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와 프롤레타리아
이슬람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 *
먼저 오늘 다룰 내용이 왜 중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우파와 지배계급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향해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격이 점점 더 심해지고, 한층 더 악랄해지고 있는데 지배계급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격의 핵심 중 하나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이슬람주의 운동이라고 매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악의적인 비난입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져 있고, 특히 젊은 무슬림, 그중에서도 많은 경우 젊은 무슬림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악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비난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이런 비난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무슬림이 당연히 이슬람주의자일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러나 이는 편견입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슬람주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류입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참여하는 무슬림들이 모두 이슬람주의자라는 생각은 전형적인 인종차별적 논리 아니겠습니까?
인종차별은 사람들을 획일화합니다. 특정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모두 같은 관념을 갖고 있다고 단정 짓죠. 그 집단이 흑인이든, 무슬림이든, 또는 다른 어떤 표적 집단이든 그 내부 구성원들의 개별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진실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다양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운동을 탄압했던 영국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이나 여타 사람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제 이 나라를 장악했다’는 식으로 내뱉는 최악의 발언들에 대해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발언들은 단순히 인종차별과 이슬람 혐오를 드러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극우와 파시스트 세력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는 집단 중 하나가, 사실은 엄청난 통제력을 은밀하게 행사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성장세가 위험한 선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토미 로빈슨 같은 나치가 몇 주 전에 5000명을 거리로 끌어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들이 자신감을 얻고 있고 세력을 재규합하고자 나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 모든 일은 매우 우려스럽게도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 극우와 파시스트 세력이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2024년 7월 7일] 총선 결선투표를 치르는 프랑스를 봅시다.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이 정부에 들어가고 아마도 [국민연합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다음 총리가 될 가능성이 꽤 높아 보입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마크롱에 깊은 분노를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크롱이 그간 무슬림과 무슬림을 방어하는 이들을 향해 ‘이슬람 좌파주의’, ‘이슬람 분리주의’ 등등 각종 멸칭으로 부르며 전쟁을 벌인 덕분에 마린 르펜과 그 주변 세력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둘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이슬람주의자들이 나라를 장악했다’거나 ‘이슬람주의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식의 공격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이슬람주의가 본질적으로 언제나 반동적이고 또 획일적이며, 극단주의나 심지어 테러리즘 등 온갖 반동적 전통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왜곡은 10월 7일 이후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파는 이슬람주의를 이런 식으로 단순화하고 왜곡해 왔습니다. 중동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행보를 정당화하고,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같은 세력들이 마치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것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식으로 구도를 짜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만큼 이슬람주의에 대한 이런 편견은 이곳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슬람주의에 대한 이런 편견은 주로 우파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거기서 말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편견은 종종 좌파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주의를 순전히 반동적인 획일적 존재로 보는 관점 말이죠.
그리고 좌파가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면 실제로 운동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부분은 발제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이슬람주의를 논의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추동하려는 혁명가로서 우리는 이슬람주의가 실제로 무엇인지, 즉 어떤 맥락에서 생겨났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슬람주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슬람과 이슬람주의
제가 먼저, 아주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과 매우 다르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슬람주의는 정치적 조류이고 20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반면 이슬람은 1400여 년 전 아라비아반도의 아랍 유목민 사회에서 탄생한 종교입니다.
