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 마크롱을 뒤흔들다: 프랑스 투쟁의 주요 장면들 *
1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에 따른 정치 위기가 깊어진 것 같은 객관적 요소뿐 아니라 핵심적인 주관적 요소가 있다. 대중적 반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 운동의 중요성과 교훈을 이해하는 것은 프랑스의 혁명가들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세계의 모든 혁명가에게 중요하다.
2023년 1월 이래로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선진국에서 벌어진 사건들 가운데 그 폭과 지속성이라는 면에서 혁명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5월 8일: 마크롱이 “진짜 프랑스” 앞에서 도망치다
2 그러나 올해 샹젤리제는 사상 처음으로 텅 비어 있었다. 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사람들에게 야유받지 않도록 경찰은 샹젤리제 거리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마르크스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53년 동독 봉기에 대한 스탈린주의 당국의 대응을 재치 있게 꼬집었던 풍자시를 연상시켰다.
5월 8일, 지난 40년 동안 그랬듯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샹젤리제를 거닐었다.6월 17일 봉기가 있은 후
작가연맹 서기장은
스탈린 가街에 유인물을 뿌렸다
그 내용은 인민이
정부의 신뢰를 저버렸으니
전보다 갑절로 노력해야만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럴 바에는
정부를 위해 말하건대
인민을 해산하고
새로 뽑는 게 더 낫지 않을까? 3
4 그러면서 “진짜 프랑스”는 질서가 회복돼 다시 일하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며 앞으로 자신은 그런 “진짜 프랑스”를 만나고 다니겠다고 했다. 5 그러자 “진짜 프랑스”가 즉각 반응했다. 마크롱이 가는 곳마다 에너지 노동자들은 전기를 끊었고 군중은 마크롱과 어떤 대화도 나누길 거부했다. 1주일 뒤에 마크롱은 “대중은 만나겠다”던 시도를 포기해야 했다. 장관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크롱과 장관들 괴롭히기는 “100일에 걸친 ‘즈불(무질서)’”이라고 불리며 일종의 전국적 게임이 돼, 그들을 괴롭히는 데에 참가한 시위대 규모 등을 점수화해서 지역별 순위를 날마다 공표하는 웹사이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6
그보다 3주 전, 새 연금법 제정으로 소요가 일어난 직후, 마크롱은 으레 그 오만한 태도로 [연금 개악은] 종결된 사안이라고 떠벌렸다.이렇듯 정부가 정당성 위기에 빠지고 전통적으로 정부를 구성했던 다른 정당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게 된 것은 지난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마크롱이 2017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배경에는 그전까지 권좌에 있던 프랑스의 주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의 몰락이 있다. 당시 보수 우파 정당들이 지리멸렬해 보인 것도 마크롱에게 도움이 됐다. 1년 전에 마크롱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당시 투표율은 기록적으로 낮았고, 마크롱은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무엇보다 마크롱에게 투표한 유권자 대부분은 파시스트 지도자 마린 르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 마크롱에 투표했다. 지금의 운동으로 인해 전통적 정당들의 해체 경향은 확연하게 빨라졌다. 연금법 공표 직전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이 그 법에 반대했다. 자신을 ‘피고용인’이라고 밝힌 응답자 사이에서는 반대가 10명 중 9명에 이르렀다.
연금법에 대한 불만은 수동적으로만 표출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지도 아래 빠르게 계급적 성격을 띠었다. 이 글을 쓰는 5월 말을 기준으로 13번에 걸친 ‘전국 행동의 날’이 있었는데, 수많은 이들이 행진하고 그 중 다수는 공식 파업 지침에 따라 참가했다. 그 중 두 번은 350만 명 가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시위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노동계급의 모든 부문이 동원됐다. 사례를 하나만 들자면 프랑스 남부 도시 알비에서는 1월 19일 첫 번째 전국 행동의 날에 참가자가 1만 5000명이었는데, 1월 31일과 3월 23일에는 2만 명 안팎으로 늘었고, 2월 16일에는 5만 5000명을 기록했다. 알비의 공식 인구는 불과 5만 명이다.
