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교수의 알튀세르주의
헌신적이고 중요한 사회운동 단체인 사회진보연대와 그 유관 청년단체인 전국학생행진은 마르크스주의가 이데올로기 이론이 없거나 매우 취약하다고 뜻밖의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 이론의 이러한 부재 또는 취약성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것, 공산당들이 개혁주의 정당으로 전락한 것, 노동계급 속에서 유의미한 혁명적 상황이 출현하지 못한 것 등)를 낳은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 이론이 취약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당/국가 형태의 맑스주의”도 파산했음이 분명하다고 본다. 이런 주장은 윤소영 교수의 알튀세르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강동훈 동지가 윤소영 교수의 사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살펴본다.
1. 알튀세르의 작업과 그 영향
알튀세르가 시도한 이론적 작업의 핵심 문제의식은 마르크스주의를 환원론·숙명론으로 끝나게 만들 듯한 요소 일체를 마르크스주의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1950년대에 정통 공산주의 운동은 두 가지 중대한 타격을 받았다. 하나는 1956년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공격하는 비밀 연설을 한 것이고, 또 하나는 소련 군대가 헝가리 혁명을 분쇄한 것이었다. 서유럽 공산당들은 소련의 침공을 지지했고, 이에 반발한 많은 당원들이 공산당을 떠났다. 새롭게 등장한 신좌파는 스탈린주의의 경제 환원론에서 벗어난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했다. 신좌파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과 루카치의 초기 저작에서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적극적 창조자임을 주장한 이론, 즉 ‘헤겔적 마르크스주의’(또는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발견했다. 프랑스 공산당원이던 알튀세르는 신좌파의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면서도 경제 환원론적인 스탈린주의를 새롭게 일신하고자 했다.
경제 환원론은 상부구조, 즉 비경제적 사회 현상을 경제적 토대의 자연스런 결과나 표현으로 본다. 생산관계나 상부구조가 생산력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뀐다고 보는 이런 경제 환원론은 제2인터내셔널과 스탈린주의의 실패에서 명백히 오류로 드러났다. 제2인터내셔널에서 이런 진화주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발전할 때까지 사회주의 조직을 신중하게 확대해 가면 된다는 개혁주의로 이어졌으며, 결국 1914년에 치욕적인 배신이라는 결말에 이르렀다.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경제 환원론은 산업 성장이 소련을 자연스럽게 ‘노동자 국가’에서 ‘사회주의’로 그리고 ‘공산주의’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주장으로 나타났다.
반면 ‘헤겔적 마르크스주의’는 알튀세르가 보기에 경제 환원론에 대한 이해할 만한 반발이긴 했지만 마르크스주의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분석 등)를 모두 날려버리는 해악적인 입장이었다. 그리고 알튀세르는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와 경제 환원론이 서로 정반대인 듯해도 실은 모두 헤겔적 편향 때문에 나타난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했다.
헤겔 철학은 역사를 절대이념의 자기 실현 과정으로 묘사한다. 알튀세르는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역사는 주체(노동계급)가 시초의 통일에서 출발해 자기 분열을 거쳐 소외된 인간 본질의 궁극적인 회복과 화해로 가는 여정으로 이해되는 반면, 경제 환원론에서 역사는 우월한 생산양식이 생산력 발전을 통해 자기 자신을 관철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고 주장했다. 주체만 다를 뿐 그 진행 과정은 둘 다 헤겔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알튀세르는 이 두 경향이 정치와 이데올로기, 이론적 논리의 유효성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환원론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1) 과잉결정 알튀세르는 역사유물론을 재구성함으로써 사회 이론을 혁신하고자 했다. 그는 사회가 서로 구별되는 여러 요소들(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이론적인 것 등)로 이뤄져 있는 복합적 실체라고 주장했다. 각자 자신의 유효성과 독자성을 갖고 있는 이 요소들은 사회의 전체 구조에 기여하고 전체 구조는 개별 요소 자체의 발전 조건을 제공한다. 이들 요소는 서로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다. 다시 말해, 각 요소는 다른 요소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다. 사회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결합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알튀세르는 ‘과잉결정’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과잉결정은 “모든 것은 그 밖의 것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처럼 지배적 요소는 바뀔 수 있지만, 오직 경제만이 “최종심에서 결정”적이다. 경제는 간접적으로만, 즉 사회에서 어떤 요소가 지배적 층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다른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만 작용한다.
물론 여기에 그친다면 마르크스주의는 부르주아 사회학의 다원주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이 요소들에 위계를 도입하는 한편, 어떤 때는 정치적인 것이 지배적이고 다른 때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지배적이라는 식으로 지배력이 변하는 구조를 상정했다.그러나 알튀세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종심급’이라는 고독한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최종심에서 결정”이라는 개념을 경제가 순수한 형태로 사회 모순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곧,
경제적 변증법은 결코 순수 상태에선 움직이지 않는다. 상부구조라는 이 심급들이 작업을 마치고 제각기 흩어져 버리거나, 아니면 때가 됐다고 경제 폐하께서 변증법의 왕도를 따라 나아가시도록 하기 위해서 순수 현상으로서 사라지는 것을 역사 속에선 결코 찾아볼 수 없다.
4 마르크스가 《프랑스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내전》 등의 역사 저작에서 보여 주듯이 뛰어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의 종합 국면으로 분석했다.
물론 이것은 맞는 말이다. 엥겔스가 “최종심에서 결정”이라는 주장을 처음으로 한 목적이 이런 속류 결정론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5 그러나 그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역사유물론을 제대로 적용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론화하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마르크스 자신도 마르크스주의 변증법과 헤겔 변증법 사이의 단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알튀세르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알튀세르가 보기에 헤겔 변증법은 모든 것을 단순한 모순으로 환원한다. 그래서 헤겔 변증법을 따라 사회를 인식하다 보니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 환원론으로 빠져버렸다. 이제는 과잉결정 개념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을 근본적으로 다시 인식해야 한다.
알튀세르는 레닌의 분석, 특히 1917년 혁명기의 저작들을 높이 평가했다.6 알튀세르는 사회적 총체성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상호 전환될 수 없는 다양한 요소들로 이뤄진 사회라는 생각을 살리고자 한다. 부르주아 사회과학처럼 다원주의로 후퇴하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많은 후계자들이 모든 형태의 ‘결정’ — ‘최종심급’에서조차 — 개념과 결별하고, 따라서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거부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연 알튀세르가 과잉결정 개념을 도입해, 전에 마르크스가 주장한 ‘토대와 상부구조’의 개념보다 더 뛰어난 인식을 제공했는가? 알튀세르는 “최종심급의 고독한 시간이 오지 않는다”고 해, 결정 개념을 사실상 포기해 버렸다. 그가 ‘최종심에서 결정’이라는 개념을 계속 유지한다면 (간접적이긴 하지만) 경제 환원론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7 흥미로운 점은 이런 융합으로 알튀세르주의가 적대시했던 신좌파들의 주장과 유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 신좌파의 대표자이며 알튀세르주의를 타도하는 망치를 자임했던 에드워드 P 톰슨은 “‘경제적’ 요인들이 역사에서 어떠한 종류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 관점이나 혹은 그것들이 이데올로기적이거나 법률적인 것과 같은 다른 요인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고 하는 관점조차 거부한다.” 8 이런 주장은 토대와 상부구조를 융합하는 알튀세르주의의 결론과 흡사하다. 이런 융합을 우리는 윤소영 교수와 과천연구실의 분석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은 “토대를 상부구조와 융합”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갔다. 알튀세르는 “과잉결정론에 따라 상부구조를 경제의 ‘실존 조건’들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조건들은 ‘주요’ 모순(경제적 모순)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9 고 주장했다.
이제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이 내는 정치적 효과를 살펴보자. 우선, 이 개념은 소련을 비롯한 소위 ‘현실 사회주의’를 설명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정치와 이데올로기 등 상부구조가 경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라는 주장은 스탈린주의 국가의 자본주의적 성격과 그 경제의 사회주의적 성격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소련 사회 분석에서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 에티엔느 발리바르는 샤를 베틀렘의 분석에 의존했는데, 베틀렘의 초기 저작 《소련의 계급투쟁》(The Class Struggle in the USSR)은 알튀세르의 과잉결정론에 의거해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스탈린주의의 오류는 볼셰비키의 이념 형성에서 ‘문화혁명’(이데올로기 투쟁)을 수행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며, ‘문화혁명’이 없었으므로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이 변질하는 과정을 단순히 지적인 역사로 설명하는 이런 ‘이데올로기 환원론’적 분석은 알튀세르와 베틀렘이 중국의 문화혁명에 매료돼 있었음을 반영한다. 이런 분석은 주의주의적이다. 베틀렘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낮은 생산력 발전 수준이 사회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결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당연히 그들의 이행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점은 아래에서 다시 논의하자.
알튀세르와 베틀렘에게 소련의 ‘자본주의적 국가·이데올로기’와 그들이 임의로 가정한 ‘사회주의적 경제’의 조합이 전혀 모순이 아니었듯이, 윤소영 교수는 ‘국가자본주의 경제’를 가진 것이 분명한 국가(예를 들면 중국)를 사회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윤소영 교수의 견해는 베틀렘의 후기 견해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아래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자.
과잉결정론의 두번째 영향은 ‘이론적 실천’으로 나타난다. 만일 사회가 각기 자율적인 여러 요소로 이뤄진 것이라면, 당과 운동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 이론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2) 이론적 실천
10 알튀세르에게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라는 점은 결코 의심할 수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는 진리였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지식은 그 실재 대상과 상응하기 때문에 진리’라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을 배격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지식과 실재 대상의 상응은 ‘경험주의’의 문제의식이라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노동계급(주체)이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통해 계급의식에 이른다는 주장이나, 허위의식에서 계급의식으로 발전한다는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발전한 의식을 일반화한 것이라는 주장(‘경험주의’의 문제의식)은 알튀세르가 피해야 할 결론이었다.
알튀세르의 핵심 테제 중 하나는 마르크스가 새로운 과학, 다시 말해 ‘역사과학’을 창시했다는 것이다.11 과학은 다른 실천들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세 가지 “계기”, 즉 원료와 생산과정과 특수한 생산물을 갖는다는 점에서 다른 실천과 공통점이 있다. 과학의 원료는 그 이전의 개념들(“일반성Ⅰ”)이며, 과학적 작업 과정은 자기의식적인 “문제틀”의 작동이고(“일반성Ⅱ”), 그 결과물은 개념들의 엄격한 체계(“일반성Ⅲ”)이다. 여기서 이론적 실천의 핵심은 “일반성Ⅱ”, 즉 알튀세르가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때 알튀세르는 “실재적 대상”과 과학의 원료·결과를 이루는 “지식의 대상”을 엄격히 구분한다. 예컨대 야옹 하고 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라는 개념이 이론적 실천의 원료이자 결과물이다. 1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튀세르는 과학이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독자적 실천이라고 규정했다. 과학이 여타의 사회적 실천, 즉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실천에 비해 자율성이 있지만 유사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천의 자율성은 사회의 여러 요소의 자율성과 짝을 이룬다.그렇다면, 과학과 마찬가지로 개념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이데올로기는 과학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알튀세르는 과학이 그 개방적인 문제의식 덕분에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체계를 가진 반면 이데올로기는 미리 정해진 질문에 정해진 답을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개입으로 만들어지는 반면 과학은 그 자체의 개방적 논리로 계속 발전해 나아갈 수 있다.
13 (강조는 알튀세르) 결국 알튀세르는 과학의 내재적인 기준, 즉 자체의 체계성 때문에 실재 세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알튀세르는 과학철학자 바슐라르와 스피노자 철학을 따라, 이론이 독자적 기능을 통해 자신의 체계를 완성해 가면서(특히 수학적 공식 작성) 과학적 지식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14 그리고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이론적 실천의 이론’(과학의 과학)으로 규정하면서 진리성의 보장을 자신이 새롭게 재구성한 유물변증법에 떠넘긴다. 15
그러나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첫째, 어떻게 과학을 통해 얻은 개념이 실재 세계에 대한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알튀세르의 해답은 간단하다. “과학이 일단 확실하게 구성·발전되면, 과학이 생산하는 지식을 ‘진짜’라고, 즉 지식이라고 선언하기 위해 바깥의 실천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론은 마르크스주의를 순전히 과학으로 규정하려다 마르크스주의를 관념론으로 만들어 버렸다. 알튀세르는 지식과 실재 세계의 상응을 거부함으로써 지식의 내재적 체계만이 참과 거짓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주장해 버린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론적 ‘실천’을 말하지만 실제로 이 실천이라는 말은 관념론을 가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과학이라고 주장되는 서로 다른 이론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어떤 답도 제시할 수 없다는 약점이 생긴다. 예를 들어, 노동자 운동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신고전파 경제학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이론을 검증하려는 순간 알튀세르가 ‘경험주의’라고 부른 오류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관념론과 연결된 또 다른 결정적 약점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발전에서 노동계급이 아무런 구실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론은 이전의 이론들에 대한 변형을 포함하는 고도로 전문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담한 엘리트주의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알튀세르는 이론적 실천의 정당성을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찾는다. 레닌은 이 책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노동계급 “외부로부터”, 즉 부르주아 지식인으로부터 왔다고 썼다. 그러나 “레닌 자신이 이후 이 말의 그릇된 성격을 인정했고 그와 더불어 잘못을 시인했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 사상사를 훑어보면 마르크스주의가 노동계급과 분리된 그 외부에서 발전했다는 주장을 분명히 논박할 수 있다.
