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세

커밀라 로일 177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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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amilla Royle, Chapter2 Marxism and the Anthropocene,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edited by Martin Empson, 2019, Bookmarks)

장호종

최근 몇 년 동안 기후 변화와 환경 재앙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기후변화를 막을 진정한 해결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인류세 개념이 논쟁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 좌파들 내에서도 인류세 개념의 유용성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인류세 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해 이 글을 번역 소개한다. 본문 중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르크스21》 편집부가 넣은 것이다. ― 《마르크스21》 편집팀

이 글을 읽는 동안 독자 여러분은 이산화탄소가 410ppm[이 글이 쓰인 2019년 기준]인 공기를 마실 것이다. 여러분의 조부모가 100년 전 숨쉬던 공기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3분의 1가량 짙은 것이다. 1 또한 지난 80만 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재앙적인 지구 온난화를 불러오고 있을 뿐 아니라, 식물의 광합성 방식을 바꾸고 바다와 강의 산성도를 높이고 있다. 2 인간 활동의 결과가 이토록 거대한 규모로 세계에 영향을 끼치면서 지구가 인류의 영향으로 이전과 구분되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진입했다고 생각하는 사상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인류’를 뜻하는 그리스어를 따서 이 시기를 ‘인류세’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인류세의 현실성은 매우 광범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두 과학자, 사이먼 루이스와 마크 매슬린은 이렇게 선언했다. “인류세라는 주장의 핵심, 즉 인류가 지구라는 통합 체계[‘지구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3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100여 년 전 발명된 플라스틱은 오늘날 대양에 떠다니는 거대한 섬을 이룰 정도고, 한 연구에서는 ‘기술화석’이라 부르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폐기물을 퇴적층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4 합성 비료 발명의 결과로 인위적으로 추가되는 질소의 양이 다른 모든 과정들을 합한 것보다 많다. 그 결과 토양의 질소와 인 농도는 지난 세기에 갑절로 늘었다. 5 또한 토양에서는 핵발전과 핵무기 실험으로 만들어진 방사성핵종도 검출된다. 동식물의 멸종은 인류의 간섭이 없었을 때에 비해 최소 100배 이상 늘었다. 6 이런 변화들은 대지와 해양, 대기의 광범한 영역에 걸쳐 그리고 생명체의 체내에서 관측된다. 인류세는 불확실한 미래, 즉 인류의 활동 때문에 지구 환경이 “안전한 작동 범위” 밖으로 벗어나 이로 인해 인류가 완전히 다른 세계로, 그것도 인간 사회가 적응할 겨를도 없이 내몰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7

인류세라는 용어는 두 명의 지구 시스템 과학자, 파울 크뤼천과 유진 스토머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들은 2000년 ‘국제 지권-생물권 연구’ 뉴스레터에 실린 짧은 글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8 지질학자들은 관례적으로 역사적 시간대를 누대-대-기-세-절이라는 분류법으로 나눈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다. 제4기는 다시 두 개의 세, 즉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로 나뉜다. 플라이스토세는 거대한 기후 요동과 북반구에 빙하기가 반복된 특징을 보인다. 홀로세는 가장 최근에 빙하가 줄어든 뒤 시작됐다. 9 크뤼천과 스토머는 오늘날 인류가 홀로세 시기보다 훨씬 강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어쩌면 수백만 년 동안 주요 지질학적 세력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봤다. 10

“지질학적 시간대를 구분할 때 고려할 것은 전 지구적 상태 변화다. 유성 충돌, 대륙 이동, 지속적인 화산 분출 등 그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11 어떤 이들은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그런 사건들에 비견할 만큼 크다고 여긴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인류가 늘 지구의 자체적 변화의 긴밀한 일부로서 존재해 왔고 그래서 날씨와 같은 존재라고 본다. 12 사이먼 루이스가 지적한 것처럼 인류세라는 진단은 인류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음을 보여 준다. 예전의 과학자들은 인류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보여 줬다. 코페르니쿠스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찰스 다윈은 우리가 진화적 위계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줬다. 그러나 이제 “우주 전체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별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렸다. 거의 500년 만에 갑자기 인류가 다시 중앙 무대에 섰다.” 13

2000년 이래로 인류세라는 용어는 그 개념을 제안한 소그룹 과학자들을 넘어 광범하게 사용된다. 많은 블로그에서 인류세에 관한 토론이 이뤄지고, 이 쟁점을 토론하기 위해 많은 글이 쓰이고 행사가 열렸다. 이 개념은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 같은 예술가의 상상력도 사로잡았는데, 그는 2011년 “인류세”라는 이름의 조각상을 바닷속에 선보였다. 그 조각상은 폭스바겐의 비틀 차량의 앞유리 위에 소녀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조각상은 바닷가재가 들어가 살기 좋은 인공 산호 구실을 하도록 만들어져 인간이 만든 물건과 다른 종의 삶 사이의 연결을 보여 줬다. 14

사회주의자들에게 인류세는 인간과 (나머지) 자연 사이의 관계, 과학자들이 진보적 정치에서 할 수 있는 구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환경 개념의 중심성 등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재고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인류세 개념의 효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존 벨라미 포스터와 이안 앵거스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류세라는 개념을 완전히 지지한다. 15 포스터에 따르면, 옛 소련에서 지질학자 알렉세이 파블로프와 블라디미르 베르나츠키는 오늘날 인류세 관련 이론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환경 변화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능동적 구실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다. 베르나츠키는 이미 1945년 저작에서 인류를 지질학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로 설명했다. 포스터에 따르면 옛 소련 과학자들이 환경 사상에 기여한 바는 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인 사상에 상당한 빚을 진 것이었다. 16

그러나 좌파 내 다른 사람들은 인류세라는 아이디어가 무익할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에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다고 여긴다. 나오미 클라인은 인류세라는 용어 사용이 쟁점을 인간본성론과 같은 것으로 환원시키고 자본주의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고 주장한다. 17 안드레아스 말름은 인류세라는 아이디어가 인기를 끄는 것은 “문제의 일부일 수 있다”며 “애당초 옹호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했다. 18 이 글에서는 과학자들 사이의 논쟁 일부를 요약하고, 좌파적 비판들을 일부 설명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인류세 개념이 여전히 유용하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도구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인류세는 언제 시작됐나?

