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저항
제국주의, 이슬람주의, 폭력 *
1 그러나 여성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에서 언제나 중심적 역할을 했는데, 처음에는 영국의 점령에,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섰다. 2 농민과 노동계급의 여성뿐만 아니라 상류 계급 배경의 여성들도 1936~1939년 영국 위임통치령에 맞선 대봉기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1960년대 후반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반제국주의 항쟁과 폭발적으로 확산한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는 무장 투쟁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겪는 천대에 맞서서도 투쟁하며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요구했다. 1987년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분노가 다시 한번 대중적 봉기(제1차 인티파다)로 폭발했을 때 여성들은 풀뿌리 지역사회 위원회들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고, 시위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체포하러 온 군인들과 몸으로 맞서 싸웠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에서 여성이 활약한 역사는 완전히 지워지거나 기껏해야 부차적으로 다뤄졌다.3 이후 대중 투쟁이 쇠퇴하고 점령에 저항하는 여성들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현상이 너무 두드러진 나머지 존슨과 쿠탑은 “여성들은 전부 어디로 사라졌는가?”라고 물음을 던질 정도였다. 4 이 글은 1993년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처한 상황, 특히 여성들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본다. 이 글에서 우리는 새로운 장애물이 생겨났음에도 여성들이 공적·정치적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조직하고 활동하며 저항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줄 것이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 서명하며 이스라엘에 굴복했고 이로 인해 제1차 인티파다는 종결됐다.오슬로 협정(1993년, 1995년): 투쟁의 분수령
5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슬로 협정을 두고 “팔레스타인의 항복 문서, 팔레스타인의 베르사유 조약”이라고 일컬었다. 6 실제로 이후 이스라엘이 정착민 수를 두 배로 늘리며 팔레스타인 점령을 공고히 하는 동안 오슬로 협정은 가림막이 돼 줬다.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며 팔레스타인당국PA이 수립됐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대부분의 토지, 자원, 무역 및 국경을 완전히 통제했다. 부패하고 족벌주의적인 PA는 매우 적은 권한만을 가진 채 이스라엘의 ‘집행자’ 구실을 하게 됐다.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 투쟁에서 분수령이 됐다. 협정을 위해 이스라엘과 PLO는 비밀리에 협상했고, 여성(과 남성) 활동가들은 그 과정에 참여하지도, 이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오슬로 협정 결과 제1차 인티파다가 종결됐다.PLO가 1993년 이후 이스라엘에 굴복하자,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늘어났다. 1987년 설립된 하마스는 유일하게 실질적으로 점령에 맞설 수 있는 세력으로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차지했고, 이듬해 가자지구의 집권당이 됐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체에 연대 책임을 물으며 보복했다. 필수 물자 반입을 차단하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군사 공격을 가하는 등 봉쇄 조치를 가했다.
7 이스라엘의 점령은 계속되고 정착민들이 땅을 잠식해 들어오고 빈곤은 더욱 악화되는데, PA에 대한 환멸감까지 겹치며 쌓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 항쟁을 알아크사 인티파다 또는 제2차 인티파다라고 부른다. 8 제1차 인티파다에서는 여성들이 팔레스타인여성노동위원회연합을 통해 최전선에서 활동했지만, 제2차 인티파다라는 새로운 국면에서는 군사 공격이 더 강조되고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들이 투쟁을 주도하면서 여성들이 훨씬 덜 드러나게 됐다. 9 서안지구가 여러 구역으로 나뉘고 통행금지령이 시행돼 이동하기가 매우 어려워지자,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떠밀렸다. 이스라엘의 폭력이 심해지면서 여성, 남성, 청년들이 제1차 인티파다 때처럼 거리에서 군인들에게 저항하는 것은 훨씬 위험해졌다. 전투 무대는, 오슬로 협정으로 인해 ‘체스판’처럼 나뉜 지역들 사이의 경계와 검문소로 옮겨갔고, 젊은 남성과 소년들이 주요 행위자가 됐다. 10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슬로 협정 체결 7년 후인 2000년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평화 프로세스’가 “팔레스타인인의 어휘에서 가장 혐오받는 단어”가 됐다고 꼬집었다.추방, 공간말살, 봉쇄로 여성들이 입는 타격
인종차별적 국가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은 그 자체로 단일한 현상이다. 그러나 여성이 겪는 억압의 구체적 양상과 생활 경험은 세대마다, 그리고 강제로 이산해 살게 된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11 형편은 열악했다. 난민들은 처음에는 텐트에서 살았고, 1958년 이후로는 철제 지붕과 시멘트 벽돌로 만든 작은 집에서 살았다. 빈곤과 실업이 만연했다.
1948년 나크바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비극은 팔레스타인 사회를 잔혹하게 파괴했다. 이스라엘 국가는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 영토의 80퍼센트를 차지하며 건국됐고, 팔레스타인인 80~90퍼센트가 시온주의 무장 세력에 의해 자기 집에서 쫓겨났다. 마을 500곳이 파괴됐고, 해안 도시들(특히 야파와 하이파)의 아랍 사회는 사실상 붕괴됐다. 지배계급은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으로 이동한 반면, 대다수 농민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UNRWA가 가자지구(이집트에 병합), 서안지구(요르단에 병합), 레바논, 시리아에 만든 난민촌에서 살게 됐다.12 여성 대다수가 1948년 이전까지 농민으로 살았고, 땅은 그들이 생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근원이었다. 예를 들어 올리브와 오렌지 수확철에 여성들은 들판에서 일하며 서로 어울렸다. 땅을 빼앗기고 누추한 난민촌으로 강제로 이주당하면서 여성들은 빈곤에 내몰렸고, 점점 더 가정에 갇히게 됐다. 농사일에 익숙하고 농사일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던 농촌 여성들에게 이는 냉혹한 변화였다.
1948년 나크바 세대의 여성들에게, 땅을 빼앗긴 것은 사회·경제·문화적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잃는 것이었다.13 국제적 비난을 받은 이 분리 장벽이 팔레스타인 영토 깊숙이 들어서면서 비옥한 팔레스타인 땅이 대규모로 강탈당했고, 팔레스타인의 도시와 마을이 게토화됐으며,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사회 서비스, 학교, 농경지로부터 단절됐다.
오슬로 협정 이후 여성들은 봉쇄와 아파르트헤이트를 겪게 됐다. 2002년 70킬로미터에 달하는 분리 장벽이 세워지면서 서안지구의 영토 파편화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이를 두고 하나피는 “공간말살spacio-cide”이라고 일컬었다.14 ‘이동식’ 검문소라고 할 수 있는, 임시적·자의적인 도로 봉쇄는 여성들의 이동을 더욱 방해한다. 따라서 자신이 사는 지역 밖에 있는 대학에 가거나 가족을 찾아가는 일조차 그 자체로 저항 행위가 된다. 서안지구 내 이러한 감시·통제 강화는 공포와 배제를 조장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점점 더 갇히고, 감시받으며, 박해받게 됐다. 이로 인해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워지면서 대중 시위와 반란이 제약받았는데, 특히 여성들의 참여가 큰 영향을 받았다.
