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진보진영 집권 전략,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 정당이 집권하면 노동자 정부인가? *
이 글은 30년 전[1977년 ― 옮긴이]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국제 상황 보고》에 실렸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1968~75년의 거대한 투쟁 물결 속에서 등장한 최대 극좌파 조직들의 일부가 자신의 전략을 수정해 기성 의회 제도 안에서 ‘좌파’ 정부를 구성하는 전략을 모색했다. 그러한 정부가 실현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당시 강력한 이탈리아 공산당이 기독교민주당과 ‘역사적 타협’을 맺으면서 종속적 구실을 자임하자 혁명적 좌파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그럼에도 당시의 주장들은 오늘날 혁명가들이 정부 구성 문제를 대할 때 취해야 하는 태도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2006년 ― 옮긴이] 재건공산당이 로마노 프로디의 중도 좌파 정부에 입각해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에 이탈리아군을 파병하는 것에 찬성표를 던졌다.
- 크리스 하먼(1942-2009)이 2007년에 덧붙인 머리말
지난 3년 동안 ‘좌파 정부’ 개념이 크게 수정됐다. 칠레의 경험이 재앙으로 끝난 것이 이러한 수정의 발단이었다. 국제사회주의자들IS을 비롯한 일부 경향들은 개혁주의 노선으로는 사회주의로 갈 수 없음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본 반면 다른 단체들, 특히 이탈리아의 일 마니페스토[선언 ― 옮긴이]는 좌파 정부 선출이 사회주의로 가는 결정적 첫걸음이라고 봤다.
1976년에 이러한 분석은 이탈리아에 적용됐다. 아방과르디야 오페라야AO[노동자 전위 ― 옮긴이]와 PdUP[공산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단결당 ― 옮긴이](일 마니페스토는 PdUP로 통합했다) 선거 강령의 주요 슬로건은 공산당, 사회당, 그리고 아마 혁명적 좌파도 포괄하는 좌파 정부 수립이었다. 이들은 대중의 압력이 있으면 “좌파 정부가 자본주의에 이롭게 상황을 안정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그러면 “노동계급이 권력을 행사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 두 조직 모두 분열했는데, 그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좌파 정부의 구실과 한계를 둘러싼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이 내년[1978년 ― 옮긴이]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이 확실시되자 혁명적 좌파 내에서 다시 좌파 정부 개념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들은 이탈리아 극좌파들이 빠진 것과 같은 개혁주의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흔히 좌파 정부를 그 자체로 중요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예를 들어 《국제 상황 보고》 2/3호에 실린 헨리 웨버의 글을 보시오.) 따라서 두 가지 핵심 쟁점이 등장했다. 첫째,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 머무는 정부가 “노동자 권력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는가? 둘째, 기성 노동자 정당들이 집권하게 되면 혁명가들의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좌파 정부’나 ‘노동자 정부’란 무엇인가?
단지 노동자 대다수의 표를 얻는다고 해서 기성 노동자 정당(들)이 정부 권력을 얻는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지가 그 정당(들)의 집권을 허용하는 것에도 달려 있다. 달리 말해, 부르주아 정부의 직위들을 노동자 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 지도자들에게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부르주아지가 느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단지 일시적 권력 상실을 막으려고 의회민주주의 신화를 파괴하는 것이 이롭지 않다고 느끼거나, 노동자 운동의 대규모 분출 앞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양보할 것이다.(가령 1918년 독일에서 사회민주당과 독립사회민주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리고 1936년 9월 스페인에서 카바예로 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랬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포기하는 것은 단지 정부 직위들뿐이다. 그들은 국가 기구의 주요 부분들, 경제의 핵심 부분들, 언론의 대부분을 계속 통제한다. 달리 말해, 그들은 자본의 집중이 진척될수록 점점 덜 중요해지는 곳인 국가의 ‘최전방’에서 물러날 뿐이다. 대신에 그들은 국가 기구의 고위층과 경제에서 그들의 권력을 강화한다.
따라서 ‘좌파 정부’는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세워진 혁명적 정부가 아니다. 오히려 좌파 정부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를 온전히 용인한다.
심각한 사회적 위기 때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주요 통제 수단인 국가 기구가 온전하기만 하다면 심지어 상당한 물질적 개혁도 양보할 태세가 돼 있다. 부르주아지는 장기적 지배를 유지할 수단을 보유하는 한 단기적 양보를 할 수 있다. 노동자 운동이 쇠퇴할 때 언제든지 개혁을 되돌리고 새로 공격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국가가 파괴되면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힘에 대항할 도구를 잃게 된다.
