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혁명을 조직한 여성들 ^*

오늘날 ‘공산주의 여성운동_CWM’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CWM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국제적 운동의 주요 동력이었다. CWM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여성들의 승리에 영감을 받아 1920년에 창립됐고, 볼셰비키가 시도한 방식들을 계승·발전시켜 더 많은 여성을 조직하려 애썼다. 이 책은 이제껏 출판되지 않은 CWM의 문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여성 해방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 기초해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대담하고 혁신적인 전략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보여 주는 작업물이 매우 드문 상황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은 매우 반갑다.

마이크 테이버와 다리야 디야코노바가 이 책에서 쓴 엮은이 서문들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 여러 나라의 정치적 조건과 함께, 지도적인 여성 공산주의자들의 생애에 대해서도 중요한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이 여성 공산주의자들의 보고서와 연설을 읽으면 자본주의 사회와, 때로는 공산주의 조직의 당원들에 의해 그들의 앞길이 가로막혔을 때 이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극복해냈는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경험과 논쟁, 열망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에게 각별히 유효하다.

CWM의 기원은 1914년 이전 사회주의 여성운동이다. 제2인터내셔널은 1914년 애국주의 물결 속에서 붕괴했으나 그 중 소수의 여성은 제1차세계대전에 반대했다. 그들은 유혈낭자한 전쟁에 반대하는 저항을 건설하기 위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되살렸다. 이 운동은 러시아 혁명으로 큰 부양력을 얻었다. 러시아의 새로운 노동자 국가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이는 데에 발목 잡혀 있었음에도 혁명 정부는 여성 해방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투자했다. 볼셰비키와 그에 동의한 세계 여러 나라의 활동가들은 1919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혹은 제3인터내셔널로도 알려져 있다)을 설립했다. 1919년 3월에 열린 창립 대회에서는 여성의 법률상 완전하게 평등한 권리, 무상 교육과 의료, 여성의 정치적 참여, 가사·양육 부담의 감소를 포함한 강령이 채택됐다.

코민테른 창립 총회에서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제안한 “여성 노동자를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으로 끌어들여야 할 필요성에 대한 결의안”도 채택됐다. 콜론타이는 소비에트 여성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볼셰비키가 설립한 여성 조직인 제노텔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 콜론타이가 제안한 결의안은 여성들이 사회주의를 지지하게끔 하는 전략적 목표를 강력히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우리 편으로 획득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코민테른 당원 모두의 시급한 과제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계급 여성이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에만 승리하고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¹

CWM은 이런 전략이 독립적이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형태를 갖춘 것이었다.

1차 대회(1920년 7월과 8월): “숨은 혁명적 에너지”

이 책에 소개된 다음 단락은 1920년 7월 30일부터 8월 2일에 열린 CWM의 1차 대회 개최를 여성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생동감 있게 보여 준다.

1920년 7월 30일 저녁, 모스크바 외곽과 먼 지역에서부터 온 빨간 머릿수건을 쓴 여성 노동자들과 하얀 스카프를 맨 ‘붉은 자매들’이 질서정연하게 열을 맞춰 볼쇼이 극장으로 향한다. 그들은 이런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여성 군대의 지도자, 클라라 체트킨이여, 영원하라!”,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여성 해방 완수를 위한 투쟁에 착수하자!”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스크바의 거리 곳곳을 가득 채운다. 여성 프롤레타리아들이 줄지어 신나게 행진하며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공산주의 여성 국제 대회’ 개최를 축하했다. 그날 저녁 8시에 볼쇼이 극장은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빈틈없이 꽉 찼다.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멕시코,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헝가리, 핀란드, 노르웨이, 라트비아, 불가리아, 인도, 조지아, 중앙아시아 캅카스 지역과 투르키스탄에서 온 여성 대의원들과 첫 번째 ‘공산주의 여성 국제 대회’를 환영하는 다양한 여성 조직과 기관의 대표자들로 무대가 가득 찼다. ²