이슬람에 대해 좀 더 말씀드리자면, 기독교, 힌두교, 유대교 같은 다른 종교처럼 이슬람 역시 역사를 통틀어 한결같이 유지돼 온 것이 아닙니다. 사실 어떤 종교도 새로운 사회에 맞춰 변하며 적응하지 않고서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동안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슬람은 1400여 년 전, 부족을 중심으로 조직돼 교역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아랍 유목민 사회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슬람은 아라비아반도를 넘어 빠르게 퍼져 나갔고, 이슬람 제국은 쇠퇴하던 페르시아 제국과 비잔틴 제국을 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슬람은 여러 나라의 공식 종교가 됐습니다. 동시에 그 나라들 안에서 지배자에 맞서는 운동의 일부 세력을 이끄는 열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이슬람이 다른 많은 종교처럼, 급격히 달라지는 사회 조건 속에서 변화하고 적응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상이한 계급의 이해관계에도 적응해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흥 지배계급이나 당대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맞춰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이 착취하고 억압하려는 대중의 이해관계에 맞춰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슬람은 다른 많은 종교처럼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권력자와 부자들을 비호하는 요소도 갖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편으로는 ‘자카트’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무슬림이 자신의 재산 중 일정 비율을 복지와 자선을 위해 내야 하는 의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의 토지나 재산을 가져가는 등의 행위를 가혹하게 처벌하기도 합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통치자에게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한 통치자에게 맞서는 것은 매우 큰 죄가 된다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처럼 종교 내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이슬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점들이 오늘 논의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치적 이데올로기이자 조류로서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에 담긴 가르침의 진정한 정신을 되살리고 그것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슬람주의는 특정한 과거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단순한 복고지향적 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리스 하먼이 이를 잘 설명했는데 그는 오늘 강연의 제목을 따온 논문 ‘예언자와 프롤레타리아’[국역:《이슬람주의, 계급, 혁명》, 책갈피, 2011]의 저자입니다. 그 논문은 마르크스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이슬람주의 운동을 정밀하고 탁월하게 분석하며, 이슬람주의는 사실상 사람들의 행동과 실천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는 행위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점을 언급하는 게 중요한 까닭은, ‘이슬람주의는 전통주의적이고, 과거 지향적이며, 현대 사회를 완전히 거부한다’는 통념(주로 지배계급이 만듭니다)과는 크게 대비되는 관점이고 실제 이슬람주의에 더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이슬람은 시작부터 변화와 분열 등을 겪어왔기 때문에, 사실 하나의 ‘진정한’ 과거란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슬람 원리의 진정한 가르침과 정신 등등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때, 그들은 그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것 자체를 새롭게 해석하고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그 사람들의 경험 등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많은 이슬람주의 운동은 사실 7세기 아라비아 사회로 돌아가거나 그 사회를 재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그 운동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이슬람 가르침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슬람주의 운동들은 현대 사회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현대 사회의 여러 측면과 다양한 발전 모습을 상당히 수용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사상 면에서든 다른 면에서든 이러한 유연성을 보여 주는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는데요.
먼저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그 지지 세력의 경우를 봅시다.
호메이니와 그의 세력은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크게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대중식당에서 서양 음악을 틀어놓는 등의 ‘문화적 제국주의’에 맞서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지배 자체에 정면으로 맞서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1979년 11월에 일어난 미국 대사관 점거가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상적 유연성은 하마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마스는 이슬람주의 단체인 만큼이나 민족주의 단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하마스는 자신들의 선배 조직인 파타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입장과 전술을 여러 면에서 계승했습니다. 예를 들어 게릴라전 전략을 채택했죠.
또한 하마스는 안타깝게도 파타의 안 좋은 입장도 답습했습니다. 바로 주변 아랍 정권, 군주정이나 독재정 같은 정권들이 자국 민중을 억압할 때 이를 비판하거나 개입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들의 민중이야말로 그 정권들보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항상 더 굳건하게 지지해 왔음에도 말입니다.
이 두 사례는 이슬람주의의 사상적 유연성을 보여 줍니다. 이는 ‘이슬람주의는 언제나 오롯이 반동적이고 전통주의적인 이데올로기나 사조일 뿐’이라는 식의 비난은 부당할 뿐 아니라 묘사로서도 부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경
이어서 이슬람주의가 등장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슬람주의는 중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사회가 변화하는 배경에서 출현했습니다.
크리스 하먼은 이 점을 아주 훌륭하게 설명했는데요. 하먼은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슬람주의는 자본주의의 충격으로 상처받은 사회에서 등장했다. 그 충격의 형태는 처음에는 제국주의 외세의 점령이었고, 나중에는 현지 자본가 계급의 성장과 독자적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을 수반하는 내부 사회관계의 변화였다.”
하먼이 가리키는 것은 이집트와 이란 등지에서 일어난 현상, 즉 매우 일반론적으로 말해 토지 개혁으로 인해 일부 농민은 부유한 농장주나 소규모 사업가가 됐지만, 대다수는 예전과 같은 상황에 머물거나 오히려 처지가 더 악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골에서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주했지만, 도시에서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실망합니다. 교육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많은 졸업생이 자신의 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공식 부문이나 불안정한 일자리만을 전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상황 때문에 국가와 기성 질서에 분노와 원망을 품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여러 주장에 귀를 열었습니다.
이슬람주의는 바로 이런 문제를 설명하며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데올로기로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을 뿐 아니라, 많은 이슬람주의 운동은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영역을 스스로 메우는 구실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시골의 가족과 멀리 떨어져 대도시에서 홀로 지내는 사람들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뤘고, 모스크는 이들에게 복지 서비스 등도 제공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이 이슬람주의에 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볼 때, 이슬람주의는 탈식민지 국가들에서 일어난 고통스러운 경험, 즉 불균등 결합 발전 또는 자본주의적 발전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가 주로 접하는 이슬람주의, 즉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이슬람주의는 중간계급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란의 경우 호메이니를 따르는 바자르 상인들에서 비롯됐고, 무슬림형제단의 경우에도 중간계급이 주축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제가 설명한 것처럼, 이슬람주의는 가난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 그 밖의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을 지니고자 했습니다.
