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논쟁 *
미국에서 몇 년 동안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쟁은 영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선정적인 언론들은 늘 그들이 하던 방식대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좀 더 ‘진중한’ 기자로 여겨지는 사이먼 호거트[〈가디언〉지 칼럼니스트]나 멜라니 필립스[〈가디언〉지 칼럼니스트이자 대중 평론가]도 정치적 올바름 반대에 올라탔다. 그런데 대체 정치적 올바름이 뭔가? 정치적 올바름은 대문자PC로 표기되지만 조직도, 캠페인도, 심지어 운동도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의 주요 리더로 여겨지는 사람도 없고, 공식적이거나 심지어 비공식적인 강령이나 선언도 없다. 정치적 올바름의 전형적 견해로 꼽을 만한 핵심적인 이론적 글을 찾을 수도 없다. 최대한으로 보자면, 아마도 정치적 올바름은 어떤 추세, 문화 현상, 흑인·여성·동성애자 운동의 어떤 측면들에서 영향을 받은 일련의 태도와 행위라고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도 [그 지지자들이]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표현은 원래 좌파가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폴 버먼[미국의 저술가]은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말은 원래 레닌주의 좌파 사이에서 당의 기본 방침을 확고부동하게 지키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였다. 이후 당에 문제 의식을 가지게 된 좌파들이, 당의 정책을 너무 열렬히 지지해서 꼴사나운 사람을 지칭할 때 비꼬는 표현으로 발전했다. 이런 표현이 정치적 올바름 논쟁과 관련을 맺게 된 것은, 급진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에 담긴 역설이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분석은 정치적 올바름을 괴물 같은 것인 양 공격하고 있는 우파를 먼저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돌이켜 보면, 우파이자 시카고대학의 철학자인 앨런 블룸이 1987년 그의 저서 《미국 정신의 종말》에서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60년대 학생 저항과 그 결과물뿐 아니라 락 음악도 비난하는 꽤나 기이한 이 책은, “이성의 고향”이며 편견 없는 진리 추구의 산실인 대학, 특히 미국 대학이 급진 ‘상대주의자들’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괴상한 책이 정치적 올바름 반대 운동이라는 성전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음에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6개월 동안이나 1위에 오르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블룸의 성공은 출판업자들과 잠재적 작가들에게 의심의 여지없는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고등교육의 현 상태에 대해서 근거 없는 불안을 자아내는 장황한 제목의 책을 쓰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3 디수자의 책이 그런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부분적으로 저자의 정치적 명민함 덕분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공격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실제 정치적 입장보다 훨씬 왼쪽의 관점을 채택했다. 디수자는 미국 레이건 정부의 정책 고문이자, [미국 기독교 우파의 대부] 제리 폴웰의 전기를 쓴 강경 우파다. 그러나 《독단적 교육》에서 그는 자신이 마틴 루터 킹을 존경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흑인 학생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정치적 지주들에게 ‘진보’라는 말은 상대편 민주당을 도발할 때나 쓰는 비하 표현이었다. 그런데 디수자는 자신이 진보적 교육을 방어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라 그는 입발린 그럴듯한 어조로, 자신은 ‘온건한 제안’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4 그렇다고 그 책의 본질적인 우파적 성격이 전혀 바뀌진 않지만, 그럼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유진 제노비스 같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5
교육 저널리스트 로저 킴볼의 책, 《좌파 종신교수들 : 어떻게 정치는 우리의 고등교육을 붕괴시켰는가》와,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의 성경’이 된 디네시 디수자의 《독단적 교육 : 대학 내 인종과 성의 정치》가 블룸의 뒤를 이었다.6 부시가 전 교육장관인 윌리엄 베넷과 린 체니 국립인문재단 이사장(딕 체니 국방장관의 처이다) 등 공화당 유력 인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올바름 공격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점잖은 말투였던 블룸, 킴볼 그리고 디수자의 뒤를 이어서, 〈뉴스위크〉, 〈뉴욕타임즈〉, 《뉴욕리뷰오브북스》, 《뉴리퍼블릭》, 〈빌리지보이스〉, 〈월스트리스저널〉과 거의 모든 미국의 주요 신문과 잡지, 혹은 주요 학술지 등도 반쯤은 논란을 더 부추기고, 반쯤은 논란에 올라타는 글을 쏟아냈다. 오래잖아 게으른 조지 HW 부시조차도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공격에 동참하는 것이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조지 부시는 1991년 5월 미시간대학교의 학생들을 언급하며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표현의 자유 특권을 남용하고, 시민들을 계급과 인종으로 서로 반목하게 한다’라고 비난했다.이 짧은 글에서 보수적 캠페인에서 제기되는 주장을 모두 소개하거나 요약적으로라도 모두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주장들의 핵심 메시지는 비교적 쉽게 요약할 수 있다. ‘인종과 성의 정치에 집착해 신성한 미국 학계의 전통과 고등교육을 파괴하고 있는 급진적 교수(강사)와 학생 운동가들의 새로운 동맹이 미국의 대학을 정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급진파들의 핵심 무기로는 적극적 우대조치(지금까지 과소대표된 인종적 소수 학생(기본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을 적극적으로 입학시키는 조치)가 거론된다. 이것이 학술적 수준을 끌어내리고, 커리큘럼을 변화시켜 서구 문명과 문화 규범을 공격하려 하고, 인종과 성 차별을 금지하는 언어 규범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좌파의 반란 시도로 대학이 전체주의적 무관용 요새로 바뀐다고도 주장한다. 그리고 인종적 적대감이 더 커지고, 정직한 학술적 연구들이 억눌리고, ‘평범한’ 학생과 ‘온건’하거나 전통적인 교직원들이 정치적 올바름 광기에 지속적으로 억눌리고 괴롭힘에 시달릴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쟁점들을 다루기 전에, 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으로 보이는 문제들,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 관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에서의 논쟁이 우선적으로 대학이라는 좁은 지형에서 벌어지고 있고, 오직 제한적으로만 다른 부문(중등, 초등학교나 문화예술 등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영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쟁은 주로 다른 곳에서 벌어진다. 예를 들면 공공서비스 같은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언급하도록 하겠다.
둘째, 영국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쟁점은 이른바 완곡어 개혁(키가 작은 사람을 ‘수직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으로 부르는 것 등)인데 이것은 논쟁에서 하나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할 뿐 가장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곳은 아니다. 적극적 우대조치와 문학적 유산을 둘러싼 싸움이 더 중요하다.
7 , 베테랑 사회민주당원인 어빙 하위 8 그리고 가장 놀랍게도 《오리엔탈리즘과 문화 그리고 제국주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도 그러한데 9 ,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정치적 올바름주의자로 여겨 왔을 것이다. 폴 버먼은 이렇게 썼다. 10
셋째,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이 명백하게 우파에 의해 시작되고 우파가 지배하는 것임에도, 최근으로 올 수록 놀랄만한 쪽에서도 일부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나는 이미 위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유진 제노비스 사례를 언급했다. 그런데 좌파 중에서도 적어도 중도좌파인 사람 중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에 무게를 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빌리지 보이스〉의 냇 헨토프“일부 자유주의자와 전통적 좌파들이 신보수주의자와 같은 견지에서 꽤 많은 주장을 내놓는 상황은 새로운 현상이며 어쩌면 꽤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이전에는 좌파 대 우파로 깔끔하게 나뉘어 논쟁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로버트 휴즈의 역할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는 현대 미술의 역사에 대한 베스트셀러 《새로움의 충격》의 저자이자 〈타임〉지 미술 비평가다. 1993년 휴즈는 《불평의 문화 – 손상된 미국》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는 논쟁에 꽤나 독보적 기여를 했다.
11 둘째로 디수자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휴즈는 오직 좌파만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견고한 ‘상식적’ 자유주의 입장에서 좌파의 정치적 올바름과 우파의 ‘애국적 올바름’(1992년 선거 전 공화당 전당대회를 주도했던 팻 로버트슨, 팻 뷰캐넌, 제시 헬름스 같은 인물)이 서로 거울 이미지라고 똑같이 비판한다. 즉, 둘 다 미국의 옛 청교도주의자들이 행한 마녀사냥과 속죄양 삼기의 후예라는 것이다. 셋째로, 이 주제를 다룬 대다수 글과 대조적으로, 휴즈는 열정적이고 세련되게 주장을 펼쳐 나가서 그의 주장 몇 가지에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그 주장에 미혹되기 쉽다. 12 하지만 이런 특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출판된 맥락과 시점을 고려하면, 《불평의 문화》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큰 공격으로 주되게 간주될 수밖에 없다.
첫째로, 휴즈는 대학에 맞춰진 논쟁의 초점을 미국 문화 전반으로 넓혔다. 그는 미국 문화가 ‘유아적인 불평 문화’, ‘피해자 의식과 구원이라는 두 물신숭배로’ 양극화된 ‘망가진 정치체제’가 됐다고 본다.이렇게 해서 정치적 올바름 반대자들은 정치적으로 극우부터 자유주의적 좌파까지 포함해 미국 언론의 거의 모든 층위에 강력하게 포진돼 있다.
부시의 1992년 선거 패배는 정치적 올바름 반대자들의 맥을 빠지게 했다. 부시는 ‘가족 가치’ 같은 보수적 문화 주제를 다시 꺼내 들어서 재선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이 집중한 쟁점의 중요성은 여전히 남았다. 1993년 6월, 빌 클린턴은 진보적 흑인 민권 운동 활동가를 [법무부 법무차관] 후보로 지명했다가 우파들이 그녀를 “할당제 여왕”이라며 비난하자 이를 철회했다. 그리고 대학 내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최근 데이트 강간에 반대하는 여성들에게 ‘성적 올바름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사회주의자들의 응답
13 조지 윌은 고등교육의 정치화에 반대하는 전쟁이 이라크 전쟁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4 또한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흔한 비난 하나는 정치적 올바름이 새로운 매카시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990년 12월 《뉴스위크》는 “새로운 계몽주의인가 새로운 매카시즘인가?”라는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주요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내걸었다. 유진 제노비스가 여기에 호응하기까지 몇 달 밖에 안 걸렸는데, 제노비스는 “나는 오늘날 보수적 동료들이 새로운 매카시즘을 마주하고 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떤 점에서 이는 기존 매카시즘보다 더 효과적이고 악랄하다”고 말했다. 15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에 대해 사회주의자는 찬반 양측의 사회적 기반과 정치를 살펴보며 논쟁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작업장·대학 등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논쟁이 벌어지는 어떤 곳에서든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쟁점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 캠페인이 사용하는 레토릭(수사)과 그 공격 대상에 맞지 않게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어빙 크리스톨은 〈월스트리저널〉에서 “다문화주의가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만큼이나 ‘서방에 대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정치적 올바름이 일종의 매카시즘이라는 혐의 제기는 그런 말을 하는 우파 활동가들이야말로 위스콘신주 상원 의원(조지프 매카시)의 명백한 정신적 후계자라는 점에서 얼토당토 않는 모순인데다가, 정치적 올바름 세력의 힘을 황당무계하게 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카시즘은 최고조였을 때 [의심만으로] 바로 의회에 기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고, 할리우드부터 교육과 학계 각계각층에서 공산당과 좌파로 의심되는 수천 명을 해고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강제 추방, 구금과 망명으로 내몰았다. 반면, 단 한 명의 학자도 정치적 올바름 활동의 결과로 쫓겨나지 않았다. 진정한 매카시즘은 폴 로브슨[미국의 성악가이자 흑인민권운동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서 밀러를 기소할 수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찰리 채플린 같은 수준의 인물도 그 표적으로 삼을 수 있었다. 만약에 정치적 올바름이 그에 비견할 만한 힘이 있었다면, 아놀드 슈워제너거를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려보내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일자리를 뺏고 오스카상을 못 타게 막았을 것이다.
