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이집트 혁명에 대한 개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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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알사이드는 이집트의 합법 정당들이 “이집트 정치에서 어떤 것도 대표하지 않으며 이집트 국민들 사이에서 아무런 명망도 없다”는 희한한 고백을 했다. 78 그는 ─ 자기 단체를 비롯해 ─ 모든 단체들이 “사회의 표면에 떠 있는 개인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말했다. 79 2011년 타감무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이상에 헌신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주의, 자유, 시민사회, 정의와 평등을 지지하며, 가난과 탄압, 폭정, 부패, 가격 담합, 실업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80 이것은 또 다른 개혁주의였다. 1930~1940년대 공산당 운동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개혁주의, 그리고 오랫동안 그 의미를 잃어버린 급진주의로서의 개혁주의 말이다. 이는 이슬람주의적 개혁주의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둘 다 대중을 자신들의 정치적 프로젝트의 대상으로 간주했고, 독립적 행동과 국가에 대한 도전을 단속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붕괴가 만들어 낸 아주 끔찍한 상황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여러 협회와 복지 사업을 통해 한 활동과 수많은 활동가들이 당했던 탄압 때문에 이슬람주의는 정치적 프로젝트로서 신뢰를 받았다.

이슬람주의와 좌파

혁명은 이슬람주의와 옛 좌파 정치 모두로부터의 단절을 동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패배주의 정치와 관련된 제약들을 벗어던지고 거리를 점거하고 대중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여전히 과거 전통에 발목이 잡혀 있다. 어떻게 전진할 수 있을까? 특히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선거적 지지가 광범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일부 정치 활동가들, 특히 청년들이 이슬람주의에서 벗어나 급격히 좌경화했다. 이슬람주의 어젠다에 영향을 받는 이집트인들이 세속적 급진주의자들과 함께 행동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이것은 2000년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에 연대하는 중요한 운동이 등장한 이후부터 반전 운동,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지역운동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라바브 엘 마흐디는 2000~2010년에 벌어진 각각의 투쟁 과정들이 자신감을 키우고 그 결과로 더 많은 행동을 촉발하는 식으로 국가에 맞선 저항이 반복되는 “파급” 효과가 나타났음을 지적한다.

[해당자들은 다음 같다 — 마플릿] 많은 산업 부문과 공공 영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 벽촌의 교육 환경에 항의해 농성을 벌이는 학부모들, 도시 정리 계획 때문에 쫓겨난 빈민가 거주민들, 자식을 고문하는 경찰에 맞서 단식 투쟁을 벌이는 어머니들,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요구하며 행진하는 수많은 마을 주민들. 81

1980~1990년대 내내 무슬림형제단은 무바라크 정권 반대 운동에서 주도적 구실을 했다. 2000년에 시작된 투쟁에서 많은 이슬람주의자들은 독립적 좌파 활동가들을 처음 만났다.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특히 이슬람주의의 이념과 관습이 체계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던 캠퍼스에서 그랬다. 새로운 좌파는 서서히 자리를 잡았고, 예전 같았으면 이슬람주의 집단 내에 머물렀을 청년들을 끌어당겼다. 이들의 핵심 전략은 이스라엘, 제국주의 전쟁, 경찰, 지역 고용주, 대학 총장들에 맞서는 투쟁을 무슬림 활동가들과 가능한 한 함께 하는 것이었다. 특히 1990년대 내내 지하에서 활동했던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는 국가에 일관되게 반대하면서 싸울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전략의 핵심 기본으로 삼았다.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는 “이슬람주의자들과는 가끔씩 함께하지만, 국가와는 절대로 함께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독자적 정치를 항상 유지했다. 82 이런 입장은 공동전선 전략의 근저에 있는 핵심 원칙들을 창조적으로 적용한 것이었는데, 공동전선은 국가와 더 나아가 제국주의에 맞서 이집트 대중의 즉각적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공동 투쟁에서 다른 세력들과 직접 관계 맺는 수단이었다. 2012년에 나기브는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접근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양한 이슬람주의 조류의 내부와 그들 사이의 모순, 부르주아 지도자들과 프티부르주아 구성원들과 광범한 노동계급·빈민 지지층 사이의 모순에 주목해 분석했다. 그런 모순들은 항상 모호한 종교적 구호로 억눌렸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에 거듭 순응했음에도 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대중의 많은 부분이 그들을 유일하게 진지한 반대 세력으로 여겼다. 83

무슬림형제단의 청년 회원들과 지지자들은 수십 년간 좌파가 공개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과 행동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개중에는 종교적 종파주의의 본질, 시온주의 반대와 유대인 혐오 문제, 여성의 권리, 민주주의의 본질 등 지극히 논쟁적인 쟁점도 있었다. 이슬람주의자들과 반전 운동가들이 이라크인과 팔레스타인인 지지라는 주제로 함께 모인 대규모 국제 회의들에서도 이런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84 만약 좌파가 (정치수 석방 운동, 이스라엘 침략 피해자 연대 운동 등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주도권을 무시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며 논쟁을 회피했다면, 이는 자살 행위였을 것이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탈린주의의 비극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입의 결과로 개별 활동가들의 이동 방향이 이슬람주의에서 좌파로 향하게 됐다. 이슬람주의 정치의 심각한 모순을 반영하는 전개 과정이다. 곧이어 투쟁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런 모순들이 더 완전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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