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8호를 내며
이 글을 쓰는 현재, 2010년이 겨우 3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올 한 해를 돌아보는 게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만큼 현 시기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해, 우리가 지금 돌아보려는 것보다 더 비중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 돌아본 바에 부여한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남북한의 포격 주고받기보다 더한 일이 연말 안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가정(어쩌면 우리의 희망 섞인 전망일지 모르지만)에 근거해 올해를 돌아보면 각각 ‘상층’과 ‘기층’에서 특정 양상이 매우 두드러진다.
‘상층’을 지배한 것은 바로 남북의 상호 포격전과 그보다 먼저 일어난 천안함 사건이었다. 이 사건들의 구체적 양상은 겉보기에는 서로 매우 다른 듯하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측의 공격과 무관한 듯하고, 사건 이후에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연평도 포격’ 사건은 누가 먼저 포격 위협을 가했던 간에 상호 포격전이라는 방식으로 실제로 일어난 군사적 충돌이었다. 그러나 두 사건의 배경을 보면 공통의 본질이 포착된다. 곧,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 강화라는 점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고, 으레 그랬듯이 그 수단으로 북한의 악마화가 채택됐다. 요컨대 천안함 사건과 남북한 상호 포격 사건은 둘 다 그 본질이 제국주의 문제다.
한편, ‘기층’도 봐야 한다. 천안함 사건이 아니었다면 메이데이 이후 불붙었을 수도 있었던 노동자 투쟁이 11월에 전국노동자대회 대규모 집결(사상 최대 규모의 하나였다)과 G20 항의의 효과로 일련의 성공적인 비정규직 투쟁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 가운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파업이 단연 압권이었다. 비록 이 투쟁이 즉각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전체 노동계급의 의식에 강력한 인상과 충격(‘임팩트’)을 남겼음은 확실하다. 일부 성마른 노동운동가에게는 좌절감을 안겨줬을지 모르지만, 계급 전체의 의식과 조직에는 틀림없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컨대 올해 정세는 ‘위’로는 제국주의 문제가, ‘아래’로는 노동자 투쟁이 단연 두드러졌다. 그리고 상반기와 하반기 모두 안타깝게도 제국주의 문제가 노동자 투쟁을 압도했다.
천안함 정국 때는 이런 세력 균형이 그런대로 이해할 만했다. 주목을 끌 만한 계급투쟁이 없는 한편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합리적 의혹 제기와 지방선거를 통한 거짓 정권 심판이라는 정서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 상호 포격과 한미 연합 훈련 정국에선 현대차 비정규직이 공장 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었고, 이 파업을 통제하고자 검·경 등 국가 탄압 기구와 우파 미디어의 공격은 말할 것도 없고 노조 고위 상근간부층과 야권 정치인들 등 개혁주의자들이 분주히 움직인 것의 효과로 그 연좌 농성이 해산됐으므로 지금 같은 결과가 그저 불가피했던 것은 아니다.
기층의 진보 염원은 올해 공전의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세계은행과 유럽 투자은행의 자문이자 매우 온건한 NGO 옥스팸의 자문인 발전주의 경제학자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로도 방증된다. 샌델 자신은 특별히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의 책이 그토록 큰 관심을 끈 이유가 정의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아서라는 데에는 출판계의 의견이 모아진다. 이명박 치하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지 않기는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다. 장하준의 책은 신자유주의를 혹독하게 폭로하는 동시에 국가 개입에 대한 짙은 향수, 심지어 박정희식 개발 모델마저 기꺼이 수용하는 듯한 자세로 말미암아 지금 진보 염원 대중의 모순된 의식을 잘 보여 주는 듯하다. 이는 또한 진보진영이 대중의 삶에 진보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한나라당 안팎의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득을 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 의식의 이러한 (모순된) 급진화는 2008년 5월부터 2009년 8월 초까지 촛불운동, 경제 공황, 용산참사 항의운동, 쌍용차 공장 점거 파업 등의 격변을 겪고 있는 것의 효과일 것이다. 7월 3일치 〈레디앙〉 인터뷰에서 김세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 청년들은 정치화의 초창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강의해 보면 1학년생들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2~3년 전에는 멍한 분위기였는데, 지금 1학년생들은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문제를 꿰뚫어보려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어서, 저처럼 강의하는 사람들이 힘이 난다. 이런 게 촛불의 효과인 것 같다. 수업시간에 그런 게 느껴진다. 학생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대중이 급진화할 때 그 초기 수혜자는 개혁주의(‘개량주의’)다. 노동조합적 의식이나 학생조합적(학생회) 의식에서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발전하는 것은 매우 불균등하고 기대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소외라는 자본주의 하 인간 조건의 근본적 특성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소외로 특히 노동자와 학생 들은 자신의 힘을 느끼지 못한다. 노동조합이나 학생회로 조직돼 있어도 평소에는 자신들이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어렵다. 그저 점진적으로 바꿔 나아갈 수 있다고만 믿기 쉽다.(그래서 심지어 혁명 때조차 처음에는 개혁주의가 득세하기 쉽다. 1917년 8월까지 러시아와 1918~22년 독일에서도 운동의 정치적 수혜자는 볼셰비키나 스파르타쿠스단이 아니라 멘셰비키와 독립사민당이었다.) 6·2 지방선거에서도 김대중·노무현 계승 세력과 민주노동당이 상당한 소득을 얻었다.
