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유럽의 위기와 저항 *
1 이것이 순전히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신좌파가 서방 자본주의와 동방 스탈린주의 둘 다에 반대하며 성장하던 상황에서 출범한 《인터내셔널 소셜리즘》과 《뉴레프트리뷰》가 사회주의 이론지로서 밟아 온 궤적은 대조적이다. 《뉴레프트리뷰》는 1962년 페리 앤더슨이 편집자로 취임한 이후 대체로 정치적 실천과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주로 지식인 독자층을 겨냥한 잡지로 발전했다. 물론 재능 있는 많은 기고자들 덕분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다.
올해는 《뉴레프트리뷰》 창간 50주년이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도 1960년부터 정기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그보다 2년 전에 계간지로 출범했으나 발행 주기를 맞추지 못했다.) 우수한 분석을 내놓기로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도 뒤지지 않았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은 사실상 처음부터 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조직(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전신인 IS)의 잡지였다. 그래서 글을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항상 노력했고 더 효과적인 사회주의적 실천에 기여할 수 있는 쟁점들을 탐구하는 데 집중했다. 1960년에 발행된 첫 호의 머리말에서 편집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과제가 오늘날의 계급투쟁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독창적인 사회적·정치적 분석을 계급의식의 발전과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잡지는 차이뿐 아니라 비슷한 점도 있었다. 둘 다 영국의 상황에서, 그러나 국제주의 관점에서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적용하려 했다. 《뉴레프트리뷰》 창간 50주년 기념호가 이 점을 잘 보여 주는데, 편집자인 수전 왓킨스는 권두논문에서 세계 경제·금융 위기 상황과 관련해 잡지의 현재 위치를 살펴본다. 왓킨스는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과 경제 “회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경제 회복은 “분명히 불안정하다. 즉, 북대서양 연안 나라들은 여전히 실업률이 높은 데다 무너진 신용 시스템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고, 중국은 거품이 지속되고 있지만 수출 시장이 수축되는 것에 적응해야 한다. 산더미 같은 부채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투기 자금이 체제를 헤집고 다녀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금융은 여전히 폭탄을 안고 있고, 혼란은 동아시아와 남반구로 옮겨가고 있다.”왓킨스는 세계 자본주의의 경제적 미래가 심각할 수 있지만, 이번 위기의 정치적 효과를 보면 1873년이나 1929년의 금융 위기 때와 달리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마 2008년 경제 위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적 혼란과 정치적 안정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31년에는 은행 파산과 통화 가치 폭락 후에 영국·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각국 정부가 무너졌다. 심지어 1873년에도 철도 파산 후에 [미국의 — M21] 그랜트 정부가 부패 스캔들로 마비됐고 [영국의 — M21] 글래드스턴 내각이 붕괴했다. 그러나 2008년에 정치적 피해자는 아이슬란드의 호르데 정권과 [영국령 — M21] 케이맨 제도의 당국뿐이었다. 각국 정부가 구조조정과 공공 지출 삭감을 강행함에 따라 더 단호한 저항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공장 점거나 경영진 감금이 주로 퇴직금 지급을 둘러싸고 제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처음 도입될 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과 달리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진 지금 상황이 섬뜩하리만치 조용한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4
5 경제 위기의 정점에서 케인스주의 쪽으로 다소 기울긴 했어도 경제 정책이 실제로 바뀐 것은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의 변형일 뿐인 “규제하는 자유주의”가 강화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왓킨스는 자신이 말한 “패배를 분명히 시인하기”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 패배란 2000년에 《뉴레프트리뷰》 새 시리즈가 출발했을 때 페리 앤더슨이 “종교개혁 이래 처음으로 서구의 사상계에서 의미 있는 견해 대립인 체계적 세계관의 경쟁이 사라졌다”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 6 왓킨스는 오늘날 급진적인 청년 지식인들의 곤경을 이해한다. “저항의 불꽃은 금세 꺼져 버렸다. 그들이 아는 동원 — 대안 세계화 운동, 기후변화 저지 운동, 이라크 침략 반대 운동 — 은 모두 패배로 끝났다.” 왓킨스는 《뉴레프트리뷰》 자체의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이 글을 맺는다. “정치 운동이 없는 상황에서 좌파의 지적 프로젝트가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7
따라서 “어떤 저항에도 부딪히지 않은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경제 위기의 충격을 사실상 극복했고 은행 구제 금융은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 몰수나 다름없었다.”8 급진 좌파가 아닌 사람들도 이런 견해를 표명했을 뿐 아니라 최근 SWP 당내 논쟁에서도 이 문제는 뜨거운 쟁점이었다.
