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이론 심층 탐구
억압과 마르크스주의 *
‘억압’은 체계적인 차별과 천대를 뜻하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이 글에서 말하 는 ‘특정 (형태의) 억압’은 계급이 아닌 다른 기준(성, 인종, 국적, 성적 성향, 종교, 사상 등)에 따른 억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혁명기에는 부르주아 체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요한 비참하고 고립된 삶이 사라진다. 혁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해방시킨다. 사람들은 체제의 존재 자체에 집단으로 도전하기 시작한다.
이 말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혁명의 물결이 비극으로 끝난 1973년 칠레에 대해 쓴 것이다. 당시에 저항은 결국 충분히 전진하지 못했고, 피노체트와 미국 CIA가 벌인 반혁명적 피의 숙청으로 분쇄됐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이 말은 마르크스주의 억압론의 정수를 잘 요약하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의 기본 원칙은, 억압에서의 해방이 자본주의에서 해방되려는 투쟁과 병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은 매우 간단하기도 하지만, 전혀 간단하지 않기도 하다. 오늘날 억압에 맞선 투쟁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는 좌파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라 할 수 있다.
피억압자들의 투쟁과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밀접하게 연결된 때가 있었다. 억압에 맞선 투쟁은 여러 면에서 1960년대 좌파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 미국의 공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일으킨 쿠바 혁명 방어 운동과 함께, 한 세대의 혁명가들이 성장했다. 1960~70년대에 미국과 캐나다와 서구 사회 전체에서 여성 해방 운동이 분출해 지독하게 보수적인 1950년대의 사회적·성적 상식들을 깨뜨렸다. 1969년 뉴욕에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은 현대 동성애자 해방 운동을 탄생시켰다.
캐나다 연방 정부에 대항한 퀘벡해방전선FLQ의 투쟁은 전 세계 피억압자들의 투쟁과 비슷했다. 1970년에 연방군 탱크가 계엄령하에서 퀘벡으로 진격했고, 이 잔인한 탄압을 테러 근절을 위한 보안 조처라고 둘러대자, 전국의 사회주의자들이 퀘벡에서 벌어지는 억압 반대 투쟁에 동참했다. 같은 시기에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레드파워 운동은 캐나다 국가의 인종차별적·제국주의적 정책에 도전했고, 북아메리카 국경의 합법성에 반대했다.
3 마르크스주의는 인종차별에 맞서는 전략적 수단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흑인 단일 민족주의와 코넬 웨스트 4 의 급진적 민주주의 개념을 조합한 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5 해방을 위한 투쟁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과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 멀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르크스주의 억압론을 비롯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입장에 대체로 반대했다. 예를 들어 하워드 위넌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단결 투쟁은 물론이고, 협력적 대화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오늘날 억압에 관한 주류 이론들은 명백히 마르크스주의와 동떨어져 있는데, 일부는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대부분은 비마르크스주의 입장이다. 예를 들어, 세드릭 로빈슨은 마르크스주의 방법과 전망이 근본적으로 인종 해방 이론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현존하는 모든 정치적·문화적 프로젝트의 인종적 측면을 밝히는 데 필요한 논리를 제공하는 분명한 단일 원칙이나 중심 과정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적 질서 전체에 맞선 총체적 도전에서 비롯한 중심 갈등이 없다 보니 인종적 범주, 의미, 정체성은 결국 ‘탈중심화’한다.
7 여성학은 점차 대학교 교과 과정에 편입됐는데, 이는 고등교육·연구 과정에 스며 있는 여성차별을 보면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한 일이고, 그만큼 성취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방법에 입각한 억압 철폐 투쟁과 거리를 두는 페미니즘 이론이 많아졌다.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제3세계주의를 받아들이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모두 같은 처지에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도전했고, 특히 백인 부유층 여성들의 경험을 일반화한 주류 견해에 반대했다. 여성 해방 운동이 인종차별에도 도전해야 한다는 견해를 정립하려는 광범한 문헌들이 출판됐다. 8 일부 저자들은 특히 보편적 가부장제 이론에 도전했다. 9 그러나 억압을 만들어 내는 체제에 맞서 남성과 여성, 흑인과 백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단결한 노동계급 운동을 건설하려는 전략적 발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억압의 다양한 형태를 각각 별개의 정체성으로 여겼고, “환원 불능의 다원적인 것”, 즉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포괄적 운동으로 … 도저히 통합될 수 없는 변별적 투쟁 영역”들로 여겼다. 10
여성 해방 운동을 보면, 보편적 가부장제 이론 — 남성들이 공동으로, 체계적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조건 속에서 남성 권력이 작동한다는 견해에 바탕을 둔 — 이 1980~90년대에 널리 확산됐다.이런 정치적 유산遺産을 배경으로 반자본주의·반전 운동이 떠올랐다. 새천년 초에 국제 반자본주의 운동이 출현한 이후로 억압에 반대하는 분노가 표출되고 그 영향력도 커졌다. 게다가 반인종주의와 반제국주의는 2003년에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과 함께 영향력이 커진 주요 사상이다. 강력하고 억압적인 국제 자본주의 체제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 단결해 싸워야 한다는 정서가 새로운 좌파의 기본 전제가 됐다. 서로 다른 억압의 차이를 뛰어넘어 광범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정서가 커지고 있다.
11 국제 연대의 정치를 바탕으로 단결한 대중 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하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사상의 유산과 뚜렷이 대비된다. 12 전체적으로 보면, “정체성 정치”는 — 이를 단일한 사상 체계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 좌파적 관점에서 억압의 중요성을 인식한 주요 이론적 학파였다. 그러나 이들은 완고한 보수 이데올로기의 반격에 맞서 억압 반대 투쟁의 여지를 확보하기는 했지만, 13 핵심적인 전략적 문제들을 제기하지도 못했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급진적이고 단결된 대중 행동에 대한 염원을 사로잡지도 못했다. 14 나오미 클라인은 그 좌절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러나 억압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제시하는 이론들은 오늘날 연대의 분위기에 뒤처져 있다. 이런 주장들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좌파들의 특징인 분열의 흔적이 공통으로 담겨 있다.1990년대 중엽의 베네통 광고들은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인종차별에 도전하는 재치 있고 아름다운 광고와,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고통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괴기한 광고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지만 한때 대중 매체를 개혁하면 세상이 더 정의로워질 것으로 생각했던 활동가들이 보기에, 다음의 사실이 매우 분명해졌다. 즉, 정체성 정치는 체제를 전복하는 것은 고사하고 체제에 맞서 싸우려 하지도 않았다. 기업 광고가 새로운 산업으로 등장할 때 정체성 정치는 이 산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6 그러나 소련에서 스탈린 체제가 득세한 1929년부터 그 체제가 붕괴한 1989년까지 60년 동안 소련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주창했지만,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고무적인 본보기가 될 수 없었다.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나 이 전통을 따른 러시아 혁명 초기의 실천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오히려 스탈린주의는 이런 해방 운동을 탄압하는 반혁명적 운동으로 시작됐다. 17 1960년대의 해방 운동은 공산당의 바깥에서 또는 공산당에 반대하며 성장했는데, 당시 공산당들은 스탈린주의 때문에 완전히 보수화했다. 18
이런 상황에서 억압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갖가지 억압에 반대하는 일관된 이론과 전략의 결핍은 운동이 단결하는 데 위험 요소였다. 많은 활동가와 좌파 문헌은 억압에 맞서는 데 마르크스주의가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스탈린주의의 오래된 유산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 1930년대 공산당 활동가들은 피억압자들의 투쟁이 전진하는 데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사실, 마르크스주의는 억압에 맞선 투쟁에서 교훈을 이끌어 낸 이론이다.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해방, 즉 억압·소외·착취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과학이다. 사실, 우리가 억압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즉 억압은 무엇인지, 억압은 어떻게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 내부에서 분열을 조장하는지, 억압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지를 이해한다면, 억압에 맞선 투쟁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이 본질적으로는 서로 연관돼 있으며, 각 투쟁의 전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아래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억압에 대해 일반적으로 살펴보겠다. 나는 특정 형태의 억압과 이에 도전하는 특정한 전략에 초점을 두지 않고, 어디까지나 이것들을 일반화된 억압 이론의 사례로 다룰 것이다. 특정 형태의 억압과 이에 도전하는 특정한 전략은 마르크스주의와 억압을 논의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억압 일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억압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미 1백50년 전에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는 길을 닦았을 뿐 아니라, 계급 사회에서 인류가 해방되는 데 필요한 현실적 전략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억압론의 요소들을 연구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에서의 억압을 이해하려면 핵심적으로는 억압이 계급 문제이고, 노동계급의 여러 부문들을 서로 반목시킨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노동계급의 일부는 지배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거짓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신들이 다른 부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억압은 계급 지배에 도움이 되고 사회적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의 발목을 잡는다.
