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화: 유기적 지식인들의 당을 건설하기 *
전통적 군사 용어로 간부cadre란 부대를 구축하는 중심이 될 수 있는 장교들의 중핵을 가리키는 말이다. 1 많은 군사 용어와 마찬가지로 “간부” 또한 양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의 혁명가들에게 차용됐다. 조직의 사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계급 전쟁에서 지도력과 방향을 제공할 수 있는 당 활동가 중핵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2
“간부화” 3 문제, 즉 혁명적 정치에 이끌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부들을 길러 내는 과제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하려면 정치 조직이 필수적이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핵심적 과제다. 가입을 받아서 혁명적 조직의 조직원 수를 늘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혁명적 사상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중핵이 없다면 그 조직은 선전 종파 이상으로 성장할 가망이 거의 없다. 게다가 혁명적 상황이 아닌 시기에는 소수만이 철저한 혁명적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사상이 사회의 우세한 관념과 긴장을 빚기 때문에, 그 중핵은 사회 전반의 압력에 순응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세계관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한 간부는 자생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높은 계급투쟁 수준이 그 과정을 촉진하고 수월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실제 투쟁 경험만으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직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노련한 혁명가가 저절로 배출되지는 않는다. 개별 투쟁이 약화되거나 패배하고, 새로운 문제와 쟁점이 제기되면 사회주의자들은 이론을 개발하고 새로운 설명을 제시하며 전술을 재검토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다. 아무리 최상의 투사라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마르크스주의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활동을 체계적 이론으로 뒷받침하고, 필요하다면 그 도구를 벼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단지 경험 있는 조직원들이 새 조직원의 성장을 돕는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조직원이 자신들의 이론과 실천을 개발하고 그 둘을 통합하기 위한 끊임없는 과정에 참여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간부화는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기계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없다. 10강으로 이뤄진 유익한 교육 과정을 개설한다고 해서 통조림 공장에서 통조림을 찍어 내듯이 간부를 양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간부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 분야를 넘나드는 의식적 노력과 세밀한 관심, 혁명적 당의 성격에 관한 이론적 이해가 필요하다.
볼셰비키의 유산
먼저,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가 간부화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게 유익할 것이다. 4 볼셰비키는 노동계급과 그 외 천대받는 집단들을 이끌고 일국 수준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역사상 유일한 조직으로 남아 있다. 비록 이후 스탈린의 반혁명에서 살아남지 못했지만, 그 혁명은 여전히 볼셰비키의 빛나는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건설하려는 당이 볼셰비키를 고스란히 복제해야 한다거나 우리가 마주할 구체적 문제가 볼셰비키와 똑같을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 재연극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볼셰비키가 해결하고자 한 몇몇 일반적 문제들은 볼셰비키가 활동한 사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관계와 자본주의하에서 생활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조건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노동계급 의식의 불균등성,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자본주의 국가와 대결할 필요성, 개혁주의로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 싸워야 할 필요성, 노동자 착취와 더 폭넓은 차별 형태들 사이의 관계 등이 바로 그런 일반적 문제들이다. 5
간부화에 관한 레닌의 이해에서 핵심은 혁명적 당이 (혁명적 봉기를 일으키는 시기를 제외하면) 노동계급 전체의 조직이 아니고 노동자들의 평균적·평상시 의식을 반영해서도 안 되며, 가장 앞서 있는 노동자들, 즉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단절하고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를 바라는 노동자들의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노동자들을 하나로 뭉침으로써 혁명적 당은 투쟁에 더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노동계급의 투쟁성과 자신감을 키우고, 혁명적인 세계관을 노동자들에게 더 확고하게 심어 주고, 더 많은 노동자들을 자신의 조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앞서 있는” 노동자들의 규모는 혁명적 상황이 되면 작은 웅덩이에서 바다처럼 불어날 수 있다. 그러면 혁명적 당은 노동자 대중의 활기와 힘을 자본주의 국가와 대결하는 데 집중시켜 자본주의 국가를 부스러뜨리고 노동계급의 지배를 구현하는 민주적 기관들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한 당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이해에 기초한 이론, 즉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가능성에 기초하여 노동자 투쟁의 역사적 교훈들을 집중시키고 적용하고자 하는 이론을 자신의 토대로 삼고 그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 6
당과 계급의 관계에 관한 위의 개괄은 둘 사이의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상호작용을 함축하지 않는다. 1920년대 말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초래한 대가 하나는 노동자들을 필연적인 승리로 진군시키는 획일적인 “레닌주의” 당에 대한 신화가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7 진실은 사뭇 달랐다.
1917년의 노동자 볼셰비키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지도적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전히 대부분 해외에 망명 중이었다. 8 수도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 지역당 지도부는 대부분 체포돼 있었고 잡혀가지 않은 고참 지도자들도 갑작스러운 반란의 분출에 직면해 마비돼 있었다. 9 그러나 그 반란은 지도자 없는 순전히 자생적인 반란이 아니었다. 노동자 투사들로 이뤄진 유의미한 층—많은 수가 혁명적 사회주의 훈련으로 단련된—이 현장에서 지도를 제공했다. 10 당시 국가 기관에 균열을 일으켜 차르 독재의 타도를 가능케 한 사람들 중에는 노동자 볼셰비키 간부들이 있었다. 11 레온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사》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한다.
노동자 볼셰비키 당원이자 그 시기 진정한 지도자 중 한 명인 카유로프는 카자크인 분견대가 보는 앞에서 기마 경찰의 채찍질에 쫓겨 시위대가 흩어지는 가운데 벌어진 일을 이렇게 전한다. ⋯ 카유로프는 몇몇 노동자들을 대동해 모자를 벗고 카자크인 분견대에게 가서 이렇게 호소했다. “카자크인 형제들이여, 평화로운 요구를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을 도와주십시오. 파라오[차르 경찰 — 추나라]가 우리 굶주린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이 의식적인 겸손과 모자를 벗는 예의를 보라. 얼마나 정확한 심리적 계산인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정말 탁월한 제스처 아닌가! 거리 전투와 혁명적 승리의 역사 전반이 이러한 임기응변으로 가득하다. ⋯ 몇 분 후 ⋯ 한 카자크인이 시위대가 보는 앞에서 한 경찰관을 칼로 처단하자 시위대는 그에게 만세를 불렀다. 12
카유로프는 페트로그라드의 예릭손 공장 노동자이자 1903년 볼셰비키가 생겨났을 때부터 볼셰비키 당원이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혁명을 이끌었다.” 13 트로츠키는 이렇게 수사적 물음을 던진다. “누가 2월 혁명을 이끌었는가?” 트로츠키는 이렇게 답한다. “대부분 레닌의 당에 의해 훈련된 의식 있고 단련된 노동자들이었다.” 그 훈련은 “마르크스주의의 방법”에 대한 이해, 1905년 혁명의 교훈을 포함한 “대중의 살아 있는 경험에서 끊임없이 자양분을 얻은”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14 그것이 승리의 충분조건은 아니었지만 볼셰비즘이 없었다면 1917년 2월 혁명으로 등장한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그것을 노동자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의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구축한 소비에트 민주주의로 대체한 10월 혁명의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는 살아 있는 전통에 의해 지도된 것이었고, 그 전통 속에서 레닌은 (1917년 볼셰비키에 입당하는 트로츠키와 함께) 혁명 과정을 이끄는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창조적 대화를 했다.
