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교육학을 위하여
우리에게 비고츠키가 필요한 이유 *
1934년에 사망한 러시아의 한 심리학자 겸 교육학자의 연구가 인간의 학습과 발달에 관해 우리한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교육 시스템의 모습에 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레프 비고츠키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여러 해 동안 쓴 놀랄 만큼 다채로운 저작들에서 찾을 수 있다. 비고츠키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상황에서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동을 비롯한) 아동의 학습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탐구하고자 했지만, 훨씬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의식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되는지에 대한 이해도 증진하고자 했다.
이 글에서는 비고츠키와 러시아 혁명의 관계를 살펴보고, 우리가 개념을 형성하고 학습하는 방법과 상상과 놀이의 본질에 대한 비고츠키의 핵심 사상을 알아본다. 또한 아마도 비고츠키의 가장 유명한 이론일 ‘근접 발달 영역’의 진보적 잠재력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그런 다음 비고츠키의 사상을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깊이 뿌리박힌 점점 더 권위적인 교수법·교육과정과 대조한다.
1 이러한 조치에는 국가 교육의 목적과 한계를 규정하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관점이 반영돼 있다. 이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지를 통제하면서도 동시에 시장의 요구에 충분히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노동력을 생산해 내야 하는 지배계급의 필요에서 비롯한다. 이와는 반대로 비고츠키의 연구는 (또한 브라질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 같은 다른 진보적 사상가들의 연구도) 우리가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우리가 바라는 교육학과 교육과정이 무엇일지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영국의 교육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 같은 권위적인 정책은 훨씬 다양한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미국과 호주에서는 정기고사와 시험을 강조하고, 미국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텍스트를 공공연하게 검열한다. 이를테면 텍사스 주에서는 공화당이 제정한 법률에 따라 학부모가 한 명만 반대해도 교육과정과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퇴출시킬 수 있다. 이 정책의 희생양으로는 《가장 파란 눈》도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토니 모리슨이 쓴 인종차별 반대 문학의 고전이다.2 학교가 아카데미[정부 지원을 받지만 공립학교 규제를 따르지 않는, 학업성취도 향상에 집중하는 사립학교]로 전환되고 민영화되며, 교육 노동자들이 엄격하게 통제당하게 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이러한 개혁으로 교사들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자율성과 통제력을 상실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가장 잘 지원할 방법을 결정할 권한을 박탈당했다.
비고츠키의 연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 무엇이 극심하게 소외됐는지 많은 부분을 밝혀 준다. 또한 이윤보다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인 교육 시스템을 원한다면 우리가 직면한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영국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학생과 교육자들은 위기에 처한 시스템 속에서 일하고 있다. 엄청난 예산 부족과 삭감, 교직원의 대량 이탈, 무너져 내리는 건물[영국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 건물 약 150곳에 붕괴 위험이 있다], 정신 건강 문제와 학교 시스템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는 학생 수의 증가가 그 증거다. 이러한 문제는 보수당의 교육 정책과 뉴라이트의 의제가 실현됨에 따라 교육기준청Ofsted의 감시 하에교육과정, 교수법 및 학습에 대해 정부가 공인한 방식만이 강요되고 있으며, 동시에 학생 품행과 교복에 엄격한 규율이 부과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 교육 제도는 흑인 학생과 ‘특수교육 필요와 장애SEND’가 있는 학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결과 중 하나는 퇴학과 ‘오프롤링off-rolling’이 증가하는 것인데, 오프롤링이란 학교가 학부모에게 아이가 다른 기관이나 가정에서 교육받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고 제안해서 학교 명부에서 ‘까다로운’ 학생(즉, 더 많은 보살핌과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학교 교육 대상에서 빼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문제’ 학생이 학교 순위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인 경우가 많다.
3 더군다나 시험 대비에만 끊임없이 집중해서 ‘학문적’ 과목에서도 창의적인 접근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과 함께 (흑인이든 백인이든) 노동계급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진행됐는데, ‘기초 학력’에만 집중하는 억압적이고 시험 중심적인 교육과정을 강요한 것이다. 그에 따라 창의성과 예술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다. 전국교육노조NEU의 간부인 켄 존스는 노조의 전국 잡지인 《에듀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사립학교와 공립학교 사이에 창의력 시설의 질 차이가 극명하다고 지적하며 이 점을 설명했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23년 사이에 공립학교에서는 예술 과목의 GCSE 및 A 레벨 과정[중등 교육 자격 시험과 대학 입학 시험을 치기 위한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감소했다.비고츠키: 생애, 저작 그리고 러시아 혁명
4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얼마 후 고멜로 돌아와 교사 양성과 여타 활동에 참여하다가 1924년 다시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비고츠키는 1896년 고멜의 한 중간계급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멜은 현재 벨라루스에 속해 있지만, 당시에는 차르가 통치하는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다. 유대인들은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점점 심해지는 차별을 받고 있었고, 유대인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폭력적인 인종 학살이 증가하고 있었다. 비고츠키는 차르 정권의 유대인 차별 법률에 따라 유대인 혐오적 할당제 적용을 받았기에 고등교육 진학을 위해서는 ‘유대인 추첨제’[유대인 학생들은 할당된 비율 내에서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며, 지원자가 초과할 경우 추첨으로 입학자를 선정하는 유대인 차별적 제도]를 통과해야 했음에도,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는 또한 동시에 사립 대학인 샤냡스키 대학교에도 등록해 철학, 문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관한 논문을 완성했다.5 비고츠키는 학문적 여정 내내 심리학, 학습, 교육 분야에서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키는 데 깊이 관여했고 그 사상을 이론적 차원과 실천적 차원 모두에서 탐구하고자 했다.
비고츠키는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시와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을 비롯해 관심사가 광범위했다. 초기 저작 중 하나인 《예술심리학》은 미학을 다루고 있으며, 《생각과 말》과 같은 매우 이론적인 저작에서도 문학적 언급이 곳곳에 등장한다.비고츠키는 매우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기 때문에 이 글에서 그의 저작을 전부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비고츠키의 저작을 살펴보는 나 자신의 관점이 내가 중등학교 영어 교사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충분히 폭넓지 못할 수 있다. 비고츠키의 사상 중 이 글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비고츠키의 놀이 연구를 다루면서 초등학교 연령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고츠키의 사상이 수학·과학의 개념과 지식 발달에 관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더 많이 다뤄져야 한다. 비고츠키는 고아와 거리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동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비롯해 다양한 대상을 연구하며 이러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비고츠키는 1934년 37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셜리 프랭클린이 쓴 얇은 책 《비고츠키, 교육 그리고 혁명》은 비고츠키의 삶과 핵심 사상을 명확하고도 유용하게 설명하고, 얀 발시네르와 르네 반 데비어가 쓴 《비고츠키 이해하기: 종합을 위한 탐색》도 그렇다. 두 책 모두 러시아 혁명이 비고츠키의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강조한다.
