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체제의 불안한 미래 *
2024년 중국 경제는 5퍼센트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서방 국가 중에서 경제 실적이 좋다는 미국조차 2024년 경제성장률이 2.8퍼센트 정도라는 사실에서 볼 때, 중국의 경제 실적은 여전히 양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중국 경제를 두고 불안한 전망들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2020~2022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가 그전의 활력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경제는 소비, 민간투자, 수출 등 모든 지표가 좋지 않고 심지어 디플레 불황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 경제의 장기 성장 추세가 계속 하락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는 그전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두 자리 수 성장률을 보였던 중국 경제는 고도성장세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중국의 GDP 성장률이 13퍼센트였지만 2024년에는 5퍼센트로 주저앉았다. 이 때문에 중국 경제를 두고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거나 일본의 장기 불황과 같은 추이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경제의 불안한 미래 때문에 최근 중국에서는 ‘역사의 쓰레기 시간’歷史的垃圾時間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원래 ‘쓰레기 시간’garbage time은 농구에서 남은 시간에 상관없이 승패가 결정된 시간을 가리킨다. 중국 광저우의 출판사 편집자인 후원후이胡文辉는 소련 붕괴가 확실하다고 여겼던 1979년 아프간 침공부터 실제로 붕괴가 나타났던 고르바초프 시대까지의 기간을 ‘역사의 쓰레기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때는 소련 붕괴가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2 중국 SNS에서는 이 용어의 사용이 부쩍 늘었다. 이 용어가 중국 경제에 대한 절망감과 더 나아가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에 대한 불만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용어가 최근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베이징 지부의 공식 매체인 〈베이징르빠오〉는 “역사의 쓰레기 시간? 정말인가 거짓인가?”에서 “역사의 쓰레기 시간은 반박할 가치도 없는 거짓 명제”라고 비판했지만,중국 경제는 피크에 도달했나?
3 지정학적 안정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기대하기 힘들게 됐고, 개혁개방 정책은 시진핑의 국진민퇴(국유기업이 앞장서고, 민간기업은 퇴장한다) 정책으로 역전됐으며, 인구 보너스는 산아제한 정책으로 급속히 소멸됐고, 풍부한 자원이라는 요인도 경제 성장과 규모의 확장으로 해외 자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빛이 바랬다.
최근 중국 경제 피크론을 두고 미국 정부를 사실상 대변하는 주류 정치학계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중국 경제 피크론의 핵심 논자는 할 브랜즈H. Brands와 마이클 베클리M. Beckley다. 이들은 중국이 고도성장을 했던 것은 네 가지 유리한 조건 때문이라고 봤다. 중국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식량, 물, 에너지를 자급자족했다. 또 65세 이상 고령자 한 명당 10명의 노동가능 인구가 있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안전한 지정학적 환경과 해외시장 및 기술에 대한 접근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이런 요인들로 고도성장을 지속하기 힘들어졌다.4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 경제 피크론에 대한 찬반 양측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있는데, 그것은 중국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수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반면 마스트로O. S. Mastro와 시저스D. Scissors는 중국공산당이 일당독재를 구축하고 있고, 당-국가 체제가 상당 기간 자본을 동원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봤다.5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고, 중국 경제는 부패가 만연함에도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그런데 중국 경제 피크론은 논조가 일면적이고 현재 중국이 처한 상황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브랜즈와 베클리의 주장은 2000년대 초반 중국이 부패나 대만과의 전쟁 혹은 세계화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의 반란으로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한 고든 창의 주장을 연상시킨다.6 그의 예상대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는 중속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이전의 고도성장 때에는 보이지 않던 위험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정치 제도가 경제 개혁과 성장을 가로막을 가장 강력한 장애물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당-국가와 국유기업이 위기를 돌파하는 추진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 경제에 대한 각종 위기론은 중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현상을 나열하면서 일부 요소를 과장하지만 정작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도 부적절해 보인다.
