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체제 *
세계화: 초역사적 과정인가 제국 프로젝트인가
1 그들은 흔히 세계 역사의 중심축을 다시 세우려 했다. 예컨대, C A 베일리는 중국 청(淸) 제국, 인도 무굴 제국, 일본 도쿠가와 막부, 자바, 오스만 제국, 로마노프와 합스부르크 제국 등 근대 초기 세계를 지배한 농업 제국들이 주변 지역과 다른 대륙들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Bayly, 2002 and 2004, ch. 1).
‘세계화’라는 쟁점은 최신 유행에 대한 논평 수준을 넘어서 학술 연구의 대상이 됐다. 세계화를 다룬 연구들을 보면, 그것을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최근 현상이 아니라 오랜 역사 과정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계화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현대 세계경제의 점진적 통합 과정보다는 정치적 경계나 문명, 심지어 대륙을 초월해 수세기에 걸쳐 전개된 인류의 상호 교류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이 연구들은 현재의 관심이 과거를 새롭고 독창적 시각에서 연구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그러나 현재의 관심은 또한 세계화를 초역사적 과정으로 보지 않게도 해 준다.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이자 학술적 관심사가 된 특정한 지정학적 상황 - 1980년대 말 냉전 종식 이후의 상황 - 때문에 세계화를 장기 경향이 아니라 ‘워싱턴 컨센서스’(규제 완화, 민영화, 통화 안정과 균형 재정의 달성 등)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세계 패권을 유지·확장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대표 사례인 특정 정치·경제 프로그램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히 광범하다. 피터 고완은 이미 클린턴 정부 때 “냉전 종식 후 미국의 세계 전략”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그 계획을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확고히 하고 다른 국가들을 미국의 지도 아래 두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로 규정하고 세계화가 그 방법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세계화란 한 나라의 정치경제를 중심부 나라의 상품·기업·금융투자·금융기관에 개방하고, 그 나라의 국가 정책을 워싱턴의 결정에 종속시키는 것이다”(Peter Gowan, 1999, pp. vii-viii).
2 단지 좌파만이 이런 관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열렬한 보수당 지지자이자 경제사학자인 니알 퍼거슨은 최근에 이른바 “영미식 세계화”에 대한 책을 두 권 썼다. 그는 첫 번째 책에서 영국 제국을 “대략 전 세계 4분의 1에 자유시장·법치·투자자 보호·정부 부패의 감소를 가져온 주체”로 칭송했다(Ferguson, 2004a, p. xxi). 두 번째 책에서는 “자유주의 제국”(퍼거슨은 이를 “경제 세계화의 파트너”라고 불렀다)을 옹호했다. 그는 전 세계의 “실패한 국가”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외부 열강이 개입해 경제 발전에 필요한 기본 제도들의 초석을 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퍼거슨은 오늘날 미국만이 과거 영국의 “제국적 세계화”를 계승할 유일한 후보라고 주장한다. 다만, 퍼거슨은 과연 그런 구실에 필요한 정치·문화 자원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한다(Ferguson, 2004b, p. 193). 3
조지 W 부시 정부 아래서 세계화를 미국의 제국 지배 기술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실제로 부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강화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고, 국제기구나 연합 결성이 강제할 제약들에서 벗어나려 했다. 퍼거슨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옹호”는 두 가지 가정 - 하나는 핵심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보조 가정이다 - 에 근거한다. 핵심 가정은 “경제의 개방성, 즉 자유무역·자유로운 노동인력 이동·자유로운 자본 흐름이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보조 가정은 그런 개방성은 자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제국 국가의 군사력과 금융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Ferguson, 2004b, pp. 183-184; Ferguson, 2004a, pp. xviii-xxiv도 보라). 그러나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핵심 가정을 반박했다. 예컨대, 마이크 데이비스는 19세기 말 인도·중국·브라질에서 발생한 끔찍한 기아에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한 구실을 탁월하게 폭로한 역사책을 썼다(Davis, 2001). 오늘날 이 문제는 단지 역사학적 관심사에 불과한 것이 아닌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 단계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이 전 세계에서 빈곤·불의·환경 파괴의 악화를 낳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현재 형태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운동이 20세기 말에 등장했던 것이다.신자유주의 비판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세계화를 퍼거슨보다 훨씬 덜 자비로운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예컨대, 제임스 페트라스와 헨리 벨트마이어는 세계화를 “구조적 측면이 아니라 의식적 전략의 결과로, 즉, 초국적 자본가 계급의 정치 프로젝트로, 이 계급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인 제도적 구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Petras and Veltmeyer, 2001, p. 11). 그리고 페트라스와 벨트마이어는 이렇게 덧붙인다. “세계화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라 특정한 실천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도구다. 현실을 더 잘 묘사·설명하는 대안적 용어가 있다. 바로 제국주의다”(Petras and Veltmeyer, 2001, p. 12). 두 개념의 분석적 유용성은 각각의 강조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나라들 간 상호의존, 그 나라 경제들의 유사한 성격, 그들 간 이익의 공유, 그들 간 상호 교류에서 공통 이익의 발생을 주장한다. 반면에, 제국주의는 제국주의 국가·다국적기업·은행들이 저발전국과 노동계급을 지배·착취한다는 것을 강조한다.(Petras and Veltmeyer, 2001, pp. 29-30)
2001년 9월 11일 이후 세계의 궤적을 보면, 충돌·지배·제국주의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하는 분석틀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별로 쓸모없음이 증명됐다. 그럼에도 세계화와 제국주의를 사실상 같은 것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해 신자유주의를 현 단계 제국주의의 현실을 위장해 주는 이데올로기 도구로 봐야 한다는 페트라스와 벨트마이어의 주장은 두 가지 이유에서 너무 협소하다. 첫째, 그들은 세계화를 제국주의 프로젝트로, 즉 “새로운 국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확대하려는 자들이 통제하는 의도적이고 비상한 대응 조처로 묘사한다.