19개국에서 온 50명이 넘는 대의원은 백군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전복하려고 위협하는 가운데 모스크바에 모였다. 1차 대회에 제출된 여러 지역의 보고는 백군의 반_反혁명적 백색 테러가 어떻게 옛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여성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또 여성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용기 있게 혁명을 위해 계속 투쟁하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닿고자 새로운 방식을 모색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 책에서 나라별 보고를 소개하는 장에서는 노동계급 여성들의 조건 변화와 여성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노동계급 여성들과 관계 맺는 활동을 시작해 독립적 출판물을 내는 기관을 설립했는지 등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독일에서 온 로지 볼프슈타인과 이탈리아에서 온 안젤리카 발라바노바는 혁명적 상황 와중에서 여성들이 어떤 조직적 활동을 했는지를 자세히 보고했다. 러시아에서 여성들의 경험을 요약한 인상적인 보고는 이네사 아르망과 클라브디아 니콜라예바가 발표했다. 아르망은 여성들이 사회주의 운동의 보수적 장애물이 아니라 힘의 잠재적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아주 오래된 차별, 여성의 정치적·경제적·가족 내 예속, 온갖 공포, 제국주의 전쟁이 남긴 가장 힘겨운 유산, 그리고 빼놓지 말아야 할 계급적 본능 … 이 모든 것이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성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남성에게 영향을 미친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잠재적인 혁명적 에너지를 아주 많이 간직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숨은 혁명적 에너지의 커다란 원천을 어떻게 활용할지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³

아르망은 행동에 나서는 것이 여성들을 투쟁에 끌어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가정 속박에서의 해방”을 다룬 니콜라예바의 보고는 포위된 상태의 소비에트가 여성 해방을 위해 도입한 실천적 조처를 자세히 소개했다.

소비에트 권력은 파괴에 대처해야 하고 봉쇄돼 있다는 것 외에도 이제는 끊임없이 백군의 공격을 받으며 형언할 수 없는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린이 돌봄이 사회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어린이 카드가 있으면 음식이 무료로 제공되고, 학교 식당과 마찬가지로 무료 어린이 식당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 사회 부조는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고 어머니와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그렇습니다. 산후조리원, 고아원, 유치원, 보육원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성은 출산 전 8주와 출산 후 8주 동안 출산휴가를 보냅니다. 수유하는 여성은 9개월의 수유기 동안 물질적·재정적 지원을 받습니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소비에트 러시아는 어머니와 어린이에게 세계 그 어떤 곳보다 나은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첫걸음일 뿐입니다. 부르주아지들이 쫓겨난 교회와 개별 저택들은 지친 노동계급 여성을 위한 휴양 시설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공 식당과 주방 덕분에 가사 노동의 필요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부르주아 계급은 구닥다리 냄비를 극찬했지만 그 냄비는 쓸모없게 됐습니다. 농민 여성과 특히 노동계급 여성에게 부르주아의 냄비는 여가 시간을 모두 잡아먹는 허리 휘는 추가 노동의 원천일 뿐이고, 여가의 마지막 순간까지 빼앗아 여성이 모임에 가고, 책을 읽고, 계급 투쟁에 참여할 능력을 소진시킵니다. ⁴

러시아의 조건은 무척 어려웠지만 여성 차별의 뿌리를 뽑겠다는 노동자 국가의 의지는 굳건했다. 콜론타이는 CWM 대회에서 가사 노동이 어떻게 사회화되고 있는지 보고했다.

개별적 가사 노동은 소멸하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 대신 집단적 가사 노동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노동계급 여성이 각자의 집을 청소하는 대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여러 집을 아침마다 돌며 청소하는 남성과 여성을 조직할 수 있습니다. ⁵

개별 가족 단위를 대신할 대안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사회주의 정치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아우구스트 베벨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서도 널리 논의된 바 있다. ⁶ 그러나 가사 노동 문제가 여성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강령의 핵심 요소로 등장한 것은 이 때가 최초였다.

CWM 1차 대회에서는 “공산주의 여성운동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채택됐다. 이는 노동계급 여성을 조직하고 설득할 필요성과 “여성의 위대한 해방자인 공산주의”의 잠재력을 다룬 대담하고 종합적인 선언이었다. 공산주의를 통해 법적 평등뿐 아니라 “인간 개성의 전면적 발전”을 달성하고자 했다. ⁷

1920년 11월 20일, CWM을 지도하기 위한 ‘국제 여성 사무국_IWS’이 설립됐다. 독일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자 여성 해방의 노련한 투사인 체트킨이 사무국장으로 선출됐고, 콜론타이는 부사무국장이 됐다. 콜론타이가 설명한 IWS의 목표는 여성 사이에서 활동하기에 좋은 특별한 방식을 채택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활동과 독립성을 일깨우고, 코민테른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코민테른 집행부가 IWS의 활동을 조정했지만 IWS는 상당한 활동의 자유를 누렸다. ⁸ IWS와 코민테른 지도부가 긴밀하게 협력했다고 해서, CWM 대의원들이 코민테른이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을 자유롭게 비판하거나 의사 소통 실패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전혀 가로막히지는 않았다. IWS는 초국적 네트워크 형성과 국제 회의 정기 개최를 더 쉽게 하고자 1922년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거점을 옮겼다.