크뤼천은 노벨상을 수상한 대기화학자이고 오존층 파괴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스토머는 담수 생물학자다. 그러나 한 ‘세’가 끝나고 다른 ‘세’가 시작되는 시점을 판단하는 것은 보통 지질학자들의 몫이다. 지질학적 시간 단위는 지구상의 주요한 변화가 나타날 때를 기준으로 나누는데 이런 변화에는 암석층의 특징이나 생명 종의 급속한 변화가 종종 포함된다. 6500만 년 전에 시작된 신생대의 특징은 모든 비조류非鳥類 공룡의 멸종 등 생물종의 극적인 감소였다.(약어로 K-T 멸종[중생대 백악기 – 신생대 제3기 멸종]으로 표현한다.) 신생대의 시작은 조류와 포유류 시대의 시작이었다. 지질학자들은 화석 기록의 변화뿐 아니라 암석이나 퇴적층 혹은 빙하의 얼음 등에서 특별한 사건의 표식, 이른바 ‘골든 스파이크(황금못)’를 찾아내려 한다. 19 튀니지 엘케프에 있는 암석에서 측정된 이리듐 원소 함량의 급격한 상승은 해당 시기에 유성이 지구에 충돌했다는 가설과 일치해 공식적으로 신생대를 구분하는 지질학적 표식이 됐다. 20 황금못의 용도는 단지 지질학자들이 동의한 표식일 뿐, 지질학적 과도기에 벌어진 가장 중요한 사건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21 실제로 최근의 연구는 유성 충돌 자체는 관에 박힌 마지막 못 같은 구실에 불과했고 공룡은 진화 상으로 이미 포유류에 길을 내주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22

인류세의 시점에 대한 논쟁은 매우 많다. 인류세가 1만 1700년 전에 시작됐다는 즉, 홀로세 시점을 인류세의 시점으로 삼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있다.(그렇게 된다면 홀로세에서 명칭만 인류세로 바꾸거나, 지질학자들이 홀로세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되 홀로세 전체를 인류의 시대로 받아들이는 게 된다). 홀로세는 가장 최근에 빙하기가 끝난 뒤의 시기다. 이 시기에는 북반구가 상대적으로 온난해져 인류 문명이 지구 전체로 확산되고 농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23 이처럼 인류세 시작 시기를 아주 오래 전 과거로 잡는 주장 중에는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대형 포유류의 멸종을 여럿 일으킨 시점 혹은 인간 활동이 발견된 첫 시기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인류세의 시점을 그토록 오래전 과거로 하자는 주장에는 나름의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초기 지질학 교재에서는 홀로세를 “인류가 지배한”, “인간과 생각의 시대”로 묘사했다. 24 인류세의 시점을 이처럼 먼 과거로 잡자는 생각에는 언제나 인류가 외부 환경과 복잡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 왔고, 인류 역사의 많은 기간 동안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인근 환경 조건을 변화시켜 왔다는 사실이 반영돼 있다.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식물을 경작하고 동물을 가축화했다. 25 홀로세 중에 농업이 시작된 것은 인간 사회의 발전 경로에 영향을 끼쳐, 정착지에 지배층이 생기고 이런 사회들 안에서 계급과 성별에 따른 분할이 나타나게 됐다. 주디스 오어는 인류 사회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특히 성별 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개괄한 바 있다. 그녀는 환경이 “우리 삶의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며, 어느 정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지적한다. 26

한편, 마크 매슬린과 사이먼 루이스는 생물권의 대규모 전환에서 식민지 지배가 한 구실에 천착해 1492년 유럽인들이 처음 “신세계”와 접촉한 때를 인류세가 시작된 시기로 보자고 전혀 다르게 제안한다. 당시 인류는 옥수수와 감자 같은 신세계 작물을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들여왔고 밀과 사탕수수를 아메리카로 날랐다. 이는 비가역적이고 상당한 수준의 생태계 변화를 전 세계적으로 일으켰는데, 예컨대 이탈리아 해변의 바닷속 퇴적층에서도 옥수수 화분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됐다. 크리스 하먼은 《민중의 세계사》에서 이 역사적 시기를 “대변혁”이라고 했는데, 이 시기는 르네상스의 시기이자 “과학의 진보가 있었고 예술과 문학이 활짝 꽃을 피운” 시대였다. 27 그러나 하먼도 설명했듯이 신세계 “발견”과 정복은 그곳에 살던 많은 이들에게 기근과 질병을 가져다 줬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한 스페인 관찰자는 그것이 잉카 제국에 끼친 효과를 이렇게 묘사했다. “왕국의 모든 도로마다 황폐한 마을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28 아메리카의 인구는 5400만 명에서 1650년에는 600만 명으로까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사 짓는 사람이 줄면서 숲이 복원되고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낮아졌다. 이산화탄소 농도 하락(1610년에 저점에 도달했다)은 이 사건의 지질학적 기록일 수 있는데 남극의 얼음에서도 관측할 수 있다. 29 인류가 지구상에서 유력한 세력이 된 시점이 인간 수백만 명의 죽음으로 표시됐을 것이라는 끔찍한 가설인 것이다.

루이스와 매슬린의 ‘오르비스 스파이크(지구못)’ 제안에는 인구와 생태계의 변화가 포함되는 반면 [인류세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크뤼천과 스토머 자신은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초점을 좀더 좁게 맞춘다. 크뤼천과 스토머는 처음에는 인류세의 시작을 18세기 말로 제시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18세기에 발명했고, 석탄 화력을 이용한 증기 기관이 처음으로 면화 공장의 동력원으로 사용된 것이 1786년 노팅엄셔에서였다. 30 크뤼천과 그의 동료에 따르면 이때부터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31 홀로세의 대부분 기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준치에서 각각 5ppm 범위 내에서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반면에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년 2ppm씩 올랐다. 32 크뤼천과 스토머는 20세기 중엽을 “대가속기”로 규정하자고도 제안한다. 당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주목할 만한 폭발적 증가” 즉, 한층 급속히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33

끝으로, 인류세가 1945년에 시작됐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34 이 해에 첫 핵무기 실험(과 실전에서의 첫 사용)이 있었다. 핵실험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내내 계속되다가 1963년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PTBT이 체결된 이후 급속히 줄었다. 핵실험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쳤고 극지 얼음과 호수의 퇴적층, 나무 나이테에서 방사성 동위원소가 검출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무렵 생긴 나이테에서는 핵무기에서 나온 탄소 동위원소 농도가 확연히 최고치를 보여 황금못 구실을 하는데 이것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것임이 틀림없다. 35 수십만 년의 기간을 다루는 지질학자들에게 이는 물론 극도로 최근의 일이다. 36

이리듐 매장층으로 신생대의 시작을 식별할 때와 마찬가지로, 핵무기 실험이 이 시기에 벌어진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류세의 시작 사건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 사건이 벌어진 시기와 그저 동시대에 지구 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 시스템 과학자들은 바로 이 시기에 그런 변화가 벌어졌다고 본다.

