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의 계급투쟁과 정체성 정치 *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정체성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린다’는 믿음이 큰 타격을 받았다. 1 카멀라 해리스는 여성 유권자와 흑인 남성 유권자에게서 충분한 표를 받지 못해 결국 선거에서 졌다. 여러 논평가, 활동가들은 정체성 정치가 우파에 맞선 저항을 하나로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우파의 부상을 도운 것 아닌가 따져 보고 있다. 어쩌면 좌파는 지나치게 ‘깨어woke’ 있어서, 자신의 특권을 억누르는 데 몰두한 나머지 노동계급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신뢰를 잃고 외면당하는 ‘극단적 중도’ 정치와 정체성 정치가 오랫동안 밀접하게 결부돼 있었다는 점을 이용해, 우파는 권력층과 그들의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정책에 맞서 보통 사람들을 방어하는 저항적 포퓰리스트 행세를 했다.
한때 자유주의적이고 쿨한 이미지를 내세웠던 실리콘밸리 테크 엘리트들은 이제 DEI 정책을 내던지고 도널드 트럼프라는 새로운 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DEI 정책은 애초부터 형식적인 제스처에 불과했지만, DEI 정책이 빠르게 폐기되는 것은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약속 자체가 내팽개쳐지고 있는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기업 이사회 내 다양성 확대에만 집착해 온 신자유주의적 정체성 정치는 최고 경영자의 변덕에 언제나 취약했다. 2025년 1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의 모회사인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트럼프의 고위 참모에게 자사의 DEI 정책을 폐기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저커버그는 메타를 얽매던 DEI 정책이 모두 셰릴 샌드버그 탓이었다고 책임을 돌렸다. 샌드버그는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인물로, 《린 인: 여성, 커리어, 리더십 의지》[국역: 《린 인》, 와이즈베리, 2013]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 책은 여성들에게 마음을 더 독하게 먹고 기업·정치 리더로 출세하는 길을 개척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제 저커버그는 신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면전에서 이사회실 문을 쾅 닫아 버린 것이다.
그 전까지 주류 정치인과 CEO들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외치는 동시에 노동계급과 빈곤층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이끌었다. 둘 사이의 연관성은 차별에 맞서려는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연관성은 급진적 저항에서 힘을 빼고 민주당에 투표해서 변화를 성취하는 전략으로 전환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을 거부하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을 민주당은 한심한 여성혐오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 자신의 이해관계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로 낙인찍었다. 선거 운동 당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트럼프 투표자들을 “쓰레기”라고 불러 논란을 샀다. 로레인 알리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민주당 선거 패배의 책임이 특권 의식에 젖은 백인 여성들, 소위 ‘캐런’들에게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 여성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남편 몰래 해리스를 찍은 게 아니다. 자신들의 특권을 잘 이해하는 관리자를 고용한 것이다.” 2 민주당 논평가들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치명적 위협을 가하고 있음을 유권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난에는 파시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보루인 민주당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경영진의 얼굴을 바꾸는 데 집중하고 사회적 불평등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 위로부터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커져 왔다고 해서, 트럼프와 극우의 정체성 정치 공격이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더 심각한 공격을 부추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주민의 권리, 트랜스젠더의 권리, 임신중단권 등이 함락되기 시작하면 곧 시민적·정치적·경제적 권리 전반이 후퇴할 것이다.