2차 대회(1921년 여름): “자유의 달콤함”

CWM의 2차 대회는 1차 대회보다 규모가 커지고 대표성도 더 갖추게 됐다. 여성들이 벌이는 활동의 모든 측면을 놓고 늦은 밤까지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2차 대회는 서구권 바깥에 속한 여성 대표자들을 더 많이 끌어들였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맞닥뜨린 구체적인 과제들을 다룰 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르메니아에서 온 가야네 아레시안은 그보다 1년 전 코민테른이 _{[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개최한 극동인민대회에 비판적이었다. 아레시안은 그 대회에서 “동방 인민”이 “남성들에 의해 대표됐다”고 말했다. ⁹ 또, IWS가 “동방”의 여성들 사이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일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을 검토하면서 CWM은 러시아 공산당의 여성 조직인 제노텔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었다. 제노텔은 1919년 9월 아르망과 콜론타이가 지도하며 활동을 시작한 조직이다. 제노텔은 개별 가족을 대체하기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공공 식당과 공공 세탁소를 설립했다. 또한 여성의 직장 고용을 보장하고, 여성 노동자 보호 법률의 집행을 감독했으며, 여성 노동자들이 소비에트와 공산당 기구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독려했다. 제노텔은 “동방” 소비에트 국가에서 여성들과 협력하는 전담 부서를 설립해서 그 여성들과 접촉할 창의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 세심한 방법을 개척했고 CWM은 그 전략들을 받아들였다. CWM 1차 대회에서 리다 드보르키나는 투르키스탄의 여성들이 거의 다 문맹이고 집안에서만 지냈었지만 여성 학교와 동호회에서 공산당이 벌인 활동과 무슬림 사이에서 적극 주장한 덕분에 이제 공산당에 가입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¹⁰ 이란의 공산주의자들은 음악 공연 형태로 모임을 갖고 또 학교를 열었는데, 이곳에서 “여성들이 재봉과 바느질 활동으로 위장해 정치적 문헌을 배우고 미래의 정치 활동가가 될 준비를 했다.” ¹¹

그런 전술은 이른바 “동방” 여성들 사이에서 사회주의 지지층을 만들어냈다. 1920년 4월 말,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아제르바이잔인 아리파 무사베코바는 CWM 2차 대회에서 그 지역 여성들이 경험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혁명이 시작되면서, 적군의 논리로 붉은 아제르바이잔이 해방됐을 때부터 … 자유의 달콤함을 알고 또 함께 누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제 아제르바이잔 곳곳에서 여성들은 이미 베일을 벗고 있고, 해방을 위한 투쟁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¹²

CWM은 1921년 자체적인 ‘근동 지역 여성 사무국’을 설립했다. 1921년 12월 12일 ‘근동 지역 여성 사무국’은 티플리스(조지아의 수도로 현재 지명은 티빌리시)에서 여성 대회를 열었는데, 이 대회에는 터키와 이란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카바르디아, 다게스탄과 이른바 북캅카스 산악 공화국에서 온 대의원들이 참가했다. CWM은 동방에서의 여성 해방과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투쟁을 연결했다. 콜론타이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어떠한 거대 제국주의 권력도 식민지에서 제대로 된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동방의 여성 사이에서 하는 활동이야말로 우리가 대단히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해내야 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¹³ CWM은 이 지역 여성 사이에서 활동하는 것에 높은 우선순위를 뒀고 그 여성들에게 발판을 제공하고, 사회주의를 더 가깝게 여기도록 해줄 창의적 방법들을 발전시켰다. ¹⁴

성과와 장애물

CWM은 초기 3년간 주목할 만한 성공을 여럿 거뒀다. 그 중앙 기관지는 잡지 《공산주의 여성 인터내셔널》로, 클라라 제트킨이 편집장을 맡아 1921년 4월부터 베를린에서 발간됐다. 이 잡지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서 나온 출판물 중 가장 수려하고, 생동감과 독창적 사고가 넘치고, 광범한 독자층을 거느렸던 출판물 중 하나였다. 공산주의자들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유럽 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여성 부문, 여성 위원회나 여성 부서가 조직됐고 때때로 “선동위원회”라고 불렸다.

