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지금의 이슈들
긴축의 정치학 *
재정 긴축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다. 세계경제가 기껏해야 취약하고 불안정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온갖 조짐이 있음에도 그렇다. 여름 내내 금융시장은 더블딥 불황의 가능성을 두고 끙끙 앓았다. 그러나 빌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정치적·지적 신념은 서로 달라도 경제 통계를 보며 현실을 더 우울하게 전망하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경제가 다시 더블딥 경기후퇴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아직 첫 번째 불황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길고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 너무 좌절해서 일자리 찾기조차 포기한 사람들까지 모두 감안하면 실업자는 지난해보다 올해 더 늘어났다. … 정부가 경기순환의 상승과 하강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로 심각한 불황 뒤의 일자리 증가가 이토록 활력 없는 경우는 처음이다. 심지어 1933년 3월, 대불황의 바닥에서 “회복”되기 시작한 뒤의 일자리 회복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랐다. 물론 당시의 일자리 증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회복은 사실 진정한 회복도 아니었다. 대불황은 계속됐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2008년 이후의] 경기 대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2 미국 상무부 인구조사국의 최근 통계를 보면 이 말이 맞는 듯하다. 지난해 미국의 빈곤층은 4백만 명이 늘어 4천4백만 명, 전체 인구의 14.3퍼센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1994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중위 가계소득은 2007년보다 4.2퍼센트, 1999년보다 5퍼센트 감소했다. 3
또 다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도 19세기 말과 1930년대의 불황들과 현재 불황의 규모·기간을 서로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이 세 번째 대불황의 초기 단계일까 봐 두렵다.”4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는 G20의 긴축 합의에 가장 완강하게 반대하지만, 티파티 운동[무슬림을 혐오하고 인종차별적인 극단적 보수 우익들이 오바마의 조세 정책 반대를 구실로 내세워 결집한 정치 운동]과 민주당 지지율 하락 덕분에 다시 활기를 되찾은 공화당 우파에게 포위돼 있다. 그 사이에 미국의 많은 주州들은 연방 정부의 지원 고갈로 그리스식 재정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위 관리들조차 재정 긴축으로 경제가 불안정해질까 봐 우려한다. IMF와 국제노동기구ILO가 공동으로 펴낸 보고서를 보면, IMF는 “심각한 노동시장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러나 구제금융과 경제 불황으로 늘어난 재정 적자를 감축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이 정치권에서 점차 득세하고 있다. 프랑스는 유로존 내에서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에 대항하는 주축인데,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조차 “새로운 예산 절제의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가르드는 4백억 유로 규모의 지출 삭감과 증세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지금 전 세계의 실업자는 2억 1천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2007년 이후 3천만 명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 중 4분의 3은 선진국에서 늘어난 실업자들이고 나머지는 신흥 시장의 신규 실업자들이다. 선진국 중에서도 문제가 특히 심각한 나라는 미국이다. 대불황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실업자가 가장 많이 늘어났는데, 2007년 이후 7백50만 명이나 증가했다.
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장기적인 대량 실업은 … 기존 민주주의 나라들의 안정을 위협하고 정치적 전환을 겪고 있는 신흥 민주주의 나라들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더욱이,
성급한 재정 긴축은 경제 성장에 해를 끼쳐 재정 적자와 부채를 훨씬 더 증대시킬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동시에 재정 정책이 바뀌면 경기회복이 불안정해지고 미래의 성장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경제의 회복과 성장뿐 아니라 재정 적자와 부채를 감축하기 위해서도 몇 년 동안 점진적으로 재정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더 성공적인 전략일 수 있다. … 사회적 불만이 폭발하지 않게 하려면 사회적 대화가 필수적이다.