심지어 더 정제된 표현으로 정치적 올바름 문화가 이제 미국 대학을 점령했다고 하는 디수자나 킴볼의 주장도 순전한 거짓말이다. 디수자의 책은 그 논리 구조가 황당한 과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선 그는 어떤 정치적 올바름 행위가 문제라고 제시한 후, ‘사례 연구’라며 특정 대학에서 있었던 일(‘버클리의 입학 정책’, ‘스탠포드의 다문화주의’ 등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사례들이 미국 고등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처럼 말한다. 이것은 마치 누군가가 요크셔 리퍼, 데니스 닐슨, 무어 살인 사건의 범인들[모두 끔찍한 연쇄 살인마들]의 사례 연구를 기반으로 영국의 범죄 상황을 묘사하는 것과 다름없다. 킴볼과 디수자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미국 대학(영국이나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은 그들 자체가 기업이고, 또 거대 기업과 국가는 물론 군대와도 수천 가닥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기본적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할 것이다. 급진 페미니스트, 흑인 급진주의자, 사회주의 좌파, 신마르크스주의자와 그 동조자들은 미국의 대학을 운영하지 않고, 혁명 전에는 그걸 운영하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사람들은 대학에서 하급 지위에 집중돼 있고 작은 영향력만을 가지고 있다. 고등교육 조사 기관이 미국 392개 대학의 교수 3만 5000명을 대상으로 한 1989~1990년 설문에 따르면, 40퍼센트가 스스로를 ‘중도’라고 규정했고, 37퍼센트가 ‘자유주의’, 18퍼센트가 ‘보수’로, 그리고 5퍼센트만이 ‘급진 좌파’라고 규정했다.
17 여전히 이런 과장을 잘 하는 경향이 있다. 《불평의 문화》의 핵심 약점은 정치적 올바름과 애국적 올바름[둘 다 영어로는 ‘PC’라고 쓴다]을 도덕적으로나 중요성 면으로나 동등하게 문제적이라고 전제한다는 것이다. [진보파 교수인] 레오나드 제프리스, 폴라 로던버그 혹은 텍사스대학교 내 흑인 교수 조직 18 이 제리 폴웰, 팻 부차넌 혹은 윌리엄 베넷(조지 부시는 말할 것도 없다)과 미국 사회에서 대등한 위상과 힘을 갖는다고 상상하는 건 황당하다. 이런 오류는 휴즈가 경제를 배제하고 문화 면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휴즈는 그가 발견한 ‘미국의 손상’이, 기자나 학자, 정치인의 특정 언급이나 태도 이상의 것, 즉 미국 자본주의의 지속적 위기의 산물임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휴즈는 열렬히 자기 주장을 옹호하다가 그 자신도 과장의 함정에 빠진다. 〈빌리지 보이스〉가 후원한 낙태 쟁점 토론회를 낙태 찬성 진영이 훼방 놓은 것을 개탄하면서, 그는 곧장 “군화, 재갈 … 돌격대의 고함소리” 같은 파시즘의 형상을 언급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19
로버트 휴즈조차도 제노비스의 매카시즘 운운이나 과장스러운 주장과 거리를 뒀지만그러나 과장과 공포 부추기기는 우파적 생각과 프로파간다의 흔한 특징이다. 매카시가 미국 군대 내 공산당 영향력에 대해 과대망상을 한 것이나 이민자 수에 대한 지속적인 인종차별적 과장, 그리고 ‘위대한’ 영국의 문화가 다 ‘잠식’될 것이라는 공포를 부추기는 세력들, 영국 노동당 내 극단적 세력[좌파]의 영향력에 대한 히스테리를 생각해보라.
물론, 우파의 머릿속에는 언젠가는 지옥문이 열려서 그들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피해망상이 진심으로 어느 정도 있다. 또한 이들이 생각하기에 결코 도전받아서는 안 될 성스러운 전통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충격받은 점도 있다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좌파의 힘을 과장하는 것(특히 좌파가 상대적으로 약할 때)은 또한 [우파] 캠페인의 진정한 목적을 감추고, 우파적 관점에 대한 ‘온건한’ 지지층을 획득하는 전략적 기능을 한다. 사담 후세인을 새로운 히틀러라고 악마화한 것은 석유 통제를 위한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매카시의 반공 마녀사냥은 노조운동과 뉴딜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가리는 구실을 했다. 노동당 내 [좌파 그룹] 밀리턴트에 대한 공격은 토니 벤을 지지하는 ‘벤 좌파 운동’을 패배시키고 온건 좌파를 길들이는 데 사용됐다.
사회주의자들이 던져야 할 다음 질문은 그러므로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의 진정한 타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답은 꽤 간단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운동의 남아 있는 성과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공격은 지배계급의 ‘1960년대의 성과를 무로 돌리자’는 더 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여기에는 노동조합과 복지에 대한 공격, 마약과의 전쟁 및 도시 중심가 슬럼의 범죄화, 그레나다·파나마·이라크·소말리아 침공을 통한 베트남 신드롬 극복하기 등이 포함된다.
1960년대(와 정확히는 1970년대 초)의 위대한 급진적 운동들, 흑인 운동, 학생 저항 그리고 반전 운동은 1970년대 중반 가라앉았다. 일부는 분쇄됐고 일부는 소진됐고 일부는 포섭됐다. 그러나 그 유산은 남았다. 물론 인종차별주의도 남았다. 그러나 법률, 문화, 인종에 관한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의식은 크게 변했다. 흑인들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말콤 엑스가 살해당했지만 잊힌 것은 아니었다. 또한 상당한 흑인 중간계급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흑인 혁명의 패배가 만든 조건이면서 대가이기도 했다. 여성 운동과 좀 더 작은 규모로 레즈비언과 게이 운동에서도 비슷한 영향이 있었다. 대학들도 바뀌었다. 대중적 학생운동은 가라앉았지만 1960년대를 살았던 교사 세대는, 심지어 활동가도 아니었거나 우파 쪽으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의기양양한 보수주의나 1950년대의 숨막히는 순응으로 단순히 회귀할 수는 없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 냉전 정치, 기능주의 사회학은 더는 ‘온건파’와 자유주의자에게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동시에 사회 변화와 적극적 우대조치의 조합은 학생인구가 더는 모두 백인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고, 그 자체로 불가피하게 커리큘럼에 새로운 요구들이 반영됐다. 우파들에게는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그레나다와 파마나 침공을 지적 수준에서 벌이는 것과 같았다. 인종과 성의 정치로 더럽혀지지 않은 상상 속의 엘리트 고등교육의 황금기로 시계를 되돌릴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올바름 전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우파에 맞서서 좌파와 같은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 지점에서는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방어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방어여야 하는가?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 내 과장과 왜곡을 이용해 무고함을 주장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즉, 이건 모두 우파의 위선을 보여주는 사례이고 특별히 정치적 올바름에는 급진적이거나 논쟁적인 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지는 학계 교수와 전문직처럼 선의를 가졌고 진보적이지만, 정치적 활동가가 아니고 단련된 정치적 관점이 결여된 이들에게 매력적이다.
22 이런 입장은 아마도 급진적인 흑인 민족주의자나 급진 페미니스트가 가장 수용하기 쉽다.
또 다른 방법은 정치적 올바름과 그 주장 일체를 공세적으로 옹호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정치적 올바름 전쟁이 인종차별과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맞선 최전선으로 본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모든 반대와 비판을 그저 은근한 편협함의 발현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백인 서구 문명’에 도전하는 것에 반발해 그런 편협함을 보인다며 말이다.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이 두 선택지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우선, 정치적 올바름 현상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범위가 제한적이고 문화적 분위기 같은 형태로만 존재한다 해도 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런 게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다. 정치적 올바름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 중 일부는 좀 관대하게 말해서 어리석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증언을 살펴보자. 사이드는 한 역사학 세미나에서 그의 책 《문화와 제국주의》의 일부 측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학회 주제는 ‘19세기 말 서구 지식에서 국제적 인식의 등장’이었고, 사이드는 이것이 온전히 발전한 국제 제국주의 관점의 등장과 일치했다고 주장했다.
내 요약 발표가 끝난 후 저명한 한 흑인 여성 역사학 교수가 첫 질문을 했다. 그는 최근 이 대학에 왔는데 그의 연구들은 나에게 그리 친숙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앞서서 자신의 질문이 적대적일 수도 있다고 알렸다. “사실 엄청 적대적일 것이다.” 그리고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글은 13페이지까지는 백인 유럽 남성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고, 그 후 14페이지에서야 당신은 유럽 사람이 아닌 이름을 언급하고 있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나는 다소 항변을 했다. 나는 유럽 제국주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의 연구를 포함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내 책에는 전 세계 제국주의에 대한 응수에 대해 꽤나 많이 말하고 있고, 그 중에는 CLR 제임스 같은 저자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내 비판에 대해서 CLR 제임스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내 답변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깜짝 놀랄 확신에 찬 답변이 돌아왔다!
유럽 중심주의에 반대해 온 성과와 입지가 분명한 사이드 정도의 학자가 이런 방식으로 비판받아야 한다는 점(물론 사이드에게는 다른 면에서 합당하게 비판받을 점이 있다), 그리고 그가 정치적 올바름 광신도들에게 공개적 항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고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천대와 편견에 맞선 모든 투쟁을 지지하고 공감하고, 일부 정치적 올바름 활동(또는 정치적 올바름으로 여겨져 공격받는 활동)도 그런 지지와 공감의 대상이다. 그러나 좋은 의도(또는 그리 썩 좋지는 않은 의도)를 갖고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비효과적이거나 심지어 역효과를 낳는 전략·전술·입장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회주의자들은 그것을 비판할 의무가 있다. 물론 우파와 같은 편에 서지 않으면서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기본 문제점은 궁극적으로 그것이 바탕한 사회적 위치에서 나온다. 핵심적으로 이것은 중간계급 현상이다. 그렇다고 노동계급 운동 내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안락하고 권위 있는 지위를 얻은 좌파, 흑인, 여성, 성소수자 운동 내 일부분에 사회적 뿌리를 두고 있다. 게다가 정치적 올바름의 핵심은 인종차별·성차별 반대 등등을 권위 있는 지위를 이용해서 위로부터 도입하려는 데 있다. 미국에서는 우리가 봤듯이, 정치적 올바름 문화는 대학에(특히 일부 엘리트 대학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나 학교 당국에 맞서 저항한 대중적 학생 운동과 주되게 관련 있지는 않다. 오히려 주로 권력 기관에 압력을 넣는 시도이거나 심지어 그들을 동맹으로 삼으려는 시도다. 그러므로 정치적 올바름은 고지식하고 점잔 빼는 걸 특징으로 한다.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 노동계급의 혁명적 분출이나 심지어 [1992년] LA에서처럼 차별 받는 사람들의 대중 항쟁[당시 흑인들은 주되게 한국인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대중 항쟁은 그 본성상 미조직되고 아직 교육받지 못하고 이전에 후진 부위였던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는데, 그들은 과거의 수많은 편견과 사고방식, 말투 등을 고스란히 가지고 운동에 들어온다.
