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낙태 윤리 논쟁과 낙태권 운동
1. 들어가며
1 12월 25일 진오비 회원들이 주축인 낙태근절운동본부는 프로라이프의사회로 이름을 바꾸고 “두려워 마십시오. 저희 의사들이 당신을 돕고 당신의 아기를 지킬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2010년 1월 1일부터 불법 낙태 시술 병원 정보를 제보받기 시작한 프로라이프의사회가 2월 23일 불법 낙태 시술 병원 세 곳을 형사 고발하자 상황은 절정에 달했다. 2 곧이어 보건복지가족부는 ‘불법낙태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해(3월 1일) 낙태 단속 강화를 알렸다. 그 후 3월 24일 프로라이프의사회는 ‘2010 태아 살리기 범국민대회’를 주최하며 종교계와 규합을 도모했고, 3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각 정당에 낙태 문제 관련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지금 보수진영에서는 프로라이프의사회와 이명박 정부와 종교계가 함께 낙태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2010년만큼 낙태가 쟁점이 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낙태 논쟁에 불을 댕긴 것은 2008년 12월 1일 출범한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였다.[‘오비OB’는 산과Obsterics의 약자로 의료인들이 흔히 쓰는 용어다.] 진오비는 2009년 하반기부터 “불법 낙태 근절 대국민 성명서 발표”와 “양심선언” 등 집중적으로 터닦기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후인 11월 25일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제1차 저출산 대응 전략회의’를 열어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낙태 줄이기 캠페인을 채택했다.4 그런데 이런 대응을 잘 해나가려면 논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더 탄탄해져야 한다. 이 글은 낙태 합법화 운동에 기여하고자 낙태를 둘러싼 윤리 논쟁을 살펴보고, 미국에서 벌어진 낙태 논쟁도 소개하려 한다.
낙태 단속·처벌에 반대하는 24개 여성·진보단체들은 3월 5일 ‘여성의 임신·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 선언’을 하며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했다.2. 낙태 합법화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통계들
5 속에서 체계화된 것이다.
현재 한국의 낙태 논쟁은 미국에서처럼 프로라이프pro-life 대 프로초이스pro-choice 구도와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옹호하는 낙태 반대 진영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낙태 합법화 진영의 대결 구도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낙태 논쟁은 서구 사회보다 뒤늦게 불붙은 덕분에 다행히 낙태 합법화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줄 객관적인 자료와 통계들이 많다. 여기서는 이런 자료와 통계들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볼 것인데, 이것들은 서구에서 이미 몇 차례 앓아온 낙태 공격 ‘유행병’· 낙태 정책과 모성사망비의 상관관계
7 아래선은 낙태로 말미암은 산모의 사망비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1966년부터 모성사망비와 낙태로 말미암은 산모의 사망비가 급격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1966년은 바로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낙태·피임·이혼 금지 정책을 펴기 시작한 해다. 급격히 치솟던 사망비는 1990년부터 급감하는데, 1989년 12월 25일 차우셰스쿠가 처형당한 뒤 낙태와 피임 규제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8
낙태 정책과 임신 여성의 건강은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루마니아 사례를 다룬 그림1은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그림1의 윗선은 모성사망비를 나타내고, 낙태 불법화는 여성을 출혈이나 감염 등을 유발하는 위험한 시술로 몰아넣고 목숨을 위협한다. 미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되자 1970~76년 낙태 5천 건당 여성 사망률은 30에서 5로 줄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1996년 낙태 합법화 뒤에 낙태로 말미암은 감염은 절반으로 줄었고, 1994~2001년 낙태 관련 여성 사망률은 91퍼센트 감소했다.· 낙태 합법화 이후 낙태 건수
10 오히려 낙태 건수는 1985년 이후 점차 감소해 2003년에는 24만 건으로 낙태 합법화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는 낙태 합법화가 결코 낙태를 부추기지 않음을 보여 준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 논란거리인 낙태 시술에 공적 보조금을 지급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연구 결과가 있다. 패트릭 웰런 박사가 권위 있는 의학 잡지인 《뉴 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기고한 글을 보면,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낙태 시술에 공적 보조금을 제공해도 낙태율은 증가하지 않았다. 11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 합법화가 낙태를 부추긴다며 미국에서 1973년 낙태 합법화 이후 낙태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을 근거로 들곤 한다. 총 낙태 건수는 1969년 5만 건에서 1970년 20만 건, 1975년 1백만 건, 1980~85년 연평균 1백60만 건으로, 낙태 합법화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낙태 건수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불법 시술로 드러나지 않던 통계가 잡힌 것일 뿐이다.