20세기 후반은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역사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시기다. 수많은 인간 활동이 20세기의 어느 시점엔가 이전까지의 규모를 벗어나 고조되더니 세기말로 가면서 급격히 가속됐다. 후반기 50년은 생물 종의 역사에서 인간과 자연 세계의 관계가 가장 빨리 변한 시기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37

‘인류세 워킹그룹’은 201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20세기 중반에 “인류가 뚜렷하게, 상대적으로 급격히 지구 환경을 변화시킨 시기”가 시작됐다는 입장을 지지했다. 38 ‘인류세 워킹그룹’은 인류세를 지질학 기록에 추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련의 과학자 등이 모인 것이다. 2016년 여름, 이 그룹의 회원 35명은 인류세가 층서학적으로 실재하며 공식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압도적으로 표결했다. 그뿐 아니라 시점과 관련한 여러 후보들 중 1950년 무렵이 28.3표를 받았는데 이는 ‘지구못’ 등 좀더 이른 시기를 제안한 다른 후보들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플루토늄 낙진은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인류세의 최초 신호였다. 39 ‘인류세 워킹그룹’은 인류가 홀로세 이전부터 층서 기록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들의 다수는 20세기 중엽 홀로세가 끝난 것으로 여겨도 될 만큼 인류의 영향이 강해졌다는 데에 이제 동의한다.

 

 

 

 

 

[그림 1] (상) 세계 실질GDP, (중) 일차에너지사용, (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출처 : Will Steffen, Wendy Broadgate, Lisa Deutsch, Owen Gaffney, and Cornelia Ludwig, “The Trajectory of the Anthropocene: The Great Acceleration”, Anthropocene Review, 2015.

 

 

 

 

 

제2차세계대전 이후는 급격한 인구 증가, 도시화 40 , 집약 농업, 텔레비전·자동차·냉장고와 같은 소비재의 대량 보급이 이뤄진 시기다. 이 시기에 일회용 포장이 크게 늘어 엄청난 쓰레기 문제를 낳은 것은 이 시기의 변화가 환경에 끼친 결과의 한 사례일 뿐이다. 41 [그림 1]은 세계 GDP, 에너지 사용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세기 중엽에 “하키 스틱” 모양으로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보여 준다.

인류세의 시점에 관한 지질학자들의 논쟁은 기후 변화 대처를 위해 좀더 시급히 필요한 일들과는 자칫 동떨어져 있거나 심지어 엉뚱한 곳으로 주의를 돌리기 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세의 시점에 대한 상이한 관점은 종종 기후 변화의 원인과 그 잠재적 해법 모두에 대한 매우 다른 해석과 연관돼 있다. 인류세가 머나먼 과거에 시작됐다는 각종 주장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구 환경 변화를 “정상”으로 취급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42 이런 인류세 이론가들은 오늘날 환경 문제의 뿌리가 인간 문명의 등장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기후 변화의 위험성과 재앙이 닥치기 전에 이런 환경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시급함을 과소평가하는 효과를 낸다. 이는 인류세 진단의 충격 효과를 누그러뜨리는 것인데, 애당초 인류세 진단이 관심을 끈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안 앵거스는 이런 관점이 반 환경주의 로비스트들에 의해 퍼지고 있다고 본다. 43

홀로세가 [인간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이 시기 전체에 걸쳐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 기근이 벌어졌다. 세계 인구 대부분의 삶은 늘 불안정했다. 그럼에도 홀로세는 종종 인류세가 불러온 상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류의 안녕에 유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홀로세는 복잡한 인간 사회와 호환된다고 우리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다.” 44 따라서 앵거스는 인류세가 20세기 중반에 시작됐다는 생각을 지지하고 매우 빠르게 진행 중인 세계적 재앙에 모든 사람이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일부 좌파가 인류세 논의에 회의적인 이유는 뭘까?

인류세에 대한 부적절한 주장들

인류세에 관한 설명 중에는 정치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심각한 것이 있다. 표준적인 설명은 보통 이런 식이다. 인간에게는 다소 파괴적인 본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류세에 도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인간은 이 일에 어느 정도 관련돼 있다. 우리가 인간 본성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과격한 수단들(지구공학)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인류세에 관한 표준적인 설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다른 종과 달리 불을 사용하는 능력 때문에 지구 환경을 조작할 수 있게 됐다고 여긴다. 먼 옛날 인류가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아냈을 때, 이는 훗날 화석연료 추출 방법을 배우도록 단선적으로 예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인류는 화석연료도 태워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각종 연쇄반응의 결과로 화석연료 사용이 급속히 확대됐고 우리가 오늘날 목도하는 것처럼 탄소 배출이 치솟는 상황이 펼쳐졌다. 한 과학 논문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불 사용법을 배움으로써 인류는 다른 종이 가질 수 없었던 강력하고 독점적인 도구를 갖게 됐다. 이로서 인류는 인류세로 나아가는 긴 여정 위에 확고히 놓이게 됐다.” 45

이런 설명에는 역설이 있다.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본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지구 전체를 새로운 시대로 밀어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인류가 정작 상황을 실질적으로 바꿀 힘은 거의 없다는 것이고, 전례 없는 기술을 이용한 개입 정도만이 예외로 인정된다.

인류세 과학자들은 자연의 “거대한 힘”을 언급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 활동은 너무나 광범하고 깊어져서 자연의 거대한 힘과 경쟁하게 됐다.” 46 이는 인류가 자연의 나머지와 분리돼 그것에 맞선다는 자아 도취적인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세에 관한 일부 논의들을 포함해 현대의 환경주의 내에서 이처럼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개념은 특히 큰 문제다. 이런 개념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우리가 “자연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의” 파괴를 최소화하고 나머지 세계를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얘기다. 표준적 설명에는 인류의 영향이 지금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는 함의가 있다. 과학자들은 심지어 “이제 지구가 본래의 지질학적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47 하고 선언하기도 했는데 이는 홀로세가 뭔가 “본래의” 것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홀로세 자체는 지질학적으로는 매우 짧은 시기, 근본에서는 빙하기 사이의 간격을 뜻할 뿐이며 인류는 이미 이 시기에 외부 환경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고 있었음을 떠올려 보라.

우리가 자연의 힘을 압도하고 있다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도 자연의 힘의 일부다. 인간의 파괴성이 인류의 “자연적 본성”이라는 주장대로라면 인류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면서 동시에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되는 것이다. 48 이와는 대조적으로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은 자연 세계 속 인류의 구실에 관한 좀더 풍부하고 변증법적인 이해에 바탕한다.