세계 무역협정, 지역통합 계획 등 [세계화에 관련한] 주요 사건들을 보면, 구조 결정론적 설명이 잘못됐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세계적 교류의 틀을 만든 것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정책 입안자들이었다. 그 틀 내에서 국제 금융기관 - 제국주의 열강들이 운영자를 임명하는 - 의 도움을 받아 자본 이동의 조직적 형태·주요 거래 방식 등이 형성됐다.(Petras and Veltmeyer, 2001, pp. 12, 30)
5 이 사실은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는 자연 과정으로 보는 견해를 반박한다. 그러나 세계화를 단순히 정치적 개입의 결과로 보면, 결국 개입하는 자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물론 그들은 강력하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도, 때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구조의 제약을 받는다. 이것은 세계화와 제국주의를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와 관계 있다. 만약 둘을 완전히 동일시하면 경제의 장기적 변화가 특정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돕거나 방해할 가능성을 적절히 분석할 수 없다.
심지어 분석이 좀 더 정교하고 실증적인 고완의 책도 세계화를 “의식적 전략”으로 제시하면서 음모론의 냄새를 풍긴다. 물론 부시 2세 정부의 네오콘 무리들이 이런저런 책략을 부린 것을 보면, 음모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라크 정복·점령은 치밀한 음모도 뜻밖의 결과로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이 교훈을 세계화 논의에 적용해 보자. [고완의 주장처럼] “월스트리트-미 재무부-IMF 연합”이 지난 25년간 진행된 시장 개방과 통합 과정에 정치적 개입을 한 것은 사실이다.자본주의와 장기 지속
6 마이클 도일은 제국이나 제국주의를 “제국주의 사회가 하위 사회를 공식적·비공식적인 방식을 통해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간단히 정의했다(Doyle, 1986, p. 30). 이런 광의의 정의는 초역사적이다. 현대적 맥락에서 세계화와 제국주의를 결합시키는 개념은 자본주의다. 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마르크스 《자본론》의 비판적 분석에 따라 자본주의를 정의한다. 즉, 자본주의에는 자본의 임노동 착취와 자본의 경쟁적 축적이라는 두 가지 근본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서 직접생산자는 생산수단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고, 이런 불평등한 조건에서 노동자 착취가 가능해진다. 다른 한편,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력 착취의 결과인 이윤 가운데 상당 부분을 다시 투자해야 하고, 이에 따라 생산력의 추가 발전이 일어난다. 7
그러나 이 논의를 계속하기 전에 용어를 엄밀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세계화를 주로 나라 간 생산과 시장의 통합을 촉진하는 경제적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사용할 것이다. 나는 정치의 세계화나 문화의 세계화로 표현되는 과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의 맥락에서는 경제의 세계화가 가장 중요하다.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세계화를 분석할 때 중요한 점은 세계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고전이 된 저작에서, 15세기 말~16세기 초에 형성된 “유럽 세계경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정의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지만, 그가 현대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새로운 현상으로 본 것은 옳다. 반면에 일부 학자들은 현대 세계체제의 등장 전에 아시아 사회가 주도한 세계체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자네트 아부루고드는 “13세기 세계체제”에 대한 독창적 연구를 내놨다. 그는 1250년~1350년에 사치품·공산품 생산자와 상인을 결합시킨 무역과 투자의 흐름이 존재했고, 프랑스에서 중국에 이르는 이 흐름에서 서유럽은 선진적 아시아 문명보다 낙후한 ‘하위’ 체제를 이뤘다고 주장했다(Abu-Lughod, 1989). 아부루고드는 이후 “서양의 발흥”을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말은 맞다. 다른 역사가들도 유럽과 북미 경제가 비교적 근래에야 비로소 중국·일본·인도를 능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예컨대 Pomeranz, 2000을 보라).그것은 현대 세계체제로서 고유한 특성을 가진 세계체제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국·[중세-옮긴이]도시국가·국민국가와 달리 경제적으로 단일한 통일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통일돼 있지 않다. 사실, 그 안에 제국, 도시국가, 그리고 새 정치 단위인 ‘국민국가’ 등이 포함돼 있다. 그것은 전 세계를 포괄해서가 아니라 법적으로 정의된 다른 모든 정치 단위보다 크기 때문에 ‘세계’ 체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 경제’인 이유는 이 체제가 기본적으로 경제를 통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 연결이 나중에 문화적 관계로, 더 나아가 정치적 협력으로 발전하고, 심지어 연방의 구조를 갖추게 되더라도 말이다.(Wallerstein, 1974, p. 15)