장벽과 검문소의 요새화와 더불어 삼엄한 통행증 검사, 통행금지 조치로 팔레스타인인 모두의 이동이 제한됐지만, 여성들은 특히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검문소는 대개 비좁고 인권을 침해한다. 여성들은 굴욕적인 신체검사를 강요받고, 화장실 이용도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각종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통과가 지연되면서 여성들이 검문소에서 출산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15 봉쇄가 시작된 이래 이스라엘은 2008년, 2012년, 2014년에 가자지구를 계속해서 군사적으로 공격해 안 그래도 심각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수천 명이 사망했고, 콘크리트와 철강 같은 건축 자재 반입이 허락되지 않으면서 복구할 길이 막혔다. 이미 여성은 가족의 기둥이었는데, 많은 남성이 사망하거나 투옥되면서 여성들은 봉쇄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으며 가족의 주거와 식량, 교육을 책임져야 했다. 젊은 여성들은 이동 제한으로 인해 교육을 끝마칠 수 없었다. 이것이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비참한 상황이었다.
가자지구 여성들이 겪은 경험도 마찬가지로 잔혹했지만 양상은 서안지구와 달랐다. 하마스가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하고 2007년 가자지구를 통치하게 된 이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에 시달리고 있다. 가자지구가 예루살렘이라는 주요 도시 중심지와 단절되면서 전문 병원, 외국 영사관, 은행 및 기타 필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 봉쇄로 인해 식량과 연료 같은 생필품이 부족해졌고, 교육, 보건 서비스, 깨끗한 물 공급에서 만성적인 문제를 겪었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지구 경제는 황폐해졌고, 유엔은 가자지구가 ‘발전의 퇴행’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 200만 명이 365제곱킬로미터에 살고 있는데 이를 두고 유엔 보고서는 거주 불능 수준으로 분류한 바 있다.‘수무드’ ― 일상의 저항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려는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의 논리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은 단지 ‘정상적 삶’ 비슷한 것을 유지하려고만 해도 이스라엘 국가와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늘 저항한다는 개념은 ‘수무드’라는 용어에 담겨 있는데, 수무드는 대략 ‘불굴’이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칼릴리는 수무드가 “다른 모든 길이 막히고 조직적 기반이 파괴됐으며 정치 기구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완전한 절멸도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됐을 때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투쟁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여성들이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과도하게 큰 부담을 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수동적이거나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 서안지구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데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재산을 약탈하며 집을 불도저로 밀어 버리는 등 갈수록 심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맞선다. 데시셰 난민촌 거주민이자 ‘요르단계곡연대’의 회원인 시린 쿠다이리는 여성들이 어떻게 한결같이 용감하게 정착민들에 맞서 싸우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군대가 공격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항한다. 여성들은 군대가 우리 집을 공격하러 오면 신발을 던진다. … 집이 철거될 때, 집에서 물품을 가장 먼저 꺼내는 사람은 여성이다. 여성들은 불도저가 오더라도 여전히 아들딸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그 후 다시 살 새 집을 짓는다.
18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립 능력을 짓밟고 없애려 하는 이스라엘의 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정착민 식민주의의 논리는 기존 환경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려 하며,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승리’란 하마스 제거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국가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재건 행위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끈질긴 생존 의지를 상징한다. 가자지구 출신으로 풀뿌리 보건 단체에서 일하는 의사 모나 알파라는 “점령 세력의 장기적 전략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우리 땅에서 살 수 없도록 만들어 또 다른 인종청소를 벌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19
팔레스타인인들은 주택과 지역사회 기반 시설을 재건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영토 확장과 자신들을 쫓아내려는 시도를 막고 있다. 쿠다이리는 “우리는 C구역[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통제하는 지역 — 역자]에 학교 다섯 곳과 진료소 다섯 곳을 지었으며, 마을 세 곳에 수도관을 기어이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2023년부터 진행 중인 가자지구 침공에서 이스라엘이 전쟁 관련 보도를 왜곡·날조·검열하는 전술을 펼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점령의 잔혹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최전선에서 현지 상황을 촬영하고 기록하며 포착해 왔다. 빌린 출신의 영화 제작자 아부 라흐마는 ‘우리는 조용히 죽기를 거부한다’라는 캠페인에 참여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자신이 다른 세 명과 함께 이스라엘 정착촌 근처로 이동해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 불법 침입 행위를 기록해서 올리브 수확 시기에 현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고 말한다.땅 지키기
21 그래서 올리브 나무라는 상징은 무척 심원한 의미를 지닌다. 팔레스타인은 사람 없는 땅도, 자연 없는 땅도 아니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연에게서, 또 서로에게서 소외되도록 해서 점령을 강화하려 해 왔다. 농지가 강탈당하고 마을들이 점점 더 지리적으로 갈라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식품에 더 의존하게 됐다. 따라서 여성들이 농사를 짓는 것은 중요한 저항 방식이다. 농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개척되기’ 전까지 팔레스타인 땅은 황량하고 사막 같은 풍경이었다는 오리엔탈리즘과 시온주의의 허구적 주장을 반박하는 일이기도 하다.22 서안지구 전역에서 여성들은 주권을 되찾고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영속농업과 협동조합 방식에 눈을 돌렸다. 빌린에 있는 슬레이만 농장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이 농장은 C구역에 속해 있음에도 팔레스타인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직거래망을 다시 만들어내, 유통 과정에서 이스라엘 기업뿐 아니라 NGO도 거치지 않고자 했다.