혁명이 가져오는 격변과 희망을 보며 사람들은 당연히도 더 좋은 해방적인 교육을 요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1871년 프랑스 노동계급의 봉기인 파리 코뮌을 지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들이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교육 시스템이 무엇일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산드라 블러드워스는 파리 코뮌의 교육 개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린이의 3분의 1은 교육을 전혀 받을 수 없었던 당시, 코뮌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의무교육을 시행하려 애썼다. 교사의 임금은 인상됐고, 여성과 남성 모두 동등한 임금을 받았다. 여성을 교장으로 하는 기술 학교가 설립됐다. 학생들은 과학·문학 교육을 받은 후, 일과 중 몇 시간을 미술과 드로잉을 산업에 적용하는 데 썼다.
파리 코뮌은 1871년 5월 잔인한 반혁명으로 인해 피로 물들며 파괴됐다. 그럼에도 파리 코뮌이 보여준 ‘종합기술교육’이라는 교육관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다시 부상했다. 당시 볼셰비키의 이상은, 이후 1930년대 소련 교육 시스템에서 이뤄진 스탈린주의적 ‘개혁’이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도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육 시스템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소비에트 정부의 1918년 교육법 전문은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인격은 사회주의 문화에서 최고의 가치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인격은 오직 평등한 사람들의 조화로운 사회에서만 그 성향을 일말의 아쉬움 없이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이 고유하게 발달할 권리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 사회주의 사회의 안정성은 병영의 획일성에 기초한 것도, 인위적 훈련에 기초한 것도, 종교·예술을 통한 기만에 기초한 것도 아니며, 다만 이해관계의 실질적인 연대에 기초하기 때문에, 인격을 억압하거나 속이거나 획일화된 틀에 맞출 필요가 없다.이 법에는 17세 의무 교육 도입, 어린이에게 제공하는 무상 급식, (학생을 포함하는) 학교 운영 공동체 수립, 숙제와 체벌 폐지가 포함됐다.
9 혁명 이후 여러 해 동안 비고츠키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희망에 불타올라 교육, 언어, 학습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더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비고츠키는 이러한 가치에 헌신해 새로운 사회와 교육 시스템을 건설하는 데 전념했다. 런던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는 혁명이 “우리의 최고의 대의”라고 말했으며, “혁명은 인류의 재교육에 착수한다”고 쓰기도 했다. 후자는 바로 레온 트로츠키가 혁명 과정이 인류를 변화시킨다고 묘사한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10 비고츠키가 교육 및 심리학 분야에서 쓴 저작들은 그가 다양한 동료들, 특히 발달심리학자 알렉산더 루리아(이후 신경심리학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룬다), 알렉세이 레온티예프와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쓰여졌다는 점도 봐야 한다. 11
이러한 사상적 발전은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가 직면했던 거대한 실천적 문제들을 배경으로 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혁명이 만들어낸 엄청난 지적 흥분과 열기의 일부라고도 이해해야 한다. 모스크바는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더 광범한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활발한 토론과 논의의 중심지였다. 비고츠키는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 있는 관계망에 매우 깊이 관여했다. 예컨대 비고츠키는 시인 오시프 만델시탐과 친분이 있었고, 비고츠키의 사상은 (아래에서 언급할) 언어학자 발렌틴 볼로시노프 같은 다른 소비에트 이론가들의 작업과도 분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비고츠키에게는 드높은 이상이 있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교육학자 마이라 바스가 쓴 뛰어난 저작 《교사 비고츠키: 교육자들을 위한 비고츠키 심리학 안내서》에서는 제1차세계대전, 러시아 내전, 그리고 1921~1922년의 소비에트 기근 이후에 뒤따른 빈곤과 절망적 상황을 묘사했다. 이러한 일련의 재앙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약 700만 명의 아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한때 모스크바로 찾아온 길거리 아이들만 매주 1000명에 달했는데, 비고츠키와 그의 동료들은 이 아이들 중 일부를 데리고 연구했다. 비고츠키의 연구 중에서 다소 문제적인 측면 하나는 루리아가 이끌었던, 소비에트 연방의 중앙아시아 지역 탐사 연구에 참여했던 것인데, 그들은 거기서 “원시적인” 사람들의 심리를 탐구하려 했다. 여기서는 분량 문제상 이 주제를 깊이 있게 충분히 다룰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탐사와 민속지학적 연구 프로젝트는 아무리 좋게 봐도 유럼중심주의적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인종차별적이라고 여기는 가정에 기초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반 데 비어와 발시네르는 이 점에 대해 꽤 자세히 살펴본다.14 오늘날에는 아동 또는 성인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있는 어떠한 교육자 등도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고츠키가 오늘날 우리라면 매우 피했을 만한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프랭클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결함학”, “비정상”, “불구”, “지체” 등의 용어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동에 대해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맥락과 잘 맞지 않는다.”15 바스와 프랭클린 모두 이 점에 대해 흥미롭고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16 또한 비고츠키가 자신이 지원했던 개인들을 매우 세심하게 대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바스는 비고츠키가 모스크바의 ‘실험적 결함학 클리닉’에서 일했을 때의 사례 기록을 인용하는데, 여기에는 비고츠키가 콜랴라는 이름의 한 소년과 어머니, 교사들과 상호작용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17
그러나 비고츠키가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특수교육 필요 아동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우리가 오늘날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한결같은 노력이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장애는 개인의 손상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개인이 세상에 접근하는 것을 사회가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탓에 생긴 결과이다. 바스는 비고츠키가 “장애 아동 교육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 혹독하게 비판적이었고, 그것이 거만하고 시혜적이며 동정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봤다”는 점을 언급한다. 비고츠키는 아동이라면 누구나 학습 과정에서 능동적이고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수밖에 없고 특수교육 필요 아동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18 1930년대 초 비고츠키는 당국의 거부와 공격이라는 압박을 받게 됐는데, 이러한 공격은 [비고츠키의 사후] 1936년 반反아동학 법령으로 절정에 달했다. 19 비고츠키의 저작 대부분은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 소련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20
비고츠키는 소련의 많은 지역에서 가장 기초적인 교육과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난관에 부딪히고 그 자신의 건강도 악화됐지만, 그의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으며 이 사실은 그가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하지만 1934년 비고츠키가 사망할 무렵 소련은 스탈린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10월 혁명의 많은 성과가 후퇴했고, 교육 시스템은 차르 치하에서 만연했던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전통적인 과목 기반 교육이 다시 도입되고 ‘프로젝트 기반 교육과정의 활동 중심 교육 방법’은 버려졌다. 또한 숙제가 다시 부활하고 형식적이고 높은 수준의 규율이 부과되는 교육으로 되돌아갔으며, 교장은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이 됐다.21 비고츠키의 저술 대부분은 이제 《비고츠키 전집》에서 더 온전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이 글에서는 《전집》을 바탕으로 소개할 것이다.