그러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만, 근대 전에 오늘날처럼 상호 긴밀히 연결된 세계경제가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이 주장이 진실이려면 중세 유라시아 대륙의 문명 간 경제 교류가 현대 자본주의만큼 긴밀했어야 한다. 로버트 브레너는 그것이 엄밀하지 않은 주장임을 보여 줬다. 그는 “현대적 경제성장은 생산 효율을 증대시키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경향의 존재를 뜻하는 것”이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착취자와 직접생산자가 시장에 의존해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어야 그런 경향이 존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생산을 조직하는 사람과 직접생산자(때때로 둘은 동일)가 생계수단에서 분리됐을 때, 즉 그들이 자신을 재생산하려면 도구와 생계수단을 시장에서 사야 하고 이를 위해 시장에서 경쟁력 있게 -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비율로 - [노동력을] 팔아야 할 때 가능하다. 경쟁적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강제가 존재하는 동시에, 단순히 직접생산자를 쥐어짜서 가격을 내리고 이를 통해 소득을 늘릴 가능성이 없어야 생산 효율을 증대시키는 체계적·지속적 압력이 생겨날 것이다.(Brenner, 1986, pp. 24, 33)
물론 아부루고드가 묘사한 “13세기 세계체제”에서도 다양한 경제 행위자들이 시장에 의존했다. 그럼에도 시장 의존도는 천차만별이었고, 이런 관계들이 중세의 무역 과정으로 묶여 있던 사회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을지도 의문이 든다. 좀 더 근래의 사례를 들면, 지역적·국제적 무역이 발달했고 근대 초기의 기준으로 선진 사회였던 16~17세기 인도 무굴제국도 주된 경제 관계는 국가가 소농에게서 조세를 수취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브레너가 말한 강제적 잉여 수취 방식으로(Habib, 1999; Brenner, 1986, pp. 27-32를 비교하시오), 바로 이 때문에 전자본주의 착취 계급에게는 경제의 효율을 높일 동기가 있을 수 없었다.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크리스 위컴은 고대 후기에 지중해를 [경제적] 교류망으로 연결시켰던 “로마 세계체제”도 비슷한 성격의 조세 관계로 통합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로마의 경우에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등 제국의 수도로 조세와 상품들을 집중시키는 “재정적 연결선”이 존재했다. 서(西)로마에서 서기 5~6세기에, 동(東)로마에서 서기 7세기에 이 선이 파괴되자 지중해 체제가 파편화했고, 많은 지역에서 경제 교류가 약해졌다. 그래서 위컴은 비잔틴 제국 들어 “국가가 상업을 포함해 모든 교환 활동을 중재하는 주체가 됐다”고 지적했다(Wickham, 2005, ch. 11, p. 790에서 인용). 헬드와 맥그루와 그 밖의 다른 필자들은 전자본주의 경제 활동을 기껏해야 “넓은 지역을 포괄하지만 교환의 속도·강도·영향력은 약한” “미약한 세계화”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Held, McGrew et al., 1999, p. 25; pp. 22, 416도 보시오).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인 현대적 세계화의 결과로 아시아 문명들이 비로소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통합됐다는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가 지적했듯이, 그 과정에서 시장 의존도가 커지고 서구 식민지 관리들이 식민화 전의 국가 체제를 파괴해, 농민이 계절과 세계경제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약해졌고, 엄청난 인명 손실이 발생했다(Davis, 2001).
9 아리기는 이 체제의 역사를 부분적으로 서로 겹치는 “체계적 축적 순환”으로 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각 축적체제는 특정한 “세계적 축적체제”의 발달에 유리한 “전략과 구조”를 추구하는 “지역사회·정부·기업가 블록의 지도력”이 특징이라고 주장했다(Arrighi, 1994, p. 9). 지금까지 네 번의 순환이 있었고, 각 순환은 특정 국가 - 제노바(1340년대~1630년경), 네덜란드(1560년경~1780년대), 영국(1740년경~1930년대), 미국(1870년경~?) - 의 헤게모니와 연관돼 있었다. 각 체계의 순환은 공통의 패턴을 따랐다. 아리기는 그 패턴을 마르크스가 자본 순환의 일반 형태로 제시한 M-C-M’(화폐가 상품 생산에 투자되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가치 때문에 상품 판매로 얻은 화폐의 액수는 처음 투자된 화폐보다 크다)으로 설명했다.
지오바니 아리기와 동료 학자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개념을 매우 설득력 있고 유익한 방식으로 조망했다.이 패턴의 핵심 특징은 실물 확장 국면(자본 축적의 M-C 단계)과 금융 순환과 확장 국면(C-M’ 단계)이 반복되는 것이다. 실물 확장 국면에서 화폐자본은 상품량(상품화한 노동력과 자연을 포함해)의 증가를 “촉발한다.” 그리고 금융 확장 국면에서 화폐자본량의 증가는 상품 형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축적은 (마르크스가 M-M’으로 표현한) 금융 거래를 통해 진행된다. 종합해 보면, 두 국면 또는 단계는 하나의 온전한 체계적 축적 순환을 이룬다.(Arrighi, 1994, p. 6)
이런 틀로 보면 금융 투기 국면은 “세계적 수준에서 하나의 축적체제로부터 다른 축적체제로의 이행”, 즉 특정 헤게모니 열강과 그 축적체제의 쇠퇴와 후계 열강과 축적체제의 등장을 보여 주는 “반복적 현상”이다(Arrighi, 1994, pp. ix-x). 생산과 상품 판매에서 창출되는 이윤율이 불가피하게 하락하면서 잉여 화폐자본이 금융 시장의 투기 활동으로 흘러드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결국 금융 확장이 실물(또는 무역) 확장을 대체하게 된다. 각각의 금융 확장은 지배적 축적체제의 시작과 끝을 보여 준다. 먼저, “신호적 위기”가 새로운 축적체제 순환의 시작을 알리고, 그 다음 “최종적 위기”가 옛 축적체제 순환의 완전한 종말을 알린다. 미국 주도의 축적체제는 1970년을 전후로 신호적 위기를 겪기 시작했다(Arrighi, 1994, pp. 215-216). 현재 아리기는 미국 축적체제가 완전한 판단 착오였던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로 최종적 위기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Arrighi, 2005a and 2005b).