팔레스타인 토종 씨앗 보관소를 설립한 비비안 산수르는 고대 씨앗을 복원해서 정착민 식민주의와 이스라엘의 지속 불가능한 기업식 영농이 이 지역의 생물 다양성에 끼친 영향을 드러냈다. “흙과 햇살에 기반한 농업”은 점차 사라지고, 단일 작물 재배 방식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23 시위 기간이 1년이 채 안 됐을 무렵 이스라엘군은 결국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장벽이 지나는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슬레이만 농장과 빌린 마을은 식량 자급을 위해 분투하고 이스라엘의 영토 병합과 억류에 맞서 여성들이 저항하는 주요 전선 중 하나가 됐다. 보드루스 마을은 이스라엘이 세운 서안지구 장벽 바로 옆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특히 여성들이 두드러지게 활약했다. 불도저를 막아 세우고,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행진하는 일이 일상이었다.”팔레스타인 이슬람 민족주의의 부상과 여성
24 무슬림 여성들의 보수적인 복장을 천대와 후진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향은 특히 프랑스에서 두드러졌다. 2004년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을 때 프랑스의 여러 페미니스트 단체가 이를 지지했고, 그 전부터 일부 프랑스 페미니스트 단체는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모임에 오지 못하게 했다. 25 중동 지역 출신(이거나 그 지역 혈통)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이러한 시각에 도전하며 그동안 부재했던 여성의 목소리를 되살리고 이슬람과 여성의 관계를 더 풍부하고 복합적으로 설명해 왔다. 이들은 서구 페미니즘의 시각을 오리엔탈리즘적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26 라라 딥은 서방이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을 보편적 근대성의 중심에 놓고 그 근대성이 외부로 퍼져나가[서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는 반면에, 이슬람주의가 우세한 사회는 반(反)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것으로 대비시킨다고 논한다. 27
1987년 하마스가 창립되고 팔레스타인 이슬람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여성들이 점령과 천대에 맞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환경에 변화가 생겼다. 일부 서구 페미니즘 경향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 민족주의가 부상한 것을 두고 여성의 지위가 후퇴했다고 조야하게 해석했다. 이들은 이슬람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계획 속에서 이용당하는 졸에 불과하며, 속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자신을 옭아매던 전통적 이슬람 관습에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낼 것”이라고 여겼다.28 크리스 하먼은 이슬람주의가 “반동 그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편적으로 진보적인 사상도 아니라고 분석하며, 이슬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계급 관계와 제국주의 속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본다. 29 하먼은 이슬람이 기본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여러 계급의 이해관계에 적응해야만 한다고 설명한다. 이슬람은 모스크나 지지 기반 같은 물질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면 상인과 지주 계급에 호소해야 한다. 동시에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면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메시지를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의 실천에는 역사가 있고, 그들은 실천을 놓고 다양하게 해석하고 논쟁을 벌여 왔다. 무슬림들이 상상 속 과거 사회를 재현하려 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하마스의 젠더관이 오락가락하고 모순된 까닭을 이해하려면 하마스가 더 광범한 사회에 자리 잡은 여성관에 조응해야 할 필요, 여성 활동가들이 가하는 압력, 대중적 지지를 모아낼 필요 등 복잡한 맥락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한편으로 하마스는 반동적으로 여성의 ‘순결’, 가정 중심의 삶, 복종을 설파하며 여성에게 민족 재생산의 역할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활동가 역할을 강조하며 이슬람화한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로 여성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처음부터 하마스의 여성행동국은 여성에게 지워진 한계에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여성행동국은 여성을 하마스의 정치 조직에 참여시키고 여성 당원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저렴한 보육 서비스가 대대적으로 확대됐으며, 빈곤 여성이나 정치수의 아내에게는 보육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됐다.
30 심지어 베일조차도 근대성의 상징으로 간주됐는데, 농민 여성들이 입던 다채로운 색상의 전통 의상인 토브와는 다르다는 이유였다. 자드는 단색의 긴 로브와 흑백 히잡을 교육의 상징이라고 설명하는데, “전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신념에 따라 유니폼을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31 하마스 여성들은 대학에서 당원을 모집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활동에서 핵심 역할을 해 왔으며, 각 대학에는 여학생위원회가 있다. 32 이처럼 대학을 졸업한 여성과 전문직 여성들이 유입된 것은 하마스가 남성 중심의 지하 준군사 조직에서 대중적 정치 운동으로 변화하는 데서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마스는 “교양 있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정치적으로 활발하고 자기주장을 분명히 하는 여성”을 새로운 이슬람 여성상으로 내세웠다.33 2006년 하마스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가자지구에서 정부를 구성한 이후 여성행동국은 여성부로 재편됐다. 여성부는 더 이상 PA 내 한 부처가 아니라, 여성 참여 확대와 복지 서비스 제공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독립 부처로 탈바꿈했다. 2010년 여성부는 3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이 책정된 계획을 실행했다. 이 계획은 여성 대학 졸업자의 일자리 창출, 식량난 개선, 정치수의 아내 및 사별한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을 목표로 했다.
어쩌면 의외일 수 있지만 하마스의 여성 대표자 비율은 PA나 PLO 같은 정치조직보다 더 높았다. 2003년 당시 하마스 자문위원회 구성원 52명 중 8명이 여성이었다. 선출된 여성은 전부 고학력자였으며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가자지구의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의학, 교육학, 영문학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었다. 하마스는 페미니스트 NGO들이 말하는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권리 개념이 이스라엘의 점령 현실을 외면한다고 꾸준히 비판해 왔고, 페미니즘은 팔레스타인 민족성과는 무관한 외래 사상이라며 그 정당성을 부정해 왔다. 그러나 세속적 페미니즘에 대한 이슬람주의적 대안 담론을 찾는 과정에서 하마스는 페미니즘을 지속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마스는 기층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제기하는 요구에 대응하고 정치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세속적 페미니즘의 개념 일부를 차용해 왔다. 이러한 미묘한 태도는 2016년 비르제이트 대학교 학생회 선거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 당시 하마스는 선거 홍보 영상에 서구식 옷차림에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들의 지지 장면을 넣어 국내외에서 자신들이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발디는 서안지구 젊은 여성들을 인터뷰해 서구적 시각에서는 억압받는 피해자로 자주 묘사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신新이슬람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여성들은 베일 착용이 자신들을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베일 덕분에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이었던 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됐으며 미혼 여성도 저녁 시간에 외출하거나 직장에서 남성과 함께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성들의 정치 활동 참여 가능성도 커졌다. 이 여성들은 하마스의 젠더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따르면서 “경건한 여성상”을 재창조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기존의 이슬람 규범을 전복하고 있는 것이다. 하마스가 이슬람주의 교리에서 유연하고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여성의 무장 투쟁 참여에 대한 태도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림 리야시는 자살 폭탄 공격에 나선 최초의 하마스 여성이었는데, 공격 당시 하마스는 여성을 군사 활동에 투입한 것은 이념적 원칙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 발표로 하마스 내부에서는 인식 변화가 있었고, 2007년 4월 하마스의 군사 조직인 알카삼 여단은 여성 부대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하마스가 대중적 지지를 받게 되면서 엄격했던 젠더 정책은 점차 완화됐다. 하마스의 여성들이 지도부에 압박을 가하고 여성 자신들이 운동 내에서 펼친 활동으로 자신감을 얻은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젠더, 민족주의, 이슬람주의 사이의 이런 상호 작용은 계속해서 변하면서 2017년 5월 개정된 하마스 강령에도 반영됐다. 강령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겨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여성의 역할은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늘 중요했다. 여성은 저항, 해방, 정치 체계 구축이라는 과업에서 중심적 구실을 한다.