1960년대 서구에서 비고츠키의 연구가 ‘재발견’되었을 때, 처음에는 무단으로 이곳저곳 삭제된 채로 출판됐는데 비고츠키의 접근 방식의 기반인 마르크스주의를 가린 것이었다. 바스는 이탈리아 심리학자 루차노 메카치의 상세한 연구를 바탕으로 비고츠키의 연구와 저술이 단편적으로만 발췌되고, 그것도 종종 심각한 편집을 거친 후에 갖가지 번역본으로 소개됐음을 보여 준다. 영국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저작들 중 많은 사람이 《사고와 언어Thought and Language》로 알고 있는 저작은 후에 출판된 《비고츠키 전집Collected Works of L S Vygotsky》에서는 《생각과 말Thinking and Speech》로 나온다. 바스는 1978년에 출간된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Mind in Society》에 실린 ‘소논문들’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었다. 바스는 이를 “매우 결함 있는 발췌본”이라며 편집 과정이 원문의 취지를 훼손하고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서술했다.게다가 원문인 러시아어 텍스트에서 번역한 여러 번역본의 정확성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고, 비고츠키가 실제로 쓴 내용은 무엇이었는지도 논란이 있다. 이러한 논쟁은 ‘근접 발달 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개념을 비고츠키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오랜 논의를 비롯해 그의 여러 사상을 수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어와 의식: 개념의 발달
22 비고츠키 사상의 핵심에는 우리가 어떻게 의식하고 생각하며 느끼는 인간으로 발달하는지를 이해하고자 한 탐색이 자리잡고 있다.
비고츠키는 생의 마지막 해에 의식과 감정에 대한 책들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죽기 전에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러한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저작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23 비고츠키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볼로시노프는 언어를 기호의 집합체라고 언급하며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의 의식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건축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기호라는 사회적 건축물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볼로시노프는 [상호] 대화의 중심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의식은 그 어떤 것을 설명하는 데에도 이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이데올로기적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24 비고츠키는 언어를 이와 유사하게 이해하며, 언어와 단어를 상징을 다루는 도구로 본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사람들의 연구를 바탕에 둔다. 25
비고츠키의 이론은 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의해 형성되고 사회화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썼듯이, “언어는 의식만큼이나 오래됐다. 언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실천적 의식이며, 바로 그 이유로 나 자신에게도 실제로 존재한다.”비고츠키는 아동의 의식과 내면의 언어가 성숙하고 사회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단어의미word-meaning’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바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의식과 행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고츠키의 관점은 상호작용주의였다. 정신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세계에서의 경험, 인간 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에서 언어의 역할은 근본적이다. 언어를 통해 고등 정신 기능이 내면화되고 발달한다. 따라서 의식은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과정의 산물이다. 고등 정신 기능은 점점 더 복잡한 심리학적 체계들과 상호작용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정신 발달의 일부가 되고 이는 끊임없는 변증법적 변화 과정이다.
이는 비고츠키가 《생각과 말》의 마지막 구절에서 표현한 바다.
언어가 의식 그 자체만큼 오래되었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 실제로 존재하는 의식이라면, 사고의 발달뿐만 아니라 의식 전체의 발달이 단어의 발달과 연결돼 있다. 여러 연구는 단어가 몇몇 고립된 기능에서가 아니라 의식 전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 의식에서 단어는 (포이어바흐의 말처럼) 한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단어는 인간 의식의 역사적 본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27 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함의에 대해 깊이 다루지는 않았다.
비고츠키는 발달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이고 역동적인 관점을 《생각과 말》 전반에 걸쳐 강조했다. 다만 “어떠한 사회에서든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마르크스의 통찰28 이러한 견해 차이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자기중심적 말하기’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말하기란 어린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면서, 특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자신의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는 방식을 뜻한다.(물론 성인이 된 우리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쓸 때 여전히 이렇게 한다.) 피아제는 유아기와 자기중심적 말하기에는 “자폐적” 특성이 있다고 본다. 29 여기서 “자폐”는 오늘날 우리가 신경다양성neurodivergence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 임상적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아이들은 비현실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환상적 사고를 하는 “자폐” 단계를 초기에 경험하며 심리학적 성숙을 위해서는 그런 생각을 떨쳐 내야 한다. 피아제와 달리 비고츠키는 아동에게 자기중심적 말하기는 사고의 방향을 잡기 위해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이며, 점차 어떤 활동의 중간과 마무리 단계가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계획을 세우는 역할로 옮겨 간다고 주장한다. 비고츠키는 이를 “그림의 제목을 짓는 데에서 잘 알려진 발달 순서”와 비교한다. “어린아이는 먼저 그림을 그린 다음 자신이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그림이 반쯤 완성되면 제목을 짓고, 마침내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무엇을 그릴지 미리 결정하게 된다.” 30 아동이 성숙함에 따라 자기중심적 말하기의 사용은 줄어들고 점차 내적 말하기, 즉 사고의 도구로서 언어가 형성된다. 교실에서 크게 소리 내어 말하는 아이들이 말하기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매우 어린 아이조차 장시간 앉혀 놓고 엄격하게 가르치는 현재의 교수법이 얼마나 부적절하고 잠재적으로 해로운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비고츠키는 다른 심리학자들을 깊이 다뤘는데 그중에서도 스위스의 아동 발달 이론가 장 피아제를 특히 깊이 다뤘다. 피아제가 아동기 발달에 대해 취한 견해는 당시든 지금이든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비고츠키는 피아제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연구에 큰 이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생각과 말》에서는 이 주제에 한 장을 통째로 할애했다.아동이 언어를 내면화하는 방식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역사적 이해는 비고츠키의 개념 발달 이론의 기초가 된다. 중요한 점으로 비고츠키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배우는 개념과, 교육을 통해 습득하는 추상적 개념, 즉 그가 “과학적” 개념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분한다. 비고츠키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과학적 개념을 가르칠 때 학생에게 도전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것이 교육자의 필수적 구실이라고 강조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파들이 진보적 교육을 공격하는 거짓 주장, 즉 학생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암기하도록 제시하기보다는 학생들이 허우적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도록 내버려둔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이 문제는 아래에서 논의할 것이다). 실제로 비고츠키는 학생들에게 도전을 제기한답시고 그저 암기식 학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특수교육 필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여겼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과학적 개념은 “아동이 단순히 습득하거나 암기하여 기억 속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 자신의 사고로 비범한 노력을 한 끝에 발생하고 형성된다.”
피아제는 아동의 사고가 성인의 사고로 대체된다고 주장했지만 비고츠키는 다르게 봤다. 비고츠키는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사이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름이 적힌 색깔 블록(오늘날 ‘비고츠키 블록’으로 알려진)을 사용한 실험을 통해 어린 아이들이 블록을 분류하면서 어떻게 생각을 발달시키는지 탐구했다. 처음에는 무작위로 블록을 선택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블록을 보다 객관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하며, 비고츠키가 ‘유사개념’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유사개념이란 겉보기에는 추상적이지만 실제로는 구체적 생각에 뿌리를 둔 것이다. 비고츠키에게 아동의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라는 구체적인 현실은 아동의 발달 과정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아동이 교육을 통해 만나고 발전시키는 추상적 개념의 일부가 된다.