예를 들어, 자신들이 흑인 노동자들을 억압해 이득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백인 노동자들은 자본의 일을 거드는 셈이다.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와 집을 빼앗아가고 거리에 범죄와 타락을 불러오는 적敵이 자기 계급 내부의 흑인들이라고 배운다. 다른 예를 들면, 남성 노동자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므로 차별을 유지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억압을 이해하는 데서 더 나아갔다. 그들은 계급 사회를 통틀어 억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고찰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말했듯이 그들은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서 모든 피억압 계급을 살펴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배자들이 어떻게 지배할 수 있게 됐는지를 정확히 규명해서 인간 해방을 위한 전략을 도출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기본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경제적 권력(이하 경제력)에 의존하는데, 그들의 경제력은 사회적으로 확립된 실정법으로 뒷받침되고 사회 전체의 생산수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경제력이 계급 지배의 궁극적 특징이고 결정적 토대다. 그러나 계급 사회에서 경제력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상도, 법률도, 국가 기구 등도 작용하는데, 그 작용 방식은 시기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심지어 생산양식이 똑같은 사회에서도 그렇다. 억압은 계급 지배의 이 두 번째 요소의 특징이다. 억압은 계급 지배에 필요한 상부구조의 일부다. 스탈린주의 저술가들이나 1970년대 비평가들의 해석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 과정과 직접 관련 없는 억압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여러 관계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즉 어떻게 서로 의존하거나 모순을 일으키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억압을 두 가지 형태로 나누었다. (1) 계급 억압. (2) 계급의 일부가 겪는 특정한 억압. 계급 억압은 피착취자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의 일종이지만, 실업자들처럼 직접 착취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억압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피억압 계급들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 프롤레타리아·실업자·농민·소작인·노예·농노 등을 뜻했다. 노동계급을 서로 이간질하는 특정 억압은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켜서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집단적 능력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착취와 이윤지상주의 체제인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관계는 이런 경향과는 반대로도 기능하는데, 즉 노동자들을 집단적 공동 행동으로 내몰아서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
억압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에는 모순된 경향들이 기본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 계급 내부의 특정 억압에 바탕을 두고 노동자를 서로 분열시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한 계급으로서 공통의 억압을 경험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배계급은 특정 집단에 대한 특정 억압을 부추겨 피억압 계급을 분열시켜야 하는데, 피억압 계급이 단결하면 지배계급의 지배력이 끝장나기 때문이다. 특정 억압 자체는 계급적이지 않다. 인종·성·국적·종교 등 비경제적 기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억압은 계급을 초월해서 적용되며, 계급과 무관하게 피억압 집단의 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분열 때문에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은 가장 억압받는 계급이다. 그리고 거기서 득을 보는 것은 지배계급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억압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하나의 책으로 펴내지는 않았다. 이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억압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비난받는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억압을 다룬 방식 자체가 억압의 본질적 특징을 보여 준다. 즉, 억압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특수하다는 것을 말이다. 역사적 특수성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글들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한데, 그들의 글은 대체로 당시에 벌어진 논쟁을 바탕으로 쓰였다.
20 국가와 가족의 기원, 21 유대인 문제, 22 아일랜드 민족 문제, 23 노예제 24 등의 쟁점을 다룬 글 모두에서 억압이라는 주제가 거듭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거듭거듭 반복한 논지는 어떤 집단이든 계급의 일부가 억압당하면 계급투쟁 전체가 발목 잡힌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억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 노예무역을 재개하려는 “리틀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를 노예무역국으로 바꾸는 것이 프랑스를 노예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1847년에 엥겔스는, 프로이센에 맞서 일어난 1830년 폴란드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연설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다른 국민을 억압하는 국민은 자유로워질 수 없다.” 1870년에 마르크스는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를 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민족을 노예로 삼는 민족은 자신이 찰 족쇄를 만드는 셈이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미국의 노예제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흑인들이 낙인찍히는 곳에서 백인 노동자가 해방되지는 못한다.”
억압과 계급 사회를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저 일반적 개념을 나열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다급한 전략적 함의도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연구한 억압은 모두 당시에 벌어진 투쟁·논쟁과 관계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억압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계급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민주적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도록 싸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계급 사회 자체를 없애려고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해했다. 따라서 계급 사회 내부의 분열인 억압을 제거하려고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억압을 만들어 내고 억압에 의존하는 계급 사회 자체를 없애려고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여성 억압의 기원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는 여성 억압이 계급 사회와 국가가 탄생하는 역사적 과정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공책과 계급 출현 이전의 사회 편제를 연구한 초기 저작들에 바탕을 두었는데, 뉴욕 주에서 거주하던 이로쿼이족 원주민을 연구한 루이스 모건의 책이 두드러진 보기였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당시 여성 억압과 해방에 관한 가장 선진적인 책이었다. 오늘날에는 인류학 지식도 더 진보했고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확한 자료 연구 기술도 발달했는데, 최근 밝혀진 사실을 보더라도 사회 편제와 여성 억압의 관련성은 배격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증됐다.
여성의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880년대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 사회 내부의 특수한 여성 억압 구조를 파악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성 억압의 근원이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수천 년 전에 생겨났지만, 자본주의의 임금노동 관계 속에서 핵가족이라는 재생산 형태로 통합됐다고 생각했다. 또한 엥겔스는 완전한 양성평등은 인류 발전에 필요한 현실적 목표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라는 굴레 안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성 억압의 폐지는 계급 사회의 지배에 도전하는 데 필수적인 일부였다.