인류세에 대한 [이러한] 지배적인 설명은 탈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여기서 탈정치적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투쟁을 기술-관리 상의 계획으로 대체하는 사회-정치적 처리 방식”이고, 이런 방식 하에서는 “정치적 주장과 논쟁, 방향 전환도 제한된다.” 49 달리 말해, 이런 설명 방식은 (좀더 일반적으로 기후 변화에 관한 일부 주장들과 마찬가지로) 환경 파괴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한다. 기후 변화는 인류 전체가 낳은 문제인 만큼 문제의 본질에 관한 이견은 제쳐두고 공동의 해법을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어떤 기술을 채택할지에 대한 매우 협소한 물음으로 정치적 논쟁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크뤼천이 기후 변화의 해법으로 첨단 지구공학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한 것은 놀랍지 않다. 그는 인류가 정치적 수단을 이용해 신속하게 기후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고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황을 대기 중에 살포해 [성층권에 미세먼지 층을 만들어] 기후를 냉각시키는 전략을 선호한다. 50 이 문제를 충분히 다루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51 그러나 이런 전략, 즉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문제에 관한 기술적 해법에 대한 한 가지 비판은 심지어 그런 다양한 기술적 시도 중 하나가 실제로 작동할지라도(그조차 보장할 수 없지만), 그런 해법은 기후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 증상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지구를 냉각시키는 것은 지구 온난화 외의 다른 다양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거의 확실히 그 자체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기후 과학자 케빈 앤더슨이 지적하듯 더 즉각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미래에 지구공학으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지금 당장 정치적 행동에 나서지 않을 핑계가 된다는 점이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마련한] 2015년 파리에서 열린 대부분의 유엔 회담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필요만큼 급진적으로 정하지 못했는데, 인류가 언젠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크뤼천이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지구공학은 “최후의 차선책”이 아니라 유일한 계획의 일부로 여겨지는 중일 수 있다. 52

인류세에 관한 탈정치적 설명과 관련된 것으로 인류세가 “좋은 것”, “위대한 것”이라거나 기꺼이 환영해야 할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도 있다. 얼 엘리스는 자신의 외부 환경을 변화시킨 첫 생물종이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는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진화 상 녹색 식물이 처음 등장했을 때 녹색 식물은 산소를 만들어 냄으로써 지구 대기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인간은 식물과 달리 지구 전체에 끼친 영향을 의식하고 우리의 행동을 바꿀 능력이 있다. 이는 합당한 지적이지만 엘리스는 인류가 마침내 자신이 끼친 부정적 영향을 “각성”했고 우리가 인류세에 살고 있다는 지식을 그저 선용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인류세 토론의 부흥 자체는 사회가 지구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에 눈을 떴음을 뜻한다. … 우리는 이 새로운 “자연의 위대한 힘”이 인류와 비인류 자연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낳도록 이끌 수 있다. 우리를 인류로 만든 힘인 초사회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용해 인류세의 거대한 도전 - 의식적으로 더 나은 사회와 자연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 - 으로 나아가야 한다. 53

인류세가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덕분에 “낙관적 전망” 즉, 기술 사용 증대에 기초를 둔 미래 사회를 제시할 커다란 기회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심지어 주류 환경주의자들이 자연 재해나 자원 고갈에 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비판한다. 이 경우에도 제안된 모든 기술 혁신을 구현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54

그러나 인류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표준적 설명의 이원론적 사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논평가들의 경우 인간이 자연에 가한 충격을 부각하는 것보다는, 인간 활동이 자연의 나머지와 얼마나 밀접히 연결돼 있는지를 인식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인류세가 매우 유용하다고 여긴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결과적으로 인간이 없을 때보다 온실가스 농도가 더 높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인류세라는 생각은 “자연”을 인간 사회와 분리된 어떤 것으로 여기는 개념을 이전부터 비판해 온 사회과학 내의 한 분야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런 접근법의 한 사례가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것은 아닐지라도 – 제이미 로리머의 책 《인류세의 야생동물》[국내 미번역]이다. 이 책에서는 도시처럼 인간이 만든 환경에서 사는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인류세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럼으로써 자연을 “야생의 것”으로 간주하는 생각을 비판한다. 55

인류세는 허상?

인류세라는 생각을 좌파적으로 비판하는 인물 중 두드러진 이는 안드레아스 말름이다. 말름은 학자이자 활동가로, 2015년 파리 회담 결과에는 진지한 행동이 결여돼 있다고 옳게도 강력히 비판해 왔다. 그는 기후 변화에 맞서는 “전투적 거리 시위”를 호소했다. 56 분명히 그는 오늘날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관해 전혀 안이하지 않다. 그런 그가 왜 “인류세는 허상”이라고 말할까?

말름은 인류세를 비판하면서 증기 기관의 발명, 산업혁명 그리고 이와 연관된 화석연료 사용의 증가와 함께 인류세가 시작됐다는 크뤼천의 주장으로 돌아간다. 그는 화석연료 사용을 초기 인류의 불 사용의 직접적 결과로 보는 주장에 중요한 반론을 제기한다. 또 크뤼천과 다른 사람들이 1830년대 영국에서 증기 동력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상세한 역사적 분석에 기초를 두고 증기 기관이 어떻게 당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광받고 특정한 목적에 이바지했는지 보여 준다.

말름은 증기 기관이 수차 같은 대안적 형태의 기술에 비해 비용이나 에너지 생산 능력 측면 모두에서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개별 공장주 입장에서는 석탄이 더 비싼 선택지였다. 그러나 석탄은 자본가들에게 다른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했다. 석탄은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했다. 석탄을 사용하면 수력을 사용할 때처럼 서로 다른 자본가들이 집단적으로 기반시설에 투자하지 않아도 됐다. 석탄은 하루 중 아무때나 사용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증기 동력 덕분에 산업 생산을 맨체스터 같은 도시로 들여올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도시는 갈수록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대량으로 공급했다. 57 말름은 소수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사회의 나머지 대다수는 임금 노동자로 내몰린 초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증기 동력이 “채택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진부한 지적이지만, 증기 기관은 인간 종의 자연스러운 대표들이 채택한 것이 아니다. 상품 생산에서 어떤 원동기를 쓸지 선택한 것이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능력이 발휘된 것이라 볼 수는 없는데 상품 생산은 애초 임금 노동 제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원동기[증기 기관]를 설치한 것은 생산수단 소유자들이었다. 58

이 주장의 핵심은 기후 변화가 정치적 문제이고, 계급투쟁의 결과로 석탄이 도입됐다는 것이다. 59 자본가들이 기후 변화를 이해하거나 예측하면서 벌인 일은 아니지만, 당시의 치열한 저항을 무릅쓰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화석연료 연소로의 전환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인류세는 의식적으로 야기된 일이다. 인류세는 인류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로서 벌어진 일이 결코 아니다.