노르웨이에서도 1978년 낙태 합법화 이후 그 전과 비교해 낙태 건수나 낙태율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 특히, 낙태의 허용 범위가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양육이 어려운 경우’에서 ‘여성이 요청할 경우’로 확대됐는데도 낙태가 증가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낙태가 합법화되면 여성들이 너무 쉽게 낙태를 선택할 것이라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한때, 스페인에서 낙태가 합법화된 1985년 이후 낙태가 증가했다는 통계가 신빙성 있는 근거로 제시됐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연구 결과를 보면, 1985년 이전에 주변국인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낙태 시술을 받은 경우를 합친 결과 합법화 이후 낙태 건수가 늘어난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요컨대, 그림 1과 2는 낙태 합법화가 낙태율을 결코 증가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낙태로 말미암은 여성의 사망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밖의 많은 연구 결과들을 봐도 낙태에 대한 개방된 접근이 여성과 가족과 전체 사회 구성원의 복지 증진에 중요하다. 표1. OECD 회원국의 인공임신중절 허용기준 및 중절률
구분 | 모체생명, 신체건강 | 모체의 정신건강 | 강간, 근친상간 | 태아기형 | 사회경제적 이유 | 본인 요청 | 낙태율 | 모성 사망율 |
미국 | O | O | O | O | O | O | 20.8 | 17 |
캐나다 | O | O | O | O | O | O | 15.2 | 6 |
오스트리아 | O | O | O | O | O | O | 1.3 | 4 |
벨기에 | O | O | O | O | O | O | 7.5 | 10 |
체코 | O | O | O | O | O | O | 12.2 | 9 |
덴마크 | O | O | O | O | O | O | 14.3 | 5 |
프랑스 | O | O | O | O | O | O | 16.9 | 17 |
독일 | O | O | O | O | O | O | 7.8 | 8 |
그리스 | O | O | O | O | O | O | 5 | 9 |
헝가리 | O | O | O | O | O | O | 23.4 | 16 |
이탈리아 | O | O | O | O | O | O | 10.6 | 5 |
네덜란드 | O | O | O | O | O | O | 10.4 | 16 |
스위스 | O | O | O | O | O | O | 7.3 | 7 |
핀란드 | O | O | O | O | O | - | 11.1 | 6 |
노르웨이 | O | O | O | O | O | O | 15.2 | 16 |
스웨덴 | O | O | O | O | O | O | 20.2 | 2 |
영국 | O | O | - | O | O | - | 17.0 | 13 |
슬로바키아 | O | O | O | O | O | O | 11.7 | 3 |
터키 | O | O | O | O | O | O | .. | 70 |
아이슬란드 | O | O | O | O | O | - | 14.1 | |
룩셈부르크 | O | O | O | O | O | - | .. | 28 |
호주 | O | O | O | O | O | - | 19.7 | 8 |
일본 | O | O | O | - | O | - | 12.3 | 10 |
스페인 | O | O | O | O | - | - | 8.3 | 4 |
포르투갈 | O | O | O | O | O | O | 0.2 | 5 |
폴란드 | O | - | O | O | - | - | 0 | 13 |
뉴질랜드 | O | O | O | O | - | - | 19.7 | 7 |
한국 | O | - | O | - | - | - | .. | 20 |
멕시코 | △ | - | O | O | - | - | 0.1 | 83 |
아일랜드 | △ | - | - | - | - | - | .. | 5 |
· OECD 국가들의 낙태 허용 기준 현황
표1은 낙태 규제와 낙태율이 전혀 상관없음을 보여 준다. 이 표를 분석해 보면, 대개 선진국일수록 낙태 허용 범위가 넓다(물론 기간 제한은 있지만). 한국보다 더 열악한 나라는 아일랜드 정도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낙태 허용 범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늘 “선진화” 운운하는 이 정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선진화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3. 생명 윤리를 근거로 한 낙태 반대론 비판
앞에서 살펴봤듯이 낙태 합법화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통계가 많이 있는데도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낙태를 윤리 문제로 보려 한다. 사실, 사회·경제적 조건과 임신 여성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낙태의 윤리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핵심 문제를 흐리는 효과를 낸다. 그럼에도 결국 낙태가 태아(혹은 배아)를 제거하는 행위이므로 태아와 관련한 윤리 논쟁은 불가피하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마치 낙태 합법화론이 비윤리적인 듯이 물고 늘어지는데, 이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낙태 합법화론자들이 윤리 문제도 잘 다뤄야 한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낙태 반대론자들은 결코 우위에 있지 않다. 학계에서는 낙태의 윤리적 문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꽤 진척돼 있는데 여기서도 낙태 반대 입장은 결코 주류가 아니다. 예컨대,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이자 전 국제생명윤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피터 싱어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생명윤리학자이고 대표적인 낙태 찬성론자다.
본격적으로 윤리 논쟁을 들여다보기 전에 낙태와 관련한 용어의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흔히 배아, 태아, 아기 등과 같이 상이한 용어들을 뒤섞어 쓰는데, 이것은 태아를 인격을 갖춘 인간과 동일시해 그 생명권을 주장하려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는 것을 수정, 수정이 일어난 뒤부터 9주까지를 배아embryo라고 한다. 이를 더 세분화해 수정 후부터 본격적인 분화가 일어나는 2주까지를 전배아pre-embryo라고도 한다. 수정 9주 후부터 출산 직전까지를 태아fetus, 태어나는 순간부터는 신생아newborn baby라고 부른다. 태어나서 1세까지를 영아, 1세부터 6세까지를 유아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보건 상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인 영아사망률은 1세 미만 아기의 사망률을 말한다. 이것은 의학 용어일 뿐 아니라 법률과 윤리학의 용어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유아는 살인죄의 대상이지만 태아는 그렇지 않다.