왓킨스의 글이 흥미로운 이유는 흔해빠진 견해를 특별히 체계적이고 신중하게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급진 좌파가 “1백 년에 한 번 있을 만한”(앨런 그린스펀의 말이다) 진정한 세계 자본주의 위기에 서투르게 대응하다가 중대한 정치적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견해 말이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하나는 시간이다. 급진 좌파가 버스를 놓쳤는지 아닌지는 위기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다. 1930년대 대불황은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지속됐다. 1929년과 1931년 금융 폭락의 직접적 여파로 정치적 불안정성이 증폭됐다는 왓킨스의 말은 옳다.(비록 영국에서는 램지 맥도널드의 노동당 정부가 무너진 뒤 보수당이 주도한 연립정부가 수립돼 1940년까지 정치를 지배했지만 말이다.) 이것은 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이미 제1차세계대전과 그 후의 정치적·사회적 격변으로 부르주아 지배 구조가 얼마나 취약해져 있었는지도 보여 준다. 대체로 이런 정치 위기 이후 주류 정치는 우경화했다. 그래서 영국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정부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대불황이 지속되자 격렬한 계급 전쟁이 벌어져 한편에서는 1933년 1월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나치]가 승리하고 1934년 2월 오스트리아에서 노동자 운동이 분쇄됐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가 급성장하기도 했다. 예컨대, 프랑스와 스페인의 민중전선, 미국의 뉴딜과 점거 농성 파업, 1936년 6월 프랑스의 대중 파업과 공장 점거, 1936~37년 스페인 혁명이 그런 사례였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좌파는 1930년대 말에야 패배했고, 그것도 결정적으로 공산당의 민중전선 정책이 노동자들의 전투성을 억눌렀기 때문에 그리 됐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 위기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1960년대와 1970년대 격변 이후 수십 년 동안 비교적 안정을 누리고 있을 때 일어났다. 사실, 자유민주주의의 지리적 범위는 엄청나게 확대됐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는 남부 유럽으로, 1990년대에는 중동부 유럽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라틴아메리카로, 2000년대에는 한국과 대만으로 확대됐다. 더욱이, 사회적 자유주의(주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것)가 성장하면서 부르주아 정치의 지형이 협소해졌다. 물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만사형통이었던 것은 아니다. 상층의 정치적 수렴, 대중의 생활수준 저하,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 — M21]의 후퇴, 금권 정치의 만연은 대중의 환멸을 부추겼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자체의 대안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의 대안조차 논의될 여지가 거의 없었던 비교적 튼튼한 자본주의 지배 구조가 이번 경제 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따라서 경제 위기가 구제금융으로 그 효과가 대부분 흡수돼, 심각하긴 해도 비교적 단기간의 충격일 뿐이라고 사실과 다른 가정을 해 본다면 “경제적 혼란과 정치적 안정”이라는 왓킨스의 진단은 대체로 옳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시나리오를 거론하면서도 왓킨스 자신은 경제가 빠르게 “정상”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경제 위기는 부르주아 정치 구조에 압력을 가해서 그 약점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경제 위기의 전개 과정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위기의 단계들
1930년대 대불황의 교훈 하나는 중요한 경제 위기가 여러 단계를 거치는 역사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1930년대 대불황은 주식 시장 폭락 전의 산업 생산 둔화, 주식 시장 폭락, 폭락 직후의 경제 수축, 1931년의 은행 위기, 두 번째 경제 수축과 국제 무역 붕괴, 1930년대 중반의 부분적 회복, 1937~38년 불황 재발, 그 후 재무장과 군비 생산에 따른 생산량·고용 증대 등의 단계로 진행됐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위기도 여러 단계를 거쳤다. 즉, 2007~08년의 신용 경색, 2008년 가을의 금융 폭락, 2008~09년 겨울의 급격한 전반적 불황, 그 후의 “회복” 국면, 더 정확히 말하면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금융권과 경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덕분에 찾아온 안정 국면을 거쳤다.