셋째, 알튀세르는 이론적 실천의 자율성을 확고하게 옹호해서 공산당으로부터 지식인의 자율성을 주장했다. 그 나름의 강령과 전략에 따라 행동하는 당과 동떨진 채(이론이 자율적이라는 말은 거꾸로 당의 강령과 전략도 이론으로부터 자율적이라는 주장이 된다) 지식인은 이론적 실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당이 지식인에게 이론을 수정하라고 요구하거나 다른 실천에 참가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도 사라진다.
17 그러나 이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취해야 하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자신이 끝내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을 계속 당이 취한다면 당에서 나와 자신의 이론에 맞는 입장을 꾸준히 취하는 조직을 찾거나 그런 조직을 만드는 것이 지적·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 실천의 자율성은 공산당 노선을 알튀세르가 묵종하는 것을 정당화해 주었다. 알튀세르는 소련 군대가 동유럽의 혁명들을 박살내거나 1968년 5월 프랑스 총파업에서 프랑스 공산당이 파업 파괴자 구실을 한 것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서 당 노선을 묵종했다. 18
이론적 실천의 자율성이라는 주장은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자신의 정치적 실천을 합리화하는 데 이론을 실용적으로 이용해 온 것에 대한 이해할 만한 반발이었다. 알튀세르는 프랑스 공산당 중앙에게서 사상 검열을 받았던 불쾌한 경험이 있다.넷째, 알튀세르는 그 나름으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을 재확립하면서, 마르크스의 저작 전체를 재평가해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재구성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포함된 과학적 ‘문제틀’을 발견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징후적으로 읽는다.” 이런 “징후적 독해”가 필요한 이유는 마르크스 스스로 자신의 문제틀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그의 저작에 포함된 비과학적·이데올로기적 사고의 사례들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알튀세르는 ‘소외’라는 개념이 《자본론》의 문제틀 외부에 있는 전(前)과학적 개념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이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한 마르크스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는 유명한 알튀세르 주장의 근거다.
19 “마르크스의 서명이 있다고 모두 마르크스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순환론적이다. 마르크스의 저작을 징후적으로 읽으려면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문제틀’을 이미 인식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튀세르의 작업 전체가 마르크스와는 상관 없는 독단적 주장이라는 치명적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음을 보여 준다.
중장년 마르크스에게도 소외가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다는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반박(마르크스의 저작들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는)이 알튀세르에게는 마르크스에 대한 방어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르크스가 자기 이론의 의미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기 때문이다.20 을 제외하고 말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규정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소외론을 체계적으로 배격한다. 그런 다음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이데올로기론의 공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경제적 토대와는 독립적인 이데올로기론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더 나아가기 전에 알튀세르는 이론적 실천론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60년대 후반 저작들에서는 ‘이론적 실천의 이론’이 ‘이론주의적 편향’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시인하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최종심에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철학은 “이론(즉 과학)의 영역에서 정치를 대표하고, 정치의 영역에서 이론을 대표한다.” 이렇게 바뀐 그의 입장이 마르크스주의는 순전한 과학이라는 그의 입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분명하다. “자신들의 책상이 바리케이드로 바뀌었고 연구실이 연병장으로 변화되었다고 스스로 우쭐댈 수 있게 된 것”21 그가 이런 구별을 고집하는 이유는 지식인의 자율성을 옹호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이론에서 이론적 실천의 자율성은 핵심적 기반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주장이나, 마르크스주의가 노동계급의 세계관이므로 과학이라는 주장이나 모두 지식인이 노동계급의 규율에 종속돼야 한다는 것을 뜻하므로 알튀세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던 ‘이론적 실천의 이론’이라는 관점은 폐기됐다. 그렇다면 알튀세르는 스탈린주의가 주장했던 ‘두 개의 과학, 즉 부르주아지의 과학 대 프롤레타리아트의 과학’이라는 명제를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로 대체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러나 알튀세르는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별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별하는 새로운 방법은 제시하지 않은 채 독단론자처럼 말이다.3) 이데올로기의 불멸성
22 즉, 인간은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만 현실과 관계를 맺으며,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테두리를 제공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은 사실 인간이 자신의 존재조건과 맺는 관계가 아니라, 인간이 그 관계를 체험하는 방식을 표현한다. … 이데올로기 안에서 현실관계는 상상적 관계 속에, 즉 하나의 (보수주의적, 순응주의적, 개량주의적 혹은 혁명적) 의지 이상을, 게다가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희망이나 향수를 표현하는 관계 속에 어쩔 수 없이 둘러싸인다.23 이데올로기는 인간 자신이 주체이며 주변 상황을 장악하고 있고 현실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이 자율성과 자기충족성에 대한 환상을 갖도록 만들어, 실제로는 개인들을 생산관계에 복종시킨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도 있지만 이것도 현실에 대한 직접적 설명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알튀세르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이데올로기를 일종의 무의식으로 취급한다. 인간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호명을 받아 이러저러한 주체가 된다(또는 주체가 됐다고 상상하게 된다).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그의 사회관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알튀세르에게 사회는 다양한 요소의 복합적 통일체다. 이런 복합적 구조는 세계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여기서 스피노자 철학이 알튀세르의 작업과 관련된다. 알튀세르는 스피노자를 “역사이론과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에 관한 철학을 모두 제시한 세계 최초의 인간”이라고 부른다.
무의식이 없어질 수 없듯이 이데올로기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공산주의 사회라도 이데올로기가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사회의 복잡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이데올로기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엥겔스가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도약”하기라고 말한 것과 전혀 상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체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뒤집으면 결국 역사는 ‘주체 없는 과정’이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알튀세르의 ‘이론적 반(反)인간주의’다. 그리하여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주제가 인간이 아니라 생산관계라고 주장한다. 알튀세르에게 인간은 생산관계의 ‘담지자’(擔持者)일 뿐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곳곳에서 발견되는 소외론은 마르크스의 과학적 성과와는 대비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노동계급이 혁명을 통해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데올로기적 이데올로기론”인 셈이다.
24 그러나 이는 분명 오독(誤讀)이다. 분명 마르크스는 고정된 인간 본성이 없다고 주장했고,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에게 귀속된 특징들도 역사적일 뿐 보편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오해하는 것과 달리 마르크스주의에 인간 행위자에 대한 이론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이다. 인간은 자연을 변형하기 위해 자연에 의식적으로 작용을 가하는 특수한 종(種)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변형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특수한 사회관계의 총체 속에서 특수한 인간 본성이 결정된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에 의해 형성되지만, 또한 사회관계의 특수한 집합들을 유지하거나 변형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방식 속에서도 형성된다. 25
알튀세르는 이론적 반인간주의의 근거로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6번을 든다.26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더 살펴보자.)
알튀세르 사회관의 또 다른 약점은 구조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는 다른 구조주의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사회 구조에 대한 정태적 윤곽만을 제시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인간 행위자의 이론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윤소영 교수가 발리바르를 따라 스피노자 철학으로부터 새로운 ‘철학적 인간학’을 도입하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한편, ‘직접적인 것의 불투명성’은 알튀세르가 ‘경험주의’를 거부하고 이론적 실천의 자율성을 주장한 것과 연결된다. 알튀세르에게 과학과 이데올로기는 분명 상호배타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상상적’ 관계를 표현하는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의 복합적 통일체를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지식인들만이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알튀세르의 해답은 불만족스럽다. 이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다른 문제가 계속 남는다. 이데올로기론과 결합된 ‘이론적 실천’ 개념은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인간이 이데올로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면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입장에 따르면, 혁명은 이론적 실천 덕분에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지식인들의 일방적 지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론적 실천만이 진정한 혁명적 실천이다. 곧,
과학적[즉 이론적] 실천은 사실상 계급투쟁의 최고 형태, 진짜 파괴적인 유일한 원칙, 역사의 동력임이 확인되었는데, 다만 이 실천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공고화된 사회구성체로부터 자율적이라는 전제 위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허위의식이 아니다. 알튀세르는 생산관계들의 재생산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작용에 의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앞에서 살펴본, 토대와 상부구조의 ‘융합’은 그의 이런 인식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에는 그 나름의 물질적 기반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ISAs)이다. 학교·가족·교회·정당·노동조합 등이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대한 논의가 억압적 국가기구에 갇혀 있던 기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인식을 새롭게 넓힌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처럼 명백하게 비국가적 기구마저 국가기구에 포함시키는 이런 주장은 초좌파적 오류로 나타날 수도 있고(예를 들어 독립 노조 건설의 의미를 깎아내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가족과 교육제도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국가에 맞서는 투쟁과 동급으로 놓는 오류가 나타날 수도 있다.
28 될 수 있다. 스페인 공산당 서기장이던 산티아고 까리요가 그의 주요 저작 《유로코뮤니즘과 국가》에서 이런 전략을 지지하기 위해 알튀세르를 인용했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도 사실상 이런 전략을 취해,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폐기할 때 이에 맹렬히 반대하면서도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전화”를 주장했다. 이들의 이러한 중간주의적 정치전략은 그리스 마르크스주의자인 니코스 풀란차스가 주장한 바, 즉 “직접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즉 노동자위원회[소비에트-인용자]와 의회의 ‘접합’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29 우리는 이를 윤소영 교수의 이행론을 논할 때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알튀세르의 이런 분석은 “노동계급과 그 동맹 세력이 ‘우선’ 이 이념적 국가기구를 장악하면 자본주의 국가기구와 아무런 폭력적 대결을 하지 않고서도 정치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 정치 전략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손쉽게 활용”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선전주의로도 이어진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속박돼 있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준거적 용어틀 속에서만 작동하며, 자본의 지배에 항의하는 행위에서 자신의 형태를 재생산한다. 지식인들이 발전시킨 과학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식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이를 일소할 수는 없다. 곧,
과학은 “대중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형태의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 사회과학”의 지배를 받는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훈련”의 우선성이 인정돼야 한다. … 따라서 전사들을 훈련시켜 이들을 “과학적 인간들”로 만드는 작업이란 “결정적인 중간 고리”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었다.
4) 이데올로기주의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라 어떻게 알튀세르주의를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까?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의 정치학이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데 매우 적절한 비교인 듯하다.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학파는, 비록 대중정당에 더 깊이 관여하기는 했지만, 역시 처음에는 대학에서 활동했고, 그들 역시 여러 비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 — 마하, 베버, 신 칸트 학파 등 — 에게서 큰 영향을 받아 카우츠키의 통속 마르크스주의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으며, … 1차세계대전 말의 혁명 위기 중에 볼셰비즘과 사회민주주의라는 상반된 입장을 타협시켜 의회와 소비에트를 결합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면서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의 입장을 관념론보다는 ‘이데올로기주의’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 윤소영 교수는 이데올로기주의가 더 노골적인 듯하다.
2. 윤소영 교수의 작업 우리는 지금까지 알튀세르의 이론에 대해 개괄했다. 윤소영 교수와 과천연구실은 발리바르를 따라 알튀세르의 작업을 계승하면서 이를 좀더 체계화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윤소영 교수의 작업을 직접 살펴보자.