1917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레닌은 볼셰비키가 중앙집중적 조직이 돼야 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 수 있도록 응집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것은 1917년 10월 혁명이 승리하는 데서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즈음에 볼셰비키는 주요 산업 중심지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다수의 지지를 누렸다. 15 그러나 볼셰비키가 일사불란하고 획일적인 조직이었다는 스탈린주의의 신화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이다. 사실 당 기구는 재정 부족과 인력 부족에 허덕였고 주기적인 탄압으로 조직 활동이 커다란 차질을 빚었다. 여기에 더해 1917년에는 비교적 미숙한 사람들이 대거 입당한 데다, 당내에서는 격렬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16 그런 논쟁의 중요한 사례로서, 레닌은 혁명이 한창인 와중에 볼셰비키의 기존 노선, 즉 혁명이 자본주의에 맞선 사회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에 머물러야 한다는 노선과 단절했다. 17 훗날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레닌이 이를 둘러싼 당내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레닌이 당 기구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전위를 대표했기 때문이다. 레닌은 ⋯ 수많은 노동자들이 ⋯ 이제 자신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시에는 대중이 당보다 더 혁명적이었고, 당이 당 기구보다 더 혁명적이었다. ⋯ 레닌은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계급이 당에 미치는 영향과 당이 당 기구에 미치는 영향을 체현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18
그러나 레닌은 한 명의 개인이었다. 레닌의 주장을 이해하고 그 주장을 자신과 관계 맺은 노동자들의 관심과 투지에 비춰 달아 보고 그 결과에 반응할 수 있는 볼셰비키 간부층이 상당한 규모로 갖춰져 있지 못했다면, 기회는 유실됐을 것이다. 토니 클리프가 강조했듯이 상황이 끊임없이 변화함에도 “볼셰비키당이 활력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계급에 깊게 뿌리내린 진정한 대중적 노동자 당이었기 때문이다. 산업 노동계급이 250만 명 정도에 불과하고 당이 지하에서 활동해야 했던 상황에서 여러 해를 버텨 낸 수천 명의 간부 조직을 구축한 것은 놀라운 성취다.” 19 트로츠키가 지적하듯이, 혁명의 고양기에 당은 얼마든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지만, “간부를 훈련하는 과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혁명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20 당 건설은 대중의 자기 활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간부들의 당을 먼저 건설해 놓지 않으면, 어떤 혁명도 개혁주의적 관념을 몰아내거나 자본주의 국가와 대결해 그 국가를 부스러뜨릴 수 없다.
맥락 속에서 본 간부
1917년에 이르기까지 레닌은 간부 양성 문제에 관해 거듭 글을 썼다. 그 글들을 읽는 데서 주의할 것 하나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의 저술은 거의 모두 논쟁적이고, 사회주의 운동 내의 특정한 논쟁을 반영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로 이를 보이겠다.
1905년 혁명 전까지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 등에서 강조한 것은 “전문적인 혁명가들”의 응집력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네트워크는 전국적 신문으로 결속돼야 하고, 경찰 탄압을 허용해 이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아마추어리즘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레닌은 촉구했다.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의 협소한 경제 투쟁에 관여하는 것에 머무는 것(경제주의)이 아니라 천대와 차별이라는 더 광범한 정치 문제와 대결해야 한다고 레닌은 강조했다. 그리고 가장 전투적인 러시아 노동자들이 이미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고 레닌은 지적했다. 21 레닌은 이를 명료한 이론의 필요성과 연결지었다.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도 없다. 유행하는 기회주의 설교가, 가장 협소한 실천 활동에 골몰하기와 나란히 맞물려서 나타나는 요즘 시기에는 이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2 이어서 레닌은 이렇게 쓴다.
이론 문제에서 동요하고, 세계관이 협소하고, 대중의 자발성을 탓하며 자신의 태만을 정당화하는 ⋯ 자는 인민의 [대변자가 – 추나라] 아니라 노동조합 서기와 더 닮아 있다. 자신의 적수조차 경탄하게 할 거대하고 대담한 계획을 구상하지 못하고 자신의 전문 기술(정치 경찰에 맞서 싸우기)에 미숙하고 어설픈 사람은 혁명가가 아니라 한심한 아마추어다! 23
흔히들 이 시기의 레닌은 노동자들의 주도성을 무시한 채 학생과 같은 집단을 원천 삼아 지식인들로 이뤄진 정당을 건설하려 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실상은 사뭇 다르다. 첫째, 레닌은 혁명가 조직이 투쟁의 역동적인 동력이 될 훨씬 광범한 노동자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4 게다가 레닌은 그가 말한 전문적인 혁명가들을 노동자들 사이에서 충원할 필요성을 분명하게 제기했다. 25 그 문제에서 레닌은 노동자들을 업신여기는 태도 일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가장 시급한 첫째 과제는 노동계급 혁명가들이 지식인 출신 혁명가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당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의 훈련을 돕는 것이다. ⋯ 따라서 노동자들을 혁명가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관심을 주되게 집중시켜야 한다. ‘노동 대중’의 수준으로 내려가거나(경제주의자들의 바람처럼), ‘평균적 노동자’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은 우리의 과제가 결코 아니다. ⋯ 우리가 뒤처진 이유는 모든 유능한 노동자들을 전문 선동가, 조직가, 선전가, 문건 배포자 등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임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모든 유능한 노동자들을, 자기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는 조건에 배치하도록 노력하라. 그 노동자를 전문 선동가로 만들고 자신의 활동 영역을 개별 공장에서 산업 전반으로, 한 지역에서 전국으로 넓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 노동자가 자기 부문에서 경험과 수완을 쌓고, 시야를 넓히고 지식을 늘리고, 다른 지역과 다른 정당의 저명한 정치 지도자들을 면밀히 관찰하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가 그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려고 애쓰고, 노동계급이 처한 조건에 대한 지식과 사회주의적 신념의 신선함을 결합시킬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려고 애쓰게 해야 한다. 그럴 능력 없이는 탁월하게 훈련된 적들에 맞서 노동계급이 확고하게 투쟁을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26
훗날 레닌은 “볼셰비키 위원들”에 기초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그들은 흠잡을 데 없는 성품과 용기를 지닌 혁명가들이었다. 비밀 회의를 조직하고, 노동자들 속에서 선동하고, 거리 시위를 조율하고, 종종 수감과 시베리아 추방의 위험에 직면했다. 그러나 1905년 혁명이 분출하자, 이전 투쟁 국면에 적합한 방식으로 단련된 이 볼셰비키 위원들의 다수는 새로 각성한 대중보다 뒤처졌다. 그러자 레닌은 노동계급의 가장 앞서 나간 요소들을 조직에 끌어들이고 당내 보수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음모적 방식으로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시기가 지나간 것이다.
대중이 발산하는 혁명적 에너지의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잡으려면 ⋯ 모든 당 조직의 구성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렇다고 ⋯ 마르크스주의 진리에 대한 꾸준한 훈련과 체계적인 교육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 남들이 “교조적”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확신은 이제 혁명적 사건들의 전개로 더 확고해지고 있으며, 그러한 사건들이 도처에서 대중에게 객관적인 교훈을 제공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따라서 우리는 ⋯ 모호한 지식인들과 메마른 정신의 혁명가들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 우리는 거대한 혁명적 사건들이 주는 객관적 교훈을 이용해 ⋯ 우리의 오래된 ‘교조적인’ 교훈을 과거와 달리 학습 서클이 아니라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27
새로 급진화한 노동자들의 유입에 볼셰비즘이 매몰되지 않을 것이라는 레닌의 확신은, 볼셰비키 조직으로 구현된 볼셰비키의 이론이 혁명으로 입증됐고,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서서 회색의 이론을 살아 있는 현실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했다. 28 기존 간부 중에서 최상의 일부는 논쟁, 경험, 대중의 압력을 거쳐 새 전망으로 설득될 수 있었다.
1908년이 되자 반혁명이 득세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로부터의 이탈이 나타났다. 반란의 열기에 도취된 시절에 유행처럼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던 지식인 당원들이 대거 이탈한 반면,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분은 당에 남아 있다고 레닌은 지적했다. “볼셰비키 당은 … 기층 노동자들 자체에서 배출된 선진적 ‘지식인들’이 노동 대중을 지도하는 곧은 경로에 진입했다.” 29 그 후 같은 해에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혁명은 깊이 잠들어 있던 대중을 정치 생활로 끌어올렸다. 그런 만큼 혁명으로 종종 수많은 뜨내기와 “반짝 등장한 영웅들,” 초심자들이 표면으로 부상했고, 그중 많은 수가 수미일관한 세계관을 갖추지 못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런 세계관은 ⋯ 단지 몇 달간의 열광적 활동으로 ⋯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따라서 혁명으로 각성한 새로운 사회 계층, 새로운 집단, 신참 혁명가들 사이에서 옥석이 가려지는 과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
이 선별 과정을 위해서는 이론적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러시아의 “현 시기”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활동과 그것의 심화·확장을 결정짓는 요인은 이러저러한 개인의 정신 상태나 이러저러한 집단의 열의, 심지어 외부의 경찰 탄압(많은 사람들을 “실천 활동”에서 배제시킨)이라는 조건에 있지 않다. 현 시기는 오히려 러시아 전체의 객관적 상황에 달려 있는 시기다. 대중이 직접 혁명적 투쟁에 뛰어들어 새롭고 이례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소화하는 시기에는 혁명적 세계관, 즉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이론적 투쟁이 당면 시기의 좌우명이 돼야 한다. 30
1년 후 레닌은 “자유의 나날들” 동안 볼셰비키당에 매력을 느껴 입당한 사람들을 “재교육”해야 한다고 다시금 촉구했다.