더욱이 그런 과정은 불균등하다. 1930년대 대불황 때 자유무역을 재빨리 포기하거나(1931년 이후의 영국) 재무장을 시작한(1933년 이후의 독일)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보다, 특히 미국보다 더 빠르게 경제가 회복됐다. 오늘날 중국은 국가가 엄청난 돈을 투자한 공공 사업 덕분에 다시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 시장 공략으로 방향을 바꾼 나라들 — 한국처럼 공산품을 수출하든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원료를 수출하든 — 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제 위기는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가? 이번 위기의 직접적 기원은 2000년대 중반의 거품을 부추긴 민간 부채의 엄청난 증가였다. 그에 따른 부채 위기가 민간 부문에서 공공 부문으로 전이됐다. 주요 경제 대국들은 정부 차입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정부 차입 증가는 단지 구제금융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기 대침체가 강요한 세수 감소와 복지비 지출 증가 때문이기도 했다. 이 점은 역사적 경험과 완전히 일치한다.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케네스 로고프는 계량경제학 모델로 금융 위기를 연구한 중요한 저작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금융 위기의 여파로 생산량·고용이 급감하고 … 흔히 정부 부채가 급증한다. 제2차세계대전 후의 주요 금융 위기 때마다 정부 부채는 평균 86퍼센트씩(위기 전 부채 대비, 실질 기준으로) 증가했다. … 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은 흔히 말하는 구제금융 비용과 금융 시스템 재자본화 때문이 아니었다. … 사실, 부채 증가의 최대 원인은 심각하고 장기적인 생산 수축으로 세수가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공공 부채 증가에 대처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정치 문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유력한 계급 세력 관계를 반영한다. 제2차세계대전 때 엄청나게 증가한 정부 차입은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부채의 실질 가치를 떨어뜨린)이 맞물리면서 점차 해결됐다. 신자유주의가 계속해서 정책 입안의 프레임 구실을 하고, 살아남은 은행들이 국가의 금융 지원과 경쟁 은행 다수의 파산 덕분에 활력을 되찾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재정 적자 증가는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해서 즉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총선을 겨냥해서 보수당이 언론과 대기업들의 상당한 지원을 받아가며 재정 적자 문제를 선거용 정치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이 글은 5월 총선 직전에 쓰였다. — M21] 이것은 영국의 고질적인 문제로 공공 부문 비대화를 지적하는 더 광범한 분석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대폭” 삭감 공약은 별로 인기가 없다. 더욱이, 자본주의 수호 세력 지도층 내에서도 삭감 실행 시기를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예컨대, 〈파이낸셜 타임스〉의 독자편지 란에서 경제학자들이 벌이는 논쟁을 보라.) 이것은 경제 평론가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모두 강박관념처럼 느끼는 두려움, 즉 세계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국가 지원을 너무 일찍 중단했다가 “더블딥”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보여 준다.
유로존의 분열
그럼에도 지금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주류 정치권은 모두 공공 지출 삭감에 동의한다. 더욱이, 더 취약한 자본주의 국가들로서는 긴축 정책 실시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조차 일종의 사치다. 이 점은 유로존[유럽연합EU 회원국 중에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국]에서 잘 드러난다. 유로존에서는 그리스가 금융 시장, EU 집행위원회, EU 주요국들의 표적이 돼 있다. 그들은 그리스가 재정을 낭비했다며 게오르기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사회민주주의 정부에 재정 대폭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위기는 유로존의 고질적인 구조적 결함을 보여 준다.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은 가맹국의 통화 대신 유로화를 통용시키면서 국가 간 환율을 고정시켰고, 금리 통제권을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는 유럽중앙은행에 넘겼다. 이런 조처는 EU의 약소국들에는 득이 됐는데, 유럽 최대의 경제 대국인 독일이 발행한 채권 금리와 자국 채권 금리 사이의 격차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 신용 호황기의 전반적 저금리 상황에서 약소국들의 가계 부채가 급증했고(그리스·포르투갈·남아일랜드에서는 국민소득 대비 1백 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아일랜드와 스페인에서는 주택 시장 거품이 커졌다.