1) 계급 없는 계급투쟁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를 따라 윤소영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이데올로기론의 부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에게 이데올로기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와 당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으며, 이런 이론적 약점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나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쇠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알튀세르의 “계급투쟁의 우위성”이라는 개념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앞서 ‘이론적 실천’을 살펴보면서 말했듯이, 알튀세르는 자신의 이전 주장을 자기비판하면서 “계급투쟁의 우위성”이라는 명제를 거듭 사용한다. 이는 1960년대 말 이후 전 세계에서 투쟁이 대규모로 성장한 점, 알튀세르의 ‘이론주의적 편향’에 대한 반발이 심각하게 일어난 점, 알튀세르 자신이 중국의 문화혁명에 호감을 가지면서 마오쩌둥주의에 친밀감을 느낀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계급투쟁의 우위성”이라는 개념은 마오주의의 영향을 받은 주의주의로의 경도였다. “계급 없는 계급투쟁”이라는 주장이 이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곧,
알튀세르는 계급투쟁보다 먼저 존재하는 계급 개념을 비판하면서 계급투쟁 속에서 계급이 형성된다는 존재론적 테제를 제출했습니다. … 요컨대 계급 없는 계급투쟁이란 계급투쟁의 메커니즘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계급적 동일성들이 해체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 새로운 계급투쟁의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계급적 동일성들이 구성될 것입니다.엥겔스도 지적했듯이, 계급투쟁은 경제·정치·이데올로기의 영역들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윤소영 교수는 “정치의 타율성”이라는 용어를 써 정치는 상대적 자율성조차 없고 경제와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계급은 경제와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으로 형성되므로, 경제적 착취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은 노동자 대중일 뿐 계급이 아니라고 윤소영 교수는 주장한다. 자본가 계급의 경우에도, 경제적 투쟁의 결과 자본가 대중이 만들어질 뿐이지만 이들은 국가를 통해 계급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현실에서 자본가 계급의 형성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노동계급은 국가를 통해 형성될 수 없고 이데올로기 비판이 필요하다. 이런 비대칭적인 계급의 형성은 국가기구들의 기능 때문으로, 체제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 노동자들이 계급이 되지 못하게 만들어 대중 상태로 남겨둔다. 그렇다면, 투쟁 속에서 계급이 형성된다는 주장은 결국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이 형성된다는 것을 뜻하는 셈이다.
35 그러나 계급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 전에 계급이 존재했음을 뜻한다. 계급이 존재하기 전에 계급투쟁(이를 계급투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이 선행한다면 도대체 왜 이런 투쟁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36 그래서 캘리니코스가 알튀세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 것은 윤소영 교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이런 계급 개념이 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마르크스는 계급을 기본적으로 경제적 관계로 규정한다. 물론 계급은 계급투쟁이 벌어지면서 인식된다.[〈공산당 선언〉의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주장을] 1970년대 초에 알튀세르가 주장한 것처럼 “계급투쟁은 역사의 원동력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계급투쟁은 ‘설명자’(explanans)가 아니라 ‘피설명자’(explanandum)이다. 즉 그것은 설명을 제시해 주는 원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과제 중 하나는 계급투쟁의 객관적 결정요인들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생산관계와 상부구조가 변하는 역사의 큰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물론 상부구조나 생산관계도 생산력에 반작용하지만 역사의 최종 결정요인은 생산력 발전이 이뤄질 수 있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았다. 이런 ‘토대와 상부구조’ 개념을 거부하는 윤소영 교수는 알튀세르의 ‘다양하면서도 환원할 수 없는 요소들의 구조’라는 개념을 변형해서 사회에 두 개의 토대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토대(국가기구들)가 있다는 것이다.(반면 앞에서 봤듯이 정치는 타율적이다.) 곧,
경제적 착취와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평행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게 더 본질적이냐 하는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양자의 단순한 접합도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두 개는 각자 고유한 인과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의 인과성은 현실적 모순과 관련되는 것이고, 이데올로기의 인과성은 상징의 가상화와 관련되는 것이죠.
39 베버에 따르면, 새로운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뿌리내릴 토양을 제공한 것은 새로운 종교 이데올로기의 독립적이고 ‘비경제적인’ 발전이었다. 즉, 청교도주의가 자본주의의 원인이 됐다. 이는 윤소영 교수의 주장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의식이 경제적 조건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단호하게 반대했다. 곧,
사회에는 이처럼 서로 독립적이고 환원할 수 없으면서도 접합돼 있는 이데올로기적 토대와 경제적 토대가 있으므로, 생산양식(경제)과 주체화양식(이데올로기)의 접합으로 설명해야 사회의 재생산과 이행을 이해할 수 있다. 사회를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은 사실상 베버 류의 사회학으로 후퇴하는 것이다.경제적인 생산조건들의 물질적인 변화와, 인간이 그 속에서 이 갈등을 의식하고 투쟁으로 해결하게 되는 법적, 정치적, 종교적, 예술적, 혹은 철학적인 형태들, 간단히 말해서 이데올로기적인 형태들을 항상 구분해야 한다. … 오히려 이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 즉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현존하는 갈등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윤소영 교수는 서로 환원할 수 없는, 경제와 이데올로기라는 ‘두 토대’가 마르크스주의를 경제 환원론으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사실상 이데올로기 환원론으로 끝난다. 우선은, 경제적 관계가 계급을 형성하지 못하고 대중만을 생산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2) 변형된 생산양식
41 이것이 뜻하는 바는, 《자본론》이 자본에 대한 이론적 설명, 즉 자본주의 운동법칙 42 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착취의 조건, 형태, 메커니즘” 분석이라는 것이며, 결국 《자본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노동력과 임금에 대한 분석”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함의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이라는 발리바르의 테제를 이해해야 한다.
윤소영 교수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자본론》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면서 반드시 《자본》이라고 불러야 하며 또 그 저작이 ‘경제학 비판’이라는 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43 자본이 추상적 노동을 흡수해 계속 자기 증식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노동과정을 분석해야, 즉 추상적 노동과 대비되는 구체적 노동을 분석해야만 한다고 한다. 단적인 예를 들면, 윤소영 교수는 임금은 과학적으로는 ‘노동력의 가치’이겠지만, 현실에서도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한다. 곧,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상품에서 시작해서 화폐, 자본으로 설명해 가는 《자본론》의 “논리적 장(章)”을 다 버리자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가치법칙조차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로서 임금이란 부르주아지의 ‘기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노동력 개념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무지’ 또는 ‘오해’로 설명합니다. 알튀세르나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부재의 효과라고 할 대목입니다. …
임금을 일상적 가치[즉 노동력 가치 이하]로 환원하고 또 노동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것은 임노동 제도의 핵심을 유지하기 위한 부르주아들의 계급투쟁인 것입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스미스나 리카도 같은 과학적인 경제학자들조차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임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했기 때문에, 상품이 그 상품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량대로 교환된다는 고전적 노동가치론의 토대가 위협받았다. 그리고 노동가치론의 폐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잉여노동 착취에 대한 분석마저 없앨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임을 보여 줌으로써 상품이 가치대로 교환되면서도 자본가 계급이 잉여가치를 착취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45 이제 윤소영 교수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경제학 비판’이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즉, 친자본주의 경제학이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을 반영하는 학문이므로,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분석하고 그 경제정책의 함의를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비판한다는 것이다. 곧,
반면에 윤소영 교수에 따르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실천으로 ‘노동의 가치’를 노동자들에게 강제로 주는 것이다. 따라서 리카도가 임금을 ‘노동의 가치’라고 주장한 것은 ‘노동력의 가치’임을 인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를 경제학에서 대표했을 뿐이다.[국가 개입 일반과 구분되는] 경제정책을 이론화하는 케인스주의를 현대경제학이라고 부릅니다. 케인스주의는 단순한 개입주의가 아니라 경제적 방식의 개입주의로 특징지어지는 것이지요. 반면 고전경제학이라고 불리는 리카도주의에는 경제정책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카도주의는 단순한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라 때때로 비경제적 방식의 개입주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학 비판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가치’가 강제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자본가들이 고전적인 자유방임주의(리카도주의)에서 현대 자유주의(케인스주의)로 이데올로기를 바꾼 결과 자본가들의 경제학도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변화가 경제적 토대와 독립적이라는 점은 앞에서 말한 ‘두 개의 토대’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아래에서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이런 자본가들의 경제정책·이데올로기 변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구체적 역사 분석, 즉 ‘역사적 자본주의’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는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이 없으므로 뒤메닐과 아리기의 분석을 도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어떻게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노동의 가치’로 강제할 수 있는가, 또는 반대로 노동자들은 왜 임금을 ‘노동의 가치’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윤소영 교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선 생산관계 자체가 이를 받아들이게 한다. 생산관계 자체에서 나오는 “노동의 규율”, “고용의 불안정성”(산업예비군의 창출) 등이 결합돼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임노동 제도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국가기구가 개입하는데, 왜냐하면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드는 계급투쟁을 자본에 전적으로 맡겨두면 산업예비군이 모조리 굶어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임금이 오르고 착취가 위협받을 수 있다. 국가기구는 공공부조나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창출된 산업예비군을 죽이지 않고 관리해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해, 임금을 ‘노동의 가치’로서 받도록 강제한다.
48 고 주장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윤소영 교수가 채택한 생산양식 개념은 이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개념과 완전히 달라져,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포섭이라는 의미에서 생산양식” 49 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자들이 왜 자본가들이 강제하는 ‘노동의 가치로서 임금’을 순순히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다. 특히 윤소영 교수가 “노동력은 기계나 원료처럼 본래 상품으로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화폐 단위로 표현되는 노동시간으로 환원되는 데도 곤란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50 윤소영 교수가 내놓은 해답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소유자로서 노동자, 즉 노동력 상품에 대한 부르주아적 ‘소유권’의 확대 해석을 전제하는 것” 51 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부르주아적 소유권 개념을 적용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윤소영 교수는 현실의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라고 분석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기만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라고 비판하고, 대안으로 ‘노동력 상품에 대한 부르주아적 소유권의 확대 해석’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이것도 형태만 다를 뿐 마찬가지로 기만인 셈이다.
윤소영 교수의 이러한 추론은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토대와 상부구조를 융합시켰던 경향,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존재는 착취의 조건의 재생산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재생산은 생산과정 외부의 실천, 즉 법·정치·이데올로기의 기능에 의존한다”52 노동자들이 임노동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노동자들을 분열·경쟁시키는 자본가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엄밀한 의미에서 주당 노동시간 단축)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거나 일부 노동자들이 혜택을 보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자본가들은 변형시간근로제를 도입하고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잔업과 특근 등을 시켜 그들의 임금을 올려줄망정 일자리를 늘리지는 않는다. 이는 노동계급의 단결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53 이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도 자본가들의 계급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요구로서 노동자 운동이 잘못 채택하는 요구라고 윤소영 교수는 본다.
이리하여 윤소영 교수는 생산관계에서는 노동계급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본가들의 계급투쟁과 국가기구의 작용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따라서 계급 형성을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설명도 알튀세르의 ‘이론적 반인간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약점을 드러낸다. 첫째, 이러한 《자본론》 해석 또는 임금 분석을 거쳐 윤소영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반대한다.그러나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한 자본가들이 모든 개혁적 요구에 맞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윤소영 교수가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 저렴한 양질의 공공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노동자 운동이 요구하면 자본가들은 간접세를 늘려 그렇게 하자고 대응할 수도 있다. 집 있는 노동자들과 집 없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고 해서 공공주택 증설 요구를 내놓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서 살펴봤던 노동계급 이데올로기의 혁신, 즉 “‘맑스주의 사회과학’의 지배를 받는 이데올로기 창출”이라는 그의 문제의식을 볼 수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분석은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에 개입해 이행을 위한 요구를 내놓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윤소영 교수가 내놓은 대안은 “하루 6시간 노동제”나 “모든 노동자들의 정액 임금인상”으로 제시된다. (이에 더하여 사회진보연대는 “해고금지특별법”을 추가한다.)
둘째, 윤소영 교수가 발리바르를 따라 가치법칙을 계급투쟁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은 알튀세르의 다음 문제점을 재연하는 것이다.
《자본론》을 하나의 이데올로기 이론으로, 즉 자본주의적 운동법칙을 분석하는 이론이 아니라 생산 행위자들이 그 작용에 대해 기만당하는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주의’에 빠지게 되는 또 한 가지의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일단, 《자본론》을 인간의식이 기만당하는 이유에 관한 설명이라고 보게 되면 사회를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기가 쉬운 일인 것이다.
위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계급투쟁에 대한 마르크스의 설명은 윤소영 교수의 설명과 분명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그 자체를 직접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환상의 베일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만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치법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노동이 배분되는 형식 때문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상품 생산을 전제한다. 이것은 우선, 생산 과정이 독자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인 생산단위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마르크스는 생산단위들이 분열한 결과를 물신숭배론으로 설명하는데, 이에 따르면 노동생산물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교환됨으로써 인간들 간의 관계는 사물 간의 관계로 전도돼 나타난다.