1) 임신 순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주장에 대해 이제, 인간 생명은 임신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핵심적 논리를 살펴보겠다. 대표적인 학자인 존 누난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유전자를 형성할 때 유전적으로 독특한 개인individual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발생한 배아는 유전자 덕분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자궁을 찾기만 하면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17 또한, 세계 도처에 의학적 연구를 포함해 다양한 목적으로 냉동 보관중인 수천 개의 배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인격체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다는 것이 곧 인격체를 의미할 수 없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8 보수 정치인들이 수정 순간부터 인간이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막상 시험관아기 시술은 장려하는 아이러니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만도 시험관아기 시술은 1만 5천 건이 시행되고 있고, 성공률은 25~35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9 게다가 한 번 시술할 때 한 개의 배아만 자궁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착상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보통 3~5개를 이식한다. 그렇다면 적게 잡아도 약 4만 개의 배아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얘기다. 20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시험관아기 시술을 지원하는데, 존 누난의 논리대로라면 낙태 근절을 주장하는 정부가 약 4만 명의 개인individual을 죽이는 (물론 살리는 배아도 있지만) 사업에 세금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 존 누난은 수정된 난자가 유전적 특징이 있는 23쌍의 염색체를 가지므로 인간이 되는 시작점이라고 본다. 그런데 사실, 인간의 모든 세포에는 23쌍의 염색체가 있다. 따라서 존 누난의 주장대로라면 목욕탕에서 때미는 것도 살인 행위가 된다.임신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주장의 또 다른 버전은 수정을 통해 인간 유기체 조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대부분 인간 유기체가 될 수 없지만 수정된 난자는 다르며 이들 중 많은 것이 결국 성숙한 인간 존재가 되므로 수정된 난자들을 개별적인 인간 유기체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21 그렇다면 배아는 어떤가? 배아도 인간 유기체라고 볼 수 없다. 심지어 의학적으로는 두 번째 3개월(15~28주)의 후반부 또는 그 후의 태아도 사고나 자아 인식, 그리고 다른 복잡한 정신적 능력 같은 의식적 경험에 필요한 신경생리학적 구조나 기능들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 존재로 판단한다.
그러나 아주 초기의 배아conceptus는 그것이 발전된 형태인 배아embryo와도 다르다. 수정된 초기 2주 동안 그것은 하나의 분화되지 않은 덩어리이고, 그것들 중 하나가 특정 조건에서 배아가 되는 것이므로 아주 초기의 배아를 개별적 인간 유기체라고 할 수는 없다.2) 태아의 잠재성과 인격성에 관한 논쟁 마퀴스 같은 학자들은 태아가 인간이 될 잠재성을 지닌 존재이므로 낙태는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매우 고귀하게 여기며, 태아도 더 발달하면 자신의 생명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잠재성을 지닌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3 (가톨릭 교회의 피임 반대 교리가 이런 논리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 논리가 난자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즉, 정자가 제때 도착할 경우 수정될 수 있는 수정 전 난자에도 인간의 잠재성이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기의 탄생을 위한 많은 생물학적 필요조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난자가 단지 정자의 도착으로 잠재적 인간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이런 논리를 인정하게 되면 피임법의 사용조차 비도덕적인 것이 된다.24 식물인간처럼 이 기준을 어디까지 적용할 것이냐 하는 논란이 있지만, 워렌의 논리는 낙태 합법화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낙태 윤리 논쟁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인격성personhood 문제다. 즉, 배아든 태아든 신생아든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 정수는 인격성이며 그것을 획득하는 순간부터 생명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렌은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human과 생명권을 함축하는 가치를 지닌 존재인 인격체person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렌은 인격성의 기준으로서 인지적 기준cognitive criter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태아는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인격체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고 인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쥐와 다른 이유는 추론, 사려 깊은 자기 이해, 의사소통, 동기가 부여된 행위,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 같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인지력cognition”을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없고 이런 능력들이 결집해야 인지력을 갖추게 된다. 이런 모든 능력이 결핍된 존재는 인지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따라서 인격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공리주의적 논리를 살펴보자. 피터 싱어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소망과 관련된 “이익”을 인격체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그는 이익의 조건으로 ‘고통을 느끼는 능력sentience’과 고통을 피하고 싶은 소망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격을 죽이는 것은 미래의 소망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태아는 미래 소망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태아는 결코 인격이 아니므로, 인격체로서 생명권을 갖지 않는다.”26 “인간=인격”임을 주장하며 배아 혹은 수정된 난자부터 인격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렇다고 믿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잠재성 논리 논의에서 반박한 것과 유사한 종류의 추론을 해 보면 이러한 논리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공리주의적 이론에 반대해 인격주의를 주장한다. 즉, 몇 개의 조건을 가지고 인격성을 따져서는 안 되고 생명체와 인격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비인격주의라며 인간은 그 자체로 인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독교 윤리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며, 그만큼 논리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믿음에 가깝다.3) 엄마-태아 사이의 관계와 후기 낙태 문제
27 이런 관점은 낙태를 여성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 태아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전제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태아와 인간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중요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태아는 수태 기간의 대부분 동안 의식과 감각이 없다. 적어도 처음 3개월과 아마도 두 번째 3개월 기간의 대부분 동안 태아는 생리적으로 고통을 느끼거나 다른 어떤 경험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낙태는 대부분 이 시기에 이뤄진다.(미국에서는 전체 낙태의 1.5퍼센트 미만만이 20주 이후에 시술되어, 대부분은 12주 안에 시술된다. 28 )
낙태는 종종 엄마-태아 간 갈등의 전형적인 예로 여겨진다.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감각이나 초보적인 욕구 능력이 이해관계를 갖기 위한 필수 조건인데 임신 초기의 태아는 의식과 감각이 없으므로 어떤 것도 원할 수 없다. 물론 의식이 없는 존재를 가치 있고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대하는 데는 도덕적 이유를 포함해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그 이유는 의식이 없는 존재의 이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의식이 없는 존재는 어떤 이익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신 기간의 대부분 동안 낙태를 태아의 이익과 임신 여성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태아가 감각을 지니게 되는 시기는 (아마도) 두 번째 3개월의 끝무렵이다. 이때 태아는 최소한 하나의 이익, 즉 고통스런 자극을 피하려는 이익을 갖게 된다. 그래서 후기 낙태는 감각이 있는 태아에게 고통을 주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후기 낙태는 사람들 대다수가, 심지어 많은 낙태 합법화 지지자들조차 반대한다. 임신 후기의 태아는 신생아와 거의 유사한 존재라는 것이다.