반면 데이비드 샴보는 중국 경제가 낡은 성장 모델을 유지하면서 6퍼센트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구가한다면 새로운 성장 모델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못한 상대적 실패라고 주장했다.부동산 거품과 부채 위기
중국 경제를 다룰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동산 부문을 살펴 보자. 중국에서 부동산 부문은 GDP의 25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위기에 더해 헝다그룹의 파산과 비구이위안의 부도 위기가 나타나면서 부동산 경기의 침체가 중국경제를 추락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 부문의 위기는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 때 중국은 GDP의 30퍼센트가 넘는 대규모 경기부양을 추진했다. 세계경제가 크게 축소해 수출이 급감하고 국내 내수도 줄어든 상황에서 경기부양으로 풀린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들었다. 2010년대에 서방 선진국들이 경제 위기에서 회복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동안 중국 경제는 높은 성장률을 구가했다. 이때 중국 경제는 미국을 따라잡을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중국 경제를 지탱해 주던 부동산 부문이 안정적 성장을 유지할 수 없는 거품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거품 붕괴의 위기감을 느낀 시진핑 정부는 2020년 8월 부동산 기업들에게 세 가지 레드라인(총자산 대비 부채비율 70퍼센트 이하,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 100퍼센트 이하, 단기채무를 상회하는 현금 보유)을 제시함으로써 부동산 부문의 위기를 관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규제 조치가 중국 3대 부동산 개발업체(헝다, 완다, 비구이위안) 모두를 디폴트 위기로 내몰았다.
중국 부동산 부문의 위기가 부동산 개발업체의 회사채와 이에 근거한 자산관리상품WMC의 부실로 이어지고 지방정부 금융플랫폼을 파산 위기로 내몰고는 있지만,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처럼 중국 경제와 더 나아가 세계경제를 혼돈에 빠뜨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부동산 부문의 신탁 상품들이 대부분 중국인에게 판매됐고, 부동산 부문의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 중국 중앙정부가 개입할 것이다. 또한 부동산 부문의 각종 금융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이 형성돼 있지 않아 그 위기가 국내외 자산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부문의 위기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들의 디폴트 리스크가 낮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중앙정부의 정책적 개입 때문이다. 만약 제조업을 포함한 실물 경제가 불황에 빠진다면 부동산 부문의 부채는 경제 전체를 심각한 위기로 내몰 수 있다.
또한 부동산 부문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지속될지라도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의 위기가 주식과 채권시장의 단기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정부가 2020년 8월 부동산 부문의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2024년 하반기에는 화이트리스트에 속한 부동산 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4조 위안의 신용 대출과 각종 규제 완화를 발표한 것은 그만큼 부동산 부문의 위기를 가볍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7 부채의 구성을 보면, 가계 부채가 77.46조 위안(GDP 대비 63퍼센트), 비금융 기업부문 부채는 204.36조 위안(167퍼센트), 중앙정부 26.19조 위안과 지방정부 36.83조 위안(52퍼센트)을 이루고 있다. 345조 위안은 중국 GDP 대비 282퍼센트에 이른다. 그런데 이 부채에는 지방정부의 음성 채무(소위 그림자 금융 채무)가 빠져 있다. 지방정부의 음성채무 규모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정치가 71.3조 위안으로 가장 많고 국제결제은행이 21.5조 위안으로 가장 적다. 중국 신다증권信达证券은 34조 위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동산 위기와 연결돼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중국의 총부채다. 2024년 8월 〈시나망〉이 보도한 기사를 보면,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국가자산부채표연구중심中国国家资产负债表研究中心이 발표한 2023년 국가부채는 345조 위안이다.8 그럼에도 부채의 증가는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기업의 이자 부담 증가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고, 중앙정부 부채 증가는 전과 같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기 힘들게 만든다.
현재 중국의 부채 규모는 2008년 금융위기 발생 때의 미국 부채보다 많지만 대부분의 채권자가 중국인이고 중앙정부의 대처 능력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소비 주도의 성장 모델?
