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정치적 올바름’ 논쟁 *

MARX21

  • 출처: John Molyneux, ‘The ‘politically correct’ controversy’, International Socialism 61 (Winter 1993).

  1. P. Berman (ed.), Debating PC: The Debate over Political Correctness on College Campuses (New York 1992), p. 5. 이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 어빙 하위, 스탠리 피시, 디네시 디수자 그리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글들을 포함해 미국 정치 스펙트럼을 망라해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글들을 종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핵심적인 자료이다.
  2. J. Searle, The Storm over the University, 같은 책 p. 86.
  3. L. Selfa and A. Maass, PC: What’s Behind the Attack on Politically Correct? (Chicago 1991), p. 5.
  4. D. D’Souza, Illiberal Education (New York 1991), p. 251.
  5. “디수자는 훌륭한 절제와 예의를 갖추면서 냉철한 분석, 원칙적인 판단, 사려 깊은 제안, 인간적인 연대를 흔치 않게 조합한 유익한 글을 썼다”, 마르크스주의자 출신이자 《요단강아 흘러라: 노예들이 만든 세계》의 저자 유진 제노비스가 《독단적 교육》의 책 커버에 쓴 글에서 인용.
  6. L. Selfa and A. Maass, op. cit., p. 2.에서 인용
  7. 위의 Debating PC의 N. Hentoff, “Speech Codes” on the campus and Problems of Free Speech, p. 2.를 보라.
  8. 같은 책의 I. Howe, The Value of Canon를 보라.
  9. 같은 책의 E. Said, The Politics of Knowledge. 사이드는 또한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진행한 심야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대자로서 소개됐고, 그 입장에서 주장했다.
  10. 같은 책 P. Berman, p. 5.
  11. R. Hughes, Culture of Complaint – The Fraying of America (New York 1993), p. 11.
  12. 내 추측에는 이런 세련된 매력으로 인해서 휴즈의 책이 소셜리스트 리뷰(1993년 7~8월)에서 비교적 무비판적으로 서평된 것 같다.
  13. I. Kristol, The Tragedy of Multiculturalism, Wall Street Journal, 31 July 1991.
  14. 앞의 책 L. Selfa and A. Maass, p. 3.을 보라.
  15. E. Genovese, Heresy Yes – Sensitivity No, New Republic, 15 April 1991, p. 30.
  16. Faulty Attitudes and Characteristics: Results of a 1989–90 Survey,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8 May 1991, A16–A17, 앞의 책에서 L. Selfa, p. 9에서 인용.
  17. 앞의 책 R. Hughes, p. 56.를 보라.
  18. 제프리스는 얼음 인간(백인)과 태양 인간(흑인) 이론을 내세운 흑인 중심주의 저자다. 로던버그는 교과서 《인종차별과 성차별: 통합적 연구》의 저자이자 뉴저지 윌리엄 패터슨 대학의 철학과 여성학 교수이다. 흑인 교수 조직은 1990년에 텍사스대학교에서 ‘다문화주의’를 둘러싼 분란에 휘말렸었다.
  19. 앞의 책, R. Hughes, p. 16.
  20. 이는 우파가 주도해 온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한 것일 테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다문화주의와 인종차별 반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분명히 하는 휴즈 같은 사람은 분명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휴즈의 문제는 그가 1960년대의 실질적인 성과들이 쉽게 얻어진 것처럼 여기고, 극단적이거나 혁명적인 방법을 포함한 투쟁으로 쟁취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오류로, 문화적·지적 풍토가 합리적 논쟁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 세력의 충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휴즈의 의도가 뭐가 됐든, 반동 세력에게 도움과 위안을 주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21. 이러한 접근 방식의 한 예는 앞의 책에서 M. Berbe의 Public Image Limited: Political Correctness and the Media Big Lie in Debating PC이다. Berbe는 블룸과 킴볼, 디수자를 훨씬 능가하고 있지만, 그의 글은 본질적으로 언론의 허위 보도에 맞서서 ‘젊은 교수진’을 옹호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다른 예시는 같은 책의 P. Rothenburg가 쓴 ‘Critics of Attempts to Democratise the Curriculum are waging a Campaign to Misrepresent the Work of Responsible Professors’를 보라.
  22. 예컨대, 같은 책의 M.K. Asante, Multiculturalism: An Exchange를 보라.
  23. 같은 책 E. Said, pp. 173–174.
  24. 같은 책 B. Ehrenreich, The Challenge for the Left, p. 335.
  25. ‘계급주의classism’라는 용어는 정치적 올바름의 발명품 중 가장 반갑지 않은 용어 중 하나인데, 이는 계급 착취라는 물질적 관계를, 계급적 편견이라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현상, 즉 속물근성으로 축소하는 경향(물론 영국 보수당 총리였던 존 메이저를 비롯한 부르주아지와 그 옹호자들이 내세운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계급 개념, 특히 ‘계급 투쟁’에서 이론적으로 후퇴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반대하면서도,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계급주의’를 긍정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26. 디수자는 그가 “캠퍼스 내 피해자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반복해서 공격하지만, 사실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 압력이다.
  27. R. Polenberg, One Nation Divisible: Class, Race and Ethnicity in the United States since 1938 (New York 1980), p. 271.
  28. 같은 책, 1970년과 1977년 사이에 ‘흑인 학생 수는 두 배 이상이 됐다’, p. 276.