비고츠키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둘 다 어느 한 쪽이 발전하면 나머지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외국어 학습이 모국어 학습과 완전히 다르며, 따라서 목표 언어와 모국어 모두에서 언어 형식에 대한 추상적 이해를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기본 산수와 숫자에 대한 아동의 이해는 일반화와 추상화를 수반하는 대수학을 공부하면서 변화한다. 이러한 관점은 아동을 백지 상태로 취급하고 아동의 배경, 기존 지식, 이전 경험이 현재 교육에 갖는 가치나 관련성을 무시하는 교육 및 교수법 이론에 반대된다. 비고츠키는 ‘학령기 아동의 교육과 정신 발달 문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아동의 교육이 학교에 가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학교 교육은 결코 진공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아동이 학교에서 무얼 배우든 거기에는 선사先史가 있다.이러한 관점은 우파 교육 전문가들의 주장, 즉 학교가 학생들의 이중 언어 구사 능력[공용어와 모어]을 발전시켜 주는 것이 사회와 인종 통합에 역행하고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기도 하다. 사실, 아동의 모어母語를 지원하는 것이 정서적·사회적 발달에 중요하며 개념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근접 발달 영역
34 이 개념은 집단적·사회적 활동으로서의 학습이라는 개념을 이론적으로 강력하게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이유로, 교실 내에서 능력이 서로 다른 학생들을 같은 모둠으로 편성해 학생들이 서로한테서 배우도록 하는 교육 방식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특정 분야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거나 자신의 배경 덕분에 특정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자나 다른 성인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학생이 개별적으로 학습하든 모둠으로 학습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예컨대 교육자는 추가 정보를 몇 가지 제공하거나 학생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근접(또는 ‘근위’) 발달 영역이라는 개념은 비고츠키의 이론 중 가장 잘 알려진 개념일 것이다.진보적 교육 방식에 반대하는 우파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형태의 교수와 학습이 복잡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파는 이러한 교육 방식을 목적 없는 모둠 학습으로 종종 조야하게 그리며 기각하고, 그 대신 엄격한 수준별 수업(학급 내에서 나누든 학급 자체를 나누든)을 내세운다. 현재 성취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을 한데 묶은 수업 진행이 낫다는 것이다.
근접 발달 영역 이론은 아동의 발달과 아동이 이루고 있는 진전을 가장 잘 평가하는 방법을 고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비고츠키는 아동이 외부의 도움 없이 이뤄 내는 “독립적 활동”만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이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그런 평가 방법을 신뢰하는 생각은 오늘날 영국과 다른 많은 국가의 학생들이 경험하는 시험 중심 교육 체계의 근간이 되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전제다. 비고츠키는 그런 식의 평가는 아동이 이미 학습한 것만을 보여 줄 뿐이며, 따라서 아동에게 도전적인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발달하고 성숙해 가는지 알아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비고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수 활동이 이미 완료된 발달 주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동의 전반적인 발달을 추구하는 데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 발달 과정을 진전시키기는커녕 발달 과정의 꼬리에 묶여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지원을 받으면 아동은 혼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아동의 근접 발달 영역을 가리키고 이는 아동마다 다르다. 근접 발달 영역은 아동이 도움 없이도 이미 할 수 있는 일과 도무지 할 수 없는 일 사이의 영역으로, “더 지식이 풍부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다.
35 또한 비고츠키가 저술에서 시험 치르기를 다루면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도 불분명하지만, 알프레드 비네와 소위 비네-시몽 지능지수(IQ) 테스트와 관련된 여러 테스트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 테스트들은,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으며 논쟁적 개념인 IQ를 결정하기 위해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최초의 검사들이었다. 이러한 테스트의 오용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을 잘못 측정하기》[국역: 《인간에 대한 오해》, 사회평론, 2003]에 잘 나와 있다. 36 바스가 지적한 것처럼 비고츠키는 더 다양한 형태의 평가와 테스트를 선호했으며, “학교에서 아동의 진전을 살펴볼 더 총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7
근접 발달 영역 개념은 비고츠키의 다른 연구에 비해 덜 발전되고 덜 구체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으며, 일부 사람들은 이 개념이 “불충분하게 규정”돼 있으며 이론적으로 모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38 이 접근법은 비형식적 평가(질문, 동료 토의, 효과적인 피드백 제공 등)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 또한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정반대로 근접 발달 영역 개념은 시험과 그 결과에 중점을 두는 방식을 정당화하는 데 오용되기도 한다. 바스가 말하듯 “성취도를 좀 더 세밀하게 측정하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되거나, 아이들이 도달하거나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바스는 일부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근접 발달 영역을 정기적으로 측정·기록하고, 또 일부 영리 기관에서 아이들의 ‘수준’을 알려주는 데 사용한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측정에 집착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숫자로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평가가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3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접 발달 영역이라는 개념은 높이 평가돼야 하는데, 교육이 사회적 활동의 한 형태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다른 사람들의 역할과 협동의 구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호함은 근접 발달 영역 이론을 실제 적용하는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근접 발달 영역 개념은 ‘학습을 위한 평가’를 뒷받침하는 이론들의 기반이 되는데, 이 접근법은 킹스칼리지 런던대학교의 딜런 윌리엄 등이 처음 개발한 것으로 초기에는 《블랙박스 내부Inside the Black Box》라는 제목의 책자 시리즈로 발표됐다.상상과 놀이
상상과 놀이는 쉽게 도구화하거나 수치화하기 어려운데, 비고츠키가 광범위하게 탐구한 영역이기도 하다. 비고츠키가 1932년에 쓴 ‘유년기의 상상과 창조’에서 주장한 내용이 그 핵심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상은 온갖 창조적 활동의 기초로서 문화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같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상상은 우리 주변에서 인간의 손으로 창조한 전부를, 즉 자연 세계와 구별되는 인간 문화의 세계를 가능케 한다.
41 이런 관점은 우리가 어린아이들의 교육에서 상상과 놀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어떻게 여겨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더 넓게 보면 비고츠키의 관점은 정부와 교육기준청이 추진하는 극도로 권위적이며 제약이 많은 교수법의 기저에 깔린 이데올로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데, 이러한 교수법은 연령대를 막론하고 교육과정에서 창의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고츠키는 19세기 프랑스 심리학자 테오뒬 아르망 리보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가 뛰어난 천재로 알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창의적이라고 주장한다(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라는 세 명의 백인 남성을 천재의 예시로 든다). 사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이러한 개인의 창의성이라는 물방울이 모두 결합된 집단적 창의성”의 산물이다. ‘유년기의 상상과 창조’에서 오늘날이라면 이야기의 ‘공동 구성co-construction’이라고 불렀을 만한 활동에 톨스토이가 농민 아이들과 함께 참여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아이들은 처음에 톨스토이가 써 보라고 제안한 이야기가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느껴 어떤 것도 쓰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모든 아이가 이야기 쓰기에 참여”하여 각자의 제안과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비고츠키는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아이들은 성인 작가와의 이러한 실제 공동 작업을 진정한 협업으로 이해했고, 스스로를 성인과 동등한 파트너라고 느꼈다”고 쓴다. 비고츠키는 이러한 방식이 “이 아이들이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고 주장한다.학습에 개입하는 교육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비고츠키는, 아이들을 빈 그릇으로 여기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들이부어야 한다고 보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교육이라는 개념을 올바르고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면, 아이들에게 완전히 낯선 이상, 감정, 기분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바른 교육은 아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일깨우고 아이가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도우며, 특정한 방향으로 이러한 발전을 이끈다.