2024년 12월 16일 발표한 지난해 11월 소비 통계가 큰 충격을 주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소비 증가율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14.1퍼센트와 마이너스 13.5퍼센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수출 비중이 줄어들고 민간부문의 투자가 급감하자 중국 정부는 금리 인하 같은 완화적 통화정책과 이구환신以舊換新(헌 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체할 때 금융 지원이나 판매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소비 진작 방안) 같은 경기부양책으로 국내 소비를 늘리려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양회 중 하나인 전인대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수 회복을 꼽았다. 중국 상무부장 왕원타오는 양회 기자회견에서 “소비 확대를 위해 더 많은 실용적 조치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9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수출 상품들을 저렴하게 만들어야 하고 외자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농민공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해 왔다. 그런데 임금이 저렴한 농민공 공급이 줄어들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불만으로 임금이 인상되자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등지로 이전했다. 부분적인 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2010년대 이후 중국의 가계소비는 점진적 상승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정부도 소비 진작을 위해 각종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데 가계소비가 늘어나면 경제가 과연 성장할 수 있을까?
중국 경제가 이제 고속성장을 할 수 없게 되자 이참에 수출 주도의 성장 모델에서 소비 주도의 성장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가계소비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가계소비는 대체로 소비 그 자체를 위한 상품의 구매이고, 이것이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을 촉진할 동기는 제공하지 않는다. 앞의 그래프3에서 알 수 있듯이, 2010년 이후로 가계소비는 점진적으로 늘었지만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그런데 투자, 즉 생산적 소비는 상품의 연쇄적 생산을 촉진한다. 그래서 가계소비 증가는 성장률을 높이는 데 제한적 효과만을 내는 반면, 투자는 성장률을 높이는 데 효과가 더 크다. 중국에서도 고도성장기 동안 GDP에서 차지하는 고정자본형성이 40퍼센트를 넘기며 소비보다 큰 규모를 보였다.
시진핑 정부가 추진했던 중국제조2025는 첨단산업 10개를 지정해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목적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2016년에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중국제조2025를 문제 삼자 중국 정부는 이 용어를 공식 문서에서 삭제했지만 그 취지와 지향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태양광,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에서 경쟁력 우위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그리고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여하고 있다. 그래서 반도체 D램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CXMT가 구형인 DDR4를 대량 생산해 중국 기업들에게 헐값에 제공한다면 이는 산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2023년 전인대에서 최우선적으로 강조한 바가 국내 소요 확대, 즉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었다면 2024년 전인대에서는 현대화 산업 체계와 신질新質 생산력 발전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다. 중국 정부의 이런 노력이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딥시크의 등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부터는 갈림길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이전의 고도성장을 앞으로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2021년 시진핑 정부는 우한 봉쇄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을 완전히 통제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2035년까지 중국 경제 규모를 두 배 이상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민간경제가 위축되자 시진핑은 국유기업의 약진과 경제에 대한 당-국가의 개입 증대로 위기를 돌파하려 시도하고 있다.