이처럼 거대한 대중적 반대에 직면하자 마크롱은 법 제정을 밀어부치려고 프랑스 헌법의 온갖 비민주적 수단을 동원했다. 의회가 연금법을 지지하리라 확신할 수 없었던 마크롱은 3월 16일에 헌법 49조를 발동해 의회 표결 없이 법이 제정되도록 했다. 헌법 49조 발동을 전환점으로 운동의 분노가 더 깊어졌다. 그 후 며칠 동안 자생적 시위가 우후죽순 벌어졌고 그와 함께 경찰 탄압도 확연하게 더 거세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 지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인구 대다수의 동의에 주되게 기대는 경향이 있다.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은 늘 존재하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는 대체로 드물다. 그러나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동의와 폭력 사이의 균형이 후자 쪽으로 크게 기울고 있다. 최근의 노동자 운동에 대한 국가의 대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연금법 제정 후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시위대 3만 명이 “거대 저수지”(축산업용수 공급을 위한 환경파괴적 저수지)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시위 금지령에도 아랑곳 않고 강행했다. 그러자 경찰은 각종 수류탄을 5000개 사용해 시위를 진압했고 200명이 다쳤다. 그 중 한 명은 지금까지도 위독한 상태다. 이후 정부는 시위를 조직한 단체 ‘지구의 봉기’를 강제 해산시키려 했지만 프랑스 전역에서 항의·연대 시위가 벌어져서 이는 좌절됐다. 이는 경찰을 향한 대중의 적개심과 국가기관 일반에 대한 불복종 분위기만 키웠다. 마크롱과 운동 간의 대결에 걸린 판돈을 이해하려면 마크롱 정부가 왜 연금을 공격하고 연금 공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 자본주의의 숙원이었던 연금 개악은 지난 30년 가까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시도됐다. 연금 개악은 신자유주의 공격의 핵심으로, 노동자 운동이 과거 쟁취하고 지금까지 지켜온 성과를 프랑스 자본주의가 빼앗으려 드는 것이다.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한 부의 재분배뿐 아니라 주간 노동시간 제한도 그런 성과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역대 정부가 연금 제도를 일괄적으로 개악하려고 들 때면 번번이 거대한 시위에 직면해 물러서야 했다. 1995년 12월 파업을 계기로 귀환한 대중 운동의 시대에도 이런 역학이 중요한 요소였다.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 신자유주의에 갈수록 적응한 탓에 전임 정부들은 노동자들이 연금 제도로 보장받던 것들을 부분적으로 훼손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마크롱은 연금 수령 연령을 64세로 늦추겠다는 대공세에 나섬으로써, 가장 온건한 노조 지도자도 수용할 수 없는 한계선을 넘었다. 지난 30년 동안 정부 공격에 동조해 온 자들조차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민주노동자총연맹CFDT 지도자들도 그런 경우에 속하는데, CFDT는 2개의 주요 노총 중 덜 전투적인 쪽이다.
마크롱의 목표는 이렇듯 분명했다. 새 [연금]법의 목표는 노조 저항을 촉발한 후에 저항과 노조를 박살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금법은 4월 15일에 제정됐지만 마크롱은 패배했다. 노조는 넉 달 전과 비교해 더 강력해졌고, 오랫동안 이어졌던 조합원 감소 및 현장 기반 약화 추세가 반전됐다. 이제 조합원들이 늘고 있고 경제의 새 부문들에서 노조가 세워지고 있다. 주로 여성·청년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무엇보다 운동이 여전히 건재한데, 지금도 계속되는 “100일에 걸친 즈불”뿐 아니라 5월 1일 250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금 운동이 자신의 한계를 직면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하에서 왜 그래야 하는지 다룰 것인데) 이는 운동 자체가 그럴 수준으로까지 판돈을 끌어올린 결과이다.
노조 지도자들에게는 승리, 운동은 교착 상태
4월 19일, 법 제정 나흘 뒤에 CFDT 사무총장이자 이 운동의 핵심 지도자라고 여겨지는 로랑 베르제는 [임기가 끝나는 6월에] 직책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자신의 노조가 전보다 더 강력해졌지만, 새로운 시기가 열리고 있고 자신은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노조들은 여러 노총으로 나뉘어 있는 만큼 1월에 모든 노조의 “공동전선”이 출범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이뤄지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출범한 “인터신디칼”이 운동의 지도부를 확고하게 장악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인터신디칼은 모든 노조의 지도자들을 모은 기구로, 가장 전투적인 노조 지도자부터 가장 온건한 노조 지도자까지 모두 이 기구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바로 이 기구에서 운동의 의제를 매주 결정했다.