26 라는 짧은 논문을 쓰면서 마르크스는 종교의 자유가 해방의 전제조건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해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유대인에게 보장하는 민주주의적 권리를 무조건 분명히 지지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또한 유대인이든 유대인이 아니든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종교적 감정이 피억압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상황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방은 사후에야 일상의 억압에서 벗어나리라고 믿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이룰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고통과 빈곤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대인 차별을 반대하는 투쟁에도 참여했다. 1843년에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이미 1843년에 마르크스는 국가가 제거한 개인적 선택의 문제인 종교적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민주적 권리의 보장이 해방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치적 해방은 확실히 큰 진보다. 이것은 사실, 인간 해방의 종착역은 아니지만 기존 질서의 틀 안에서 도달할 수 있는 인간 해방의 종착역이기는 하다. 여기서 말하는 해방은 당연히 진정한 해방, 실질적 해방이다.
28 경제학자, 사전 편찬인, 시인이었다가 경찰 행정관과 법률 기록 보관인을 지낸 이 사람은 자신이 죽고 나서야 자기 글을 출판하라고 신신당부했고, 결국 8년 후에야 이 책이 출판됐다.[이 사람의 이름은 푀셰다.] 푀셰는 해방된 사회라고들 하는 혁명 후의 프랑스에서도 자살로 내몰린 사람들이 계속 죄인 취급 받는 것에 분개했다. 마르크스는 이 주장에 매력을 느꼈고 프랑스의 자살 사건들에 대한 푀셰의 글을 선별해 번역하고 편집해서 유럽의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마르크스의 억압론 가운데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사례는 자살에 대한 마르크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살을 다룬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한 프랑스 경찰관의 유작遺作을 독일어로 번역했다.29 그리고 “사람들은 개인의 삶에 존재하는 악마에게서 벗어나는 최후의 방안으로 자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30 마르크스가 강조한 구절에서 푀셰는 특히 부르주아 도덕이 여성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푀셰는 자신이 기록한 자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푀셰 말을 인용했다. “혁명은 전제정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자의적 폭력의 원흉으로 비난하는 악마가 가족 안에 있고, 그 속에서 악마는 혁명과 유사한 위기를 일으킨다.”자살은, 사랑이 연인들의 자연스러운 감정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조건, 즉 수전노가 금을 긁어모으듯 질투심 많은 남편이 아내가 남편의 재산 목록 가운데 하나이므로 아내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적 조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살 사례 네 개를 분석하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데, 그 중 세 개는 젊은 여성의 자살이었다. 푀셰는 희생자를 비난하는 사회, 흔히 불륜을 이유로 무고한 여성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에 분개했다. 첫 번째 사례는 약혼자와 함께 밤을 보낸 여성인데, 이 여성은 혼전 성관계를 했다고 낙인찍혀 공개적으로 비난받았다. 수치심 때문에 이 여성은 세느강에 몸을 던졌다. 두 번째 사례는 결혼한 여성인데, 이 여성은 남편의 학대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 세 번째 사례는 18살 소녀인데, 이 여성은 이모부와 성관계를 맺은 후에 임신한 사실을 알고 의사를 찾아가 낙태를 요청한다. 의사는 요청을 거절하며 자신은 이 일에 연루되기 싫다고 말하는데, 나중에 의사는 소녀가 자살한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는 의사가 낙태 시술을 해 주지 않으면 자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말대로 실행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살론》 영어판 편집자인 케빈 앤더슨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844년 이후 마르크스가 간직한 혁명적 휴머니즘이 이 책에서 더 빛을 발한다. 마르크스는 순진하게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는 당대 부르주아 캉디드[프랑스어로 순진하다는 뜻으로, 이 세상이 최선의 세상이라고 믿는 낙천적 세계관을 조롱하고 사회적 부정·불합리를 고발하는 볼테르 소설의 주인공 — 옮긴이]들의 수준으로 노동계급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인간 해방이라는 생각을 조롱한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인간 관계의 전면 변혁을 강조한다. 그는 사회 계급을 폐지하고, 소외된 노동을 근절하자고 주장하며, 억압의 또 다른 형태인 가족 제도를 비판한다.
억압에 관한 마르크스의 매우 훌륭한 관점은 아일랜드 민족 억압과 미국 남북전쟁기의 노예제와 인종차별에 대해 쓴 글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사례에서 마르크스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와, 특히 인종차별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상식이 되는지를 밝혔는데, 첫째 사례는 영국 노동자가 계급의 차이를 잊고 영국 제국주의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었고, 둘째 사례는 미국 남부 노동자가 남부 농장주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34 그런데 억압으로 득을 보는 자들은 언뜻 보면 노동계급 내의 억압당하지 않거나 억압하는 특정 부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배계급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분석한 자신의 일반 이론이 특정 노동자 집단 사이의 실제 관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요약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노동자들을 서로 이간시킨다(노동자들이 임금을 대가로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겠다고 서로 경쟁하게 만든다)는 것과, 노동자들 사이의 이런 경쟁이 구체적인 정치적·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런 형태의 사회적 관계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법칙과 직결된 관계들과 연관되지만 그와 독립적이기도 하다. 억압적 사상과 실천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강화하고 심화시킨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이해하는 방법을 확립했다. 즉, 해방을 위한 혁명적 전략에 필요한 독창적 수단을 제공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서로 다른 세 형태의 인간 관계, 즉 인간이 겪는 고통의 세 가지 형태를 설명했다. 소외와 착취와 억압이 그것이다. 이 셋은 상호작용하지만, 서로 같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이런 견해에서 출발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창출한 노동계급이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인데, 그들이 고통받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 해방을 위한 운동을 단결시킬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소외 소외는 헤겔과 독일 관념 철학에서 나온 개념인데, 이는 인간(모든 인간)과 그들 자신의 잠재력 사이의 전반적 간극을 말한다. 계급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소외를 겪는다. 이 소외 개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0년대에 쓴 글들과 《자본론》(《자본론》은 마르크스 생전에는 제1권만 완성됐다)의 초고 격인 《그룬트리세(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매우 분명히 드러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지적 활동에서 소외론을 전제조건이나 배경 음악처럼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고통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거나 피할 수 없는 신의 섭리라거나 인간의 활동 영역 밖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에 도전하고자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순들은 인간의 소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준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기로, 전 세계 인구의 의식주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물질적 잠재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가난과 굶주림도 날마다 증대한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이 존재하지만, 핵전쟁이나 자원 고갈의 가능성도 동시에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모순을 자본주의 체제의 유년기에 발견했다.