10 또 아래의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로이터는 중국에서 연간 2000만 위안 이상을 벌어들이는 기업의 숫자가 2021년 이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아래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폭 줄어든 민간투자를 국유기업과 집체기업이 메우고 있다. 민간투자 축소는 기업의 이윤율 하락 때문이다. 2024년 10월 27일 니케이아시아는 2024년 중국의 산업 이윤이 27퍼센트나 추락했다고 보도했다.그런데 민간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내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대외적으로 미중 패권경쟁과 관세전쟁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기업들의 협력과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주재한 민영기업 좌담회에 알리바바의 창립자인 마윈이 등장해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가 완화됐음을 나타냈다. 이에 호응해 알리바바는 인공지능 개발에 7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권위주의적 통치
시진핑 정부는 미국과의 경쟁에 대비하고 불만과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권위주의적 통치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반간첩법이다. 원래 이 법률은 2014년에 처음 제정됐고, 2023년 7월에 규정이 강화됐다. 반간첩법의 목적은 외국 세력의 간섭과 데이터 유출을 방지하고 중국 내외에서 국가 기밀과 주요 인프라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간첩법의 규정이 매우 모호해서 중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의 활동까지도 처벌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국 기업이 중국 현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국가 안보나 국가 이익과 관련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하이와 베이징 시 당국은 미국계 컨설팅 기업인 베인 앤 컴퍼니와 민츠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그 기업들에 고용된 중국인 다섯 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당국은 학술 데이터망이나 온라인 사법 데이터망 등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반간첩법의 강화로 인해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되고 심지어 외국 기업들의 탈중국을 촉진할지라도 이 법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이 법을 통해 신장위구르에서의 탄압이나 감시, 제로코로나 정책의 폐단, 중국의 초라한 경제 상황 또는 중국공산당이나 시진핑 타도 주장 등이 해외에 알려지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려 한다.
시진핑 정부의 억압적 통치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관찰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여성 차별과 억압이다. 세계적인 미투 운동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서도 용기 있게 운동을 펼쳤던 여성들이 탄압을 받고 있다. 2018년 중국에서 논문 지도 상급자에게서 원치 않는 성적 요구를 받았던 여성 대학원생을 대신해 폭로하면서 중국 미투운동을 촉발했던 황쉐친黃雪琴이 2024년 6월 광저우 항소심 법원에서 국가전복죄로 5년형을 받았다.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 성희롱 피해자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고, 2019년에는 홍콩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기도 했다.
2023년 9월에는 중국 미투 운동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겨졌던, 유명 방송인 주쥔의 성추행 관련 재판이 5년 만에 쌍방간 소송 취하로 무위로 끝났다. 2014년 주쥔이 실습을 위해 방송국을 찾은 한 대학생을 성추행했다. 그 뒤로 성추행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의 영향을 받아 이 사건을 폭로했고, 주쥔은 명예훼손 혐의로 그 대학생을 고소하면서 이 사건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다룬 한 언론은 중국에서 성추행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은 입증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정부의 여성 차별적인 통치와 페미니스트 활동가 탄압은 2015년 여성 차별에 항의하는 여성활동가 5인의 체포로 본격화됐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중국에서도 퍼졌지만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혔고, 이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국가 안보로 탄압받았다. 이와 같은 여성 차별적인 분위기 조성은 저출생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것과도 관련돼 있다(2023년 중국의 합계출산율은 1.0명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는 생산가능 노동력 부족과 급격한 고령사회로의 진입에 대처하기 위해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며 결혼·출산에 부정적인 온라인 게시글을 단속하고 페미니즘을 공격하고 있다.
시진핑의 억압적 조치로 민주주의 열망이 짓밟힌 대표적인 사례는 홍콩이다. 2019년 분출한 홍콩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네 가지 범죄 행위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2024년 1월 홍콩 당국은 국가 기밀 절도와 컴퓨터 및 전자시스템을 활용한 국가안보 위협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넣어 기존 국가보안법을 강화하는 새 국가보안법을 마련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홍콩 당국은 매년 톈안먼(천안문) 항쟁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빅토리아 파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6월 4일을 포함한 3일 동안 이 공원을 국가 행사장으로 사용했다. 또한 홍콩 항쟁 당시 널리 불렸던 노래 ‘글로리 투 홍콩’Glory to Hong Kong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찾을 수 없게 했다. 심지어 홍콩 교정국이 홍콩 항쟁에 참가했다가 구속된 18~30세의 청년들에게 ‘탈급진화 재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기도 했다. 