아리기와 동료 학자들은 체계적 축적 순환 이론을 이용해 축적의 특정 국면과 패턴에 관해 매우 풍부한 분석을 발전시켰다(예를 들어 Arrighi, 1994, ch. 4, on ‘The Long Twentieth Century’). 그럼에도 이조차 다른 세계체제론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약점이 있다. 먼저, 브레너는 그의 1977년 논문에서 월러스틴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 같은 종속이론가들을 “새로운 스미스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비판했다(예를 들어 Frank, 1971). 브레너는 이런 이론가들이 아담 스미스의 이론적 가정, 즉 자본주의 고유의 경제 동력(생산력의 집약적 발전을 포함해)이 발전하려면 국제 분업을 포함하는 세계 시장의 형성으로 충분하다는 가정을 공유한다고 비판했다. 그런 가정을 적용하면, 브레너가 사회적 “소유관계”(마르크스가 말한 생산관계, 즉 생산력에 대한 실질적 통제 관계라고 부른 것)은 자본주의 동력의 발전에서 부차적 구실을 할 뿐이다. 따라서 월러스틴이 보기에, 엘베강 동쪽에서 나타난 “재판농노제”와 카리브해의 노예 농장 둘 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생산하는 강제 노동 형태이다. “중심부”에서 임금노동이 하는 구실과 똑같은 구실을 “주변부”에서 수행하는 “노동 통제 방식”일 뿐이다(Wallerstein, 1974, ch. 2). 위에서 소개한 브레너의 주장으로 볼 때 그가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노예와 농노처럼 마르크스가 말한 “경제 외적 강제”가 주된 착취 방식인 경우, 착취자나 직접생산자 모두에게 생산력을 발달시킬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계수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본가들은 재생산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투자를 통해 생산비(결국 상품 가격도)를 경쟁적으로 낮추려 한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점으로, 직접생산자가 생계수단을 직접 얻을 수 없을 때(다른 누구보다도 임노동자들에게 해당하는 상황),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채찍’(궁극적으로 실업을 포함해)과 ‘당근’(생산성 향상의 대가로 임금 인상 등)을 사용해 직접생산자가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 경제성장”의 역동성은 단지 세계경제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충분히 발전했을 때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브레너는 근대 초 영국에서 자본주의 농업이 탄생하자 결정적 변화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농업 생산의 증대 없이는 산업혁명에 필요한 공장 노동자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세계체제론은 소유(또는 생산)관계를 단순한 “노동 통제 방식”으로 격하시켰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적 특수성, 특히 착취자와 생산자가 시장에 의존하면서 경쟁적 축적에 종속되는 과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계체제론자들은 세계경제의 탄생을 찾아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곤 했다. 심지어 프랑크는 5천 년 전부터 세계경제가 이미 존재했다고 주장했다(예를 들어, Frank, 1998).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의미를 확장하면 결국 이 개념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11 아리기 세계체제론의 장점 중 하나는 헤게모니 국가들의 역사적 차이점들을 상세히 구별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Arrighi, Silver et al., 1999, ch. 2). 그럼에도 축적체제가 순환한다는 입장 때문에 아리기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아리기는 미국 자본주의가 최종적 위기를 겪고 있고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축적체제가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체제론에 대한 두 번째 비판은 그 이론의 이러한 초역사적 성격을 문제 삼는다. 세계사를 헤게모니 열강의 흥망성쇠로 그리면서 국가 체제 발전 과정에서 단계별로 존재하는 독특한 성격이 희석된다는 것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엄밀한 패턴을 현재 역사에 적용한다는 것이다.애초에 아리기는 일본을 새로운 “역동적 중심”으로 봤다. “일본의 다단계 하도급 체제는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경쟁력 있는 노동력이 공급되는 것과 밀접히 연관돼 그동안 역동적으로 발전했다(Arrighi, 1994, p. 244: 같은 책, pp.347-351도 보시오).” 1990년대 일본 자본주의가 장기 디플레 위기에 빠지면서 이런 분석은 문제에 봉착했다. 반면에, 아리기가 퇴출 중으로 분류했던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Brenner, 1998 and 2002). 다른 한편, 중국이 자본 축적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세계 정치경제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Hore, 2004; Harvey, 2005, ch. 5; Harman, 2006). 최근 아리기의 초점은 일본에서 “중국의 화교 기업 네트워크 부활”로 옮겨갔다(Arrighi, Silver et al., p. 149; 또한 같은 책, ch. 4와 Arrighi, 2005b도 보시오). 아리기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독특한 성격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이런 식으로 초점이 옮겨가야 했다는 사실은 그의 순환 이론과 역사적 증거 사이의 관계가 비교적 느슨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그가 처음에 일본의 위기를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설명하려 했던 것에서도 드러났다(Arrighi, Silver et al., 1999, pp. 95-96).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지휘부에서 변화가 일어나면서 자본주의가 새로운 발전 단계로 접어들 것인지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에서 자본 축적 과정의 역동적 중심으로 ‘새’ 지역(동아시아)이 ‘옛’ 지역(북미)을 대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Arrighi, 1994, p. 332).
