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스포츠 그리고 자본주의 *
8월 폐막한 2024년 파리 올림픽 여자 복싱 경기에서 성별 논란이 불거졌다. 알제리 출신의 이마네 켈리프 선수(이보단 조금 덜 주목받았지만 대만의 린위팅 선수도)를 둘러싸고 “여성이 아니다”라는 시비가 벌어진 것이다. 이들은 국제복싱협회IBA에 의해 여자부 출전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 국제복싱협회는 성별을 염색체로 규정하기 때문에, 국내외 매스컴은 이를 근거로 두 선수가 ‘XY 염색체 복서’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녀들이 트랜스젠더라는 부정확한 정보도 사실인 양 쏟아졌고, 마치 ‘남성’이 여성을 폭행한다는 식의 프레임이 씌워졌다.
역겹게도, 여성들의 상황을 가장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전 세계 극우 정치인들이 여성의 대변자인 양 행세하며 켈리프 비난에 동참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켈리프의 출전이 “여성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고,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총리 조르자 멜로니도 자국 선수가 켈리프에게 기권패한 것을 두고 “공정한 경기가 아니었다”며 열을 올렸다.
그러나 국제복싱협회가 실시했다는 조사는 신뢰성이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대변인은 “[IBA의 검사가] 정확히 어떤 프로토콜인지도 모르며, 해당 테스트가 정확했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이 테스트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 설명했다. IOC는 켈리프의 여자부 출전이 정당하다고 밝혔다.(뒤에서 살펴보겠지만 XY염색체가 성별의 기준이 되는 것 자체도 부적절하다.)
켈리프와 린위팅 모두 출생 때부터 여성으로 등록됐고 줄곧 복싱 여자부에 출전했다. 켈리프 자신도 자신을 여성으로 규정하며, 자신의 존재가 “알제리에서 소외된 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의 꿈”이 되길 바란다고 말해 왔다.
‘성별 논란’의 불명예스러운 역사
이런 논란은 새롭지 않다. 여성 스포츠 경기에서 두드러진 기량을 보여 주거나, 외모가 ‘충분히 여성스럽지 않’으면 해당 선수는 늘 이런 공격과 의심에 휩싸였다.
한국 여자 축구에서도 압도적 기량을 보인 박은선 선수에 대해서 2013년 6개 구단 감독들이 성별 의혹을 제기하며 성별 검사를 요구한 바 있다. 그녀가 월드컵, 올림픽 때 이미 성별 검사를 받아서 출전했던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쟁 구단들은 박은선이 출전할 경우 2014년 시즌을 보이콧 하겠다고까지 하며 박은선을 모욕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의 성별 논란은 또 다른 사례다. 그녀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 번 목에 걸었는데, ‘여성’스럽게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별을 밝히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결국 2019년 5월, 스포츠중재법원CAS은 세메냐의 타고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부당한 특혜”를 누렸다고 판결했다. 그 결론인즉, 그녀가 어떤 대회에 나가려면 자신의 자연스러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6개월 동안 의학적 조처와 호르몬 처치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황당무계한 처분이었다. 스포츠중재법원 스스로가 약물 개입을 촉구하는 것이다. 여성과스포츠에대한국제실무그룹, 국제여성스포츠, 국제여성체육교육협회는 공동성명을 발표해서 세메냐에 대한 처분을 규탄했다. “우리는 해당 선수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처벌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처벌들은 성별 불평등을 강요한다. 그 기준은 남성 선수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를 위한 성별 테스트는 길고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1966년 유럽 챔피언십에서 여성 선수들은 성기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 전문의 3명 앞에서 알몸을 보여 줘야만 했다. 《라이프》 잡지에 따르면 “남성스럽게 경기하는 여성에 대한 끊임없는 루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부인과 검사를 받아야 했던 선수 중 하나였던 메리 피터는 그 경험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저속하고 모멸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국제육상연맹IAAF는 염색체 테스트를 시작했다. 이는 폴란드 단거리 육상 선수 에바 크워부코프스카가 “한 염색체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메달을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 조건이 그녀의 기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의 없었음에도 말이다. 염색체 테스트는 어떤 경우에라도 너무 단순하다. XX 염색체가 있는 사람들(보통 여성과 관계있다)도 표현형적으로 남성처럼 발전할 수 있고, XY 염색체가 있는 사람들(보통 남성과 관계있다)도 여성과 비슷하게 발전할 수 있다.