29 달리 말하면, 태아는 임신부에 의존하고 있고 영향을 받는다는 독특한 처지 때문에 심지어 감각이 생긴 경우에도 온전한 생명권을 부여할 수 없다. 30
그렇다면 감각 있는 태아는 생명권을 갖는가, 그래서 정말로 엄마와 동일한 생명권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후기 낙태를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인가?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후기 낙태는 대부분 임신 여성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선택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임신을 원했지만 뜻하지 않은 비극적 상황에 봉착한 경우들이다. 이때 출산을 시도한다면 아이가 죽거나 여성이 죽거나 불임을 포함해 여성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럴 때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보존해야 하는 임신부의 장기적 이익이 고통을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불운한 태아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 심지어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한다 해도 임신부에게 생명과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태아를 몸 안에 두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31 후기 낙태는 초기 낙태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훨씬 절박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기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위급한 여성들을 위험한 낙태로 몰고 가는 것밖에 안 된다. 이를 금지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서라기보다 낙태권 전반을 공격하려는 32 보수세력의 저항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예컨대, 후기 낙태를 “부분 출산partial birth”으로 규정하고 후기 낙태에 사용되는 소파술D&E을 금지하는 “부분 출산 낙태 금지법”은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덧붙여, 이런 문제를 다루면서 다시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낙태를 쉽게 여기는 여성은 없다는 것이다. 안나스가 표현했듯이 우리는 흔히 임신한 여성을 ‘태아의 컨테이너’로 취급하는 위험에 빠진다.4. 종교를 근거로 한 낙태 반대론의 허구
일부 종교인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나 고대 율법이 낙태를 금지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 윤리 분야에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는 저명한 교회 역사학자 폴 배드햄의 글을 보자.
확실히 성경은 인간 생명의 가치를 가르치며, 어떤 인간에 대해서도 살인을 금지하고 있다(시편 8편). 그러나 성경을 보면, 생명은 오로지 생기가 코로 들어가서 남자 혹은 여자가 “살아있는 존재living being가 될 때”(창세기 2장 7절)에만 시작하게 된다. …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태아는 인간이 아니다. 이는 살인과 관련된 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록 출애굽기에 수록된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명확한 기술이 있지만, 그 다음 장의 내용에서 어른의 죽음과 출산 이전의 태아의 죽음이 구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출애굽기 21장 22절)라는 구약의 법은 아시리아 법에서 발견되는 “[임신한 — M21] 여인을 때린 자는 태아에 대한 보상으로 생명을 내놓는다”라는 법과 비견할 만한 언급이 전혀 없다. 성경에는 원래 “어떤 해악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가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성경에 나오는 낙태와 관련이 있는 문장들은 그 문맥으로 볼 때 낙태를 결코 산모에게 “해악”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즉, 태아 자체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을 고려한 흔적이 전혀 없다. 또한, 태아에 대한 관심의 부재는 혼외정사의 결과로 임신한 여자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것에서도 암시되어 있는데, 사형을 집행하면 여자와 태아가 모두 죽는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신명기 22장 21절, 레위기 21장 9절, 창세기 38장 24절). …
쟁점인 낙태 그 자체로 관심을 돌릴 때, 그렇게도 [낙태를 — M21] 강력하게 반대하는 성경 원리주의자들이 낙태에 대한 성경의 침묵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다소 난감하게 만든다. 이 침묵이 의미가 있는 것이든 아니든, 낙태에 대해 어떤 관점을 견지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보면 성경은 낙태를 다루고 있지 않으므로 누구도 낙태에 대해서 성경의 가르침에 직접적으로 호소할 수는 없다.
34 그렇다면 가톨릭을 비롯해 기독교가 오늘날과 같은 낙태 반대 주장을 정립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심지어 신약 어느 곳에서도 예수가 낙태에 반대한 발언을 찾을 수 없다.처음 교회에서 낙태를 금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서기 4세기에 이르러서다. 당시 기독교는 독신을 장려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 세력 확장에 문제가 됐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이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교의를 개정해, 결혼은 하되 아이를 갖기 위한 성관계만 허용했다. 이렇게 재생산을 위한 성관계만을 허용하자 자연스럽게 낙태는 죄가 됐다.