아리기 자신이 또 다른 어려움을 지적하기도 한다. “과거 이행 과정에서는 신흥 헤게모니 국가의 수중으로 옛 헤게모니 국가 때보다 금융력과 군사력이 더 많이 융합되는 결과가 나타났지만, 오늘날 이행 과정은 두 종류의 세계 권력이 각자의 영역으로 분화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Arrighi, Silver et al., p. 95). “미국 주도의 체계적 축적 순환 말기에 나타난 세계 권력의 독특한 형태”에 대한 다음의 논평은 1990년대 초반에 쓰여졌지만, 레이건과 부시 1세 정부뿐 아니라 부시 2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한편으로,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합법적 무력을 독점하고 있다. … 그러나 금융에서는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고, 이것은 세계의 유동성을 통제하는 집단들이 동의해 줬기에 가능했다. … 그러나 그 집단들은 또한 군사적 방어력이 약해, 세계의 합법적 무력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들의 동의를 통해 금융 독점을 유지할 수 있다.(Arrighi, 1994, pp. 352-353)
실제로 “군사력과 금융력의 분화”(Arrighi, Silver et al., 1999, p. 96)는 오늘날 세계정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그러나 이것은 아리기가 과거 역사에서 발견한 패턴에서 벗어나며, 그의 순환 이론의 설명력이 지나치게 제한적임을 암시한다. 아리기와 동료 학자들이 발전시킨 매우 구체적인 분석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 이론 같은 좀 더 풍부한 개념틀 속에서 더 잘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 그 단계들과 미래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두 종류의 경쟁 - 자본 간 경제적 경쟁과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 - 이 결합돼 나타난다. 아리기는 서로 연관된 두 경쟁을 이렇게 설명한다.
언뜻 봤을 때 이 두 가지 권력 논리는 마치 서로 다른 생산양식에서 비롯한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고유한 경향들, 특히 자본 축적과 그 결과들(경제력의 집중과 과잉생산 위기의 반복)이 자본들 간 경쟁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브레너는 봉건제 같은 전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영주는 오직 “강압 수단의 확대, 즉 군인과 군비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쟁자에게서 토지와 농민을 빼앗을 때 소득을 늘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전(前)자본주의 시대의 정치적 축적 경향, 즉 국가 건설을 향한 경향이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 경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Brenner, 1986, pp. 31, 32) 정치적으로 분열된 중세 후기 유럽에서 정치적 축적은 전쟁의 빈번한 발생에 따른 영토 확장·정치적 통합 등 5백 년에 걸친 근대 국가 체제 형성 과정의 뼈대가 된 경향들을 낳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형성되면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은 갈수록 서로 결합됐다. 처음에 유럽 지배자들은 식민지 정복으로 확보한 부를 이용해 왕조 영토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인 네덜란드 연합주와 혁명 후 영국은 더 역동적인 경제 덕분에 이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었고, 절대 왕정은 근대화 압력을 받았다. 그 결과 1789년부터 1871년까지 불안정한 정치적 전환 과정이 유럽에서 전개됐다.‘자본주의’와 ‘영토주의’는 권력의 규칙과 논리가 서로 다르다. 영토주의 지배자들은 권력을 지배 영토의 면적과 인구 규모로 판단하며, 부 또는 자본을 영토 확장의 부산물로 본다. 반면에,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권력을 희소 자원에 대한 지배로 보며, 영토 확장을 자본 축적의 수단이자 부산물로 여긴다(Arrighi, 1994, p. 33).
20세기 초에 이르자 두 가지 결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지구적 경제 공간이 형성됐고 성숙한 자본주의의 세계경제 지배가 강화됐다. 즉, 자본주의가 산업 자본주의의 발원지인 북서 유럽과 북미 대륙의 대서양 연안지역을 벗어나 확대되면서 전 세계를 통합하고, 지배하고, 변화시켰다(Hobsbawm, 1975). 둘째, 정치적 축적과 경제적 축적이 이제 하나의 과정으로 통합됐다. 한편으로, “전쟁의 산업화”로 유럽의 대제국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러시아는 국가 간 체제에서 자기 위치를 유지하려고 자국의 산업 자본주의 발전을 후원했다(McNeill, 1983, chs 6-8). 다른 한편으로, 당시 산업 자본주의를 지배한 대형 은행과 기업 복합체는 무역과 투자의 국제화에 대응해 자국 정부와 손잡고 전 세계에서 자기 이익을 실현하려 했다(Harman, 1991). 아리기가 지적했듯이, “세계 패권을 노리는 세 주요 경쟁 국가(영국·독일·미국)에서는 영토주의 논리와 자본주의 논리가 철저히 융합돼 이제 누가 자본주의 지배자이고 누가 영토주의 지배자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됐다.”(Arrighi, 1994, p. 59)
이런 결합의 결과 이제 자본들이 두 가지 형태 - 시장, 투자 지역, 자원을 노린 경제적 투쟁과 국가 간 군사·외교 경쟁 - 로 경쟁하고 있다고 해도 될 지경이다. 물론 이 주장을 환원론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시대의 국가가 단순히 자본주의 기업들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아리기의 자본주의 논리와 영토주의 논리 간 “모순적 결합”으로 묘사했다.
그러므로 이 두 논리의 관계는 기능적이거나 일면적이기보다는 갈등도 있고 때로는 모순도 있는 관계(즉, 변증법적 관계)다. 이 변증법적 관계를 고려하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연관된 두 권력 논리의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다. 현실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이 변증법의 두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정치나 경제의 어느 한 극단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다(Harvey, 2003, pp. 26, 30).