1985년 스페인 허들 선수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스 파티노는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고 드러나 여자부 경기 출전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이라고 주장해 이 판정을 뒤집을 수 있었다.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을 가진 사람 중 일부는 외관이 ‘여성’과 동일하게 발달하지만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논란들 끝에 염색체 테스트는 결국 폐기됐다. 그러나 IAAF는 참가 선수가 “수상해” 보이면 성별 감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유지했다. 2009년 세메냐가 처음으로 테스트를 받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18살이었던 세메냐는 산부인과 의자에 누워서 성기 사진을 찍고 내부를 검사받아야 했다. 그녀는 여성으로 판정됐지만 그로 인해 테스토스테론 테스트가 도입됐다. 2011년부터 명시된 안드로겐 과잉증(테스토스테론의 과잉 생성)에 대한 IAAF의 정책은 여성 경기에 출전하려면 선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남성 수준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이 경기 수행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광범하게 논의되고 있다. 당시 세메냐에 대한 판정단의 결정은 많은 과학자에게 비판받았다. 《테스토스테론 : 비공인 생물학》의 공동저자이자 예일대학교 ‘글로벌 헬스 저스티스 파트너십’의 초빙 선임 연구원인 카트리나 카르카지는 세메냐에 대한 결정이 “생물학적 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 간성, 그리고 테스토스테론과 운동 능력의 관계에 대해 이미 유포되고 있는 잘못된 견해를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테스토스테론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기는 쉽다. 영국의 전 수영 국가대표 샤론 데이비스는 세메냐가 테스토스테론으로 경쟁 선수보다 8~12퍼센트 정도의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메냐는 경쟁자들을 그 정도 차이로 이긴 적이 없다. 그것은 최소한 800미터 경기에서 9초나 10초 차이로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 2016년 올림픽 결승전의 1등과 꼴찌의 차이는 4~5초밖에 안 됐다. 세메냐는 800미터 경주에서 가장 빨랐던 여성도 아니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빠른 여성 선수 4위를 기록했다.
트랜스젠더와 스포츠
이처럼 성은 다양하게 발달하고, 단순하게 몇몇 생물학적 요소로 남녀가 칼같이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 발달에서 다양성을 보이는 선수들에 반대하는 것은 이분법적인 성별 고정관념과 여성성, 남성성에 대한 보수적인 편견에 기초하고 또 그런 편견을 강화한다. 그런 이분법에 저항하고 도전해 온 트랜스젠더 선수들도 자연히 공격 대상이 된다.
일각에서는 여성 스포츠의 입지가 안 그래도 좁은데, 트랜스 여성이 여자부에 출전하면 시스젠더 여성이 설 자리가 더 없어질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분명 여성 스포츠는 자금 부족, 낙후된 시설, 남성에 비해 훨씬 낮은 연봉과 후원금 등의 문제를 항상 겪고 있다. 게다가 코치와 트레이너에 의한 성차별적 괴롭힘도 빈번히 벌어진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여성 스포츠에서 트랜스 여성을 몰아내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우파와 일부 트랜스젠더 비판적 페미니스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자원을 투입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트랜스 여성을 주적으로 몰아 여성 스포츠계에서 배제하려 한다.
텍사스, 플로리다 등 일부 미국 주에서는 공화당의 트랜스젠더 혐오주의자들이 공립학교에서 트랜스 여성이 여성 스포츠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플로리다주에는 터무니없게도 학교 스포츠에서 트랜스젠더로 의심되는 아동의 성기 검사를 허용하는 법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성과 여아 보호”라는 명분으로 제시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우파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023년 강원도민체전의 사이클 종목에 트랜스 여성 나화린 선수가 출전한 것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그녀가 전국체전에는 못 나가도록 지시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서구의 많은 스포츠 단체는 수십 년 동안 어떤 형태로든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는 정책을 시행해 왔으며, 대부분 문제없이 운영돼 왔다. 사회에서 1퍼센트 정도로 추정되는 트랜스젠더는 오히려 스포츠에서 현저히 과소 대표되고 있다.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사람들이 겪을 따가운 눈총과 차별을 생각하면 이는 놀랍지 않다.