남부 유럽 나라들에서 차입 증가 덕분에 소비가 늘어나자 독일의 수출 시장도 확대됐다.(독일 수출품의 3분의 2가 유로존으로 갔다.) 다른 유로존 국가들과 달리 독일은 부채가 급증하지 않았으므로, 높은 실업률을 이용해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하고, 1998~2005년에 적·녹 연립정부가 실업급여 제도 ‘개혁’(이른바 하르츠 피어)을 강행하고, 생산 기지를 동유럽으로 이전하거나 이전하겠다고 위협(흔히 위협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해서 2005년쯤에는 다시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될 수 있었다. 반대로,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노동비용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 독일과 정반대로 경제적 약소국들은 국제수지 적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통화금융연구[통화와 금융을 연구하는 정치경제학자들의 네트워크 — M21]는 유로존의 경제 위기를 연구해 펴낸 중요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유로화와 유로화 관련 각종 정책들은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주로 유로존에서 얻는)를 확실히 보장하는 메커니즘이 됐다. 약소국들은 세계 통화 창출을 표방하는 통화 시스템에 가입했다. 그래서 자국 경쟁력의 일부를 포기하는 협정에 서명했지만 그들이 채택한 정책들은 경쟁력 격차를 더욱 늘리기만 했다. 이 과정의 수혜자는 독일이었다. 왜냐하면 독일은 생산성 수준도 더 높고 경제 규모도 더 큰 데다가 자국 노동자들을 더 많이 쥐어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경상수지 흑자야말로 지난 20년 동안 독일 경제 성장의 유일한 원천이었다. 독일에게 유로화는 ‘이웃 궁핍화 정책’[다른 나라를 희생시켜서 자국의 번영이나 경기 회복을 도모하는 국제경제 정책 — M21]이다. 단, 자국 노동자들을 먼저 궁핍하게 만든다는 조건이 달려 있기는 하다.통화금융연구에 따르면, 유로존의 경제 위기를 촉진한 직접적 요인은 금융 폭락에 대한 회원국들의 일반적 반응, 즉 지출과 차입을 크게 늘린 것이었다.(독일은 예외다.) 정부 부채가 급증하자 그 나라들은 자국 채권을 통화 시장에 내다팔았다. 그러나 더 취약한 국가들의 채권 금리와 독일 국채 금리 사이의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졌다. 그리스가 투기꾼들의 표적이 되자 그리스의 차입 비용이 급증했고 파판드레우 정부는 꼼짝달싹도 못하게 됐다. “여기서 통화동맹의 구조적 약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통화동맹을 이용할 권리는 모든 나라가 똑같다. 그러나 신용을 이용할 권리는 똑같지 않다. 신용을 얻기 위한 비용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통화동맹의 더 심각한 결함은 그것이 기껏해야 통화 동맹일 뿐이라는 것이다. 징세와 지출 능력에 달려 있는 재정 정책은 여전히 국민국가들이 확실히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 때는 국가가 개입해서 시장을 구해 줘야 하므로 재정 정책이 중요해진다. 이번에도 구제 금융과 경기 부양책을 뒷받침한 것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국 경제에서 자원을 끌어내는 능력과 이를 이용해서 차입하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유럽연합의 금융 폭락 대처 방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각국 정부가 나서서 은행들을 구제하고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스템은 유로존 회원국들이 그 중 하나가 파산 위험에 처할 때 벌어지는 일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만든다. 금융 시장은 경제가 취약한 국가들의 채권 금리를 올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리스 경제 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문제가 된 것이다. 유럽 대륙의 유력 국가들, 즉 프랑스와 독일은 그리스 지원 방안을 놓고 분열했다. 프랑스는 그리스의 파산을 막기 위한 대출 공조를 지지한 반면, 독일은 반대했다.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해서 EU에 굴욕을 안겨 주겠다고 위협했지만, 독일은 이를 엄포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결국 IMF와 유로존이 공동으로 그리스 구제에 나서기로 합의한 것은 그리스의 파산이 독일 은행들에 이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 국가들에 대출해 준 돈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고질적으로 취약한 보수-자유 연립정부 내에서 벌어진 논쟁은(그와 동시에 독일과 그리스 언론 사이에서도 민족주의적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재무장관인 볼프강 쇼이블레의 강경 노선으로 기울었다. 쇼이블레는 그리스처럼 곤경에 빠진 유로존 국가들을 구제하기 위한 유럽통화기금 창설을 제안하되 EU 국가들의 재정 적자가 국민소득의 3퍼센트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성장안정협약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특히, 3퍼센트 상한 규정을 어기는 국가는 EU 경제·사회통합기금을 이용할 권리를 박탈하거나 심지어 표결권도 일시 정지하는 벌칙 조항을 신설하자고 했다. 또, EU 회원국 자격을 유지하면서도 유로존에서 탈퇴할 수 있게 하자고도 했다.