24 전형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은 문화적 이상주의와 도덕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이는 노동계급 투쟁과 대중 투쟁과 유리돼 있는 지식인들이 빠지기 쉬운 죄악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너무 자주 그들이 반대하는 자들과 비슷한 오류를 저지른다. 교육과 문화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것, 물질적 조건과 생산관계를 무시하는 것 등등.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내가 정치적 올바름주의자라고 묘사한 학생들은 잠재적이든 현실에서 드러난 것이든 미세한 언어적 문제에는 매우 흥분하지만, 학내 노동자들이 조직하고 파업할 때 집단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건 본 적이 없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25 그러나 인종·젠더 평등을 노동계급 투쟁과 따로 떼어놓고 추구하는 것은, 그 주관적 의도나 언사와 크게 상관없이 개혁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객관적으로 흑인만으로, 또 여성이나 레즈비언과 게이만으로는 미국 자본주의와 그 권력 구조를 무너뜨릴 물질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강조점은 현존하는 자본주의 위계질서 속에 편입되는 것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불가피하게 이동하게 된다. ‘권리’와 ‘역량 강화’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올바름의 주요 전술은 도덕적 죄책감을 기초로 ‘억압자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적 올바름은 피해자 지위를 숭배하고 디수자와 휴즈는 그 점을 맹비난하는 것이다. 26 불행히도 미국 지배계급보다 이상주의적인 학생들이나 자유주의적 학자들이 이런 죄의식에 사로잡히기 훨씬 쉽다. 죄의식은 또한 노동계급 내 인종차별과 다른 여러 반동적 사상에 맞서는 데 매우 취약한 기초다. 백인 노동자 대중이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흑인 노동자와의 단결을 중시하는 의식을 깨치는 것은 공동의 계급 이익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이지, 노예제의 유산에 대한 죄책감을 통해서가 아니다.(애초에 백인 노동자 대중은 노예제에 책임이 없다)
정치적 올바름은 또한 그 제창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급진적이다. 혁명적이라기보다는 확고하게 개혁주의적이다. ‘인종, 젠더, 계급’이라는 정치적 올바름의 판테온[여러 신을 모시는 그리스 신전]에서 계급은 언제나 매우 보잘것없는 3등을 차지한다.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정치적 올바름 반대자들의 마녀사냥을 폭로하고 우파에게서 정치적 올바름을 방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만, 그 방어는 상당한 비판을 포함해야 한다. 여러 구체적인 쟁점을 살펴볼 때 필요한 지지와 비판의 정확한 조합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 우대 조치
디네시 디수자는 적극적 우대 조치와 관련한 쟁점(예컨대,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에게 입학 할당제를 실시하는 것들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공격의 중심으로 삼는다. 적극적 우대 조치는 앞서 봤듯이 미국 남부에서 짐크로 법이 폐지되는 것과 함께 1960년대의 매우 실질적이며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모호한 진보였다. 한편에서 이것은 왓츠부터 디트로이트에서까지 벌어진 도심 폭동과 블랙 파워, 공민권 운동에 대한 지배계급의 양보였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지배계급이 상당수의 흑인 중간계급을 만들어서 흑인 운동을 분열시키고 물리치려고 고안한 전략 중 하나였다. 이 전략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적극적 우대 조치에는 이런 모호함이 있지만, ‘흑인들이 오랫동안 미국의 교육과 사회에 내재된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차등 정책이 어느 정도 필수적’이라는 그 핵심 주장은 사회주의자들과 더 광범한 미국 좌파 모두가 일반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우파는 적극적 우대 조치가 도입될 때부터 그에 저항했고 또 반격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들은 ‘역차별’과 백인 개인의 권리 침해를 근거로 삼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우월주의자부터 북아일랜드 통합주의자까지 전 세계 인종차별주의자와 억압자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이 아주 티끌만큼이라도 피해자 처지에 있는 것같이 보이는 쟁점에는 엄청나게 예민하다는 것이다.
27 1990년에 부시 정부는 소수 인종 학생에 대해 대학이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재량권을 제약하려 했다. 그리고 적극적 우대 조치에 대한 대법원의 가장 극단적인 몇몇 공격을 되돌리기 위해 1992년 민주당이 이끄는 의회에서 통과시킨 시민권법안은 소수 인종 할당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결국 적극적 우대 조치는 살아남았지만 상당한 압력 속에서 그럴 수 있었고 그 규모도 줄어왔다. 그 결과 1960년대와 1970년대 흑인 대학생 비율이 대폭 늘어난 것에 비해 28 , 1980년대에는 흑인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29
1977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대 바키 사건이 미국 대법원에서 다뤄졌다. 앨런 바키는 데이비스 캠퍼스 의과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는데, 당시 학교는 100명 중 16명을 ‘차별받는’ 학생들에게 배정했다. 바키는 자신의 학업 성적이 16명의 ‘소수 인종’ 중 일부보다 높다는 이유를 들며 이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1978년 대법원에서 5대 4로 바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 애매모호한 판결이기도 했다. 법원은 공식적 차별 행위가 벌어진 바 없는 상황에서 “인종을 명시하며 분류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했다. 다른 한편, “대학은 학생 구성에서 다양성을 추구할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종을 입학의 “그저 한 요소”로 포함하는 건 허용 가능하다고 역시 5대 4로 판결했다.디수자가 공격을 개시한 건 적극적 우대 조치가 후퇴하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 디수자는 적극적 우대 조치를 다루면서 백인 다수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아시아계 미국인(일본, 한국, 중국 등) 학생들의 대변자를 교묘하게 자처하며, 나중에는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까지 대변하는 척 한다. 먼저, 그는 아시아인은 학구열이 높은 반면 흑인은 낮기 때문에, 소수 인종이 인구 비례에 맞게 대표되도록 애쓰는 버클리대학교 입학 정책으로 인해 고학점의 아시아계 학생들이 비슷한 점수의 흑인보다 입학 기회가 적다는 점을 개인 사례 연구와 통계를 들어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 우대 조치가 흑인 학생들에게 입학 자격에 대한 자격지심을 갖게 하고 입학 후 더 높은 실력을 가진 백인 학생들과 아시아계 학생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높은 중퇴율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적극적 우대 조치가 인종 간 긴장과 분리주의를 키우고 심지어 1980년대 말 미국 캠퍼스를 휩쓴 노골적인 인종 분쟁 사태를 낳았다고 말한다.
흑인과 히스패닉 분리주의 단체들은, 다른 인종 집단들과의 학업 준비도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불안에서 도피하는 공간이 됐다. 실제로 분리주의는 집단 심리 상담 같은 역할을 하는데, 적극적 우대 조처의 수혜자들은 캠퍼스에서 자신들의 어려움이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거의 대부분 만연한 혐오 때문이라고 스스로 정당화한다. 많은 백인과 아시아계 학생들도 동류끼리 뭉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데 자신들이 보기에 대학 당국이 후원하고 있는 차별로 인해 상처 받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그 중 몇몇은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어떤 경우든 함께 모이는 것을 볼 때마다 거의 억누르지 못한 분노로 반응하게 된다.
31 등이 적극적 우대 조치의 “필연적인”, “이해할 만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구조는 익숙하다. 독일과 영국에서 이민자가 너무 많이 살고 있어서 “우리의” 집과 “우리의” 일자리 등을 빼앗는 것이 문제라며 인종차별적 폭력을 “설명”하고 부분적으로 정당화하는 논리와 같다. 이런 가정은 만약 흑인이 줄어들면 인종차별도 줄어들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가정의 거짓됨은 이주와 이주 통제의 역사에서도 드러날 뿐 아니라 수세기 동안 거의 오직 백인만 있었지만 인종차별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던 미국 대학만 봐도 명백하다. 32 오히려 이런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것은 디수자 자신과 수많은 공화당 상원 의원, 적극적 우대 조처의 반대 운동 활동가들이다.
마지막 주장부터 얘기해보자. 디수자의 언어는 조심스럽지만 본질적으로 그가 말하고 있는 건 메사추세스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 학생을 공격했던 일이나 미시시피 대학에서 흑인 동아리 건물을 방화한 일디수자의 주장 중 아시아 학생들에 대한 불공평과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자존감 문제에 대해서 사회주의자들은 간단히 답할 수 있다. 평등한 고등교육을 모두에게 제공하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며 기각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게 왜 “비현실적”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 사회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미국 지배계급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고등교육이 모두에게 개방된다 해도 그것은 결코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미국은 경쟁적이고 계급으로 나뉜 사회이고, 여기에서는 교육의 주요 기능이 계몽과 모든 인구의 발전이 아니라 부르주아지와 중간계급을 추리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개혁보다 혁명을 선호해서 혁명가인 것이 아니다. 그들이 혁명가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악덕이 개혁이라는 수단만으로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한 체제가 아닌 이상 사회주의자들은 적극적 우대 조치를 계속 지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종차별주의자와 우파와 같은 편에 서는 것과 다름없으며, 흑인 학생과 히스패닉 학생으로는 이미 체제 안에 자리잡은 흑인과 히스패닉 최상층 중간계급의 자녀만 남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적극적 우대 조치와 더불어 흑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다른 차별받는 집단들의 보편적 교육과 더 광범한 사회경제적 조건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이들이 마주한 열악한 교육 환경은 자본주의 노예제도, 자본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인종차별이 축적된 결과다.
동시에 사회주의자들은 적극적 우대 조치로 쟁취할 수 있는 것에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적극적 우대 조치가 제공하는 최대치는 적극적 우대 조치가 없었다면 전혀 누릴 수 없었을 약간의 기회를 일부 학생에게 주는 것이다. 적극적 우대 조치로는 인종차별을 끝내지도 못하고 진정한 사회 평등, 심지어 고등교육 내에서의 평등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다. 심지어 적극적 우대조치 자체도 자신의 기준에 비춰 ‘완전히’ 공정하지는 못하다. 불평등하고, 인종차별적이며, 여성 차별적인 사회는 교육적 사회 공학이라는 수단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 교육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것을 형성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사회가 더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교육이 사회를 형성하는 것보다는 반영한다는 것이 더 크다는 필연적이고 물질적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오직 학생, 교사, 교수가 함께 참여하는 대중운동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은 반드시 노동계급이 이끌어야 한다.
스피치 코드(언어 규범)
언어 규범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 논의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다. 1980년대 말, 많은 대학에서 인종차별과 혐오 분출에 대응하기 위해 인종, 성, 성적 지향을 모욕적이거나 불쾌함을 유발하는 언사 — 아마도 ‘혐오 표현’이라는 말이 가장 정확한 서술일 것이다 — 를 징계하는 규범을 제정했다. 우파, 상당수 미디어, 영향력이 큰 미국시민자유연맹을 포함한 자유주의자들의 동맹은 이런 언어 규범이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특별한 지위로 모셔져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공격했다.