노조 간의 단결은 분명 운동이 광범해지도록 한 요인 중 하나였다. 초기 동원이 성공을 거둔 것, 특히 첫 행동의 날 참가자 규모가 컸던 것이 이후의 폭발적 역학이 펼쳐진 기반이 됐다. 단일한 운동이 부상하자 노조 지도자들은 적어도 한동안은 정부에 맞서는 주요 정치적 반대파로 인식됐다(여론조사 결과).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데, 대표성의 장場이 제도권 정당들에서 사회운동 진영으로, 의회 민주주의에서 계급투쟁으로 옮겨진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노조 지도자들의 단결에는 물질적 토대가 있었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수반했다.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노조 관료들의 특수한 사회적 지위였다. 그들이 투쟁에 나선 것은 단지 노동계급이 공격받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CFDT는 연금 제도를 문제 삼는 논리를 수십 년 동안 지지해 왔다. 다른 노조 지도자들도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아무리 좋게 봐도) 순응해 왔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는 다른 것도 걸려 있었다. 노조 관료들이 국가 및 사장들과의 협상 테이블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들이 노동자들의 “대표자”로서 수행하는 구실이 부정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조 관료들은 운동의 수준 덕택에 그 구실을 다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앞서 베르제가 운동에 만족감을 나타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처럼, 단결한 노조 지도자들의 이데올로기는 체제 내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려는 데에서 생겨났다. 당연하지만 노조 지도자들은 혁명가들이 아닌 개혁주의자들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연금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할 전략만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그래서 3월 16일까지는 국회의원들이 반대 투표를 하도록 압박하는 전략, 4월 14일까지는 헌법위원회(연금법의 합헌성을 심사했다)를 압박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들은 잠시 동안이지만 4월 15일에는 마크롱에게 법 제정을 공포하지 말라고 압박하기도 했고, 마지막으로는 [연금 개악 찬반을 묻는] “시민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제도적 대응에 매달렸던 이 마지막 요구 다음에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5월 1일에 시위를 벌인 것이 다였고, 노조 지도자들은 운동 참가자들에게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8 노조 지도자들은 “개인들의 단순 총합”에 자신들의 모든 기대를 걸고는 시위 참가자 숫자를 세고 여론조사에서의 지지도에 집착했다. 그들은 이런 수치에 매달리며 협상력을 키우려고 했다. 그러나 운동 참가자 수에 연연하고, “무질서”를 싫어하는 사회층이 운동과 멀어지는 것을 우려한 탓에 그들은 파업을 통해 계급의 집단적 힘을 키우는 일에는 소홀했다.
노조 지도자들의 이런 준법주의적 접근법은 그들이 운동을 건설한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토니 클리프는 사회를 “개인들의 단순 총합”으로만 보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계급의 집단적 힘”으로 보는 관점을 구별한 바 있다.9 을 벌일 기회를 찾고 있던 몇몇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이는 오랫동안 기다린 신호였다. 그러나 CFDT 지도자 베르제는, 나라 전체를 문닫게 할 것이냐고 언론이 따져 묻자 자신은 파업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와 비슷하게 인터신디칼은 연금 수령 연령을 64세로 늦추는 공격을 막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고 노동자들이 이를 부문별, 작업장별 구체적 요구(노동조건·임금 등)와 연결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또한 인터신디칼은 연금 운동을 여성 차별과 인종차별에 맞서는 투쟁과 연결하는 것도 거부했는데, 만약 연결했더라면 계급의식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노동계급 사람들 사이에서 더 강력하고 유기적인 연대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국회 일정이 최종 국면에 다다르자 인터신디칼은 3월 7일 나라를 “멈추자”고 호소했다. 무기한 “갱신형 파업”4월 17일: “우리도 이 쟁점을 관철시킬 것이다”
연금법 제정 이틀 후인 4월 17일에 마크롱은 “대국민 연설”을 하겠다며 텔레비전에 나왔다. 마크롱이 연설하는 동안 사람들은 행진했고, 여러 도시 시청 앞에서는 자생적 시위가 벌어졌으며, 사람들은 냄비와 솥을 두드리며 “콘서트”를 열었다. 시위대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더는 네 말을 듣지 않겠다.” 새로운 슬로건이 등장했다. “우리도 쟁점을 관철시키겠다!” 이 슬로건은 마크롱이 “법 통과를 관철시키겠다”고 말한 것을 비꼰 것이자, 노조 지도자들의 운동 전략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노조 지도자들의 보수성에 안주하지 않고 투쟁을 계속 이어가려는 일부 사람들의 염원을 나타낸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 운동은 “쟁점을 관철시킬” 실천적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이런 슬로건이 등장했다는 것, 그리고 상당한 참가자들이 그에 호응했다는 점은 노조 지도자들의 전략이 야기한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잠재력을 보여 준다.