15 첫째 단계는 고전적 제국주의(1875-1945)다. 이 시기에 유럽 열강들은 전 세계의 대부분을 공식·비공식 제국으로 통합했다. 그러나 이런 식민지 확장 과정은 아리기가 더 근본적인 것으로 지적한 경향과 동시에 봐야 한다. 이 단계에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은 서로를 강화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면, 유럽 국가들 중 세계적 열강이 되려는 의지가 가장 강했던 영국은 독일과 미국을 경제적 경쟁자이자 지정학적 경쟁자로 대면하게 됐다. 이 두 나라는 모두 당시 “세계의 공장”인 영국을 제치고 매우 경쟁력 있는 제조업을 건설했고, 영국 정부가 전 세계에 흩어진 영국의 재산과 속령을 보호하기 위해 주로 의존하는 군사력인 해군력에서 영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세 나라 간 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양차 세계대전에서 경제적 자원들에 대한 지배가 군사적 승패를 가르는 데서 결정적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석유 자원에 대한 접근 문제가 독일과 일본의 군사전략 구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방법론적 지침을 이용해 현대 제국주의,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이 엄청난 충돌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두 번째 단계인 초강대국 제국주의(1945-1990)가 열렸다.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부분적 분리다. 한편으로, 냉전 동안 세계는 각각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양대 군사·이데올로기 진영으로 분열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완이 강조했듯이 이런 지정학적 경쟁 덕분에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들을 자신의 정치적·군사적 지도 아래 묶을 수 있었다. 이 상황을 이용해 미국 정부는 유라시아 대륙이 적대 국가나 국가 연합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장기적 전략 목표를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또한 시장을 둘러싼 자본 간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초국가적(그러나 아직 지리적으로 세계적이지는 않은) 경제 공간(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인 IMF 등이 이것의 제도적 조건을 제공했다)이 형성됐다. 미국에 대한 일본과 독일의 경쟁적 도전이 갈수록 강화되면서 1960년대 말 전후 장기호황이 끝나고, 그 뒤 이윤율과 과잉생산의 위기가 질질 끌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Harman, 1984; Brenner 1998; Arrighi, 2003). 그러나 그런 정치적·경제적 긴장은 서방 진영을 조각낼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다. 같은 시기에 또한 유럽 식민 제국이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이 변화는 마이클 만이 “배제적 제국주의”라고 적절히 부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 때문인 동시에, 그것의 발전을 촉진했다. 즉, 자본은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을 외면했고, 국제 무역과 투자는 갈수록 선진 자본주의 진영 내부로 집중됐다(Mann, 2001, p. 54).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새로운 자본 축적 중심이 형성된 것은 예외적 현상이었다. 경제의 세계화를 낳은 추진력은 지난 25년간 점점 커진 국제 무역과 투자였고, 신흥공업국들은 그 주요 수혜자였다.
1989~91년 냉전 종식과 소련과 그 제국의 해체가 낳은 새로운 제국주의 단계를 적절히 설명하는 용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유일 초강대국 제국주의”는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잘 묘사한다. 그러나 이 시기 들어 또한 1945년 이후 나타난 몇 가지 경향들이 강화됐다. 서방의 정치경제 공간은 옛 공산권 국가들을 시장 자본주의와 WTO·NATO·유럽연합 같은 서방측 국제기구로 흡수하면서 진정으로 세계적 공간이 됐다. 제2위의 초강대국이었던(언제나 미국보다 약했지만) 소련이 붕괴하고,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이용한 “군사 혁명”으로 미국이 다른 모든 열강들(개별 국가든 국가 연합이든)에 비해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자 이 공간에서 경제적 경쟁과 정치적 경쟁 간 부분적 분리 경향은 심해졌다. 그러나 아리기가 “군사력과 금융력의 분화” 테제에서 지적하듯이, 세계경제는 진정으로 다극적 공간이 됐다.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대륙의 생산성 수준은 비슷하며, 유럽연합과 미국 정부는 툭하면 무역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중국·일본·한국은 상품과 자본의 대규모 이동에 힘입어 역동적이고 갈수록 상호의존적인 경제 지역을 형성한다.
