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세

커밀라 로일 177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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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크 매슬린과 사이먼 루이스는 생물권의 대규모 전환에서 식민지 지배가 한 구실에 천착해 1492년 유럽인들이 처음 “신세계”와 접촉한 때를 인류세가 시작된 시기로 보자고 전혀 다르게 제안한다. 당시 인류는 옥수수와 감자 같은 신세계 작물을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들여왔고 밀과 사탕수수를 아메리카로 날랐다. 이는 비가역적이고 상당한 수준의 생태계 변화를 전 세계적으로 일으켰는데, 예컨대 이탈리아 해변의 바닷속 퇴적층에서도 옥수수 화분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됐다. 크리스 하먼은 《민중의 세계사》에서 이 역사적 시기를 “대변혁”이라고 했는데, 이 시기는 르네상스의 시기이자 “과학의 진보가 있었고 예술과 문학이 활짝 꽃을 피운” 시대였다. 27 그러나 하먼도 설명했듯이 신세계 “발견”과 정복은 그곳에 살던 많은 이들에게 기근과 질병을 가져다 줬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한 스페인 관찰자는 그것이 잉카 제국에 끼친 효과를 이렇게 묘사했다. “왕국의 모든 도로마다 황폐한 마을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28 아메리카의 인구는 5400만 명에서 1650년에는 600만 명으로까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사 짓는 사람이 줄면서 숲이 복원되고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낮아졌다. 이산화탄소 농도 하락(1610년에 저점에 도달했다)은 이 사건의 지질학적 기록일 수 있는데 남극의 얼음에서도 관측할 수 있다. 29 인류가 지구상에서 유력한 세력이 된 시점이 인간 수백만 명의 죽음으로 표시됐을 것이라는 끔찍한 가설인 것이다.

루이스와 매슬린의 ‘오르비스 스파이크(지구못)’ 제안에는 인구와 생태계의 변화가 포함되는 반면 [인류세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크뤼천과 스토머 자신은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초점을 좀더 좁게 맞춘다. 크뤼천과 스토머는 처음에는 인류세의 시작을 18세기 말로 제시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18세기에 발명했고, 석탄 화력을 이용한 증기 기관이 처음으로 면화 공장의 동력원으로 사용된 것이 1786년 노팅엄셔에서였다. 30 크뤼천과 그의 동료에 따르면 이때부터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31 홀로세의 대부분 기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준치에서 각각 5ppm 범위 내에서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반면에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년 2ppm씩 올랐다. 32 크뤼천과 스토머는 20세기 중엽을 “대가속기”로 규정하자고도 제안한다. 당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주목할 만한 폭발적 증가” 즉, 한층 급속히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33

끝으로, 인류세가 1945년에 시작됐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34 이 해에 첫 핵무기 실험(과 실전에서의 첫 사용)이 있었다. 핵실험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내내 계속되다가 1963년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PTBT이 체결된 이후 급속히 줄었다. 핵실험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쳤고 극지 얼음과 호수의 퇴적층, 나무 나이테에서 방사성 동위원소가 검출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무렵 생긴 나이테에서는 핵무기에서 나온 탄소 동위원소 농도가 확연히 최고치를 보여 황금못 구실을 하는데 이것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것임이 틀림없다. 35 수십만 년의 기간을 다루는 지질학자들에게 이는 물론 극도로 최근의 일이다. 36

이리듐 매장층으로 신생대의 시작을 식별할 때와 마찬가지로, 핵무기 실험이 이 시기에 벌어진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류세의 시작 사건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 사건이 벌어진 시기와 그저 동시대에 지구 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 시스템 과학자들은 바로 이 시기에 그런 변화가 벌어졌다고 본다.

20세기 후반은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역사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시기다. 수많은 인간 활동이 20세기의 어느 시점엔가 이전까지의 규모를 벗어나 고조되더니 세기말로 가면서 급격히 가속됐다. 후반기 50년은 생물 종의 역사에서 인간과 자연 세계의 관계가 가장 빨리 변한 시기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37

‘인류세 워킹그룹’은 201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20세기 중반에 “인류가 뚜렷하게, 상대적으로 급격히 지구 환경을 변화시킨 시기”가 시작됐다는 입장을 지지했다. 38 ‘인류세 워킹그룹’은 인류세를 지질학 기록에 추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련의 과학자 등이 모인 것이다. 2016년 여름, 이 그룹의 회원 35명은 인류세가 층서학적으로 실재하며 공식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압도적으로 표결했다. 그뿐 아니라 시점과 관련한 여러 후보들 중 1950년 무렵이 28.3표를 받았는데 이는 ‘지구못’ 등 좀더 이른 시기를 제안한 다른 후보들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플루토늄 낙진은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인류세의 최초 신호였다. 39 ‘인류세 워킹그룹’은 인류가 홀로세 이전부터 층서 기록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들의 다수는 20세기 중엽 홀로세가 끝난 것으로 여겨도 될 만큼 인류의 영향이 강해졌다는 데에 이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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