2004년부터 트랜스젠더가 올림픽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2021년 역도 올림픽 뉴질랜드 대표팀에 포함된 트랜스 여성인 로렐 허바드는 인상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해 실격했다. 사이클리스트 베로니카 아이비(레이첼 매키넌에서 개명함)는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몇 안 되는 트랜스젠더 중 한 명이다. 베로니카는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게 새로운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트랜스젠더는 10여 년간 경기에 참가해 왔고, 소수만이 상위권에 올랐고 그 중 더 소수만이 1위를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기면 매도하지 말고 축하해 주세요.”
과학적 연구 결과들도 트랜스젠더의 경기 참여와 공정성 문제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논란이 분분한 상황 속에서, 꽤나 신뢰할 만한 기관들에서 트랜스 여성의 여자 부문 출전이 문제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예컨대, 2022년 11월 캐나다 스포츠윤리센터CCES는, 현행 올림픽 참가 기준에 부합하는 트랜스 여성(12개월 동안 테스토스테론을 억제)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전반적인 운동 능력에 이점이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이를 뒤집는 신뢰할 만한 반박 연구가 나오지 않는 한, 트랜스 여성의 여성 부문 참가를 스포츠계가 지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파들은 프로 스포츠에서뿐 아니라 학교 스포츠나 레크리에이션까지 겨냥해 트랜스 여성을 몰아내려고 한다. 2023년 5월, 영국에서 한 트랜스 혐오 그룹은 공원 자선 달리기 행사에 트랜스 여성의 출전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시도는 트랜스젠더를 더 골방으로 가두고 아예 사회 활동에서 몰아내려는 짓이다.
우리는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를 스포츠에서 배제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스포츠와 사회적 불평등
왜 테스토스테론, 염색체만 불공정한 혜택의 요인으로 보는 것일까?
역대 가장 성공한 올림픽 수영 선수인 마이클 펠프스는 남다르게 커다란 “윙스팬”(양팔 쫙 펴고 한쪽 손에서 반대쪽 손까지의 길이)을 가지고 있고 이중관절 발목 덕분에 오리발처럼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타고난 자질로 여겨지지 부당한 특혜로 여겨지진 않는다. 아무도 펠프스가 “공정”해야 한다며 발가락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엘리트 스포츠는 불가피하게 특이한 사람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전미농구협회NBA 남성 선수의 평균 신장은 약 2미터다. 전미여성농구협회에서 2미터 이상인 여성 선수는 8명뿐이었지만, 그녀들은 모두 놀라운 정도로 성공했다. 그녀들이 남성만큼 컸던 건 불공평한 걸까?
장거리 육상 선수 모 패라(소말리아 태생 영국 선수)는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를 더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해 산소를 줄인 텐트에서 잔다. 스키 종목에서 금메달을 7개 딴 핀란드 선수 에로 맨튀란타는 남성 평균보다 65퍼센트 더 많은 적혈구를 생성해 낼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경기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광범한 요인이 있다. 모든 요인이 생리적이거나 호르몬에 관련된 것도 아니다.
사회적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빈곤은 키와 힘에 영향을 미치고, 공공시설과 국가 교육의 격차, 특정 스포츠에 대한 투자 등도 선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한국이 양궁 강국인 이유는 한국인이 ‘주몽의 후예’여서가 아니라, 1980년대 한국 정부가 국가 위상 제고를 위해 양궁에 국가적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차라는 막강한 재벌의 지원으로 현대화된 훈련과 장비가 제공됐다.
그래서 올림픽 자체가 그런 투자가 가능한 선진국들의 독식 무대라는 건 자명하다. 지금까지 동계·하계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 212곳 중에 71곳은 메달을 단 한 개도 딴 적이 없다. 메달을 100개 이상 딴 나라는 30곳이 좀 넘고, 단 세 나라(미국, 소련-러시아, 영국)가 1000개 이상을 가져갔다. 엘리트 스포츠는 절대 공평한 경쟁의 장이 아니다.
여성 차별이 스포츠 속 성별 논란에 미치는 영향
스포츠에서 많은 여성은, 여성이 어떻게 생겨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특정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테니스 챔피언 세레나 윌리엄스는 지속적으로 성별 의혹을 받고, 남자처럼 생겼다는 비난을 마주했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여성 스포츠에서 만연하고, 젊은 여성들이 스포츠에 참가하는 데 장벽이 되고 있다.