그러나 경제 평론가 볼프강 뮌차우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은 곤경에 처한 나라들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떨어져 나가도록 떠미는 것이다. 쇼이블레 방안의 정치적 메시지는 그리스가 마지막 구제 사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구제금융 준비가 진척될수록 독일의 여론은 점점 더 강경한 반대로 돌아섰다. 쇼이블레 방안이 실행됐다면 그리스는 이미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을 것이다. 구제금융이 필요한 나라가 쇼이블레 방안의 요구 조건도 충족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 쇼이블레 방안에는 독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 규정이 전혀 없다. 쇼이블레의 계획대로라면 독일은 2016년까지 재정 적자를 해소한다는 일방적인 경제 전략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남부 유럽 각국 정부가 각성해서 심각한 개혁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확대되고 있는 독일과의 경쟁력 격차를 좁히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쇼이블레 방안이 어떻게 정치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독일 지배계급은 임금 억제를 바탕으로 1위 수출국의 지위(2010년에 중국에 빼앗긴)를 유지한다는 경제 전략을 극력 옹호하고 있다. 이 전략은 연방정부가 2016년까지 재정 적자를 국민소득의 0.35퍼센트로 낮춰야 한다는 조항을 담은 개헌안이 지난해에 통과되면서 국내에서는 확고해졌다. 이에 따라 경기 부양책을 바탕으로 하는 다른 전략은 추진할 수 없게 됐다. 쇼이블레 방안은 이 전략을 다른 유로존 국가들에도 확실히 적용하겠다는 독일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 준다. 공공지출과 노동비용을 독일처럼 삭감할 수 없는 취약한 국가들은 내팽개치고 가겠다는 것이다.
세계적 딜레마
유로존의 위기는 세계적 갈등의 유럽판 변형이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는 2008~09년의 불황 초기에 각국 정부가 실시한 보조금 지급과 그 밖의 보호무역주의 조처들이 1930년대와 달리 제국주의 열강이 경쟁국들에 자국 시장을 폐쇄하는 지경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며 자축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무역 분쟁이 환율 분쟁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경제적 관계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미국은 중국 공산품을 사들이는 거대한 시장이고 이 수입품 구매에 쓴 달러를 중국한테서 다시 빌려와서 자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메운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이 모두 불황에 대처하는 방안의 일환으로 자국 환율 하락을 용인해서 수출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정책을 추진했다. 2008년 여름 이후 중국 위안화 환율은 달러화에 고정됐고, 달러화 자체는 최근까지 환율이 계속 하락했다. 이 문제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점차 고조되는 갈등의 근원이 됐다. 지지부진한 경제, 10퍼센트나 되는 실업률과 씨름하는 오바마 정부는 중국에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달러화 대비 위안화의 가치를 올리라는 압력을 점차 강화했다. 오바마는 그러면 미국의 일자리가 수십만 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중국 총리 원자바오는 전국인민대표회의 폐막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수출을 늘리려고 자국 환율은 떨어뜨리면서 다른 나라들에는 환율을 올리라고 압력을 넣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 그것은 보호무역주의입니다.” 또, 1년 전에 표명했던 우려, 즉 미국에 투자한 중국 자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거듭 표명했다. “우리는 미국 달러화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걱정했는데 … 올해도 여전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미국 국회의원 1백30명은 재무장관 팀 가이트너에게 편지를 보내 4월에 발표될 ‘환율 조작국’ 명단에 중국을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안 그래도 다양한 쟁점을 놓고 미-중 사이에 마찰이 심해지던 차에 환율 분쟁이 더 첨예해졌다. 이는 지배적인 제국주의 열강과 가장 만만찮은 잠재적 도전자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특히 공격적인 선동을 했다. 그는 중국산 수입품에 25퍼센트의 수입과징금을 부과하는 조처를 일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조처가 실시되면 십중팔구 진정한 무역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사실, 중국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달러화 대비 위안화의 가치 상승을 용인했고, 이제 정부의 엄청난 경기 부양책으로 말미암은 인플레이션이 두려워서(원자바오도 전국인민대표회의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또다시 위안화를 평가절상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위안화가 평가절상되더라도 중국의 수출은 별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분쟁에서 드러난 사실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지도자들도 수출 증대 전략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전략은 독일보다 훨씬 더 낮은 임금과 훨씬 더 높은 축적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는 중국과 독일의 비슷한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물론 중국과 독일은 서로 사뭇 다르다. 그러나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점도 있다. 둘 다 세계 최대의 공산품 수출국인데, 지금은 중국이 독일을 앞질렀다. 둘 다 투자보다는 저축이 엄청나게 많다. 둘 다 막대한 무역 흑자를 누리고 있다. … 둘 다 자신의 고객들이 소비를 계속하되 무책임한 차입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의 흑자는 다른 나라들의 적자를 뜻하므로, 이런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 나는 이번 위기에서 개방적인 세계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흑자국들은 현재 상태가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무역 흑자 의존 때문에 수입국들이 파산해서 그 피해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다. 한편, 과거에 무역 적자가 막대했던 나라들이, 거품 붕괴 후 민간 부문의 디레버리징[차입 감소 – 캘리니코스]으로 발생한 재정 적자를 대폭 줄이는 길은 오직 순수출 급증뿐이다. 흑자국들의 총수요가 증가해서 그런 수출 증대를 흡수하지 못하면 전 세계는 “이웃 궁핍화” 전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모든 나라가 공급 과잉 상품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려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 이것도 1930년대의 파국을 부른 한 주요 요인이었다.