  29. ‘1975년, 흑인 고등학교 졸업생의 32퍼센트가 대학에 등록했다. 1988년에는 흑인 고등학교 졸업생의 28.1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했다. 같은 기간 동안 백인 등록률은 32.4퍼센트에서 38.1퍼센트로 증가했다’. 같은 책 L. Selfa and A. Maass, p. 12.
  30. 앞선 책 D. D’Souza, p. 51. 디수자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아시아인의 학문적 ‘초과 성취’를 이용해 인종차별이 ‘올바른’ 가치관과 근면에 대한 헌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아시아인’의 문화적 특성으로 간주된다. 사실은 아시아인의 성취는 계급과 상관관계가 있다. 미국의 다른 소수 인종(흑인, 라틴계 등)과 달리 아시아계 인구는 중산층 인구가 많은데, 이는 노동계급 아시아인보다 중산층 아시아인을 선호하는 미국의 이민 정책 때문이다.
    1990년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아시아계 가정 10곳 중 4곳은 연간 소득이 5만 달러 이상이며 25세 이상 아시아인 중 비슷한 비율(39퍼센트)이 4년 이상의 대학 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대선에서 아시아계 유권자의 3분의 2가 부시에게 투표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대학교에 입학하는 아사아계의 비율은 캘리포니아 내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아시아계 학생의 비율보다 3배 이상 높으며, 이는 라틴계 학생의 입학 비율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A. Hacker, Affirmative Action: The New Look, New York Review of Books, October 12, 1989, pp. 63–65을 보라.
  31. 앞의 책 L. Selfa and A. Maass, p. 10을 보라.
  32. 과거 미국 대학에서 백인의 우위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가장 오래되고 명성이 높은 하버드대학교에서 3세기 이상 동안 종신직 교수 중 흑인은 단 두 명뿐이었다는 사실로 잘 드러난다.
  33. 앞의 책, L. Selfa and A. Maass, p. 17.
  34. 앞의 책 N. Hentoff, “Speech Codes” on Campus and Problems of Free Speech, Debating PC.
  35. 앞의 책 S. Fish, in Debating PC, pp. 231–232.
  36. L. Trotsky, The Revolution Betrayed (London 1967), p. 104.
  37. L. Trotsky, In Defence of the October Revolution (London 1971), p. 28. [국역: 《10월 혁명》, 아고라, 2017]
  38. 볼셰비키는 혁명 한참 후에도 공산당이라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이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39. 이런 경향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보려면 A. Callinicos, Is There a Future for Marxism? (London 1982) [국역: 《마르크시즘의미래는 있는가》, 열음사, 1992] and Against Postmodernism (Cambridge 1992) [국역: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의 비판》, 책갈피, 2014]을 보시오.
  40. D. Spender, Man Made Language (London 1980), p. I.
  41. K. Marx and F. Engels, The German Ideology (London 1985), p. 37. [국역: 《독일 이데올로기》, 두레, 2015]을 보시오.
  42. 로마인(집시)보다 더 소외되고 억압받는 집단을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내 고향인 포츠머스(포츠머스만 그런 것은 아니다)의 은어에는 노동계급 내에서 널리 사용되는 수많은 로마인 언어들이 있다. 예컨대, 딘로(‘바보’라는 뜻), 차리(‘아이’), 무쉬(‘멍청이’), 초어(‘도둑질’), 복(‘행운’ 또는 ‘불운’), 쿠슈티(‘좋다’, ‘괜찮다’).
  43. 앞의 책 B. Ehrenreich, in Debating PC, p. 335.
  44. 예컨대, Engels to J. Bloch, 25 Sept 1890, in Marx, Engels, Selected Works II (Moscow 1962), p. 488.을 보라.
  45. 앞의 책 K. Marx and F. Engels, p. 64를 보라.
  46. 디수자와 휴즈는 모두 노예 무역에서 아프리카인 공범자들과 아랍의 관행을 상당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D. D’Souza, 앞의 책, 76-77쪽, R. Hughes, 앞의 책, 140-147쪽 참조). 실제로 휴즈는 “아프리카, 이슬람, 유럽이 모두 흑인 노예제도에 참여했지만 ... 유럽(여기서는 북아메리카를 포함)만이 노예제 폐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146쪽)는 것을 근거로 노예제 논쟁을 서구의 특별한 장점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휴즈는 경제학과 투쟁보다는 문화에 초점을 둔 탓에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다시 놓치고 있다. 첫째, 서구의 노예무역과 노예제 폐지는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예제가 적합하지 않은 산업 자본주의로의 전환, 즉 북부 산업 주와 남부 농장 기반 주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그는 산도밍고에서 투생 루베르튀르가 주도한 것과 같은 노예 반란의 역할을 무시한다.
  47. L. Trotsky, Literature and Revolution (London 1991)를 보시오. 그리고 L. Trotsky, On Literature and Art (New York 1970)에서 특히 ‘Class and Art’, pp. 63–82.를 보시오.
  48.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 (Harmondsworth 1968), pp. 258–262.를 보시오.
  49. 이에 대한 주요한 예외이자 대학에서 정치적 올바름의 주요 사례는 전국학생회연합NUS의 상층부에서 발생해 왔다. 최근 몇 년 동안 NUS 회의와 NUS 기구는 광적인 형식주의와 정체성 정치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이는 전반적 정치와 학생 투쟁 모두의 우경화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은 직접 행동이나 모든 종류의 격렬한 정치 행동을 ‘마초적’이고 ‘위협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거의 의도적으로 혁명적 좌파에 대항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50. Socialist Worker, 31 July 1993.
  51. M. Phillips, Oppressive Urge to Stop Oppression, the Observer, 1 August 1993.
질문/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