37 당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여성 두 명이 사망하고 열 명이 다쳤다. 파티마 슈랍은 하마스 여성 부문을 이끄는 지도자로 여성 당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38 하지만 이 두 여성의 정치국 진입은 쉽게 이뤄진 일이 아니었고, 하마스 지도부와 수년간 논쟁을 벌인 끝에 겨우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게다가 하마스 지도부는 이런 요구를 수용하긴 했지만 지도부 내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하마스 정치국에 여성이 선출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밀라 알샨티와 파티마 슈랍이었다. 알샨티는 2006년 이스라엘군이 베이트 하눈의 알나스르 모스크를 포위하자 다른 여성들과 함께 포위망을 무너뜨려 그 안에 갇혀 있던 남성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이 사건 이후 알샨티는 이스라엘의 암살 대상 명단에 올랐다.39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전부 복장 규정을 다룬 보도가 과장됐다고 하거나 항의 이후 그 규정이 철회됐다고 말했다. 예컨대 여성 변호사들에게 머리를 가리라고 지시했던 조치도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한 핵심 메시지는 자신들이 직면한 주요 문제는 하마스에 의한 권리 제한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는 극심한 빈곤과 실업을 낳는 이스라엘의 봉쇄야말로 훨씬 더 절박한 문제였다. 블로거 야스민 엘 쿠다리는 “가자지구 여성의 권리를 진짜로 억압하는 존재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며, 국제 언론이 왜곡되고 본질에서 벗어난 보도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국제 언론은 하마스 정부하 여성들의 삶을 성급하게 규정하려 들었다. 언론은 하마스를 깎아내리려고 가자지구에서의 ‘여성 인권’ 문제를 자주 이용하는데, 예컨대 여성의 오토바이 탑승이 금지됐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BBC는 남성 미용사가 여성 고객의 머리를 자르지 못하게 하는 조치에 대해 보도했지만(해당되는 남성 미용사는 가자지구에 단 다섯 명뿐이었다) 오히려 그 기사에 실린 가자지구 여성들의 인터뷰 내용은 그 기사가 주장하는 바를 전혀 뒷받침하지 않았다.우리 삶이란 이렇다. 백인 남성(과 여성)이 팔레스타인에 와서 우리에게 권리를 가르치려 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서 그 권리를 계속해서 빼앗아 가는 바로 그 세력을 지지한다. 가자지구의 경우에는 권리 박탈 문제를 [하마스] 현지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이 추가되고, 권리 박탈 상황을 초래한 진짜 원흉인 이스라엘의 봉쇄와 점령의 책임을 덜어 준다.
41 그럼에도 하마스는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열어 왔다. 이는 여성들 자신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며, 하마스가 더 넓은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세속적 페미니즘과 겨루면서 그 일부를 차용할 필요성에서도 비롯한 것이다.
이슬람 민족주의는 여성들에게 억압적 요소와 해방적 요소를 동시에 가져다줬다. 여성들은 활동가이자 지도자로서 새로운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슬람을 더 반동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과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 탓에 여성의 권리가 제한되거나 후퇴할 위험도 마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하마스 정치국원으로 선출된 것과 같은 해인 2021년에,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운영하는 이슬람 법원은 여성이 여행하려면 남성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인해 여성들은 가자지구 안팎에서 이동하는 것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히잡
히잡 착용은 이슬람이 여성 억압적이라는 주장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역에서 히잡 착용은 불복종, 굳건함, 저항의 상징이었다. 마르티니크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반식민주의 지식인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 식민 정부가 알제리의 저항을 꺾으려고 여성들의 베일 벗기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에 대해 1959년에 이렇게 묘사했다.
알제리 사회를 무너뜨리고 저항 능력을 꺾으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여성을 장악해야 한다. 우리는 베일 뒤에 숨어 있는 여성을 찾아내야 하고, 남성들이 여성을 숨겨둔 집 안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43 당시 많은 여성 농민과 시골 여성들이 히잡을 썼는데, 신분증을 의무적으로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은 신분증 사진을 찍으려면 히잡을 벗어야 하는 이중의 굴욕을 겪었다. 44 이러한 인종차별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9·11 이후 무슬림 여성의 복장 문제가 이슬람 혐오를 퍼뜨리는 정치적 수단이 되고 있다. 45 2004년 3월 학교에서 히잡 착용이 금지된 데 이어, [니캅, 부르카 등] 얼굴을 가리는 머리쓰개 착용이 [학교 외에서도] 모조리 금지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2023년 국공립 학교에서 (중동 전통의 긴소매 드레스) 아바야 착용까지 금지했고,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히잡을 착용한 여성 선수들의 출전을 막으며 무슬림 여성에 대한 억압을 더욱 강화했다. 46
1958년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 전역에서 대규모 ‘베일 벗기기’ 행사가 벌어졌다. 프랑스군 장교의 아내들은 알제리 여성들의 베일을 벗기며 ‘자매애’를 나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역사가들은 그 행사에 참여한 여성 일부는 애초에 베일을 쓰지 않던 사람들이었음을 밝혀냈다.47 히잡은 저항의 상징으로 쓰여 왔지만, 그 의미가 한결같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1948년 이후 한동안 히잡은 주로 나이든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복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제2차 인티파다(2000~2005년)가 벌어지고 [서안지구를 조각낸] 분리 장벽이 세워진 이후에는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히잡 착용이 점령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일상적 행위가 됐다. 한 여성은 이렇게 설명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베일 착용은 중동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적 의제로 자리 잡았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1936년 대반란을 회상하며 당시 자신들은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아랍인임을 드러내려고”, “다른 아랍인들처럼 보이려고” 베일을 썼다고 말했다.시온주의자들은 우리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다수가 되길 원한다. 그들은 우리를 시야에서 가리고 내부 분리를 강제하고자 장벽을 세웠다. 내가 쓴 히잡은 우리가 존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이 땅에 남을 것임을 그들에게 보여 주는 수단이다.많은 여성이 히잡을 불복종의 상징으로 여긴 건 자발적 선택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나 사회에서 특정 복장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자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을 보면 앞서 언급한 역설을 거듭 발견할 수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에게 히잡 착용은 해방의 경험이기도 했다. 히잡을 썼기에 집을 나서서 대학에 가거나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으며,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50 맥러드는 이집트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지만 동시에 여러 모순과도 맞닥뜨렸다고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일터로 나가면서 전통적인 여성 역할에 맞섰지만 동시에 일터로 나가기 위해 베일을 착용하면서 ‘전통적’ 가치에 순응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히잡을 단순히 억압이냐 해방이냐로 일면적으로 볼 수는 없다. 히잡 착용은 불복종과 반식민주의의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2022~2023년 이란에서 젊은 여성들이 용기 있게 국가 권력에 맞서 히잡 강제 착용을 거부한 사례처럼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이 저항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여성에게 무엇을 입거나 입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자는 언제나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
히잡 착용이 중동 전역에서 하나의 경향처럼 나타나고 있지만 국가 기구, 자본, 제국주의, 저항이 히잡 착용과 맺는 관계는 각 사회 환경마다 다르다. 예컨대 앤 맥러드는 1980년대 이집트에서 노동계급 여성들이 다시 새롭게 베일을 쓰게 된 현상을 이해하려면 급격한 경제 변화라는 당시 배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본다.첨예해진 계급 분단
51 그 뒤 PA 주도로 서안지구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도시 엘리트 전문직 여성들은 성공의 기회를 잡았다. 반면 농촌 여성과 난민 여성은 철저히 소외됐다. 이 시기 유럽연합, 미국과 기타 각국 정부가 NGO로 보낸 막대한 후원금은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 사용됐다. ‘부드러운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이 흐름은 여성들의 참여와 리더십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수많은 ‘페미니즘’ 프로젝트는 집단적 연대, 공동체, 저항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초점을 맞췄다. 도시 엘리트가 운영하는 전문 NGO들은 제1차 인티파다 당시 활발히 저항을 조직했던 여성 중심 풀뿌리 단체들과 그 리더들을 주변화시키거나 포섭해 버렸다. 후원금을 따내기 위한 경쟁 때문에 단체 간 경쟁이 심화됐고 위계질서가 생겨났다. 상층부에 오른 여성은 대부분 자금 확보를 위해 서방의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적 이해관계에 자신을 끼워 맞춘 인물들이었다.