한편, 과거 인간 역사의 시대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산업과 과학의 힘이 인간의 삶에 나타났다. 다른 한편, 로마 제국의 공포를 능가하는 쇠퇴의 징후도 존재한다. 우리 시대에는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처럼 보인다. 인간의 노동을 덜어 주고 생산성을 높여 주는 놀라운 힘을 가진 기계가 있는데도 우리는 아사와 과로를 목격한다. 부의 최신 원천이 빈곤의 원천으로 둔갑하는 것을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마르크스는 인간 소외에는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 과정 자체로부터의 소외, 계급 사이 또는 계급 내부에 적개심이 만연한 데서 비롯하는 동료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마지막으로 세계를 의식적으로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인 인간 본성(또는 마르크스의 표현으로는 “유적類的 존재”)으로부터의 소외가 그것이다. 독일 관념 철학의 생각과 달리 소외가 신성한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 때문에 생겨난다면, 인간의 행위로 인간의 소외를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겪는 고통의 물질적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인간의 고통을 살펴봤다. 마르크스는 이런 조건에서 비롯한 모순들을 이해했고, 그 속에서 모든 소외가 사라진 세계의 가능성, 즉 인간의 노동이 인류의 잠재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자연 세계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자연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세계의 실현 가능성을 보았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이 기여한 핵심의 하나는 억압을 역사적 산물로 보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인간이 정치적 민주주의나 법적 평등에서 멈추지 않고 소외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의 억압론을 이해할 때 소외와 관련된 핵심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계급 사회에서든 계급 출현 이전의 사회에서든 소외는 모든 계급에 적용된다. 둘째, 소외는 인간이 겪는 다른 형태의 고통, 특히 착취나 억압과 다르다. 그러나 소외는 착취나 억압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와 억압 내에서 착취와 억압을 통해 드러난다. 인간의 필요 충족을 위해 운영되는 사회, 즉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의 잠재력이 온전히 발현하지 않는 한 소외는 지속될 것이다.
착취
착취는 소외와 다른 것으로, 엄밀히 말해서 물질적 관계이지, 계급 사회 내 모든 인간이 처한 일반적 조건은 아니다. 착취는 잉여 생산물을 추출하는 것으로 측정할 수 있다. 잉여 생산물은 인간의 노동이 자연과 상호작용해 만들어 낸 생산물의 일부로서, 사회에서 당장 소비되고 남은 것을 말한다. 특별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잉여 생산물은 특정 사회관계, 즉 자본주의 착취의 결과물이다. 이런 형태의 불평등한 관계(착취), 특히 자본주의 착취 형태는 마르크스가 한평생 연구한 주제다.
사람들은 흔히 마르크스가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죄다 착취로 여겼다고들 생각한다. 이것은 마르크스를 오해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를 분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은 자본주의 착취가 역사적으로 특수한 소외 형태이기 때문이었고 인류 역사에서 계급 분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본주의 착취 체제의 “운동 법칙”(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불렀다)을 이해하면 모든 계급 사회의 주요 모순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가 주목했듯이, 자본주의 착취는 자본 사이의 분열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로 인한 경쟁 때문에 특정 자본 단위가 살아남으려면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 자본주의 착취는 또한, 생산 시스템이 양대 계급으로 나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대 계급이란 생산수단, 즉 사회에 필요한 모든 재화를 만드는 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본가 계급과 그러지 못한 노동계급을 뜻한다. 자본가가 얻는 이윤은 오로지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데서만 생겨나는데, 노동계급은 집단적 노동으로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노동계급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집단적으로 노동하는 계급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부른 노동계급은 노동할 능력, 즉 자본가에게 판매할 노동력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계급이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계급이 “근본적 사슬”에 매여 있다고 말했다.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착취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은 집단 행동에서 나온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인간 본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거대한 혁명적 전환을 통해 단지 지배계급에 맞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인간 노동의 생산물을 통제하고 인간의 필요에 따른 생산을 조직하는 데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억압론의 관점에서 본 자본주의 착취의 핵심은, 착취가 가장 극단적이고 잔인한 형태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자체 모순 때문에 해방 —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 — 을 성취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으로 보았다.
억압
이제 억압을 살펴보자. 억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연구한 인간 관계들 중 가장 이론화가 덜 된 부분이다. 그럼에도 억압은 그들의 방법에서 매우 중요하다. 억압은 이데올로기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계급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또한 역사적으로 특수하다.
마르크스는 착취가 대체로 객관적인 특정 패턴이나 법칙을 따른다고 봤다. 그러나 착취와 달리 억압은 그렇지 않다. 착취는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경제적 과정, 즉 체제의 토대에서 작용하는 핵심적 운동 법칙을 말한다. 억압은 특정 계급 사회, 역사적으로 특수한 계급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 즉 지배계급의 지배 방식의 일부다. 억압은 다양하고, 정치적·법률적·민족적으로 특정한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 상부구조의 일부인 억압은 착취와 함께 작용하며, 착취가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특정 형태를 나타낸다.
억압은 지배계급 내 특정 부문의 효과적 지배 능력을 강화해 준다. 그러므로 같은 지배계급 내 경쟁자들을 겨냥해 억압이 이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 당시의 식민지 억압이나 오늘날의 제3세계 억압과 제국주의가 그렇다. 제3세계 빈국의 자본가 계급은 세계 자본가 계급의 일부이긴 하지만, 다른 자본가 지배계급인 서구 지배계급에게 억압당하고 이들의 이해관계에 종속된다. 그러나 억압은 특정 민족이나 지역 내의 노동계급을 약화시키고 분열시키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특정 억압 형태가 어떻게 노동계급을 약화시키고 분열시키는지, 어떻게 지배계급에게 득이 되는 구실을 하는지를 연구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억압이 자본가 계급의 지배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 능력에 걸림돌이 된다고 역설했다.
중요한 점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가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와 같지 않다고 주장했고, 특히 계급의 일부가 당하는 특정 억압을 고려한다면 그렇다고 주장했다. 물질적 착취에 바탕을 둔 사회 분열 형태는 노동자와 기업주를 분리시키는데, 자본주의는 노동자 착취에 바탕을 둔 이윤 증대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한다. 백인 노동자, 흑인 노동자, 남성, 여성, 농민, 장인 등의 삶과 몸은 모두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산업의 확장에 종속됐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또한 다른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어서 서로 싸워야 하는데,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공통의 착취자에 맞서 단결하기 힘들어진다.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에 생겨난 억압들(여성 억압, 유대인 혐오, 중세 제국들의 식민 통치)은 [자본주의] 초기 성장기의 신흥 자본가 계급에게 유용한 도구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억압들이 개발되기도 했는데, 노예무역과 이민자 통제를 포함하는 근대 인종차별과 동성애자 차별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특정 억압을 이해하는 데 중요했던 것은 억압이 계급적 쟁점이라는 점, 즉 억압이 피착취 계급을 이간질한다는 점이었다. 지배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거짓된 이데올로기적 메커니즘을 통해 피착취자 계급의 일부는 자신의 처지가 다른 피착취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소한 물질적·사회적·정치적 이점이 이런 특권 의식을 부추길 수 있고 흔히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이점은 부분적이고 부수적일 뿐 일반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이점은 피착취자들이 분열한 결과다. 생산 과정에서든 생산에서 배제된 노동예비군 사이에서든 말이다. 특정 억압 형태는 같은 계급 내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키려는 착취자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경쟁 심화는 착취 계급의 의지에 부분적으로만 달려 있다. 착취의 조건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경향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즉, 체제가 성장하고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노동자들은 비슷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린다. 착취자들은 항상 피착취자 집단을 분열시킬 방법을 모색한다. 이처럼 특정 억압은 [피착취] 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의 발전]을 저해하고 착취와 노동계급 전체에 대한 억압을 바탕으로 한 계급 분단선을 흐리는 데 일조한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억압이 피억압자들의 계급 이익을 저해하는 동시에, 피착취 계급 내 억압자들의 이익도 저해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억압은 착취라는 더 근본적인 불이익을 감춘다. [착취라는] 숨어있는 현실을 대번에 알아채기는 어렵다. 지배계급은 이런 현실을 감춰야만 하고, 이런 과정에서 억압이 핵심 구실을 한다.