44 비고츠키는 아이들의 실제 삶과 경험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길거리 아이들의 글쓰기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고 몇 가지 사례를 인용한다. 45 이어서 비고츠키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어린이들의 연극 활동에 대해 논의한다. 아이들이 연극 활동을 통해 배운다는 것과 아동의 집단적 활동이 지니는 중요성은 “창작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비고츠키는 한 학교의 연극 제작 과정을 예로 들며 “무대 장치를 준비하는 기술적 작업과 같은 보조 작업이 아이들의 눈에는 연극과 연기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실에서 아이들의 창작 과정이 지닌 본질적 가치가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46
파울로 프레이리도 비슷한 취지에서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을 비판했는데 교사가 학생들을 수동적인 ‘그릇’으로 여기고 전문 지식을 들이붓는다는 교육관이다.47 이를 통해 아이들은 일상적인 인지에서 벗어나고, 비고츠키가 시각 영역과 의미 영역의 분화라고 설명하는 것이 출현한다.
이렇게 능동적 학습을 중시하는 관점은 비고츠키가 ‘놀이가 아동의 정신 발달에서 하는 구실’에서 상상 놀이의 중요성을 논의하면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아이들은 더 어릴 때부터 놀이를 하지만, 비고츠키는 3세 이후에는 자신의 욕구가 즉각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는 ‘깨달음’에 대한 반응으로 상상 놀이가 발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놀이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상상과 환상으로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나무 조각이 인형 역할을 하고 막대기가 한 마리의 말이 되기 시작하면서 생각은 사물과 분리된다. 규칙에 따른 행동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으로 결정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아동이 실제적·즉각적·구체적인 상황과 맺는 관계가 뒤집어지는 것으로, 그 중요성을 온전하게 평가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그 결과 중 하나는 아동이 ‘규칙’을 적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여동생과 함께 자매 놀이를 하는 경우, 아이들은 이 놀이에 모종의 규칙을 세우고 평소 관계와는 다른 행동을 연출한다. 그 결과 “놀이는 아동의 근접 발달 영역을 만들어 낸다. 놀이에서 아동은 자신의 평균 연령보다,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보다 언제나 더 높은 수준에 있다. 놀이에서 아동은 마치 자기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것 같다.”
이는 아동의 생애 초기 교육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중요한 시사점을 주지만, 오늘날의 공식 정책은 교사의 직접 교수를 선호하며 놀이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폄하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유아기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게 분석한 교육학자 셀리아 버지스메이시, 클레어 켈리, 마조리 오브리는 놀이의 중요성에 대한 비고츠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들의 연구는 놀이의 위상이 어떻게 꾸준히 약화돼 왔는지를 보여 주는데, 이는 ‘학교 준비도’, 즉 유아기 아동이 학교 시스템에 진입할 준비가 됐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 더 엄격한 교육과 도구화된 평가를 강조한 결과다. 그런 추세를 거스르며 이 교육학자들은 아동 발달에서 놀이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놀이는 신경망 형성 기회를 극대화하고, 유아기 아동의 사회적·정서적·학업적 발달을 촉진하는 핵심 기제다. 가족과 공동체 생활과 관련된 모든 중요하고 친밀한 문화적 관행은 어린이 놀이의 원천이 된다.버지스메이시, 켈리, 오브리는 유아기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놀잇감을 학습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이 구조화돼 있다”고 주장하며, 교육자가 이러한 환경을 개입과 발달 평가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래를 이용한 학습’에 대한 그들의 설명이 이에 대한 훌륭한 예시다.
52 학급에 들어간 후 첫 몇 주 동안 표준화되고 특정 문화[영국 주류 문화]에 맞춘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유형의 평가는 교육자들이 개별 아동이 거치는 발달의 궤적은 고려하지 않고, 그런 과제를 통해 얻는 정보만으로 성취도를 추적하고 보고하는 데 집중하도록 강제한다. 53 기초 평가는 현재 실시가 유예된 상태이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의 교육까지 측정하고 도구화하려는 압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진보적 교육에 대한 더 광범위한 공격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선출된 이후, 유아 교육을 1학년(초등학교 첫해)을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만들려는 조치들이 점진적으로 도입됐다. 그에 따라 새로운 평가들이 도입됐는데 그중 하나인 ‘기초 평가’는 “4~5세 아동이 리셉션진보적 교육에 대한 공격
제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의 여파로 더 나은 교육을 받은 노동인구가 경제적으로 필요해지면서 (그리고 문법학교[엘리트 위주의 중등학교. 중세에는 라틴어 문법 위주로 가르쳤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와 신新 중등학교[1944년 교육법으로 만들어진 대중적 중등학교]를 엄격하게 구분짓는 데서 벗어나려는 아래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교육 부문의 확장이 촉진됐다. 새로운 대학과 기술전문학교가 설립됐으며, 평준화 교육comprehensive education이 도입됐다. 학교는 전보다 아동 중심의 교육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했고,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에 반대하는 정책을 도입하여 차별에 맞서야 할 필요에 대응했다. 이러한 조처는 언제나 우파의 공격에 직면했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른바 ‘흑서’가 발표되고, 1970~1980년대에 런던 교육청의 인종차별·여성차별 반대 정책을 대처주의자들이 공격한 예가 대표적이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선출되고 경기 침체와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면서 이러한 공격은 공식 정책 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0년 교육부의 어떤 관리가 한 것으로 전해지는 다음 발언은 기억해 둘 만하다. “다시금 학생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난 40년 동안 이러한 의도에서 민영화, 교육기준청의 학교·교육자 감시, 교육과정과 교수법 통제 강화가 이뤄졌다.