말름의 전반적 주장에서 도출되는 또 다른 쟁점은 당연히도, 우리 모두가 인류의 일부로서 화석연료 연소에 똑같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 [화석연료] 체제로의 전환은 19세기에 인간 종 중에 특별한 부류의 인간들 – 부유한 영국 백인 남성 – 에 의해 벌어졌다. 오늘날에도 인류 전체가 탄소 배출에 똑같이 책임져야 한다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에너지 소비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유형에 크게 좌우된다. 캐나다인의 평균 에너지 소비는 [아프리카 사막 지대인] 사헬 지역의 전형적인 농부보다 1000배나 많다. 전체적으로 가장 가난한 인구 45퍼센트가 배출하는 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7퍼센트밖에 안 된다. 60

여기서 말름의 주장이 인류세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름이 비판하는 대상은 인류세에 대한 특정한 설명 방식이다. 61 하지만 그가 인류세라는 용어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점도 말해야 공평할 것이다.

말름의 주장에는 동의할 만한 내용이 많다. 기후 변화를 정치화하고 잘못을 저지른 주체가 인간 전체나 “인류”보다는 자본가들이라고 지목하려는 노력은 옳은 것이다. 환경 문제는 다시 한 번 계급투쟁의 장이 될 수 있다. 최근 ‘멸종 반란’ 같은 단체들이 성장하고 이례적인 세계적 ‘학교 파업’이 벌어지는 등 사람들이 대규모로 기후 행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 같은 급진적 구호가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모든 투쟁들 즉, 배출량 감축을 위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노동조합 등의 기후 일자리 투쟁, 자원 추출(셰일가스·오일 개발, 타르 샌드 추출, 금광 개발 등)이 지역 환경에 끼치는 영향 때문에 벌어지는 투쟁, 그리고 극단적 기상 이변의 충격 때문에 벌어지는 투쟁들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62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포함해 많은 논자들은 인류세 개념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해 왔다. 말름의 주장 중 상당 부분은 크뤼천 등 특별히 문제가 많은 관점을 가진 몇몇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세를 둘러싼 논쟁은 점차 그보다 더 광범해지고 있다. 특히 ‘인류세 워킹그룹’이 인류세를 좀더 최근에 시작된 것으로 보려 하는 상황에서 말름이 인류세를 산업혁명과 밀접히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성급한 듯하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 과학자들도 기후 변화 문제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크뤼천 자신도 초기부터 인류의 25퍼센트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63 사회과학자들의 비판이 제기된 뒤에는 적어도 부국 혹은 빈국에 사는지 여부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는 연구가 추가로 이뤄지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문제의 궁극적인 기원에 관한 역사적·계급적 분석과 같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64

말름은 한 인간 집단과 다른 집단 사이에서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가장 강력한 집단이 승리한다는 식으로 역사 발전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계급투쟁 결정론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사이에 벌어진 일로 [역사를 설명하는] 이런 설명 방식은 인간 사회가 나머지 자연과 어떤 관계 속에서 발전했는지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제이슨 W 무어는 이런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는데, “인간 활동은 생물계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자연의 산물인 인간 자신의 관계도 바꾼다”는 것이다. 65 무어는 결과적으로 이 시대의 시작은 화석연료 사용이 확대된 19세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등장으로 사회-자연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 15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에게 인류세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과학적 증거가 압도적인 현상에 붙이는 이름이다. 따라서 인류세라는 용어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인류세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인류세는 과학자들과 활동가들, 대중 구성원들 사이에 환경과 그 속에서 인류의 구실에 대한 토론을 어느 정도 촉발시켰는데 이는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향해

인류세를 이해하려면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인류를 포함해 생명체들이 능동적 구실을 하는 복잡계로서의 지구를 연구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빌 스테판 등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접근법이 등장하는 데에는 지구 시스템 작동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인식이 결정적이었다. 첫째, 지구 자체는 단일 체계이고 생물권은 그 속에 능동적이고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 둘째, 이제 인간 활동은 너무 광범하고 엄청나서 그 영향이 세계적 수준에서 복합적이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66

이런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개념이 둘 다 필요하다. 또 복잡계가 어떻게 점진적이거나 단절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인류가 언제나 외부 환경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 왔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관계의 본질이 최근 결정적으로 변했으므로 최근의 인류세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생각들은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배치되지 않는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인류의 구실에 대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개요를 제시하고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발전시킨 접근법은 인류세의 함의를 가늠할 수 있는 정교한 기초를 제공한다.

엘리스는 인류세를 이해하려면 왜 다른 종들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적 세력이 됐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왜, 어떻게 수렵·채집에서 농업 사회로, 나중에는 도시와 세분화된 분업,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을 갖춘 좀더 복잡한 사회로 나아갔을까? 어떻게 인류는 그 영향이 지질 기록에서도 측정될 수 있을 만큼 자연계를 심대하게 변화시키는 수준에 도달했을까? 67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물음들에 답변을 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 과정에 대한 고유한 분석을 개진하며 인간이 외부 자연에 영향을 끼치면서 동시에 그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류가 자연 세계를 변화시키는 능력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는 점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의 다음 주장은 잘 알려져 있다.

거미는 직조공들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며, 꿀벌의 집은 인간 건축가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가장 서투른 건축가를 가장 훌륭한 꿀벌과 구별하는 점은, 사람은 집을 짓기 전에 미리 자기의 머릿속에서 그것을 짓는다는 것이다. 68

인간은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활동을 통해 자연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질적으로 더 크다.(물론 우리는 전능하지 않고 우리의 활동도 예측하지 못하거나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같은 조상에서 진화했고, 따라서 인간의 특화된 능력은 본성적 차이라기보다 진화 과정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엥겔스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서 노동이 한 구실’이라는 짤막한 에세이를 통해 우리의 영장류 조상에게서 어떻게 인간의 능력이 진화했을지에 관한 한 가설을 제시한다. 69 그는 우리의 조상이 노동을 통해 외부 자연을 다룬 결과로 이런 진화가 일어났다고 가정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동물의 계획적인 행동은 어떤 것도 대지에 자신의 의지의 낙인을 찍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일은 인간을 위해 남겨졌다. 요컨대 동물은 환경을 그저 이용할 뿐이며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킨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자연을 변화시키고 제어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동물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차이이며, 이러한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또다시 노동이다. 70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는 인류가 외부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이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런 설명은 이후 인류가 지구 환경을 홀로세에서 인류세로 변화시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이미 놓은 것이다.