1870년 4월 9일 영국 자본주의와 아일랜드 억압의 관계에 대해 쓴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억압, 특히 민족주의와 결합된 인종차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했다. 약간 길지만 인용할 만한 내용이다.
영국의 모든 산업·상업 중심지에서 노동계급은 두 적대 진영, 즉 영국 프롤레타리아와 아일랜드 프롤레타리아로 분열해 있다. 평범한 영국 노동자는 아일랜드 노동자를 자신의 생활 조건을 악화시키는 경쟁자로 여겨 미워한다. 아일랜드 노동자와의 관계에서 영국 노동자는 자신이 지배 민족의 일원이라고 느끼고, 아일랜드를 억압하는 자국 귀족과 자본가들의 도구로 전락하며, 자신에 대한 귀족과 자본가들의 지배를 강화시킨다. 영국 노동자는 아일랜드 노동자에 대한 종교적·사회적·민족적 편견을 갖고 있다. 그의 태도는 전에 미국의 노예 주州들에서 미국의 “가난한 백인”들이 “흑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매우 비슷하다. 아일랜드 노동자는 아일랜드 노동자대로 영국 노동자가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영국의 공범이고 어리석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런 적대 관계는 언론, 설교, 만평 등 한마디로 지배계급의 온갖 수단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된다. 이런 적대 관계는 왜 영국 노동계급이 자신의 조직이 있는데도 무기력한지를 알려주는 비결이다. 이것이 자본가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자본가 계급은 이를 완전히 잘 알고 있다.여기서 마르크스는 인종 억압 이론의 핵심인 세 요소를 제시한다. 첫째, 자본주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제적 경쟁을 부추긴다. 둘째, 영국의 백인 노동자들이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에 끌리는 것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고 애쓰는 지배계급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계급 내 소수 인종(위 사례에서는 아일랜드 노동자)이 억압당할 때 다수 인종의 힘도 약해진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아일랜드인들이 억압당하면 영국 노동자들의 이익도 침해된다. 흑인 노동자들이 억압당하면 백인 노동자들도 고통받는다. 여성이 억압당하면 남성도 고통받는다. 유대인들이 억압당하면 비유대인들의 종교적 자유도 침해당한다.
노동계급의 한 부문이 다른 부문에 대해(숙련직이 미숙련직에 대해, 캐나다인이 이민자에 대해, 남성이 여성에 대해,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 대해, 백인이 흑인에 대해) 느끼는 그릇된, 일시적 특권 의식을 체제가 본래 제공하는 물질적 혜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억압 집단의 개인은 다른 노동자에 대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이런 우월감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공통의 착취와 억압을 경험하기도 하며, 이는 모순적인 동력을 창출하고 집단적으로 단결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적 문제도 제기한다.
두보이스W E B Dubois는 1935년의 미국 남부를 다룬 글을 쓰면서, 남북전쟁 후 옛 노예와 백인 급진파 들이 인종차별을 뿌리 뽑으려 했던 이른바 급진적 재건의 시기에 패배를 겪은 후 생겨난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의 분열을 분석했다. 두보이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세계에는 [이 두 집단처럼 — 옮긴이] 사실상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졌으면서도 서로 너무 끈질기게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따로 놀아서 어느 쪽도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두 노동자 집단은 십중팔구 없을 것이다. 백인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기는 하지만 모종의 공적·심리적 임금으로 보상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반면에, 이런 식으로 흑인들은 공공연한 모욕에 시달린다. … 이 결과로 두 계급의 임금은 낮게 유지된다. 백인들은 흑인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뺏을까 봐 두려워하고, 흑인들은 항상 백인 대체 인력 투입 위협에 시달린다.
사회의 생산관계가 잉여 축적과 직결되는 사회의 근저에는 피억압자들이 착취를 당하면서 공통의 경험을 하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특정 집단에 대한 특정 억압이 와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남성만큼 많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일하게 되면서 현대 자본주의의 성별 분업(여성은 집안일을 하고 남성은 바깥일을 한다는)은 대거 와해돼 왔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의 한쪽 측면일 뿐이다. 착취 과정과 직결되지 않은 종류의 사상과 사회적 관계들이 계속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그래서 선진 자본주의에서 노동하는 여성들을 보면, 개별 가족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아이와 노인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체제는 계속해서 억압적인 핵가족, 이성애자 부부 가족, 여성차별적 가족이 주요 사회적 단위라고 가정한다. 서방 선진국들에서 전에는 복지국가의 책임으로 여겨지던 사회복지 서비스 제공이 신자유주의 시장 정책과 맞물리며 개별 가족으로 떠넘겨지는 경향이 커졌고, IMF의 지시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실행한 제3세계에서도 그랬다. 여성은 밖에서도 일해야 하지만 집안일도 해야 해서, 대체로 여성 억압에 시달리는 동시에 노동자로서 착취당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부부 관계의 형태는 핵가족 구조이므로 동성애자 가족은 계속 심한 억압을 받는다.
억압과 착취의 관계는 밀접하기도 하고 느슨하기도 한데, 이는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 달려 있다. 노예제 사회에서 억압과 착취는 매우 밀접했다. 마르크스는 미국 남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의 경험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역사적으로 인종 억압과 노예제는 밀접히 연관됐다. 그러나 분석적으로 보면 노예 노동은 계급 착취의 구체적 형태고,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노예제라는 구체적 조건 하의 사회적·이데올로기적·정치적 억압이었다. 계급 억압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혹사당하는 노예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현대 자유민주주의라는 조건에서 인종차별은 노예제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임금노동이라는 경제적 조건과 인종차별의 관계는 매우 느슨하고, 인종차별은 공식적으로 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제3세계 나라들에서는 피억압 인종 출신자들이 지배계급으로 완전히 변신하기도 한다. 서방에서는 콜린 파월이나 콘돌리자 라이스가 미국 지배계급의 핵심부에 들어가기도 한다. 캐나다의 자유당 의원 헨디 프라이나 총독이었던 아드리엔느 클락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억압 완화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동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자유주의적 분석의 함의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자유를 신장시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 남부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같은 곳에서는 수십 년 동안의 투쟁 끝에 법률적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2001년 9·11 이후 분위기를 틈타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적 이민 통제와 인종적 프로파일링[경찰이 피의자를 조사·심문할 때 흑인이나 유색 인종을 차별하는 관행 — 옮긴이]이 증가했다. 조지 W 부시가 테러를 근절하겠다며 벌인 “상시적 전쟁”의 한 측면에는 제3세계 나라에 대한 구식의 식민지 지배가 있었다. 인종 억압과 체제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밀접해졌다. 또한, 노예제가 없어졌지만,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일부다. 현대 임금 체제는 인종차별을 이용해서 임금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려 해왔다. 인종차별과 관련한 억압과 착취의 관계는 노동인구 내에서 이주노동자가 이용되는 방식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국제적으로 그리고 선진 자본주의 나라 안에서 자본주의를 위한 노동예비군 노릇을 한다. 예를 들면, 오늘날 캐나다에서는 제3세계 출신 이주민이 점차 저소득층 일자리를 차지하자 사용자들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캐나다 고용 시장에서 선주민들이 겪는 억압도 마찬가지다.
