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
‘제3의 길’의 모호한 기후변화 해결책
1 그러나 기후변화는 개인의 행동보다는 사회가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 해결 주체로 주되게 정부가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같은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주체”로 중앙정부(56.8퍼센트)를 꼽았다. 그 다음은 개인(13.8), 기업체(11.3), 지자체(10.3), 시민단체(5.8), 교육기관(1.0) 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고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북극곰들의 문제쯤으로만 여겼지만 이제는 날씨가 조금만 이상해도 기후변화와 후손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2008년 환경부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국민의 95퍼센트와 전문가의 97퍼센트가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여긴다고 응답했다.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는 전 세계인들이 크게 기대했는데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풍력 발전과 태양 발전의 잠재력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저런 아이디어를 왜 썩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정치가 문제라는 결론에 그리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고, 실제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담장 밖 시위대는 “변해야 할 것은 기후가 아니라 정치”라고 외쳤다.
《제3의 길》로 잘 알려진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를 다룬 최신작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기후변화 대응책 마련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요 정치적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치에 주목한 것은 이 책의 강점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제시하는 정치의 내용까지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책임국가’와 ‘제3의 길’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를 완화할 가장 중요한 주체로 국가를 지목한다. 그는 국가가 단지 기후변화를 완화할 가능성만 열어 주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그 가능성이 실현되도록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책임국가ensuring stat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앤서니 기든스, 《기후변화의 정치학》, 105~106쪽. 이하 쪽수만 표기). 국가는 단지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조세제도로 오염자를 적극 징벌하고, ‘청정에너지’가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고, 특정 상품의 시장 유통을 금지해 “필요하다면 대기업들과 맞서는 일”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161쪽).
이는 환경에 가격을 부여하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주류 환경 경제학자들의 견해보다는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기든스는 “규제받지 않는 시장은 장기적 전망을 갖기 어렵”고, “외부 비용을 발생시키는 한 시장은 오히려 그런 장기적 전망을 적극적으로 훼손시킬 수 있다”고 옳게 비판한다(188쪽). 그러나 이 책의 일면 진지한 문제의식은 ‘제3의 길’의 정치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일관되지 못한 결론들을 낳는다.
2 “사실상 신자유주의를 사회민주주의적 외피로 포장한 것”이라는 3 비판자들의 표현이 ‘제3의 길’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제3의 길’은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을 주장한 고전적 사회민주주의(‘제1의 길’)와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제2의 길’)를 모두 비판하면서 기든스가 주창한 이론이다. 자신이 요약한 ‘제3의 길’의 핵심은 국가가 개입해 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작동시켜서 경제의 ‘역동성’과 그 원동력인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며, ‘수동적 복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제3의 길’과 ‘책임국가’가 만나서 도출되는 첫 번째 특징은 초당적 협력을 위해 급진적 주장을 단속한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기후변화 문제는 좌파와 우파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녹색은 새로운 적색’이라는 식의 주장도 더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8쪽). “중도좌파 정당이나 연립 정당들의 경우에는 더욱 자신들의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특히 좌파와 녹색당이 연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172쪽)
그러나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제도화하도록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기후변화 대책을 막으려는 산업계 요구를 물리”치라고 정부에 요구하면서(137쪽), 좌파들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것은 두 손을 묶고 권투 링에 오르라는 것과 같다. 기후변화 완화보다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기업들과 그들을 대변하는 우파 정치인들은 좌파가 양보하면 할수록 더 많은 후퇴를 강요하며 사실상 기후변화 대책들을 껍데기만 남겨 놓으려 할 것이다.