“사회적 불만이 폭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영국의 보수당·자민당 연립정부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는 10월 20일 공공 지출 감축 방안 발표를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그 방안은 1922년 로이드 조지가 이끈 자유당·연합당 연립정부의 “게디스의 도끼”[보수당 정치인 에릭 게디스가 이끄는 국가지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영국 정부가 실시한 지출 삭감 정책] 이후 가장 혹독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부 장관 조지 오스본은 “책임 있는 재정 운용은 공정할 뿐 아니라 진보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주장들은 점차 공허하게 들린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인용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스웨덴도 1990년대 말에 소득 불평등이 가장 급격하게 증대한 선진국 축에 든다. 당시 두 나라는 모두 공공부문 재정 상태를 개선하려고 가장 공격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 소득 불평등은 영국과 캐나다뿐 아니라 재정 적자가 대폭 감소한 몇몇 나라들에서도 증대했다. 1995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스웨덴·캐나다·핀란드의 빈곤율은 OECD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8 정부는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있고, 복지는 “국가가 빈민들의 고통을 보상하려고 발행한 고액 수표”가 아니라는 9 닉 클레그[자민당 당수]의 말에서는 노골적인 계급 적대감이 묻어난다.
예상되는 긴축 규모를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여론도 정부에 불리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입소스-모리IPSOS-Mori가 9월 중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당 지지율이 보수당과 똑같은 37퍼센트였고 자민당은 지난 총선 득표율보다 8퍼센트포인트 낮은 15퍼센트였다. 그리고 연립정부에 대한 불만과 만족이 처음으로 역전됐다(각각 47퍼센트와 43퍼센트).그러나 앤드루 론슬리가 보도했듯이, 연립정부에 가해지는 압력 때문에, 지출을 25~40퍼센트씩 줄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지출 관련 국局이 있는 다른 장관들이 재무부 장관과 격렬하게 충돌할 것이라는 점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지출이 가장 많은 부처인 노동연금부와 재무부의 관계가 특히 험악해지고 있다. 지난주에 조지 오스본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이미 예산안에 반영된 1백10억 파운드 삭감에 더해 40억 파운드를 더 줄일 수 있는 복지 축소 방안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이언 던컨 스미스[노동연금부 장관]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오스본 씨는 복지 혜택이 훨씬 더 많이 축소되면 다른 부처들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라고 넌지시 말해, 다른 동료들이 던컨 스미스 씨에게 압력을 가하게 했다. 던컨 스미스 씨의 차관 한 명은 다른 부처 차관한테서 “우리가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당신에게 달렸다”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좋아, 당신네 선거 사무소 앞에 폭도들이 몰려와도 괜찮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그렇다. 이미 차관들끼리 폭도 운운하며 서로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자민당 소속 장관 한 명은 1년 후쯤의 여론조사 결과를 나름으로 예상해서 내게 말해 줬다. 그의 예상은 “25 대 5”였다. 앞으로 12개월 뒤에 보수당 지지율은 25퍼센트로 떨어지고 자민당은 5퍼센트로 폭락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의 말은 실없는 농담이 아니라 극도로 심각한 예측이었다.
정부의 긴축 공세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영국노총TUC은 9월 대의원대회에서 표결을 통해 내년 3월 전국 집중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런 행동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특히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시작된 총파업에 견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TUC의 행동을 이용해서, 연립정부에 반대하는 만만찮은 저항 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한편, 노동당 지도부 선거에서는 신노동당 노선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후보 중 한 명인 에드 밀리밴드가 자기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를 아슬아슬하게 누르고 승리했다.