많은 경우 학생이 가교 구실을 했습니다. 중간계급 출신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흔히 부르주아적인 대학 구성원에 비해 온갖 종류의 불평등을 겪기가 더 쉽습니다. 이러한 중간계급 출신 학생들은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호소하고자 애쓰면서 일종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었고 이슬람 단체나 대학 등이 그 통로 구실을 했습니다.
긴장과 모순
이슬람주의의 이런 계급 구성, 즉 중간계급에서 시작했지만 학생들을 가교 삼아 더 넓은 계층에 호소하려 한 것은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합니다. 바로 이슬람주의 운동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는 각각의 이슬람주의 운동이 활동하는 환경과 그 안의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알제리의 경우, 이슬람구국전선(프랑스어 약자로 FIS)은 1991년 청소 노동자 파업에 반대하며 이 파업이 외부 세력(공산주의자, 알라의 적 등)이 침투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2개월 후, 군부가 선거를 방해하려 하며 위협하자 이슬람구국전선은 입장을 바꿔 무장봉기를 지지합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기성 질서를 존중하는 세력으로 인정받으려 하며 자신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중간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했지만 두 달 후에는 국가와 대결하는 입장으로 전환했는데 후자는 노동계급과 빈민층 사이에서 더 호응을 이끌어내기 좋았습니다.
어떤 이슬람주의 운동이든 서로 다른 두 계급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려 하면서 커다란 모순에 부딪힙니다. 그것은 바로 때로는 국가와 체제, 제국주의에 순응하려 하지만, 다른 때에는 그에 도전하며 맞서려 하는 모순입니다.
하마스에서도 이러한 긴장과 역학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1987년에 만들어진 하마스는 (연계 조직인 무슬림형제단과 마찬가지로) 주로 복지 문제, 지역사회 활동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조직이었습니다. 따라서 일종의 개혁주의 조직으로 봐야 합니다. 개혁주의는 단순히 선거주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결함과 국가의 실패 등을 부분적으로 메우는 것도 의미합니다.
하마스는 창립 초기에 이런 활동을 주로 했습니다. 하지만 PLO가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기로 합의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이 시기에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이스라엘에 맞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파타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30년간 오슬로 협정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에 완전히 실패하면서, 하마스의 주장은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파타가 이스라엘의 점령에 체계적으로 협력해 온 사실도 하마스의 위상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 점은 마지막에 다시 한번 짚겠습니다.
제가 설명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슬람주의 운동 내에 많은 긴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국가와 체제 내에서 수용되기를 추구하는 입장과, 체제에 맞서고자 하는 입장 사이에서 동요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태도
이슬람주의와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논의하기에 앞서, 이슬람주의에 대한 잘못된 태도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는 이슬람주의를 그저 진보적인 운동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영국 등 많은 곳에서 이슬람주의가 좋은 면으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예컨대 이란 혁명 초기에 이란의 좌파들은 호메이니를 혁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였고, [호메이니의 정당인] 이슬람공화당과 자신들 사이에 정치적 차이가 있었음에도 호메이니를 감히 비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실수였습니다. 물론 좌파와 이슬람주의자들은 샤 정권에 맞서 함께 싸웠지만, 좌파는 다른 문제들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오류로 판명 났는데, 혁명이 일어난 뒤 2년 동안 호메이니와 이슬람공화당이 정치적으로 마음껏 운신할 수 있게 해 줬고, 결국 이들이 이란의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혁명의 진정한 원동력이었던 노동계급과 도시 대중은 권력을 빼앗겼습니다. 결국 [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노동자평의회] 쇼라와 그 외 수많은 것이 탄압받았습니다.