4 호주 노동당은 그렇지 않아도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배출권 거래제를, 석탄 화력발전소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 부문은 적용을 면제해 줘 더욱 누더기로 만든 뒤 의회의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보수당은 기업의 의무를 더 많이 면제하고 온실가스 배출 감소 비용을 정부가 직접 지급해야 한다며 배출권 거래제를 연거푸 부결시켰다. 5
2007년 말 이라크 파병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분노에 힘입어 보수당 11년 집권을 끝내고 정권을 잡은 호주 노동당의 최근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준다.‘제3의 길’과 ‘책임국가’론을 결합시킨 이론의 두 번째 특징은 정부와 NGO들에게 기업과 적극 협력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기든스는 일부 기업들이 기후변화 문제에서 나쁜 태도를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계 로비단체들, 그리고 더 넓게는 대기업들을 단순히 악마처럼 나쁘게 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76쪽). 기업이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 있고 또한 새로운 기술 개발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182쪽) 기업의 구실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6 〈포춘〉이 선정한 2009년 세계 10대 기업에는 석유기업 7개(쉘, 엑손모빌,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셰브런, 토탈, 코노코필립스, 시노펙)와 자동차 기업 1개(토요타) 등 온실가스 배출의 직접 책임이 있는 기업이 8개나 포함된다. 7 이는 기업이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 주체이기는커녕 기후변화 문제의 핵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처할 장기 계획이 시장에서 좌절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기업들에 의존하려는 것은 모순이다. 기업들이 현재 누리는 재정적·기술적 권력의 원천은 이윤 추구와 시장 경쟁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태도는 이를 잘 드러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NGO들에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습니다. 기업은 서바이벌 게임이에요. 순간적으로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건 기업임을 포기하라는 얘기밖에 안 되는 거예요” 하고 짜증을 내며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냈다.8 기업 로고를 친환경 디자인으로 바꾸는 데 쓴 돈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 9 2008년 그린피스는 BP의 전체 투자 중 93퍼센트가 여전히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쓰인다며 “최악의 그린워시 상”을 수여했다. 10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BP 같은 기업들이 화석연료 개발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기업과 협력해서는 결코 이것을 얻어낼 수 없다. 기업들이 친환경 제스처를 취하는 진정한 목적은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악덕 기업이라는 것을 가려 줄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다.
기업은 이윤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기업과의 협력은 기업들의 그린워시greenwash(기업이 ‘환경’에 책임감 있는 듯한 광고를 내보내면서 ‘녹색’ 이미지로 포장하는 것)로 끝날 공산이 크다. 기든스는 BP, 월마트, 테스코, 나이키, 코카콜라, 유니레버, 알코아, 시티그룹이 기후변화 완화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가 “경제계 지도자들이라고 해서 다 같은 부류는 아니”라며(176쪽) 예로 든 BP는 몇 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태양열 집열판 생산업체를 4천5백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런데 이 금액은 BP가 화석연료 개발을 위해 과거 10년 동안(1992~2002년) 세계은행에서 받은 투자금의 1년치에도 미치지 못하고,기든스는 기후변화 피해를 구제하려면 보험회사들의 구실이 대단히 중요하므로 “정부는 보험업계가 재해와 재난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확대할 수 있게끔 재정적·조세적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국가가 최후의 방패막이 되는 데서 비롯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256쪽)가 있으므로 “정부가 대신 보험을 받아 줄 수 없다”(254쪽)고 못박는다.
11 이는 보험업계가 취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력해서 생긴 문제다. 무엇보다, 도덕적 해이 운운하며 정부의 능동적 구실을 촉구하기보다는 피해자 스스로 비용을 치르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든스의 주장은 피해자 책임론과 별 차이가 없다. 보편적 복지 제도가 국민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비판하고 시장친화적 복지를 주장한 《제3의 길》의 문제의식이 여기서는 사보험제도 강화 주장으로 이어진 듯하다.
그러나 정부가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지 않고 보험회사에 재정·조세 특혜를 주는 방식은 문제를 키울 뿐이다. 보험회사의 구실을 강조할 때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사례가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당시에 보험회사들이 홍수 피해는 보장하지만 태풍 피해는 보장하지 않는다고 잡아떼 피해 주민들 다수는 아무 구제도 받지 못했다. ‘제3의 길’과 ‘책임국가’론이 조합된 이론의 세 번째 특징은 평범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을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인이 영리하게 기교를 부려 인도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서 엘리트주의 정치철학이 발견된다. 기든스는 기후변화 정치학의 핵심 문제로, 사람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범지구적인 중요한 위협으로 간주하면서도 그 때문에 자신의 생활 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지목하고(10~11쪽),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를 ‘기든스의 역설’이라고 야심차게 이름 붙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생활 습관을 획기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기든스도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한계와 범지구적인 성격을 가지는 지구 온난화의 속성 사이에 놓인 커다란 괴리” 때문이다(155쪽). 