운동이 현실의 경험에서 배우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다. 운동 초기부터 파업을 조직하고 확산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특히 교육 부문 노동자들(초등학교 교사가 중심이 됐다)이 두드러졌다. 교육 부문에는 지역별 모임을 열어 일대 학교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전통이 있는데다, 이 교육 노동자들은 연금법에 반대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수업 당 학생 규모를 늘리거나 수업을 폐지하는 것에 반대)도 내세웠다. 그 덕분에 이 문제들의 영향을 받는 학부모들(노동자이기도 하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교사들의 모임은 해당 지역에서 직종을 가로질러 활동가들이 모이도록 하는 엔진 구실을 했다.
그러나 어느 한 부문이든 단독으로 쟁의 행위에 나서는 것은 두려워했다. 이런 두려움은 나름 타당한 것이었지만 파업 확산에는 걸림돌이 됐다. 한 부문만의 파업으로는 부족할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노동자들은 총파업 지침을 기다렸다. 물론 노조 지도자들은 그런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3월 7일과 16일에 철도 기관사, 정유소 노동자, 청소 노동자, 에너지 노동자 등 몇몇 부문이 갱신형 파업에 나섰다. 대학생들과 입시생들이 운동에 동참한 것도 이때였다. 며칠 동안 각종 고속도로, 물류 허브, 로터리에서 자생적인 시위와 봉쇄가 잇따랐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파업을 전면화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부문의 투쟁을 조율하려고 들지도 않았고 각 부문별 노조들이 알아서 하도록 방치했다. 그 탓에 갱신형 파업들은 고립됐고 결국 힘을 소진하게 된다.
운동에는 더 광범한 파업 잠재력뿐 아니라 전면적 정치화의 잠재력도 있었다. 예컨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여러 페미니스트 단체가 여성 파업을 벌이기로 했는데, 이를 통해 갱신형 파업에 힘을 싣고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도 전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이주민을 적대시하는 인종차별적 새 법에 맞서는 목소리도 (활동가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운동 안에서 반향을 얻기 시작했다. 3월 25일 그 법에 반대하고 “상 파피에”(미등록 이주민)를 지지하는 집회가 도시 약 50곳에서 열렸는데, 이 쟁점으로 평소 열리던 집회보다 규모가 컸다. 4월 29일에도 이 쟁점으로 또 한 차례 행동이 파리·툴루즈·렌·그르노블·마르세유 등 여러 도시에서 벌어졌다. 앞서 소개했듯 축산업용수 공급과 그로 인한 생태계 훼손에 대한 정치적 문제 제기도 있었다.
10 물론 이런 점들을 못 본 체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런 추세로부터 ‘노조 지도자들의 전략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사실상 논쟁을 포기하는 것이다. 오히려 노조 조직력 약화는 노조 지도자들의 전략이 초래한 결과였다. 게다가 지금의 운동은 그런 하향 추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약진들에도 불구하고 인터신디칼의 정치는 그런 긍정적 흐름들이 더 강력해지고 전면화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구실만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좌파와 극좌파의 주요 경향들은 인터신디칼의 책임에 모조리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런 정치 세력들은 노조 지도자들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래로부터 압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주장하고, 독자적 조직을 건설하자는 제안에 소수만 호응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든다. 그들이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은 작업장에서 노동조합의 힘이 객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었다. 사회학자들은 노동조합원 수가 지난 몇 년 동안 줄었을 뿐 아니라 같은 기간 파업 참가율도 떨어졌다고 말한다.연금 운동과 이 운동의 교착 상태가 낳을 수 있는 결과 하나는 당분간 사회적·정치적으로 게릴라 전술이 전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대한 투쟁이 기층의 각종 경제적·정치적 투쟁으로 산개하는 모습을 띨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노조 지도자와 그들의 전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기층 투사들이 전투적 노동조합 활동가 모임, 지역 공동체, 캠페인 단체 등을 조직하고 또 강화하는 것을 고무할 수 있다.