많은 여성이 코민테른 소속의 당들에 입당했다. 각국 당원 중 여성 비율은 다양했는데 가장 높게는 체코슬로바키아와 노르웨이에서 20퍼센트, 가장 낮게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2퍼센트였다. 독일과 러시아에서는 1920년대에 각각 17퍼센트와 14퍼센트로 증가했다. 10만여 명의 여성이 코민테른의 당원이었다. 체트킨은 이 여성들이 사회주의로 각성하고, “그동안 숨겨져 있던 새로운 열망, 열정, 충동, 욕구”에 사로잡혔다고 썼다. ¹⁵

CWM은 중요한 세계적 운동을 일으켰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기근 피해자들을 위한 구호품을 조직하고, 임신중단권과 아동 돌봄, 동일노동 동일임금, 여성 참정권 같은 문제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알린 것은 초기 공산주의 여성운동이 일으킨 가장 성공적인 국제적 활동 중 하나였다. ¹⁶

CWM 활동가들이 공산주의 운동 내에서 직면했던 적대감에 비춰봤을 때 이런 성취는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어떤 동지들은 “페미니즘”이 공산주의자들의 단결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확신했다. CWM 2차 대회에서 발언한 프랑스에서 온 대의원 뤼시 콜리아르는,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들이 “여성들을 조직하자고 제안할 때마다 ‘페미니스트!’라고 조롱을 받았다” 하고 말했다. ¹⁷ 또 다른 공산주의자들은 여성을 조직하는 활동을 말로만 지지했다. 스웨덴에서 온 예르다 린데로트는 “많은 동지가 우리 조직의 가치를 이론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실천에서는 여전히 상당히 무심하다”며, “우리의 활동이 특히 그런 태도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¹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또한 여성들이 공식 기구들에서 대등하게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민테른의 집행위원회에 한번 가보십시오. 지난 번 제가 세어봤을 때는 여성이 4명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비정상적입니다.” ¹⁹ 게다가 가사 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 불비례적으로 지워져 있었다. 프랑스 공산당의 한 여성 당원은 “여성들이 공적 활동을 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남성들도 때때로 가사 노동을 약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고 주장했다. 여전히 가사 노동이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여성에게 가사 노동의 사회화는 염원으로 남아 있었다. ²⁰

성차별적 생각을 뿌리뽑는 것은 힘겨운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여성 활동가들은 코민테른 중앙 지도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레닌, 니콜라이 부하린, 레온 트로츠키 같은 러시아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CWM의 강력한 지지자였고, CWM 대회들에서 연설도 했다. 1920년 9월 레닌은 체트킨과 논의하는 자리에서 CWM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여성을 위한 사회적 평등의 토대를 놓는 일에서 진정으로 선구적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페미니즘 문헌을 여러 권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이 편견을 없애버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계 공산주의 여성운동은 없고,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²¹

논쟁·이견과 전략

초창기에 CWM은 생기 넘치고 살아 있는 운동이었고, CWM 대회들은 생생한 의견 교환의 장이었다. 대의원들은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종종 날카롭게 드러냈는데 회의에 몇 시에 도착해야 하는지부터 성 노동의 대안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까지를 논쟁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두고도 토론이 벌어졌다. 체트킨은 여성 공산주의자들이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위한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 뿐 아니라 그런 투쟁이 없는 곳에서는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힘주어 주장했다. 영국에서 온 노라 스미스를 포함한 일부 대의원은 체트킨의 주장을 반박하며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이는 것은 여성들을 의회 개혁에 집중하게 만들어 “공산주의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²² 이에 클라라 체트킨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혁명적 정치에 밑거름이 되지 혁명적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여성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주어진 편견과 관습, 습관을 제거하는 것보다, 남성 특권을 제거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것을 의미합니다. 여성 평등을 위한 투쟁은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와 부르주아 국가에 맞선 투쟁이 되고, 노동계급이 국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²³