그 후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영혼의 발전 단계를 적용해 “(영혼이) 형성된” 태아와 “(영혼이) 미형성된” 태아 구별로 낙태와 살인을 규정했다.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더 구체화해 신이 남자 배아에게는 임신 40일 후에, 여자 배아에게는 임신 90일 후에 “영혼을 불어넣는다”고 규정하고, 40일이 지난 남자 배아를 낙태하는 행위는 동일한 시기의 여자 배아를 낙태하는 행위보다 더 엄하게 처벌했다. 이와 같은 낙태 규제는 십자군 전쟁 말기를 배경으로 시행됐는데, 전세가 기우는 상황에서 병력이 많이 필요했고, 전쟁의 정당성이 점점 약화됨에 따라 강력한 사회 통제가 필요했던 맥락에서 낙태 규제가 강화된 것이다.
35 이런 갈등이 점점 첨예해지자 1870년 교황 비오 9세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해 자신과 미래 교황들의 칙령은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교황무오류설’을 선언한다. 이 시기에 가톨릭 교회는 인격성이 수태에서 시작된다는 교의에 도달했다. 비오 9세는 영혼이 “형성된” 태아와 “미형성된” 태아를 구분하는 기존 교리조차 일절 수용하지 않았고 모든 종류의 낙태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36 이렇게 전통적 교리를 넘어서면서까지 낙태 단속이 강화된 것은 당시 진화론처럼 교리와 심각하게 대립하는 과학적 발견들이 있었다는 점, 이와 맞물려 민중 사이에서 자유주의 흐름이 강하게 확산되고 있었다는 점, 민족 반란으로 교황령이 침탈되고 교회 권력이 도전받고 있었던 점 등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37
19세기에 이르러 과학이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종교계의 주장은 혼란을 겪는다. 영혼을 불어넣는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개념은 중요한 과학적 발견으로 불신 받기 시작했다.5. 낙태 권리를 위한 투쟁 — 미국을 중심으로
38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의 법원 판결문을 보면, 이 당시 미국 사회에서 낙태권이 비교적 폭넓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유럽의 관습법은 “태동하는” 태아를 중절하는 행위조차 기소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1803년 영국 성문법은 태동하는 태아 낙태를 사형에 처할 정도의 중범죄로 명시했지만, 태동 이전(약 16~18주)의 낙태는 가볍게 처벌했다. 17~19세기까지 미국의 법은 영국의 관습법을 따라 사실상 낙태의 자유를 광범하게 보장했다.현재 효력을 발하고 있는 대부분의 미국 주법과 비교해 보면 관습법과 그것을 우리의 헌법이 채용할 당시 그리고 19세기의 거의 모든 시기에는 낙태가 상대적으로 지탄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당시의 여자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주에서 여자들이 누리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낙태권을 누리고 있었다.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법적인 제한 없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19세기의 이 나라에는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한동안 법은 임신 초기의 낙태를 엄하게 처벌하지 않았다.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이런 관대함은 변화를 겪었다. 대부분의 주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격한 제한과 엄한 형벌을 부과했다. 한 페미니스트 역사학자는 이런 낙태 단속 입법은 참정권과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반동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남북전쟁 이후 등장한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산파나 자격증이 없는 의사들을 규제하고 의료의 권한을 독점하려고 의사 외에는 낙태 시술을 할 수 없도록 하면서 낙태 불법화에 힘을 보탰다. 미국에서 낙태가 불법화된 뒤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떤 의사들은 낙태 시술의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했고, 낙태 시술은 대부분 마취 없이 이뤄졌고, 수술 결과가 아무리 나빠도 여성은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의사들이 하는 불법 낙태 시술 비용은 너무 비싸 가난한 여성들이나 10대 청소년들은 낙태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 뒤 미국 사회는 낙태 권리를 확대하는 데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두 사건을 겪게 된다.
· 1962년 셰리 핑크바인 사건
42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커다란 이슈가 됐고, 본격적인 낙태 합법화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1962년에 셰리 핑크바인은 다섯째 아이를 임신중이었다. 임신 5개월이 지난 즈음 그는 임신부들을 위한 입덧과 불면증 치료제로 알려진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했다. 그러나 탈리도마이드가 팔이나 다리가 없는 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셰리 핑크바인은 태아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위해 “치료적” 낙태를 원했고,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한 지방검사가 그녀를 기소하겠다고 위협했고, 이에 핑크바인은 치료적 낙태가 합법인 스웨덴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 로 대 웨이드 사건은 낙태 논쟁의 역사를 다룰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다. 1970년 3월 당시 텍사스 주법은 모든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텍사스 주에 살던 제인 로(본명 노마 맥코비)가 위헌소송을 제기하며 사건이 시작됐다. 로는 유능하고 자격있는 의사에게 안전하게, 병원에서 낙태 시술을 받기를 원했다. 재판정에서 로는 임신 상태를 종결하기를 원하며, 자신이 임신 지속 때문에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텍사스에서는 합법적으로 낙태를 받을 수 없는데, 그렇다고 안전한 환경에서 합법적인 낙태를 받기 위해 다른 재판관할권 지역으로 여행할 만한 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에서 블랙먼 대법관은 미국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인 “프라이버시권은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종결할지 말지를 결정할 권리를 포괄할 만큼 넓은 개념”이라고 판시함으로써, 여성의 낙태 결정 권리를 프라이버시권으로 인정했다.