즉,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활 습관을 바꾼다 해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판단 때문인 것이다. 실제로, 도시인들이 쾌적하고 간격이 짧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면, 자기 집에 공급되는 전기가 재생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가 아무리 생활 습관을 바꿔도 전체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효과는 아주 미미할 것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높기로 악명 높지만, 이는 개인들의 에너지 과소비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가정 부문 1인당 전력 소비는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그러나 기든스는 사람들이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더 큰 보상보다는 적더라도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더 선호”(11쪽)하는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본다. 또, ‘무임승차’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고 ‘당신이 하지 않으면 나도 하지 않겠다’는 증후군이 도처에 퍼져 있다고 주장한다(149∼150쪽). 그래서 대중의 영향을 받지 않고 기후변화 문제를 계속 최우선 순위로 부각하려면 정치인들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든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의에서 서로 책임을 떠밀며 기후변화 대책을 외면한 것은 각국 정부와 정치인들이었다. 반면, 회담장 밖에서는 학생, 환경단체, 노동조합, 정당, 농민조직, 지역 공동체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 10만 명이 모여 기후변화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중행동에 올바른 정치적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 정치학의 진정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재생 에너지와 탄소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
재생 에너지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다. 그런데 이 책은 놀랍게도 태양과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를 아주 짧게만 언급하고 지나간다. 풍력 에너지는 전기 1킬로와트당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적고, 화석연료와 견줘 가격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재생 에너지다. 그런데 기든스는 풍력 에너지가 “항공 관제를 위해서 사용되는 레이더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보고도 있다”(195쪽)고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 장애가 얼마나 심각한지, 풍력 발전 확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일절 말하지 않는다. 또, 그는 태양 에너지의 장래성을 인정하면서도, 필요할 때 언제나 쓸 수 있도록 저장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태양광 발전 기술이 등장한 지 이미 30년이 지났는데도 실적이 그렇다는 것[세계 전력 생산에서 고작 1퍼센트]은 이 기술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는 의미 … 아니면 크게 확산되기까지 오랜 선행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면서(198쪽)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13 풍력과 지열 발전 방식을 섞어 사용하고 무엇보다 재생 에너지 전체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늘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현재 저장 기술로도 태양 에너지의 간헐적 전력 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4 북아프리카에서 태양열 집중 발전 방식으로 만드는 전기와 유럽 연안에서 풍력 발전으로 만드는 전기를 하나의 전력망으로 통합해 유럽 전역에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데저텍DESERTEC 같은 사업 계획 15 에 선진국 정부들이 더 적극 나서게 돼야 한다. OECD 국가들이 화석연료에 은밀히 지급하는 막대한 보조금(206쪽)을 회수해 즉시 재생 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야말로 ‘책임국가’가 나서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세계 어딘가에선 태양이 항상 강하게 내리쬐고 있고, 뜨겁고 건조한 지역에서 만든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장거리 송전 기술(콩고에는 이미 1천7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최신식 송전선이 있다)을 사용해 매우 먼 거리까지 전송할 수 있다.그런데 기든스는 핵 발전과 ‘청정 석탄’ 기술을 “가장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술”로 꼽는다(196쪽). 핵 발전의 위험을 두고는 “리스크가 전혀 없는 선택은 불가능하”다며 일축한다(194쪽). 핵폐기물을 두고는, 언젠가 ‘폐기물 없는 핵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모든 재생 에너지원 역시 … 그에 버금가는 기술 혁신을 필요로 하는 것 아닐까?”(195쪽) 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간다. 그러나 관제 레이더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풍력 발전의 리스크와 핵 발전소 사고의 리스크를 대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체르노빌 핵 발전소 폭발 사고 한 번으로 무려 1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또한 아직까지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한 핵 발전소는 하나도 없지만 풍력 발전은 이미 덴마크 전체 전력의 20퍼센트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데(120쪽), 이 둘을 똑같은 수준으로 비교하는 것도 한참 잘못됐다. 기든스는 “원자력[핵 발전]을 대신할 만한 다른 대안은 전혀 없는 형편”(194쪽)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학자로서 가져야 할 학문적 엄밀함마저 잃은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대목이다.