1970~1980년대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저항은 노동계급 연대와 기층 동원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과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 같은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1993년 오슬로 협정 체결은 이러한 ‘혁명 시대’에 종말을 고했다.52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같은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며, 일상적 투쟁과는 무관한 전시성 사업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여성 억압 문제를 이스라엘의 점령과 그에 맞선 저항이라는 정치적 맥락에서 분리해 버린다. 53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식민 프로젝트는 지금도 서방의 국제기구들, 각국 정부, 그리고 셰리 블레어 재단[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아내 셰리 블레어가 설립한 여성 지원 단체] 같은 단체들에 의해 서안지구 주민들에게 계속해서 강요되고 있다.54 이는 저항에 참여하는 활동가로서 여성의 역할을 흐려 분열을 유도하는 요긴한 프레임이다. 팔레스타인 내 투표 성향을 심층 분석한 민나 카우퍼콜스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은 파타에 표를 던지는 경향이 좀 더 있지만 여성들은 압도적으로 하마스를 지지했다. 55 복장 문제나 서구식 젠더 권리 개념은 여성의 투표 결정에서 중심 요소가 아니었고, 여성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문제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여성은 파타가 고착시킨 연줄 체계에 거의 접근할 수 없었으며 하마스가 평범한 여성들을 위한 복지를 중시한 점이 투표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평화 구축’이라는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식민 국가는 정상적인 양 포장됐고, 여성은 본래 비폭력적인 ‘평화 조력자’라고 규정됐다. 하마스는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자본주의에 반대한 적이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복지국가 비슷한 구조를 미약하게나마 만들어냈다. 이 구조는 모스크, 자선단체, 학교 등으로 짜인 망을 통해 작동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는 주민들이 복지, 자선, 사회 서비스 제공에 더 크게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미약하긴 해도 이렇게 구축한 인프라 덕분에 하마스는 가자지구 주민, 특히 여성들과 관계가 더 밀접해졌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주의는 한편으로는 물질적 지원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몰인정한 세계의 인정”이라는 이데올로기 구실을 수행해서 천대받는 사람들과 빈민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57 이는 1970년대와 제1차 인티파다 당시 여성들이 기층에서 대거 참여했던 모습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하마스는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변호사, 작가, 언론인, 의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데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 프로그램의 일부는 ‘알물타카 알나사위(여성의 만남)’처럼 복지를 중심으로 빈민층을 모아내려 했다. 그러나 이슬라 자드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활동가의 삶과 직업 생활을 함께 이어가기 어려운 저학력 여성들이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회전문처럼 작동했다”고 지적한다.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괴롭힘
58 예루살렘, 라파흐, 하이파, 라말라 등 12개 주요 도시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대거 거리로 나섰고, 베를린과 베이루트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59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점령에 맞서 계속 저항할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도 공론화했다. 2019년 9월 3일 팔레스타인 전역을 휩쓴 시위 속에서 탈리아트(Tali’at: 아랍어로 ‘일어섬’, 또는 ‘거리로 나섬’이라는 뜻)라는 운동이 등장했다. 이 운동은 이스라 알그라옙이 가족에게 소위 ‘명예 살해’를 당한 사건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폭력을 심각한 수준으로 겪고 있다. 이스라엘과 PA 모두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이용해 왔다. 주류 언론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당시 성폭력이 수반됐다는 미심쩍은 의혹에 대해서는 관심을 크게 보였지만, 그 뒤 이스라엘의 보복 속에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성폭력과 성적 괴롭힘에 시달린 것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아자데흐 모아베니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체포된 팔레스타인 여성 다수는 “나체 상태에서의 구타와 생식기 부위 폭행, 신체에 부담을 주는 모멸적 자세 강요, 강간 협박”을 당했으며, “두 건의 사례에서 실제로 강간이 벌어졌음이 확인”됐다.61 당시 영국 대표단의 존 플레처쿡은 보고서에 “여성과 아이들은 발가벗겨진 채 줄지어 세워졌고, 사진을 찍힌 뒤 자동 소총 사격으로 살육당했다. 생존자들은 이보다 더 믿기 힘든 잔혹 행위가 있었다고 증언했다”라고 썼다. 62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여성의 신체와 관련된 금기와 (대략 ‘명예’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스캇’ 개념을 악용하는 전략을 이어 왔다. 이러한 성폭력은 은폐되거나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는데, 이스라엘 가해자들이 사실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일부 팔레스타인 공동체도 여성의 피해를 언급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성폭력의 위협을 받았다. 1948년 4월 시온주의 무장단체 이르군과 스턴갱이 데이르야신 마을을 공격했을 때 민간인이 100명 이상 살해당했고 강간과 성적 괴롭힘이 자행됐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63 아자데흐 모아베니는 팔레스타인 여성, 특히 젊은 여성과 활동가에게 성적 괴롭힘이 일상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팔레스타인 여성 수감자들은 모멸적 대우를 받고 성폭력과 성폭력 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왔다.직장이나 학교에 가는 길목의 검문소에서 창녀라 불리며 옷을 벗기는 수색을 당하기, 밤에 자다가 집 밖으로 히잡도 없이 잠옷 차림에 맨발로 끌려 나오기, 임신 중인 여성이 검문소에 억류되거나, 검문소 장벽 뒤편에서 출산을 강요받는 것, 구금 상태에서 모멸적으로 알몸 수색을 받기, ‘이스캇’(‘몰락’)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성적 협박(알몸이나 모멸적 자세를 한 사진이나 영상이 동원된다)으로 진술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65 또 다른 사례에서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니캅을 쓴 임신한 팔레스타인 여성을 조준점에 맞춘 그림과 ‘일석이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는 총 한 발로 여성과 태아를 동시에 죽일 수 있다는 의미다.” 66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여성 해방자와 페미니즘의 권위자를 자처해 왔지만, 이스라엘의 공적 담론에는 역겹고 노골적인 여성 비하가 넘쳐 난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그런데, “니캅을 쓴 반라의 여성으로 의인화해 가자지구를 묘사한 이미지에 ‘네타냐후 총리가 강간하라’라는 캡션”을 달아서 소셜미디어에 퍼뜨리기도 했다.67 시위 현장에서 여성들은 언어 폭력에 시달린다. 예컨대 2018년 6월 PA에게 가자지구에 부과한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시위에서 여성들은 괴롭힘과 폭행을 당했다. 68