이처럼 정체성 정치의 위상이 급격히 뒤바뀐 상황에서 진보적 사상가들과 활동가들 사이에서 두 가지 잘못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민주당, 더 일반적으로는 정치적 중도 세력을 옹호하며 트럼프 지지자들을 편협한 광신자로 낙인찍은 뒤 모든 상황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차별,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에 맞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념하고는, 이주민·난민, 트랜스젠더 권리를 방어를 약화시키고 일자리, 주거, 보건 의료 같은 경제적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러한 두 반응을 평가해 보고, 그중 둘째 반응의 이론적 표현인 마크 제임스 레제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책임을 떠넘기는 민주당
미국은 거의 4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깊은 고통과 분열에 빠져 있다. 미국 노동계급은 빈곤, 실업, 인플레이션, 보건 의료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자살률, 수감률, 총기 사망률, 약물 과다복용 등에서도 세계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변화를 약속하는 인물로서 트럼프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곧 밀려날 일시적인 예외로 여겼지만, 이제는 책임을 떠넘길 대상을 부랴부랴 찾고 있다. 그들이 내놓는 선거 패인 분석의 한 요소는 유권자들의 인종차별과 성차별, 즉 ‘흑인 여성 혐오misogynoir’를 부각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문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선 승리가 확정된] 2024년 11월 ‘흑인 여성들은 말한다: “미국이 우리에게 민낯을 드러냈다”’는 기사를 내어 미국인들이 34건의 중죄 혐의에 관해 유죄 판결을 받은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뽑을 망정 유색 인종 여성을 백악관에 보내려 하지는 않는다고 한탄했다. 3 다시 말해 민주당의 선거 패배는 바이든의 경제 정책 실패나 인종학살 지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인종차별과 여성혐오에 찌든 구제 불능 유권자들 탓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민주당이 차별에 맞선다는 포부를 일절 버리고, 이주민 배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정체성 정치가 백인 노동계급의 표를 받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2016년과 2020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공격하는 무기로 정체성 정치를 기꺼이 활용했다. 당시 그 공격은 ‘거대한 각성Awokening’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4 샌더스의 “계급 우선” 선거 운동은 민주당 주류와 논객들의 끊임없는 비난에 시달렸고, 이들은 샌더스와 지지자들을 ‘버니 형제들Bernie Bros’이라고[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대부분 여성 후보를 싫어하는 젊은 백인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을 투영하는 비난이다 — 역자] 깎아내렸다. 샌더스가 대형 은행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힐러리 클린턴이 그런다고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이 유명한 사례다.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이 패배한 후 샌더스가 민주당의 정체성 정치 강조를 비판하자, 그 비판은 샌더스가 대안 우파의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공감대를 찾는 ‘대안 좌파’를 만들었다는 비방의 증거로 제시됐다.
이제는 샌더스의 논적 일부가, 샌더스의 정치야말로 민주당이 트럼프의 인기를 약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 타임스〉에 쓴 ‘유권자들이 권력층에 보내는 메시지: 이제야 내가 보이나?’라는 칼럼에서 미국 사회의 깊은 분열이 신의와 신뢰의 상실, 배신감을 낳았고, 이는 민주당이 눈앞의 극심한 불평등의 골을 외면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브룩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좌파가 정체성 정치 퍼포먼스에 치우치고 있을 때, 트럼프는 계급 전쟁에 발 벗고 나섰다.” 5 샌더스의 정체성 정치 비판을 맹렬히 비난했던 민주당 인사들이 이제는 트랜스젠더와 미등록 이주민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최근 주요 민주당 인사들의 회의를 보도한 기사를 보면, 이들은 앞으로 경제 문제에 집중하며, 상원의원 애덤 쉬프의 표현을 빌리면 “별별 미친 다람쥐를 전부 쫓아다니지” 않는 전략을 추구하겠다고 한다. 6 물론 이러한 전략이 결국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민주당 측 대응의 또 다른 요소는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제기하는 위협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권위주의 수용 의향을 부각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프린스턴대학교 정치사 교수 얀베르너 뮐러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쓴 여러 글에서 드러낸 바 있다. 뮐러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이해하려 해야 한다’, ‘그들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거들먹거려서는 안 된다’는 논객들의 끊임없는 훈수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기득권층의 오만함은 대체로 우익 언론이 만들어 낸 허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 뮐러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더라도 ‘경제적 좌절감’을 표현하겠다며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에게 다른 유권자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정당하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주의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하고, 그 신뢰를 회복할 책임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있다.” 8 정치 지도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실추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정체성 정치에 대한 경제주의적 비판
2016년 트럼프의 첫 대선 승리를 계기로 계급 정치와 정체성 정치 사이의 긴장이 주류 정치 담론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매스미디어에 나와 떠들어 대는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국민 투표와 미국 대선 결과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자 그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숨 막히는 지배”에 대한 반발이 커진 탓이라고 재빨리 둘러댔다. 9 그 선거 결과들은 백인 노동계급 남성들의 복수라는 식으로 규정됐다. 트럼프는 ‘세계화’, 글로벌 엘리트에 의한 미국 일자리 해외 이전과 연방은행이 정치적 목적으로 부추긴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선거 전략에 이용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는 미국의 자원을 이주민에게 돌리지 않을 것이고, DEI 사업과 비판적 인종 이론 교육에 낭비하지 않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트럼프는 심지어 기후 재난까지 이용해 먹었는데, 연방 재난관리청이 이주민에게 예산을 소진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제기되는 주장 하나는 중도 좌파가 우파의 정책을 차용하고, 차별 문제에 관한 설교를 그만두고, 사회적으로 보수적이라는 노동계급의 표를 얻는 데 오로지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이런 주장은 노동당이 애국심과 전통적 가족 가치 담론을 우파에게서 되찾고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방어하고 ‘워크’ 담론, 특히 이주민 방어를 포기하라는 조언으로 나타난다. 키어 스타머 정부는 이러한 정치적 노선을 강경하게 따르면서 이주민을 공격하고 친환경 정책을 포기하고 ‘워크’와 관련된 모든 것에 질겁하면서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악화시키는 공격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진보적 정치를 버리고 노동계급 생활 수준을 더 악화시킨 탓에 원래도 변변찮았던 스타머 정부의 지지율은 이미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경제주의적 정치 조류는 스타머 정부 이전부터 있었다. 그 조류는 신노동당 시기[1994~2010년 — 역자]에 등장해 2010년경부터 ‘푸른 노동당Blue Labour’이라는 그룹을 중심으로 뭉쳤다. 제러미 코빈이 당대표를 지낼 때[2015~2020년 — 역자] 그 조류는 더욱 힘을 얻었는데, 코빈 지도부에 대한 근본적으로 우파적인 비판에 좌파적으로 들리는 근거를 제공해 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주의는 이제 노동당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런던 시의원 운메시 데사이는 뉴스 블로그 〈왼발 앞으로Left Foot Forward〉에 이렇게 썼다.