44 체외생존 가능성이다.(각국마다 낙태 허용 범주는 다르지만, 이 기준은 현재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법적 낙태 가능 기준점으로 적용되고 있다.) 즉, 법원은 태아의 발달과 인격성에 대한 종교적 관점과 철학적 관점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합법적인 목적을 정하고자 체외생존 가능성이라는 기준을 정했다. 체외생존 가능성이 생겨난 이후의 낙태는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으나, 체외생존 가능성이 생겨나기 전인 28주(2분기와 3분기의 구분 지점)까지의 낙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재판에서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한 것이 바로 삼분기 분류법과 로 대 웨이드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낙태 권리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면적인 ‘낙태권’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기간에 따른 구분법으로 접근했고 낙태를 사적인private 사안으로 간주했다는 한계를 남겼다.· 낙태권과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낙태 합법화 역사를 다루는 많은 글들은 셰리 핑크바인과 로 대 웨이드 사건 덕분에 미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됐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196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분석이다. 1968년 반란과 ‘휴마네 비테’를 살펴봐야 낙태 합법화의 역사에서 셰리 핑크바인과 로 대 웨이드 사이에 놓인 공백을 이해할 수 있다. 1968년 7월 29일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어떤 형태의 인공적 출생 조절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휴마네 비테’ 회칙을 반포했다. 이 회칙은 1968년 반란이라는 거대한 사회변혁의 물결 한가운데서 발표됐다. 당시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는 경향과 혼외정사에 대한 관용이 점차 증가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가톨릭의 반동적 도발인 휴마네 비테는 68년 반란의 거센 기운 속에서 미국 내 많은 가톨릭 신도들의 공공연한 반대에 부딪쳤다. 25년이 지난 1993년 보수적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시 이 회칙을 옹호했지만, 미국 가톨릭 신자의 90퍼센트는 교회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때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에서 멀어지게 됐다.
이런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낙태 합법화가 추진됐고, 로 대 웨이드 사건보다 5년 앞서 미국 인구의 41퍼센트를 포괄하는 18개 주에서 독자적으로 낙태법이 제정됐다. 1970년에 처음으로 하와이가 낙태를 합법화했고, 뉴욕, 콜로라도, 노스캐롤라이나, 캘리포니아가 뒤를 이었다. 이때 법안에 서명한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 격변의 기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렇듯 미국 사회에서 낙태가 허용된 결정적 계기는 반전 운동과 공민권 운동을 필두로 한 사회 격변이었고, 로 대 웨이드 사건은 그런 분위기의 반영이었다. 저명한 생명윤리학자인 그레고리 펜스는 이런 시대적 상황상 “로 대 웨이드 사건이 없었다면 오히려 더 많은 주에서 소송이 뒤따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낙태 반대론자들은 주 또는 의회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논쟁조차 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이들은 개인의 성적 가치관과 관련된 국가의 정책을 보며 심한 박탈감을 느낄 정도였다.
· 반동의 공세
48 레이건은 생명 존중, 기독교 신앙, 전통적 질서와 도덕 등의 가치를 정치 쟁점화했다. 물론 보수적인 문화적 선동이 정치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49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문화적 쟁점들이 두드러지게 중요한 정치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50 부시 집권기에 이런 경향이 확연해졌다.
1960년대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뒤(1970년대 후반부터) 보수세력은 반동을 기도했다. 여기서 중심 구실을 한 것은 기독교 우파였다. 대표적인 기독교 우파 조직인 제리 폴웰의 “도덕적 다수”와 팻 로버트슨의 “기독교 연맹”이 결성됐고, 이 단체들은 1980년과 1984년 레이건 집권에 크게 기여했다.51 부시는 낙태와 (투표권 없는) 청소년들의 성문화를 단속하는 제스처를 통해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52
2001년 9·11 테러 이후 치러진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른바 “도덕적 가치”가 부시 재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즉, 낙태, 동성 결혼, 성문화 같은 쟁점은 테러 위험 못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6. 맺으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낙태 논쟁은 미국에서 벌어졌던 지형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낙태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는데, 미국의 사례에서 봤듯이 낙태 공격은 보수층에게 유용한 정치적 수단이다. 도덕적 포장으로 자신들의 부패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교계를 비롯한 보수층의 결집(특히 선거 국면에서)에도 유용하다. 또한, 진보진영을 (비윤리적인 양) 낙인 찍고, (미국 건강보험 개혁안 통과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진보적 정책을 발목 잡기 위한 히든 카드로도 유용하다.
53 이밖에도 경제 위기 시기에 가족 제도가 하는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은 지배자들에게 긴요하다. 가족은 고통받는 대중의 경제적·심리적 안전판 구실을 한다.