17 다시 말해, 이윤을 늘리려고 임금을 삭감하면 재화·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다.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하나는 수출을 늘리는 것이지만, 모든 나라가 수출을 늘리겠다고 덤벼들면 공급은 넘치고 이윤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중국과 독일 지배계급은 문제의 근원이 그리스인들과 미국인들의 낭비, 즉 마구 돈을 빌려서 흥청망청 써 대다가 재앙에 빠진 것이라고 대꾸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 논점은 변하지 않는다. 즉, 모든 국가가 지출과 차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려서 불황을 극복하려 하지만, 그 수출품을 누가 구매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30년대와 비슷하다는 울프의 말이 옳다. 당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존 스트레이치는 스스로 “이윤과 풍요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조처는 풍요를 최소화할 것이다. 풍요를 극대화하는 조처는 이윤을 최소화할 것이다.”이런 긴장은 라인하르트와 로고프가 “두 번째 대大수축”이라고 부른 것이 결코 끝나지 않았고 “회복”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은 바로 주요 자본주의 열강 간의 갈등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런 갈등은 지난해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도 드러났다. G20이 남반구의 신흥 경제 대국들도 참여하는 포럼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오바마가 다른 나라들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국제 자본가 계급은 “서로 싸우는 한 무리의 형제들”[마르크스의 표현임 — M21]이다.
투쟁의 단계들
이런 긴장이 얼마나 심각하든지 간에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지는 분명하다. 실업, 임금 억제, 공공 지출 삭감에 짓눌린 노동자들과 빈민들이 경제 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런 예상은 그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스의 위기가 그토록 심각한 이유 하나는 경제 위기가 유럽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 운동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파판드레우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은 그리스 조직 노동계급의 전투성과 2008년 12월 나라를 휩쓴 청년 반란의 저항 정신을 결합시켰다.
국제 노동자 운동이 경제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여기서 자세히 분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국 상황에는 몇 가지 살펴볼 만한 것이 있다. 2007년 8월 이후 영국의 계급투쟁은 몇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먼저, 2007~08년에는 돌이켜 보건대 신용 호황의 후유증이라 할 만한 것이 상황을 압도했다. 즉, 전 세계적인 물가 급등이 대중의 생활수준을 크게 압박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공공부문 임금 투쟁이 분출했고 이는 2008년 봄에 절정에 달했다.
이 국면은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갑자기 중단됐다. 공무원노조PCS, 교원노조NUT, 대학노조UCU 같은 주요 노조의 좌파 지도부는 금융 위기에 대처한다면서 임금 투쟁을 중단했다. 사실, 노조 지도자들은 전장戰場을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이 때문에 생겨난 공백을 2009년 상반기에 일어난 일련의 투쟁들이 메웠다. 특히, 린지 정유회사 노동자들의 파업, 비스티온·베스타스·프리즘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투쟁이 그랬다. 이 투쟁들의 특징은 현장 노동자들이 먼저 치고 나와서, 1970년대 이후 보기 드물었던 투쟁 방법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아무리 모호했더라도 — 특히, 린지 파업 초기에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 노동자에게”라는 구호가 유행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 이런 투쟁들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질적 전환을 보여 줬다.
