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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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항상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민당에서 탈당하기를 꺼린 까닭이기도 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늘 폴란드와 독일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당원이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의 당 개념에는 숙명론적·선전주의적 결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독자적인 혁명적 정당 건설을 꺼렸고, 독일에서 혁명적 정당 건설이 지체됐다. 이것은 독일 혁명의 향방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5 룩셈부르크 자신도 1919년 1월 15일 자유군단(우익 민병대)에 체포돼 소총 개머리판에 맞아 살해됐다.

오늘날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국가와 사용자의 공격에 맞서 아래로부터 노동자 투쟁을 구축하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노동자 투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혁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오류를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명확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룩셈부르크가 꼭 필요하다. 룩셈부르크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저작과 삶에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풍부한 사상과 경험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룩셈부르크의 개혁주의 논쟁, 국제주의, 반제국주의를 중심으로 다루겠다.

개혁만으로 충분치 못하고 혁명이 필요하다

룩셈부르크의 소책자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이정표다. 책 제목부터 혁명적 정치와 대비되는 특정 정치 운동으로서의 개혁주의가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룩셈부르크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개혁주의를 상대로 한 투쟁이었다. 러시아 혁명가들인 레닌과 트로츠키도 개혁주의에 맞서 혁명적 투쟁을 했지만, 러시아에서는 개혁주의라는 잡초의 뿌리가 아주 약하고 가늘었다. 시베리아 유형이나 교수대가 모든 사회주의자와 민주주의자를 노리는 곳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을 꿈꾸기는 어려웠다. 노동조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노동조합을 노동운동의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할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서부 유럽에는 보수적 개혁주의가 훨씬 더 깊게 뿌리 내리고 있었고, 노동자들의 사상과 분위기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다. 룩셈부르크가 레닌이나 트로츠키보다 더 빨리 노동조합 관료에 관해 더욱 명확한 견해를 가진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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