가치법칙은 자본가들도 상품을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에 맞춰 생산하기 위한 경쟁으로 내몰며, 자본가들조차 가치법칙을 날씨 변화처럼 외부에서 주어진 요인으로 여기게 만든다. 물론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두번째 대분열, 즉 생산수단 소유자와 직접 생산자가 분열한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자본주의적 착취가 발생한다. 그런데 소유자와 직접 생산자 사이의 분리를 통해서만 노동생산물 전체가 상품 형태를 띠며, 결국 가치법칙이 사회 전체를 규정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가치법칙은 계급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계급과 계급투쟁이 존재하는 기본 조건이다.
셋째, 마르크스의 주장을 기만의 도입이라고 비판한 윤소영 교수는 물신숭배론을 거부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조건을 도입한다. 곧,
《자본》에서 전개되는 가치론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물신숭배론은 쉽게 말하자면 사회화의 본질을 사물과 사물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대체하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 즉 주체화양식을 사회적 관계에서 직접 도출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물신숭배론은 아주 중요한 이론적 곤란들을 갖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곤란은 물신숭배론적 주체는 결국 법적인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물신숭배론을 이데올로기론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이데올로기의 핵심을 주로 법 또는 법적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셈이죠.
56 게다가 앞에서 본 것처럼 윤소영 교수가 물신숭배론을 대신해 들여놓는 이데올로기 개념은 소유권이라는 법적 권리 아닌가. 물론 윤소영 교수는 소유권(그리고 곧 살펴보겠지만 이에 맞서는 ‘노동에 대한 권리’)이 단지 법적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물신숭배론도 법적 이데올로기로 협소하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물신숭배론과 소외론(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을 내세우며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에서 내쫓아버린)이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면 윤소영 교수처럼 생산관계 밖에서 이데올로기의 근거를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이처럼 윤소영 교수는 물신숭배론이 법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기각해 버린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통제나 실질적 점유가 법적 소유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57 윤소영 교수도 지적하듯이 물신숭배론은 생산관계에서 직접 도출될 수 있는데, 이는 ‘장점’이며 또한 의식을 경제적 토대에 조응하는 것으로 본 마르크스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윤소영 교수의 오해와 달리 물신숭배론은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본질인 착취를 어떻게 은폐하는지, 그리고 생산관계의 모순과 위기가 어떻게 그 환상의 베일을 찢어버리고 물신화한 의식을 파괴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넷째, 윤소영 교수의 입장은 결국 경제 구조 분석에서 알튀세르의 구조주의적 분석을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알튀세르의 구조주의는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것이 윤소영 교수에게는 생산양식 내에서는 결코 혁명의 주체가 형성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남게 됐다. 그럼에도 혁명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려면 결국 경제 구조 밖에서 혁명의 가능성이 나와야 한다. 윤소영 교수는 이를 ‘인권의 정치’로 제시한다.
3) 인권의 정치
58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소외론과 물신숭배론을 체계적으로 배격한 결과다. 따라서 소외론과 물신숭배론을 대체할 새로운 이데올로기에는 철학적 인간학의 논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앞서 분석한 생산양식 개념과 접합할 수 있는 철학적 인간학이 필요하다. 윤소영 교수는 발리바르를 따라 이것을 스피노자의 인간학에서 발견한다. 하지만 이미 살펴보았듯이 일찍이 알튀세르가 스피노자에 대한 친화성을 보인 바 있다. 곧,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생산양식에서 계급이 형성될 수 없다는 주장은 결국 별도의 주체화 양식을 필요로 하게 된다.발리바르가 해석하는 스피노자의 인간학은 능동과 수동, 지식과 무지, 이성과 가상, 욕망과 정념을 핵심 개념으로 해서 주체의 형성을 설명합니다. 능동과 지식과 이성과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은 주체로 형성됩니다. 이것을 발리바르는 주체화(subjectivation)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주체에는 수동과 무지와 가상과 정념이라는 측면도 있어요. 이것을 발리바르는 예속(subjection)이라고 부릅니다. … 이런 주체화와 예속이 바로 이데올로기 일반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스피노자는 정념이 소멸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정념은 양가적(兩價的) 정념인데, 예를 들어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희망과 공포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양가적 정념들은 정신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대안은 이성으로 정념을 치료하는 방법뿐이다. 이런 개념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 부합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결코 사라질 수 없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과학으로 치료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약간 변형시킨다. 즉, 이데올로기는 “상징의 가상화” 작용이라는 것이다. 어느 인간 집단에나 그 집단의 상징이 있게 마련인데, 개인은 그 상징을 개인화(가상화)하는 “교통관계”를 거치게 된다.
60 이라는 것이다. 윤소영 교수가 사숙한 발리바르는 프랑스 혁명 시기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분석하면서, ‘인권의 정치’의 핵심을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평등과 자유의 동일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를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로서 “평등-자유(egalibert) 명제”라고 부른다. 61 권리선언의 시민은 바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인 것이다. 권리선언이 나온 이래 현대 정치는 ‘인권의 정치’를 통해 사고되고 실천된다. 바로 이것에서 이데올로기의 반역 가능성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인권을 표상하는 보편적 상징이 갈등을 내포하므로 정치 이데올로기가 분화된다. 62 자본가들에게 자유는 결국 자본을 소유할 자유인데 여기에서 자본가들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가 나온다. 반면 노동자들의 자유는 ‘노동력 소유’의 자유인데 여기서 사회주의가 나온다. 또, 자본가들에게 평등은 자본 소유자들의 공동체인 민족 공동체의 구성으로 나아가는 반면 노동자들의 평등은 인민의 공동체인 노동자연합으로 분화된다. 곧,
이것이 이데올로기 일반의 개념이다. 이를 토대로 현대의 이데올로기를 살펴보자. 윤소영 교수는 현대의 이데올로기가 민족 형태를 띤다고 말한다. 즉, “근대적 민족국가의 구성으로 귀결되는 정치이데올로기의 형성”발리바르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의 특수한 보편화로 정의한다. 이 때문에 착취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적 지배에도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피지배계급이 지배이데올로기의 보편성, 즉 자유와 평등의 관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에 따라 집합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더 이상 기존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대항하여 반역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대 사회에서는 인권이라는 보편적 상징이 사회 전체에 적용된다. 그러나 이 보편적 상징은 두 계급에게 전혀 다르게 “가상화”된다. 피지배 계급이 보편적 상징인 인권을 그 개념의 논리적 결말까지 밀어붙이고(즉 “평등-자유 명제”), 이에 따라 대항할 때 반역이 가능하다. 이 때 인권의 정치가 내는 효과는 무엇인가? “‘계급의 정치’를 전화”시킨다는 것이다. 곧,
계급의 정치, 당의 정치를 뛰어넘어, 변화된 마르크스주의가 지향하는 정치적 입장은 다양한 진보적인 정치와의 연대와 교통일 것입니다. 진보적인 정치란 무엇인가, 특히 역사에서 진보란 무엇인가 등등의 문제는 철학적인 논의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그것은 계급적대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차이들과 갈등들의 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세계론적이고 인간학적인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5 그래서 이제는 인권의 정치 맥락에서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변형돼야 한다. 그 핵심 중 하나는 앞에서도 살펴봤던 노동권, 더 엄밀하게는 “노동에 대한 권리”다. 이것은 우리가 노동3권을 말할 때의 노동권이 아니다. 노동3권은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권리일 뿐이다. 반면 ‘노동에 대한 권리’는 훨씬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소유자가 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소유권이라면, 노동권은 노동자가 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 66 인 것이다.
여기서 계급 적대는 단순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제적 착취 관계로 협소하게 이해되고 있다. 반면 새로운 대안인 인권의 정치는 이전의 마르크스주의가 소홀히 다룬 여성권이나 환경권, 지식권 등을 포괄할 수 있고 전 인민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거대 담론이라는 장점이 있다. 인권의 정치는 마르크스주의를 혁신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 첫째, 발리바르가 주장한 ‘평등-자유 명제’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대립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만큼 더 ‘평등-자유 명제’는 급진적이다.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프랑스 대혁명 이래 ‘자유, 평등, 우애’의 요구가 차별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운동에 미친 영향은 정말 엄청난 것임은 분명하다. 그 영향은 아마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자유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없었던 이유는 법적·정치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도입했을지라도 그 사회적 토대에서 대다수 사람들을 부자유와 불평등 속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가 여전히 계급 사회로 남아 있기 때문에 전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는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이 자본가들의 혁명적 슬로건을 물려받아 자신의 것으로 쓸 수 있는가? 역사에서 노동자 운동은 이런 슬로건에 모순을 느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차티즘 운동은 처음에 급진적 민주주의로 시작했지만, 투쟁 과정에서 사회주의 주장을 펴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언어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848년의 혁명은 어떤 때는 1789년의 혁명 전통을, 또 어떤 때는 1793-1795년의 혁명 전통을 흉내내는 것 이상을 할 줄 몰랐다. 이렇듯, 새로운 언어를 배운 초보자는 이 새로운 언어를 항상 자신의 모국어로 다시 옮긴다. 그러나 모국어를 상기하지 않고 이 새 언어를 사용할 때만, 이 새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본연의 언어를 망각할 때에만, 이 초보자는 이 언어의 정신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으며 그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의인동맹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바꾸면서 슬로건도 “모든 사람들은 형제다”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바꾼 것은 부르주아 혁명의 슬로건에 갇힐 수 없다는 노동자 운동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표현한 것이었다.
윤소영 교수는 노동자가 곧 시민이라고 주장하고, 노동자가 아닌 시민은 노동자가 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아닌 시민이 많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바로 그 시민 중에 자신의 적인 자본가들을 발견한다.(마르크스는 세상에는 자신이 형제로 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바로 노동자가 아닌 시민을, 특히 자본가들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계급투쟁이고 ‘계급 정치’다. 계급투쟁은 마르크스가 비유했듯이 내전인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사회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는 윤소영 교수의 주장처럼 경제적 토대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그와 상응하는 관계에 있다. 자본가들이 자유주의·공화주의·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고 민족국가를 형성한 것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킬 뿐 아니라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다. 윤소영 교수는 케인스주의가 변화된 자본주의 경제 상황에 자본가들이 의식적으로 대응한 결과인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케인스주의가 경제적 토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69 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윤소영 교수가 마르크스주의를 결정론에서 구출하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다. 물론 노동자 혁명은 예정돼 있지 않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조야한 기계적 유물론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토대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얼마든지 결정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윤소영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셋째, 윤소영 교수는 혁명을 이처럼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라고 주장하지만,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결국은 이데올로기 환원론으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윤소영 교수 이론에서 혁명은 대중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일으킬 수 있다면 경제가 위기냐 아니냐에 관계 없이 가능하다. 풍자적으로 말해, 대중의 의지가 통일된다면 대중은 한꺼번에 침을 뱉어 지배자들을 빠뜨려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위기나 착취의 모순은 불필요해진다.
넷째, 인권의 정치 관점에서 보면,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노동에 대한 권리’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곧,
역사적 사회주의는 집단적 소유를 핵심적 이념으로 설정하고, 국가 소유나 협동조합 소유를 계획화나 ‘자주관리’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국가 소유나 협동조합 소유 같은 집단적 소유는 사적 소유의 일종일 뿐이어서 노동권과 같이 소유권에 대한 발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71 이제 이 점을 좀더 살펴보자.
윤소영 교수가 보기에 국유화는 자본주의적 소유권에 머무른 개념이다. 국유화에는 “노동자가 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노동에 대한 권리’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소영 교수는 자본주의 국가의 국유화와 노동자 국가에서 국유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의 국유화에서 노동자들의 통제력이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 혁명 이후에도 국유화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민주의자와 볼셰비키는 동일한 오류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4) 국가자본주의
72 다만 윤소영 교수가 베틀렘·샤방스를 따라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주장하는 ‘이행론’의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73
윤소영 교수는 베틀렘과 샤방스를 따라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된 시기나 그 원인·과정 등을 설명하는 데는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설명과 차이가 있지만, 이 설명이 소련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베틀렘과 샤방스는 소련에서 임노동 제도의 존재나 자본 간의 경쟁, 이윤율 저하 등을 분석해 내는 의미있는 결과를 보여 줬다. 여기서 이들의 분석을 자세히 살펴볼 지면은 없다.윤소영 교수는 노동자 혁명이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의 결합이라고 주장한다. 즉, 정치적 지배 변화와 사회적 구조 변화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행론은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윤소영 교수는 주장한다.
《선언》에서와 달리 《[프랑스] 내전》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을 분리할 수 없는 역사적 이행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치혁명의 핵심은 [《선언》에서 주장한] 계급동맹을 통한 세력관계의 역전이 아니라 자본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국가의 소멸을 뜻하고, 사회혁명의 핵심은 국유화가 아니라 자본의 소멸로서 사회화를 뜻합니다.