또한, 지배자들은 낙태권을 공격해 가족 제도를 강화하려 한다. 이혼, 독신, 혼외 출산 증가 등으로 가족 제도가 약화되는 추세를 거슬러 가족 제도를 보호하고 싶어한다. 가족 제도를 이용해 양육, 노인 부양, 간병 같은 일들을 개별 가정에 떠넘기는 것은 요즘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복지 축소 공세와도 맞물린다. 아내와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출산이나 양육을 국가가 지원하라는 요구를 무마하는 효과도 낸다.54 낙태 공격은 여성의 삶뿐 아니라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 모두를 옥죄려는 시도의 일부다. 바로 이 점이 낙태 공격에 맞서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대중이 단결해 투쟁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낙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귀결짓는 일은 레이건조차 낙태 합법화 법안에 서명하게 만든 것 같은 강력한 사회 운동을 건설함으로써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55
지금 벌어지는 낙태 공격은 미국에서처럼 앞으로 더 자주, 더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다.주
- ‘저출산 정책과 낙태 논란’, 《한겨레21》 789호(2009년 12월 11일자호). ↩
- 프로라이프의사회 공식 웹사이트 www.prolife-dr.org ↩
- 참여 단체를 살펴보면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낙태반대운동연합, 대한불교조계종 구담사, 사랑의교회 생명윤리선교회, 상생,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고, 후원은 대한불교조계종이다. ↩
- http://www.left21.com/article/7740에서 선언 전문을 볼 수 있다. ↩
- 이 표현은 대표적 의학 잡지인 《랜싯Lancet》에 실린 논문이자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재편집돼 전 세계에 보급된, 낙태 합법화의 정당성을 잘 설명한 유명한 논문 제목에서 따왔다. David A Grimes & Janie Benson & Susheela Singh & Mariana Romero & Bela Ganatra & Friday E Okonofua & Iqbal H Shah, ‘Unsafe abortion: the preventable pandemic(불안전한 낙태: 막을 수 있는 전염병)’, The Lancet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Series(2006). ↩
- WHO는 해마다 핵심 과제를 정해 그 결과를 4월 7일 세계 보건의 날에 맞춰 발표한다. 1998년의 핵심 과제는 ‘안전한 모성Safe Motherhood’이었다. 이 자료는 이때 발표된 자료다. 아래 사이트에서 1998년에 발표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http://www.who.int/docstore/world-health-day/en/whday1998.html ↩
- 흔히 모성사망비와 모성사망률을 섞어 쓰는데, 둘은 완전히 다른 용어다. 모성사망비maternal mortality ratio는 10만 명의 신생아 출생당 임신과 관련된 질환 등으로 사망한 산모의 비율이다. 모성사망률maternal mortality rate은 15~49세 여성(가임여성) 1천 명 중에서 이유와 관계 없이 사망한 여성의 비율이다. ↩
- WHO, ‘Address Unsafe Abortion’(1998.10). http://www.who.int/docstore/world-health-day/en/pages1998/whd98_10.html ↩
- 윤정원, ‘낙태 논쟁의 내용과 의미’, 건강과대안(2010.5.4). ↩
- 김해중, ‘각국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2006한국생명윤리학회봄철학회자료집(2006), 5쪽. ↩
- Patrick Whelan, ‘Abortion Rates and Universal Health Care’(2010.4.1). 최근 미국 상황과 관련해 보면 이 논문은 더욱 의미가 있다. 오바마가 건강보험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낙태 문제가 마지막까지 뜨거운 감자였는데, 결국 오바마는 ‘연방자금 낙태 지원 금지’를 약속하며 공화당 의원을 설득했다. ↩
- Guttmacher Institute, ‘Facts on Induced Abortion In the United States’(2010.5). ↩
- Rosana Peiro외, ‘Does the liberalization of abortion laws increase the number of abortions? The case study of Spain’, European Journal Public Health 11(2001). ↩
- David A Grimes 외, 앞의 글; WHO 5thedition ‘Unsafe abortion : global and regional estimates of the incidence of unsafe abortion and associated mortality in 2003’(2003); Guttmacher Institute, ‘Facts on Induced Abortion Worldwide’(2009.10). 이 외에도 낙태 합법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이점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많이 진척돼 있다. 다음 논문들은 낙태를 합법화하고 낙태 시술 접근성을 높일 때 산모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
- ‘Ensuring Women’s Access to Safe Abortion : A Key Strategy for Achieving MDG’(2009); ‘Reducing the costs to health systems of unsafe abortion: a comparison of four strategies’, J Fam Plann Reprod Health Care(2007); Vlassoff M & Walker D & Shearer J & Newlands D & Singh S, ‘Estimates of health care system costs of unsafe abortion in Africa and LatinAmerica’, Perspect Sex Reprod Health(2009); ‘Making induced abortion safe and legal, worldwide’, The European Journal of Contraception and Reproductive Health Care(2009). ↩
- 윤정원, 앞의 글. ↩
- 피터 싱어·헬가 커스, 《생명윤리학》, 인간사랑, 2005, 282쪽. ↩
- 임종식, 《생명의 시작과 끝》, 로뎀나무, 1999, 189쪽. ↩
- 그레고리 E 펜스, 《고전적 사례로 본 의료윤리》, 지코사이언스, 2007, 156쪽. ↩
- 평균 이식되는 배아를 4개라고 가정하고 성공률을 높게 잡아 3분의 1이라고 치면, 평균 1만 5천 건이라고 했을 때 2만 개의 배아가 착상되고 4만 개의 배아가 사라진다. ↩