또, 기든스는 CCS 기술(Carbon Capture and Sequestration.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것, 즉 온실가스를 땅이나 해저에 묻는 기술)을 적극 옹호한다. 이 기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탄소 회수·저장 기술’ 또는 ‘청정 석탄’이라고 듣기 좋게 부르는데, 환경단체들은 이 기술이 화력발전소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며 반대해 왔다. 기든스는 석탄 화력발전소가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가장 큰 오염원”이지만 여기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땅이나 해저에 묻으면 굳이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지 않아도 되므로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평가한다. 최근 유가가 치솟으면서, 그동안 채굴 비용과 환경 파괴 우려 때문에 사용량이 꾸준히 준 석탄이 다시 산업계의 관심을 끄는데,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CCS 기술이 도입될 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석탄은 같은 양의 에너지를 얻는 데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석유나 천연가스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나 기든스도 인정하듯이 CCS 기술에는 “(많은 에너지를 들여) 애써 묻은 이산화탄소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문제, 기술 개발까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문제,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묻을 만한 매장지 자체가 부족할 수 있다는 문제 등등이 있다. 그럼에도 기든스는 CCS 기술을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기술 목록 맨 윗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97쪽). 이미 현실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하는 풍력 발전과 태양 발전에는 그토록 인색하면서, 아직 완성조차 안 된 핵폐기물 처리 기술과 CCS 기술을 그토록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각국 정부는 풍력 발전과 태양 발전 같은 재생 에너지를 확대·보급하는 데는 인색한 반면, 핵 발전과 CCS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지원금을 준다. 그래서 환경운동가들은 풍력 발전과 태양 발전에 써야 할 세금이 핵 발전과 CCS 같은 엉뚱한 곳으로 몰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각국 정부가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기업과 시장이 지배하는 현재의 사회 구조에 가해지는 변화 압력을 최소화하고 오히려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기업의 구실을 강조하는 이 책이, 아직 시장 규모가 작고 미국·영국 등 전통적 화석연료 강국들이 주도권을 쥐지 못한 재생 에너지 대신 그 국가들이 주도하는 핵 발전과 CCS에 열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편, 기든스는 탄소 시장이나 배출권 거래제가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 평가하기 쉽지 않고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그것이 “비용 면에서는 가장 효율적으로 기후변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290~291쪽). 이는 배출권 거래제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활용할 수도 있다는 불철저한 태도다.
16 휘발유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납 성분을 제거한 무연 휘발유를 보급하는 데 중국과 일본은 각각 3년과 10년이 걸렸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는 미국에서 무려 23년이나 걸린 것도 배출권 거래제 때문이었다. 17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가 전통적 환경 규제보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1980년대에 산성비 문제가 불거지면서 각국이 아황산가스를 줄이고자 규제를 도입했는데, 석탄과 화력 발전 자본의 입김 때문에 미국만은 아황산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이미 1998년에 아황산가스 배출량을 90퍼센트 줄였지만, 미국에서는 2010년까지도 35퍼센트만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18 미국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했을 때 당장 제기된 문제도 오염 공장들이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가난한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지역은 환경 규제나 피해 보상에 드는 비용이 적기 때문에 공장들이 그리로 이동했고, 결국 미 정부 당국은 배출권 거래제 확대 시행을 재고해야만 했다. 19 이 과정에서 가난한 지역 주민들이 입은 건강상 피해는 도저히 비용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비용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말도 배출권 거래제를 이용해 기업들이 비용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1991년 세계은행의 한 수석 경제학자가 공해산업을 환경 규제가 까다로운 선진국에서 임금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옮기면 비용상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20 이는 배출권 거래제가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보여 준 것이고, 규제 회피가 배출권 거래제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저명한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 벗’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21
배출권 거래제는 국가 간 무역과 기업 유치 경쟁 때문에 일국적 규모로 시행했을 때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게 자명하다. 그러나 국제적 규모로 시행한다고 해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든스도 인정하다시피 국경을 초월하는 탄소 시장은 참여국들 간 경쟁 때문에 “어떤 특정한 실행 계획을 마련한다고 해도 그런 일이 실제로 시행되도록 감독하고 감시하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78쪽). 또, “권력이나 국제 관계의 미묘한 속성” 때문에(292쪽) 먼저 참가국들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내야만 한다는 난관이 있다. 최근 유럽의 배출권 거래제를 둘러싼 논쟁은 그러한 난관이 녹록하지 않음을 잘 보여 준다. 경제 위기로 이산화탄소 배출권의 톤당 가격이 15유로로 폭락하자 영국 의회 환경감사위원회는 배출권 거래제가 녹색 산업 투자 자금 유입을 촉진하는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고, 녹색 산업이 발전하려면 배출권 가격이 톤당 1백 유로 이상이 돼야 한다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EU는 시장 개입을 거부했고, 시장 참여자들은 “시장 개입은 배출권 거래제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라며 EU의 결정을 환영했다.이렇듯, 효과도 불분명하고 비용 전가의 우려가 큰 배출권 거래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운동을 건설해서 정부가 기업들을 강력하게 규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효과적인 선택일 것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그리고 밑바닥 10억 명
기든스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선진국들 간에는 기후변화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 문제가 얽혀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북극해 자원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중국이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미군기지들이 자원이 풍부한 중동·중앙아시아·아프리카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299쪽). 그는 냉전이 끝난 1989년에는 국민국가들끼리의 힘겨루기를 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기대가 컸으나 오늘날 여전히 “주요 국가들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과 위상을 놓고 다투고 있다”(302쪽)고 통탄한다.
