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세

커밀라 로일 177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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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포함해 많은 논자들은 인류세 개념을 무시하는 것에 반대해 왔다. 말름의 주장 중 상당 부분은 크뤼천 등 특별히 문제가 많은 관점을 가진 몇몇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세를 둘러싼 논쟁은 점차 그보다 더 광범해지고 있다. 특히 ‘인류세 워킹그룹’이 인류세를 좀더 최근에 시작된 것으로 보려 하는 상황에서 말름이 인류세를 산업혁명과 밀접히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성급한 듯하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 과학자들도 기후 변화 문제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크뤼천 자신도 초기부터 인류의 25퍼센트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63 사회과학자들의 비판이 제기된 뒤에는 적어도 부국 혹은 빈국에 사는지 여부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는 연구가 추가로 이뤄지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문제의 궁극적인 기원에 관한 역사적·계급적 분석과 같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64

말름은 한 인간 집단과 다른 집단 사이에서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가장 강력한 집단이 승리한다는 식으로 역사 발전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계급투쟁 결정론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사이에 벌어진 일로 [역사를 설명하는] 이런 설명 방식은 인간 사회가 나머지 자연과 어떤 관계 속에서 발전했는지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제이슨 W 무어는 이런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는데, “인간 활동은 생물계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자연의 산물인 인간 자신의 관계도 바꾼다”는 것이다. 65 무어는 결과적으로 이 시대의 시작은 화석연료 사용이 확대된 19세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등장으로 사회-자연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 15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에게 인류세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과학적 증거가 압도적인 현상에 붙이는 이름이다. 따라서 인류세라는 용어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인류세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인류세는 과학자들과 활동가들, 대중 구성원들 사이에 환경과 그 속에서 인류의 구실에 대한 토론을 어느 정도 촉발시켰는데 이는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향해

인류세를 이해하려면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인류를 포함해 생명체들이 능동적 구실을 하는 복잡계로서의 지구를 연구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빌 스테판 등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접근법이 등장하는 데에는 지구 시스템 작동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인식이 결정적이었다. 첫째, 지구 자체는 단일 체계이고 생물권은 그 속에 능동적이고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 둘째, 이제 인간 활동은 너무 광범하고 엄청나서 그 영향이 세계적 수준에서 복합적이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66

이런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개념이 둘 다 필요하다. 또 복잡계가 어떻게 점진적이거나 단절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인류가 언제나 외부 환경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 왔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관계의 본질이 최근 결정적으로 변했으므로 최근의 인류세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생각들은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배치되지 않는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인류의 구실에 대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개요를 제시하고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발전시킨 접근법은 인류세의 함의를 가늠할 수 있는 정교한 기초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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