33 이런 자들은, 흑인이나 이주민 거주 지역에서 나치가 행진할 권리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옹호하면서 체계적으로 그 흑인들을 기소하고 좌파나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공격하는 경찰과 같은 구실을 정치적·지적 영역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수정헌법 1조를 들먹이며 대학의 언어 규범을 공격하는 자들 중 많은 수는 명백한 위선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혐오스러운 인종차별조차 방어하려고 달려드는 자들은 종교 반대, 좌파, 성적으로 솔직한 말에 대해서는 검열을 요구한다. 공화당 헨리 하이드가 좋은 사례인데, 그는 의회에서 언어규범을 불법화하는 법안을 지지했는데 또한 ‘성조기 불태우기를 금지하는 개헌안을 지지하고, “동성애적” 예술에 대해 연방의 지원을 금지하는 법안을 지지하고,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클리닉에서 낙태 상담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지지한다.’34 , 그는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 원칙으로 믿는 진정한 자유주의적 입장을 드러낸다. 그래서 지적으로 다뤄야 할 논점도 있다. 문학 이론가 스탠리 피시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좋은 일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존 밀턴의 사례를 든다.
그러나 모든 언어 규범 반대 캠페인이 이런 카테고리에 같이 묶이는 것은 아니다. 〈빌리지 보이스〉, 〈워싱턴 포스트〉, 《뉴요커》에서 “대학 내 표현의 자유 반대 경향을 3년 동안 보도”해 온 냇 헨토프 같은 사람도 있는데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 결론 부분 즈음에서, 이제껏 표현의 자유와 수정헌법 1조에 대한 모든 논의마다 관용과 규제되지 않은 출판의 미덕에 대해서 칭송했던 것에서 돌연 태도를 바꿔 이렇게 말한다: 물론 가톨릭 신자에게 이런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도를 절멸해야 한다. 모든 종교와 시민적 우위를 파괴하는 가톨릭 나부랭이들과 공공연한 미신은 관용은커녕 파괴돼야 한다.
피시의 주장은 정교하다. 실제로 아무런 제약 없이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사회가 가능할지조차 모르겠다. 분명히 현대 미국과 영국, 다른 부르주아 민주주의 나라들에서 표현의 자유 규제가 상당수 존재한다. 첫째로 영국의 공직자 비밀 엄수법, 명예훼손죄, 폭동이나 폭력 선동죄, 신성모독죄 등등 법적 제약이 있다. 더 중요하게는 무수히 많은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체계적 규범들이 있다. 병사가 상관에게, 아동이 교사에게, 학생이 대학 총장에게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다고 상상해봐라. 많은 고용주들은 노동자가 직장 밖에서 거론할 수 있는 것을 제약하고 언론을 찾아가지 못하게 제약한다. 이러한 제약은 일반적으로 권위에 대한 존중, 또는 회사를 분쟁에 끌어들이지 않기, 상호간의 매너 문제로 표현되지만, 엄연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다. 거의 모든 자유주의자의 문제점은 그들이 “절대적” 원칙이라고 떠받드는 것이 이렇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꺼지라고 해서 해고당하거나, 피고가 재판장에게 재수 없는 늙은이라고 해서 법정 모욕으로 구금된다면 그건 정상이고, 학생이나 교수가 인종이나 성에 대한 혐오 표현을 써서 징계를 받으면 표현의 자유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절대론자들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문제는 말과 행위 사이에 절대적 구분선을 긋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협박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건 일반적으로 범죄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전적으로 말로 이뤄져 있다: “1000파운드를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수치스러운 비밀을 언론에 까발리겠다.” 만약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인이 고의적으로 인종차별을 선동했다고 해보자. 그/그녀가 길거리에서 사람을 팬 깡패보다 죄가 덜할까?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적 욕설은 말과 행동 사이의 경계에 있다. 많은 경우 이런 혐오 표현은 폭력과 연관되고 폭력으로 이어지거나, 폭력만큼 상처와 모욕감을 주는 상황을 낳는다.
모든 것을 고려해 봤을 때,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혐오 표현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게 명확하다. 더욱이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그들이 모든 차별에 맞서 싸우도록 해야 하고, 그런 만큼 이런 역겹고 분열적인 말에 더더욱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말해 모욕적 언사에 대해서 싸우는 것은 방어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비판적 방어는 아니다. 언어 규범에는 사회주의자들이 못 본 척할 수 없는 약점이 많다. 첫째로 특정 표현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게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규범은 아래로부터 제기되기보다는 보통 대학 행정 당국에 의해 도입되거나 제안되고 결과적으로는 행정적으로 집행된다. 이 점 때문에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언어 규범이 대학의 다른 권위적 구조나 징계 절차와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면서 그 취지가 손상되고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치적으로 노련한 우파는 어떠한 언어 규범도 빠져나갈 수 있는 반면, 비정치적이고 투박한 학생들이 오히려 이를 위반하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특히 언어 규범이 기계적이고 현학적으로 적용되면 더욱 그러기 쉽다. 그런 사례들은 우파와 미디어에 의해 포착돼서 인종차별 반대와 성차별 반대 운동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이용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언어 규범이 혐오주의자가 아니라 좌파에게 불리하게 쓰일 공산도 있다. 파업 파괴자를 ‘scab’[‘피딱지’라는 뜻으로 파업 파괴자를 비난할 때 씀]이라고 부르거나 나치를 나치라고 부르는 것이 규율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셀파와 마스는 하버드대학교의 사례를 소개하는데, 하버드대학교에서 백인 남부 출신 학생은 남부연방 깃발[흑인 차별을 상징]을 기숙사에 걸 수 있었지만, 흑인 여성은 나치 문양이 그려진 ‘인종차별 반대’ 배너를 제거하라고 요구받았다. 미시간대학교에서는 우파가 팔레스타인 활동가들과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가들이 지은 판자촌을 부쉈을 때 대학 당국은 아무 징계도 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한 학생 기자들만 징계했다.
이런 이유로 학생 활동가들에게 가장 좋은 전략은 언어 규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동원해서 인종차별과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맞선 집단적 투쟁 조직에 집중하는 것이다. 학생 여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압력이 혐오 표현을 약화시키는 데에서 언어 규범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언어 개혁
분명히 영국에서는 언어 개혁을 촉진하려는 시도 때문에 정치적 올바름이 악명을 가장 크게 얻게 됐다.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이 조롱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미국에서는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 따로 있다). 언어 개혁은 혐오 표현을 금지하려는 시도와 관련돼 있지만 동시에 구분된다. 주요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적 표현은 모두 일상적 언어 사용에서 익히 알려진 것들이고, 그 모욕적 본성 또한 일반적으로 인지되고 있다. 또한 그런 표현마다 이를 대신할 아주 간단하면서도 모욕적이지 않은 표현이 이미 존재한다. 그러므로 혐오 표현을 없애는 것은 몇몇 고의적인 경멸·모욕 표현들을 제거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언어 개혁은 이전에는 그렇게 인지되지 않았던 단어와 표현에서 억압적이거나 경멸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포함하고 종종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새 단어나 표현으로 그것을 대체하려 하는 것이다. 동시에 정치적 올바름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조차 일반적으로 징계라는 수단으로 이런 신조어 사용을 강제하려 하지는 않아 왔다.(비록 의심의 여지 없이 예외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방식보다는 모범 사례 제시, 도덕적 압력 그리고 때로는 행정 조처를 통해 언어를 개혁하려 한다.
언어는 물론 언제나 정치적 쟁점이었고 정치적 투쟁은 언제나 언어를 둘러싼 투쟁을 포함했다. 종교 개혁 당시 성경을 대중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정치적 문제였다. 정복자들에 의해 원주민 언어가 억압받는 일 —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역에서 게일어를 금지한 것부터 터키에서 쿠드르어를 금지하는 등 보편적인 억압이다 — 은 언제나 정치적인 문제였다. 호칭 문제는 사회적 지위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만큼 언제나 정치적 문제였다.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에서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부하나 노동자에게 2인칭 단수[반말]를 습관적으로 쓰는 것을 보고 이렇게 지적했다.
‘차르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혁명적 요구 중 하나가 사장이 직원을 2인칭 단수로 부르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저들은 까먹을 수 있는가?’
사상에서의 혁명으로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도입됐는데 이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으로써 중요했다.(물론 처음에 그것은 이상하거나 불명료하게 보일 수 있지만 말이다.) 우리가 종의 ‘창조’냐 ‘진화’냐, 현대 사회를 ‘산업 사회’로 부를 것이냐 ‘자본주의 사회’라고 부를 것이냐, ‘국민의 국가’를 요구할 것인가 ‘노동자 국가’를 요구할 것인가는 분명 차이를 낳는다. 현실에서 혁명은 언제나 도시와 거리의 이름을 새로 바꾸었고, 사람들을 선생님이나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시민이나 동지라고 부르는 변화를 이끌었다. 또한 새로운 단어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화된 민족들의 언어가 얼마나 정확하게 러시아 발전의 지난 두 시기에 따라 구분되는지 주목하라. 귀족 문화는 세계에 차르, 코사크[제정 러시아의 잔혹한 전투 부대], 포그롬[유대인 학살], 나가이카[코사크가 쓰던 채찍으로 차르 시기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짐] 같은 야만주의가 통용되게 했다. 이 단어들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10월 혁명은 세계의 언어에 볼셰비키, 소비에트, 콜케츠, 고스플란[국가계획위원회], 파틸레트니예[5개년 계획] 같은 단어를 도입했다. 실제 언어가 역사적 최고법원의 역할을 한 것이다.”