르아브르의 메이데이: 파시즘의 위협
5월 1일, ‘세계 노동자의 날’에 르펜의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RN(이전까지는 ‘국민전선’으로 불렸다)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 르아브르에서 전국 대회를 가졌다. 항구도시인 르아브르는 노동자 투쟁의 상징으로 항만·정유 노동자들이 강력하기로 유명하다. 국민연합이 그런 장소, 그것도 이런 시기에 그런 대회를 가졌다는 점은 매우 기이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랑스 정치 상황의 중요한 두 요소가 맞물린 결과였다. 첫째는 프랑스 정치가 양극화한 것이고 둘째는 프랑스 좌파 내 모든 경향이 인종차별과 파시즘 문제에서 정치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르펜이 2022년 대선에서 약 1300만 표를 얻은 것은 프랑스 정치가 좌우 양쪽으로 양극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최근 거리의 운동이 벌어졌다고 해서 이런 양극화가 마법처럼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늘날의 일반적 추세는 의회 민주주의의 안정이 아닌 파시즘이나 사회주의라는 그 대체재들로 향하고 있다.
[프랑스] 좌파 안에서 국민연합(때로는 파시즘 일반)을 설명하는 흔한 이론은, 이들이 자본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의 급진적 변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르펜과 국민연합은 새 연금법에 반대했다. 거리에서 투쟁이 수개월 동안 이어진 덕분에, 모든 여론조사에서 사람들은 르펜이 아니라 노조 지도자들을 마크롱의 주요 적수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르펜은 여론조사에서 급진좌파 정당 ‘불굴의 프랑스’의 지도자 장뤼크 멜랑숑보다 한참 앞섰다. 좌파가 제도적 영역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르펜이 청중을 키울 위험도 커질 것이다.
파시즘은 그들의 모든 정당성을 부인하고 공개적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방식으로 맞서야 한다. 5월 1일의 르아브르는 그런 일이 실현될 가능성을 보여 준 동시에 좌파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도 보여 줬다. 르아브르에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노동총동맹CGT 항만지부나, CGT의 다른 전국급 지도자들이 국민연합 행사를 막기로 결정했더라면, 이는 실제로 관철됐을 것이다. 그러나 좌파들은 이런 투쟁이 벌어지도록 하지 않았고 사회운동만 키우면 파시즘이 성장할 가능성은 저절로 차단될 것이라는 관점을 고수했다. 국민연합이 파시즘이 아니라고 보는 세력이든, 마크롱 정부가 점점 파시즘화하고 있다고 보는 세력이든 모두 그런 관점을 공유했다.
‘연대의 행진Marches des Solidarités’은 미등록 이주민 단체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 연대체로, 5월 1일 르아브르에 100명 가량의 원정 시위대를 조직했다. 르아브르에서 국민연합에 반대해 운동을 호소하던 현지 조직들은 이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이런 모습에서 반反파시즘 투쟁이 더 광범하고 전투적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
결론
11 이 조직은 페미니스트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출신인 활동가들로 이뤄져 있고 최근에는 노동조합 활동 배경을 가진 이들도 가입했다. 이들이 선택한 3가지 주제는 이 운동이 끼친 영향을 보여 준다 ― ‘노동계급이란 무엇인가?’, ‘노동자 권력’, ‘혁명가들의 역할.’ 이미 급진화한 환경에서 벌어진 이 운동은, 계급을 다시 한 번 정치 쟁점의 핵심으로 제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프랑스에서 목도하는 거대한 운동은 계급투쟁에 걸린 판돈을 키우고 새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를 보여 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내가 다른 동지들과 수년 동안 건설하고 있는 혁명적 조직 ‘계급 독립성’에서 5월 14~15일 주말 학교 기간 동안 어떤 주제를 다뤄야 할지 설문을 했다.노동계급 대중 운동은 청년과 노동자 수십만 명을 능동적이고 집단적으로 활성화하고 또 그들을 활동가로 만든다. 이 때문에, 그 운동 안에서 이론과 실천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질문으로 융합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3월 16일 이후에 극좌파와 혁명적 신디컬리즘 경향이 제시한 전략은 파업을 경제적 무기로서만 보는 관점에 기초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전략적” 부문, 즉 자본을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타격할 부문(에너지·운수·소각장·정유소)에서 파업을 조직하고 또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은 또 하나의 경향(자율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과 맞물렸는데, 일체의 모든 움직임(화물 운수든, 대중교통이든, 노동자들이든)을 봉쇄하는 활동을 파업보다 중시하는 경향이었다. 활동가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이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피켓라인을 방어하는 등의 활동에 나섰다.
