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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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독일에 막 정착한 1898~1899년 사이에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썼다. 당시 독일 사민당은 제2인터내셔널의 중심이었고, 제2인터내셔널에는 전 세계 주요 노동자 정당들이 지부로 속해 있었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은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자탄압법이 폐지된 1890년 이후 정치적으로 타락하고 있었다. 한때 사회주의는 “힘의 문제며, 의회에서는 달성될 수 없다”고 선언했던 사민당 지도자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1891년에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의회 제도는 대중의 대표체일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제국의회에서 성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의회 제도의 결점 때문이 아니다. … 목표에 도달하는 다른 길이 있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보여 달라!”

이런 주장이 사민당 내에서 다수를 차지했지만 심각하게 토론되지는 않았다. 사민당 사무총장 이그나츠 아우어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행할 뿐이다” 하고 당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묘사했다. 사회주의적 강령보다 실천이 훨씬 더 사민당의 성격을 규정했다.

그런데 이런 행동 규범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노골적으로 개혁주의적인 주장을 출판하면서 깨졌다. 사민당이 기회주의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95년에 죽자, 베른슈타인은 공개적으로 수정주의를 제기했다. 독일 사민당은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는데도 사민당 일간지 <포어베르츠>는 베르슈타인의 글들을 환영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파르부스(러시아 출신의 독일 사회주의자)가 베르슈타인의 주장에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했고, 그 뒤 룩셈부르크가 결정적으로 논박했다.6

베른슈타인의 주장은 이랬다. ‘자본주의는 길들여지고 합리적 제도가 됐다. 20년 넘게 번영하면서 마르크스의 10년 위기론도 틀렸다. 1870년 이후 발칸을 제외하곤 유럽 땅에서 전쟁이 없었다. 노동운동은 이제 불법이 아니다. 사민당은 선거에서 점점 승리하고 있다. 노동조합도 강화되고 임금은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 혁명이 아니라 개혁 확대가 필요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자본가들과 협력해 사회주의로 점진적 이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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