이것이 보여 주는 바는 닐 키녹[1980년대 노동당의 우경화를 주도했던 당 대표]과 토니 블레어 시절에 아무리 노동당의 정치 생명이 소진되고 그 사회적 기반이 약해졌더라도 과거 야당 시기에 작동하던 메커니즘, 즉 당 지도부가 강력한 내부 압력을 받아 좌경화하는 시기에 작동하던 메커니즘이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노동당에서 1950년대의 베번 좌파 운동이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벤 좌파 운동에 견줄 만한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이다. 오늘날의 노동당 좌파는 과거 노동당 좌파의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고, 에드 밀리밴드는 블레어파 후보를 꺾고 승리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자신이 안전한 친親기업 “현대화론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엄청난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잡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지난 호 ‘분석’ 기사에서 주장했듯이 노동당은 노동계급 지역사회에, 그리고 노동조합 관료들을 통해서 조직 노동계급 속에 충분한 기반이 있어 계급의 정서를 반영하고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도 있다. 현재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어쨌든 노동당의 선거 득표에도 이롭다. 즉, 아무리 위선적이라도 연립정부의 삭감 정책에 항의하고 여러 도시에서 자민당을 표적 삼아 공격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적 재기를 향한 첫걸음이다. 이것은 노동권회의[경제 위기의 고통 전가에 저항하기 위한 영국 노동조합 운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연합체]가 채택한 방침, 즉 중앙 수준과 지역 수준 모두에서 노동당 지지자들을 끌어들여 광범한 저항 연합을 건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준다.
11 그러나 밀은 파업과 시위 형태의 저항만으로는 부족하다고도 주장한다.
이런 사태 진전 때문에 급진 좌파 평론가인 셰머스 밀[Seumas Milne 스코트랜드계 영국의 좌파 언론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 정치에서 노동당이 — 이 문제에서는 노동조합도 —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무게중심이 나타나고 있다. … 연립정부가 5년 후 — 또는 그 전에라도 —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운동과 파업은 여기저기서 삭감의 부담을 완화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연립정부가 여론·압력·사태에 떠밀려 방향을 바꿔야만 일자리·생활수준·경기회복에 대한 광범한 위협이 제거될 수 있다. 다음 달 열릴 영국 최대 노조 유나이트Unite의 사무총장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범좌파 후보 렌 매클러스키Len McCluskey가 말했듯이 “우리에게 저항 말고는 대안이 없지만 궁극적 해결책은 정치적인 것이다.” … 노동당 지도부가 지금 어떤 경제 정책을 취하느냐는 노동당뿐 아니라 노동조합이 건설하려는 저항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삭감 정책을 정말로 좌절시키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매클러스키와 마찬가지로 밀도 에드 밀리밴드 하에서 활기를 되찾은 노동당에 희망을 거는 듯하다. 완곡하게 말하면, 이런 생각은 약간 낙관적인 듯하다. 노동당이 훨씬 더 민주적이고 노동계급 조직이 훨씬 더 강력했을 때도 어나이린 베번과 토니 벤은 당을 변화시킬 수 없었는데, 이제 고든 브라운의 조수 출신자가 이끄는 당에서 진정한 변화가 과연 가능할까? 그럼에도 밀이 정치적 대안 문제를 제기한 것은 완전히 옳다. 이것은 단지 선거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선거 정치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13 긴축의 필요성을 거부하려면 긴축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을 비판해야 할 뿐 아니라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크루그먼, 라이시, 그 밖에 긴축 정책을 비판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처럼 모종의 케인스주의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런 태도로는 서로 다른 경제 전략에서 계급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긴축 반대 투쟁에 걸린 이데올로기적 판돈은 매우 크다. “재정 건전화” 드라이브는 무엇보다도 금융 폭락과 이로 말미암은 국가의 귀환 때 엄청난 타격을 받은 신자유주의를 다시 확립하고 가능하다면 더욱 강화하려는 정치적 노력이다.따라서 긴축에 저항하는 논리는 대안적 경제 정책의 공식화를 요구한다. 이 점은 그리스의 경험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정부가 가혹한 긴축 공세를 감행하고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그리스가 외채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어쩌면 유럽연합EU 자체에서도 탈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광범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의 함의는 런던의 아시아아프리카학대학SOAS 연구자들의 모임인 통화·금융연구소RMF가 새로 펴낸 보고서에 가장 자세히 요약·설명돼 있다.