- ‘늘어나는 시험관아기, 성공률은 운?’, 〈메디컬투데이〉(2008.2.25). ↩
- Norman M Ford, When did I begin? Conception of the Human Individual in History, Philosophy and Science(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
- Don Marquis, ‘Why abortion is immoral’, Journal of Philosophy(1989). ↩
- 피터 싱어·헬가 커스, 앞의 책, 286쪽. ↩
- 그레고리 E 펜스, 앞의 책, 154쪽. ↩
- 홍석영, ‘인간 배아의 인격 지위에 관한 고찰’, 《생명윤리》 제3권 제2호(2002년 12월). ↩
- 인격주의에 관한 주장은 홍석영, ‘인격주의에 기초한 생명윤리’, 《BioWave》 제9권 제7호(2007)에 잘 정리돼 있다. ↩
- Nancy Rhoden, ‘Cesareans and samaritans’, Law, Medicine and Health Care 15(1987). ↩
- Guttmacher Institute, ‘Facts on Induced Abortion In the United States’(2010.5). ↩
- Judith J Thomson, ‘A defense of abortion’,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Vol. 1, No. 1(1971). ↩
- 피터 싱어·헬가 커스, 앞의 책, 303쪽. ↩
- G J Annas, ‘Pregnant women as fetal containers’, Hastrings Center Report(1986). ↩
- 정진희·최미진, 《낙태, 여성이 선택할 권리》, 다함께, 2010. ↩
- Pual Badham, ‘Christian Belief and the Ethics of Vitro Fertilization’, Bioethics News vol. 6, no. 2(1987), 10쪽. 그레고리 E 펜스, 앞의 책, 142쪽에서 재인용. ↩
- 고든 웬함,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 낙태’, 《목회와 신학》(2001년 7월호). ↩
-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역학 분야에서 그 일반 원리의 정식화에 관련된 중요한 업적들이 거듭 나왔고 특히 19세기 중엽부터 역학 외의 자연과학 분야들에서 전면적으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지질학·생물학·열역학 등의 분야에서 거둔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18세기의 형이상학적이고 기계론적인 자연관 대신 변증법적 자연관이 등장했다.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형이상학적 자연관에 가장 강력한 타격을 준 것은 다윈의 ‘생물 진화론’이었다고 했다. 또 이와 더불어 슈라이덴·슈반에 의한 ‘식물 세포와 동물 세포의 발견’, 마이어 등에 의한 ‘에너지 보존과 전환의 법칙’의 확립을 변증법적 자연관의 부활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3대 발견’이라고 했다. ↩
- 그레고리 E 펜스, 앞의 책, 143쪽. ↩
- 이와 관련된 교회 권력의 반동적 행태는 최일붕, ‘가톨릭·개신교 비판’, 《다함께》 18호(2002년 11월호)에 잘 정리돼 있다. ↩
- 권복규·김현철, 《생명윤리와 법》,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75쪽. ↩
- 그레고리 E 펜스, 앞의 책, 144쪽. ↩
- 같은 책, 144쪽. ↩
- 같은 책, 145쪽. ↩
- 같은 책, 145쪽. ↩
- 양현아, ‘여성의 임신종결권리의 필요성과 그 함의’, 《생명윤리》 제7권 제1호(2006), 19쪽. ↩
- “삼분기 원칙”은 블랙먼 판사가 1년 가까이 고심 끝에 내놓은 것으로 그 후 세계 각국의 낙태 입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블랙먼은 임신한 여성의 프라이버시권과 태아의 생명 및 여성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이해관계governmental interest를 3단계로 나누어 법원칙을 정립한다. 즉, ① 임신 최초의 삼분기 동안 임신한 여성은 (의사의 충고에 의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낙태할 수 있으며, 이때 국가는 임신한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을 제한하지 못하며 ② 제2삼분기 동안은 임신한 여성의 건강을 고려해 낙태의 절차를 규율할 수 있으며 ③ 최후 삼분기 동안에는 태아와 임신한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낙태를 금할 수 있다는 것이다. ↩
- 블랙먼의 삼분기 원칙은 태아의 생명의 시기始期보다는 의학적 경험론에 입각한 기준으로, 국가의 이해관계는 임신한 여성의 건강에 관해서는 첫 삼분기 말에 ‘필수불가결compelling’하게 되며, 태아의 생명에 관해서는 ‘독립생존가능성viability’이 높아지는 제2삼분기 말에 ‘필수불가결’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 법에서 특히 중요성을 띠는 체외생존 가능성의 구분 지점인 2삼분기와 3삼분기 경계가 바로 28주다. ↩
- 캐서린 매키넌은 이 판결에 대한 비평(Privacy v. Equality: Beyond Roe v. Wade, 1983)에서 낙태권을 사생활권 안에서 추구하는 것은 “공/사 분리public/private split”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낙태는 대부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지 않는 현실에서 기인하는 원하지 않는 임신과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사회적 환경 같은 사회적 이유로 행해진다. 낙태를 프라이버시권으로 보는 것은 낙태의 사회적 성격을 무시하고 낙태에 드는 과다한 비용과 낙태를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 장치의 확충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 그레고리 E 펜스, 앞의 책, 146쪽. ↩
- 같은 책, 147쪽. ↩
- 이신철, ‘미국 기독교 우파의 이념적 특징과 정치 참여’, 《사회와 철학》 제10호(2005), 254쪽. ↩
- Vicente Navarro, ‘The 1984 Election and New Deal: An Alternative Interpretation’, Social Policy 15(1985). ↩
- 이소영, ‘사회적 보수주의 가치와 미국 유권자 성향 변화 — 낙태 이슈를 중심으로’, 건국60주년기념공동학술회의(2008). ↩
- 정우량, ‘부시와 함께 ‘천년왕국’으로 …’, 《한겨레21》(2004년 11월 18일자호). ↩
- 박혜윤, ‘“깨끗할래요” … 美청소년 순결서약 10년 새 10% 늘어’, 〈동아일보〉(2002.12.3). ↩
- 필자 최규진은 의학사와 의료윤리를 연구하는 의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