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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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유럽 전쟁의 위험이 증대하고 있음을 아주 분명하게 이해했고, 독일 제국 정부의 전쟁 준비를 끊임없이 규탄했다. 1913년 9월 13일 룩셈부르크는 프랑프푸르트암마임 근처 도시인 보켄하임에서 한 강연에서 엄숙한 국제주의적 주장으로 말을 맺었다. “저들이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우리 형제들에 맞서 우리가 살인 무기를 들기 바란다면, ‘아니, 우리는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해 줍시다.” 검사가 “법에 불복종하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며 룩셈부르크를 즉각 기소했다. 1914년 2월에 재판이 열렸고, 룩셈부르크는 군국주의와 전쟁 정책을 비판하는 용감한 법정 진술을 했고, 1868년 제1인터내셔널 브뤼셀 대회의 결정문을 인용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선언해야 한다.’ 룩셈부르크는 1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전쟁이 시작된 뒤인 1915년이 돼서야 제국 당국은 룩셈부르크를 체포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의 다른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조국 방위”를 내세우며 자국 정부를 지지할 때, 룩셈부르크는 즉각 제국주의 전쟁 반대를 조직하고자 했다. 중요했던 초기 몇 달 동안 룩셈부르크의 글들은 공격적인 공식적 “애국” 이데올로기에 전혀 타협하지 않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에 대한 사민당 지도부의 끔찍한 배신을 비판하는 주장들을 발전시켰다.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선전 활동 때문에 구속돼 있는 동안, 룩셈부르크는 원칙적 입장을 정리했다. 룩셈부르크는 반전 투쟁이 사회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반전 소책자인 《사회민주당의 위기》(룩셈부르크가 유니우스라는 가명으로 글을 써 《유니우스 팸플릿》으로도 알려져 있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부르주아 사회는 사회주의로의 변혁이냐 야만 시대로의 복귀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 주사위는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가 던질 것이다.”

1916년에 쓴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이자 무엇보다 우선해 지켜야 할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인터내셔널이다.” 제2인터내셔널은 룩셈부르크가 “사회배외주의”이라고 부른 것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만국의 노동자여, 죽기살기로 서로 싸워라”로 대체한 — 의 충격으로 몰락했다.

그 대응으로 룩셈부르크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제기했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기본 원칙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프롤레타리아의 국제 연대 밖에서는 사회주의가 가능하지 않고 계급투쟁 없는 사회주의도 가능하지 않다. 전시든 평화시든 자살하지 않고서야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가 국제 연대와 계급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은 인터내셔널이 평시의 도구이지 전쟁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카우츠키의 위선적 주장을 비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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