2009년 가을에 세 번째 국면이 시작됐다. 이 국면의 특징은 노조 관료들이 전장戰場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경제 위기에 압박받은 경영진이 구조조정을 강행해서 착취율을 높이려고 노조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런 모습은 우체국·철도·영국항공BA의 대규모 투쟁들에서 매우 분명히 드러났다. 고등교육이나 성인교육 분야에서도 투쟁이 빈발했는데, 여기서는 총선 훨씬 전에 삭감이 시작되면서 투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의 투쟁 양상은 복잡하다. 우체국에서는 심각한 배신이 있었고, 영국항공의 투쟁 결과는 불확실하고, 타워햄리츠칼리지와 리즈대학교에서는 승리했다. 그러나 저항의 규모가 매우 커서 보수당조차 영국이 “불만의 봄”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영국의 계급투쟁 전개 과정은 왓킨스의 묘사와 달리 무기력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소극적 상황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의 과제는 현장 노동자들의 저항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는 것이다. 특히, 특정 노동자 집단이 투쟁에 들어갔을 때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연대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지난 1월 약 9백 명이 참석한 대표자회의에서 출범한 ‘노동권회의Right to Work Campaign’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
급진 좌파의 곤경
그러나 저항과 연대가 핵심적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지배력을 분쇄해야 한다. 2000년대 초기에 유럽 전역에서 급진 좌파 정당들이 등장해 선거에 도전해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것이 가능했던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사회적 자유주의, 즉 우경화한 사회민주주의 때문에 좌파에 공백이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애틀·제노바·피렌체 시위의 여파로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급진 좌파 정당의 성격과 전략은 이 잡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 — M21]에서 여러 번 자세히 다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 3~4년 사이에 후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특히 이탈리아에서 재건공산당이 쇠퇴하고 영국에서 리스펙트와 스코틀랜드사회당SSP이 모두 파괴적인 분열을 겪은 것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것은 급진 좌파 정당의 성장을 가능케 한 두 가지 조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첫째 조건인 사회적 자유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9년 10월 그리스 총선에서 사회당(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이 승리하고 2010년 3월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한 것을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노동계급의 불만을 이용해 이득을 얻는 책략까지 중단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비록 그 후 파판드레우 정부의 운명에서 드러나듯이 자본 앞에서는 여전히 무기력하지만 말이다.) 둘째 조건, 즉 운동의 성장은 어떤가? 이 문제도 제대로 다루려면 훨씬 더 자세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운동들이 “패배로 끝났다”는 왓킨스의 단언은 명백히 틀렸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정의 운동이 그렇다. 코펜하겐 정상회의 때 코펜하겐뿐 아니라 런던에서도 기후변화 대응 운동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의 호소로 2010년 4월 코차밤바에서 열릴 기후변화 회의도 대중 동원의 초점 구실을 할 것이다. 바그다드 함락[2003년 4월 9일 — M21] 이후 대다수 유럽 나라에서 반전 운동이 급격히 쇠퇴한 것은 사실이다. 비록 영국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운동이 몇 년 더 지속됐지만 말이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은 이 잡지에서 이미 다룬 바 있는데, 그 운동이 표현한 정치적 급진화는 그에 상응해 고양되는 계급투쟁 수준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계속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이 변함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운동의 양상이 이렇게 복잡하지만 —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은 분명히 쇠퇴했고 기후정의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됐다 — 그런 운동이 반영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한 이데올로기적 급진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이론 논쟁에서 다시 지적 활력이 넘치는 것을 보면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더욱이, 살아남은 급진 좌파 결집체들은 2000년대 상반기의 분출이 남긴 정치적 퇴적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페리 앤더슨이 2000년에 우리의 정치적 원점이라고 단언한 위치에서 계속 정체한 것은 아니다.
유럽의 급진 좌파는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독일의 디링케, 프랑스의 좌파전선, 그리스의 쉬리자SYRIZA(급진좌파연합), 포르투갈의 좌파블록이다. 그들의 준거점은 좌파 개혁주의다. 비록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극좌파도 포함돼 있지만 말이다. 또 다른 축은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NPA이다. NPA는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프로젝트, 즉 혁명적 강령을 바탕으로 더 광범한 정당을 출범시킨 프로젝트다.