인간이 외부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킨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일부 인류세 논자들이 제시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단순한 접근법에 비해 훨씬 풍부하다.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음식, 물, 잠, 쉴 곳 등 기초적인 욕구를 갖는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우리의 필요를 적절히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이고 경쟁적이라고 여길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본성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71 역사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심리는 인간이 생활하는 사회의 종류에 따라 극적으로 변해 왔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사회적 관계에서 분리할 수 있는 고정불변의 “인간 본성”은 없었다. 72

화석연료 연소 충동을 낳는 모종의 본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인간 본성이 각기 다른 종류의 사회의 필요에 따라 변해 왔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설명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본성이 고정되고 본질적으로 파괴적이어서 환경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에 대한 효과적 비판을 가한다. 예를 들어 생물다양성 보전에 관한 글에서 [마르크스주의자] 이안 라펠은 이런 염세적인 사고의 기원이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들춰낸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파괴적 행동을 야기하는 외견상의 경향이 우리 유전자 구성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73

인간의 활동은 자연 세계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뤄지지만 인간은 단지 개인으로서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는 살고 있는 사회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이 기본적인 점을 인식하는 것이 이 저널[《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필자들이 이 지면과 다른 곳에서 발전시킨 환경 문제 접근법의 핵심이다. 이런 접근법은 역사 전반에 걸쳐 사회가 변함에 따라 환경 문제가 어떻게 생기는지 보고, 자본주의가 환경을 파괴하는 구체적 방식을 연구할 기초를 제공해 준다. 이는 우리가 환경에 대해 더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를 상상할 수 있고 그런 사회에서는 사회관계도 그에 걸맞게 더 민주적이고 평등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74

각종 인간 사회는 환경과 연관을 맺어 왔지만 자본주의는 그 해로운 효과에서 이전 사회들과 구별된다. 예를 들어 봉건 영주는 농민과 농노를 착취했지만 그 자신과 신하들의 물질적 욕구만 만족시키면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 자본가들은 서로 경쟁하도록 즉,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력을 착취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축적하는 경쟁으로 내몰린다.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뽑아내 이를 다음번 생산에 투자하는 데 실패하면 파산의 위험에 놓인다. 75 클라인은 현대의 화석연료 산업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설명한다. 미래의 예상 수요를 충족할 원유와 가스 매장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떠나서 손해를 보게 되니까 더 많은 화석연료를 찾아 지구 곳곳을 뒤진다. 76 축적을 향한 이 상시적인 압력은 점점 더 많은 자연 세계를 소비될 수 있는 상품으로 바꿔 놓는다. 무어가 설명하듯이 자본주의는 15세기 중반부터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철, 은, 목재, 설탕 등 더 많은 상품을 찾기 위해 지구를 샅샅히 뒤졌고 그 확장 속도만큼 빠르게 삼림을 없애 버렸다. 77 즉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력(기술, 자원, 관행과 지식 등 생산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대대적 확장과 나란히 진행됐다. 78

앵거스는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중에서도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특별한 발전, 즉 독점 자본의 등장이 환경에 끼친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대 독점 기업들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소규모 기업의 시장 진입이 차단되는 등 경쟁이 제한된다. 그 결과 초과 잉여가 생겨나는데 기업들은 이를 생산적으로 투자할 수단이 부족하게 된다. 79 앵거스는 또한 제2차세계대전은 20세기 전반과 후반을 구분하는 표지일 뿐 아니라 그 뒤에 일어난 사회적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쟁 덕분에 미국이 유럽에 비해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됐고, 전쟁 동안에 제조업 기술에 혁명적 발전이 이뤄졌으며, 전쟁 이후에도 군수와 제조업 부문에 대한 국가 투자가 더 일반적으로 유지돼 특히 미국의 독점 기업들이 혜택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80 독점자본론은 미국 경제의 성장 정체를 과장하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서 경쟁이 차지하는 구실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81 앞서 개략적으로 살펴봤듯이 성장 정체와 독점보다는 경쟁과 이윤 추구가 자본주의의 생태 파괴적 작동의 이면에 놓여 있는 강력한 동인이다. 그러나 앵거스는 좀더 일반적인 쟁점도 제기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체제의 추상적 작동 원리만큼이나 20세기 동안에 자본주의가 변해 온 구체적 과정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단순히 자연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자연을 재구성했다고 말해 왔다. 예컨대 라펠은 ‘자본주의적 생태 환경’이 생겨났다고 설명하면서 단일작물 경작의 확대, 자원 공급 고갈, 폐기물로 인한 환경 오염 등으로 나아가는 경향 등이 그 독특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적극 가공되는 생태 환경은 이윤을 향한 지배계급의 열망에 의해 결정된다.” 82 자본주의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태 환경을 구축한다는 것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는 지구적 규모에서 특정한 생태 환경을 만들었고 그 결과 이제는 지질학적 시기의 전환을 뜻하는 용어까지 필요하게 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인류세가 몇 세기 전에 시작됐든 아니면 최근인 20세기 중반에 시작됐든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끼친 영향 때문에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인류는 다양한 사회 속에서 살아 왔지만 자본주의만이 인류세를 낳았다. 어떤 이들은 환경 문제를 인간성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자본세’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83 이 용어는 더 유명해질 수 있고 특히 급진적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가진 약점은 지질학자나 다른 자연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공식 지리학 용어법에 맞지 않다) 환경 문제를 걱정하지만 자본주의를 (아직은) 비난하지 않는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84 ‘인류세’가 이미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어 대안적 용어를 제안하는 것이 너무 늦기도 했다.

말름은 인류세 논의가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돼 왔다고 지적한다. 알프 혼버그와 함께 쓴 글에서 그는 이런 현상이 “자연 과학 공동체의 비논리적이고 궁극적으로 자멸적인 길을 … 인간사의 영역으로 끌고 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그런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사회로 확장”했지만, “지질학자들, 기상학자들과 그 동료들이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구하는 데 충분히 훈련돼 있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85 그들은 이어서 화석연료 사용 증가의 사회적 원인에 대한 이해는 역사가들과 다른 사회학자들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면 과학적 통찰을 무시하거나 자연과학자들이 인류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당대의 과학적 발견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다윈의 관점에 무비판적이었다는 뜻은 아닌데 다윈의 이론은 종종 자유주의에 기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윈 사상의 핵심이 자신들의 고유한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봤다. 이 정신에 따라 앵거스는 지구 시스템 과학의 인식과 생태 마르크스주의를 종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과학자들의 사회 분석력 결여를 갓길에서 궁시렁”댈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은 자연과학자들이 말하는 바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 사회주의자들은 인류세 프로젝트가 생태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최신 과학 연구, 즉 지구 시스템의 현 위기의 방향과 본질, 기원에 관한 사회생태적 설명과 통합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여겨야 한다.” 86

인류세를 설명하는 일부 방식이나 생각, 특히 “인류세는 좋은 것”이라는 주장의 초낙관주의처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위기를 허비하지 말자”는 식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분명 위험할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를 포함한 많은 사안에서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지배적 담론이나 지배자들의 대안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문제가 실재한다는 것 자체에는 동의할 수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우리가 보기에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사회주의자들이 인류세 논의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우파의 손에 그런 주장을 넘겨주는 효과를 낸다. 87

과학자들은 지금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것은 … 선택지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88 자본주의가 계속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인류 멸종 가능성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세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짧은 지질학적 연대기로 남을 것이다. 대안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대체하는 데에 있다.