억압에 저항하기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인종차별, 여성차별,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종교적 우월주의 따위의 사상은 모두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사회 장악력과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억압에 도전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하나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성공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자본주의의 고질병 같은 억압에 저항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동안 민족 해방, 유색인종 해방, 여성 해방, 동성애자 해방, 종교적 소수자의 권리 쟁취 등을 위한 피억압자들의 대중 운동이 있었고, 많은 운동이 매우 성공적으로 개혁을 획득했다. 이런 투쟁들은 흔히 말만 번지르르한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의 위선에 도전하며 시작됐다. 그런 민주주의는 만인의 평등을 약속했지만, 전과 비교해 약간 나아졌을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법적 평등에서는 괄목할 만한 개혁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이는 운동을 가라앉히고 흡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자본가 지배계급은 언제나 노동자들을 분열시켜야 하지만, 특정 시기,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특정 지배계급이 언제 어떻게 어떤 집단을 억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에서는 상당한 정치적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사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개혁을 쟁취하려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비타협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자본가 지배계급이 이런 개혁을 원칙적으로 추진하리라고, 그래서 이런 개혁이 안전할 것이고 손상되거나 뒤집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또, 억압과 관련해서 지배계급의 선택에 한계가 있으므로 체제는 아래로부터 대중의 압력을 받는데, 억압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회 운동의 발전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바로 그런 한계 때문에 체제는 피억압자들에게 보장해 줬던 권리를 다시 빼앗기도 한다. 개혁은 자본주의에서도 보장될 수 있고 실제로 그랬지만 다시 뺏길 수도 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 억압의 정치를 좌우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결정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억압적 사상과 실천은 피억압 계급을 내분에 빠뜨리기도 하고, 세계 지배계급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억압의 정치와 실천은 모든 층위에서 계급 분열을 흐리고 같은 계급 내에서 새로운 분열을 조장하면서 계급들을 분열시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여러 글에서 억압과 계급 사회를 분석하면서 일반적 개념만 나열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억압에 맞선 투쟁이 계급 사회에서 민주주의적 평등권을 쟁취하는 싸움일 뿐 아니라, 최종으로는 계급 사회 전체를 제거하는 싸움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억압에 도전하는 목적은 자본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계급 내의 억압하는 부문이 억압적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억압에 도전하는 것은 자기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단결하는 데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피억압자들에게 자본주의 내의 평등은 착취와 소외가 지속되는 평등일 뿐이다.
아마 이런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억압 때문에 심각하게 분열해 있는 노동계급을 실제로는 어떻게 단결시킬 것인가? 사람들이 억압과 그 함의를 자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노동계급 내부의 격렬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결과다. 억압을 가장 첨예하게 가장 직접적으로 당하는 사람들은 억압에 도전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조직할 것이고 그리해 왔다. 피억압자들은 [같은 계급의] 억압자 부문이 억압을 명료하게 깨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우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민중의 호민관” 볼셰비키
오늘날 억압에 맞서 싸우는 활동가들에게 볼셰비키 전통의 이론과 실천은 억압에 맞선 투쟁에 필요한 교훈의 산실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마르크스주의 방법을 이론에서 실천으로 끌어올렸고,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기여를 훨씬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러시아 혁명은 또한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주의 국가에 맞서 싸우는 역사적 선례도 남겨 줬다. 물론 1900년대 초와 현재의 조건이 현격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윤곽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생각은 별로 근거가 없다. 당시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억압 때문에 심각하게 분열해 있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V I 레닌과 레온 트로츠키와 볼셰비키 혁명정당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전시킨 억압론을 받아들여 실제 투쟁에서 이를 적용하고자 했고, 노동자들이 일으킨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아래에서는 이 기간의 교훈을 간략하게 살펴 보겠다.
특히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억압론을 당시 러시아 상황에 적용했다. 레닌 앞에 놓인 과제는 먼저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나서, 특정한 억압 형태에 따라 심각하게 분열해 있는 농민들과 노동계급의 공동 투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차별, 민족 억압, 여성 억압은 모두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려는 볼셰비키의 활동에 특히 심각한 장애물이었다. 따라서 바로 이런 쟁점들을 바탕으로 억압을 설명하고 억압에 도전한 볼셰비키의 유산이 가장 분명히 발전했다.
억압에 도전하는 데서 볼셰비키가 세운 해방의 전통 가운데 핵심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레닌과 트로츠키는 일반적 억압 이론에서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방법을 발전시켰고, 이를 구체적 전략·전술로 적용했다. 피억압자들의 운동 밖에 있는 혁명가들이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와 피억압자들을 모두 사회주의 정치로 설득하는 데서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볼셰비키의 정치적 기여가 단연 중요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혁명가들은 “민중의 호민관”이 돼야 하고, 둘째, 억압에 따른 분열을 뛰어넘어 조직적 단결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돼 있으며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의미가 없다. 억압과 관련된 볼셰비키의 이론과 실천을 이끈 일관된 핵심 원칙은 노동계급이 억압적 사상(의 희미한 그림자조차도)을 조금치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억압적 사상은 노동계급 내부의 피억압 부문을 속죄양으로 삼기 때문이었다. 이런 분열을 조장하는 지배계급에 맞서 노동계급 내부의 피억압 부문과 억압 부문을 실제로 단결시키는 것이 억압에 도전하는 데서 핵심이었다.
레닌은 볼셰비키의 창당 문서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혁명적 운동이 피억압자들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비타협적 지도력을 보여야 하고, 가장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닌은 이 주장을 발전시켜 노동계급 혁명정당의 논거로 삼았다. 레닌은 당시 러시아 좌파 사이에서 만연해 있던 견해에 도전했는데, 그들의 주장인즉슨 차르 치하에서 여전히 불법이던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의식만으로도 혁명 조직의 본보기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레닌은 혁명적 노동자들의 적이 경제적 착취 관계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혁명 조직은 지독한 전제정을 비롯해서 지배계급 권력의 다양한 정치적 표현들에도 맞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제정은 억압을 자행했고 통상 주로 억압에 의존했는데, 그 억압은 흔히 종교적·민족적 박해의 형태로 나타났다. [레닌은 강조하기를,] 억압의 모든 측면에 도전해야 하는데, 직접 이런 억압을 당할 때뿐 아니라 어떤 계급의 어떤 부문이라도 억압에 희생될 때는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독자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을 건설하고, 독자적으로 혁명적 목소리(특히 신문)를 내야 한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혁명적 실천으로 특별히 단련된 혁명가들은 노동조합 지도자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마르크스주의적 혁명가들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불렀는데,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노동조합 지도자와는 완전히 다른 구실을 하는 “민중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말해, 노동조합 서기는 모두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는 경제적 투쟁”을 수행하고 돕는다. 이것은 아직 사회민주주의[정치]가 아니라는 점, 사회민주주의자의 이상은 노동조합 서기가 아니라 민중의 호민관이어야 한다는 점, 민중의 호민관은 모든 형태의 폭정과 억압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폭정과 억압이 어디서 나타나든지, 즉 인민의 어느 계층이 영향을 받든지 그래야 한다는 점, 민중의 호민관은 이런 것을 모두 종합해 경찰 폭력과 자본주의 착취에 대해 하나의 그림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 민중의 호민관은 모든 기회(아무리 작은 기회라도)를 활용해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민주주의적 요구를 설명해서 모든 사람이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위한 투쟁의 국제적·역사적 중요성을 명확히 이해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 혁명은 국제 여성의 날에 시작했는데, 이 날은 세계 사회주의 운동이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고자 정한 노동계급 여성들의 기념일이었다.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 중이었고 식량 공급이 부족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여성들은 빵 배급을 요구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국제 여성의 날(구력으로는 1917년 2월 23일이었다)에 여성 방직 노동자들이 이 날을 기념하며 빵 배급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다른 공장 노동자들도 자기 지역 여성들의 행동을 본받았다.