따라서 ‘좌파 정부’는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부르주아지의 기구[자본주의적 국가 ― 옮긴이]와 협력을 하든가 아니면 그 기구를 파괴하고 이를 평의회와 시민군 같은 노동자 권력의 구조로 대체하든가. 좌파 정부에게 이 선택은 출범과 거의 동시에 강요된다. 아옌데도 군대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집권할 수 있었다. 어떠한 ‘좌파 정부’라도 국가와 협력하도록 만들기 위한 수많은 조처들을 강요당하게 된다.
따라서 ‘좌파 정부’가 처음부터 기성 국가 기구에 단호하게 대항하지 않는다면 국가 권력을 사실상 내버려두는 꼴이 된다. 예를 들어, 1936년 7월 프랑코의 쿠데타가 부분적으로 패배한 지 두 달 후 스페인 공화국에서 부르주아지는 산업 대부분의 통제력을 잃었다. 국가 기구는 거의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했고 노동자 시민군이 무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정부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거의 무력한 처지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1936년 9월 정부 권력은 ‘좌파’ 사회당원인 라르고 카바예로에게 넘어갈 수 있었다. 카바예로는 부르주아지를 위해 자유주의자들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일을 해냈다. 자신에 대한 대중의 신망을 이용해 국가 기구를 재건한 것이다. 그는 ‘헌법을 준수하는’ 좌파 정부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옛 국가 기구의 잔재에 기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과 다른 노동자 조직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국가를 재건했다. 이 일이 어찌나 잘 이뤄졌던지 1937년 5월에 이르면 국가의 고위층은 카바예로를 자신들의 이익에 훨씬 더 부합하는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카바예로는 자신이 재건한 국가 기구에 의해 쫓겨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옌데도 장군들의 권력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바로 그 장군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1936년 스페인 노동계급에게는 국가를 분쇄할 힘과 자신의 국가를 건설할 의지가 있었다. 그런데 카바예로는 낡은 국가에 기대어 노동자 권력의 기관들(부르주아지가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를 방어한 유일한 기구들)이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았고 그 자신이 대표하는 ‘좌파’ 정치의 구현을 가로막았다.
이렇게 국가 기구와 협조하는 경향은 부르주아 정당들로 이루어진 정부 안에 있어서 주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오로지 기성 노동계급 정당들로만 이뤄진 ‘순수 노동자 정부’조차 여전히 국가를 통해 부르주아지와 사실상 연합하게 될 것이다. 아옌데의 정책은 민중연합 정부 내의 급진당 같은 소규모 부르주아 세력이 결정한 게 아니었다. 아옌데가 국가의 고위층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1970년의 헌법 준수 협정이나, 국가가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될 수 있는 중립적 도구라는 아옌데의 주장(모든 개혁주의자들의 공통된 생각)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좌파의 일부 경향들은 이 분석이 ‘조야’하거나 기계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즉, 현대의 유러코뮤니즘 대중 정당들을 전쟁[제2차세계대전 ― 옮긴이] 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조악하게 등치시키는 주장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변한 것은 무엇인가?
유러코뮤니즘 정당들이 매우 많은 전투적인 당원들로 이뤄진 대중 정당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은 [전쟁 전 ― 옮긴이]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1918년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그랬다. 그러나 그러한 대중 정당들의 지도부는 국가의 복구를 이끌었고 기층 당원들은 당 구조 내부에서 지도부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아내기에는 무력했다. 핵심은 당이 국가와 협력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은 대중적 기반의 유무에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층 당원들이 정부 정책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그 정부가 국가나 부르주아지와 단호히 절연하도록 강제하지 못하면 그 정부는 스페인, 칠레, 독일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기층이 베를링궤르[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마르셰[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미테랑[프랑스 사회당 지도자 – 모두 옮긴이]에게 이를 정말로 강제할 수 있는가?
유럽 전역에서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급속하게 우경화했다. 영국, 독일, 포르투갈에서 노동계급 운동을 공격하고 자본의 지배를 안정시킨 것은 바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었다. 이탈리아 사회당이나 프랑스 사회당도 그렇게 하려고 할 것이다.
공산당의 구실도 비슷할 것이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강령은 명백히 자본주의를 복구하고 국가를 합리화하는 정책이다. 이들은 벌써부터 국가나 부르주아지와 절연할 필요성을 부인한다. 사실, 이들은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대표들과 함께하는 연립정부를 바란다.
더욱이, 공산당들의 지도부는 당 내에서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고 그들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을 서서히 좌측으로 끌어당기겠다는 일 마니페스토의 전략은 현실화될 수 없다. 기껏해야 공산당이 분열해서 가장 전투적인 당원들이 혁명적 경향으로 이끌리는 것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다.