PA는 여성의 정치 활동 참여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군과 유사한 구금, 신문, 감시, 그리고 성적 억압 방식 등 가혹한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성의 가족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수치와 명예 개념이 동원된다. PA 보안군은 여성의 아버지를 찾아가 딸의 활동에 대해 “의논”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 침공과 폭격이 이어지면서 여성들이 특히 큰 피해를 당했다.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장소가 전무하고, 미숙아용 인큐베이터도 없다. 물 부족과 위생용품 부재는 여성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며 감염 위험을 높이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빼앗고 있다. 피란 중인 여성들은 성적 폭력과 성적 학대에 시달리기 더 쉬워졌다.70 2019년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이 실시한 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결혼한 여성의 29퍼센트가 최근 1년 사이 남편한테서 정신적·신체적·성적·사회적·경제적 폭력 중 하나 이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8퍼센트는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71 2015~2020년 사이 보고된 여성 살해 149건 중 대부분은 젊은 여성이 피해자였다. 72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행된 록다운 기간 동안 서구와 제3세계 국가들에서 그랬듯이 팔레스타인에서도 가정 폭력과 여성 살해가 급증했다. 73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스라엘 점령이라는 폭력과 가정 폭력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여성에 대한 폭력은 누가 저지르든 결코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을 제대로 비판하고 이에 맞서려면 폭력이 발생하는 복잡한 배경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 학살은 여성 해방을 앞당기기는커녕 오히려 억압을 심화시키고 있다.
74 팔레스타인 보건부에서 정신건강 부서 책임자를 맡고 있는 사마흐 자브르는 팔레스타인 사회 전체가 끊임없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75 자브르는 프란츠 파농의 연구를 바탕으로 점령과 억압을 겪는 민족의 심리적 경험이라는 맥락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트라우마를 해석한다. 자브르에 따르면 젊은 남성들은 주로 두통, 심장 두근거림, 요통 같은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데, 이는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인종차별, 굴욕, 실업이라는 억압의 신체적 표출이다. 즉 억압을 내면화한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인 것이다. 견디기 힘든 정치·생활 조건 속에서 약물 사용이 급증했고, 특히 2006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이후 약물 중독 사례가 크게 늘었다. 76 영토가 분절되고 이동이 차단되면서 여성들은 가정 폭력에 맞서 보호와 지지를 구할 일가친척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기회를 빼앗겼다.
가족 구성원이 장기간 구금되고, 극도로 감시받으며, 이동의 자유도 없고, 여성과 남성 모두 일자리가 없어 빈곤이 심화되면서 가정은 폭력과 억압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 침공과 폭격이 시작되기 전부터 팔레스타인은 이미 세계에서 정신질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 들었다.77 이 범죄자 중 상당수는 과거 이스라엘 보안당국을 위해 일했던 정보원 출신이다. 이렇게 부역자에서 범죄자로 변신한 이들은 무기를 손쉽게 손에 넣는 데다가 처벌도 받지 않고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빈곤과 실업 상황 속에서 조직폭력배가 늘어났다. 이들은 보호비를 갈취하고 공공사업 입찰을 가로채며 마약을 유통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그 결과 조직 간 전쟁도 벌어진다. 조직폭력배 증가는 특히 ‘48 아랍인’ 사이에서 두드러졌는데, ‘48 아랍인’은 이스라엘 내 21퍼센트를 차지하는 [1948년 이후 이스라엘 내부에 남아 있는] 아랍 인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일란 파페는 2023년 이래 “이스라엘 내 아랍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러한 조직폭력배가 살해한 팔레스타인인이 거의 160명에 달한다”고 말한다.78 일찍이 1882년 영국의 이집트 점령 때도 당시 영국 총영사였던 크로머 경은 이집트 여성을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크로머 경은 기막힐 정도로 위선적이게도 학교에 수업료를 도입해 이집트 소녀들의 교육을 가로막았다. 영국 본토에서는 ‘여성 참정권에 반대하는 남성 연맹’의 창립 회원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하게 조지 W 부시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할 때도 후진적인 탈레반에게서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구해야 한다는 서사가 활용됐다. [조지 W 부시의 아내] 로라 부시와 셰리 블레어도 페미니즘 수사를 이용하며 서방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흐름에 가세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사명’ 공동대표 소날리 콜하트가르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여성을 ‘구한다’는 수사를 내세워 침략과 점령을 정당화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랜 악습이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식민주의를 분석하면서 이를 “백인 남성[과 여성—저자]이 갈색 남성에게서 갈색 여성을 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전쟁은 그 어디서도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는다. 여성은 전쟁의 피해를 언제나 불비례적으로 훨씬 더 심각하게 겪는다. 총과 유혈 사태로 여성의 권리를 진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천만할 정도로 순진한 발상이다.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스스로 조직해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여성들은 폭력에 시달릴 것을 각오하고, 시위에서 무리를 이뤄 움직이며, 체포 후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다양한 전술을 사용하며 끊임없이 거리로 나왔다. 야라 하와리는 한 활동가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시위에 나가기 전에 정신적으로 각오를 다져야 한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오늘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81 탈리아트 운동은 이후 퀴어 해방 운동과 초국가적 연대 운동으로도 확장됐는데, 예컨대 조지 플로이드 살해에 맞서 분출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연대한 것이 그렇다. 82 탈리아트 운동은 팔레스타인 퀴어 페미니스트 단체인 ‘알콰우스alQaws’, ‘아스왓Aswat’ 등과 함께 ‘퀴어 해방을 위한 외침’이라는 시위를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을 ‘후진적’이라고 낙인찍으며 자신만이 선진적이고 계몽된 국가로 포장하는 ‘핑크워싱’ 전략을 맞받아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을 일률적으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존재로 묘사하는 오리엔탈리즘적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이다.