투쟁이 확산되면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서로 연대했다. 차르 국가의 탄압이 거세지자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투쟁을 전진시킬 방안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가장 선진적인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을 방어했다. 이것은 단순한 입발림 말이 아니라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단호한 결정이었다. 억압에 도전하는 데서 러시아 혁명이 이룬 성과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었고, 레닌은 혁명을 “피억압자들의 축제”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비극이게도 이 성과들의 생명은 짧았다.
러시아 혁명은 제국주의 국가 14개국 군대의 공격을 받았고, 나라는 황폐해졌고, 산업은 파괴됐고, 남성과 여성을 가릴 것 없이 가장 헌신적인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의 성과를 지키다가 죽어갔다. 이런 폐허 위에서 스탈린주의와 국가자본주의(관료주의적으로 끔찍하게 변질된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생겨났다. 노동자 운동이 이룬 성과는 모두 뒤집혔고, 가정에서 다음 세대 노동자를 기르는 일은 다시 여성의 몫이 됐다.
피억압자들이 일군 성과는 스탈린 치하 러시아에서 무無로 돌아갔다. 국가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단결을 분쇄하려고 과거의 분열을 부활시키고 새로운 분열도 개발했다. 여성, 동성애자, 유대인 노동자, 소수민족의 처지도 혁명 전으로 되돌아갔다. 억압적 관행이 부활하면서 이른바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관료 국가 지배계급의 구미에 맞게 뒤틀리고 왜곡돼서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해방을 향해
억압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우려면 억압을 조장하는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내분에 의존한다.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려는 세력들은 억압적 사상과 실천을 대중에게 유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것은 전략적 지향, 동맹, 구체적 요구의 면에서 실천적인 결론을 암시한다.
그런 전망에는 당연히 조직적 함의가 있다. 그런 전망은 노동계급의 운동을 단결시키려는 운동 건설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모든 형태의 억압에 도전하는 데 헌신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또한, 국가에 도전하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도전하는 사람이 소수일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억압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모두 단결시키는 혁명적 조직은 모든 피억압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할 책무가 있다.
억압의 형태가 다양하기는 하지만, 억압과 소외와 착취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고질병 같은 것이다. 오늘날 억압에 맞선 투쟁은 새로운 형태로 일어나고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논쟁도 벌어진다.
그러나 오늘날 억압에 반대하는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쟁점들을 맨 처음 다루는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사람들의 어깨를 짚고 내다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지혜에 따르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체제를 타도할 때만,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내부적으로 이간시켜 번영하는 체제를 타도할 때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억압에 도전하는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혁명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억압에 맞서는 것이 혁명적 단결의 전제조건이다.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계급은 억압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깨우쳤다. 그러나 억압적 사상과 실천을 많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사회주의자들은 피억압자들의 호민관으로서 모든 억압에 반대해 가장 분명하고 가장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완전한 해방을 이룰 수 없으므로 효과적으로 억압에 맞서려면 체제 전체에 맞서는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 결국 마르크스주의 억압론은 행동 지침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억압을 이해하는 진정한 목적은 억압을 제거하고 자유로운 새 세계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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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bbie Bakan, “Marxism, Oppression and Liberation”, Marxism no.2, 2004.
↩
- Mario Nain, “Chile Climate of Fear”, Socialist Review 225 (December 1998), pp10-11. ↩
- 이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루기는 너무 광범하고, 다양한 논쟁을 요약하는 것도 틀림없이 적절치 않을 것이다. 최근의 다양한 관점들을 요약한 책을 보려면, Pamela Sugimen, “Privilege and Oppression: The Configuration of Race, Gender, and Class in Southern Ontario Auto Plants, 1939 to 1949”, Labour/Le Travail, no. 47 (Spring, 2001); Peter S Li, Destination Canada: Immigration Debates and Issues (New York: 2003); Leo Panitch and Colin Leys, eds., Socialist Register: Fighting Identities (London: 2003); Carl E James and Adrienne Shadd, eds., Talking About Identity: Encounters in Race, Ethnicity and Language (Toronto: 2001); Naline Visvanthan, et al, eds., The Women, Gender and Development Reader (New Jersey: 1997)를 보라. ↩
- Cedric Robinson, Black Marxism: The Making of the Black Radical Tradition (London: Zed Books, 1983). ↩
- Cornel Ronald West(1953~):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이자 시민권 활동가다. 1960년대 공민권 운동을 연구했으며, 미국 사회에서 인종·성·계급이 한 구실에 대해 책을 많이 썼다. 대표적 저서로 Black Theory and Marxist Thought가 있다. — 옮긴이 ↩
- Alex Callinicos, Race and Class (London: 1993), p13; Manning Marable, How Capitalism Underdeveloped Black America (Boston: 1983); Cornel West, Race Matters (New York: 1994)를 보라. ↩
- Howard Winant, “Difference and Inequality: Postmodern Racial Politics in the United States”, in Racism, the City and the State, eds., Malcolm Cross and Michael Kieth (London: 1993), p110. ↩
- Lindsey German, Sex, Class and Socialism (London: 1989); and “Women’s History”, in Essays on Historical Materialism, ed., John Rees (London: 1998), pp41-55를 보라. ↩
- 예를 보려면, Margaret Anderson and Patricia Hill Collins, eds., Race, Class and Gender: An Anthology (California: 1992); Vijay Agnew, Resisting Discrimination: Women from Asia, Africa and the Caribbean and the Women’s Movement in Canada (Toronto: 1996); Himani Banarji, ed., Returning the Gaze: Essays on Racism, Feminism and Politics (Toronto: Sister Vision Press, 1993); Chandra Mohanty, Third World Women and the Politics of Feminism (Bloomington: 1991)을 보라. ↩
- Leith Mullings, “Uneven Development: Class, Race, and Gender in the United States Before 1900”, in Eleanor Leacock, Helen I. Safa, et al, Women’s Work (Massachusetts: 1986), pp41-57을 보라. ↩
- Alex Callinicos, Social Theory (Cambridge UK: 1999), p265. ↩
- 예를 들어, Yutaka Dirks, “Doing Things Differently this Time: Kananaskis G8 Meeting and Movement Building”, Colours of Resistance, http://www.tao.ca/~colours/dirks.html를 보라. ↩