MARX21

후주

1www.co2.earth를 보라. 알렉스 캘리니코스, 조셉 추나라, 마틴 엠슨과 이안 라펠이 이 글에 조언을 줬다. 이 글의 초판은 2016년 7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51호에 실렸고 2019년 초에 개정됐다. 그 사이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10ppm 상승했다.
2 Simon Lewins, “A force of Nature: Our Influential Anthropocene Period”, Guardian, 23 July 2009, 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cif-green/2009/jul/climate-change-humanity-change
3 Simon Lewis and Mark Maslin, The Human Planet: How we Created the Anthropocene (Pelican, 2018).
4 Jan Zalasiewicz, and many others, “When did the Anthropocene begin? A mid-twentieth century boundary level is stratigraphically optimal”, Quaternary International, volume 383, 2015.
5 Adam Vaughan, “Human impact has pushed Earth into the Anthropocene, scientists say”, Guardian, 7 January 2016, 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16/jan/07/human-impact-has-pushed-earth-to-the-anthropocene-scientists-say
6 Richard Monastersky, “First atomic blast proposed as start of Anthropocene”, Nature News, 16 January 2015, www.nature.com/news/first-atomic-blast-proposed-as-start-of-anthropocene-1.16739
7 Ian Angus, “Entering the Age of Humans”, Socialist Review, May 2016, http://socialistreview.org.uk/413/entering-age-humans
8 Paul Crutzen and Eugene Stoermer, “The ‘Anthropocene’”, International Geosphere-Biosphere Programme (IGBP) Global Change Newsletter, number 41, May 2000. IGBP는 인간 사회와 지구의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변화 사이의 상호작용, 즉 종종 하나뿐인 “지구 시스템”으로 설명되는 분야에 대한 연구 필요성이 증대된 결과로 1987년에 설립된 단체다.
9 Ian Angus, “The Anthropocene: When did it begin and why does it matter?” Monthly Review, volume 67, number 4, 2015.
10 Crutzen and Stoermer, “The ‘Anthropocene’”, as above, p18.
11 Simon Lewis and Mark Maslin, “Defining the Anthropocene”, Nature, issue 519, 2015
12 ‘인간 날씨’라는 용어는 얼 엘리스(Erle Ellis)와 관련있다. Erle Ellis, “Evolving toward a better Anthropocene”, Future Earth blog (29 March 2016), www.futureearth.org/blog/2016-mar-29/evolving-toward-better-anthropocene.
13 Lewis, “A Force of Nature”, as above.
15 John Bellamy Foster, “John Bellamy Foster Answers Three Questions on Marxism and Ecology:, La Revue du Projet, 2016, http://climateandcapitalism.com/2016/03/21/marxism-and-ecology-three-questions-for-john-bellamy-foster 와 Ian Angus, Facing the Anthoropocene (Monthly Review Press), 2016. 을 보시오.
16 John Bellamy Foster, “Late Soviet Ecology and the Planetary Crisis”, Monthly Review, volume 67, number 2, 2015.
17 Naomi Klein, “Let Them Drown : The Violence of Othering in a Warming World”, London Review of Books, volume 38, number 11, 2016, www.lrb.co.uk/v38/n11/naomi-klein/let-them-drown
18 Andreas Malm, Fossil Capital (Verso, 2016), pp32 and 391.
19 황금못은 층서구역(GSSP, Global Stratotype Section and Point)이라고도 한다.
20 유성은 실제로는 튀니지가 아니라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충돌했다.
21 Lewins and Maslin, “Defin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22 Loulla-Mae Eleftheriou-Smith “Dinosaurs were ‘in Decline’ 50 Million Years Before Asteroid Strike Wiped Them Out, Study Suggests”, Independent, 19 April 2016, http:// tinyurl.com/hnpqa7h
23 이 시기의 층서구역(황금못)은 그린랜드 빙하에서 시추한 1만 1700년 전 [대기중] 중수소 함량의 변화다. 이는 이 때의 지구 온난화의 증거다.
24 Lewins and Maslin, “Defin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25 농업과 축산업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숲 파괴는 홀로세의 초기부터 지구 기온에 영향을 끼쳤고, 지구 한랭화를 예방하는 효과를 냈을 것이다. — Jan Zalasiewicz, Mar Williams, Will Steffen, and Paul Crutzen, “The New World of the Anthropocene”, 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Viewpoint, issue 44, 2010, http://pubs.acs.org/doi/pdf/10.1021/es903118j
26 Judith Orr, Marxism and Women’s Liberation (Bookmarks, 2015), pp34-51.[국역: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책갈피, 2016.]
27 Chris Harman, A People’s History of the World (Bookmarks, 1999), p175.[국역: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2004.]
28 하먼, 위의 책, 234쪽.
29 Lewis and Maslin, “Defining the Anthropocene” and The Human Planet, as above.
30 Malm, Fossil Capital, as above, p54.
31 Crutzen and Stoermer, “The ‘Anthropocene’”, as above.
32 Malm, Fossil Capital, as above.
33 Will Steffen, Paul Crutzen, and John McNeill, “The Anthropocene: Are Humans Now Overwhelming the Great Forces of Nature?”, Ambio: A Journal of the Human Environment, volume 36, number 8, 2007. www.pik-potsdam.de/news/public-events/archiv/alter-net/former-ss/2007/05-09.2007/steffen/literature/ambi-36-08-06_614_621.pdf
34 Zalasiewicz and others, “When did the Anthropocene begin?”, as above. 이 논문의 저자들은 신생대의 시작을 알린 유성 충돌 사건과의 유사성 때문에 [핵]폭탄이 지구에 떨어졌을 때 인류세가 시작됐다는 생각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35 Lewis and Maslin, “Defin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36 지질학 표준 실습에서는 1950년 1월 1일을 “현재”로 표시한다.
37 Will Steffen and others, Global Change and the Earth System (International Geosphere-Biosphere Programme, 2004), p258. www.igbp.net/publications/igbpbookseries/igbpbookseries/globalchangeandtheearthsystem2004.5.1b8ae20512db692f2a680007462.html. 대략 50년 전이라는 시기는 [크뤼천과 스토머의] 대가속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다만 이 시기를 인류세 내의 전환점으로 보기보다는 인류세의 시점으로 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38 Zalasiewicz and others, “When did the Anthropocene begin?”, as above.
39 Anthropocene Working Group, “Media Note”, 29 August 2016, www2.le.ac.uk/offices/press/press-releases/2016/august/media-note-anthropocene-working-group-awg (accessed online 29.7.18).
40 오늘날 세계 인구의 다수는 도시에 산다.
41 Zalasiewicz and others, “When did the Anthropocene begin?”, as above. 일회용 포장지의 정치와 소비재가 저절로 망가지도록 만들어지는 것을 둘러싼 정치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artin Empson, Land and Labour: Marxism, Ecology and Human History (Bookmarks, 2014), chapter 11.