16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판단하는 데 다음의 사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냉전의 종식으로 서구 주도의 초국가적 경제 공간이 세계화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 공간에서 미국이 계속 헤게모니 국가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제거됐다.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냉전의 규율이 약해지면서 유럽에서 독일이, 동아시아에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이 각각 지역 패권 국가로 등장할 거라고 예측했다(예컨대, Mearsheimer, 2001). 고완은 클린턴 정부가 유라시아에서 미국의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미국 투자은행과 다국적기업에 유리한 신자유주의를 장려하고, NATO와 유럽연합을 동유럽과 중유럽으로 확장해, 이런 원심분리적 경향들을 차단하려 했다고 옳게 지적했다. 17
아마도 인류의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연 경제적 경쟁이 지정학적 충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다. 세계화 찬양론자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1989년 이후 경제적 통합이 강화되면서 국가 간 반목이 사라졌고, 당대의 자유민주주의는 “적이 없는 상태”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1914년 이전의 경제적 통합은 열강들이 매우 파괴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막지 못했고, 1930년대 대공황으로 세계시장이 부분적으로 분해되는 것도 막지 못했다(James, 2001). 다행히도 당장의 현 상황이 그때처럼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2001년 9·11과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국가 간 반목 종식을 주장하는 일을 섣부른 것으로 만들었다.부시 2세 정부의 세계전략도 동일한 상황에 개입하는 다른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Callinicos, 2003b). 특히 이라크 점령은 제국주의 국가의 정책에서 지정학적 고려와 경제적 고려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먼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알카에다와 그 동조자들뿐 아니라 잠재적인 지정학적 경쟁자들에게 과시해,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각인시키려 했다. 둘째, 미군의 중동지역 영구 주둔은 수입 석유에 대한 미국의 의존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해 준다. 하비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곧,
유럽과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그리고 이제는 중국)도 페르시아만의 석유에 의존한다. 그들은 생산과 금융에서 미국의 세계적 우위에 도전하는 지역의 정치적·경제적 열강들이다. 그런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의존하는 경제 자원의 가격·조건·분배를 지배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이것을 위해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우월한 힘, 즉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Harvey, 2003, p. 25)
18 이 전략 논쟁들의 승패는 이 글의 추상 수준에서 다루기에 적절치 않은 매우 구체적 상황에 달려 있다. 그러나 브레진스키 자신이 현 세계 정세의 불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단지 중동뿐 아니라 동아시아도 그렇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일본·중국·한국·미국 네 국가 간 경제 교류가 증대했지만, 지역 세력균형의 비교적 사소한 변화가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수 있고, 그것은 최근 미국과 관계가 더 긴밀해진 일본이 중국과, 또 한국과(최근 한국은 점점 중국과 가까워졌다) 대결하는 상황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Brzezinski, 2004, pp. 107-123).
셋째,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옛’ 유럽과 ‘새’ 유럽의 분열은 중요한 정책 변화를 반영하는 듯하다. 미국 정부는 확대 중인 유럽연합을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고 노골적인 이간질 전략을 사용하려는 듯하다. 아마도 부시 정부의 정책들 중 이것이 미국 주류 정치권에서 가장 심각한 내분을 낳았을 것이다. 특히, 이라크 정복 때 동원한 군사력으로 점령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외부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상황에서 말이다(예컨대, Mann, 2003을 보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부시와 그 참모들의 지정학적 무능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미국 헤게모니의 안정은 유럽연합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을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지도)”의 하위 파트너로 포용하는 데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Brzezinski, 2004). 동아시아 지역과 미국의 공생관계가 세계경제의 성장에 매우 중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얼마나 파장력이 클지 짐작이 갈 것이다. 중국·일본·한국은 막대한 양의 상대적 저가 상품을 미국으로 수출한다. 이 나라 정부들은 그렇게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다시 빌려줘, 미국이 자국산 수출품을 계속 사도록 도울 뿐 아니라,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상품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이런 성장 동맹은 유럽산 공산품과 러시아·중동·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산 천연자원에 시장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국가 간 갈등이 심각하게 악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9·11 이후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관계가 상당히 진전됐음에도 미국 안보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중국이 중기적으로 미국의 세계적 이해관계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 국방부는 태평양 연안지역에서 대규모 해군 훈련을 벌이는데, 예컨대, “서머 펄스04” 훈련의 경우, 미국이 보유한 12대의 항공모함 중 무려 7대를 중국 연안으로 파병했다.미국의 이런 군사력 과시는 미국 패권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브레진스키는 미국 앞에 “세계 지배”와 “세계 지도(리더십)”의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면서, 지배계급 헤게모니의 두 측면인 강제적 ‘지배’와 도덕적·지적 ‘지도’ - 후자 없이는 안정적인 계급 지배가 불가능하다 - 에 대한 안토니오 그람시의 유명한 구분을 흥미롭게(그러나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다(Gramsci, 1971, pp. 55ff.). 많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도 이 구분을 세계적 수준에 적용하려 노력해 왔다. 예컨대 아리기는 “국제적 상황에서 리더십은 헤게모니 국가가 다른 국가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되는 것”이며, 그 헤게모니 국가가 “체제 수준의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Arrighi, Silver et al., 1999, pp. 22, 27, 28; 또 Harvey, 2003, pp. 36ff를 보시오). 또한 아리기는 라나지트 구하가 “헤게모니 없는 지배”라고 부른 상황에 오늘날 미국이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Arrighi, 2004, p. 12; 또 Arrighi, 2005a와 2005b를 보시오). 월든 벨로는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지배 모델이 1997~98년 동아시아 위기를 기점으로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고, 반세계화 운동, 클린턴 호황의 종말, 엔론 사태, 아르헨티나 금융 공황 등으로 말미암아 그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Bello, 2002).
20 그러면 이번 제국의 위기로 무엇이 등장할까? 또 다른 역사적 순환인 새로운 동아시아식 “체계적 축적 순환”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것일까? 21 아니면 이런 영원한 반복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하비는 이렇게 주장한다. “당연히 잠재적으로 훨씬 급진적인 해결책들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이 국내적·국제적으로 새로운 ‘뉴딜’을 추진하도록, 불리한 계급 세력균형과 반대 세력의 저항에 맞서 싸우는 것도 현재 정세에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행동이다.”(Harvey, 2003, p. 210) 하비는 이 뉴딜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신자유주의 반동을 역전시켜 좀 더 규제된 형태의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뜻할 것이다. 22 그러나 하비 자신도 인정하듯이 그런 비교적 제한적인 대안조차 격렬한 반발에 부딪힐 것을 고려하면, 2000년대 초에 등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운동이 미국 헤게모니와 이와 연관된 경제 모델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라크 전쟁과 그것이 촉발한 거대한 대중적 반발이 이 정당성 위기를 더 첨예하게 만들 것이고, 특히 유럽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의문이 더 확산될 것이다(예컨대, Reynié, 2004). 미국이 이렇게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점령에서 단지 중동 엘리트뿐 아니라 프랑스·독일·인도 등의 도움을 얻는 데 곤란을 겪으면서, 미국 점령군이 압도적 우위의 화력을 사용해 이라크 저항세력을 분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Callinicos, 2004a; 그리고 Bello, 2004). 날것 그대로의 군사력 사용, 즉 헤게모니 없는 지배는 상대적으로 덜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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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ex Callinicos, “Globalization, Imperialism and the Capitalism World System”, Globalization Theory: Approaches and Controversies (Cambridge: Polity, 2007), pp62-78.