박은선 선수가 한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은, “다르게 생긴” 여자 선수가 받는 따가운 시선을 보여준다.
“감독님이 머리 긴 애들, 여성스러운 친구들과 룸메이트를 쓰게 했다. 나도 여성스러워지라고 하는 것 같다. … 나도 노력을 한다. 여성스러워지려고 머리도 많이 길렀었다. 그런데 운동하다 보면 불편하더라. 헤딩을 하려고 하면 꼭 머리가 눈에 찔리더라.”
켈리프는 최근 한 미용업체와 협업해 촬영한 영상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그녀는 핑크색 꽃무늬 블라우스와 귀걸이를 착용하고 핑크색 아이섀도우와 립글로스 등으로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했다. 이는 과거 세레나 윌리엄스에 대해 ‘남자 같다’는 반응이 돌자, 그녀가 딱 붙는 빨간 드레스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을 떠올리게 한다. 왜 그녀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부분적으로 이에 대한 답은 스포츠가 글로벌 브랜드로서 상업화와 떨어질 수 없다는 점과 관련 있다. 광고주와 스폰서는 포스터와 TV 광고에 실릴 만한, 사진 잘 받는 여성을 원한다.
심지어 스포츠 협회와 후원단체들이 여성 선수의 경기복장을 ‘섹시’하도록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기계체조와 비치핸드볼에서 이런 문제가 벌어졌다. 2021년 유럽 비치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는 노르웨이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받았다.
여성 선수들은 종종 경기 능력이 아니라 표정, 몸매 등으로 평가받으며 성적 대상화에 시달린다. 여자 선수들은 너무 노출해도, 너무 가려도 입방아에 오른다.
이같이 매우 경쟁적이고 상업화된 환경과 성별 분리가 결합되면 누가 진짜 여성인지에 대한 규정이 중요해진다. 승자독식의 스포츠계에서 협소한 “여성” 규정에 걸맞지 않는 사람들은 문제로 간주되고, 결국 규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잘라내고 퇴출시키는 게 중요해진다.
여성 선수(시스젠더든 트랜스젠더든)를 두고 “남자처럼 생겼다”라든지 “너무 근육질이다”라고 지적하며 참가 시비를 따지는 것은 여성이 스포츠 영역에서도 외모로 평가받을 것이라는 인식만 강화할 뿐이다. 여성들은 스포츠에 참여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고, 이는 더 많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할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다. 더 많은 경우 여자 아이들이 스포츠를 그만두거나 포기하게 된다.
반면 “다르게 생긴” 여성에게 익숙해질수록 더 많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가할 용기를 얻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자본주의 사회에 뿌리박힌 여성 차별이 스포츠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주 어릴 때에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바가 다르다. 남자아이는 더 활동적이고 스포츠에 참여하길 요구받는 반면 여자아이가 체육에 열의를 보이면 ‘남자 같다’는 딱지가 붙는다. 학교 체육시간부터 엘리트 체육까지 체육은 근본에서는 여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성장하면서 체육 참여가 일반적으로 하락한다.
여성 스포츠에 대한 적은 지원과 차별적인 상금, 연봉은 이처럼 더 큰 사회적 시스템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장벽 중 어떠한 것도 남성과 여성을 염색체나 호르몬으로 협소하게 규정하는 것으로는 없앨 수 없다. 공공 서비스와 모두에게 열려 있는 체육에 대한 광범한 투자와 교육이 필요하다.
평등한 투자
여성 스포츠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여성 스포츠가 단지 눈요깃감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할 수 있고, 학교 운동 과목의 축소, 스포츠 시설 예산 삭감에 반대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무엇이 진정으로 즐겁고 건강한 신체 활동인지에 대해 눈높이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런 활동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돼야 한다. 이는 현재 체제의 우선순위에도 도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스포츠 스폰서 기업들의 이윤을 우선시하고 여성의 신체를 상업화하는 행태에 맞서야 하고, 더 자유롭고 평등한 체육 활동의 기회가 대폭 늘어나야 한다. 이는 프로 스포츠 세계의 정신인 “승자 독식”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다양한 성 발달 특징을 가진 선수나 트랜스 여성을 여성 스포츠계의 위협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완전히 외면하는 것이다.
MARX21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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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Sue Caldwell, ‘Gender, sport and capitalism’, Socialist Review(2019 July)를 최근 맥락으로 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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