75 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를 좀 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 우선 레닌의 이행론에 대한 윤소영 교수의 설명을 들어 보자. 윤소영 교수에 따르면, 레닌은 러시아 혁명 초기에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 국가자본주의 건설을 추구했다. 전시공산주의 등을 거치면서 레닌은 새로운 이행론을 제시하는데, 바로 신경제정책(NEP)이었다. 신경제정책의 핵심은 “카우츠키의 단일 기업으로서 사회주의관”을 정정한 점이다. 즉, 국유화가 잘못된 노선이었다는 점을 레닌이 인정했다는 것이다. 윤소영 교수에게는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연합적 생산양식인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유화 형태가 아닌 사회화’의 결합이다. 곧,
이런 이행론을 《자본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윤소영 교수는 주장한다. 이행은 “[《공산주의 선언》에서 주장하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 국가자본주의가 아니라 연합적 생산양식”클라인은 국유화가 진정한 사회화가 아니었다고 자기비판하면서, 진정한 사회화는 노동자통제 아래 협동조합적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클라인이 말하는 협동조합적 소유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노동자연합의 공동소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77 결국 상품과 임노동이 부활하면서 소비에트는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국유화 형태가 아닌 사회화의 본질이 더 분명해졌다. 협동조합적 소유라는 것이다. 이제 인권의 정치에서 말하는 노동권(노동에 대한 권리) 개념도 더 분명해진다. 윤소영 교수에게 자본주의 국가의 것이든 노동자 국가의 것이든 국유화로는 노동자들에 의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오직 노동자 통제 하의 협동조합적 소유만이 “노동자가 노동을 통제”하는 노동권, 즉 ‘노동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소련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소비에트가 소멸하고 국가자본주의가 남은 이유는 볼셰비키에게 노동권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서도 “상품적 성격과 비상품적 성격, 임노동적 성격과 비임노동적 성격 사이의 투쟁과 모순”이 계속되는데, 볼셰비키 전략에는 자본주의적 ‘소유권’의 일부인 국유화 개념밖에 없었다. 레닌은 말년에 이를 정정하는 신경제정책을 제시했지만 그 시도는 스탈린의 강제 국유화로 끝나버렸고,윤소영 교수의 이런 설명은 첫째, 이데올로기 환원론이다. 이 점은 앞서 알튀세르·베틀렘에서 살펴보았듯이 러시아 혁명의 실패를 이데올로기의 역사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데서 드러난다.
78 (최근에 사회진보연대도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에서 파산 기업 국유화 요구를 반대했다.) 물론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자본주의 국가가 추진하는 국유화에 대해 아무런 환상이 없다. 거기에는 노동자 통제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므로 노동자 국가가 추진하는 국유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기업들이 대규모로 파산하는 경제 위기의 시기에 기업을 계속 운영하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돈을 지급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밖에 없다. 그리고 이 투쟁에서 승리한다면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급진적인 요구를 내놓는 투쟁에도 나설 것이다.
둘째, 윤소영 교수는 정세적으로 불가피한 것을 제외하면 국유화 일체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한다.79 윤소영 교수는 최원을 맞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셋째, 윤소영 교수는 국유화를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도 국가기구 파괴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듯하다. 곧 살펴보겠지만 윤소영 교수는 노동자 혁명과 국가 소멸을 주장하는 평의회 공산주의를 채택한다. 이에 반해, 최원 같은 발리바르 연구자들은 발리바르의 이론에서 출발해 평의회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발리바르를 곡해하는 것이라며 윤소영 교수를 비판한다.최원 씨는 자신이 주장하는 의회민주주의 노선의 근거를 발리바르의 글에서 찾지만, 그러나 그가 인용한 곳에서 발리바르는 직접민주주의(‘봉기’)와 의회민주주의(‘구성’)의 결합을 주장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문맥상 이런 결합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의 우위를 함의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찍이 알튀세르와 발리바르가 풀란차스의 입장인 “노동자 위원회[평의회]와 의회의 접합”에 동조한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인용문에서 보듯이 윤소영 교수는 이 주장을 오류라고 명시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직접민주주의에 발리바르의 강조점이 있다고 최원을 반박한다. 직접민주주의로서 노동자 평의회를 강조하는 것은 변혁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유로코뮤니즘 좌파의 전략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은 개혁주의의 길도 열어놓는 것이다.
넷째, 윤소영 교수의 주장에는 소비에트와 협동조합적 소유 사이의 모순이 있다. 평의회 공산주의 하에서는 소비에트가 전국적인 기관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분배를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소비에트의 결정과 협동조합의 결정이 다르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설령 소비에트가 생산·분배 문제에서 손을 뗀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국가 차원에서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모종의 시장경제 — 분할된 생산단위들이 자신의 생산물이 팔릴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생산해야 하는 — 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의 모순은 캘리니코스가 《파레콘》의 저자 마이크 앨버트를 따라 잘 설명했다. 곧,
어떤 노동자 통제 기업이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조직되지만 그 생산물을 판매하지 못한다고 치자.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파산을 피하려면 대체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기 임금을 깎고, 노동조건 악화와 노동강도 강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정서적·심리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매우 낯선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비용 절감 및 생산 증대 정책을 실행할 경영진을 고용하는 것이다. 반면 그 경영진 자신을 그 정책의 부정적 효과에서 보호하면서 말이다. 실제로는, 후자의 가능성이 아주 크다. 따라서 시장에는 노동인구를 두 집단으로 나누는 강한 압력이 존재한다. 두 집단이란 복종하는 다수와 결정을 내리는 소수다. 후자는 더 많은 소득과 권력을 향유하고, 자신들이 남들에게 강요할 비용 절감 정책의 부정적 효과에서 벗어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을 계획·통제하는 것뿐이다. 물론 이 과정은 소비에트 내에서 민주적 토론으로 결정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 국가에서 필요한 국유화·계획화가 아닌가.
82 이라고 말한다.
다섯째, 윤소영 교수는 소련 외의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즉, 중국과 동유럽 등지에서 모종의 사회주의 혁명이 있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동유럽에서는 어떤 혁명도 없었다. 단지 소련 군대가 주둔해 소련과 흡사한 사회체제를 세웠을 뿐이다. 윤소영 교수의 분석에 따르더라도 당시 소련 사회는 분명 국가자본주의다. 그런데 윤소영 교수는 “인민민주주의라는 용어는 2차 세계 전쟁 이후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동유럽의 몇몇 나라들에서의 혁명 과정을 가리키는 것”83 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전에는 중국이 사회주의였다는 말인가? 물론 윤소영 교수는 현재의 중국에 대해 어떤 환상도 없다. 미국 헤게모니가 중국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아리기의 주장에도 분명히 반대한다. 곧,
또한 윤소영 교수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1990년대 중국은 당시로서는 자본주의로 전환하는 과정”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은 이름만 공산당이지 마르크스주의와 인연을 끊은 지 이미 오래인데, 게다가 점차 민족주의화하는 경향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티베트와 대만의 독립 문제를 둘러싼 중국 공산당의 강경한 입장이 그것을 상징하지요.
85 됐다며 윤소영 교수는 마오를 감싼다. 물론 중국에서는 혁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해방 혁명이었지 노동자 혁명은 아니었다. 중국 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은 어떤 실질적 기여도 하지 못했으며, 윤소영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동자 통제는 중국에서는 애초부터 없었다. 따라서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됐다고 본다면 마오 시대 중국도 국가자본주의라고 보는 것이 일관된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마오가 대장정을 통해서 건설한 중국 공산당은 후안무치하게도 자본주의의 관리자로 변질”마오 시대의 중국 공산당을 공산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들이 자신들과 중국 국가에 대해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말했다는 것뿐이다.(심지어 아직도 말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들먹인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이나 단체를 평가할 때 언제나 그들의 말과 실천을 함께 봐야 한다. 단지 이데올로기적 미사여구로 그들을 평가한다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윤소영 교수의 모호한 입장은 사회진보연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사회진보연대는 최근의 티베트 항쟁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86 윤소영 교수가 분명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국유화 상태에서는 전문기술자나 관리자들이 새로운 권력을 가질 가능성을 크게 보는 듯하다. 이렇게 ‘지적 차이’를 사회의 주요 모순 중 하나로 보는 것은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 개념과 연관이 있다.
여섯째, 어떤 국유화든 노동자들의 통제를 벗어난다고 윤소영 교수가 주장하는 이유는 “지식 노동자” 또는 지식인과 일반 노동자들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가정하기 때문인 듯하다. 윤소영 교수는 인권의 정치에서 노동권과 지식권 그리고 여성권을 핵심적 권리라고 주장한다. 노동자 혁명 이후에도 “노동권으로 환원되지 않는 지식권”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5) “두 개의 중심”
윤소영 교수는 발리바르를 따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한두 마디를 따와 이론적 실천의 독립성을 마르크스주의 일반화의 핵심으로 격상시키면서도, 알튀세르의 입장에서 분명히 드러난 약점에 대해서는 모른 척한다.
우선, 윤소영 교수는 알튀세르가 ‘경험주의’를 비판하며 강조했던 실재 세계와 지식의 대상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번에서 찾고 있다. 곧,
마르크스가 1845년에 쓴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는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현실의 대상과 사고의 대상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현실의 대상과 사고의 대상을 혼동하는 관념론이었다고 비판하는 셈입니다.
88 사실,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은 오히려 포이에르바하의 기계적 유물론의 오류를 전형적으로 반복한다. 이론적 실천의 자율성은 인간이 세계를 능동적으로 변형시키며 그 과정에서 세계와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변형시킨다는 실천 개념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이론적 실천이라는 “관조의 형식”을 들여놓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의 대상과 사고의 대상의 엄격한 구별을 유물론의 제1명제로 끌어올려 놓은 다음, 윤소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완전한 오독(誤讀)이다. 물론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번은 관념론이 현실적·감성적 행위(인간 활동, 즉 실천)를 알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테제는 포이에르바하로 대표되는 기계적 유물론이 사유 객체들(지식의 대상)과 구별되는 감성적 객체들(현실의 대상)을 추구하지만 이를 관조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결국 이론적 태도만을 진정한 인간적 태도로 보는 관념론으로 빠지게 된다고 주장한다.두번째 명제는 주체가 그 자신의 외부의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주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성에 따라서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 사고를 가리켜서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합리적 사고를 통해서 현실의 대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엥겔스와 레닌이 말하는 유물론적 철학의 두번째 명제입니다.
90 이 확인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알튀세르는 실재 세계와 과학적 개념의 직접적 연관성을 끊어버렸다. 물론 윤소영 교수는 이를 잘 알고 있다. 위의 주장을 편 바로 다음에 민중가요를 예로 들면서 “현실의 구체와 사고의 구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PD적인 노래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사고의 구체를 현실의 구체와 혼동하는 관념론적 발상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지요” 91 하고도 말한다. 게다가 윤소영 교수는 알튀세르를 따라 ‘이데올로기의 불멸성’을 받아들이는데도 “주체가 그 자신의 외부의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유물론의 제2명제라고 주장해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92
여기서 윤소영 교수는 문제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알튀세르에게서도 현실의 대상과 사고의 대상이 일치해 실천(이론적 실천이 아니다)을 통해 진리가 입증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93 과 과학의 내재적 기준을 수학화에서 찾았던 것을 윤소영 교수가 굉장히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도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 개념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반영한다. 곧,
알튀세르가 바슐라르와 스피노자를 따라 물리학을 과학의 일반적 모델로 간주한 것뒤메닐은 이윤율의 운동을 분석하기 위해서 주로 통계학적이고 경험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저는 좀더 수학적이고 구조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뒤메닐의 분석에 수학을 도입하고자 하는 윤소영 교수의 시도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지금으로서는, 알튀세르가 과학을 이론적 실천이라고 주장하는 관점에서 보면 윤소영 교수가 과학적 모형을 설명하면서 물리학과 미적분 방정식을 열심히 설명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는 점만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96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사민당 지도부와 논쟁을 벌이면서, 당에는 이론적 중심과 정치적 중심이라는 두 개의 중심이 있는데 이 두 중심이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97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 정당들에 대립되는 특수한 당이 결코 아니다”라는 《공산주의 선언》의 유명한 문구도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정당에 소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따라서 당에 소속되지 않은 지식인 공산주의자들을 합리화하는 주장으로 제시된다.