기든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EU, NAFTA, ASEAN, UN 같은 기구들을 강화해 효율적인 초국적 거버넌스가 구현되는 세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요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과 위상을 놓고 다투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자본주의 국제 기구는 이런 구실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UN은 세계 노동자·민중의 이익과 소망을 반영하는 기구가 아니라 강대국 간 투쟁의 장이다. 그래서 UN은 강대국들이 합의에 이를 때만 실효성 있는 세력으로 기능하고, 그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할 때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세력이 되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이 힘을 합쳐 해온 일은 침략 전쟁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들이 영향력과 위상을 놓고 다투는 것은 20세기 초 레닌이 분석한 제국주의의 근본적 특징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불렀다. 이 말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은 주요 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다툼이 계속될 것임을 뜻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역사의 종말” 운운했던 학자들의 세계 공동체 환상을 비판하면서 냉전 이후 다극화한 갈등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올바르게 전망할 수 있었다.
23 세계화로 말미암아 기업들이 더는 자국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과장된 것이다. 주요 다국적기업들의 투자와 판매는 자국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24
자본주의에서 국가 간 경쟁이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작동 원리인 기업 간 경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자국 내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기도 하지만 전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거대 기업들은 카르텔이나 독과점을 형성해서 국가 내 경쟁을 회피하는 대신 세계시장에서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 주력한다. 이러한 카르텔이나 독과점은 언제나 국가경쟁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 예컨대 미국 자동차 업계가 외국 자동차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SUV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하자, 미국 정부는 SUV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고 연비 제한과 안전 규정을 완화해 주었다.사실, 기후변화만큼 강대국 간 경쟁이 큰 해악을 끼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계획들은 하나같이 전 세계가 합심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하는 것들인데, 국제 경쟁의 압력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는 기업과 정부 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 하기 때문이다. 2009년 말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EU의 배출권 거래제가 2005년 이래 수년째 표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든스는 세계 정치에서 제국주의라는 핵심 고리를 간과한다. 그래서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밑바닥 10억 명’의 문제는 그들이 정치 수준이 낮고 시장을 비효율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며 선진국과 더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빈곤국들을 괴롭히는 내전과 테러리즘, 독재 정부, 부패가 마치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개입과 관계 없이 일어난 일인 양 묘사하면서 말이다.
25 전쟁 때문에 ‘테러리즘’이 득세하고, 부패로 악명 높은 자들이 미국의 지원 속에 권력을 잡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를 강탈한 이스라엘 국가를 승인해서 끝없는 분쟁을 낳은 것, 1991년 걸프전을 승인해 이라크인 25만 명을 학살한 것, 이라크에 13년 간 경제제재를 가해 어린이 50만 명을 죽게 만든 것, 소말리아에서 내전을 부추기고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은 26 모두 제국주의 열강들을 대표해서 UN이 저지른 일들이다. 27
그러나 기든스의 주장과는 달리 내전, 독재 정부, 부패, 테러, 빈곤은 강대국들이 제국주의적으로 개입한 산물이었지 그 나라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후진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바로 기든스 자신이 지지한기든스가 “기후변화로 야기된 최초의 전쟁”이라고 부른 수단 다르푸르의 사례는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후변화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제국주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라면 기꺼이 평범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도록 부추길 것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한 가뭄으로 목말라 하는 수단 다르푸르 유목민들에게 물과 식량이 아니라 무기를 줬다. 유전 지대를 차지하겠다고 인종적 편견을 부추긴 미국은 수십만 명이 죽은 내전 발발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기후정의 운동은 온실가스 배출 증가뿐 아니라 제국주의 개입에도 반대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것은 선진국들이지 다르푸르 같은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이 아니므로, 기후정의 운동은 난민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 선진국들이 국경을 개방하고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기후변화는 최빈국에 사는 ‘밑바닥 10억 명’뿐 아니라 선진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도 고통에 빠뜨릴 것이므로, ‘밑바닥 10억 명’을 위한 운동은 선진국 내에서 벌어지는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만나야 한다. 이러한 운동을 발전시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강대국들의 경쟁에 제약받지 않고 ‘밑바닥 10억 명’에게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기후변화 대책이다.