합법적 이주든, 제도 악용 문제든 이주 관련 문제에 관해 우리가 침묵한다면 결국 다른 자들이 그에 관해 말할 것이다. 이주민 유입으로 인한 공공 서비스 과부하, 애국심, 안보에 관해 우리가 공공연히 논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그 논쟁은 결국 그 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10
‘붉은 벽Red Wall’ 노동당 의원 그룹은 노동당이 이주민 유입 문제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2025년 2월 노동당은 자당 로고 없이 극우 영국개혁당의 색상을 쓴 포스터를 제작해서 노동당의 이주민 추방 성과를 자랑하는 내용을 담았다. 11
이러한 경제주의적 정치 조류의 위험성은 조지 갤러웨이가 이끄는 노동자당Workers Party의 2024년 영국 총선 선거운동과, 독일에서는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당이 벌인 선거운동에서 더 첨예하게 드러났다. 갤러웨이의 노동자당은 계급 문제를 다루고 가자 인종 학살에 반대하면서 트랜스젠더 권리와 이주민들을 공격했다. 갤러웨이는 자신의 당이 “워크가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주장했고, 최근에는 루마니아를 방문해 [여성혐오 인플루언서 — 역자] 앤드루 테이트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한편 바겐크네히트는 독일 좌파당Die Linke이 “기괴한 소수자들”과 기후 운동가들을 지지하다가 노동계급 지지 기반을 소원케 했다고 주장하며 좌파당에서 탈당한 인물이다. 갤러웨이와 바겐크네히트 둘 다 극우를 약화시키려면 이주민 유입을 공격해야 한다고 믿는다. 갤러웨이의 정당은 현재 장기적인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하지만, 바겐크네히트의 정당은 일정 수준 지지를 확보한 상태다.
정체성 정치에 대한 사이비 좌파적 비판은 마크 제임스 레제의 저술에서 이론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12 레제는 차별 문제를 경시하고, 환원론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한다. 레제의 정체성 정치 비판 일부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래서 오히려 위험하다. 실제로는 심각한 결함이 있고, 우파 정치에 맞서지 못하고 매우 반동적인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레제는 정체성 정치가 좌파로 하여금 본래의 역사적 임무에서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핵전쟁 가능성과 기후 재앙이라는 현실 앞에서 좌파가 정체성 정치에 굴복해 “한심한 억지”로 전락해 버렸다고 한다. 13 레제는 정체성 정치가 극우에 맞서는 데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극우의 부활에 일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체성 정치가 문화·사회 상대주의와, 몰계급적인 ‘권력’, ‘역량 강화’ 수사를 선호하다 보니 계몽주의적 보편주의와 계급투쟁에 대한 파시즘적 거부를 의도치 않게 증폭시켰다고 주장한다. 14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문화 전쟁 전사들이 정체성 정치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트럼프의 승리가 정체성 정치의 종말로 널리 해석되는 지금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15
레제는 자유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 모두 불평등과 격차를 다룰 때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경제적 조건과 분리시켜 추상화한다고 지적한다. 16 그런 방식은 차별의 경제적 토대에서 시선을 돌리게 하고,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형식적인 다양성 정책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옳지만 그다지 새롭지 않다. 30년 전 섀런 스미스는 본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정체성 정치를 사회주의 관점에서 잘 비판한 바 있다. 17 10년 전에는 에스미 추나라와 유리 프라사드가 ‘특권 이론의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특권 이론과 교차성 이론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했다. 18 2018년 《히스토리컬 머티어리얼리즘》 특별호의 여러 필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특정 유형의 비유물론적 정체성 정치의 부상과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사이에 분석상의 연관성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고 썼다. 19 정체성 정치 비판을 새롭고 흥미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었지만, 레제는 정체성 정치를 특별히 반동적인 것으로 지목하고 그 때문에 분석 전반이 뒤틀려 있다.