반대로 이슬람주의를 그저 반동적인 정치운동으로 보거나 심지어 파시즘으로 보는 것도 큰 실수입니다. 오늘날 하마스를 파시스트나 나치로 규정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점이 아마도 이곳 영국과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가장 심도 있게 다뤄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유럽에서만 나타나는 실수가 아닙니다. 이슬람주의 운동이 크게 세력을 떨쳐온 나라들의 좌파들도 이런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들이 스탈린주의의 종교관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집트공산당이 그랬습니다. 이슬람주의 문제에서 그들은 군사 독재 정권의 편에 섰습니다. 이 독재 정권이 바로 자신들을 감옥에 가두고 탄압했는데도 그랬습니다. 이집트공산당은 군사 독재 정권이 이슬람주의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할 때마다 이를 칭찬하며, 무슬림형제단에 맞서 군사 독재 정권의 편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로 인해 결국 이집트공산당은 몰락했습니다. 대중 사이에서 신뢰를 아주 크게 잃었고 많은 이들이 무슬림형제단에 동조했기 때문입니다. 무슬림형제단은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오히려 군사 독재에 진정으로 맞서는 세력으로 점점 더 여겨졌습니다. 이집트공산당은 일부 사람들에게 점차 독재 세력의 일부로 인식됐습니다.
이집트공산당은 무슬림형제단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지지는 그저 사람들이 종교적이어서가 아니라, 사회와 불평등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를 이슬람주의를 통해 표출했기 때문입니다. 또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무슬림형제단의 종교적 성격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예컨대 80년대와 90년대에 무슬림형제단에 들어간 많은 사람들은 학생 시절 공산당원이었습니다. 이들이 무슬림형제단으로 옮겨간 것은 무슬림형제단이 진정한 투사이자 저항 세력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전략
이러한 사실은 이슬람주의 운동이 부상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중동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화가 이슬람주의 운동이 등장한 배경이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세속적 좌파가 기존 질서에 실질적으로 도전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이집트공산당이 실패하고 무슬림형제단이 떠오른 사례에서 봤듯이 말입니다.
이는 하마스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마스는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 파타와 PLO가 실패하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전략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올바른 처방이 가능합니다. 만약 우리가 운동에서 어떤 특정한 사안이나 발전 양상을 잘못 진단하면, 투쟁에 재앙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이슬람주의 운동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은 이슬람주의 운동 내부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모순으로 인해 이슬람주의 운동은 때로는 기존 체제에 순응하려 하고, 때로는 국가와 제국주의 등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의 이슬람주의 운동을 개별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슬람주의자들과 같은 편에 서는데, 예를 들어 예멘 폭격 반대나 후티 반군 문제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절대로 국가의 편에 서지는 않습니다. 즉, 이슬람주의자들과는 때로 함께하지만, 국가와는 절대 함께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혁명가로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만약 이슬람주의의 호소에 매력을 느끼는 피억압자, 노동계급, 빈민 대중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들과의 공통점을 찾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인종학살,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의 파괴, 이로 인한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가 공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에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운동이 특히 영국에서 이토록 광범위하게 확산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20년 전 소위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이 일어났을 때, 혁명가들은 이슬람주의에 대한 접근 방식을 두고 다른 좌파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했고, 이 덕분에 이슬람주의의 영향을 받은 조직들도 반전운동에 참여시키고 운동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운동의 규모와 정치적 영향력이 커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고 200만 명이 거리에 나섰습니다. 비록 이라크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 유산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형태와 규모, 역동성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우리 주변의 여러 세력을 정치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유물론적 접근이 가장 유용한 도구이며 그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가 가장 유용하다는 것을 보이려 했습니다. 특히 모순으로 가득한 이슬람주의와 같은 세력을 이해하는 데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슬람주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오늘날 전쟁광 지배계급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에서 계속해서 중요할 것입니다.
정리 발언
네 가지 논점에 대해 먼저 답변드리고 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먼저 한 동지께서 종교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동의하면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피억압자들의 입장에 서 온 종교가 분명 꽤 있습니다. 그 동지께서 말씀하신 이슬람도 그렇고, 또 로마제국 시대 기독교 등 그런 사례는 더 많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 안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해석도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도 다릅니다.
이는 이슬람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예로 들어보면, [백인 우월주의 폭력 조직] KKK단의 기독교와 미국 흑인 평등권 운동을 이끈 교회들의 기독교는 매우 다릅니다.
우리 혁명가들이 누군가에게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을 운동 참여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라는 한 동지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 자신의 얘기를 솔직히 하자면, 저는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는데 그런 제가 함께할 사회주의자들을 찾고 있었을 때 이 문제가 정말 중요했습니다. 종교적인 가정 출신이라는 이유로 저를 반동적이라고 딱지 붙이는 사회주의 조직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좌파를 일각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 동지의 지적에 매우 동의하는데 제가 이슬람주의를 일종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류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주의 운동들 사이에서도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무슬림형제단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수단의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과 매우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수단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와 함께 정부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쿠데타로 들어선 정부가 [2019년 혁명으로 타도된]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과 닮았는데도 말입니다.