이제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은 ‘두 개의 중심’이라는 과제로 격상된다.98 물론 《공산주의 선언》에서 독자적 혁명 정당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태도가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시대에 현대적 의미의 정당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또 마르크스의 실제 정치 활동은 독립된 혁명적 정당의 건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을 봐야 한다. 99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사회민주당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1879년에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자단속법에 직면해서 “리프크네히트가 제국의회에서 보인 시기상 적절하지 않은 나약한 태도”와 독일사회민주당 의원단이 비스마르크의 보호관세 정책을 지지한 기회주의 태도에 반대했다.100 그러나 이미 현존하는 노동자 정당들을 없애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최선의 방안은 당과 이론이 분리되는 것이다. 곧,
그러면 윤소영 교수는 왜 노동자 정당에서 지식인들이 자율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일까? 윤소영 교수에게 정당은 곧 통치를 위한 조직이다. 그래서 혁명 정당조차 혁명 후 권력을 장악하면 자신들의 통치를 영속화하려는 위험이 나타날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당은 당의 강령 또는 정치노선을 가리키고, 이론이란 인텔리들의 이론적인 작업을 뜻하는 것일 텐데, 이런 당과 이론의 분리가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의해 어떻게 근거지어질 수 있을까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발리바르는 … 당의 강령 또는 정치노선으로서의 계급투쟁 이론과 그런 강령이나 정치노선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말하자면 과학적인 분석으로서 계급투쟁 이론을 분리하고자 합니다.
이런 문제의식, 즉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노동자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봤다. 이것은 분명 지식인을 특화하는 엘리트주의이고,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론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102 하고 쓴다. 역사적 타협이 이뤄졌다는 것 빼고는 왜 ‘평의회 운동’이 쇠퇴했는지 아무 설명도 없다. 평의회 운동은 왜 역사적 타협을 막을 수 없었는지,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역사적 타협에 맞서 어떻게 싸웠으며 왜 실패했는지, 평의회 운동은 노동자 투쟁과 어떤 관계를 맺었고 구체적 실천에서 어떤 약점을 드러내 쇠퇴했는지를 우리는 전혀 들을 수 없다. 윤소영 교수의 역사 서술은 모두 이런 식이다.
지식인 중심주의는 첫째, 이데올로기 중심의 역사 해석으로 나타난다. 윤소영 교수의 책들을 읽어보면 어디에나 역사에 대한 서술이 있는데, 거의 모두 이론적 논쟁의 역사뿐이다. 어떤 경제적·정치적 정세 속에서 그 이론과 요구들이 제시됐으며 구체적 실천은 어떠했는지, 그 이론들이 노동자 운동에 실제로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윤소영 교수는 1970년대 이탈리아 노조들의 경험을 평의회 운동의 사례로 제시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누가 어떤 주장을 했고 반대 주장은 누가 했다는 식의 담론 서술뿐이다. 그리고는 “기민당과의 민족 연대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식으로 역사적 타협이 구체화되면서, 평의회 운동은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둘째, 정당은 곧 통치를 위한 조직이라는 인식은 운동에 대한 정당의 지도를 거부하고 따라서 이탈리아 재건공산당(PRC)이나 프랑스 아탁에 대한 친화성으로 나타난다. 곧,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개 속에서 조직으로서의 정당을 의식으로서의 정당으로 대체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출현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목적은 통치가 아니라 사회운동에 있다는 것이고, 게다가 정당은 사회운동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운동으로 해소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04 반면 윤소영 교수는 사회진보연대를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만드는 것에는 극력 반대한다. 105 “[과천연구실 같은 의견그룹은] 단지 의견을 제시할 따름이지요. 이런 의견이 아무리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해도, 노동자 운동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어요.” 106 이렇게 과천연구실이 운동을 지도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사회진보연대가 활동가·대학원생네트워크나 사회포럼을 지향한다면, 과천연구실은 일체의 공식적·비공식적 관계를 청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07 라며 강력하게 개입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치적 의견 제시가 바로 운동에 대한 지도 아닌가?
PRC는 사회운동적 정당을 대표한다고 한다. ‘사회운동적 정당’이라는 개념은 반쯤 자율주의적 개념이다. 게다가 PRC는 지식인의 독립성을 옹호하는 데도 적당하다.셋째, 국유화와 혁명정당 거부는 평의회 공산주의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로 이어진다. 여기서 평의회 공산주의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에 대해 윤소영 교수가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이데올로기 역사를 검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선 지적할 점은, 윤소영 교수는 《국가와 혁명》에서 소비에트를 강조했다는 이유로 레닌이 평의회 공산주의 성향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레닌의 정치 활동 전체를 무시하는 윤소영 교수식 곡해다. 따라서 레닌이 3년 뒤 저작인 《“좌파” 공산주의 — 철부지 같은 혼란》에서 판네쿡 같은 평의회 공산주의자를 비판하는 것을 윤소영 교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레닌은 노동자 혁명에서 혁명정당과 소비에트 둘 다 필요하다고 주장했지 한 쪽을 다른 쪽과 대립시키는 형이상학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108 미국노총이 ‘대안자유무역협정’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사실상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미국노총이 그 사례라는 주장을 보면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과연 급진적 대안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윤소영 교수는 이탈리아 제1노총(CGIL)을 또 하나의 사회운동 노조로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전국적인 교섭과 정액임금인상제 109 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전국적 교섭권의 강조는 결국 노조 중앙의 권한이 커져야 하는 반면 현장성은 지양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윤소영 교수에게 민주노총이 곧 도입할 위원장 직선제는 매우 위험한 제도다. 이것은 사회운동적 성격을 줄이고 민주노총을 노동조합주의 —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만 반영하는 — 에 가둘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110 이처럼 엘리트주의와 노동자들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윤소영 교수가 주장하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간단히 말해 노동조합이 인권의 정치 관점에서 대안세계화 운동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민주노총이 사회운동적 노조로 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가 노동조합의 협소한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옳다. 그런데 윤소영 교수가 대안세계화 운동과 결합하는 사례로 지목하는 노조는 바로 미국노총(AFL-CIO)이다.111 윤소영 교수의 책 여기저기서 서울대와 프랑스의 그랑제콜 — 알튀세르가 평생 머물렀던 — 을 비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윤소영 교수는 입시경쟁이나 대학서열 문제가 진보주의자나 인민주의자(포퓰리스트)만 제기할 수 있는 쟁점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윤소영 교수 생각에 마르크스주의자는 지식의 성격이나 대학 교육의 구실을 비판해야 한다. 게다가 대학 평준화 주장은
넷째, 윤소영 교수의 지식인 중심주의는 대학 평준화 요구 반대로 나타난다.대학 교육의 초민족화라는 쟁점을 망각하고 있지요. 해외 유학이나 연수는 이미 오래된 현상인데, 서울대를 폐교한다면 그런 경향이 가속화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윤소영 교수는 지적 차이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지속될 ‘모순’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것을 반영할 뿐인 대학 서열화는 그에게 자본주의에서는 폐지될 수 없는 요구이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련된 요구도 아닌 것이다. 윤소영 교수처럼 지적 차이로 대학 서열화를 합리화하는 것은 사실 시험 점수로 지적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인데, 진정한 사회주의자라면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에 지적 차이가 있다는 점이 대학 서열이 불가피하다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 대학 평준화는 실제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한국의 거의 모든 학생이 대학 서열화로 고통받는데, 대학 교육의 구실을 비판한다며 대학 서열화를 반대하지 않는 것은 종파적이다. 결국 윤소영 교수의 입장은 자신의 지적 엘리트주의에 대한 구차한 변명 같다.
6) 금융 세계화
113 을 뜻한다. 윤소영 교수에 따르면, 이것이 마르크스의 과학적 결론이다. 114 이윤율 하락 경향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을 윤소영 교수는 헨리크 그로스만 115 의 이름을 따라 ‘그로스만적 계보’라고 부른다. 그런데 붕괴는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가들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이윤율 저하 경향을 저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에서 ‘자본의 추상화와 노동의 구체성’이라는 테제로부터 윤소영 교수에게 역사적 자본주의의 분석이 필요하게 된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윤소영 교수는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을 대부분 뒤메닐과 아리기에 의존한다. 간단히 말해서,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은 자본주의의 경제법칙, 즉 이윤율 하락 경향과 그 반작용 요인으로서 제도 사이의 상호작용을 뜻한다. 이윤율 하락 경향은 “자본주의적 축적에는 한계가 있고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것”이렇게 이윤율 저하 법칙과 제도의 반작용이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순환을 이루는데, 한 주기의 순환에는 제도 혁신을 이끄는 중심국이 있고 이 국가가 헤게모니를 갖는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영국 헤게모니의 시기는 20세기 초에 끝나고 그 뒤를 이은 미국 헤게모니의 시기가 등장했다. 그리고 제도의 반작용이 취약해질 때쯤 금융화 현상이 나타나 이윤율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리는데(소위 “벨 에포크”[좋은 시대라는 뜻]), 영국 헤게모니의 막바지를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시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헤게모니의 막바지인 현재는 금융 세계화 시대라고 한다. 미국 헤게모니는 법인혁명, 관리자혁명, 케인스혁명으로 이윤율을 끌어올렸다. 여기서 우리가 각 ‘혁명’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없다. 다만, 이 ‘혁명’들을 통해 도입된 제도들이 이윤율을 끌어올렸다고 주장한다는 점만 기억하자.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형성된 제도들이 해체되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새로운 금융화의 시기다.
116 윤소영 교수는 콘드라티예프 순환을 비과학적이라고 배척하지만, 그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는 듯하다. 117
이처럼 윤소영 교수는 아리기·뒤메닐의 분석을 따르면서도, 여기에 수학적 모형을 도입하려고 한다.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이론적 실천에 대한 집착이다. 윤소영 교수는 미적분을 동원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면서 이 분석에 꽤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수리화가 분석에 특별한 기여를 하는 듯하지 않다. 사실 윤소영 교수가 미적분을 동원해 도출해 낸 주요 결론은 그가 증명 없이 도입한 전제들에 이미 함의돼 있는 것들이다. 윤소영 교수는 이윤율 상승 시기에는 ‘로지스틱 함수’(S자형 성장 곡선)를 그리고 하강기에는 그 거울상을 붙여 일종의 사인곡선을 그린다. 그런데 왜 로지스틱 함수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사실, 수리화에 집착하는 것은 주류 경제학의 특징이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의 수리화가 그 과학성을 증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비전’이 잘못됐기 때문이다.119 윤소영 교수는 복잡한 수식을 써서 설명하는데 사실 그 내용은 간단하다. 벨 에포크, 즉 금융화로 인한 이윤율 상승 시점을 1981년으로 잡고 그 정점을 1997년으로 잡는다. 사인곡선이므로 파국 시점은 2013년이 된다. 그런데 물어야 할 것은 왜 정점을 1997년으로 잡느냐다. 2006년으로 잡으면 안 되는가? 시작점을 1974년으로 보면 안 되는가? 윤소영 교수의 말처럼 2012~13년에 대위기가 올지도 모르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점성술 같은 게 아니다. 그럼에도 윤소영 교수의 주장을 하나씩 살펴보자.
윤소영 교수는 자신의 수리적 모델에 따라 2012~13년에 대위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첫째, 윤소영 교수는 ‘자본의 추상화와 노동의 구체성’이 경제법칙론과 양립할 수 있는 우월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곧,
자본의 추상화와 노동의 구체성이라는 개념은 경제학 비판과 경제법칙론이 양립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트론티나 네그리에게는 경제법칙론이 없습니다. 그래서 브뤼노프가 트론티나 네그리를 반경제학, 즉 경제학 비판이 아니라 경제학에 대한 반대 또는 거부라고 비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윤소영 교수는 네그리가 왜 반경제학 태도를 취하는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다중의 역능’을 강조하거나 ‘이데올로기의 반역’을 우선시하면 경제 법칙은 불필요하다. 윤소영 교수는 경제 법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모종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독립적이라는 자신의 주장부터 우선 철회해야 할 것이다.
둘째, ‘역사적 자본주의’의 분석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개혁의 여지가 전혀 없다. 개혁의 가능성을 제공한 여러 제도들이 다 해체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베르티노티가 강조하는 것처럼 사민당이 아무리 개량주의를 실천하려고 해도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사민주의를 비롯한 일체의 개량주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런 견해는 사회보장제도가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정책의 일종이었다는 주장과 연결돼 있다. 곧,
사회보장은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그 불연속성, 분파화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보면 사회보장은 부르주아지의 새로운 전략으로서 근대적 자유주의인 것이고, 결국 노동권이 아니라 노동의 권리만을 인정함으로써 임노동 제약[constraint]을 완화하면서도 새로운 형태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123 이렇게 이데올로기만 보다 보면 사민주의를 자유주의와 동일시하는 견해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유물론자라면 사민주의와 자유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다르다는 점에 먼저 주목할 것이다.