14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그리스의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외채 부담을 감안할 때 채무 불이행을 피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리스가 막대한 외채(거의 3천억 유로에 이르는 국채)를 채무 불이행할 가능성이 의제로 떠오르자 그리스 재무장관 게오르기오스 파파콘스탄티누는 9월 중순 서유럽의 금융 중심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줄곧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리스의 외채를 – 캘리니코스] 구조조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그랬다가는 유로존의 통합이 뿌리부터 흔들릴 것입니다.”RMF가 주장하는 해법은 이른바 “채무자 주도 채무 불이행”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 채권을 많이 보유한 서유럽 은행들이 [그리스 정부의] 긴축 정책 실패에 대처한답시고 외채 구조조정(그 부담은 주로 노동 대중에게 떠넘겨질 것이다)을 강요하도록 놔두지 말고 그리스가 먼저 일방적으로 외채 상환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유로화에서도 탈퇴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로존 통화·금융 정책에 따라 설치된 장애물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첫째,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 나라가 통화 정책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면 국내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가 힘들 것이다. 더 넓게 보면, 채무 불이행 선언 후 금융기관들을 공공의 소유로 만들고도 여전히 유로 시스템 내에 계속 남아 있으면, 경제를 개조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둘째, 채무 불이행 선언국이 유로존 회원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자본 시장에 접근하거나 차입 비용을 낮추는 데 별로 이롭지 않을 것이다. 셋째, 평가절하를 단행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경기 회복에 필수적인 요인을 배제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외채 상환 중단과 유로화 탈퇴는 더 광범한 경제 정책의 좌경화와 함께 실행돼야 한다고 한다.
노동 대중의 관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봐도 해결책은 광범한 공공 소유 추진 정책과 금융 시스템을 비롯한 경제 전반의 통제다. 은행 공공 소유는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방지해 은행이 존속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자본 통제와 외환 통제도 자본 유출을 막고 투기 거래를 최소화하는 데 필요할 것이다. 그런 조건이 형성되면 산업 정책으로 생산적 부문을 강화해 국내 경제의 균형을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중기적中期的으로 성장의 원천은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 증대가 아니라 경제의 결정적 구조조정에서 발견될 것이다.이런 정책들은 2009년 4월 남아일랜드의 급진 좌파 연합체인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다’가 채택한 것과 약간 비슷하다. 비록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다’의 “대안 경제 의제”는 유로화 문제를 직접 다루진 않지만, 은행 국유화, 국가 금융 시스템 창출, 공공사업을 조직할 건설 담당 정부 부처 신설, 새로운 전략적 산업 개발, 진정한 조세·연금 개혁으로 아일랜드 경제가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종속된 위험한 상태를 끝장내라고 요구했다. RMF 보고서의 주요 필자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가 간략하게 설명했듯이, RMF의 제안들은 지난 몇 달 동안 그리스 급진 좌파들 사이에서 광범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주로 두 가지 비판을 받았다. 첫째, 유로화 탈퇴는 민족주의로 후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것은 우스꽝스런 기우가 아니다. 오랫동안 그리스 좌파 사이에서는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강력한 민족주의가 우세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그리스 사회당이 1981년 처음 집권하기 전까지 그랬고, 강력하지만 스탈린주의적인 그리스 공산당은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 근저에는 그리스를 미국과 EU에 억압당하는 “종속”국으로 보는 견해가 깔려 있다. 그들은 오늘날의 그리스를 비교적 발전된 독자적 자본주의로 보지 않는다(이와 비슷하게, 남아일랜드를 “신식민지”로 보는 견해가 아일랜드의 공화주의 좌파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다).
19 더욱이, 유로존을 “개혁”하려는 현재의 노력은 신자유주의 정책 레짐[개별적인 단위 정책들을 포괄해 정책 과정 전반을 제약하는 제도적 틀]을 확고하게 하고 주변부의 이른바 낭비 경제들의 복종을 더한층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로존이라는 현실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유로존의 제도적 구조 속에 내장돼 있을 뿐 아니라 RMF가 잇따라 발행한 보고서에서 드러나듯이, 그리스·폴란드·스페인·남아일랜드 같은 상대적 주변부 경제들이 더 강력한 서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의 [수출] 시장과 채무국 노릇을 하는 일종의 위계질서로 나타나기도 한다.긴축에 저항하는 논리는 불가피하게 부채 상환 중단과 유로화 탈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로화 탈퇴는 국제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역사가 일국 수준에서 유럽 수준을 거쳐 세계 수준까지 직선으로 나아간다는 역사관이 배어 있다. 그러나 역사는 갑작스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지 직선으로 전진하지 않는다. 그리스나 그 밖의 나라에서 유로화 탈퇴 후 일자리·서비스·생활수준을 방어하는 데 성공하면 새로운, 투쟁하는 국제주의를 고무하고 촉진해 아주 다른 유럽을 건설하기 시작할 수 있다.