정체성 정치와 제국주의의 관계도 레제가 잘못 비판하는 쟁점의 하나다. 신자유주의 정치인들의 손에서 정체성 정치가 대외 정책의 도구가 되자, 좌파는 인권과 여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식민 침략과 전쟁에 “특히 취약해졌다”고 레제는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좌파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로 지난 1년을 보냈다. 이는 “식민 침략”에 맞선 저항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셰릴 샌드버그 같은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인권이라는 미사여구로 제국주의적 침략과 가자 인종학살을 정당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진보적 사상이 이용되는 것은 오늘날의 정체성 정치에 고유한 현상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에서도 일부 여성들은 제국주의와 동맹을 맺었다. 제국에 충실한 종이 될 능력을 참정권 요구의 근거로 삼으려 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몇몇 여성들이 흑인 남성에게서 백인 사회를 지키겠다는 공약으로 표를 얻으려 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 — 역자]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는 운동에 앞장섰고, 1917년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종전 반대 운동을 벌였다. 천대받는 집단은 지배계급의 우선순위에 순응하려는 사람들과 거기에 맞서려는 사람들로 늘 분열돼 있었다. 근대 이래 적나라한 제국주의를 명분으로 벌어진 전쟁은 거의 없다. 그 전쟁들은 대개 독재나 불의, 파시즘에 맞선 전쟁으로 포장된다.
레제는 195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비관주의에 물든 지식인들이 혁명적 좌파 유산의 폐기를 재가했다”고 (쓸데없이 어려운 말로) 주장한다. 20 당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여러 형태의 정체성 기반 정치가 만나 마르크스주의와 뚜렷이 대립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프의 사상이 새 운동 전반에 스며들어 있고, 마르크스를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마르크스주의를 철저한 환원론인 것처럼 왜곡한다. 마르크스주의가 경제를 인간의 행위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영역으로 취급한다는 식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 결함은 “노동계급이 사회 변화의 근본 동력을 지닌 특권적 주체라는 사상”이라고 라클라우와 무프는 주장한다. 21
이들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만,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간이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방식이 사회의 토대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필요한 것의 생산에 사용되는 기계와 기술은 생산 조직 방식, 필요한 것을 소유·통제하는 주체와 상호작용한다. 이 토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국가, 정치 체제, 교육 제도, 언론 같은 막대한 영향력을 갖춘 제도들이 발전한다. 발전하는 생산력과, 그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 관계 사이에는 거대한 긴장이 형성될 수 있다. 생산 경제에서 큰 위기가 벌어지면 정치 위기와 이데올로기 논쟁도 격화되기 마련이다. 객관적인 계급적 이해관계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한 제도와 서로 모순되는 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저 일자리나 주택 문제를 둘러싼 운동을 벌이면 단결을 향한 객관적인 압력이 형성돼 인종차별이 약화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30년간 산업 쟁의와 사회 전반에서 투쟁이 잇따라 벌어졌지만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계속 지지층을 넓혀 왔다. 인종차별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건설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맞서 싸우고, 폭로하고, 도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제에게 이런 것은 우선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레제는 “사회주의 정치의 핵심은 차별 반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비판과, 거대 자본과 공공 서비스의 탈상품화”라고 주장한다. 22 레닌은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레닌은 차별에 맞서는 것이 사회주의 정치를 노동계급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데서 핵심적이라고 역설했다. “어느 계급이 당하는 것이든 모든 폭정과 차별, 폭력, 학대에 맞서도록 훈련받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정치 의식일 수 없다.” 23 레닌은 이러한 입장을 통해 노동계급의 단결을 강화하고,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이 퍼뜨리는 반동적 사상과 단절하는 것을 도우려 했다. 노동계급이 차별에 맞서 싸우면, 차별받는 집단 역시 노동계급의 투쟁과 혁명에 해방의 길이 있다고 여길 수 있게 된다. 극우의 부상과 그에 따른 인종차별과 이슬람혐오의 부상에 맞서는 길은 거대 자본의 탈상품화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인종차별에 맞서는 대중 운동을 되도록 크게 건설하면서, 그 투쟁과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연결할 혁명적 조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계몽주의와 서구 문명
레제는 계몽주의가 보편주의를 확립시킨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조명하며 사회주의자들이 그 보편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몽주의의 역사적 성과는 인류에게 공통된 사안들에 대한 비종교적이고 합리적인 이해의 공식적·제도적 표현을 제공한 것이라고 레제는 주장한다. 24 그리고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좌파의 근본주의 종교”인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유주의적 보편주의를 공격하고, 사회주의를 왜곡”한다고 힘주어 비판한다. 25 하지만 레제는 자유주의적 보편주의와 사회주의적 보편주의의 결정적인 차이를 흐리고 있다. 26
많은 반反인종주의 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마르크스의 신랄한 노예제 비판과 식민주의 비판을 계승해, 부르주아 혁명을 서술할 때 그와 결부된 노예제와 식민주의라는 야만을 누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다. 27 식민주의의 유산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보편주의는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역설한다. 아사드 하이더는 이렇게 지적한다. “저항적 보편성이라는 프로젝트는 계몽주의를 아무런 비판 없이, 그것을 역사적 맥락 속에 놓지 않은 채 찬양하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그런 찬양은 낡고 진부한 것이다.” 28 이러한 지적은 레제에게도 해당한다.