42 Lewis and Maslin, “Defin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43 Ian Angus, “Hijacking the Anthropocene”, Climate and Capitalism, 19 May 2015, http://climateandcapitalism.com/2015/05/19/hijacking-the-anthropocene/
44 Angus, “Entering the Age of Humans”, as above.
45 Steffen and others, “The Anthropocene: Are Humans Now Overwhelming the Great Forces of Nature?”, as above. See Andreas Malm, “The Anthropocene Myth”, Jacobin, 30 March 2015, www.jacobinmag.com/2015/03/anthropocene-capitalism-climate-change/for a critique of this thinking.
46 Steffen and others, “The Anthropocene: Are Humans Now Overwhelming the Great Forces of Nature?”, as above.
47 Steffen and others, “The Anthropocene: Are Humans Now Overwhelming the Great Forces of Nature?”, as above.
48 Eva Lövbrand, Silke Beck, Jason Chilvers, Tim Forsyth, Johan Hedrén, Mike Hulme, Rolf Lidskog, and Eleftheria Vasileiadou, “Who Speaks for the Future of Earth? How Critical Social Science can Extend the Conversation on the Anthropocene”, Global Environmental Change, volume 32, 2015 and Jason Moore, 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Verso, 2015).
49 Lövbrand and others, “Who Speaks for the Future of Earth?”, as above.
50 Steve Connor, “Scientist Publishes ‘Escape Route’ from Global Warming”, Independent, 30 July 2006, http://tinyurl.com/dxe7w
51 하지만 ‘민중을 위한 과학’이 2018년에 출판한 여러 글들을 보라. https:// magazine.scienceforthepeople.org/tag/geoengineering/
52 Kevin Anderson, “The Hidden Agenda: How Veiled Techno-utopias Shore up the Paris Agreement”, 6 January 2016, http://kevinanderson.info/blog/the-hidden-agenda-how- veiled-techno-utopias-shore-up-the-paris-agreement/
53 Ellis, “Evolving toward a better Anthropocene”, as above.
54 Angus, “Hijack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55 Jamie Lorimer, Wildlife in the Anthropocene: Conservation after Natur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56 Andreas Malm, “Our Fight for Survival”, Jacobin, 29 November 2015, www.jacobinmag. com/2015/11/climate-change-paris-cop21-hollande-united-nations/
57 Malm, Fossil Capital, as above, and Martin Empson’s review, “Why Capitalism is Addicted to Oil and Coal”, Climate and Capitalism, 17 December 2015, http://climateandcapitalism. com/2015/12/17/fossil-capital-the-rise-of-steam-power-and-the-roots-of-global-warming/
58 Malm, “The Anthropocene Myth”, as above.
59 이 책에 실려 있는 에이미 레더의 글[국역: ‘화석연료에 대한 절망적 집착’, 《마르크스21》 34호]을 참고하시오.
60 Malm, Fossil Capital, p269 and Andreas Malm and Alf Hornborg, “The Geology of Mankind? A Critique of the Anthropocene Narrative”, Anthropocene Review, volume 1, number 1, 2014.
61 말름은 2016년 3월 2일 런던에서 열린 그의 책 《화석 자본》Fossil Capital 출판기념회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62 이 책에 실려 있는 수잔 제퍼리의 글을 참고하시오.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63 Paul Crutzen, “Geology of Mankind”, Nature, volume 415, 2002, www.geo.utexas.edu/courses/387h/PAPERS/Crutzen2002.pdf
64 Will Steffen, Wendy Broadgate, Lisa Deutsch, Owen Gaffney, and Cornelia Ludwig, “The Trajectory of the Anthropocene: The Great Acceleration”, Anthropocene Review, 2015, https://favaretoufabc.files.wordpress.com/2013/06/2015-steffen-et-al-the-great-acceleration-1.pdf
65 Jason W Moore, “The Capitalocene, Part I: On the Nature and Origins of our Ecological Crisis”, Journal of Peasant Studies, volume 44, issue 3, 2017. See also Moore, 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as above.
66 Steffen and others, Global Change and the Earth System, as above, p1.
67 Ellis, “Evolving toward a better Anthropocene”, as above.
68 Karl Marx, Capital, volume 1 (Penguin Classics, 1990), p284.[국역: 《자본론》 1상, 비봉출판사, 2015]
69 Friedrich Engels, The Part Played by Labour in the Transition from Ape to Man (Progress Publishers, 1934 [1876]). 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6/part-played-labour/
70 Engels, as above.
71 Paul Blackledge, “How Humans Make Themselves”, International Socialism 117, winter 2007, http://isj.org.uk/how-humans-make-themselves/
72 Blackledge, as above; Elizabeth Terzakis, “What do Socialists say about Human Nature?”,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 issue 47, May-June 2006, www.isreview.org/issues/47/wdss- humnature.shtml
73 Ian Rappel, “Capitalism and Species Extinction”, International Socialism 147, summer 2015, http://isj.org.uk/capitalism-and-species-extinction/
74 Empson, Land and Labour and Martin Empson, “Can we Build a Sustainable Society?”, Socialist Review, December 2015, http://socialistreview.org.uk/408/can-we-build-sustainable-society
75 Empson, Land and Labour, as above, chapter 11.
76 Naomi Klein, This Changes Everything: Capitalism vs the Climate (Penguin, 2015).
77 Moore, 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and “The Capitalocene”, as above.
78 Empson, Land and Labour, as above, chapter 11.
79 Angus, “The Anthropocene: When did it begin and why does it matter?”, as above.
80 Angus, Fac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pp137-145.
81 Joseph Choonara, “Marxist Accounts of the Current Crisis”, International Socialism 123, summer 2009, http://isj.org.uk/marxist-accounts-of-the-current-crisis/
82 Rappel, “Capitalism and Species Extinction”, as above, p110.
83 For example, Moore, “The Capitalocene”, as above.
84 Angus, Fac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pp230-231.
85 Malm and Hornborg, “The Geology of Mankind?”, as above.
86 Angus, “The Anthropocene: When did it begin and why does it matter?”, as above.
87 Angus, “Entering the Age of Humans”, as above.
88 Will Steffen endorsement for Angus, Facing the Anthropocene, as above.
*출처 Camilla Royle, Chapter2 Marxism and the Anthropocene,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edited by Martin Empson, 2019, Bookmarks), 번역 장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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