그 사람들의 일부는 점차 노동계급의 활동에 이끌리고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나머지는 몇몇 구호만 암기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낡은 문구만 되풀이할 뿐, 혁명적 사회주의 전술의 오랜 원칙을 변화된 상황에 적용하지 못했다. 31
어떤 종류의 간부인가?
볼셰비키의 역사와,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국제적으로 일반화하려 한 레닌·트로츠키 지도하의 초기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의 역사는 상이한 시기에 간부를 훈련시키는 문제에 관해 방대하고 상세한 자료를 제공한다. 32 그러나 그 교훈들을 더 일반적인 이론적 틀로 정제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다른 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통찰을 살펴볼 것이다. 한 명은 헝가리 마르크스주의자 죄르지 루카치다. 이 글에서는 특히 그의 《레닌: 레닌 사상의 통일성에 관한 연구》(1924)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다른 한 명은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다. 이 글에서는 그가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쓴 《옥중수고》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트로츠키가 1917년 볼셰비키 입당 후 발전시킨 유산을 살펴봐야 한다.
트로츠키의 이중적 유산
1920년대 말 스탈린의 반혁명 이후 트로츠키는 온갖 신화와 왜곡에 맞서 볼셰비즘에서 최상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고 그 요소들을 보존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트로츠키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 전통은 거의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한 개인도 그들이 직면한 사회적·역사적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트로츠키와 그의 지지자들은 극심한 고립과 탄압을 겪었고(서방 자본주의 지지자들과 스탈린주의 국가자본주의 지지자들 모두에 의해) 이는 이중적 유산을 남겼다. 한편으로는 영감이 번뜩이는 뛰어난 저작들이 나왔다. 그러나 트로츠키 지지자들은 대개 노동계급에 미미한 영향력밖에 행사하지 못하고 분열주의에 절어 있는 무리들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그들의 많은 수는 자신들이 무기력한 만큼이나 자신들의 중요성을 과장해서 봤다. 33
클리프가 지적했듯이, 1930년대에 트로츠키는 자기 지지자들의 무리가 제1차세계대전 개전 무렵의 레닌 지지자들보다 더 강력하고 더 많다고 거듭 강조했다. 34 그러나 그러한 비교는 설득력이 없다. 1912년에 볼셰비키는 차르 치하에서 설립된 의회(두마)에 여섯 명의 의원이 있었고, 이들은 산업 노동자가 밀집한 선거구에서 선출됐다. 볼셰비키가 발행한 일간지 〈프라우다〉는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4만 ~ 6만 부가 유통됐다. 1914년에는 2,873개의 노동자 단체들이 〈프라우다〉의 재정에 기여했다. 35 반면 트로츠키가 동원할 수 있었던 세력은 훨씬 취약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었고, 노동계급 속에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지 못했다. 그럼에도 트로츠키는 1938년 제4인터내셔널의 창설을 선포했다. 이것은 당시 상황(특히, 거대한 사회 위기가 벌어지고 세계대전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파시즘이 부상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과제와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협소한 기반 사이의 격차를 메우려는 시도였다.
간부층을 형성하고 지도부를 구성한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사회 세력 균형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 터무니없는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터무니없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트로츠키는 이따금 이렇게 주장했다. “세계 정치 상황 전반은 노동계급 지도력의 역사적 위기를 주된 특징으로 한다.” 36 그러나 제4인터내셔널로 결집한 세력들은 그러한 지도력을 제공할 처지에 있지 못했다. 1930년대 트로츠키의 저작들은 간부를 “선발”하고 “교육”하라는 촉구로 넘쳐난다. 37 그러나 실제 노동자 투쟁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않는 “교육”으로는, 이론과 실천을 결합할 능력을 갖추고 일반론을 넘어 노동계급에게 지도를 제공할 수 있는 간부를 양성할 수 없다. 38
설상가상으로, 트로츠키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단말마에 이르렀고 서방 자본주의와 스탈린주의 관료 모두 붕괴 직전에 있다는 단기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 이어진 장기 호황에 비춰 보면 그 전망은 설득력이 없었다. 1940년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자객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트로츠키는 그 전망을 수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로츠키 사후 그의 전망은 정설 트로츠키주의로 화석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거기에 트로츠키의 명석함은 온데간데없었다. 39
루카치의 레닌
당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서 레닌이 한 기여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최초의 저작은 레닌이 사망한 1924년에 발표된 루카치의 《레닌: 레닌 사상의 통일성에 관한 연구》다.
레닌의 탁월함은 노동자 혁명을 향한, 많은 경우 표면화되지 않는 경향들을 포착하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사회적 존재”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그 이론을 당대의 쟁점들에 적용한 데 있었다고 루카치는 강조한다. 40 그에 따라 레닌은 루카치가 말한 “혁명의 현실성”을 자기 사상의 핵심으로 놓고 “모든 개별 일상적 문제들”을 반드시 “사회-역사적 전체와의 구체적인 연관 속에서” 평가하고 혁명의 가능성과 연결시켰다고 루카치는 지적한다. 41 볼셰비즘은 이러저러한 전장에서 특정 전술을 개발할 때 매우 유연했지만, 레닌은 일관되게 그 전술들을 더 광범한 혁명 전략에 종속시켰다. 즉, 전술들을 “결합하고 발전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이 권력 장악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42 볼셰비키의 전술적 유연성은 개혁주의 정당들의 무원칙한 유연성이나 기회주의와 다르다. 개혁주의 정당들에게는 전술이 그 자체로 목적이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강조했듯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사회 개혁과 사회 혁명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지만, 개혁주의자들에게 “최종 목표—그것이 무엇이든 간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그들에게는 운동이 전부다.” 43
레닌의 혁명적 방식은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힘을 동원해 당면 쟁점과 대결하고, 이론을 적용해 “전체 과정이라는 실재, 즉 사회 발전의 총체”를 이해하고, 이러한 “이론적 통찰을 실천으로” 발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44 루카치는 이렇게 설명한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순수’ 이론의 정반대가 아니라 ⋯ 모든 진정한 이론의 결실이자 ⋯ 이론이 ⋯ 실천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이다.” 45 이것은 교조주의로 빠져들거나 불변의 진리를 외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레닌 자신도 1917년 4월 자기 당의 전망을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이렇게 썼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 과정을 이루는 각 시기의 구체적 경제적·정치적 조건에 따라 수정될 수밖에 없는 일반적 과제를 가리킬 뿐인 “공식들”을 그저 암기하고 되풀이하는 것을 조롱하며 “우리의 이론은 교조가 아니라 행동 지침이다” 하고 늘 강조했다. 46
루카치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일반론에 머무른다면 최상의 이론적 훈련도 아무짝에 쓸모없다.” 47 루카치는 혁명적 당이 “충분한 이론적 명료함과 확고함”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동요할 때 혁명가들이 “일시적 고립”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동시에 혁명적 당은 유연하기도 해야 한다고 루카치는 강조했다. 그래야 대중의 투쟁에서 배우고, 그 투쟁 속에서 “대중 자신이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혁명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8
루카치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조직으로 뭉친 실제 혁명가들이 마주한 어마어마한, 심지어 버겁다는 생각마저 드는 도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혁명적 당과 그 당의 구성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가장 풍부하고 완전하게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사회를 총체적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데 이용하고, 그럼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실천의 지침으로 삼는 동시에, 그 실천에서 교훈을 이끌어 내 이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따라서 “조직은 이론과 실천의 매개”라고 루카치는 다른 글에서 썼다. 49
그러나 레닌과 볼셰비즘에 관한 루카치의 이해에는 한계도 있다. 때때로 루카치는 볼셰비키의 동질성과 응집력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중앙집권화돼 있고 규율 있는 조직이라는 모델을 볼셰비키의 실제 모습과 혼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실상은 더 뒤죽박죽이었다. 앞서 지적했지만, 루카치가 시사하는 바와 달리 볼셰비키 당원들이 언제나 “가장 엄격한 당 규율” 50 을 따른 것은 아니다. 1905년이나 1917년 초와 같은 중요한 순간에 볼셰비키가 언제나 루카치의 설명처럼 “투쟁하는 대중보다 한 발짝 앞서” 51 있었던 것도 아니다. 또, 어느 당이든 불완전한 인간들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볼셰비키를 “노동계급 의식의 구체적 현신”으로 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52 물론, 레닌을 연구한 책에서 루카치도 모든 당이 개인들에 의해 건설된다는 점을 짧게 지적한다. 그리고 효과적인 당을 건설하는 것은 “당과 계급의 유익한 상호작용이 당과 당원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되풀이되는(비록 그 방식은 달라도)” 과정이라고 간단히 언급한다. 53 그러나 루카치는 거기에서 멈춘다.