55 이러한 미사여구에 더해 뉴라이트는 사방에서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거기에는 ‘워크’[woke 인종, 여성, 성소수자 차별 등에 대해 의식하고 깨어 있는 상태]와 교육 분야의 진보 운동에 대한 공격도 포함된다. 더 극단적인 경우로는 미리엄 케이츠 같은 보수당 의원들이 학교에서 이른바 세뇌가 이뤄지고 있다며 교육자들이 ‘문화 마르크스주의’를 주입하려 한다고 주장했는데, ‘문화 마르크스주의’는 극우가 쓰는 용어로 종종 유대인 혐오로 연결된다. 56
공식 미사여구는 모든 아동이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지식이 풍부한” 교육과정을 밟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마이클 고브는 교육부 장관 재직 시절인 2013년 새로운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 교사들이 그동안 흑인과 노동계급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주장했고 그 이유가 “기대치를 낮추는 형식의 은근한 차별”(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표현을 따왔다)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까지 오랫동안 교육부에서 학교 담당 차관을 지낸 닉 깁은 우파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에 기고한 여러 소논문에서 개편된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지식이 풍부한” 교육을 제공하고 그런 교육의 필요성이 “사회 정의라는 강력한 명분”으로 뒷받침된다고 언명했다.오늘날의 주요 전장으로는 교육과정을 탈식민화하라는 요구(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입시 제도로 인해 그 잠재력이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이다)와 학교가 트랜스젠더 학생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최근 지침 등이 있다. 진보적 교육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교육과정과 교수법에 관한 잘못된 믿음이 여러 주장과 우파 출판물에서 사실인 양 제시될 뿐 아니라 공식 정책에도 반영된다. 예를 들어 ‘지식’(어떻게 정의 내리든 간에)과 기능skills 사이의 잘못된 이분법을 주창하고, 직접 교수법이 좋다며 모둠 활동을 비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직된 시험과 수준별 학급 편성에 매달리고, 능력이 다른 학생들을 함께 가르치는 데 강하게 반대하기도 한다. 진보적 교육을 공격하는 다른 것들로는 파닉스[발음 중심 교수법]만이 유일한 읽기 교육 방법이라며 독단적으로 고집하기, 기억·암기 학습에 온 힘을 쏟기, Key Stage 2 SATs[초등 교육 표준 시험], GCSE, A 레벨과 같은 고부담 시험 및 성적 고사에 매달리기 등이 있다.
누구의 지식인가?
진보적 교육자들에게는, 그리고 아동이 배우는 내용에 관해 자주 논했던 비고츠키에게는 지식과 기능 사이의 이분법 같은 건 없다. 물론 ‘사실’을 배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교사의 지도는 최소화하고 학생 스스로 경험을 통해 배우는 ‘발견 학습’이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주장이야말로 발견 학습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언론에서 “영국에서 가장 엄격한 학교”라고들 하는 런던 북서부의 미케일라 공립 학교 교장인 캐서린 버발싱 같은 우파 교육학자들이 바로 이런 종류의 허수아비 때리기를 한다. 버발싱은 미국의 교육학자 E D 허시의 연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허시가 분명히 한 바와 같이, 진보적인 ‘발견 학습’이 아니라 전통적인 지식 교육이 아동의 자존감을 기른다. 발견 학습이란 바로 아동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학습을 포기하게 만드는 교육 방법이다. 교사들은 교사 연수 강사들이나 선임 관리자, 교육기준청 조사관들에게서 아동이 스스로 발견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답을 알려주지 마세요!” 이건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정반대다. 진보적 교수법은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잘못된 행동을 부추기며, 답을 모른다고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낀다. 교사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진보적 교수법을 희화화하여 비판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핵심 지식을 전달해야 할 때가 당연히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료를 찾는 방법만 알려 줄 것이다. 아니면 배운 내용이 신뢰할 만한지, 다른 요인들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그리고 이 모두가 자신의 경험 및 지식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학생들이 생각해 보도록 할 수도 있다. 비고츠키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강력히 지지한다. 지식은 (그것이 주기율표, 홀로코스트, 노예 무역,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요인 등 무엇이 됐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을 활용하고, 분석하고, 그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중요하다. ‘제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배울 내용과 학생에 맞게 다양한 방법을 섞어서 조정한다는 것이다.
58 그러나 2013년 정부가 현행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제안했을 때, 역사 교사들과 역사학 전문가들의 반발로 인해 보수당은 일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59
더욱이 지식이 무엇을 뜻하고 누가 지식을 정의하는지도 중요하다. 지식이 전달되는 방식은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된다. 한 가지 사례로 학교 역사 수업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을 들 수 있다. 2009년 보수당 당대표 데이비드 캐머런은 “국가 다문화주의”가 문제라며 “학교에서 영국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 우리는 우리의 군대, 우리의 군주제, 우리의 민주주의 전통을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0 물론, 정치인과 언론이 이주민과 난민에 대해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늘어놓는 상황에서 이러한 가치들이 영국의 핵심 가치라는 주장은 더할 나위 없이 모순적으로 보인다. 사실 지배계급이 학교와 대학의 교육 내용과 방식을 얼마나 통제하려 하는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꾀하는 인종 학살을 두고 토론하지 못하도록 검열하려고 압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자들은 학생, 학부모와 함께 토론 억압 시도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교육의 탈식민화 문제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강력한 구성 요소이기도 했다.
어떤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둘러싼 정부 정책은 필연적으로 ‘교사 자질 기준’과 연결되는데, 이 기준에서는 “영국의 핵심 가치, 즉 민주주의, 법치, 개인의 자유와 상호 존중, 다른 신앙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을 거론한다.교육기준청의 교과목 검토 보고서
61 예를 들어 영어미디어센터는 교육기준청의 영어 과목 검토 보고서를 심층 비평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교육과정과 교수법 둘 다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은 교육기준청이 발표하는 ‘교과목 검토 보고서subject reviews’에 반영돼 있는데, 다양한 교과목 영역에서의 교수·학습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것이다. 이 검토 보고서는 더 형식적이고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학습 방법이 더 가치 있다고 일반적으로 여기는데, 그 근거는 빈약하다. 실제로 (영어 교육에 초점을 맞춘 명성 있는 비영리 기관인) 영어미디어센터English and Media Centre와 수학교사협회Association of Teachers of Mathematics는 검토 보고서가 전제하는 가정에 문제가 있으며 인용하는 연구가 엄밀하지 않다고 비판한다.영어에서 기초 지식은 화학이나 수학 같은 과목과는 다르다. 화학이나 수학에서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학습의 다음 단계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될 수 있지만, 영어에서 지식은 더 재귀적이며, 다양한 순서로 쌓일 수 있고, 특정 지식을 아직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전체 학습에 큰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이 비평은 교육기준청이 너무 좁은 범위의 요소만을 검토한다고 지적하며, (언어의 한 측면에 불과한) 어휘 습득과 어휘력 증진에만 집착하면서 문장 구조와 문장 체계에는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또한, 학생들이 명확하고 창의적으로 글 쓰는 법을 배우려면 문법 지식을 맥락과 분리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검토 보고서의 근거 없는 주장도 비판한다. 물론 문법을 익히고 언어의 작동 방식을 폭넓게 이해한다면 좋은 일이며 학생들의 글쓰기 선택과 독해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들이 ‘특징 찾아내기feature spotting’라고 부르는 품사 맞추기에만 집착해서, 학생들이 읽은 내용을 비판적으로 숙고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뒷전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 비고츠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교육 현장의 경험이 이론적 연구 못지 않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실제로는 개념을 쉽고 간단하게 학습하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하며 교육적으로도 무익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르치는 교사는 대개 학생들에게 무의미한 단어 습득(아이들은 단순히 말을 따라 하는 수준에 그친다) 외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며, 이는 해당 개념의 단순한 모방과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공백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이런 학습 방식에서 아동은 개념 자체가 아니라 단어를 흡수하게 되고, 사고력보다는 기억력을 더 키우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동은 이렇게 습득한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야 할 때가 되면 언제나 무력해진다.