38 정치적 올바름은 너무 자주 이 순서를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예시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시도하는 많은 언어 개혁과 분명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여기서 주의를 덧붙일 필요가 있는데, 정치적 올바름 중 가장 황당한 사례는 출처가 의심스러운 가짜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트집잡기 위한 목적이 아닌 용도로 “수직적으로 어려움을 겪는”[키가 작은 사람] 혹은 “모낭이 손상된”[대머리]이란 말이 쓰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정치적 올바름 언어에는 분명히 이런 풍자를 유발하고 젠체하는 인위적인 요소가 있다. 그 이유는 진정한 사회 변화를 언어가 반영하도록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진정한 개혁을 언어 개혁으로 대신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볼셰비키의 전략은 노동자·병사·선원 대중의 지지를 받아서 동궁을 습격하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전환하고, 그 뒤에 거리에 새 이름을 달았다. 거리의 이름을 바꾼 것이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근래의 긍정적인 언어 변화 중 가장 유익한 요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흑인 운동, 여성 운동 그리고 동성애자 운동의 산물이었다. 1960년대 ‘유색인’이나 ‘검둥이’에서 ‘흑인’으로 용어가 바뀐 것은 모두 자긍심과 권리 주장이 크게 전진한 것을 반영하고 나타낸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의학적인 (그리고 보통 경멸적인) ‘homosexual’ 혹은 혐오 표현만 존재했던 상황에서 [‘명랑한’이라는 뜻의] 단어 ‘게이’를 전용한 것 또한 분명히 전진이고 널리 받아들어졌다. ‘동성애 혐오’ 또한 특정 편협함에 이름 붙이는 유용한 용어다. ‘성차별’이라는 용어는 여성 운동에서 비롯했고, 일반적으로 엄밀성이 떨어지는 용어 ‘남성 우월주의’ (이 또한 여성 운동에서 기원했다)를 대체했는데 이것 또한 ‘동성애 혐오’와 같은 목적으로 도입됐으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기존 언어 관행에 가장 성공적으로 도전한 사례는 [남성을 뜻하거나 거기서 기원한 단어들인] ‘man’, ‘mankind’, ‘he’가 남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에 맞선 것이었다. 명백한 사실은 1970년대 이전에는 모든 정견의 사람들(남녀 마르크스주의자를 포함해)이 쓴 모든 글이 이런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서 후반 언젠가부터 이는 꽤 빠르게 변했고, 여성 평등 목표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즉 좌파라면 거의 누구나) ‘man’ 대신에 ‘people’을 쓰고, ‘mankind’ 대신에 ‘humanity’를 사용하게 됐다. 물론 보편화되는 것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지만 진보 진영 내에서는 꽤나 광범하게 받아들여졌고 꽤 철저한 변화였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는 기존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언어 개혁이 현실 운동의 산물이자, 물질적 조건과 사회 관계의 실제 변화(여성의 유급 고용 유입, 여성들의 고등교육과 전문직 진출, 피임약의 등장, 임신중지권 보장 법안) 속에서 수백만 명의 여성과 남성의 의식이 현실에서 변화한 것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흑인 운동과 동성애자 운동을 통해 도입된 언어 개혁도 마찬가지 이유로 효과적이었다. 또한 그러한 변화들은 언어를 현학적으로 만들거나 복잡하게 만드는 과정 없이 이뤄졌다. 반면 정치적 올바름은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they그들’이 더 알아듣기 쉬운 경우에조차 보여주기 식으로 he/she그/그녀를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정치적 올바름의 최근 노력에 놓여 있는 문제점은, 진정한 대중 운동은 후퇴하고 지식인 층이 학계나 문화적 게토에 갇힌 채, 순전히 언어적 방법으로 투쟁하려 하거나 잘못된 언어를 고치는 데 몰두한다는 것이다.
39 등으로 불린다. 이는 만연하고 깊이 뿌리내린 철학적 관념론으로 이어졌는데, (마르크스와는 반대로) 사회적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규정하고, 언어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가 《남성이 언어를 만든다》는 책을 쓴 데일 스펜서인데, 그 책은 언어 개혁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이 우월한 성이라는 믿음에 기반해 있고, 많은 사회 제도와 사회적 관행은 이런 믿음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40 사회, 제도, 사회 관행이 모두 “믿음”에 기초한다고 본다는 점에 주목하라. 이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주장은 남성이 언어 전체를 만들고 통제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런 사회적 조건을 강화해 온 두 가지가 있는데, 둘 다 근본적으로 같은 상황에 대한 표현들이다. 첫째는 프랑스 철학과 사회 이론이다. 이는 소쉬르의 저작에서 나온 것으로, 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41 어떤 남성들 (핵심적으로 지배계급 남성)은 일부 언어와 그 의미를 놓고 불비례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 전체는 세계 경제나 세계 문화만큼이나 남성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는다. 언어의 본성은 인간이 실제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설령 그 구실이 부차적일지라도 여성, 아동, 흑인, 유대인과 다른 여러 사람들의 언어 사용도 포함된다. 42
인간 정신이 물질 세계를 만들어낸다거나, 인류가 중력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고통 받아 왔다는 생각만큼이나 이런 주장은 명백하고 단순하게 잘못된 것이다.언어의 발전이 의식과 사고의 발전을 크게 촉진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언어의 특성 자체가 생각과 ‘생각될 수 있는’ 것에 중요한 영향을 행사한다. 그러나 언어 없이 의식이나 사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동물은 사냥할 수 없을 것이고, 고양이도 집을 못 찾을 것이고, 침팬지도 초보적 도구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고, 인간 아기도 언어를 배우지 못할 것이다. 언어가 무에서부터 의식을 구성하거나 결정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언어 개혁이라는 프로젝트 그 자체가 고안되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는 외부적 물질 조건과 인간의 물질적·정신적 필요, 인간의 사회적 관계, 인간의 생각과 복잡한 상호작용을 계속해서 주고받는다. 이런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적 존재(환경과 필요와 사회적 관계의 결합)가 우선적이다.
언어의 발전은 사회의 발전과 연동돼 있고, 사회의 근원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갈등을 반영한다. 단지 지배계급과 그 학술적 지지자들의 관점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지식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역할을 추켜세우고, 자신들이 역사적 변화의 중심에 있다고 설명하는 이론에 끌린다. 이것이 실천적으로는 검은색과 관련된 영어 단어 중 부정적 의미가 있는 것을 모두 정화하려는 헛된 시도로 나타났다. 예컨대, ‘블랙 데이’, ‘블랙 스팟’, ‘블랙메일’, ‘블래킹’ 등. (심지어 ‘블랙 커피’ 같이 경멸적으로 쓰이지 않는 것까지도) 남성과 관련된 모든 단어, 예컨대 ‘세미널’[‘정액의’ 혹은 ‘중요한’이라는 뜻이 있음], ‘세미나’에 대해서도 그랬고, ‘히스토리’를 ‘허스토리’로 바꾸고, ‘우먼’woman을 ‘위민’wimmin으로 바꾸려는 것 등도 그런 경우였다. 이런 물신주의의 최종 효과는 (좌파의 신용을 깎아 먹으며) 그저 언론들에 유희거리를 던져주는 것밖에 되지 않았고, 때로는 사기꾼들의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떤 노조 간부들은 노조법이 두려워 티멕스 물건 블래킹[역주 —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파업 사업장의 업무에 일절 협조하지 않는 보이콧 행동]을 거부하면서 겉으로는 ‘블래킹’이 인종차별적이라서 거부한다는 이유를 댔다.
이런 시도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또 한 가지는, 설령 사람이나 조건에 이름을 새로 붙이거나 재서술하더라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새로운 이름이나 설명도 머지않아 옛 것에 담겨있던 의미나 함축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학교에서 A, B, C로 수준별 학급 편성을 하던 것을 L, M, N으로 바꿀지라도 학교에서 아이들은 N 학급이 ‘멍청한’ 반이라고 말할 것이다. 비슷하게, 낙제생을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 혹은 ‘학습 어려움을 겪는 아이’라고 표현을 바꿔 서술하거나, 장애아동을 ‘다른 능력이 있는 아이’라고 규정할지라도, 어떤 깊은 변화가 없다면 그 결과는 사람들이 말로는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거나 ‘다른 능력이 있는 아이’라고 말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낙제생’이나 ‘장애인’이라고 여길 것이다. 언어에 집착해서 생기는 최악의 결과는 노동계급 사람들이 인종차별.성차별에 반대하는 문제가 별로 시답잖고 중요하지 않게 여기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노동계급 사람들에게는 착취와 가혹한 삶의 조건 탓에 고상한 언어 교양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직접적으로 역효과를 낸다. 자신들이 물리치려 했던 반동적 생각을 객관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언어 개혁 시도에 둘째로 영향을 미친 더 평범하고 물질적인 요인은 전문직으로서 특수 용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엘리트 전문가(의사, 변호사 등)는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특수 용어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중 일부는 편리함으로 정당화될 수 있고, 또한 특별히 요구되는 과학적 엄밀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순전히 엘리트주의다. 이는 전문가들의 깊은 논의에서 대중을 제외하는 구실을 하고, 특수 용어에 정통하다는 것은 클럽 회원권 배지 같은 구실을 한다. 학술 세계란 이런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도 분명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이것은 정치적 올바름 언어에서 상당한 구실을 한다. 바바라 에렌라이크가 말했듯이 “나는 대학 캠퍼스에서 정치적 올바름 문화를 봐 왔습니다. 비교적 엘리트 대학교의 학생들과 캠퍼스에서 주로 봤죠. 속물적 우월 의식의 한 형태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계급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해 자신을 표현하려 하는데 이를 깔보는 태도는 재앙적이다. 인종차별적·성차별적 생각과 타협하자는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언어의 격식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모토는 “태초에 말이 있었다”가 아니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이다.
서구 문화와 고전 작품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논쟁 중 가장 뜨거운 것은 서구 문화 옹호자와 다문화주의 지지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유럽과 북미 부르주아지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특정한 관점에 재정적·정치적·지적으로 막대하게 투자해 왔다. 그런 관점은 ‘문명의 부흥’을, 중동에서 시작돼 고대 그리스·로마, 중세, 르네상스, 종교 개혁과 계몽주의,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로 이어져 온 일련의 과정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은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최고의 철학적·과학적·예술적 성과(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단테,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뉴턴, 모차르트, 괴테, 칸트, 아인슈타인 등)가 이런 전통에 속한다고 본다. 최근까지 서구에서는 세계사를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 모든 교육에 스며들어 있었고 또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 대학들에서 이것은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도전받고 있다.
이 논쟁은 과학적 지식의 진실성에서부터 고대 미대륙 원주민 문명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 자체로 전문 지식이 필요한 각각의 논쟁만 다뤄도 책 몇 권 분량이 꽉 찰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하려는 것은 다문화주의 주장에 대해 간략히 요약하고 전체적으로 이 쟁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응답의 개요를 서술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의 고전 작품에 대해서 주되게 제기되는 비판은 다음과 같다.
1. 이런 방식의 교육은 다문화 사회에 부적합하고 다문화 학생 집단에도 부적절하다. 이것은 단일한 (혹은 거의 단일한) 지배 문화를 상정해서 소수 인종 학생들의 필요(롤모델, 정체성에 대한 인식, 자존감 등)를 충족하지 못한다.
2. 서구적 전통이라는 것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잘못됐다. 이것은 유럽 중심주의적 편견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비백인, 비유럽 문화의 기여를 깎아내리고 사소한 것으로 만들고 배제해서 인류 발전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했다.
3. 서구 전통은 모두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 ‘계급주의적’, 성차별적, 동성애 혐오적이다.
4. 이 전통 속 개인들이 만들어 낸 것은 모두 (혹은 거의 대부분)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다른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침투해 있거나 적어도 그에 오염돼 있다.
이런 가정은 서구 고전 작품과 커리큘럼이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또한 서구 전통이나 그 산물은 모두 그 내부의 억압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심적 위치에서 몰아내고, 다른 문화 전통들과 동등한 위치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DWEM(죽은 백인 유럽 남자)들은 피억압자들이 만든 연구에 길을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런 주장과 제안은 학계 안팎의 전통주의자와 보수주의자한테서 분노의 포효를 자아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어디에 서야 할까?
우리는 먼저 다문화주의자들의 주장에 몇몇 진실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서구 문화의 전통이 착취, 천대, 노예제, 정복 등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건 사실이다.(비록 같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이에 맞선 저항도 전통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교육에서 이런 전통을 다루는 방식이 유럽 중심주의적이고, 다른 전통을 깎아내리는 인종차별주의가 노골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의 진정한 역사가 근본적으로 왜곡됐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전통의 가장 뛰어난 대표들 또한 이 사회의 산물이고 많은 경우 반동적 사상에 오염돼 있었다는 것도 사실인데, 칸트도 인종차별주의자였고, TS 엘리엇은 유대인 혐오론자였고, 라킨 같은 덜 중요한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유럽 중심주의적 왜곡을 바로잡으면 학생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도 사실인데, 로크뿐 아니라 공자를 배우고, 월트 위트먼뿐 아니라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를, 윌리엄 골딩뿐 아니라 벤 오크리와 토니 모리슨도 배우는 식으로 말이다.