그람시와 유기적 지식인
그람시는 효과적인 혁명적 당의 재료가 될 혁명가들이 어떤 사람들이어야 하는가에 관해 더 풍부한 통찰을 제공한다. 54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은 “유기적 지식인”이다. 그 개념과 그 밖의 다른 개념들을 제시하는 《옥중수고》는 파시스트 교도소 교도관들의 감시 속에서 쓰인 것이다. 그래서 온갖 은어와 에두르는 말로 가득하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부딪히는 문제들에 관한 예리한 논의들이 사회·역사·문화에 관한 일반적인 단상으로 둔갑할 때가 많다. 유기적 지식인에 관한 논의도 예외가 아니다.
그람시는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지식인”이라고 지적한다. 가장 단순한 육체 노동조차 일정 수준의 “창조적 지적 활동”을 필요로 하고, 모든 사람이 일종의 지적 세계관을 갖고서 세계관의 지속과 변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55 그러나 사회를 운영할 야심을 가질 사회 계급(전자본주의 사회의 신흥 자본가 계급이나 오늘날의 노동계급)은 그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 계급은 자기 계급에 “동질성을 부여하고 경제뿐 아니라 사회·정치 분야에서도 그 계급의 사명을 자각시킬 수 있는” 인물들을 배출해야 한다. 56 기존의 “전통적 지식인”을 흡수하는 것도 그 과정의 일부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유기적 지식인의 창출 또한 필수 요건으로 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자기 계급 속에서 등장해 여전히 그 계급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식인을 뜻한다. 57
그람시는 노동계급이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을 만들어 내기 위해 ⋯ 대중이라는 요소의 ⋯ 지적 수준을 높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란 “대중 속에서 등장하면서도, 마치 빳빳한 고래수염으로 짠 코르셋의 심처럼 그들과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는” 지식인이다. 58 그람시는 이어서 이렇게 지적한다. “정당의 모든 당원이 지식인으로 간주돼야 한다는 말은 허울뿐이 되기 쉽지만 ⋯ 가장 ⋯ 정확한 말이기도 하다.” 물론, 당은 나름의 내부 구조와 지도 계층들이 있겠지만 당원들은 “지도하고 조직하는,” 따라서 “지적인” 기능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59
유기적 지식인의 형성은 노동자들을 투쟁에서 떼어내고 도서관으로 보내어 활동과 동떨어진 채 추상적으로 책 내용을 곱씹게 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러한 방식의 간부 양성이 갖는 한계는 그람시의 시대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볼셰비즘의 기초를 다지기 여러 해 전 정치 활동 초창기의 레닌은 당시 대부분의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랬듯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학습 모임을 꾸리려 했다. 그러한 모임에 참여한 한 노동자의 회고에 따르면 그곳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우주의 기원과 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칸트와 라플라스, 다윈, 라이엘 등의 이론을 알아야 한다”고 요구받았다. 레닌도 노동자들에게 《자본론》 구절을 들려주고 설명하곤 했는데, 그의 학생들은 훗날 그것이 다소 어려웠다고 시인했다. 닐 하딩은 이렇게 지적한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 스물세 살 난 지식인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두 집단 사이의 격차가 유럽 어느 곳보다 큰 곳이었다.” 60 물론 레닌은 그러한 모임을 통해 노동자들의 조건에 관한 기초적 학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업하듯 가르치는 방식은 그나마 성공적인 경우에도 노동자들로 하여금 ‘나는 배운 사람이니까 동료들과는 다른 부류’라는 의식을 갖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루카치와 마찬가지로 그람시도 활동과 동떨어진 채 책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물리적·사회적 세계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것, 즉 실천 활동 일반이 새로운 일관된 세계관의 기초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그람시는 강조했다. 61
“새로운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그저 달변에 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달변은 감정과 열정의 외적·일시적 자극제일 뿐이다. 새로운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웅변가가 아니라 건설자이자 조직자, ‘상시적 설득자’로서 실천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62 그러려면 레닌이 던진 물음을 언제나 던지고 그에 답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63 그 목적은 당으로 뭉친 유기적 지식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지도와 방향을 제시하면서 집단적으로 그 활동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사회·경제·정치 영역에 걸쳐 모든 중요한 “활동들과 임무들”을 수행하는 “어엿한 정치적 지식인, 지도자, 조직자”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험에서 배울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엄밀한 이해도 발전시켜야 한다. 64 그런 점에서 그람시는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을 “가톨릭 교회의 안티테제”로 묘사한다. 가톨릭 교회는 지적 수준을 정형화된 교리로 하향평준화하고자 한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상식에 기초한 조야한 철학을 고수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견해를 거부하고, “소수 지식인 집단이 아닌 대중의 지적 발전이 정치적으로 가능해지도록” 만들려 한다고 그람시는 강조한다. 65 이것은 혁명적 당의 모든 구성원이 모든 문제에 즉각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그를 맞닥뜨렸을 때 최소한, 자신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유기적 지식인 집단 내에서 누군가가 자신감을 갖고 “더 잘 논쟁”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66 그것이 가능하려면 조직 내에 어떤 풍토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철저한 이론적 토론이 꾸준히 벌어지고, 주류적 관념들의 일상적 표현뿐 아니라 전통적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그것의 더 세련된 형태에도 철저하게 물음을 던지고 그것과 대결하는 풍토다.
이처럼 혁명적 당의 구실은 “유능한 지도자들을 형성”하는 것이다. 혁명적 당은 “지도자들을 선발하고 성장시키고 증식시킨다. 특정한 사회 집단이 ⋯ 그저 들끓는 무리가 아닌, 유기적으로 준비 태세를 갖춘 정치적 군대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지도자들을 선발하고 양적·질적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67 이것은 혁명적 노동자들의 세계관이 더 광범한 노동계급과 동떨어져 있다거나, 혁명적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중과 동떨어진 전위 부대를 이룬다는 뜻이 아니다. 그람시는 노동계급이 혁명적 사상에 이끌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동계급은 “양식良識”의 핵심을 “배아” 형태로 갖고 있고, 그것은 그들이 “유기적 총체로 활동할” 때 “이따금씩 번뜩이며” 나타난다. 68 배아 상태로 존재하는 이 세계관은 “‘상식’ 내의 건강한 요소이며, 이를 중핵으로 삼아 더 일관되고 통일된 형태로 발전시킬 가치가 있다.” 69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은 “과거로부터 물려 내려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져 겉으로 드러나고 말로 표현되는” 다른 세계관과 긴장을 빚는다. 70 그 긴장의 산물인 “모순된 의식”은 수동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세계관이 긴장을 빚고 있는 만큼 노동자들의 활동이 급격히 분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71 실제로 투쟁이 벌어지면, 혁명적 당을 이루는 유기적 지식인들은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키면서, 투쟁으로 표현된 양식을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새 노동자들을 조직에 끌어들여야 한다.