체트킨의 이런 입장은 콜론타이의 지지를 얻어 냈다. 또 다른 논쟁은 재생산 권리에 대한 것이었다. CWM 1차 대회에서 통과된 테제들은 아이를 낳고 돌보는 것을 여성의 소명으로 보는 시각은 “낡고 프티부르주아적인 반동의 이데올로기”라고 강조했다. ²⁴ 여성 공산주의자들은 분명히 이런 낡은 견해에 동조하길 원치 않았지만, 일부는 임신중단권을 지지하기를 처음에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들은 우생학과 거리를 두고자 했는데, 우생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출산을 막기 위한 출산 통제를 옹호하고 여성과 아이를 위한 사회적 지원 부족을 정당화했다. ²⁵ 그러나 소비에트 정부는 여성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1920년 국립 병원에서 하는 임신 중단 시술을 합법화했고, 이윤을 위한 시술은 금지했다. CWM은 이런 접근법을 공중 보건에도 적용했고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라는 사상을 고취하는 것도 그에 속했다. 독일의 여성 공산주의자들은 임신중단 금지 법률 반대 운동에 관한 보고서를 CWM에 제출했다. 그들은 임신중단이 여성에게 이상적 해법은 아닐지라도 “사회가 어머니를 위한 지원과 어린이의 양육과 보육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한, 공산당은 여성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와 양육·보육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반드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Dein Körper gehört Dir!”(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이다!)라는 진보적 슬로건을 내세워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성공적이었고, 1926년 임신중단 제한이 완화됐다. ²⁶

체트킨은 CWM의 인정받는 지도자였으나 그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21년 3월, 독일 공산당_KPD은 후에 ‘3월 행동’으로 알려지는 공세를 감행했는데, 단호한 소수만의 노력으로 혁명적 봉기를 촉발하려는 시도였다. 그 모험은 실패했고 독일 노동계급과 공산주의 운동은 중대한 패배를 경험했는데도, 독일 공산당의 대다수 당원은 여전히 “혁명적 공세” 전술을 방어했다. CWM의 1921년 대회에서 독일의 대의원 게르텐(헤르타) 슈투름은 체트킨에게 ‘3월 행동’에 반대한 자들과 공개적으로 결별할 것을 요구했다. ²⁷ 체트킨은 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그 대회에서 ‘3월 행동’을 지지하는 문서를 발표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고 확고하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쉬지 않고 파업을 벌이고 있는 영국에서 들을 수 있는, 혁명의 천둥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독일의 프롤레타리아가 그 힘겨운 3월 전투를 거치며 더 단련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²⁸

체트킨과 콜론타이는 초좌파적인 ‘3월 행동’에 대한 토론을 코민테른 3차 대회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는 혁명적 공세 전술에 반대하기로 표결했다. 그 대신, 특정한 요구를 두고 개혁주의 조직과 노동조합과 공동 행동을 할 것을 호소하는 공동전선 전술이 대회에서 지지를 얻었다. 이 전술은 체트킨과 트로츠키, 레닌의 지지를 받았다.

소멸과 유산

CWM은 재능 있고, 용감하고, 단호한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이끌었다. 콜론타이와 아르망, 체트킨과 함께 독일의 헤르타 슈투름과 베르타 브라운탈, 프랑스의 마르트 비고와 뤼시 콜리아르, 네덜란드의 헨리터 롤란드 홀스트, 영국의 도라 몬테피오리 등 많은 여성이 함께했다. 이후 이들은 거의 모두 스탈린주의에 반대하거나 그 때문에 희생됐다. 초기 CWM의 주도적 인물들로서 이들은 온당하게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바로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수 세기에 걸친 여성 해방 투쟁의 선구자들이라고 말이다. ²⁹

1923년이 되면 독일 혁명이 패배하고 소련이 고립되면서 세계 사회주의 운동은 새로운 현실을 헤쳐나가야 했다. CWM 내부 상황은 코민테른 내부의 사태 전개와 궤를 같이 했는데, 코민테른에서는 스탈린 치하 소련의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와 필요가 변하는 것에 점차 좌우되기 시작했다. ³⁰ IWS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여성 부문이 됐고, 1924년 초 다시 베를린에서 모스크바로 이전했다. CWM에서 출간하던 국제 잡지는 1925년 초 중단됐다. 제노텔은 축소되다 1930년에 해산됐다. 대다수 여성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트로츠키, 부하린, 그리고리 지노비예프가 스탈린주의에 반대해서 이끈 반대파에 합류했다.

이 책에 기록된 보고와 토론은 사회주의자들이 큰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이다. 때때로 어떤 연설들은 상투적이고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문서들은 영감을 주는데,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여성을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할 기회를 잡기 위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해낸 모습을 보여 준다. 미래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이 어떠할지에 대한 청사진은 존재하지 않지만, 100년 전 여성들의 성취는 사회주의 혁명이 여성과 모든 인류의 해방을 이끄는 과정의 첫 시작이 될 잠재력을 강력하게 그려볼 수 있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