레제는 이렇게 비판한다. “한때는 백인 중심적으로 보이는 페미니즘이나 계급 환원론적으로 보이는 마르크스주의에 맞서 교차성 이론을 지지하던 부유한 학자들과 기관들이, 이제는 계몽주의에서 파생된 보편주의적 대중 정치 전반을 백인, 기독교, 유럽 식민주의의 산물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29 레제는 특권 이론, 비판적 인종 이론, 교차성 이론, 탈식민주의 연구가 이제 단지 서구의 정전正傳을 해체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유주의 제도 전반과 대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0 레제가 공격하는 학자들 중에는 미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에 초점을 맞추던 전통적 논의보다, 노예들이 영국 제국과 프랑스 제국을 패퇴시킨 아이티 혁명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탈식민주의·반인종주의 학자들도 있다. 31 그러나 노예들이 자기 해방에서 한 구실을 발굴하는 작업은 레제의 주장과 달리 “보편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문제 제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존의 불완전한 보편성을 완성하는 작업이다.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합리성과 과학적 탐구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쓸어버리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일정 수준 확보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었다. 그들은 낡은 질서에 맞서 상퀼로트[프랑스 혁명 당시의 혁명적 민중 — 역자]와 도시 빈민을 동원하기 위해 변화를 약속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새로운 지배계급으로서 권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유산은 매우 모순적이었다. 부르주아적 권리는 정치·경제적 권력의 자의적 남용에 맞서는 방패이자 지배적인 사회 권력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수단이었다. 32 계몽주의의 ‘보편적’ 가치들은 여성, 빈민, 노예를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배제했다. 부르주아 혁명은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냈다. 이는 정치적 변혁만이 아니라 경제적 변혁도 필요함을 보여 줬다. 그럼에도 부차화된 집단들은 부르주아 혁명의 해방적 요소를 지지할 수 있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계몽주의에 대한 대응을 크게 지지, 폐기, 변혁으로 구분한다. 33 자유, 평등, 박애 약속의 불완전함은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사회주의적 비판, 이후에는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 파고들어 발전할 빈틈이 됐다. ‘블랙 자코뱅’을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서사 속에 처음 집어넣은 사람도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CLR 제임스였다. 공산주의자 학자 클라우디아 존스는 흑인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삼중 억압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계몽주의의 탈식민화는 계몽주의의 성과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성과를 더 완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레제는 자신의 경제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이해에 기초해 오늘날 벌어지는 운동들에 반동적 태도를 취한다. 그는 “워크 좌파의 히스테리”를 비난하며 우파의 언사를 재탕하고, 우파 문화 전사들이 만들어 낸 상투적인 편견을 되풀이한다. 34 인종차별에 맞선 싸움이 정체성 문제일 뿐이고 계급 문제를 흐린다면, 국가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지지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래서 레제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M’ 운동을, 부패한 지도부가 조종하고 신자유주의 권력층의 지원을 받는 “인종 문제를 이용한 뒷배들의 정치 거래” 사례라고 비난한다. 35 게다가 레제는 부패를 BLM 고유의 문제로 취급하면서, 그것이 많은 운동이 경험한 바 있는 문제이고 특히 미국 노동운동 지도부의 고질적인 문제임을 무시한다. 차별받는 집단과의 연대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이론은 무엇이든 시급히 교정돼야 한다. 36
레제는 자신이 말하는 “보편적 쟁점”에 집중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변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보편적 쟁점”의 사례로 레제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갖는 권리, 노동조합 조직화, 고용, 사회 복지, 보건 의료, 주택, 교육, 아동·노인 돌봄 문제 등을 든다. 37 이러한 전략은 레제가 격렬히 반대하는 정체성 정치를 받아들이는 셈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차별받는 집단만이 그 차별에 맞설 이해관계가 있다는[그러므로 사회주의 전략은 “보편적 문제”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 역자] 가정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차별에 따른 분열은 노동계급 전체에 해롭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노동계급 구성원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맞서 싸울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도 “보편적 쟁점”이다. 불평등에 맞서지 않는 노동계급 운동은 자신의 요구를 이루지 못할 것이고 사회주의 정치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정체성에서 빠진 정치를 되돌려 놓기
