논점들을 많이 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발언자의 지적처럼 제국주의는 단지 시장을 노리거나 부를 수탈하는 것으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파악하기 까다로운 복잡한 현상입니다.
역사를 보면 영국이 인도를 수탈하고,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려고 전쟁을 벌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영국 기업들의 우크라이나 진출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20억 파운드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존슨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은 영국 기업들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마거릿 대처가 포클랜드 전쟁 때 그렇게 했죠. 이것은 주되게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동기입니다. 사실 그래서 더 추악한 일이기도 한데,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나 집권 연장 등을 위해서라면 많은 사람들의 죽음도 얼마든지 감수하려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전쟁이 부를 약탈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부유해서 침략당한 게 아닙니다. 소말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들이 침략 이전에 어느 정도의 생활 수준을 유지했고 제국주의가 그것을 파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은 제국주의자들이 노릴 만한 금이나 곡물이 나는 곳이 아닙니다.
예멘은 과거에 꽤 부유했던 나라이지만 예멘을 침략한 나라들은 자원을 노리고 침략한 게 아니었습니다. 지정학적 영향력을 키우고, 경쟁자의 부상을 막으려는 것이었죠.
물론 각국 정부와 지배계급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본 축적을 위한 조건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온갖 모순과 차질이 따릅니다.
한편, 인종차별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점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1940년대 벵골 대기근의 사진을 보여드리려다가 너무 참혹해서 차마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곡물을 실은 열차들은 굶주리는 인도인들을 그대로 지나쳐서 군 부대로 향했습니다. 또는 세르비아 등지로 향하기도 했는데, 당시 처칠이 그 나라들을 매수해 전쟁에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처칠은 각료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인도인들의 번식력은 토끼와 같기 때문에 인도인들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렇듯 억압받는 사람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인종차별은 언제나 제국주의의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19세기에 영국 페미니스트들은 영국이 인도 여성들을 사티[살아 있는 아내를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하는 힌두교의 악습]와 히잡에서 벗어나게 하고 해방시켜 준다면서 영국의 인도 지배를 정당화했습니다. 이런 인종차별적 주장은 숱하게 반복됐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대리전 성격에 대해서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분들이 자세히 다뤘으니 제가 다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만, 언제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봐야 하고, 각각의 운동에서 어떤 성격이 더 우세한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 무기를 지원받는다고 해서 언제나 그 사회나 그 국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와 자신의 염원을 일치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이 그런 사례죠.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젤린스키는 그렇지 않은 사례입니다.
매 제국주의의 국면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 무엇인지를 언제나 살펴 봐야 합니다. 냉전 시기에는 민족 해방이나 자치를 요구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소련 중 한 진영을 택해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선택이 사라졌죠. 대신 오늘날에는 미국의 지배냐, 아니면 알카에다나 다른 지역적 세력의 지배냐를 택해야 하죠.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의 마약 문제를 언급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저도 제국주의가 제국주의 국가의 일반 대중에게도 전혀 이롭지 않다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미국의 마약 중독, 자살률, 총기 살해 등의 문제는 끔찍합니다. 디트로이트를 직접 거닐어 보시면 이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단물과 시장 개방, 수탈’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싹 사라질 것입니다.
제국주의 국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도 그 제국주의에 지배당하는 나라의 대중과 마찬가지로 억압을 받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자국민을 투옥하는 국가입니다. 마약 문제는 그런 실태의 일부입니다.
제국주의를 꺾을 수 있다
두 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첫째는 미국이 그들의 부와 권세, 패권에도 불구하고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는데, 소모전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패배한 또 다른 원인은 베트남 현지의 저항과 미국 내에서 일어난 사회 운동이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제국주의는 혁명에 의해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 사례는 전쟁이 인간 본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1916년에 독일이나 이곳 영국에서 “주적은 국내에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투옥되기 일쑤였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카를 리프크네히트 모두 제1차세계대전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투옥됐습니다.
이들은 전쟁 초기에 사람들이 애국주의 광풍에 휩쓸려 전쟁에 자원하는 것을 보면서 크게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강요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자원해서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이에 관해 트로츠키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평상시 대중의 삶이 지독하게 무미건조하고 따분한데다 대중의 단절감과 고립감이 만연하다 보니, 노동계급 청년들은 영광스러운 제국주의적 모험에 동참해 전우들과 함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미개인들과 적군(독일인이든 야만적인 러시아인이든)을 죽이는 일에 자원했다.”
그런데 이렇게 전쟁에 자원했던 사람들이 3~4년 후에는 전쟁뿐 아니라 전쟁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전쟁뿐 아니라 그 전쟁과 모든 전쟁을 배양하는 체제 자체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1918년 한 여성 언론인은 헝가리의 노동절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몇 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 총을 겨누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어깨를 걸고 함께 행진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변화의 진정한 가능성이 보이면 사람들의 생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폭력적 본성을 타고날까요? 인간 사회에서 잉여가 생산돼 잉여를 두고 다툴 수 있게 되고 국가가 등장한 이래, 전쟁이 끊이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인류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도 꼭 참인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인간 본성은 인간이 속한 사회에 따라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의 영향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능동적으로 그 사회를 바꾸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가 결코 평화롭지 못하다고 제가 강조하는 이유는 그런 주장이 워낙 흔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에 사는] 우리는 현재로서는 폭격을 당할 일이 거의 없지만 상황은 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세계적 규모에서 보면 이 체제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늘 누군가가 폭격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연대는 정말 감동적이지만 같은 일을 겪는 예멘 난민들이 그만큼 조명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화가 나는 일입니다. 언론들은 세계를 온전하게 보여 주지 않고, “우리랑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옷을 입은 유럽인들이 시련을 겪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마치 소말리아나 예멘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덜 중요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 체제는 마치 평화를 가져다줄 것처럼 하다가도 “별안간 미치광이 사이코패스 독재자가 나타나 이러저러한 것들을 퍼뜨리려 한다”며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피상적인 변호론을 늘어놓습니다.
그에 맞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여기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우리에게 평화를 허락하지 않고 안전을 담보해 주지 않으며, 제국주의적 전쟁뿐 아니라 기후 위기, 경제 위기를 통해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 일들은 전혀 불가피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대안은 없다는 생각은 전혀 진실이 아닙니다.
제1차세계대전과 그 전쟁을 끝장낸 혁명들의 영감 어린 역사를 보면 룩셈부르크가 말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기로에서 우리의 선택은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지금부터 조직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지배자들 못지 않게 탄탄하게 조직되고 국제적이어야 합니다. 저들은 우리를 분열시키고, 착취하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하려 합니다. 세계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여기에 맞서기 위해 우리와 함께합시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