홍콩 교정국은 수감자들에게 국가 정체성을 심어 ‘긍정적 가치’를 갖도록 만들고 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한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자행한 강제노동수용소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홍콩의 민주주의 운동 참가자들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청년 실업과 노동자 저항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는 경제발전에 대한 혜택을 어느 정도 제공해서 억압적 통치에 대한 반감을 억제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시진핑 정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낮은 경제성장을 기록했고, 이 때문에 대졸 구직자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특히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2024년 중국 국가통계국은 11월 도시 실업률은 5퍼센트인데 반해 청년(16세부터 24세까지) 실업률은 16.1퍼센트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3년 6월 청년실업률이 21.3퍼센트까지 치솟자 국가통계국은 실업률 집계 방식을 개편한다며 6개월간 청년 실업률 발표를 중단했다. 그런데 개편된 당국의 실업률 측정 방식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창핑경제포럼 창립자인 주창정은 “현재 중국의 실업률 측정 방식은 부적합하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신조어로 잘 나타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로사회, ‘996.ICU’(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 노동하면 결국 중환자실 신세가 된다는 의미) 등이 유행했고, 이어서 자포자기와 소극적 저항을 나타내는 탕핑躺平(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 밑바닥 청년들의 소모성 경쟁을 의미하는 네이쥐안内卷 등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을 가리키는 란웨이와爛尾娃(건설이 중단된 아파트와 같은 아이라는 의미) 등이 유행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청년실업 문제가 부각됐다.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대졸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적어도 8퍼센트는 성장해야 하는데, 현재의 5퍼센트 성장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귄위주의 통치를 펴고 있지만,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2015년 시진핑은 선전과 광둥 인근의 노동활동가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노동자들의 저항은 회복됐다. 홍콩에 기반을 둔 중국노동회보가 제공하는 파업 건수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코로나 팬데믹이 유행하는 동안 노동자 파업은 잠시 주춤했지만 2023년과 2024년에는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그래프6)
노동자 투쟁은 대체로 임금 체불, 보상금 지급, 각종 사회보장 비용, 임금 인상 등 경제적 요구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 또한 노동자 계급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지향의 의미 있는 정치조직이 존재한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 노동자들이 경제 투쟁을 활발하게 벌인다면 시진핑에 타격을 가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의식적인 소수가 생겨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현재 중국 사회는 여러 모순에 직면해 있다. 경기침체로 인한 임금 인하 압박, 일자리 감소와 청년 실업 급증, 사회보장 축소와 연금 삭감, 억압적 통치에 대한 반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과 소비 지출의 감소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불만이 표출된다면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시진핑 정부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무리
제로코로나 정책의 실패와 경기둔화의 상황에서도 중국 지배계급 내에서 시진핑의 장기집권에 반대 하는 세력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1 시진핑 집권 1기 동안 총리를 지냈던 리커창(공청단 소속)만이 시진핑의 독주에 견제할 인물로 여겨졌지만 집권 초기부터 총리 권한이 축소되면서 제대로 된 견제세력이 되지 못했다. 시장 개방과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리커창은 국유기업 주도(국진민퇴)를 강조했던 시진핑과는 대비됐다. 그런데 미국과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2016년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벌어지면서 리커창의 정책은 중국 지배계급 내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첫째는 시진핑이 집권 초기부터 추진했던 소위 ‘호랑이 사냥’(시진핑식 부패와의 전쟁)으로 경쟁 집단을 모두 제거했다.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군벌 등 공산당 내 다양한 세력과 파벌이 제거됐다. 2024년에도 고위직 58명을 부패로 처벌하는 ‘호랑이 사냥’이 지속됐다.12 더욱이 시진핑은 중국 내에서 중국 체제와 공산당에게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각종 비판 세력(소수민족, 노동자, 여성, 농민 등)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데 열심이다.
둘째 이유는 미국과의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이 중국 지배계급에게 미친 영향이다. 중국 지배계급은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갈등보다는 시진핑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는 듯하다.그런데 시진핑 체제가 미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성과를 얻지 못하거나 치명적 패배를 겪게 된다면 지배계급 내 갈등이 첨예하게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살짝 보여준 사례가 작년에 군부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것과 이에 대한 반발이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에 드러난 것이다. 작년 12월 9일 〈해방군보〉는 “집단지도를 솔선해 견지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기사가 겨냥한 대상이 시진핑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 갈등은 해프닝처럼 무마됐지만 국내외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지배계급 내 갈등이 부각될 수 있다는 점도 보여 주었다.