따라서 윤소영 교수에 따르면 사민주의도 사실 자유주의의 일종인 것이다. 한편,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개혁주의와의 싸움이 무의미해졌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것은 개혁주의 정당과의 연립정부를 변호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실제로 윤소영 교수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이 민주좌파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것을 옹호한다.셋째,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혁의 여지가 없어졌다는 주장은 세계화로 국가의 힘이 크게 약화했다는 신자유주의적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과 연결되고 있다. 곧,
[개혁의 여지가 없어진 이유는] 초민족적인 금융자본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이것이 유효수요 정책을 통한 노동력 관리를 마비시켰던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의 주요 과제는 금융 세계화에 맞서는 것이지, 정부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운동은 의미가 없다. 곧,
126 (강조는 인용자)
금융세계화가 구조조정이나 노동의 신축성 또는 불안전성을 규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원인과 투쟁해야지 결과와 투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물론 결과와의 투쟁도 나름대로 중요한데, 그러나 원인에 대한 투쟁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금융 세계화 반대로만 맞추는 윤소영 교수의 입장은 이에 미달하는 대중운동을 모두 폄하하는 종파주의로 나타난다. 촛불항쟁도 예외가 아니다. 곧,
한마디만 해 두자면, ‘미국 소, 미친 소’나 ‘뇌 송송, 구멍 탁’ 같은 데마고기에 의해 동원되는 2008년 5월의 ‘불레셋적’(마르크스) 또는 ‘테코파적’(베르티노티) 촛불집회가 어떻게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반대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종파주의는 이론을 물신시하고 이데올로기로 운동을 평가하는 이데올로기주의의 필연적 결과다.
넷째,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을 거치면서 윤소영 교수는 제국주의 용어를 불분명하게 사용한다. 어떤 때는 금융 세계화에 대비되는 경제적 체계로, 어떤 때는 열강들 간의 군사적 경쟁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힐퍼딩에게서 차용한 ‘금융자본’ 개념 등을 사용해서 다소 혼란을 조장했다. 이런 개념들은 당시 현실과도 맞지 않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쓴 목적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군사적 경쟁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카우츠키의 주장을 반박하고, 기업들의 경제적 경쟁과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하기도 하는 국가 간 경쟁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보이기 위해 그 책을 썼다. 이와 반대로, 윤소영 교수는 금융 세계화 시대에는 열강들 간의 전쟁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곧,
금융세계화를 위한 통치성은 … 미국과 유럽의 공동 지배, 나아가 미국과 일본의 공동지배가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동 지배 때문에 중심부 국가와 중심부 국가 사이의 제국주의적인 전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라크 전쟁 직후에 윤소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캘리니코스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미국과 유럽이나 소련이나 중국의 세계 전쟁을 예고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에 유럽이나 소련이나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하지요.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의 아슈카르도 비슷한 주장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저는 고전적인 제국주의론을 논거로 하는 이런 주장이 별로 설득력이 없는 과도한 주장일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130 그러나 혼란은 남아 있다. 이런 혼란의 근원은 스탈린 치하 러시아(소련)를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하면서도 소련과 미국의 냉전을 레닌이 말한 제국주의 열강 간의 경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윤소영 교수는 크리스 하먼이 지적한 지속되는 좌파의 혼란에 아직도 빠져 있는 것이다. 곧,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을 대리한 그루지야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윤소영 교수의 입장이 조금은 변한 것 같다. 더 최근의 책에서는 중국을 제국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다.좌파들은 대부분 제국주의 개념을 서방 자본가 계급의 제3세계 착취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조용히 재(再)정의하고 레닌의 이론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몰이를 무시했으며 실천에서는 체제 전체를 카우츠키가 말한 초제국주의의 한 변형쯤으로 이해했다. 동시에 식민주의에 대한 얘기를 “신식민지”나 “반식민지”에 대한 얘기로 대체했을 뿐이다.
이렇게 불명확한 제국주의 개념을 가진 윤소영 교수가 전쟁에 반대해 평화주의로 기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곧,
전쟁의 부재라는 의미에서의 부정적·수동적 평화가 아니라 긍정적·능동적 의미에서의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주의는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군비 축소와 군사동맹 폐기를 주장한다.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였지만 전쟁의 근원을 자본주의 자체에서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평화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
3.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윤소영 교수 이론의 특징은 운동이나 사건을 이데올로기 중심으로 분석하는 이데올로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많은 PD계열 단체들도 이데올로기 중심적인데, 윤소영 교수는 그 나름의 독특한 이론과 분석을 갖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윤소영 교수의 주장이 마르크스주의 개념들을 극적으로 바꿔 버려 사실상 그 핵심을 포기한 것인데도 자신의 이론을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윤소영 교수의 이데올로기주의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가 모두 조야한 경제결정론이었다는 ‘상식’을 반대하기보다 그것에 동의하고 독립적인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상정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적합한 이데올로기나 슬로건을 운동이 채택해야만 지지할 수 있다는 종파주의와 지적 엘리트주의로 나타난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바람에 개혁주의·사민주의의 사회적 토대를 분석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자유주의의 일종으로 본다든가, NGO를 ‘신자유주의의 2중대’로 간주해 이들과 때때로 공동전선 활동을 할 필요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윤소영 교수의 신자유주의 분석은 개혁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사라졌다고 보아 더는 ‘개혁이냐 혁명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므로, 개혁주의 세력과 무원칙하게 타협할 위험도 안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부터 윤소영 교수는 사회진보연대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는 필시 심화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사회진보연대가 더 큰 구실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2012~13년의 파국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최근 자주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진보연대가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주장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더 분명하게 ‘PD적 정체성’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내용도 좀 더 분명히 제시하면서 노조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가 조직으로 사회진보연대를 변모시키는 데 나서고 있다. 또, 전국학생행진이 그동안 너무 학생회에 매몰되면서 ‘활동가 조직’으로서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이 실제로 얼마나 사회진보연대의 실천에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진보연대가 다른 PD 단체들에 비해 두드러진 점은 그들이 특정 부문 운동이나 노동조합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정세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려 노력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 나름의 이론적 기반 —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는 — 을 갖고 있는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그리고 사회진보연대의 주장은 종종 다른 PD 단체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가 윤소영 교수 이론의 대강을 알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보았듯이 대체로 부정적인 듯하다. 학문적 마오주의라고 할 만한 그의 이론은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을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주
- 슈 클레그, 〈루이 알뛰세의 유해〉,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 갈무리(1995), 260쪽. ↩
- 소위 “지배 내 구조” 혹은 “지배심을 갖는 구조” ↩
-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백의(1990), 130쪽. ↩
- “정치적, 법적, 철학적, 종교적, 문학적, 예술적인 것 등등의 발전은 경제적 발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서로에 대하여, 그리고 경제적 토대에 대하여 반작용합니다. 경제적 상황이 원인이고, 유일하게 활동적인 반면 다른 모든 것들이 단지 수동적인 결과인 것만은 아닙니다. 언제나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경제적 필연성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엥겔스, 《저작선집》 4권. ↩
- 알튀세르는 뛰어난 역사 분석의 사례로 트로츠키를 언급하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아마 《평가와 전망》, 《러시아혁명사》 같은 트로츠키의 역사 저작들을 읽은 적이 없을 것이다. ↩
-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윤소영, 〈인과론과 결정론〉,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2007), 38쪽을 참조하시오. 윤소영 교수는 여러 요소들이 독립적이어야만 ‘과잉결정’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
- 캘리니코스,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 열음사(1987), 83쪽. ↩
- 크리스 하먼, 〈토대와 상부구조〉,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 갈무리(1995), 101쪽. ↩
- 몰리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책갈피(1993), 85쪽의 각주 9번에서 재인용. ↩
- 엘리어트, 《알튀세르: 이론의 우회》, 새길(1992), 70쪽. ↩
- 알튀세르 식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실천 일반은 없으며 다양한 실천들이 있을 뿐이다. 실천 일반의 개념은 사회의 표현적 총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
- 알튀세르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프루동을 비판할 때 한 주장과 비교해 보라. “경제학자들의 재료는 인간들의 활동적인, 활동하고 있는 생활이다; 프루동 씨의 재료는 경제학자들의 교의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산 관계들 — 범주들은 생산 관계들의 이론적 표현일 뿐이다 — 의 역사적 운동을 추적하지 않는 순간부터, 이 범주들 속에서 현실적 관계들로부터 독립적인 이념들, 즉 스스로 생겨난 관념들만을 보려고 노력하는 순간부터, 순수 이성의 운동을 이 관념들의 원천으로 설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1991), 268-269쪽. ↩
- 알튀세르·발리바르, 《자본론 읽기》, 두레(1991), 73쪽. ↩
- 수학은 스피노자에게도 과학의 모델을 제공한 바 있다. 또한 스피노자는 “진리는 진리 자체의 기준이자 동시에 거짓의 기준”이라고 이미 쓴 바 있다. ↩
-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에게 지식의 현실 상응에 대한 ‘암묵적 해결책’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사고의 구조’와 ‘현실의 구조’가 일치한다는 점, 다시 말해 ‘이론적 실천’도 실천의 한 종류로서 다른 사회적 실천들과 상동성을 갖는다는 점이 이론의 진리성을 뒷받침해 준다고 알튀세르가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해결법과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에서 사용한 해결법은 별 차이가 없다.” 캘리니코스, 《바로 읽는 알뛰세》, 백의(1995), 110쪽. 이는 결국 ‘실천 일반’을 인정하는 것이며, 알튀세르가 애초에 부정하려고 한 ‘경험주의’적 해결책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
- 좀더 자세한 논의는 몰리뉴, 《마르크스주의와 당》, 북막스(2003), 71-76쪽을 참조하시오. ↩
-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돌베개(1993), 230-231쪽. ↩
- “그[1968년 5월] 이후 알튀세르의 평판은 아주 나빠졌다. 파리 라탱 지구의 건물 벽에 등장한 볼상 사나운 두 개의 벽낙서가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 ‘알튀세르는 무엇에 봉사하였는가?’, ‘알튀세르, 플레하노프, 똑같은 전투’” 엘리어트, 앞의 책, 358쪽. ↩
- 알튀세르는 나중에 《고타강령 비판》과 《바그너의 정치경제학 교과서에 관한 평주》만이 헤겔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지 않은 마르크스의 온전한 문제틀을 보여 주는 저작이라고 주장했다. ↩
- 엘리어트, 《알튀세르: 이론의 우회》, 새길(1992), 321쪽. ↩
- 물론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주장하는 것처럼 마르크스주의가 자체의 내재적 기준 때문에 과학인 것이 아니라 바로 국제 노동계급 혁명의 이론이며 노동계급의 세계관이기 때문에 과학인 것이다. 자세한 논의는 몰리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책갈피(1993), 25-30쪽과 하먼, 앞의 책, 126-141쪽을 참조하시오. ↩
-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백의(1990), 265쪽. ↩
- 알튀세르는 정신분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알튀세르가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정신병원에서 쓴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으로 가득하다. ↩
-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의 본질로 용해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각각의 개체 속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은 그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ensemble)이다.” 맑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저작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1991), 186쪽. ↩
-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하에서 만든다.”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저작선집》 3권, 박종철출판사(1992), 287쪽. ↩
- “알튀세르나 특히 발리바르는 과학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하는데, 세계론이나 인간학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가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26쪽. ↩
- 엘리어트, 앞의 책, 274쪽. ↩
- 캘리니코스,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 열음사(1987), 85쪽. ↩
- 캘리니코스, 앞의 책, 86쪽. ↩
- 엘리어트, 앞의 책, 273쪽. ↩
- 캘리니코스,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 열음사(1987), 86쪽. ↩
- 내가 보기에 윤소영 교수의 문제의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한 것은 <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재론)>에 실린 ‘보론: 재생산과 이행의 토픽’이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2007), 29-31쪽. 최근에는 그가 사회진보연대에 대한 개입을 늘리고 있는 듯한데, 이에 대해서는 윤소영, 《금융위기와 사회운동노조》, 공감(2008)에 실린 ‘종합토론’ 부분을 참고하시오. 윤소영 교수의 글은 매우 난해한 데다 모호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윤소영 교수의 주장을 살피려면 우선 강의록을 정리한 책들인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을 읽은 다음 다른 책들을 보면 좋을 것이다.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55쪽. 이것이 함의하는 정치적 결론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계급이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다. “농민이 종자나 비료나 농기계 같은 생산수단을 시장에서 구입하면서 실질적 포섭이 진전됩니다. … 자본에 의해 실질적으로 포섭된 농민은 자기착취 당하는 프롤레타리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덤프트럭 운전사나 동네 식당 주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농민과 마찬가지로 자본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포섭되어 자기착취 당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입니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01쪽. ↩
- “후기 알튀세르의 테제들에서 출발해서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을 개조할 때, 이데올로기 또는 정치이데올로기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부각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85쪽. 우리는 여기서 남한 좌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주장인 계급의식으로 계급이 나뉜다는 주장을 볼 수 있다. ↩
- “어떤 의미에서는 계급투쟁이 계급에 선행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집단들이 계급으로서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오직 그들이 충돌하여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인식할 때이기 때문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책갈피(1994), 108쪽. ↩
- 윤소영 교수는 발리바르를 따라 생산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자본가들의 권력 의지를 상정하는 듯하다. “경제라는 현실의 폭력과 이데올로기라는 상징의 폭력이 문제입니다. 발리바르는 니체의 경우와 구별되는 ‘대중의 사상가’로서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에게 고유한 권력 개념을 이 같은 폭력 이론으로부터 도출합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31쪽. ↩
-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 열음사(1987), 162-163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14쪽. ↩