그러므로 현 시기 대중의 급진화는 모순돼 있고, 불균등하고, 개혁주의적이다. 그래도 급진화는 급진화다. 급진화란 큰 변화를 바란다는 뜻일 뿐이다. 그래서 ‘급진 개혁주의’가 현 시기 선진 대중의 의식을 특징짓는 가장 적당한 말일 것이다. 급진 개혁주의는 자율주의와 개혁주의의 혼합물로, 단지 기성 정치 구조 내 정치적 책략에 머무르려는 개혁주의가 아니라 기꺼이 대중을 동원하려는 개혁주의인 동시에, 의제에 우선순위가 있음을 인정하고 운동에 전략과 전술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다소 희석된 자율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진중권과 박노자 등이 대변자이지만 2008년 촛불운동 때 운동 참가자들 사이에서 ‘자발성’ 예찬론으로 대유행 했던 입장이기도 하다.
창간 이래 이 저널은 급진 개혁주의 경향의 청년층 독자를 주 독자층으로 삼고자 했다. 그래서 이번 호는 〈특집〉으로 지금의 이슈 네 가지 ― 북한 3대 세습, 금융과 경제 위기, 교육운동, 유럽 재정 위기 ― 를 다뤘다.
먼저, ‘3대 세습 북한은 어디로?’는 북한 권력 세습의 정치·경제적 배경과 전망을 다룬다. 필자 김하영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무비판적으로 “인정·존중”(사실상 두둔)하는 자민통 계열의 태도를 비판하며, 북한 정치체제의 비민주성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이를 통해 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줌으로써 이데올로기로 북한 사회의 현실을 판단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또, 김하영은 북한의 권력 세습을 예외주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며 주체사상과 수령-후계체제가 수립된 배경을 자세히 다룬다. 특히 대부분의 북한 연구자들이 정치문화 측면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필자는 북한의 경제적 필요에 주목한다. 극단적으로 척박한 조건에서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하면서 거듭 비합리적 해법에 이끌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국제 공산당 획일 체제의 균열과 북한 관료 내 분열 등이 이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김정은이 김정일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살펴보며, 그로기 상태로 그럭저럭 버티는 경제 상황에서 시작된 3대 세습 과정이 심각한 정치적 불안을 자아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금융세계화론 비판’은 윤소영 교수(와 전국학생행진)의 금융세계화론을 비판한다. 필자 강동훈은 윤소영 교수가 자신의 금융세계화 반대가 자본주의 반대를 함축한다고, 즉 변혁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전적으로 금융만을 문제시하므로 정치적 실천 면에서 케인스주의와 흡사한 개혁주의 대안으로 귀결되기 쉽다고 주장한다. 강동훈은 윤소영 교수 등 금융세계화론자들의 이론을 살펴보면서 이를 꼼꼼히 논증한다. 즉, 이들이 자본주의에는 대략 1백 년을 주기로 하는 장기 순환이 있다고 보며 그 장기 순환, 즉 “구조적 위기”의 원인은 이윤율 변동으로 보지만, “순환적 위기”를 분석할 때는 이윤율 변동을 부차적으로 본다고 지적하며 그 문제점을 다룬다. 또, 윤소영 교수의 금융 이해가 마르크스의 주장과 다르다고 논박하며, 그의 “최종적 위기” 전망이 어떻게 개혁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놓는지도 살펴본다. 강동훈은 이 저널 1호에 윤소영 교수의 알튀세르주의를 ‘모호한 중간주의 정치’이론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중간주의’는 ‘변혁적’ 입장과 ‘개량적’ 입장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가리키는 용어다).