이 결집체들은 모두 실질적인 세력들이고, 저마다 자국의 선거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적 합의에 균열을 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더욱이, 유럽 수준에서든 국내 수준에서든 급진 좌파 내 좌우파 사이의 균형은 시간이 흐르면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난 3월 프랑스 지방선거에서는 좌파전선 — 장뤽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좌파당과 공산당의 연합 — 이 NPA보다 성과가 좋았다. 급진 좌파의 다양한 양상 중 마지막 한 가지 측면은 유럽의 양대 혁명적 좌파 정당인 NPA와 SWP가 모두 최근에 분열을 겪었다는 것이다. 둘 다 쟁점은 혁명 정당 건설 프로젝트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NPA의 분열은 LCR 내 좌우파의 오랜 투쟁 결과였다. 크리스티앙 피케가 이끄는 소수파(그들의 주된 정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프랑스의 공화주의 전통이었다)는 NPA 창당 직후 탈당해서 좌파전선에 참여했다.
SWP의 분열은 그 기원이 훨씬 더 최근의 것인데, 리스펙트 위기 때 시작돼서 관점을 둘러싼 논쟁으로 발전했다. 전에 SWP의 지도부였던 몇 사람도 포함된(그 중 한 명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전 편집자인 존 리즈다) 극소수파는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이 쇠퇴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급진 좌파가 [2008~09년에 — M21] 버스를 놓쳤다는 주류 좌파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도, 경제 위기에 부응해 전술들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다수파의 주장을 거부했고 결국은 SWP를 탈당했다.
이런 사건들은 급변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방향을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적어도 SWP에게 중요한 정치적 결론은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다양한 투쟁 분야에서 광범한 공동전선을 계속 지지하고 발의하는 것과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투쟁 분야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분야가 선거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연합TUSC: Trade Unionist and Socialist Coalition’이 리스펙트와 SSP의 내부 붕괴 이후 흩어진 급진 좌파 세력을 다시 불러모으려는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총선 때 TUSC 후보들이 할 선거운동은 장차 사회적 자유주의를 대체할 훨씬 더 강력한 좌파적 대안의 토대를 놓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파시스트 우익들의 성장을 생각하면 이런 대안을 발전시키는 것이 정말 긴급한 과제다. 이것은 단지 영국만의 과제도 아니다.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이 되살아난 것을 보라.
그러나 영국의 급진 좌파 세력들이 너무 취약해, 혁명가들은 수많은 조직 노동자들이 아무리 내키지 않고 마뜩잖더라도 선거에서 노동당을 지지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가능하다면 좌파에게 투표하고, 정 어쩔 수 없다면 노동당에 투표하시오”라는 구호는, 고든 브라운이 간신히 총리직을 유지하더라도 그의 정부 정책이 데이비드 캐머런이 이끄는 정부 정책보다 질적으로 나을 것이라는 환상을 전혀 함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호는 아직 노동당 정치와 결별하지 못한 수많은 투사들과 정치적 대화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보수당이 차기 정부를 구성해서(그럴 가능성이 여전히 훨씬 농후하다) 신노동당이 이미 시작한 공격을 더욱 강화한다면 그런 대화가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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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ex CallinicosInternational Socialism 126(Spring 2010).
↩
- Birchall, 2008. ↩
- Callinicos, 1977에서 인용. ↩
- Watkins, 2010, p12. ↩
- Watkins, 2010, p20. ↩
- Watkins, 2010, p21. ↩
- Watkins, 2010, p23; Anderson, 2000, p17. ↩
- Watkins, 2010, p27. ↩
- 예컨대, <가디언>의 앤디 베켓이 쓴 글과 이에 대한 내 반론은 Beckett, 2009, and Callinicos, 2009을 보라. ↩
- Reinhart and Rogoff, 2009, p224. ↩
- Lapavitsas and others, 2010, p28. ↩
- Lapavitsas and others, 2010, p46. ↩
- Callinicos, 2010, pp97-101. ↩
- Munchau, 2010. ↩
- Financial Times, 14 March 2010. ↩
- Drezner, 2010을 보시오. 그리고 이 글이 불러일으킨 논쟁과 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견은 Hart-Landsberg, 2010을 보시오. ↩
- Wolf, 2010. ↩
- Strachey, 1935, p101. ↩
- Callinicos and Nineham, 2007. ↩
- 지난 1월 다니엘 벤사이드의 죽음으로 NPA는 주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한 명을 잃었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다음 호에는 다니엘 벤사이드를 되돌아보는 세바스천 버전Sebastian Budgen의 글이 실릴 것이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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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inicos, Alex, 2009, “Yes, the Left Faces Many Challenges—but It’s Not All Doom and Gloom”, Guardian (21 August 2009) 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09/aug/21/marx-politics-left-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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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chau, Wolfgang, 2010, “Shrink the Eurozone, or Create a Fiscal Union”, Financial Times, (14 Marc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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