‘계급 독립성’은 다르게 생각했다. 우리는 파업이 경제적 무기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해방을 경험하는 무기라고 주장했다. 파업으로 노동자들은 원자화를 벗어나고 노동과정 속에서 겪는 소외의 힘을 뿌리칠 수 있으며, 집단적 조직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되찾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갱신형” 파업들이 중요한 이유이고, 그런 파업을 모든 작업장과 부문으로 확산해야 할 이유이자 작업장과 지역에서 민주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직을 꾸려야 할 이유다. 이밖에도 실천 활동이 제기하는 이론적 쟁점이 여러 개 더 있다. 예컨대, 파시즘에 대한 분석(“르아브르로 가야 할까 아니면 파리에 남아서 시위를 할까?”)이나 인종차별·성차별 쟁점(“이런 투쟁들은 계급투쟁을 분산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계급투쟁을 더 높은 수준으로 표현하는 것일까?”)도 그렇다.
이번 운동은 단지 위기에 대한 반응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심화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혁명적 대안을 발전시킬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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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드니 고다르는 프랑스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 조직 ‘연대의 행진’의 조직자이자 혁명적 단체 ‘계급 독립성’의 회원이다.
출처: Denis Godard, ‘Workers shake Macron: snapshots from the struggle in France’, International Socialism, 179 (Summer 2023).
↩
- 이 글을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번역해 준 실라 맥그리거에게 감사를 표한다. ↩
- 프랑스에서 5월 8일은 “승전기념일”로 제2차세계대전 말에 독일이 항복한 것을 기린다. 매년 파리 샹젤리제에서 퍼레이드가 열린다. ↩
- Brecht, 2006, p119. ↩
- 새 연금법은 연금 수령 연령을 64세로 2년 늦추고 은퇴까지 43년을 일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출산·육아로 노동 기간에 공백이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특히 불리하다. ↩
- “진짜 프랑스pays reél”라는 표현은 “법적 프랑스pays legal”와 대비되는 것으로, 마크롱이 2020년 한 인터뷰에서 쓴 것이다. 이 표현은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에 협력한 필리프 페탱 정부[‘비시 정부’]를 지지하는 단체 ‘프랑스의 행동Action Française’의 핵심 이론가이자 극단적 민족주의자였던 샤를 모라Charles Maurras의 표현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모라는 고되게 노동하는 전통적 프랑스와 법적 조직체인 프랑스 공화국을 구별하며 후자는 외세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무원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Boichot, 2020을 보라. ↩
- ‘즈불zbeul’은 비속어로 아랍어로 “쓰레기”를 가리키는 단어에서 파생했다. ↩
- 1995년 프랑스 파업에 대한 분석으로는 Harman, 1996을 보라 ↩
- Cliff, 1987 ↩
- 갱신형 파업이란, 파업 참가자들이 매일 모여서 파업을 이어갈지를 정하는 파업이다. ↩
- 예컨대 Pénissat, 2023을 보라. ↩
- ‘계급 독립성’ 웹사이트를 보라. www.autonomiedeclasse.org ↩
참고 문헌
Boichot, Loris, 2020, “‘Pays réel’ contre ‘pays légal’: quand Macron reprend le nationaliste Maurras”, Le Figaro (12 February).
Brecht, Bertold, 2006 [1953], “The Solution”, in Poetry and Prose (Continuum).
Cliff, Tony, 1987, “The Working Class and the Oppressed”, Socialist Worker Review 101 (September), [국역: 《노동자 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 노동자연대, 2012]
Harman, Chris, 1996, “France’s Hot December”, International Socialism 70 (spring).
Pénissat, Etienne, 2023, “France. La dynamique des grèves et la faiblesse de l’infrastructure militante”, A L’Encontre (1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