44 그럼에도 이런 관계는 언제나 존재하고, 생산은 제1요소의 자리를 지킨다. 철학, 종교 혹은 ‘순수 미술’ 등은 사회의 물질적 조건에서 완전히 떼어낼 수 없고 그것의 산물이다. 더욱이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지배적 문화는 언제나 지배계급의 문화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자들은 또한 정신적 생산수단도 통제한다. 45 그러므로 만약 사회의 지배계급이 노예 소유주라면 문화에도 그것이 불가피하게 반영된다. 지배계급이 제국주의자라면 그것은 종교, 문학, 예술에 영향을 남기게 된다.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라면 성차별이 그림이나 음악, 소설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다문화주의 내 지배적인 경향과는 다른 출발점에서, 그리고 다른 방법론을 기초로 이런 (부분적) 합의에 다다른 것이라는 것도 분명히 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문화를 역사유물론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에서 비롯된다. 엥겔스가 역사유물론에 관한 편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했듯이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는 한 쪽이 다른 하나를 단순히 반영하기만 하거나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관계가 아니다.그러나 이런 관점은 정치적 올바름이 주장하는 다문화주의와는 핵심적 차이가 있다.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이 서구 문명을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라며 비난할 때 그들은 ‘서구’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마치 이것이 대단한 설명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핵심 준별점은 ‘문명’이다. 도시 문명은 겨우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잉여가 만들어지면서 발생했고,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면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노동에 빌붙어 살게 됐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모든 문명과 그 문화는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래서 공격성, 억압, 폭력 등과 뗄 수 없다. 지난 500년 동안 유럽과 북미에서 생산력이 더 가파르게 발전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서구 문명이 이런 특성을 가장 고도로(아우슈비츠부터 히로시마에 이르기까지) 발전시켰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또한 착취와 계급 분단에 기반한 모든 문명, 즉 원시 공산제 사회 이후부터 사회주의 달성 사이에 존재하는 동서남북의 모든 사회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동양·아프리카 문명 혹은 다른 문명에서는 마치 전쟁, 차별, 노예제를 비롯한 끔찍한 폐해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서구 문명을 비난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주장은 쉽게 논박당할 수 있기에 정치적 올바름을 우습게 보이도록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정치적 올바름주의자들이 서구 유럽 남성 문화라고 강조하는 것도 잘해봐야 부차적 특징을 포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문화를 설명하는 더 근본적인 것, 즉 부르주아지나 자본주의를 누락하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먼저 생겨났고 우연히도 유럽 사람들이 백인이었다. 그것이 유럽의 백인 부르주아지가 세계 경제, 정치, 문화의 지배자가 되는 기회를 줬다. 피부가 희거나 유럽 사람이라는 것과 자본주의와 지배 사이에 뭔가 필연적 연결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마치 영국인에게 본질적으로 산업화 성질이 있다든지, 중국인에게 화약 성질이 있다든지 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다. 이는 또한 맞서 싸워야 할 인종차별적 신화에 지적으로 굴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오대륙의 흑인, 갈색인종, 백인 사이에서 모두 성장할 수 있고 실제로도 성장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비슷한 문화가 생겨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치적 올바름 담론은 자본주의와 계급의 구실을 기각하고 축소해서 보는 문제가 있고 서구 문명의 동질성을 과장하며 그 내부의 모순은 간과한다.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에 흔히 가해지는 비난인 경제 환원론보다 더 심각한 문화 환원론 혹은 심지어 생물학 환원론을 낳는다. 개인들의 생각이나 예술이 기계적으로 그 개인의 인종, 젠더, 계급 혹은 민족성과 결부돼 있다는 것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퍼시 비시 셸리, 램브란트, 고야, 브레히트는 모두 죽은 백인 유럽 남성이고, 이들 모두 서구 전통에서 특출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 중 어느 하나라도 기성 질서나 지배적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건 이들의 작품을 한 번도 보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는 이들 모두의 작품은 모든 대륙의 차별받는 여성, 남성 모두의 저항을 고무할 만한 요소를 상당히 담고 있다.
심지어 서구 문화를 봉건제, 자본주의, 제국주의라고 말해도 너무 단순화한 것이다. 모든 계급 사회는 계급 지배 사회였지만 계급 투쟁의 사회이기도 했다. 언제나 저항이 있었고 저항은 언제나 문화에 영향을 줬다. 성경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라고 써 있지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라고도 적혀 있다.
중세 문화는 대개 봉건 귀족적이고 종교적이었지만, “아담이 땅을 갈고 이브가 옷을 짤 때 누가 귀족이었는가?” 하는 존 불의 글도 중세 문화에 포함된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와 교황을 위해 일했지만 그의 작품 중 노예 조각상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회화는 대개 땅을 가진 젠트리 계층에 봉사했는데, 게인스보로의 작품 ‘앤드류스 부부’가 가장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당시 윌리엄 호가트의 [귀족들에 대한] 예리한 풍자 작품도 함께 존재했다.
《로빈슨 크루소》부터 《암흑의 핵심》까지 제국주의 또한 영미 문학 전통에 영향을 줬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도 빼놓아선 안 된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소네트(시) ‘투생 루베르튀르’[아이티 혁명의 혁명가]나, 조너선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 또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부활절 1916’ 같은 작품을 생각해 보라.
20세기에 미국은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가 됐고 그 문화에는 자본가들의 가치가 흠뻑 들어 있지만 미국 문화는 또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앨런 긴즈버그의 《울부짖음》도 포함하고 있고, 조 힐과 우디 거스리의 노래도 있고 흑인들의 기여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서구 문화 전체나, 개별 작가나 예술가를 그들의 인종이나 피부색, 성, 계급에 따라 단순히 거부하는 것은 극도로 바보 같은 짓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논의에 친숙한데, 러시아 혁명 이후 우리 전통 내에서 비슷한 경향의 비슷한 실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화 운동을 뜻하는 ‘프롤레트쿨트’는 인종이나 젠더가 아닌 계급을 기준으로 이전 사회의 문화를 거부했는데, 이들은 정치와 예술의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하게 봤고, 새로운 문화를 교조주의적 처방으로 창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당시 선구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이런 과장된 주장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들은 ‘서구’ (즉 부르주아지) 문화에 대한 혁명가의 태도는 그 문화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문화의 성취를 누리지 못한 채 착취받고 차별받은 사람들을 위해 기존 문화의 성취를 흡수해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길게 분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올바름 논쟁에서 두드러지는 비교적 새로운 쟁점 하나는 아프리카 중심주의의 문제다. 아프리카 중심주의란 지배적인 유럽 중심주의적 설명에 반대해서 몰레피 케테 아산테와 레너드 제프리스 같은 수많은 흑인 민족주의 작가가 발전시킨 역사 전개 설명 방식이다. 이 관점에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주요 주장은 아프리카가 인류의 발생지이자, 이집트가 문명의 탄생지이며, 이라크·그리스·중국·중앙 아메리카 같은 다른 문명 또한 직접적으로 아프리카 문화 전파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은 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것이다.
물론 흑인 중심주의는 서구 문화에 오랫동안 스며든 노골적인 (그리고 은밀한) 인종차별주의 — 아프리카인이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거대한 건물들을 지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 에 대한 반발이다. 물론 흑인 중심주의의 몇몇 주장은 진실이거나 아마 진실일 것이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탄생했고, 이집트는 아프리카에 있으며 최초의 문명 중 하나이고 그리스에 막대한 영향을 줬다는 것이 그렇다. 그럼에도 흑인 중심주의 접근법은 매한가지로 매우 이데올로기적이고 비과학적인 인종 구별을 사용해서 유럽 중심주의를 뒤집으려 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약점이 있다. 예컨대, (특히 19세기에) 유럽 학계에서는 고대 이집트인의 정확한 피부색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예수가 백인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이집트인의 피부색을 더 밝고 하얗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아프리카 중심주의자는 이집트인이 흑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지한 역사 서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고 문화나 문명, 과학·예술이 특정 인종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거부하고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도 사회적 구성물일 뿐이라며 거부하는 역사 유물론 관점에서 보자면, 더더욱 이집트인의 피부색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고대 영국인이 자신의 얼굴에 짙은 파란색 물감을 칠했는지 옅은 파란색 물감을 칠했는지 여부만큼이나 현 시대에 정치적 의미가 없는 사소한 실증적 문제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고대 중국과 고대 아메리카 문명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주장(둘 다 가능성이 희박하고 실증적 근거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은 ‘다른’ 인종의 문화적 진보를 부정하는 유럽 중심주의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억압자의 신화를 거꾸로 뒤집어놓는 것은 아프리카 중심주의에만 국한된 방법이 아니다. 여성을 “보살피는”, “평화를 사랑하는” 성으로 묘사하려는 페미니스트들, 노동계급의 후진성을 미화하는 일부 저속한 마르크스주의자, 서구 부르주아지가 스탈린주의 러시아를 악의 제국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스탈린주의 러시아는 노동자들의 천국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이런 방법론을 실천해 왔다. 이는 언제나 한 신화를 다른 신화로 대체하는 조잡한 이론일 뿐이다.
48 이 ‘악마론’(후에 맬컴 엑스 자신이 이렇게 불렀다)은 신이 아담의 갈비뼈로 여성을 창조했다는 신화만큼이나 과학적 토대가 없는 순전히 허튼소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인 해방을 위한 위대한 투사로서 맬컴 엑스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연대와 인종차별주의자, 지배계급 그리고 자유주의자(의심할 여지없이 이들 중 많은 수가 인류 발전에 대한 더 정확한 이론을 갖고 있다)에 맞선 그에 대한 우리의 지지가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많은 정치적 투쟁에서 우리는 그들의 잘못된 이론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아프리카 중심주의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중심주의를 비판할 때에도 이론적 투쟁의 영역과 정치적 투쟁의 영역을, 그리고 이론적 타협과 정치적 연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돼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예를 들어, 맬컴 엑스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네이션 오브 이슬람’ 단체의 역사 이론에 입문한 과정을 기록했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6000년 전 사악한 과학자 야쿱이 파트모스 섬에서 특별히 사육한 “사악한” 인종이 바로 백인이라는 것이었다.마지막 비판점은 ‘서구 문화’와 고전 작품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의 접근 방식이다. 예술, 예술가, 관객을 엄격하게 국한된 인종, 젠더 또는 국적의 틀에 가두는 것은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 문화 경향 중 하나인 문화적 상호 작용, 차용, 융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현실에서 문화 융합은 인류 문화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지만, 세계적 자본주의, 생산의 국제화와 전 지구적 소통 시대에 그 빈도와 다양성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라틴 아메리카 소설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악, 짐바브웨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차용과 상호 작용은 중요한 예술적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통주의자들은 이전 세대 때 그들이 재즈, 블루스, 록을 ‘정글 음악’이라고 비난했던 것처럼 이러한 발전을 개탄하거나 무시할 테지만, 실제 사람들의 삶과 예술은 그런 이들을 추월할 것이다. 더 큰 위협은 디즈니/할리우드(이 문제에서는 발리우드도 마찬가지)의 돈 버는 기계들에 의한 흡수, 부패, 동질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 풍부한 다양성은 정치적 올바름의 기계적 방식으로는 보호되거나 장려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문화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사람들의 삶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인간의 창의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진정한 국제주의가 필요하다.