시진핑 체제는 노동자 투쟁 등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더라도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위기에 빠진다면 시진핑은 대만 침공 같은 일도 벌일 수 있다. 시진핑은 대만을 장악해 국가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자는 애국주의적 이데올로기로 국내 반대 세력들을 제압하려 할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할 것이고 이는 동북아에서 제국주의 전쟁 또는 대리전이 벌어지는 끔직한 상황이 될 것이다. 2021년 시진핑은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완전히 통제했다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1년 뒤인 2022년 11월 백지시위 때문에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11월 우루무치에서 아파트 화재가 발생했지만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죽은 10여 명의 위구르인을 추모하는 A4시위(일명 백지시위)가 상하이에서 시작돼 중국 전역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자유를 가로막고 현 체제와 공산당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있지만, 이런 억압적인 통치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다 세계 3위의 군사대국인 중국에서 시진핑 체제가 무너진다면 상황을 지배계급이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내에서 노동자 계급에 기반을 둔 실질적인 사회주의 정치 조직이 꼭 필요하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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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2024년 12월에 썼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대해서는 필자가 올해 4월에 쓴 ‘중국의 맞불 관세와 버티기는 성공할까?’(〈노동자 연대〉 542호, 2025년 4월 15일)와 ‘제3세계에서 중국이 미국의 공백을 차지할까?(〈노동자 연대〉 543호, 2025년 4월 22일)를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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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경제의 디플레 위기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부동산발 중국경제 위기 ─ 중국판 리먼 사태가 될까?’(〈노동자 연대〉 470호, 2023년 8월 18일)를 참고하시오. ↩
- 锐评|“历史的垃圾时间”?真耶假耶? ↩
- Brands, Hal and Michael Beckley, 2021. ↩
- Mastro, Oriana Skylar and Derek Scissors, 2022. ↩
- 고든 창, 2003, pp374-390. ↩
- 데이비드 샴보, 2018, pp41-42 ↩
- 350万亿中国债务全景扫描__财经头条 ↩
- Budd, 2024, pp55-57. ↩
- 소비 주도의 성장모델을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은 케인스주의자인 마이클 페티스다. 이에 대한 비판은 마이클 로버츠를 참고할 수 있다. ‘Trade wars are class wars – part two: global imbalances?’, Michael Roberts Blog ↩
- ‘China’s industrial profits plunge 27%, marking this year’s steepest fall’ ↩
- Budd, ibid. pp.82-83. ↩
-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갈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애드리언 버드, ‘중국과 21세기의 제국주의’, 《마르크스21》 45호(2023년 봄). ↩
- 2022년 11월 상하이의 우루무치 중루에서 시작된 백지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루무치 중루’乌鲁木齐中路의 감독이 지난 1월 6일 상하이 바오산 법원에서 ‘공공질서 소란죄’로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공공질서 소란죄는 중국 정부가 시진핑 체제에 반대하는 인물에게 적용하는 죄목이다. ↩
참고 문헌
Brands, Hal and Michael Beckley, 2021, China is a declining power – and that’s the problem. Foreign Policy, Sep. 24.
Mastro, Oriana Skylar and Derek Scissors, 2022, China hasn’t reach the peak of its power: why Beijing can afford to bide its time. Aug. 22, Foreign Affairs.
고든 창, 2003,《중국의 몰락》, 형선호 옮김, 뜨인돌.
데이비드 샴보, 2018,《중국의 미래》, 최지희 옮김, 한국경제신문 한경BP.
Budd, Adrian, 2024, China: Rise, Repression and Resistance (Bookmarks).
‘China’s industrial profits plunge 27%, marking this year’s steepest fall’, Nikkei 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