당은 노동자 대중 속에서 개인들을 입당시키며, 그러한 선발은 이론과 실천 모두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살아 있는 현실 속에서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세계관일수록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진다. 72
던컨 핼러스는 더 쉬운 말로 비슷한 견해를 설명한다.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자신들의 이론과 목표를, 투사들이 직면한 문제와 그들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종합은 실천의 지침이자 더한층의 전진을 위한 발판이 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 종합은 투쟁 참가자들에게 실제로 활동의 지침이 되고, 실천과 그것이 낳는 상황 변화에 따라 수정되는 만큼 유의미한 것이다. 73
오늘날의 “상시적 설득자”
이러한 통찰들을 세심하게 적용하면 오늘날 어떻게 간부화를 이룰지에 관해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휘발성이 큰 정치 상황에서 주도력을 발휘하고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사태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 간부가 중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가 그랬다. 당시 노동자들, 심지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에 우호적인 사람들조차도 올바른 결론을 내리거나 자신감 있게 대응하는 것은 결코 예정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권력 핵심부의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으로부터 친이스라엘 입장과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스라엘이 인종 학살 전쟁을 저지르는 것을 보며 여론은 변했지만,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일부 좌파와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가들의 최초 대응이었다. 이들의 대응 덕분에 대규모 거리 시위와 대학 캠퍼스 행동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같은 조직들이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해 10월 7일 공격을 더 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조명하고, 팔레스타인인 억압의 오랜 역사를 개괄하고, 네타냐후의 향후 대응을 전망하고, 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띠는지 분석하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시온주의와 제국주의가 한 구실을 설명하고, 중동 내 더 광범한 계급 투쟁을 통해 ‘한 국가’ 해법을 실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74
그러나 조직원들이 그저 중앙에서 사태 규정과 대응 방침이 내려오기를 기다린다면 그 조직은 형편없는 혁명적 조직일 것이다. 간부란 어떤 ‘위대한 지도자’가 구상한 계획을 일선에서 집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관념은 스탈린주의가 만들어 낸 것이다. SWP와 같은 조직의 유기적 지식인들은 자신이 직면하는 주장들을 반박하고 노동자들이나 학생들의 대응을 지도하고 이끌 수 있을 만큼 이론적 이해를 갖추고 독자적으로 사고해야 했다. 당시 당원들이 발판으로 삼은 이론은 단지 중동 역사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이전에 당원들이 참여했던 팔레스타인 관련 투쟁의 경험과 그 교훈들, 영국 정치 상황 전반에 대한 분석, 다양한 활동가 층을 움직일 수 있는 조직 형태와 전술에 대한 이해 등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론이 올바른 전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치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고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투쟁에 개입하는 것은 과학인 동시에 기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 상황을 규정하고 그럼으로써 개입의 방향을 잡는 데서 이론은 필수적이다. 75
그런 개입의 순간에 발휘돼야 할 지도력의 중요한 한 측면은 활동가들의 과거 전력이다. 유기적 지식인이 그람시의 표현처럼 노동계급 내의 “상시적 설득자들”이라면, 그들의 지도력은 이전 투쟁 국면들에서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하면서 얻어 온 신뢰에 기초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헤게모니의 행사는 모든 문제에 관해 모든 노동자에게서 전적인 동의를 얻어 내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혁명가들에게 전적으로 동의하는 일부와 잠정적 동의를 보내는 일부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혁명가들이 과거에 효과적인 실천적·이데올로기적 지도력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때 많은 경우 노동자들은 혁명가들이 대중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주장을 하는 능력(그것은 수많은 개혁주의적 활동가들도 늘상 하는 일이다)뿐 아니라 인기 없는 주장도 고수하는 것을 보며 그들의 원칙 있는 태도와 일관성을 평가할 것이다. 예컨대 많은 SWP 간부들은 2022~2023년 파업 물결[당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반反노조법에 대항하는 파업들이 여러 부문에서 분출했고, 영국 노동 운동은 1980년대 이후 30년 넘게 이어졌던 소강상태를 벗어났다. — 마르크스21 편집부] 때 작업장 쟁의를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단지 파업을 조직하고 조율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 관료의 한계에 관해 경고하고, 행동을 필요한 만큼 지속적으로 조직하지 않거나 투쟁을 약화시키거나 형편없는 합의안을 통과시키려 하는 관료들을 비판해야 했다. 파업 물결이 고조될 때에는 그런 경고와 비판이 늘 환영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런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 경우에도 SWP 간부들의 주장은 단지 실천 경험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성격이나 일반 조합원과 노조 관료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려는 계속적인 노력을 반영했다. 76
이론의 중심성
책으로 학습하는 것만으로는 유기적 지식인을 단련시키기에 부족하지만, 독서와 수준 높은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는 풍토는 간부화의 핵심적 요소다. 흔히들 레닌을, 이론을 경시하고 그저 실용적 목적에 이용하는 마키아벨리즘적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나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엄밀하게 발전시키고 적용하려 했고 그 노력은 볼셰비즘 역사의 매 국면마다 중요한 구실을 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레닌의 지적 발전을 제대로 다룬 전기라면, 레닌이 이론을 경시하기는커녕 중요한 전환점이 올 때마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가장 잘 이해할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재검토했다는 점을 드러낼 것이다. 1905년 혁명 전 레닌은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1899)에서 특히 러시아의 농업 구조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것에 근거해, 농촌 사회주의를 추구한 나로드니키를 비판했다. ⋯ 제1차세계대전이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위기를 촉발하자 레닌은 사회주의 이론과 전략에 대한 더 일반적인 재검토에 착수했다. 이것은 헤겔을 독해하면서 쓴 《철학 노트》와, 《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 반영됐고, 《국가와 혁명》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다룬 이 미완성 저작은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의 여름 동안 탄압을 피해 다니면서 쓴 것이다. 77
오늘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론의 영역에서 레닌과 맞먹는 업적을 달성할 가망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도, 이론을 경시하는 분위기는 혁명적 당의 성장에 가장 해악적이다. 조야한 반지성주의에 굴복하는 것은 일터에서 이뤄지는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바탕에 있는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은 계획과 실행을 분리하고 계획을 자본가들과 그들이 고용한 관리자들의 전유물로 취급한다. 78 그런 방식이 혁명적 당에 이식된다면 이론은 전문화된 “전통적 지식인”의 전유물이 되고 이론과 실천의 연결이 끊길 것이다.
당원들에게 이론적 명료함을 갖추게 하는 것은 특히 소규모 혁명적 조직일수록 더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모든 진정한 혁명적 당이 전부 여기에 해당한다. 포르투갈 혁명이 한창이던 1975년 토니 클리프는 포르투갈의 사회주의자 브루노 다폰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포르투갈 극좌파 조직들 중 한 곳이 결성한 ‘통합 혁명 전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것은 작지만 예리한 도끼도, 무디지만 크고 무거운 도끼도 못 될 것이다. 둘 중 어느 도끼로도 나무를 벨 수 있다. 하지만 작고 무딘 도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79 다시 말해, 거대한 대중 조직으로서의 영향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노동자들에게 극도의 정치적 명료함을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론 영역에서의 절충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절충주의는 ‘학술 마르크스주의’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특징인데, 이는 ‘학술 마르크스주의’가 활동과 동떨어져 있는 탓에 실천으로 사상을 검증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폭넓게 책을 읽고 좌파 내의 핵심 논쟁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990년대 말 나오미 클라인의 《노 로고》, 2000년대 초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 2010년대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 최근 안드레아스 말름의 《파이프라인을 어떻게 폭파시킬 것인가》를 심층 탐구한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80 그 책들은 혁명적 좌파가 관여한 운동들 속 유의미한 소수에게 읽혔고, 그 책들에 담긴 사상은 그 독자층보다 훨씬 광범한 사람들의 논의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이런 저작들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그 고전적 성격은 혁명을 통한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잠재력을 강조하는 데 있다) 81 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또, 단지 같은 전통에 속했다는 이유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판에서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고전적 전통도 결코 모든 것에 대한 견해가 통일돼 있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한다.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빚어 내고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따라서 그에 따라 이론이 계속 발전하지 않으면 교조주의로 빠질 것이고 결국 그릇된 실천을 하게 될 것이다. 82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살아 있고 발전하는 전통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노동계급 자력 해방의 관점에 기초해 다른 이론적 접근들을 평가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불행히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1920년대 말 스탈린주의가 등장하고,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장기 호황 속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소생하고, 1970년대 말 이후 노동자 투쟁이 가라앉은 것도 그 과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혁명적 조직들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과의 대화를 북돋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이 혁명적 조직에 가입한 후에도 극복해야 하는 난관들이 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가하는 압력을 고려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제약 하나는 시간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노동자들은 정치에 관여하고자 하고 책을 읽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바쁜 와중에도 늘 어떻게든 시간을 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간된 160년 전보다 자유 시간이 훨씬 많은 것이 보통이다. 그 시절에도 “뉴욕의 전全독일노동자협회 노동자들은 ⋯ 로어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텐스워드 호텔의 환기도 안 되는 비좁은 방에 매주 모여 《자본론》을 읽었다.” 83 19세기 초 영국 노동자들의 3분의 1은 문맹이었고 나머지도 가장 기초적인 교육밖에 누리지 못했지만, 당시 노동계급 지구에서는 급진적 간행물이 활발하게 팔리고, 좌경적 신문을 구독하는 방직공들의 모임이 꾸려지고, 도공들이 독서실을 만들고, 급진적 저작들이 소비되는 서점과 카페가 생기고, 소도시나 마을 단위의 독서 모임이 꾸려졌다. 84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은 노동자들의 잠재적인 지적 능력과 창조력을 짓누르는 소외다. 이런 요인들에 저항하고 이론에 관심을 갖고 능동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정치적 프로젝트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싸워야 성취되는 것이고 계속 갱신돼야 한다. SWP 같은 당이 조직하는 교육이나 하루 학교의 기능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교육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책을 더 찾아 읽거나 이론에 관한 집단적 토론을 하도록 당원들을 자극하고, 그런 것을 시도하도록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이다.