탈리아트 운동은 “해방된 여성을 위한 해방된 조국!”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여성 해방이 결코 나중 일로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촉구한다. 이 운동은 식민 억압과 [여성에 대한] 폭력 사이의 연결 고리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여성이 해방되지 않고 땅이 해방될 수는 없다.”83 PA는 이러한 비극에 대해 형식적인 유감 표명만 했을 뿐, 오히려 이스라엘 점령의 ‘하청업자’ 구실을 계속 수행하며 서안지구에서 시위와 저항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PA는 이스라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인물뿐만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겨냥해 폭력적인 탄압과 구금을 이어갔다. 이러한 폭력은 팔레스타인 공동체 내부의 폭력으로도 이어졌고, 특히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스라엘 국가는 이러한 범죄 행위를 방치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공동체들의 분열과 운동 약화가 점령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이 같은 긴장과 억압은 가정 내로 스며들고, 대인 관계 문제로 인한 폭력이 잦은 현실로 나타난다. 여성들은 그런 현실 때문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여성들은 서로 겹치는 여러 층위의 폭력 속에 갇혀 있다. 그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의 점령이며, 이러한 점령은 잔혹 행위, 구금, 주택 철거, 빈곤, 토지 침탈 등을 통해 유지돼 왔다. 2023년 이후 점령은 가자지구에 대한 인종 학살적 군사 공격으로 격화했다. 한편 전 세계의 이목이 가자지구로 쏠린 사이, 서안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괴롭힘과 위협이 더 커지고 강해지고 있다. 정착촌 확장 세력 출신 극우 정치인들이 당선하면서 폭력이 더욱 조장되고 있다. 2024년 상반기에만 서안지구 전역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최소 1334건의 공격을 벌여 적어도 7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여성들은 여전히 거리로 나선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여성들의 집단적 정치 활동은 사그라든 듯 보이지만, 이러한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제2차 인티파다 이후에도 여성들은 대규모 시위에 계속해서 참여해 왔다. 2011년 중동 전역에서 일어난 혁명들에서 영감을 받아 서안지구에서 PA에 맞서 벌어진 시위가 대표적 사례다. 제닌에서부터 두라에 이르기까지, 서안지구의 도시와 마을 곳곳에서 남녀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은 행진하며 돌을 던졌고 PA의 폭력과 강압, 부패의 종식을 요구했다. 특히 총리 살만 파야드의 사퇴를 외쳤다. 이 시위는 본질적으로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신들이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현실에 분노한 것만이 아니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위시한 국제기구들이 신자유주의적 의제를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한 것도 시위가 촉발된 핵심 이유였다. 여성들도 이 투쟁으로 큰 힘을 얻었다.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제2차 인티파다 이후 사라졌던 여성들의 자리를 우리가 되찾아 왔다.”
85 이 시위는 2019년 말까지 매주 이어져 여성과 아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이 설치한 가자지구 경계의 철책 인근에 모였다. 그들은 70년 넘게 이어진 실향을 끝내고 고향으로 귀환할 권리를 요구했고,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봉쇄를 끝낼 것을 촉구했다. [서안지구에 있는 PA의 임시 행정 수도] 라말라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가자지구 봉쇄에 동조하지 말라고 PA에 요구했지만, PA의 대응은 가혹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구타당하고 길거리에서 전기충격봉을 맞았으며, 최루탄과 섬광탄이 사용됐다.” 86 여성들에게도 이런 폭력이 가해졌다.
‘귀환 대행진’은 2018년 3월 30일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일반 시민 주도의 시위였다. 이 시위들은 2021년에 벌어진 ‘단결 인티파다’의 전조였다.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서안지구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곳곳에서 거리로 나서 이스라엘 군인과 PA의 폭력에 맞섰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단결 인티파다가 이스라엘이 지난 70여 년간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에 심어 온 분열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가자지구, 서안지구, 그리고 이스라엘 국경 내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강요된 위계질서가 이 시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결론
제1차 인티파다와 오슬로 협정 이후 여성들의 정치 참여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저항의 중요한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매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남기 위한 사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스라엘이 계속 침탈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그런 구실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군인과 시온주의 정착민들이 집과 마을을 파괴하려 할 때 앞장서서 맞서 싸우고 있고, 지금도 거리에서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 이후로는 자신들이 겪는 억압에 맞서 조직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회 전반에서 겪는 폭력에 맞서며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의 부상은 다면적 양상을 띤다.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 내부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반동적인 시각을 보이는 보수적인 흐름이 거세게 존재한다. 하지만 특히 하마스를 비롯해 주요 이슬람주의 조직에서 여성이 맡는 역할은 더 광범한 사회 변화와 맞물려 있다. 여성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고, 조직 내 여성들의 자리를 요구하고 나서는 것도 그런 사회 변화의 일부다. 하마스의 이슬람 해석 틀 안에서도 여성들은 지도부의 일원으로 참여해 왔고, 성평등과 교육 문제를 제기해 왔다.
히잡을 쓴다고 해서 거리 시위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을 파괴하러 온 불도저나 이스라엘 군인 앞에서 맞서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2023년과 2024년 전 세계에서 벌어진 가자지구 인종 학살 규탄 시위의 선두에 서 있었다.
여성의 권리를 분열의 수단으로 이용해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삼으며 점령이 낳은 정치적 문제와 폭력에서 주의를 돌리려는 가짜 페미니스트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은 점령이라는 더 큰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탈리아트 운동 같이 가정 폭력에 반대하는 독립적인 풀뿌리 운동이 등장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고 정치적 좌파를 다시 세우는 데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러한 운동은 실패한 민족주의 프로젝트를 답습하지 않는, 아래로부터 행동을 재건해 나가는 과정의 일부다.
팔레스타인 여성의 해방이 반제국주의 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하마스가 보수적인 도덕 규범과 오락가락하는 젠더관을 지녔음에도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하마스에 점점 더 공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계급 사회와 가족 제도로 분석하는 관점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정치적 원칙을 민족 해방 투쟁을 지지할 전제 조건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여성의 존엄과 안전,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민족 해방 투쟁이 약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성 해방과 민족 해방은 함께 싸워서 이뤄내야 할 과제다. 팔레스타인 인권 변호사 수헤이르 아사드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로운 여성이 없는 한, 자유로운 조국도 없다.”