둘째 비판은 더 만만찮은 것인데, 유로화 탈퇴가 반드시 노동 대중에게 이롭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옛 그리스 화폐인 드라크마로 돌아가면 십중팔구 상당한 평가절하가 뒤따를 것이다. RMF도 지적하듯이, 사실 이것은 유로존을 탈퇴했을 때 얻는 주요 이점 가운데 하나다. 그리스처럼 취약한 경제들은 독일 경제와 결속돼 있어서 가혹한 희생을 치렀다. 독일의 노동비용이 다른 유로존 나라들보다 급격하게 낮아졌지만, 다른 나라들은 평가절하라는 전통적 수단을 사용해 자국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통화가 평가절하되면 그리스 수출품의 가격이 경쟁국들보다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평가절하되면 수입품 가격이 오를 것이므로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실질임금이 삭감될 것이다. 영국 자본주의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 즉 1931년, 1967년, 1992년, 2007년에 평가절하는 경쟁력을 회복하고 착취율을 높이는 구실을 했다. 일부 케인스주의자들은 실질임금을 삭감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정설파의 주장과 달리 명목임금 삭감이 아니라 평가절하와 인플레이션이라고 생각했다(케인스 자신은 꼭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파판드레우 정부의 긴축 정책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면 분명히 그리스 자본가들의 상당수는 채무 불이행과 평가절하로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이려 할 수 있다. 어쨌든 RMF의 최근 보고서가 보여 주듯이, 1998년에 러시아와 2001년에 아르헨티나가 각각 금융 폭락에 직면했을 때 바로 그런 전략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것이 보여 주는 바는 부채 상환 중단[채무 불이행]과 유로화 탈퇴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 위기의 대가를 어느 계급이 치를 것이냐를 놓고 지금 벌어지는 분배 투쟁은 [부채 상환 중단과 유로화 탈퇴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이탈한다면 긴축 정책과 단절함으로써 임금·연금·일자리·서비스를 지키는 데 좀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것이다. 특히 RMF와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다’가 제시한 더 광범한 대안 정책들을 위해 투쟁하다면 더욱 유리해질 것이다. 셋째 비판은(그리스 좌파들의 논쟁에서는 제기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정책들이 1970년에 개혁주의 좌파가 추구한 ‘대안경제전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토니 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공산당도 지지한 이 전략은 다국적기업들의 지배력을 분쇄하고 더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영국 자본주의를 재건하고자 국가의 경제 통제를 강화하는 일련의 조처들을 제안했다.