정체성 정치가 지향하는 운동은 실재하거나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인종, 종교, 민족, 사회적 지위, 문화 정체성을 중심으로 조직돼, 실재하거나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운동이다. 차별당하는 경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차별, 불평등, 폭력에 대항하는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공통의 정체성은 대중적 정치 운동의 기초가 될 수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체성 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 조직을 결정하는 비인격적 힘을 탐구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여기는 주제들에 대해 활발히 논의해 왔다.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 미국 남부의 노예제에 맞선 투쟁, 영국의 제국주의적 인도 지배 등을 다룬 글을 썼다. 클라라 체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성차별 문제를 탐구한 여성들의 일부였다.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정체성’이 독자적 분석 틀로 자리잡은 것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정체성 정치’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벌어진 새 저항 운동들과 금세 결부됐다. 정체성은 활동가들로 하여금 차별이 단지 제도나 기업 내의 차별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들의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심리적 차원이 있다는 점을 탐구할 수 있게 했다. 38 블랙 파워 운동, 여성해방 운동,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부상은 식민 지배와 인종차별, 성차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자극했다. 스토클리 카마이클과 찰스 V. 해밀턴은 《블랙 파워》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문화적 테러리즘이라 불려야 마땅한 행위, 즉 인종차별에 대한 사죄를 빙자한 백인들의 자기 정당화에서 비롯한 강탈로부터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우리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규정하고 이를 인정받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39
많은 젊은 급진적 투사들에게 정체성에 기초한 경험은 차별을 이해하고 차별에 맞서는 집단적 전략을 모색하는 첫걸음이었다. 격변의 시기를 겪을 때 사람들은 그 전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여러 형태의 차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40 차별에 맞선 운동은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지만 결정적 치명타를 가하지는 못한다. 1968년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미국 노동계급이 투쟁에 뛰어들어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었어야 했다. 당시 대규모 파업과 기층의 저항이 벌어졌지만, 미국 지배계급은 베트남에서 철군하고 노동조합 지도부와 손잡음으로써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대중운동은 자신들이 받는 차별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데 실패했다. 1980년대 들어 지배계급이 맹렬히 반격하고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저항이 후퇴하면서 정체성 탐구는 사회 변화를 위한 발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돼 버렸다. 이러한 목적 그 자체는 일관된 사상 체계로 발전해 평등권 운동, 반제국주의 운동, 노동계급 투쟁이 후퇴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정체성 정치는 “특정 정체성 집단들을 도덕적·정치적 우위에 놓고, 다른 집단들은 암묵적 또는 명시적으로 열위에 놓는 것”을 수반한다. 41 이것은 정체성을 불변하는 성격과 이해관계를 지닌 영구적인 공동체로 단순화하며, 모든 구성원이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공통의 경로를 공유한다고 본다. 이러한 이해에는 또한, 정체성이라는 것이 정체성 집단 내의 정치적·경제적 분단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정치적 접근법은 직접 살아 본 경험이 사회에 대한 통찰과 진정성을 갖게 되는 데서 핵심적이고 탐구, 분석, 논쟁이 아닌 느낌이 더 나은 전략의 길잡이가 된다는 사상으로 이어진다. 경험은 자신이 겪는 차별의 작동 방식에 관한 통찰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이 그 차별을 유지시키는 더 은밀한 구조들을 언제나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정체성 정치의 중요한 한 측면은 교차성 이론이다. 교차성은 차별받는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연대를 구축하려는 열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교차성 이론은 다른 집단의 염원을 배척하고 반동적 결론에 이르기 쉬운 보수적이고 단일 쟁점 중심적인 유형의 정체성 정치가 아닌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러한 단일 쟁점 중심의 대표적 사례로는 트럼프를 “페미니즘의 영웅”, “페미니즘의 아이콘”이라고 치켜세우는 트랜스젠더 배척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그들은 트럼프가 트랜스 여성을 여성 스포츠에서 배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트럼프를 찬양하는 것이다. 42 교차성 개념은 이처럼 유해한 편견을 극복하는 중대한 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레이스 캠벨, 루이즈 톰슨, 클라우디아 존스 등 차별의 다차원적 측면을 이론화하려 한 흑인 여성들의 노력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1980년대에 킴벌리 크렌쇼, 앤절라 데이비스, 벨 훅스 등이 발전시킨 교차성 모델은 오늘날 차별 반대 투쟁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의 기초가 됐다. 교차성 이론가들은 인종, 젠더, 계급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풍부한 저작을 남겼다. 크렌쇼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사방에서 오가는 교차로의 교통처럼 상호작용한다는 견해를 제시했고,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교차성 개념을 더욱 정교화해 ‘서로 맞물린 시스템들’과 ‘지배의 매트릭스’에 관해 묘사했다.