영국 상황에 대하여
지금까지 이 글은 미국 상황에 초점을 맞췄지만 명백히 많은 경우 영국에서도 이 글이 내세운 주장과 결론이 적용 가능하다. 그러나 부연 설명이 필요한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논란과 현상 모두 영국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것(또는 앞으로 예상되는 것)보다 미국에서 더 큰 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 영국에는 좌파가 노동계급과 그 대중조직에 더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흑인과 다른 소수 인종이 전체 인구와 학생 모두에서 그 비율이 더 높고 부르주아 정치 내 강력한 로비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흑인·여성·동성애자 운동은 모두 미국에서 더 컸다.
49 ), 지방 정부, 그리고 그들이 관계 맺고 있는 노조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곳들은 좌파에게 매력적이고 좌파적 생각, 특히 인종차별과 성차별 반대가 강력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들은 또한 상층 화이트칼라 노동계급이나 중간계급인 고학력 좌파들이 관리자이거나 중간관리자로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종차별 반대나 성차별 반대를 행정적 규율을 통해 위로부터 도입하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의 더 해로운 특징 하나로 즉각 이어진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들이 특히 더 심해지는 경우는 관련 기관들이 부족한 재원(그마저도 더 줄어들고 있다)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담당 전문가(국가의 대변인으로 여겨진다)와 서비스 이용자 사이에 긴장이 악화할 때다.
이 모든 같은 이유로 인해 영국의 정치적 올바름 활동가들은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도) 공공 서비스, 보호관찰 서비스, 초중고 학교(대학은 사정이 다르다1980년대 미디어가 “미친 좌파”라고 부른 노동당 지방의회를 둘러싼 논란은 오늘날이라면 많은 측면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란의 한 사례라 여겨졌을 것이다. 젊은 ‘토니 벤 지지’ 노동당 지방의원들은 서비스를 개선하고 흑인·여성·성소수자를 위한 계획에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당선됐다. 후자의 조처들은 대체로 진정한 진보적 정책과 어느 정도의 정치적 올바름 종류의 생색내기/보여주기가 섞여 있는 것이었다. 노동당 지방의회는 중앙 정부의 징벌적 예산 삭감과 인두세에 저항하는 데 실패하면서 (더 낫기는커녕) 더 열악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게 했고, 반면 상징적 조처에 더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런 조처들은 대체로 더 값쌌지만 흑인·백인, 여성·남성 노동자 대부분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자신들의 자치구를 탈핵 지대라고 선언하거나 고층 건물을 넬슨 만델라로 이름 붙이는 데 동의하는 것이 제대로 된 거리 조명을 설치하거나 주택 수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돈이 더 적게 들었던 것이다. 이는 명백히 우파와 언론이 노동계급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노동당 지방의회를 공격할 빌미를 줬다. 또한 노동당의 지속적 우경화로 인해 좌파적 지방의회는 대체로 제거당했고 정치적 올바름의 초점은 복지 담당 부서와 같은 곳으로 넘어갔다.
사회 복지는 정치적 올바름이 제기되기 쉬운 부문이다. 사회 복지 노동자들은 착취, 가난, 실업의 피해를 무마하려는 자본주의 국가에 고용돼 있다. ‘무마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는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도움 제공과 규율 부과를 조합한다. 사회 복지 노동자가 된 사람들은 그 중 도움 제공에 강조점을 둔다(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러나 국가는 사회 통제에 강조를 둔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고 좌파일지라도 사회 복지 노동자들은 그들이 맡도록 돼 있는 규율하는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 노동계급은 이것을 잘 알기에 사회 복지 노동자들에게 깊은 양가적 감정을 갖는다. 물론 사회 복지 노동자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진전이다. 그러나 그들의 객관적 조건상 이런 문제제기의 해결 또한 관료적, 교조적, 상명하달식으로 진행되기 쉽다.
엄밀히 말해 정치적 올바름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그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 하나는 아동 성학대 문제에 대한 일부 사회복지사의 대응이다. 분명히 사회복지사들은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아동 보호와 가족 유지라는 모순된 명령에 종속돼, 개입해도 욕을 먹고 개입하지 않아도 욕을 먹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클리블랜드[옮긴이 주 — 사회 복지사들이 무더기로 부모들을 아동 성학대로 판단해 자녀와 분리하는 조치를 내렸다가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판결 난 스캔들] 같은 사례에서 보듯 일부 사회 복지사들은 아동학대를 경시하던 옛 관행을 바로잡으려다 분명 너무 멀리 나아갔다. 아동학대 사건의 구체성을 사실상 무시하는 교조를 만들었고, 노동계급 가족과 아동의 삶에 대해 극도로 무감각하고 그들에게 불비례하게 불리한 방식으로 반응한 것이다.
인종 간 입양 쟁점은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더 극명히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많은 사회복지기관은 인종 간 입양에 완전히 반대하고 입양부모가 인종 간 커플이더라도 그런다. 이런 정책을 좋은 의도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흑인은 이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겪고 있으니 오직 흑인 부모만 흑인 아이들을 지지해 줄 수 있으며 차별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전형적인 정치적 올바름 사상이 매우 많이 깔려 있다. 모든 백인은 인종차별주의자고, ‘백인 문화’·‘흑인 문화’는 완전히 구분되고 분리된 것들이고, 적어도 흑인 문화는 분리된 채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음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흑인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엉클 톰[백인 비위를 맞추는 흑인]으로 키울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많은 백인 입양 부모가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흑인 아이들이 인종차별에 맞서도록 완전히 응원할 수 있고, 흑인 문화를 알아가고 배울 수 있으며, 자식이 흑인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도록 키울 수 있다. 현실에서는 입양을 기다리는 흑인 아이가 많기 때문에, 그 아이들은 보호소나 기관에 남겨지게 된다. ‘같은 인종’ 정책은 부모의 태도보다 피부색에 초점을 맞추고 ‘인종’이 근본적이고 극복할 수 없는 구분선이라 주장함으로써, 흑인과 백인은 완전히 섞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우파 인종차별주의적 주장을 인정한다. 여기서 다문화주의는 인종 분리를 정당화하고, 인종차별에 유일하게 맞설 진정한 기반인 계급 단결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보호관찰관협회NAPO 또한 정치적 올바름에 열광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소셜리스트 워커〉의 훌륭한 기사에서 찰리 킴버는 이렇게 말했다.
1991년 노조 대회의 대의원들은 ‘paymaster급여담당자’가 성차별적이고, ‘fat chance전혀 가망 없다’가 비만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며 사용 금지한다는 소책자를 받았다. 다음 해 전국 지도부는 ‘tinkering땜질’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결의안이 집시[과거 tinker라고 불림 — 옮긴이] 비하적이라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았다. 또한 파업 파괴자를 부르는 ‘scabs’는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라며 금지됐다. 보호관찰관협회는 또한 대의원들의 말을 감시하는 언어 모니터링단을 동원했다.
찰리 킴버가 지적했듯이 “이건 터무니없다.” 이는 또한 보호관찰관이 사법 시스템 속 온건파로서 수행해야 했던 매우 모순적인 구실을 언어로 보상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관심을 갖는 또 다른 분야는 인종 관계 산업이다. 이는 인종 관계 개선과 인종차별 퇴치를 위해 전문적으로 고용된 사람들로 구성되고 인종평등위원회가 중심인 공식 기관들의 네트워크다. 전통적으로 인종 관계 산업은 온정주의적 자유주의(때론 심지어 우파) 백인이나 극도로 온건하고 명망 추구적인 중간계급 흑인이 지배해 왔다. 그러나 더 급진적인 세력이 이 분야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좌파가 이 분야의 우파와 공유하는 것은 인종차별 반대 활동을 위원회 회의실 안으로 국한시킨다는 경향이다. 좌파는 건강 서비스나 경찰, 교육 등에 관한 정책을 도입하는 데 막대한 시간을 보내지만 인종차별이 가장 심각한 거리나 동네에 발을 들이는 법이 없다. 다시 한 번, 언어의 몸값이 높아진다. 좌파는 언어를 두고 우파와 다툰다. 위원회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 목표와 의무가 무엇인지 등등. 이는 올바른 용어 사용에 집착하는 문화를 만들어낸다.
51 여기에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는데, 오늘날 영국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는 사회 복지 과목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현실에서 그런 주제는 모든 진학 시험과 중등교육 자격시험 사회학 과정의 일부다.
이 모든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우파를 흡족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는 모든 진정한 전진을 지지하면서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형식주의는 구분해 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멜라니 필립의 사례는 반면교사를 제공한다. 그녀는 〈옵저버〉에 게재한 정치적 올바름 반대 논설에서 미국 우익의 과장된 언어를 모두 사용하면서 사회 복지사 교육과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열린 교육이라는 전통적 가치의 타락”, “전체주의”, “거짓 자백 강요”, “악랄한 편협함”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보도가 즐비했다. 그런 공격으로 그 전의 디수자나 휴즈와 마찬가지로 필립도 의심할 여지없이 몇 가지 타당한 지적을 했다. 그러나 필립은 또한 사회 복지 교육이 “구조적 차별, 인종, 계급과 젠더 대처법”을 필수과정으로 요구하는 것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학생들에게 “개인적·제도적 인종차별을 인지하고 그 둘에 맞서 인종차별 반대 실천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강하게 비난한다.무엇보다도 필립의 수사가 역겨운 지점은 많은 정치적 올바름 반대 운동가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한데, 그녀가 “침묵의 음모”에 저항한 자신의 용기를 추켜세우면서 순교를 기대하는 어조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사실 필립은 보수당 의원 모두와 꽤 많은 노동당 의원, 모든 신문 편집자와 신문사 사주에게 열렬한 박수를 받을 만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으며, 수많은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보상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필립은 우파가 좋아할 짓을 한 셈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이클 하워드 내무장관은 묵비권을 폐지하고 수감 인구를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있고, 피터 릴리 사회안전부 장관은 한부모와 외국인 부랑자를 비난하고 있다. 같은 주에 ‘버밍엄 6인 투옥’ 사건[무고한 북아일랜드인 6인에게 누명 씌워서 16년 동안 수감한 사건]에 책임이 있는 웨스트미들랜드 경찰이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이 모든 것이 역겨운 광경이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소란의 맥락에서 보면 누가 정말로 “전통적 자유주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는지, 누가 정말로 “악랄한 편협함”을 보이고 있는지, 누가 정말로 “거짓 자백을 강요받”고 있는지 상기하는 데 유용하다.