독서를 자극하려면 혁명적 조직은 또한 언제나 이론의 가치를 입증해 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직원들이 노동조합이나 운동 단체 안의 논쟁에 개입하거나, 지회 모임이나 더 광범한 운동 행사에서 발표를 한다면 이론의 가치는 더 뚜렷하게 와닿을 것이다. 특히, 그 경험들을 조직원들이 집단적으로 평가한다면 더 그럴 것이다. 85 사회주의 간행물 판매(공개 판매든, 일터에서 주도면밀하게 판매하는 것이든)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더 광범한 노동자들과 접촉하고 자신의 사상을 시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SWP와 그 전신 IS에서 금속 부문 활동가였던 로저 콕스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61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를 잘 설명했다.
저는 공장 구역에서 〈소셜리스트 워커〉를 15부 판매했습니다. ⋯ 젊은 동지들에게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우리 사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죠. 저는 신문을 팔아야 했고 그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작업 라인에 가서 “한 부 살래?” 하면 동료들은 “흑인과 아일랜드인 방어하자고 떠들어 대는 그거?” 하고 대꾸하곤 했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변기에서 큰 일을 보면서 〈가디언〉을 읽고 있었는데, 변기 칸 너머로 두 녀석이 화장실에 들어오더군요. 한 명은 조지라는 놈이었는데 그놈은 구제불능의 인종차별주의자였습니다. 그놈이 제가 신문을 판 다른 녀석에게 “망할 검둥이들이 온다”는 등의 소리를 지껄였습니다. 그러자 그 녀석이 “조지, 좀 닥치지 그래” 하면서 제게서 산 신문에서 읽은 논거들로 조지를 꼼짝 못 하게 하더군요. 그 대화를 엿듣고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의 일관성이 시험받는 것이구나!’ 매주 동료들은 여러분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주 그런 긴장을 느끼는 것이고 그것을 견뎌 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내용이 지난주에 했던 말과 똑같은가? 다르다면 왜 다른가? 그러면서 그들은 여러분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86
간부와 민주주의
간부화 문제는 당내 민주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레닌주의 조직이 “민주집중주의”에 기초해 있다는 말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내용이 아닌 절차에 관한 말로 극도로 협애하게 이해될 때가 많다. 민주적 토론을 한 뒤 규율 있게 행동 통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두 요소 사이에는 더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민주주의는 투쟁 속에서 계급이 겪는 경험들을 통합하는 것을 돕고, 집중화는 민주주의의 결과로 발전시킨 전망을 실천에서 검증할 수 있게 해 준다. 핼러스는 진정한 토론의 절대적 중요성을 잘 설명했다.
대중 정당은 종파와 달리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힘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 그 타격은 당내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당이 계속 전진하려면(실제로는 변하는 상황에 따라 경로를 계속 수정해야 한다) 지도부와 다양한 간부층, 이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노동자들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는 당내 정치 투쟁으로 표현돼야 하며, 또 그렇게 표현되기 마련이다. 당내 정치 투쟁이 행정 수단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질식된다면 당은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87
이것은 그람시가 개괄한 방식과 일치한다.
운동 속에서 “집중주의”는 조직을 실제 운동에 계속해서 적응시키는 것이자 ⋯ 기층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른 요소들을 지도 기구라는 견고한 틀에 계속해서 끼워 넣는 것이다. 그러한 지도 기구는 연속성과 꾸준한 경험 축적을 가능케 한다. 민주집중주의는 ⋯ 역사적 현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유기적인 방식인 운동에 관해 세심하게 고려하고 판단하며, 기계적으로 관료제로 화석화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것은 비교적 안정되고 상시적인 것 또한 세심하게 고려하며 판단하기 때문에 유기적이다. 88
또한 그람시는 이렇게 덧붙인다. 노동계급 정당들에서 “안정성이라는 요소는 헤게모니가 특권 집단이 아닌 진보적 요소들(불균등하고 동요하는 ⋯ 다른 세력들에 비해 진보적인)에 의해 행사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89
이것이 함축하듯이 민주집중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이론적 관점을 공유하고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그 경험을 평가하고, 자신이 배운 것을 당내 토론에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은 불가결한 것이다. 실천과 괴리된 토론은 추상적 공리공론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론과 괴리된 토론은 단순한 인상론과 피상성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대리와 비계
위의 논의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노동계급 투쟁에 대한 능동적 개입은 마르크스주의 조직의 생명소다. 그런 만큼 노동계급이 비교적 침잠해 있을 때에는 어려움이 제기된다. 최근 몇십 년간의 영국이 그런 사례다. 2022~2023년 영국의 파업 물결은 노동계급이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가 배우고 개입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이 일어나는 수준은 여전히 전반적으로 제한적이다.
볼셰비키 입당 전에 트로츠키는 “대리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당이 노동계급의 역할을 찬탈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 조직이 당 전체를 대리하고, 중앙위원회가 당 조직을 대리하고, 최종적으로는 ‘독재자’가 중앙위원회를 대리하는” 대리주의적 연쇄 반응을 낳을 것이라고 트로츠키는 주장했다. 90 1917년 이후 트로츠키는 그 입장을 뒤집고 볼셰비키와 같은 조직의 건설을 줄곧 확고히 지지했다. 그러나 클리프는 그 문제를 다루면서 볼셰비즘에 잠재된 대리주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계급 자신의 활동”이 그것의 해독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91 앞에서 살펴봤듯이 레닌은 볼셰비즘 내의 그런 경향에 맞서기 위해 1905년과 1917년 고양되는 노동자들의 활력에서 힘을 얻고자 했다.
오늘날 SWP와 같은 작은 혁명적 당이 자신이나 다른 사회 세력으로 노동계급을 대체하려 들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투쟁 수위가 제한적인 탓에 우리는 트로츠키가 언급한 연쇄 반응을 이루는 다른 요소들의 위험을 경험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자체 활동 수위가 낮은 탓에, 투쟁을 이끈 경험이 있는 확고한 투사들이 혁명적 조직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다. 92 게다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 전반의 ‘상식’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혁명적 조직에 가입하는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극좌파들 사이에서 공유되던 일반적 이해를 결여한 채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학생들은 급진적 사상 조류들을 접할 때가 많고 그중에는 마르크스주의를 참고하는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꽤 거리가 멀고,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지향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러한 제약들은 당내의 경험 많은 간부들에게 유혹을 낳는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지회를 조직하고, 당의 핵심 사상을 설명하고, 더 광범한 투쟁에 대한 개입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는 등의 핵심 기능을 수행해야겠다는 유혹이다. 그러면 새 당원들이 경험을 쌓고 혁명적 좌파가 관여하는 활동에 자신의 창의성을 적용할 기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조직이 간부를 재생산하고 발전시키지 못한 채 성장할 수도 있다. 93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새 당원을 교육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당 전체의 이론적 수준을 높일 필요성과 분리될 수 없다. 목표는 현재의 이론적 이해 수준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이론적 이해 수준을 높이고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지속적인 논쟁과 토론의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천과 결합돼야 하고, 그 실천에 당원들을 관여시키기 위한 더 사려 깊은 접근과 결합돼야 한다. 예컨대 신참과 고참을 불문하고 모두 참여하는 정기 모임에서 당원들은 특정한 운동에서 과제가 무엇이고 왜 그 과제가 필요한지 토론하고, 거기서 도출된 전술의 성패를 평가해야 한다. 새 당원들에게는 지회 모임에 기여하고 조직하는 과제를 맡는 것이 장려되는 동시에, 그것을 수행하는 최상의 방법에 관해 더 경험 많은 당원들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에는 언제나 “노하우”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기지와 신중함, 직관, 요령, 창조적 변용”의 요소가 있다. “그러한 노하우는 전수 가능한 것이고, 많은 경우 전통적인 학술 수단이 아닌 ‘도제 관계’를 통해 전수된다.” 94 일대일 멘토 관계는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간부로 온전히 성장하려면 저마다 강점과 접근법이 다른 다양한 고참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도전 하나는 새 당원들이 공동전선 활동이나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정치적으로 자신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과 종종 충돌하면서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활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토론이 수반되고, 그런 만큼 이런 활동들은 일터에 기반을 둔 대중 투쟁이 부재한 상황에서 당원들이 전략·전술을 처음 훈련하는 주요 전장이 된다. 경험 있는 당원들이 이러한 활동에 핵심적인데, 그들은 대개 자기 분야의 좌파 활동가들 사이에서 명성을 쌓은 바 있고, 그래서 더 광범한 운동의 건설을 촉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당원들도 기회가 되는 대로 그러한 활동에 관여해야 한다.