64 하지만 버지스메이시, 켈리, 오브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아이들 읽기 교육에 관한 공식 지침이 파닉스 등 소리 내어 읽기를 제1의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을 비판하는 데서도 이런 우려를 찾아볼 수 있다. 교육기준청의 영어 교과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일단 아이들이 단어를 유창하게 읽을 수 있게 되면, 그 이후에는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연습해야 의미를 “넘겨짚는”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연구에 따르면 문해력 습득은 복잡한 과정이지만, 정부 문서에서는 각종 기술을 습득하는 선형적 개념으로만 설명한다. 문해력은 인지 과정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정서적 과정이기도 하다. … 읽기와 쓰기는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이뤄지며 그 맥락에는 가정, 학교, 직장, 지역사회라는 중첩된 공간과 서로 다른 언어가 있다. 또한 읽기와 쓰기는 그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실천이 필요하다.
물론 파닉스 역시 읽기 학습의 한 부분이며 일부 아동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읽기 학습의 중심을 오로지 파닉스에만 두면 더 넓은 맥락을 무시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학습에 매우 중요한 즐거움과 동기도 무시하게 된다. 연구를 부적절하게 이용해 지식과 교수법에서 매우 이데올로기적이고 미리 정해진 입장을 고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 부문에서는 교육기준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순응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이 있다.
오크 아카데미: 생산 라인식 교육
66 마찬가지의 교육 방식을 장려하는 곳으로 정부가 공인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온라인 기관 겸 웹사이트인 오크 아카데미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학교와 대학이 주로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시기에 설립된 오크 아카데미는 점점 더 다양한 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영어교육협회NATE도 인정하듯 오크 아카데미는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 학습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한 교사들에게 도움이 됐다(학생들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지 못한 경우가 잦았지만 말이다). 67 오크 아카데미는 최근 교육 자료 개발에 4300만 파운드[약 760억 원]를 지원받았고 민간 단체이면서도 공공서비스 제공에 참여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오크 아카데미를 지지하는 이들은 교사의 업무를 줄인다고 말하고, 또 비공식적으로는 교사들이 학생의 실제 필요에 맞추는 수업 계획을 세울 자질이 부족하다며(그 주장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오크 아카데미를 그 해결책으로 내세운다. 오크 아카데미의 ‘3개년 국민 전략’ 문서는 이와 관련해 방대한 주장을 펼치며 자신들이 “가장 빈곤한 지역에 사는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고 “우리의 수업을 채택한 곳의 3분의 1 이상이 그런 지역 사회”라고 홍보하고 있다. 68 비록 오크 아카데미 측은 자신들의 자료가 충분히 유연하므로 이를 사용하더라도 교사들은 학생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과 지식을 활용해 스스로 수업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오크 아카데미의 교수법이 그냥 도입되는 학교를 상상해 보는 것은 너무도 쉽다.
교육과정과 교수법에 관한 이렇게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가정은 ‘로젠샤인의 수업 지도 원리’, 《최고의 교사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같은 수많은 교수법과 교수·학습 접근법에 반영돼 있다.69 전국교육노조NEU는 정부의 오크 아카데미 공인에 반대하며 “비록 규제가 늘어나고 있지만 영국의 학교와 교사들은 교육과정 편성에서 자율성을 지켜오고 있으며, 이를 여전히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70 전국교육노조의 대니얼 케베데 사무총장이 지적하듯, 오크 아카데미 측은 자신들의 자료가 “교사에 의해, 교사를 위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국적 기업을 비롯해 여러 기관이 참여하는 상업적 입찰 과정을 통해 이러한 자료 패키지가 개발”되고 있다. 71
전국영어교육협회는 두 가지 이유를 들며 오크 아카데미 자문단 참여를 거부했는데, “자금을 지원하는 교육부에서 독립적이라는 주장이 의심스러우며… 지금까지 출판된 자료로 볼 때 오크 아카데미의 영어 교육 방식에 근본적인 교육학적 이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오크 아카데미의 교육 자료 패키지는 매우 틀에 박힌 형태를 띤다. ‘수업 계획’ 섹션에서는 다음과 같이 수업의 기본 개요가 나와 있다. 도입 퀴즈부터 프레젠테이션과 영상 자료, 활동지, 정리 퀴즈, 교사가 따라야 할 학습지도안도 있다. 이러한 형식이 웹사이트에 있는 수천 개의 수업에서 반복된다. 물론 이러한 자료는 어느 것이든 수업에 유용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수업을 하루 다섯 개씩 듣는데 교과목에 관계없이 모조리 같은 형식인데다가 [개별 학습은 없이] 학급 전체 대상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대다수라면) 우리의 학교에서 소외가 점점 커져가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2 비고츠키는 “생각이 없는 말은 죽은 말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를 인용하여 덧붙였다. “버려진 벌집 속의 벌처럼 / 죽은 말은 썩은 냄새를 풍긴다.” 73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교육연구대학원 교수인 존 얀델은 오크 아카데미에서 제작한 영어 수업 자료 한 편을 상세히 분석했다. 이 수업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 소설 《로자벨의 피로》를 다룬다. 얀델의 분석은 너무 상세해서 이 글에서 온전히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메시지는 이 수업 자료가 우리가 (또는 15~16세 청소년들이) 왜 상상력 넘치는 문학을 읽고 즐기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완전히 빼먹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학급에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속해 있다는 점이 그 소설에 관한 토론에 끼칠 영향이나, 그에 대해 개별 학생이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얀델은 이렇게 물음을 던진다. “읽기가 과연 이런 식으로 이뤄질까?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텍스트를 읽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이전 경험, 신념, 가치관을 갖고 텍스트를 읽을까? 텍스트가 각각의 독자에게 똑같은 의미를 가질까?” 이런 것을 고려하는 대신, 학생들은 핵심 지식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대해 설명을 듣고서 맥락도 없이 “문법 요소 이름 맞추기”에 초점을 맞춘 퀴즈를 푸는데, 이는 “언어를 의미있게 사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이 수업 자료에 따르면 실제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에 흐름을 끊고 질문을 던져야 하고 “모범 답안”이 제시된다. 또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해한 내용이 제가 이해한 내용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는 취지를 전해야 한다고 제시된다. 사실 이 수업 자료는 GCSE 영어 시험의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결론
엘리트 사립학교의 학생들이 이렇게 빈약하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교육받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계속되는 긴축 정책의 악영향을 견디는 모습도 상상하기 힘들다. 영국이 총선을 앞둔 지금, 교육자와 학부모들이 요구해야 할 것이 많다. 가장 분명한 요구 사항으로는 교육 자금 지원 확대, 교직원 이탈 방지, 건물 안전성 확보, 민영화가 학교 시스템에 미치는 악영향 축소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들에서조차 키어 스타머의 노동당은 희망을 줄 여지가 거의 없다.