RMF와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다’가 내놓은 정책들의 내용이 ‘대안경제전략’의 내용과 상당히 겹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그 정책들을 일축하는 것은 1970년대와 지금이 근본적으로 맥락이 다르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한 세대 동안 규제 완화로 매우 파괴적인 경제 불황이 닥친 후에, 경제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는 조처들을 옹호하는 것은 곧 자본의 권력에 도전하는 공세적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런 정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안경제전략’처럼 그런 정책을 자본주의를 구제할 개혁주의적 노력으로 여긴다면 위험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런 정책을 전환적 요구들[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혁명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는 요구들]로 본다면(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트로츠키가 그렇게 이해했듯이 말이다)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전환적 요구는 투쟁의 즉각적 필요에서 출발하지만, 그런 요구를 주장하는 논리는 자본과의 충돌을 함축한다. 1921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채택된 ‘전술에 관한 테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공산당은 비틀거리는 자본주의 구조를 강화하고 개선해 줄 최소강령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 공산당의 주요 목표이자 당면 임무다. 그러나 이 임무를 실행하려면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절실한 즉각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요구들을 내놓아야 하고, 대중 투쟁 속에서 이 요구들을 내놓고 싸워야 한다. 그런 요구가 자본가 계급의 이윤 경제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 개혁주의자들과 중간주의자들의 최소강령을 대신해 코민테른이 제기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구체적 필요를 위한 투쟁이다. 그런 투쟁에서 내놓는 일련의 요구들은 전체로 보면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한 투쟁의 단계들을 나타내는 한편, 따로따로 보면 그 자체로 가장 광범한 대중의 필요를 나타낸다. 비록 가장 광범한 대중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의식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앞서 말한 정책들을 이해해야 한다. 부채 상환 중단, 은행 국유화, 자본 통제 도입, 공공투자 프로그램, 이 모든 것은 투기와 불황으로 파탄난 경제에서 압도 다수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조처들을 실행하려면 기존 경제·정치 권력 구조와 대대적으로 충돌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런 노력은 자본주의의 재건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움직임을 지향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정책들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하다거나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당연히 영국에서는 유로화 탈퇴가 아무 의미가 없다). 예컨대, 그런 정책들은 경제·금융 위기의 결과에서 시작됐으므로 그 어느 것도 기후 변화라는 아주 중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기후 변화 저지 운동Campaign against Climate Change이 몇몇 노조의 도움을 받아 발행한 보고서와 소책자는 대안 에너지 산업, 주택과 관공서를 저탄소형으로 개조하는 사업, 대중교통 등의 분야에서 일자리 1백만 개를 창출하는 방안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정책은 TUC의 승인도 받았다. 이런 방안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이고 이제 IMF조차 인정하는 실업 위기에도 대처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코펜하겐 회의 이후, 그런 방안들은 자본의 격렬한 저항을 분쇄해야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가 과연 의심하겠는가?
물론 어떤 정책이든 그것을 현실로 바꿀 만한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능력이 없으면 말짱 황이다. 그런 변화가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긴축에 반대하는 운동의 발전에 달렸다. 저항에는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지만 저항이 없으면 그런 대안은 한낱 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반자본주의 좌파가 경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서 중요한 요인 하나는 우리가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원하는 것도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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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ex Callinicos, ‘Austerity politics’, International Socialism 128(Autum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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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ich, 2010. ↩
- Krugman, 2010. ↩
- Eckholm, 2010. ↩
- Hall, Hollinger and Barber, 2010. ↩
- ILO-IMF, 2010, p4. ↩
- ILO-IMF, 2010, pp22, 8. ↩
- Pimlott, 2010. ↩
- http://www.ipsos-mori.com/researchpublications/researcharchive/poll.aspx?oItemId=2672 ↩
- Press Association, 2010. ↩
- Rawnsley, 2010. ↩
- Milne, 2010b. ↩
- Milne, 2010a. ↩
- 이 이데올로기 위기가 Callinicos, 2010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다. ↩
- Oakley and Hope, 2010. ↩
- Lapavitsas and others, 2010b, p52. ↩
- Lapavitsas and others, 2010b, p53. ↩
- People Before Profit Alliance, 2009. 이를 뒷받침하는 분석과 주장은 Allen, 2009를 보시오. ↩
- 아일랜드 좌파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Allen, 1990을 보시오. ↩
- Lapavitsas and others, 2010a and 2010b. ↩
- 임금 삭감에 대한 케인스의 견해 변화는 Harman, 1996, pp15-17을 보시오. ↩
- Holland, 1975는 대안 경제 전략을 옹호하는 가장 충실한 저작이다. 이를 비판한 글은 Sparks, 1977을 보시오. ↩
- Degras, 1956, volume 1, pp248-249. 이 문제를 명확히 할 수 있게 도와준 샘 애시먼에게 감사한다. ↩
- Campaign against Climate Change,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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