교차성 이론가들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자주 해 왔다. 마르크스주의를 환원론이라고 일축하는 교차성 이론가들도 있지만, 계급을 설명하려고 마르크스주의를 참고하는 교차성 이론가들도 있다. 한편, 교차성 이론이 차별과 관련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에 필요한 교정책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있다. 사회주의자 섀런 스미스는 교차성 이론이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실천을 보완하고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교차성은 차별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이고, 착취를 이해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역할이다. 43
하지만 교차성 모델에는 난점도 있다. 교차성 이론가들은 차별들의 위계를 세우기를 거부하고 그에 따라 계급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을 다른 차별보다 특권화한다거나 모든 문제를 계급으로 환원한다고 비난할 때가 많다. 44 교차성 이론은 차별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원인이 있고 마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물리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차별들이 저마다 별개의 원천들(가부장제, 백인 특권, 이성애 규범성 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 재생산을 개별 가정에 맡기고 노예제, 제국주의를 낳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고 본다. 45 차별과 착취를 서로 별개의 근원이 있고 따라서 해결책도 별개라는 식으로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46
이를 둘러싼 논쟁은 최근 ‘교차성 혐오’라는 현상으로 인해 더욱 시급한 것이 됐다. 세계 각지의 극우는 연합 전선을 구축하면서 ‘젠더’를 온갖 쟁점을 포괄하는 용어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성소수자 권리, 재생산권,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에 대한 반대, 트랜스젠더 권리, 성적 자유, 가족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극우는 ‘젠더 이데올로기’ 반대를 종교적 보수주의자, 네오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 이슬람 혐오자, 기후 변화 부인론자를 하나로 묶는 ‘상징적 접착제’로 활용하고 있다. 47 주디스 버틀러가 이러한 분석을 발전시켰는데, 2024년 출간한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는가?》는 정치적 우파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파괴적인 힘을 지닌 환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48 그러한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람들을 겁줘서 순응시키고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증오를 취약한 외부 집단 탓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서다. 온갖 것을 망라하는 ‘젠더’라는 유령 외에도 상이한 집단들을 지칭하는 다른 표적들도 있다. ‘문화 마르크스주의자’, ‘근본 없는 세계주의자’가 그런 사례다. 이러한 ‘혐오의 교차성’은 성차별, 인종차별, 유대인 혐오, 동성애 혐오, 민족주의를 한데 묶는다. 49 트럼프와 극우 세력은 단순히 흑인, 여성, 이주민, 무슬림, 유대인,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동성애 혐오자가 되고, 기후 변화 부인론자가 성차별주의자가 되고,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이 이주민 혐오자가 되도록 부추긴다. 50 정체성의 교차성으로는 혐오의 교차성을 극복할 수 없다.
트럼프는 미국의 정·재계에 깊게 뿌리 박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사상과 단절했다. 51 그는 개인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상이한 집단들의 동맹을 구축한다. 그리고 교차성 혐오와, 국수주의와 백인 우월주의 같은 집단적 정체성을 그 동맹의 기초로 삼는다. 트럼프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유주의적 권력자들에 맞서 단결한 ‘민중’이 있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포퓰리즘적 미사여구를 사용한다. 한때 계급투쟁이 아닌 대안으로 포퓰리즘을 옹호했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파도 나름의 포퓰리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거짓된 포퓰리즘이 그가 친기업적 의제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차별을 끝장낼 수 있을까?