↩
- 예컨대, 홉스킨스(Hopskins, 2002)가 편집한 논문들을 보라. 이런 관점은 데이비드 헬드, 앤서니 맥그루와 그 동료들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들은 전근대 사회의 세계화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지역 간, 문명 간 조우로 정의된 [전근대 사회의 — 옮긴이] 세계화는 주로 군사력과 문화 권력에 의한 지배와 이주를 통해 확산됐다. 특히, 제국의 정복 행위, 세계 종교, 유목민의 침략, 농업의 확장, 인간 질병의 확산 등이 중요했다.” Held, Mcgrew et al., (1999), p416. 세계화 논쟁에 대한 이전 논의들은 Callinicos(2001a) 1장을 보라. ↩
- 광범한 저작들 중 Callinicos(2003b), Chomsky(2003)를 보라. Mann(2004)은 부시 2세 정부의 인사들을 대단히 탁월하게 개괄했다. Bacevich(2002)는 부시 정책과 클린턴 정책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
- Ferguson(2004b)에 대한 비판으로는 Callinicos(2004a)를 보라. ↩
- 이 운동에 대한 상이한 설명으로 Held and McGrew(2002), Callinicos(2003a), Wolf(2004)를 보라. ↩
- 예컨대, Wade and Veneroso(1998)를 보라. 이것은 “[행위자의] 의도로” 현재 정치경제를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나와는 입장이 상당히 다르다. 음모론에 대한 상투적 변호 시도로는 Žižek(2004), pp77-79를 보라. ↩
- 정치적 세계화에 대해서는 Callinicos(2001a) 3장과 Callinicos(2002)를 보라. ↩
- 마르크스의 이 개념에 대한 고전적 해설로는 Cohen(1978)을 보라. ↩
- 그러나 1800년대 말 유럽과 중국의 경제 발전 수준이 비슷했다는 포메란츠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Brenner와 Isett(2002)을 보라. ↩
- Arrighi(1994), Arrighi, Silver et al.(1999), Arrighi(2004), Arrighi(2005a, 2005b)를 보라. 월러스틴처럼 아리기도 위대한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을 받았다. Braudel (1981, 1982, 1984)을 보라. ↩
- Aston and Philpin(1985)과 Hoppenbrouwers and Van Zanden(2001)을 보라. Marx(1876)의 논의와 비교해 보라. 브레너는 생계수단, 특히 토지의 박탈과, 도구와 그 밖의 다른 생산도구를 포함한 생산수단의 박탈을 구분한다. 브레너는 후자의 박탈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자의 박탈도 자본주의 경제 동력과 연관 있는 시장 의존성을 낳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Brenner(2001)를 보라. ↩
- 이런 비판이 주류 국제관계학의 패권안정이론에 적용된 사례로 Nye(2000), pp238-239를 보라. ↩
- Arrighi(2004). 아리기 이론의 특히 순환 양상에 대한 비판으로 Hardt and Negri(2000), pp238-239를 보라. ↩
- 매우 압축된 이 역사에 대한 이론적 논의로, Callinicos(1989), Carling(1991) 1장을 보라. ↩
- 아리기는 자기 방식으로 두 논리를 보면 국가 정책들을 그에 따라 분류할 수 있지만, 하비는 단순히 권력의 경제적 형태와 정치적(지정학적) 형태를 구분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Arrighi(2005a), p28, n15. 이 점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Ashman and Callinicos를 보라. 여기서는 하비보다는 아리기의 구분을 따랐다. ↩
- 추가 논의로, Callinicos 1991, 2001b, 2002, 2003a의 pp50-65, 2003b 가운데 특히 5장, 2004b, 2005와 Harman(2003)을 보라. ↩
- 꼭 신자유주의 찬양자들만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아니다. Hardt and Negri(2000)를 보라. ↩
- 브레진스키는 Brzezinski(1997)에서 후자의 전략을 제시했다. ↩
- 미국의 세계 전략을 역사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분석한 것으로, Gaddis(2004)를 보라. ↩
- “아시아 저축자와 미국 소비자 간 상호관계”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Ferguson(2004b), pp279-285. 나는 Callinicos(2005)에서 현 시대 열강 정치의 성격을 분석했다. ↩
- 오늘날 세계 정세를 분석하는 데 그람시의 개념을 사용한 것으로, Anderson(2002)을 보라. ↩
- 이것은 아리기가 Arrighi(1994, pp355-356과 2004)에서 논의한 세 가지 대안들 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미국이 강요하는 “세계 제국”과 “체제의 혼란”이다. ↩
- 하비는 이런 전략에 대해 모순된 주장을 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세계체제의 엄청난 과잉생산을 볼 때, 이것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1930년대의 교훈을 기억하자. 로즈벨트의 뉴딜이 대불황 문제를 해결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2003, p76)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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