이 책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시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기술이나 제도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 특히 주요 국가 정부들의 문제라는 점을 들춰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러나 기든스는 종종 급진적 언사를 내뱉으면서도 시장을 대안으로 내세워 진정한 해결책에서 멀어진다. 시장은 기후변화의 핵심적 원인이자 해결의 결정적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국제 기구를 강화해 국가 간 경쟁을 초월한 세계 공동체를 이룬다는 대안도 자본주의 하에서는 비현실적이다. 이 책에서 재생 에너지나 지정학적 관계가 기후변화에 미칠 영향에 관한 ‘세계적 석학’의 의견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주
- 환경부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1천4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2008년 6월). 국무총리실 기후변화대책기획단,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 상세자료》(2008.9.19), 9쪽에서 재인용. ↩
- Anthony Giddens, ‘Did they foul up my Third Way?’, New statesman(2007.6.7). ↩
- 한규한, ‘‘뉴레프트’·‘제3의 길’은 없다’, 〈다함께〉 73호(2006.2.8). ↩
- 제임스 써플, ‘오스트레일리아 총선 — 전쟁·신자유주의 정권 또 하나가 쫓겨나다’, 〈맞불〉 67호(2007.12.1). ↩
- 우석영, ‘호주 양 정당의 기후변화 정책 충돌 소식을 접하며’, 〈레프트21〉 25호(2010.2.11). ↩
- 장호종, ‘기후변화와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②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 ‘친환경’ 광고 뒤에서 계속되는 환경 파괴’, 〈레프트21〉 16호(2009.10.10). ↩
- 같은 글. 쉘, 엑손모빌, 월마트, BP, 셰브런, 토탈, 코노코필립스, ING그룹, 시노펙, 토요타 순이다. ↩
- Larry Lohmann, ‘Carbon Trading — a critical conversation on climate change, privatization and power’, Development dialogue 48(2006.9), p. 181. ↩
- 장호종, 앞의 글. ↩
- 그린피스 웹사이트. http://www.greenpeace.org.uk/blog/climate/bps-wins-coveted-emerald-paintbrush-award-worst-greenwash-2008-20081218 ↩
- Jonathan Neale, Stop Global Warming – change the world(bookmarks), 2008, p. 231. ↩
- 에너지경제연구원, ‘주요국의 에너지 소비 비교’(2008.8). ↩
- Jonathan Neale, 앞의 책, pp. 65-66. ↩
- 같은 책, pp. 58-68. ↩
- 데저텍을 소개한 자료로는 ‘720조 원 프로젝트 ‘데저텍’ 본격 착수’, 〈조선일보〉(2009.7. 16)가 있다. ↩
- Larry Lohmann, 앞의 글, pp. 108-109. ↩
- 같은 글, p. 85. ↩
- 존 벨라미 포스터,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책갈피, 2007, 101~103쪽. ↩
- 같은 책, p. 123. ↩
- 온실가스 관련 산업 소식을 전하는 Carbonpositive 웹사이트(2010.2.9) http://www.carbonpositive.net/viewarticle.aspx?articleID=1873 기후변화대응기술정보센터 웹사이트(http://www.cctech.or.kr/trend/poli01_view.asp?idx_no=1628)에서 번역 기사를 볼 수 있다. ↩
- Terry Macalister, ‘MPs propose carbon tax to boost green investment’, Guardian(2010.2.8). 무역·환경정보네트워크 웹사이트에서 축약 번역 기사를 볼 수 있다. http://ten-info.com/sub_modules/tei/dir_view.asp?dir=5&num=2663 ↩
- 알렉스 캘리니코스, ‘부록: 마르크스주의와 오늘날의 제국주의’, 《역사의 복수》, 백의, 1993. ↩
- Jonathan Neale, 앞의 책, pp. 143-144. ↩
- 크리스 하먼, 《세계화 때문에 국가는 덜 중요해지는가?》, 다함께, 2005, 37쪽. ↩
- Anthony Giddens, 앞의 글. ↩
- 한상원, ‘유엔의 추악한 역사’, 〈다함께〉 16호(2003.10.4). ↩
- Jonathan Neale, 앞의 책, pp. 233-2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