경제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더 단순했던 과거에 대한 우파의 향수에 동조할 때가 많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답고’, 노동계급은 남자답게 술 마시고 노조에 가입하고 노동당에 투표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마크 레제는 마르크스주의가 우세하고 모두가 붉은 깃발 아래에서 해방을 위해 싸우던 어떤 이상화된 과거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마르크스주의는 국제 노동운동 내에서 언제나 소수파였다. 거대한 노동계급 투쟁은 19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842년 총파업, 1880년대의 신新노동조합 운동이 그런 사례다. 노예제 폐지 운동, 참정권 확대 운동, 아일랜드·이탈리아·폴란드·인도 등지에서 벌어진 민족해방 운동과 같은 사회 운동들 또한 그 시대의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놀라울 정도로 전투적이고 오래 이어진 여성 참정권 운동은 사회주의자 여성들과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의 선구자들(이들은 하녀와 귀부인이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한다고 주장했다)로 첨예하게 분열돼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국제 노동운동에 영향력이 있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언제나 더 넓은 운동 안에서 자신들의 전망을 관철하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19세기 마르크스주의의 해방 전망을 잿더미로 만든 것은 바로 스탈린주의였지만, 레제는 그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폭력과 학대의 경험 때문에 성차별의 책임을 남성에게 돌리는 것은 전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비슷한 경험을 한 흑인들이 백인을,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를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은 친구 사이, 지역 사회, 직장에서 겪는 다른 경험들과, 자본주의와 그 제도들 속에 있는 더 심원한 불평등에 의해 도전받기도 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차별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운동과 운동을 갈라놓는 벽이 아니라 운동들을 잇는 다리를 놓으려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 중심성과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까닭은 가장 강력한 운동이 최대한의 단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운동을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차별받는 이들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단결을 바란다.
계급 문제에 집중하고 차별 문제를 경시할 것인가, 차별에 맞서는 데 집중하고 계급 문제는 외면할 것인가 하는 잘못된 이분법을 거부해야 한다. 계급 문제와 차별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다. 차별은 전체 노동계급을 약화시키고, 반항아 행세를 하며 절망을 이용해 먹는 억만장자들에 맞설 노동계급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차별에 맞서야 하며, 노동계급이 자신의 집단적 힘을 실현하도록 그들의 자신감을 키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 모든 형태의 차별과 착취를 일소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는 유일한 집단은 노동계급뿐이다.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은 국가의 타도와 계급 시스템 전반의 해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1905년 러시아 혁명을 경험한 뒤 이렇게 썼다. “혁명은 천대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축제다. 대중이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순간은 혁명 외에는 없다.” 52 진정한 혁명의 핵심은 사회의 경제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즉,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인간의 실제 필요에 맞추어 생산을 재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혁은 사회의 모든 측면(사람들이 옷을 입고, 말하고,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고, 창의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변화가 일어날 때 가능해지고 그러한 변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혁명은 인류의 가장 나은 면을 일깨운다. 바로 집단적인 연대 정신이다. 모든 형태의 차별은 폭로되고 도전받고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질 것이다. 1923년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혁명이란 무엇보다도 대중 안에 잠들어 있는 인간다운 품성을 깨우는 것이다. 품성 따위는 없다고 여겨지던 바로 그 대중들 속에서 말이다.” 53 자본주의가 끝나야만 비로소 진정한 인간의 자유가 시작될 수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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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전에 쓰였다.
출처: Judy Cox, ‘Class struggle and identity politics in the era of Trump’, International Socialism 186(Summer 2025)
↩
- 이 글에 유익한 의견과 조언을 준 조셉 추나라, 이언 퍼거슨, 도니 글럭스틴, 롭 호브먼, 커밀라 로일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 Lorraine Ali, 2024. ↩
- Green and King, 2024. ↩
- Yglesias, 2022. ↩
- Marcetic, 2024; Lavietes, 2024. ↩
- Kapur, 2025. ↩
- Muller, 2024. ↩
- Muller, 2024. ↩
- Ashely, 2018. ↩
- Desai, 2024. ↩
- Penna, 2025. ↩
- 레제는 여러 책을 썼다. 최근 블로그 글들에서는 [의료 보험사 CEO를 총격 살해한] 루이지 맨지오니를 서민 영웅처럼 떠받드는 좌파들과, 우파의 부상을 노동자들 탓으로 돌리는 중간계급 자유주의자들을 함께 비판하고 있다. ↩
- Leger, 2024, p4. ↩
- Leger, 2024, p2. ↩
- Hewett, 2024; Tiedmann, 2024. ↩
- Leger, 2024, p5. ↩
- Smith, 1994. ↩
- Choonara and Prasad,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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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clau and Mouffe, 1985, p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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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ider, 2019, p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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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ger, 2024, p192. ↩
- Leger, 2024, pp63-64. ↩
- Azouley, 2019. ↩
- Haider, 2019, p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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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ger, 2024, p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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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yed,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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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lar, 2017. ↩
- Salar, 2017. ↩
- Harman, 2018, p1. ↩
- Garnham, 2021. ↩
- Turner, 2025; Williams, 2025. ↩
- Smith, 2013. ↩
- Bohrer, 2018, pp49-52. ↩
- McNally, 2017. ↩
- 이러한 사례로는 Gimenez, 2018을 보라. ↩
- Graff and Korolczuk, 2021. ↩
- Butler, 2024, p4. ↩
- Dupuis-Deri,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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