이것은 신입 당원들을 깊은 물에 던져 놓고 가라앉는지 헤엄쳐 나오는지 지켜보는 방식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레프 비고츠키가 발전시킨 사상의 일부를 차용할 수 있다. 95 비고츠키와 그 동료 사상가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학습이라는 층위에서도 ⋯ ‘정신’은 머릿속에 있는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다. ⋯ 학습은 사람들이 사회적 모순 한복판에서 일관된 이해를 형성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주어진 구체적 상황 속에서 행동하는 것을 통해 이뤄진다.” 96 교육학자들 사이에서 비고츠키는 “근접 발달 영역” 등의 개념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근접 발달 영역은 아이가 혼자서 성취할 수 있는 것과, “성인의 지도나 더 능력 있는 또래와의 협업을 통한 문제 해결로” 성취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영역을 뜻한다. 97 이 영역 안에서 또래나 교사가 제공하는 적절한 비계를 통해 학생들은 혼자서 과제를 성취하는 능력을 키우고, 여러 구체적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형태의 이론적 통찰을 획득할 수 있다. 98
신입 당원들을 “아이” 취급하고 경험 있는 당원들을 “어른” 또는 순전히 “교사”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간부화는 당 전체에 걸쳐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어야 하고, 레닌이 인식했듯이 중요한 순간에는 당이 계급투쟁에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교훈을 흡수하는 데서 새 당원들은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고츠키의 통찰은 단지 교육이라는 맥락에 한정되지 않는, 의식과 학습에 관한 더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99 실제로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 운동 내에서 일어나는 학습과 성장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비고츠키 사상의 일반화를 시도했다. 존 크린스키와 콜린 바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측면에서 의식은 단지 준자생적인 개인의 심리적 발달 과정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개인들이 능동적으로 타인과 맺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사회 운동의 전략이 수립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어떤 의미에서 저마다 끊임없는 “전략적” 활동을 수반하는 삶을 사는 성인들도 협업적·사회적 학습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00
이러한 이해는 혁명적 당이 전략적으로 세계에 개입하려 할 때 일어나는 집단적 학습 과정에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해 보인다. 혁명적 당을 통해 개입하려는 공동의 노력은 미숙한 당원들로 하여금 각자가 개인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 원숙한 동지들의 비계 설정과 도움, 결과에 대한 집단적 평가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더 거칠게 말하자면, 어느 당원도 미숙한 당원이 적절한 도움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과제를 대신 수행해서는 안 된다. 또, 어느 당원도 미숙한 당원과 협력하면서 수행할 수 있는 과제를 혼자서 수행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경험 많은 당원들이 일종의 지혜의 원천으로 여겨지거나 더 성장할 필요성에서 면제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고, 고참이든 신참이든 당의 모든 참여자들의 창조력을 억누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마치며
최근에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역사의 변곡점에 와 있음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가 더 깊은 혼돈에 빠져 최근 역사에서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구실을 해 온 제도들과 구조들이 많은 부분 파괴되고, 위기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101
이에 대한 가장 두드러지는 반응은 그 혼란에서 득을 보려고 무진 애를 쓰는 국제 극우의 부상이다. 무엇보다도 도널드 트럼프의 귀환이 이것의 전형적 사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좌파가 주도하는 투쟁과 저항을 위해 어떤 기회가 열릴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래의 모습이 가까운 과거와 극적으로 다를 것임은 분명하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갈림길, 즉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물음이 더 첨예하게 제기될 것이다. 우리에게 열린 모든 기회를 효과적으로 잡는 데서,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문제는 사활적이다. 간부화, 즉 자신이 속한 투쟁에 지도를 제공할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들을 성장시키는 일은 커져 가는 참상 속에서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불가결한 과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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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seph Choonara, “Cadrisation: building a party of organic intellectuals”, International Socialism 186(Spring 2025).
↩
- 이 글은 2025년 초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 벌어진 토론과 논쟁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당의 여러 행사에서 동지들과 한 대화가 도움이 됐다. 초고를 읽고 논평해 준 마크 토머스, 사샤 라들, 토마시 텡글리-에번스에게 감사를 표한다. ↩
-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그 용어가 1928년부터 “공산주의 나라들”에서 쓰였다고 설명하지만, 이르면 1919년 코민테른의 영어 기관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실린 기사에서도 그 용어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5호에 실린 러시아 청년 운동을 다룬 기사가 그런 사례다. ↩
- 필자는 “cadreisation”이 아니라 “cadrisation”로 쓸 것이다. 둘 모두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
- 볼셰비키는 원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의 한 분파였다가 1903년 다른 분파인 멘셰비키와 갈라섰다. 그 후 두 분파의 관계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다가 1912년 볼셰비키가 독자적인 조직을 세웠다. ↩
- Choonara, 2024; Hallas, 1996, pp44-45를 보시오. ↩
- 레닌의 당 개념의 핵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Tony Cliff, 1986; Chris Harman, 1996; John Molyneux, 1987에 빚진 것이다. ↩
- Trotsky, 1987; Rabinowitch, 2017; Tony Cliff, 1996, pp63-66, 각 문헌들은 그런 신화를 철저하게 반박한다. ↩
- 여기서 2월은 당시 러시아에서 여전히 사용되던 구력(율리우스력)에 따른 것이다. ↩
- Trotsky, 1977, pp130-131, 163; Liebman, 1980, pp117-118. ↩
- 볼셰비키가 공장이나 그 밖의 대규모 일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진정한 노동계급 조직, 특히 청년 노동자들의 조직이었다는 점에 관해서는 Molyneux, 1978, pp66-68을 보라. ↩
- Birchall, 2001, p54가 강조하듯이 빅토르 세르주는 《혁명가들의 생애》Vie des révolutionnaires(Hachette Livre 1921)와 《독일 노트》Notes d’Allemagne(La Brèche 1998)를 통해 러시아 혁명과 1918~1923년 독일 혁명을 일궈 낸, 역사에서 대부분 잊힌 혁명적 간부들의 활약상을 기록하는 중요한 기여를 했다. ↩
- Trotsky, 1977, pp127-128. ↩
- Haupt and Marie, 1974, p222. 카유로프는 이후 붉은 군대의 지도자가 된다. 1936년 그는 스탈린 제거 음모에 관한 거짓 자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비밀 경찰에 의해 총살된다. ↩
- Trotsky, 1977, pp170-171. ↩
- Molyneux, 1978, pp78-82. ↩
- 예컨대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라는 도시에서는 2월 혁명이 분출했을 때 볼셰비키 당원이 1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해 여름 그 수는 5,440명으로 불어났다. Cliff, 1985, pp150-151. ↩
- Cliff, 1985, pp97-139; Trotsky, 1987, pp31-36; Liebman, 1980, pp125-134, 151-154. 당시 레닌이 명시적으로 시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변화는 레닌 자신을 포함해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비판했던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전략의 일종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다. ↩
- Trotsky, Cliff, 1996, p70에서 재인용. ↩
- Cliff, 1986, p35. ↩
- Trotsky, 1996, pp88-89. ↩