89 여성은 이 같은 민족적·국제적 투쟁에서 앞으로도 핵심적 역할을 맡는 동시에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에 맞서서도 조직화하고 싸워야 한다.
팔레스타인 저항의 중심에는 노동자·빈민의 투쟁이 있었고, 그 투쟁의 한복판에는 언제나 여성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결국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경계를 넘어 확장돼야만 한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성공하려면 중동 전역에서 자국의 국가 권력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과 더 깊숙이 연결돼야 한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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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atie Coles and Jane Hardy, ‘Palestinian women’s resistance today: imperialism, Islamism and violence’, International Socialism 185(Winter 2024)
↩
- 원고를 여러 차례 수정하는 과정에서 유익한 조언을 주는 등 이 글을 쓰는 내내 도움을 준 앤 알렉산더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
- 대봉기(1936~1939년)부터 제1차 인티파다(1987~1993년)까지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저항에 관한 논의로는 Hardy and Coles, 2024[국역: “팔레스타인 여성의 저항: 대봉기부터 1차 인티파다까지”, 《마르크스21》 51호(2025년 봄)]를 보시오. ↩
- 오슬로 협정은 1993년과 1995년에 1차와 2차에 걸쳐 맺어졌다. ↩
- Johnson and Kuttab, 2001. ↩
- 제1차 인티파다는 1987년에 시작돼서 1993년에 끝났다. ↩
- Said, 1993; Said, 1996을 보시오. ↩
- Said, 2000. ↩
- 제2차 인티파다는 리쿠드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모스크 경내를 방문하며 도발한 것이 계기가 돼 일어나 2000년 9월부터 2005년 2월까지 벌어졌다. ↩
- Hardy and Coles, 2024를 보시오. ↩
- Johnson and Kuttab, 2001. ↩
- 1947~1949년 사이에 실향한 팔레스타인인 100만 명 중 5분의 1 이상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완전히 떠나 주로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로 피신했다. ↩
- Abdo, 2014. ↩
- Hanafi, 2012. ↩
-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2000~2007년 사이에 임신한 팔레스타인 여성의 10퍼센트가 검문소에서 산통이나 출산을 겪어야 했으며 그 7년 동안 최소 35명의 영아와 5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Powell, 2011과 Shaobi, 2011을 보시오. ↩
- UN, 2012. ↩
- Khalili, 2009, p99. ↩
- Khudairy, 2021, pp34-36. 많은 아랍 문화권에서 신발을 던지는 것은 모욕적인 행위인데, 신발은 땅에 닿으므로 불결한 물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
- Khudairy, p24. ↩
- Al-Farra, 2021, p113. ↩
- Abu Rahmah, 2021. ↩
- 에드워드 사이드는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서방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동 사람들을 열등하고 후진적이며 구원이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내는 수법을 폭로한다. Said, 1978을 보시오. ↩
- Sansoour, 2024. ↩
- Kayali, 2021, p112. ↩
- Mahmood, 2005 ↩
- Delphy, 2015. ↩
- Deeb 2006; Mahmood, 2005; Hafez, 2011. ↩
- Deeb, 2006. ↩
- Deeb, 2006. ↩
- Harman, 1994. ↩
- Jad, 2018, p110. ↩
- Jad, 2018, p111. ↩
- 이러한 여학생위원회들은 서안지구보다 가자지구에서 더 많이 조직되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
- Jad, 2018. ↩
- Baldi, 2022. ↩
- 림 리야시는 2004년 1월 14일 에레즈 검문소에서 자폭해 네 명을 죽이고 자신도 사망했다. ↩
- Margolin, n.d. ↩
- Abu Amer, 2021. ↩
- Abu Amer, 2021. ↩
- Shawa, 2010. ↩
- El Khoudary, 2011. ↩
- Guardian, 2021. ↩
- Fanon, 1959, p35. ↩
- Falecka, 2017. ↩
- Naggar, 1990. ↩
- Boulange, 2002. ↩
- Diallo, 2024. 히잡을 착용한 프랑스 선수들은 자국에서 열린 대회임에도 출전할 수 없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 규정에 따라 다른 국가 선수들은 히잡을 쓰고 출전할 수 있었다. ↩
- Fleischmann, 2003, p133. ↩
- Alayan and Shehadeh, 2021, p1057에 나오는 인터뷰 대상자. ↩
- Alayan and Shahadeh, 2021. ↩
- Macleod, 1991. ↩
- Jad, 2018. ↩
- 예컨대 www.usaid.gov/west-bank-and-gaza/news/mar-2022-palestinian-women-building-better-future을 보시오. ↩
- Richter-Devrou, 2018. ↩
- 이러한 프레임은 2000년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호(여성과 평화, 안보)로 더욱 강화됐다. ↩
- Cowper-Coles, 2018. ↩
- Marx, 1943. ↩
- Jad, 2018, p116. ↩
- Marshood, 2019. ↩
- Saba, 2023. ↩
- Moaveni, 2024, p16. ↩
- Moussa, 2022. ↩
- United Nations UN Palestine Commission, 1948. ↩
- Abdo, 2014. ↩
- Moaveni, 2024, p18. ↩
- Abdulhadi, 2019, p541. ↩
- Abdulhadi, 2019, p541. ↩
- Hawari, 2019. ↩
- Hawari, 2019. ↩
- Awadallah, 2024; Fayyad, 2024. ↩
- 여러 연구에 따르면, 폭력에 노출되거나 신체적·경제적·정신적 불안정 상태에 놓이는 것과 남녀 파트너 간 폭력이 증가하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Clark and others, 2010. ↩
- PCBS, 2019. ↩
- Šimonović, 2021. ↩
- Bdier, and others, 2022; Najjar, 2020. ↩
- Bdier and others, 2023. ↩
- McKernan, 2024. ↩
- 특히 트라마돌 같은 아편 계열 진통제의 사용이 증가했다. Progler, 2010; Massad and others, 2023. ↩
- Pappe, 2023. ↩
- Spivak, 1993, p93. ↩
- Socialist Worker, 2010에서 재인용. ↩
- Hawari, 2019. ↩
- MENA Solidarity Network, 2020. ↩
- Saba, 2023. ↩
- Shalash, 2024. ↩
- Nabulsy, 2018, p9. ↩
- Gadzo and Jnena, 2018. ↩
- Nabusy, 2018, p12. ↩
- Alexander, 2022. ↩
- Asaad, 2020, chapter 6. ↩
- 더 자세한 분석으로는 Alexander, 2002를 보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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