이렇듯 이슬람주의 운동들은 서로 크게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들을 이해할 때 각각 개별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컨대, 알카에다나 [소말리아의 무장 조직] 알샤바브를 무슬림형제단 지지자와는 다르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알카에다나 알샤바브 같은 조직도 여타의 이슬람주의 운동처럼 제국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이 맞지만, 동시에 격렬한 종파 갈등에서 비롯됐고 그래서 그들 자체도 종파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운동에 막다른 길만을 제시할 뿐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슬람주의 조직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각각 개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분이 제기한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문제를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특히 영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서는 이런 두려움의 근저에 인종차별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분명 인종차별과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는 이슬람 혐오가 배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슬람주의 운동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세계의 특정 지역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태도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세계 각지의 운동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역학 관계를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슬람주의는 단순히 세계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닙니다. 이곳 영국에 있는 우리에게도,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슬람주의를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컨대, 제국주의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인종학살에 저항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다양한 무슬림 단체와 함께하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단체들이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어떠어떠한 견해를 가졌다며 함께하지 말아야 할까요? 우리는 당연히 함께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전선의 정치입니다. 공동의 목표와 대의를 위해 함께하는 과정에서 다른 쟁점에 관한 주장도 주고받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이슬람주의를 이해하는 건 실제로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슬람주의에 대한 이런 관점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훈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 이슬람주의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와는 단결하고 누구와는 그러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가말 압델 나세르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수에즈 운하의 재국유화는 분명 긍정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는 프랑스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선 반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세르가 이집트 민중의 친구였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나세르를 옹호하며 발언한] 동지 자신도 인정하셨지만 나세르는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했고, 게다가 노동조합의 파업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인물이었습니다.
나세르 집권 초기는 아랍 사회주의(저는 나세르의 아랍 사회주의는 어떤 면에서도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봅니다)와 이스라엘의 대결이 특징이었는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여타 참전국에 두 차례나 참패를 안겼습니다.
이후 나세르는 집권 말기에 이러한 대결 노선에서 많이 물러나 이스라엘과 화해하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의 후임자인 안와르 사다트와 호스니 무바라크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더욱 진전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세르는 노동계급의 친구가 아니었던 반면, 무슬림형제단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노동계급의 일부였습니다. 우리가 관계 맺으려고 노력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들입니다.
이집트 혁명의 역사를 빠르게 돌아보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잘 살펴보면,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연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연대와 단결에 동참하는 게 중요한데, 계급 의식 등을 깨우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제공하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집트 혁명이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이슬람주의의 한계를 살펴봅시다. 무슬림형제단이 이를 잘 보여 줬는데요. 그들은 [독일의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기독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는 자유주의자들이었고, 별다른 개혁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했던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집트에는 가자지구와 맞닿은 라파 국경이 있죠. 이 국경은 이집트 혁명이 진행되면서 개방됐습니다.
이 국경을 다시 폐쇄한 것은 군사 독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무슬림형제단 정부였습니다. 정부에 입각한 중간계급이 중동 지역의 역학관계에 순응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양보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이집트 혁명은 한편으로 이슬람주의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주의 운동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왜냐하면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형제단 회원들을 정치적으로 깔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무슬림형제단 회원들 중에는 공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운동 내부에서 분열이 시작됐습니다. 노동계급 사람 수십만 명이 무슬림형제단에 표를 던지거나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한 것은 독재 정권이 강요했던 불평등과 고난을 증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이런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깔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분열로 인해, 우리가 익히 알듯이 군부가 잔혹하게 쿠데타를 일으켜 반혁명에 성공하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혁명 세력 중에서도 쿠데타를 환영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이들이 있었는데, 이는 혁명에 파멸적 결과를 가져왔죠. 이 사례는 이슬람주의 운동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잘못 판단했을 때 오는 위험성을 보여 줍니다.
이집트 혁명을 보면, 체제와 국가 기구에 맞선 진정한 구조적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 단체는 발로 뛰며 활동할 혁명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애씁니다. 다양한 투쟁에 개입하고, 이러한 문제들과 씨름하고, 서로 다른 집단들이 연대하도록 분투할 활동가들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혁명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앞으로의 투쟁에 개입하는 것에 매우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주의에 관한 오늘 토론이 보여 줬듯이, 마르크스주의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운동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더 폭넓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따라서 여러분께 우리 단체에 가입하실 것을 진심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MAR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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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국 맑시즘2024 강연 중 ‘The prophet & the proletariat: a Marxist analysis of Islamism’(Nadia Sayed)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연사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학생팀의 공동조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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