동시에 진짜 적, 즉 지배계급과 그 국가 기구, 그 정치적 대표자들을 올바르게 겨냥하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어리석은 측면을 피할 수 있는 핵심이다. 우리가 학생·교사·철도 노동자의 언어를 고치는 것에 최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그들을 우리 적의 계급적 공격에 맞서는 투쟁(물질적 공격만이 아니라 언어적 공격도, 또한 인종차별·성차별·소수자 차별도 포함)으로 동원한다면, 우리는 인종차별·성차별 등의 뿌리를 공격하는 것에 기여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학생·교사·철도 노동자의 언어와 문화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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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hn Molyneux, ‘The ‘politically correct’ controversy’, International Socialism 61 (Winter 1993).
↩
- P. Berman (ed.), Debating PC: The Debate over Political Correctness on College Campuses (New York 1992), p. 5. 이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 어빙 하위, 스탠리 피시, 디네시 디수자 그리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글들을 포함해 미국 정치 스펙트럼을 망라해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글들을 종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핵심적인 자료이다. ↩
- J. Searle, The Storm over the University, 같은 책 p. 86. ↩
- L. Selfa and A. Maass, PC: What’s Behind the Attack on Politically Correct? (Chicago 1991), p. 5. ↩
- D. D’Souza, Illiberal Education (New York 1991), p. 251. ↩
- “디수자는 훌륭한 절제와 예의를 갖추면서 냉철한 분석, 원칙적인 판단, 사려 깊은 제안, 인간적인 연대를 흔치 않게 조합한 유익한 글을 썼다”, 마르크스주의자 출신이자 《요단강아 흘러라: 노예들이 만든 세계》의 저자 유진 제노비스가 《독단적 교육》의 책 커버에 쓴 글에서 인용. ↩
- L. Selfa and A. Maass, op. cit., p. 2.에서 인용 ↩
- 위의 Debating PC의 N. Hentoff, “Speech Codes” on the campus and Problems of Free Speech, p. 2.를 보라. ↩
- 같은 책의 I. Howe, The Value of Canon를 보라. ↩
- 같은 책의 E. Said, The Politics of Knowledge. 사이드는 또한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진행한 심야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대자로서 소개됐고, 그 입장에서 주장했다. ↩
- 같은 책 P. Berman, p. 5. ↩
- R. Hughes, Culture of Complaint – The Fraying of America (New York 1993), p. 11. ↩
- 내 추측에는 이런 세련된 매력으로 인해서 휴즈의 책이 소셜리스트 리뷰(1993년 7~8월)에서 비교적 무비판적으로 서평된 것 같다. ↩
- I. Kristol, The Tragedy of Multiculturalism, Wall Street Journal, 31 July 1991. ↩
- 앞의 책 L. Selfa and A. Maass, p. 3.을 보라. ↩
- E. Genovese, Heresy Yes – Sensitivity No, New Republic, 15 April 1991, p. 30. ↩
- Faulty Attitudes and Characteristics: Results of a 1989–90 Survey,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8 May 1991, A16–A17, 앞의 책에서 L. Selfa, p. 9에서 인용. ↩
- 앞의 책 R. Hughes, p. 56.를 보라. ↩
- 제프리스는 얼음 인간(백인)과 태양 인간(흑인) 이론을 내세운 흑인 중심주의 저자다. 로던버그는 교과서 《인종차별과 성차별: 통합적 연구》의 저자이자 뉴저지 윌리엄 패터슨 대학의 철학과 여성학 교수이다. 흑인 교수 조직은 1990년에 텍사스대학교에서 ‘다문화주의’를 둘러싼 분란에 휘말렸었다. ↩
- 앞의 책, R. Hughes, p. 16. ↩
- 이는 우파가 주도해 온 정치적 올바름 반대 캠페인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한 것일 테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다문화주의와 인종차별 반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분명히 하는 휴즈 같은 사람은 분명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휴즈의 문제는 그가 1960년대의 실질적인 성과들이 쉽게 얻어진 것처럼 여기고, 극단적이거나 혁명적인 방법을 포함한 투쟁으로 쟁취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오류로, 문화적·지적 풍토가 합리적 논쟁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 세력의 충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휴즈의 의도가 뭐가 됐든, 반동 세력에게 도움과 위안을 주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
- 이러한 접근 방식의 한 예는 앞의 책에서 M. Berbe의 Public Image Limited: Political Correctness and the Media Big Lie in Debating PC이다. Berbe는 블룸과 킴볼, 디수자를 훨씬 능가하고 있지만, 그의 글은 본질적으로 언론의 허위 보도에 맞서서 ‘젊은 교수진’을 옹호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다른 예시는 같은 책의 P. Rothenburg가 쓴 ‘Critics of Attempts to Democratise the Curriculum are waging a Campaign to Misrepresent the Work of Responsible Professors’를 보라. ↩
- 예컨대, 같은 책의 M.K. Asante, Multiculturalism: An Exchange를 보라. ↩
- 같은 책 E. Said, pp. 173–174. ↩
- 같은 책 B. Ehrenreich, The Challenge for the Left, p. 335. ↩
- ‘계급주의classism’라는 용어는 정치적 올바름의 발명품 중 가장 반갑지 않은 용어 중 하나인데, 이는 계급 착취라는 물질적 관계를, 계급적 편견이라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현상, 즉 속물근성으로 축소하는 경향(물론 영국 보수당 총리였던 존 메이저를 비롯한 부르주아지와 그 옹호자들이 내세운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계급 개념, 특히 ‘계급 투쟁’에서 이론적으로 후퇴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반대하면서도,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계급주의’를 긍정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 디수자는 그가 “캠퍼스 내 피해자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반복해서 공격하지만, 사실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 압력이다. ↩
- R. Polenberg, One Nation Divisible: Class, Race and Ethnicity in the United States since 1938 (New York 1980), p. 271. ↩
- 같은 책, 1970년과 1977년 사이에 ‘흑인 학생 수는 두 배 이상이 됐다’, p. 276. ↩
- ‘1975년, 흑인 고등학교 졸업생의 32퍼센트가 대학에 등록했다. 1988년에는 흑인 고등학교 졸업생의 28.1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했다. 같은 기간 동안 백인 등록률은 32.4퍼센트에서 38.1퍼센트로 증가했다’. 같은 책 L. Selfa and A. Maass, p. 12. ↩
-
앞선 책 D. D’Souza, p. 51. 디수자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아시아인의 학문적 ‘초과 성취’를 이용해 인종차별이 ‘올바른’ 가치관과 근면에 대한 헌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아시아인’의 문화적 특성으로 간주된다. 사실은 아시아인의 성취는 계급과 상관관계가 있다. 미국의 다른 소수 인종(흑인, 라틴계 등)과 달리 아시아계 인구는 중산층 인구가 많은데, 이는 노동계급 아시아인보다 중산층 아시아인을 선호하는 미국의 이민 정책 때문이다.
1990년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아시아계 가정 10곳 중 4곳은 연간 소득이 5만 달러 이상이며 25세 이상 아시아인 중 비슷한 비율(39퍼센트)이 4년 이상의 대학 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대선에서 아시아계 유권자의 3분의 2가 부시에게 투표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대학교에 입학하는 아사아계의 비율은 캘리포니아 내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아시아계 학생의 비율보다 3배 이상 높으며, 이는 라틴계 학생의 입학 비율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A. Hacker, Affirmative Action: The New Look, New York Review of Books, October 12, 1989, pp. 63–65을 보라. ↩ - 앞의 책 L. Selfa and A. Maass, p. 10을 보라. ↩
- 과거 미국 대학에서 백인의 우위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가장 오래되고 명성이 높은 하버드대학교에서 3세기 이상 동안 종신직 교수 중 흑인은 단 두 명뿐이었다는 사실로 잘 드러난다. ↩
- 앞의 책, L. Selfa and A. Maass, p. 17. ↩
- 앞의 책 N. Hentoff, “Speech Codes” on Campus and Problems of Free Speech, Debating PC. ↩
- 앞의 책 S. Fish, in Debating PC, pp. 231–232. ↩
- L. Trotsky, The Revolution Betrayed (London 1967), p. 104. ↩
- L. Trotsky, In Defence of the October Revolution (London 1971), p. 28. [국역: 《10월 혁명》, 아고라, 2017] ↩
- 볼셰비키는 혁명 한참 후에도 공산당이라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이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 이런 경향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보려면 A. Callinicos, Is There a Future for Marxism? (London 1982) [국역: 《마르크시즘의미래는 있는가》, 열음사, 1992] and Against Postmodernism (Cambridge 1992) [국역: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의 비판》, 책갈피, 2014]을 보시오. ↩
- D. Spender, Man Made Language (London 1980), p. I. ↩
- K. Marx and F. Engels, The German Ideology (London 1985), p. 37. [국역: 《독일 이데올로기》, 두레, 2015]을 보시오. ↩
- 로마인(집시)보다 더 소외되고 억압받는 집단을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내 고향인 포츠머스(포츠머스만 그런 것은 아니다)의 은어에는 노동계급 내에서 널리 사용되는 수많은 로마인 언어들이 있다. 예컨대, 딘로(‘바보’라는 뜻), 차리(‘아이’), 무쉬(‘멍청이’), 초어(‘도둑질’), 복(‘행운’ 또는 ‘불운’), 쿠슈티(‘좋다’, ‘괜찮다’). ↩
- 앞의 책 B. Ehrenreich, in Debating PC, p. 335. ↩
- 예컨대, Engels to J. Bloch, 25 Sept 1890, in Marx, Engels, Selected Works II (Moscow 1962), p. 488.을 보라. ↩
- 앞의 책 K. Marx and F. Engels, p. 64를 보라. ↩
- 디수자와 휴즈는 모두 노예 무역에서 아프리카인 공범자들과 아랍의 관행을 상당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D. D’Souza, 앞의 책, 76-77쪽, R. Hughes, 앞의 책, 140-147쪽 참조). 실제로 휴즈는 “아프리카, 이슬람, 유럽이 모두 흑인 노예제도에 참여했지만 ... 유럽(여기서는 북아메리카를 포함)만이 노예제 폐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146쪽)는 것을 근거로 노예제 논쟁을 서구의 특별한 장점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휴즈는 경제학과 투쟁보다는 문화에 초점을 둔 탓에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다시 놓치고 있다. 첫째, 서구의 노예무역과 노예제 폐지는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예제가 적합하지 않은 산업 자본주의로의 전환, 즉 북부 산업 주와 남부 농장 기반 주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그는 산도밍고에서 투생 루베르튀르가 주도한 것과 같은 노예 반란의 역할을 무시한다. ↩
- L. Trotsky, Literature and Revolution (London 1991)를 보시오. 그리고 L. Trotsky, On Literature and Art (New York 1970)에서 특히 ‘Class and Art’, pp. 63–82.를 보시오. ↩
-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 (Harmondsworth 1968), pp. 258–262.를 보시오. ↩
- 이에 대한 주요한 예외이자 대학에서 정치적 올바름의 주요 사례는 전국학생회연합NUS의 상층부에서 발생해 왔다. 최근 몇 년 동안 NUS 회의와 NUS 기구는 광적인 형식주의와 정체성 정치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이는 전반적 정치와 학생 투쟁 모두의 우경화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은 직접 행동이나 모든 종류의 격렬한 정치 행동을 ‘마초적’이고 ‘위협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거의 의도적으로 혁명적 좌파에 대항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
- Socialist Worker, 31 July 1993. ↩
- M. Phillips, Oppressive Urge to Stop Oppression, the Observer, 1 August 19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