- Molyneux, 1978, pp41-46; Harding, 2009, pp151-152를 보라. ↩
- Lenin, 1960, p369. ↩
- Lenin, 1960, pp466-467. ↩
- Harding, 2009, pp184-185. ↩
- 《무엇을 할 것인가?》의 대목에 근거해,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노동계급 외부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여겼다는 문제 제기에 관해서는 Molyneux, 1978, pp46-50; Harman, 1996, pp25-28을 보라. ↩
- Lenin, 1960, pp470-472. ↩
- Lenin, 1962, p217. ↩
- Harding, 2009, p231을 재인용함. ↩
- Lenin, 1963a, p18. ↩
- Lenin, 1963b, pp289-290. ↩
- Lenin, 1963b, pp289-290. Molyneux, 1978, pp63-65에서 몰리뉴는 1905년 혁명과 이후 반동의 경험이 혁명적 당에 관한 레닌의 이해가 확립되는 데서 결정적이었다고 옳게 강조한다. 그 경험은 1905년을 전후해 볼셰비키에 이끌린 지식인 일부와의 첨예한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는데, 그 지식인들은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철학을 볼셰비즘에 도입하는 데 골몰하고, 혁명의 퇴조와 질서정연한 후퇴의 필요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완고한 초좌파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유형의 간부를 훈련시키기 위해 카프리섬에 있는 작가 막심 고리키의 집에서 “볼셰비키 학교”를 열자, 레닌은 파리 근처의 롱쥐모에서 자신의 학교를 여는 것으로 대응했다. 레닌은 또한 당내에서 중립 지대로 여겨진 철학 분야에서도 논쟁에 착수해, 주요 적수인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에 맞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썼다. Harding, 2009, pp277-281; Cliff, 1986, pp281-293을 보라. ↩
- Hallas, 1985; Molyneux, 1978, pp84-93과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86호에 실린 개러스 젠킨스의 글을 보라. ↩
- Cliff, 1993, pp303, 307; Hallas, 1979, p89. ↩
- Cliff, 1993, pp291-294. ↩
- Cliff, 1993, pp296-297. ↩
- Trotsky, 1964. ↩
- 패스파인더 출판사의 트로츠키 저작집에서 그 시기에 나온 글들을 엮은 권들의 하나를 골라 아무 쪽이나 펼쳐 보라. ↩
- Cliff, 1993, pp300-303에서 클리프는 트로츠키가 적용한 조직적 해결책이 그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인터내셔널의 구조는 상층이 극도로 비대했고, 트로츠키는 인터내셔널의 각 지부가 서로를 비판하고 지도하면서 전략·전술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술적으로 미숙한 트로츠키주의 단체들이, 많은 경우 서로가 처한 실제 조건에 비교적 무지한 채 시도하는 비판은 격렬하지만 무익한 논쟁을 낳았다. ↩
- Hallas, 1979; Molyneux, 1978, pp117-140; Callinicos, 1990의 설명을 보라. ↩
- Lukács, 1977, pp9-11. ↩
- Lukács, 1977, pp11, 13. ↩
- Cliff, 1986, pp253-254; Lukács, 1977, p82를 보라. ↩
- Luxemburg, 1971, pp52, 53. Lukács, 1977, p72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
- Lukács, 1977, pp17, 18. ↩
- Lukács, 1977, p.43. ↩
- Cliff, 1986, p256의 레닌 인용을 재인용함. ↩
- Lukács, 1977, p16. ↩
- Lukács, 1977, p35. Lukács, 1977, p83도 보라. ↩
- Lukács, 1974, p299. ↩
- Lukács, 1977, p35. ↩
- Lukács, 1977, p35. ↩
- Lukács, 1977, p27. 루카치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이런 요소들이 《역사와 계급 의식》과 같은 이전 저작에서 나타난 문제들과 관련 있다는 몰리뉴(Molyneux, 2012, pp165-168)의 지적은 필자가 보기에 타당하다. 루카치가 볼셰비키와 결부시키는 듯한 “귀속된 계급 의식” 개념이 그런 사례다. ↩
- Lukács, 1977, pp37, 38. ↩
-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14호에는 그람시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네 글이 실려 있다. 《옥중수고》의 맥락에 관한 정보와 그 책을 독해하는 데서 제기되는 어려움에 관해서 참고할 만한 글이다. ↩
- Gramsci, 1971, pp8, 9, 323. ↩
- Gramsci, 1971, p5. ↩
- Gramsci, 1971, p10; Gramsci, 1971, p6은 이를 농민과 비교한다. 이탈리아 농민 또한 많은 뛰어난 지식인을 배출했지만 그들은 자신을 배출한 계급의 이해관계와 단절했다. 따라서 그들은 유기적 지식인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Gramsci, 1971, p204도 보라. ↩
- Gramsci, 1971, p340. ↩
- Gramsci, 1971, p16. ↩
- Harding, 2009, pp72-76. ↩
- Gramsci, 1971, p9. ↩
- Gramsci, 1971, p10. ↩
- Barker, Johnson and Lavalette, 2001, p5. ↩
- Gramsci, 1971, p10. 다음 대목은 특히 은밀한 언어로 쓰여 있다. “‘활동으로서의 기술’에서 ‘과학으로서의 기술’과 인간주의적 역사관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전문적’이 될 뿐 ‘지도적’(전문적 + 정치적)이지 않게 된다.” ↩
- Gramsci, 1971, pp332-333. ↩
- Gramsci, 1971, p339. ↩
- Gramsci, 1971, p191. ↩
- Gramsci, 1971, p327. ↩
- Gramsci, 1971, p328. ↩
- Gramsci, 1971, p333. ↩
- Gramsci, 1971, p333. ↩
- Gramsci, 1971, p335. ↩
- Hallas, 1996, p47. ↩
-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2023년 겨울호에 실린 글들이 그런 사례다. ↩
- Callinicos, 2007, p27. ↩
- 예컨대 Choonara, 2023a, 2023b를 보라. ↩
- Callinicos, 2007, pp24-25. ↩
- Braverman, 1974. ↩
- Cliff, 1975. 클리프는 이 은유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그 은유는 전도서 10장 10절에서 유래한 듯하다. “도끼를 갈지 않아 날이 무디면 그만큼 힘이 더 든다. 그러므로 도끼 날을 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
- Klein 1999; Hardt and Negri, 2000; Piketty, 2014; Malm, 2021. ↩
- 마르크스가 이 원칙에 도달한 과정과 그 원칙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정의하는 데서 갖는 중요성에 관해서는 Draper, 1966, 1977; Molyneux, 1983; Löwy, 2005를 보라. ↩
-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대표적인 혁신이다. 이에 관해서는 Hallas, 1979, pp7-26을 보라. 토니 클리프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을 개발하면서 정설 트로츠키와 결별해야 했다. 더 근래의 사례로서, 정치적 이슬람에 관한 1994년 크리스 하먼의 분석은 개발도상국에서 이슬람주의 운동과 관계 맺는 법을 정립하고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슬람 혐오와 대결하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
- Battistoni, 2025. 이 사례를 알려 준 찰리 킴버에게 감사를 표한다. ↩
- Thompson, 1980, pp783, 787-789. 필자가 1990년대 중반에 SWP에 가입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 하나는, 필자보다 나이 많은 동지들이 각자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다들 하나같이 자기 집에 닳아빠진 마르크스주의 서적과 간행물로 가장 잘 보이는 벽을 한가득 채워놓았다는 것이다. ↩
- 필자는 지회 모임에 기여하면서 나 자신의 이론적·역사적 이해에 허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
- Cox, 2019, p116. ↩
- Hallas, 1979, p84. ↩
- Gramsci, 1971, pp188-189. ↩
- Gramsci, 1971, p189. ↩
- Cliff, 1996, p56를 재인용함. ↩
- Cliff, 1996, p70. ↩
- Hallas, 1996(원래는 1971년에 발표된 글이다)에서 핼러스는 혁명적 조직이 노동자 투사들의 층과 접촉을 복원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핼러스가 염두에 둔 것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영국에서 투쟁을 이끌었던 급진화한 직장 대표들이었다. ↩
- SWP는 지난 3년 동안 4분의 1만큼 성장했지만 간부화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 Barker, Johnson and Lavalette, 2001, p6. ↩
- 비고츠키에 관한 일반적인 평가에 관해서는 Bassett, 2024를 보라. 비고츠키는 초기 소련 때 활동했고 1934년에 사망했다. 그의 저작들은 스탈린 치하에서 1936년부터 1965년까지 금서가 됐다. ↩
- Krinsky, 2013, p117. ↩
- Vygotsky, 1978, p86. ↩
- 바실리 다비도프 등은 이런 통찰을 더 발전시켰다. Engeström, 2005, pp164-165를 보라. ↩
- Collins, 2000는 비고츠키와 발렌틴 볼로시노프 등의 사상가들을 통합해 언어와 사회적 의식에 관한 더 포괄적인 이해를 발전시켜서 대중 저항을 연구하는 데 적용한다. ↩
- Krinsky and Barker, 2016, p216. ↩
- Choonara,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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