- “[계급의 정의에] 이념적·정치적 기준을 도입하는 것은 …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을 생산관계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계급 관계를 권력 관계로 설명하는 베버 류의 사회학과 마르크스주의 간의 구분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캘리니코스,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 열음사(1987), 155쪽. ↩
-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중원문화사(1988), 7쪽. ↩
- “《자본》의 제목이 자본론일 수는 없고 또 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를 생략할 수도 없다는 말이지요.”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79쪽. ↩
- “사실 현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 목적이다.” 맑스, 《자본론》 1권, 비봉출판사(1996), 6쪽. ↩
- “논리적인 장이 다 틀린 것은 아니고 오히려 거기서 마르크스는 자본의 추상적 운동과 그 경제적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 자본의 추상화란 그것의 배후에 있는 계급투쟁, 요컨대 노동의 구체성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죠.”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73쪽. 윤소영 교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경제 저서의 계획을 애초의 6부작에서 변경한 것도 노동과정의 분석에 초점을 뒀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발리바르나 르페브르가 지적하는 것처럼 《자본》의 성립사 자체가 잉여가치에 대한 회계적 문제설정에서 잉여가치의 생산방법들로서 잉여노동의 강제적 착출의 문제설정으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37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42쪽. ↩
- “자유주의는 부르주아 정치이데올로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자유주의라는 정치이데올로기를 나름대로 이론적인 방식으로 대변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스미스와 리카도의 고전적 정치경제학입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74쪽. 마찬가지로 “《자본》은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 비판이고 거기에는 계급적 관점이 실체화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자본가계급의 경제학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경제학이라는 마르크스 자신의 말은 사실 호지스킨 같은 리카도적 사회주의자들을 잘못 표절한 셈이지요.”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11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96쪽. ↩
- “국가 제약[constraint]은 단순히 상품적 제약을 보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계급투쟁으로서 정치/정책 일반의 쟁점을 반영하는 비상품적 제약인 것입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34쪽. ↩
- 윤종희·박상현 외, 《알튀세르의 철학적 유산》, 공감(2008), 146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36쪽. ↩
- 우리는 이런 주장이 칼 폴라니의 주장과 흡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42쪽. ↩
- 최근 사회진보연대는 윤소영 교수의 이런 주장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현대 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의 ‘사회진보연대 10주년 기념토론회’ 발제문 〈세계 경제위기와 남한 민중운동의 과제〉와 윤소영, 〈마르크스의 임금론과 사회운동노조〉,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을 비교해서 보시오. ↩
- 여기에 마르크스가 노동일 단축은 주장했지만 노동주 단축을 주장한 바가 없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한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 50쪽을 참고하시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노동주 단축 요구는 노동자를 분열시키는데, 노동일 단축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노동주 단축이 변형시간근로제 등으로 그 요구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윤소영 교수의 비판은 노동일 단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
- 캘리니코스,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 열음사(1987), 129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98쪽. ↩
-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책갈피(1994), 124쪽. ↩
- 자세한 논의는 존 리즈, 〈《역사와 행위》에 대하여〉,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 갈무리(1995)를 참조하시오. ↩
- “[마르크스는] 수십 년의 과학적인 작업을 집약하는 《자본》에서조차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계급으로 조직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그에게 결국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부재했었기 때문입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85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81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36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37쪽. ↩
- 윤종희·박상현 외, 《알튀세르의 철학적 유산》, 공감(2008), 161쪽. ↩
- 윤종희·박상현 외, 《알튀세르의 철학적 유산》, 공감(2008), 160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34쪽. ↩
-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일반화됐다고 주장된다. 윤소영 교수가 자신의 작업을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338쪽. ↩
- 캘리니코스, 《평등》, 울력(2006), 40쪽. ↩
-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저작선집》 3권, 박종철출판사(1992), 287-288쪽. ↩
- 이제 과잉결정 개념은 바뀌게 된다. 과잉결정이란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해후하는 상황인 것이다. “혁명의 원인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입니다. 하나는 착취의 모순이고, 또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이지요.”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88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17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43쪽. ↩
-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정성진, <소련 사회의 성격: 마르크스주의적 설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한울(2006), 167-212쪽을 참조하시오. 한 가지 지적해 둘 것은 정성진 교수는 베틀렘과 샤방스가 소련을 1917년부터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고 본 반면, 윤소영 교수는 그들이 1936년부터로 규정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복원을 상징하는 사건은 1936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폐기다.” 베르나르 샤방스, 〈소련 사회 성격 논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공감(2002), 48쪽에 달린 윤소영 교수의 설명을 참조하시오. ↩
- 윤소영 교수는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이 군비 축적, 즉 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 축적 경쟁을 뜻한다고 희화화한다. 그러나 토니 클리프는 소련에 가해진 군비 경쟁이 소련 내에서 어떻게 자본주의적 축적 경쟁의 압력으로 나타났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121-122쪽.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46쪽.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235쪽. ↩
- 윤소영 교수에게 트로츠키는 결국 “서기장이 못 된 스탈린”일 뿐이다. 역으로 스탈린은 “서기장이 된 트로츠키”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국유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처럼 사회주의를 전일화된 국유화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신경제정책이 함의하는 레닌의 새로운 사회주의관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53쪽. 윤소영 교수는 레닌이 신경제정책을 ‘불가피한 후퇴’로 규정했다는 사실과 레닌보다 먼저 트로츠키가 신경제정책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
- 윤소영 교수는 국가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영국 노동당 좌파의 대안경제전략 같은 국유화 전략을 지지하는 것을 모순으로 본다. “제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몰라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국가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국유화에는 찬성하는 것이지요.”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100쪽. ↩
- 주된 쟁점은 발리바르가 국가소멸을 주장하는지와 이와 연결해 평의회 공산주의 노선이 타당한지이다. 이 논쟁은 최원 씨가 인터넷 사이트 ‘알라딘’에서 윤소영 교수의 책에 대해 쓴 서평들과 발리바르, 《대중들의 공포》, 도서출판b(2007)에 실린 역자 해제, 윤소영,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여러분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을 참조하시오. ↩
- 윤소영,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여러분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 54쪽. ↩
- 알렉스 캘리니코스, ‘신자유주의의 대안’, 〈맞불〉 40호, 2007년 4월 21일치.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65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324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47-248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343쪽. ↩
- “생산의 민주화와 국가의 민주화는 사회화나 통치성에서 지적 차이와 동시에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193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06쪽. ↩
- 맑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1991), 185쪽 참조.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07쪽. ↩
-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2번을 참조하시오.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09쪽. ↩
- “한 종류의 의식을 다른 종류의 의식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를 지배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또는 노동자의 의식과 존재가 필연적으로 불일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허위의식이든 계급의식이든 모든 의식은 존재와 일치할 수 없습니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79쪽. ↩
- “모든 과학의 원형은 물리과학입니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10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63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14-125쪽 참조. ↩
- “알튀세르의 가장 중요한 테제는 ‘이론과 당의 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80쪽. ↩
- 엥겔스가 베벨에게 보낸 편지를 참고하시오.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에서 만사를 지휘하고 있다고까지 상상하고 있지만, 당신도 나만큼 잘 알고 있듯이 우리는 당 내부의 업무에는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또 개입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견해로 볼 때 커다란 실책인 것을 가능한 한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도 이론적인 것에만 국한되었습니다.”(강조는 저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4권, 박종철출판사(1995), 458-459쪽. ↩
- 몰리뉴, 《마르크스주의와 당》, 북막스(2003), 50쪽. ↩
- 몰리뉴, 《마르크스주의와 당》, 북막스(2003), 30-31쪽. ↩
- “알튀세르는 혁명정당이 어떤 상황에서도 ‘통치정당’(party of government)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통치정당이 된다는 것은 국가와 정당의 결합을 의미하고, 이는 곧 부르주아 국가에 봉사한다는 것 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에 국가를 영속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윤종희·박상현 외, 《알튀세르의 철학적 유산》, 공감(2008), 157쪽. 알튀세르의 이런 주장이 노동자의힘이 주장하는 비제도정당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노동자의힘에 따르면 비제도정당으로서 혁명정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권력 수임을 위해 제도(의회나 소비에트)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수권적 지위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80-81쪽.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175쪽.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126쪽. ↩
- “베르티노티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공산주의자에 대한 정의를 확대합니다. 공산주의자는 공산당만이 아니라 노조나 사회운동에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저 같은 연구자도 공산주의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343쪽. ↩
- “96학번 이후 일부 활동가가 피디적 정체성을 상실한 채(아니면 아직 영유하지 못한 채), ‘정파조직’보다는 ‘사회포럼’을 지향하는 것은 아주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윤소영,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여러분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 57쪽.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2004), 226-227쪽. ↩
- 윤소영,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여러분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 58쪽. ↩
- “1995년에 스위니가 총재로 선출된 다음 미국노총이 사회운동노조로 방향을 선회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평가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 34쪽. ↩
- 이것이 사회진보연대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대안으로 정액임금인상을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
- 윤소영 교수의 주장은 이현대 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의 ‘사회진보연대 10주년 기념토론회’ 발제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 전국학생행진도 대학평준화에 소극적 반대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311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87쪽. ↩
- 윤소영 교수는 이런 경제법칙을 뒤메닐을 따라 ‘이윤율의 경제학’이라고 명명한다. ↩
- 그로스만은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재생산표식을 사용해서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주장했다. 특정한 조건에서 재생산표식을 꾸준히 계산하자 34년째에는 잉여가치가 완전히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바란·스위지, 《자본주의 발전 이론》, 화다(1986), 233-237쪽을 참조하시오. ↩
- “사실 고정자본의 로지스틱 성장 모형은 생태학에서 이용하는 개체군의 로지스틱 성장 모형과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개체군의 로지스틱 성장 모형을 통해서 고정자본의 성장 모형을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73쪽. 내가 생각하기에 왜 고정자본의 성장이 개체군 성장과 동일할지를 증명하지 않는다면 미적분을 동원한 설명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
-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공황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구조적 공황인지 순환적 공황인지는 알 수 없다. 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제도들로서는 도저히 공황을 극복할 수 없어 새로운 제도들을 도입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구조적 공황인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김수행,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 서울대학교출판부(2006), 9쪽. ↩
- 로버트 하일브로너·윌리엄 밀버그, 《비전을 상실한 경제학》, 필맥(2007).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185쪽을 참조하시오. 윤소영 교수는 2012년의 대위기가 진정으로 자본주의 붕괴를 뜻한다고 보는 것 같다. “미국 경제가 영국 경제를 대체하듯이 미국 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경제의 최종적 위기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45쪽. 순수한 경제 진화주의로 도약하기 때문에 약간은 당황스럽다.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91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40쪽.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46쪽. ↩
- 따라서 윤소영 교수에게 영국 노동당이 미국 민주당을 따르는 것은 같은 자유주의로서 당연한 일이다. ↩
- “공산주의 재건당과 금속연맹이 공동 정부 구성과 노사정 협상을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정세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 40쪽의 각주 53번. ↩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1996), 156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38쪽. ↩
-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공감(2008), 35쪽의 각주 37번. 같은 책에 실린 〈민주노총의 위기와 ‘6·10 촛불항쟁’〉도 참조하시오.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이념과 운동》, 공감(2004), 270쪽. ↩
-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이념과 운동》, 공감(2004), 270쪽. ↩
- “일본 민족주의와 중국 민족주의, 미·일 제국주의와 중국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에서 노무현 정부는 아주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2006), 226쪽. ↩
- 크리스 하먼, 〈제국주의 분석〉(Analysing Imperialism), International Socialism 99 (Summer 2003). ↩
- 윤소영, 〈전쟁의 원인과 주체〉,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2007), 11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