- 국제주의와 연대 정서가 널리 퍼졌다. 예를 들어, Starhawk, “The G8 June Meeting in Kananaskis: A Strategic Moment”, Znet, May 27, 2002, http://www.zmag.org/content/GlobalEconomics/starg8.cfm. ↩
- Susan Faludi, Backlash: The Undeclared War Against American Women (New York: 1991)을 보라. 캐나다의 유명한 반동 이데올로그에 대해서는, Martin Loney, The Pursuit of Division: Race, Gender and Preferential Hiring in Canada (Montreal: 1998)와 Neil Bissoondath, Selling Illusions: The Cult of Multiculturalism in Canada (Toronto: 1994)를 보라. ↩
- 예를 보려면, Stanley Aronowitz, The Politics of Identity (New York: 1992). ↩
- Naomi Klein, No Logo: Taking Aim at the Brand Bullies (Canada: 2000), p113. ↩
- Mark Naison, Communists in Harlem During the Depression (New York: 1983)와 Kate Weigand, Red Feminism: American Communism and the Making of Women’s Liberation (Baltimore: 2001)을 보라. ↩
- 이 주제는 이 글이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스탈린 체제를 마르크스·엥겔스와 초기 러시아 혁명의 전통에서 분석하지 않고, 관료적 국가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로 분석한 글을 보려면, Mike Haynes, Russia: Class and Power 1917-2000 (London: 2002). ↩
- 예를 들어 1960년대에 미국 공산당은 민주당이 제기한 주장, 즉 미국 흑인들은 북부에서는 사회에 통합돼 있으므로 억압당하지 않고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흑인 차별법]이 시행되고 있던 남부에서만 억압당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Kevin Ovendon, Malcolm X: Socialism and Black Liberation (London: 1992), p22. ↩
- 더 정교한 논의를 보려면, Georg Lukacs,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Studies in Marxist Dialectics (Cambridge: 1968). ↩
- Karl Marx and Frederick Engels, On Colonialism (New York: 1972). 관련된 언급에 대해서는 발행인 주석을 보라, pp7-8. Karl Marx and Frederick Engels, Marx and Engels on the United States (Moscow: 1979)도 보라. ↩
- Frederick Engels,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K Marx and F Engels, Selected Works, vol. 3 (Moscow: 1976), pp191-334. ↩
- 유대인 문제와 종교 일반에 관한 마르크스의 입장을 요약한 것을 보려면, Paul M. Siegel, The Meek and the Militant: Religion and Power Across the World (London and New Jersey: 1986)를 보라. ↩
- 아일랜드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의 입장에 대해서는, Karl Marx and Frederick Engels, Ireland and the Irish Question (New York: 1972)와 Chris Bambery, Ireland’s Permanent Revolution, 3rd edition (London: 1990)을 보라. ↩
- 노예와 인종차별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개괄한 책을 보려면, Alex Callinicos, Race and Class (London: 1993); Peter Alexander, Racism, Resistance and Revolution (London: 1987)와 Robin Blackburn, The Making of New World Slavery: From the Baroque to the Modern, 1492-1800 (London: 1997)와 The Overthrow of Colonial Slavery, 1776-1848 (London: 1988)을 보라. ↩
- Chris Harman, “Engels and the Origins of Human Society”, International Socialism, series 2, no. 65 (Winter 1994)를 보라. ↩
- Karl Marx, “On the Jewish Question” in Robert C Tucker, ed., The Marx-Engels Reader (New York: 1972), pp24-51. 마르크스주의와 유대인 문제에 관한 일반적 논의를 보려면, Abbie Bakan, “The Jewish Question: A Marxist Analysis”, Marxism, no. 1, 2003을 보라. ↩
- Marx, “Jewish Question”, p33. ↩
- 이 부분에 관련해서는 Kevin Anderson, “Marx on Suicide in the Context of his Other Writings on Alienation and Gender”와 Karl Marx, “Peuchet on Suicide”, in Marx on Suicide, Eric A Plaut and Kevin Anderson, eds. and intro., trans., Eric A Plaut, Gabrielle Edgecomb, and Kevin Anderson (Evanston Illinois: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99), pp3-28; and pp43-76에 의존했다. ↩
- Karl Marx, “Peuchet on Suicide”, pp50-51. 이것은 마르크스 같은 젊은 혁명가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1843년 10월에서 1845년 1월까지 파리에 거주했는데, 이때는 정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고향인 프로이센에서 추방됐을 때였다. 마르크스는 나중에 프랑스에서도 같은 이유로 추방됐고 1845~46년에 벨기에에서 살았고,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크 푀셰(1785~1830)라는 사람이 쓴 불어판 《경찰 기록보관소의 추억》(Memoirs of the Police Archives)을 읽었다. ↩
- Karl Marx, “Peuchet on Suicide”, p67. ↩
- Karl Marx, “Peuchet on Suicide”, p58. ↩
- 네 번째 사례는 갑작스런 실업에 대한 것이다. 왕실 경비대 한 명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는데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그는 가족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목숨을 버린다. ↩
- Anderson, “Marx on Suicide”, p12. ↩
- Chris Harman, “Base and Superstructure”, International Socialism Journal, series 2, no. 32 (Summer 1986), pp3-44를 보라. ↩
- Karl Marx, Early Writings, trans. and ed., T B Bottomore (New York: 1963); Grundrisse: Introduc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trans., Martin Nicolaus (Harmondsworth: 1973); Capital. ↩
- Karl Marx, “Speech at the Anniversary of the Peoples’ Paper”, E Lunn, Marxism and Modernism, in Judy Cox, “An Introduction to Marx’s Theory of Alienation”, International Socialism, series 2, no.79 (Summer 1998), p41에서 인용. ↩
- Judy Cox, “An Introduction”, pp47-51을 보라. ↩
- 자본주의 내 평등과 불평등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보려면, Alex Callinicos, Equality (Cambridge UK: 2000) [국역: 《평등》, 울력(2006)]을 보라. ↩
- 마르크스주의와 동성애자 억압의 관계에 대한 요약을 보려면, Peter Morgan, “Class Divisions in the Gay Community”, International Socialism, series 2, no. 78 (March 1998), http://pubs.socialistreviewindex.org.uk/isj78/morgan.htm을 보라. 미국 내 인종차별의 사회적 구성에 관한 논의를 보려면, Noel Ignatiev, How the Irish Became White (New York: 1995)를 보라. ↩
- Marx and Engels, Selected Correspondence (Moscow: 1965), pp236-237, Alex Callinicos, Race and Class, pp34-35에서 인용. ↩
- 이것은 Alex Callinicos, in “Race and Class”, International Socialism, series 2, no. 55 (Summer 1992), p19를 요약·수정한 것이다. ↩
- W E B Dubois, Black Reconstructionism in America 1860-1880 (New York: 1969), pp700-701. ↩
- Grace-Edward Galabuzi, Canada’s Creeping Economic Apartheid, CSJ Foundation for Research and Education, May, 2001, http://www.socialjustice.org/pubs/pdfs/economic_apartheid.pdf을 보라. ↩
- V I Lenin, What is to Be Done? (Moscow: 1969), p80과 Lenin, Collected Works, vol. 5, p423에도 수록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