‘진보 교육감 탄생과 교육운동의 쟁점’은 진보 교육감 시대 교육운동의 과제를 다룬다. 필자 정진희는 우파들의 진보 교육감 흔들기에 맞서 진보 교육감을 무조건 방어해야 하지만 무비판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진보 교육감이 더 나은 교육을 바라는 대중의 염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되며, 공약을 지키도록 촉구하고, 진보 교육감 당선이 열어놓은 기회를 활용해 대중 투쟁과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무엇보다 전교조 활동가들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록 이번 전교조 지도부 선거에서 범좌파 후보가 아깝게 낙선했지만 좌파적 교사와 교육운동가들이 진보 교육감 당선이 열어놓은 공간에서 투쟁과 조직을 건설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긴축의 정치학’은 유럽 재정 위기와 좌파의 과제를 다룬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글이다. 지금 유럽은 ‘뜨거운 겨울’을 맞고 있다. 그리스와 프랑스에 이어, 영국에서 ‘68반란’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대학생 시위가 폭발하고 있다. 이런 투쟁들은 모두 유럽 정부들의 긴축 조처와 관계 있다. 캘리니코스는 이런 긴축 반대 투쟁에 걸린 이데올로기적 판돈이 매우 크다고 지적한다. 재정 건전화 드라이브가 신자유주의 재확립·강화 노력이라면, 긴축에 저항하는 논리는 대안적 경제 정책의 공식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반자본주의 좌파는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원하는 것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캘리니코스는 그리스 같은 상황에서 부채 상황 중단, 은행 국유화 등 경제에 대한 정치적 통제 강화 조처를 옹호해야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자본주의를 구제할 개혁주의적 노력이 아니라 ‘전환적’ 요구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환적 요구’란 노동계급이 그 요구들을 둘러싸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투쟁이 ‘즉각적’·‘민주적’ 성격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으로, 즉 권력 장악으로 전환하도록 촉진하는 과도적 요구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번 호는 〈논쟁: 어떤 전략과 전술인가?〉에서 진보진영이 논의하고 있는 진보대통합과 새 상설연대체라는 정치 전략 문제를 다뤘다. 이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모두 다섯 개의 논문을 실었다.
먼저, ‘전략과 전술의 기초’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기본 시각을 제공하는 글이다. 필자 최일붕은 전략과 전술의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전략의 우위, 전술의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가치 같은 자칫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도 역사나 우리의 최근 운동 경험을 사례로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또, 전략을 직접 설계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독자들은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보대통합 논의에 부쳐’는 진보대통합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는 방안들 ― 빅텐트, 소텐트, 선先 진보대통합 후後 민주대연합 등 ― 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필자 김인식은 이 논의에서 득세하고 있는 민주대연합 전략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진보대통합이 상층 정치협상이라면(스탈린주의에서 말하는 ‘상층 통일전선’), 새 상설연대체는 역시 스탈린주의에서 말하는 ‘하층 통일전선’으로 추진되고 있다. ‘새 상설연대체 ― 한국진보연대의 재판再版이 될 것인가?’는 최근 진보진영에서 논의되고 있는 새 상설연대체가 실패한 한국진보연대의 오류를 재연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한다. 필자 최영준은 그 이유를 파헤치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상설연대체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또, 인민전선(적대 계급 간 연합) 전략의 문제점을 알고, 노동자 공동전선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두 논문을 더 실었다. 하나는 역사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방정국의 좌우합작과 민족통일전선’ 경험을 다룬 글이다. 필자 한규한은 조선공산당의 인민전선 전략이 계급투쟁을 억제하는 구실을 함으로써 어떻게 자멸적 결과를 낳았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다른 하나는 고전에서 배울 수 있도록 ‘코민테른에 제출한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테제’를 실었다. 이 글은 국내에 번역돼 있지 않던 트로츠키의 저술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강령적 문서 가운데 하나다. 트로츠키는 첫 아홉 개 테제를 통해 공동전선의 일반적 고려 사항을 날카롭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그 다음은 프랑스 노동운동의 구체적 상황에 공동전선을 적용하는 문제를 다루는데, 이 부분에서도 풍부한 경험에서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사회주의 노동자들이라면 노동조합에서 어떻게 사회주의자답게 활동해야 하는지 기본 자세를 돌아보고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이번 호 〈현대 진보사상 조류〉는 ‘니코스 풀란차스의 정치이론 비판’이다. 이 글은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50년 동안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으로 활동한 콜린 바커가 꽤 오래 전인 1979년에 쓴 것이지만, 풀란차스가 현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그의 정치이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풀란차스는 세계적으로뿐 아니라(예컨대 그리스 좌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진보진영에도 다소간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 국가론을 다루는 학술 마르크스주의와 진보신당 일각의 논저는 많게 또는 적게 풀란차스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국가론과 전략을 이해하는 데 이 논문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바커는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길’ 또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풀란차스 제안의 요점을 조목조목 논박한다. 또, 바커는 풀란차스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 혁명 개념이 스탈린주의를 낳았다며 의회 민주주의와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역사적 사례를 결합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밖에도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오건호의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등 진보진영에서 주목받는 책들을 비판적으로 평한 글들을 실었다.
《마르크스21》이 너무 두껍다는 독자들의 불평이 많았는데, 이번 호도 두툼하게 나오게 됐다. 내년에는 좀더 얇고 쉽게, 청년·학생 활동가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변신을 시도해 보려 한다. 내년에도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독자들께 송년 인사를 드린다.
2010년 12월 11일
편집자 김하영·최일붕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