우리는 단지 정권 교체가 아니라 그 이상이 필요하다. 즉 신자유주의가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에 도전하고, 궁극적으로는 “평등한 사람들의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리 교육 시스템에 강요되는 하향식, 규율 중심의 교육 방식에 맞서야 한다. 더 나아가, 학습을 소위 측정 가능한 목표치들의 집합으로 단순화하는 교육과정과 교수법에 도전해야 한다. (학습의 복잡성, 상상력과 창의성의 중요성, 협력과 토론의 이점을 강조한) 비고츠키의 연구는 사회주의 교육 시스템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
-
출처: Jane Bassett, ‘For a progressive pedagogy: why we need Vygotsky’, International Socialism, no.182(Spring, 2024)
↩
- Hixenbaugh, 2022. ↩
- 교육기준청(교육·아동서비스·기술 기준청)은 학교를 점검하는 정부 부처의 이름이다. 교육기준청은 중립적인 점검 기구가 아니라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학교와 교사가 규율에 복종하게 만드는 무기로 사용돼 왔다. ↩
- Jones, 2024. ↩
- 샤냡스키 대학교는 1908년 금광 업계의 거물 알폰스 샤냡스키가 설립한 대학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국유화됐고 이후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의 일부가 됐다. ↩
- 《예술심리학》은 1925년에 완성됐으나 1960년대까지 출판된 적이 없었다. Vygotsky, 1971을 보시오. ↩
- Bloodworth, 2021, p2. ↩
- Rosenberg, 1972, p2. ↩
- Rosenberg, 1972, pp5-6. ↩
- Franklin, 2021, pp10-14; van der Veer and Valsiner, 1991, pp55-56. ↩
- Voloshinov, 1973을 보시오. 볼로시노프는 1930년대 언젠가 체포돼 스탈린의 숙청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고츠키가 저작에서 인용한 만델스탐은 스탈린을 풍자하는 시를 썼다가 1938년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
- Van der Veer and Valsiner, 1991, pp288-292. 루리아와 레온티예프는 소련 국가의 공식적인 불허로 인해 연구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결국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인 하르코프로 이주했다. 특히 레온티예프는 1930년대에 점점 비고츠키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스탈린주의 러시아에서 수용할 만한 접근법으로 나아갔다. ↩
- Barrs, 2022, p5. ↩
- Van der Veer and Valsiner, 1991, chapters 9 and 10. ↩
- “결함학”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특수교육 필요 아동의 발달 및 이러한 아동들과 함께 일할 교사의 훈련을 연구하는 연구 분야를 가리켰다. 이 단어는 1929년 비고츠키가 쓴 ‘결함학의 근본적 문제’와 같은 문서에 나온다. ↩
- Barrs, 2022, p37. ↩
- Barrs, 2022, chapter 3; Franklin, 2021, chapter 7. ↩
- Barrs, 2022, pp116-117, 비고츠키의 공책을 참고한 내용. ↩
- Barrs, 2022, pp163-164. Rosenberg, 1972, pp19-24; van der Veer and Valsiner, 1991, p288. ↩
- 아동학은 아동 발달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아동 과학’이라고도 한다. ↩
- Van der Veer and Valsiner, 1991, pp374-389. ↩
- Barrs, 2022, pxiv를 비롯한 여러 쪽. ↩
- Barrs, 2022, pp182-185. ↩
- Marx and Engels, 1968, p51. ↩
- Voloshinov, 1973, pp12-13. ↩
- Engels, 1934. ↩
- Vygotsky, 1987b, p246. ↩
- Marx and Engels, 1968. ↩
- Vygotsky, 1987b, chapter 2; Barrs, 2022, pp168-172도 보시오. ↩
- Vygotsky, 1987b, p222. ↩
- Vygotsky, 1987b, p28; Barrs, 2022, pp168-172. ↩
- Vygotsky, 1987b, p127. ↩
- Vygotsky, 2017. ↩
- 예컨대 Gregory, 2017을 보시오. ↩
- ‘근위proximal 발달 영역’이 이 개념의 더 잘 알려진 표현이지만,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의 버전을 보지 못한 한 번역가는 ‘근접proximate’이 원문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Barrs, 2022, pp143-144를 보시오.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 더 잘 알려진 표현인 ‘근접 발달 영역’으로 번역했다] ↩
- Barrs, 2022, pp155-157; van der Veer and Valsiner, 1991, pp336-348. ↩
- Gould, 1996, pp146-157. ↩
- Barrs, 2022, p148. ↩
- Wiliam and Black, 2010. ↩
- Barrs, 2022, p157. ↩
- Vygotsky, 2004, pp10. ↩
- Vygotsky, 2004, pp10-11. ↩
- Vygotsky, 2004, pp47-51. ↩
- Vygotsky, 2004, p51. ↩
- Freire, 1982, pp45-46. ↩
- Vygotsky, 2004, pp51-69. ↩
- Vygotsky, 2004, pp72-73. ↩
- Vygotsky, 2016, p7. ↩
- Vygotsky, 2016, p13. ↩
- Vygotsky, 2016, p18. ↩
- Burgess-Macey, Kelly and Ouvry, 2020. ↩
- Burgess-Macey, Kelly and Ouvry, 2020. ↩
- ‘리셉션’은 아동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기 전 유아기 교육의 마지막 해를 말한다. ↩
- Burgess-Macey, Kelly and Ouvry, 2020. ↩
- 예컨대 Reay, 2017을 보시오. ↩
- Simons and Porter, 2015, p14. Yandell, 2017, p247에서 인용. ↩
- Walker and Crerar, 2023. ‘문화 마르크스주의’라는 개념은 나치가 처음 내놓았다. 오늘날 극우는 급진좌파가 ’서구적 가치’를 전복하려고 음모(종종 유대인이 주도하는 양 그려진다)를 꾸민다고 주장하려고 이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Hanebrink, 2018을 보시오. ↩
- Birbalsingh, 2015, p38. 허시에 대해서는 Feinberg, 1999를 보시오. ↩
- Yandell, 2017에서 인용. ↩
- Mansell, 2013. ↩
- 전문은 https://tinyurl.com/y2baem23을 보시오. ↩
- McCallum and Bleiman, 2022. ↩
- McCallum and Bleiman, 2022. ↩
- Vygotsky, 1994, p356. ↩
- 영어 교과 검토 보고서는 www.gov.uk/government/publications/curriculum-research-review-series-english/curriculum-research-review-series-english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
- Burgess-Macey, Kelly and Ouvry, 2020. ↩
- Rosenshine, 2012. https://teachlikeachampion.org도 보시오. ↩
-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Teaching of English, 2023. ↩
- 이 문서는 https://sanity-asset-cdn.thenational.academy/files/cuvjke51/production/13406956f18d87d1e213b4e7e8854abb7db64bc9.pdf에서 볼 수 있다. ↩
-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Teaching of English, 2023. ↩
- National Education Union, 2022. ↩
- Kebede, 2024. ↩
- Yandell, 2020. ↩
- Vygotsky, 1987b, p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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