좌파 정부에 들어가 좌파적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일 마니페스토의 전략도 사실 역사적 선례들이 있다. 1936년 카탈루냐의 좌파 정부에도 혁명적 세력이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이었는데, 오늘날 이탈리아의 일 마니페스토보다 지지 기반이 훨씬 넓었고 부르주아 국가를 소비에트로 대체할 필요성도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옹호했다. 그러나 POUM은 좌파 정부에 참여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기층 당원들의 자주적 행동과, 행정 업무 원활화를 위해 부르주아 국가 기구가 안정될 필요성이 충돌할 때마다 POUM은 당원들을 길들이고 노동자 운동의 자율성을 훼손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1936년 11월 그 지도자인 안드레스 닌은 례이더[스페인식 명칭은 레리다 ― 옮긴이] 시의 국가 기구를 대체한 혁명위원회들을 해체하라고 당원들을 설득했다. 6개월 뒤 복구된 국가 기구는 안드레스 닌을 살해하는 일을 공모하기에 이른다.
1936년 스페인의 혁명적 격변 속에서 아나키스트들과 POUM이 겪은 일은 이탈리아 공산당과 일 마니페스토의 지도자들에게도 그대로 일어날 것이다. 국가와 협력하는 진영과 노동자 운동 모두에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는 법이다. 노동자 운동이 성장하면 부르주아 국가와 대결할 수밖에 없다. 혁명가들은 그러한 대결이 벌어질 때 노동계급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계급 안에서 기반을 닦아야 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추진되는 좌파 정부 전략은 그러한 대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좌파 정부 전략은 자본주의 위기 시기의 개혁 추구에 근거한다. 따라서 당연히 불안정할 것이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특권을 되살리라고 요구할 것이다. 나라 경제가 세계 체제 안에 여전히 머무르는 한 경제는 호전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체제는 개혁이 아니라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가 점차 이윤 감소를 염려하면 할수록 경제 회복 방해 행위도 늘어날 것이다.
좌파 정부에 대항해 반자본주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명확한 좌파적 대안이 없다면 우파 대중 운동이 부상할 수 있다.
요컨대, 좌파 정부는 국가 기구와 단호히 절연하지도 노동자 권력으로 가는 길을 닦지도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18년 독일에서는 좌파 정부 자체가 반혁명의 도구가 돼, 기성 국가에 반대하는 스파르타쿠스단의 반란을 진압했다. 칠레에서는 좌파 정부가 국가와 협력하면서 대안적 노동자 권력 기구들을 억압하거나 무력하게 만들었고, 민중연합 정부의 기반이 분열하자 무장한 국가 기구가 기력을 회복해서 민중연합 정부와 운동을 파괴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혹시라도 좌파가 권력을 잡게 되면 기독교민주당과 드골주의자들이 그 기회를 이용해서 자기네 세력을 더 효과적인 부르주아 지배 도구로 재편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노동자 정당들의 자본주의 합리화 시도로 사기를 잃을 즈음이면 그들[기민당이나 드골주의자들 같은 우파 ― 옮긴이]은 다시 기세 등등해져서 나타날 것이다. 이미 프랑스의 시라크가 이러한 반동의 지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네 번째 가능한 결과도 있는데, 그것은 혁명가들이 왼편에서 좌파 정부를 무너뜨리고 노동자 국가를 세우는 경우다. 그러나 그러려면 혁명가들이 이 목표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전략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 옮긴이]의 입장
1922년의 노동자 정부 논쟁은 레닌과 트로츠키가 구체적 문제들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도권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서 공동전선 전술을 받아들이라고 코민테른의 초좌파 공산주의자들을 압박하면서 벌인 투쟁의 결과였다. 공동전선 활동이 공동의 노동자 정부 강령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그 토론으로 쟁점이 선명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토론을 주도한 사람은 지노비예프와 라데크였다. 두 사람 모두 공산당과 사회당 공동 정부 구성을 위한 투쟁은 노동자 공동전선을 옹호하는 선동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들은 그러한 정부가 수립되면 거의 저절로 투쟁 수준이 심화하고 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등장할 것처럼 시사했다.
라데크의 발언은 다음과 같이 무척이나 기계적이었다.
노동자 정부가 등장하면 그 정부는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는 디딤돌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는 아무리 민주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수립된 노동자 정부라도 그런 정부를 참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 당원인 노동자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면 공산당원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부의 바탕이 될 민주주의 원칙들은 정확히 말해 국가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만 적용되는 원칙들이다. 그 틀은 급진적 사상을 가진 장관들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고안된 구조들이다. 더구나 그러한 정부에서 득세하는 세력은 사태의 영향을 받아 생각이 바뀔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투쟁의 김을 빼려고 전력을 다할 개혁주의 관료들이다. 라데크의 도식과 달리 공산당 지도자들이 정부의 구조들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실제로 통과된 결의안은 지노비예프와 라데크의 발언보다 훨씬 더 신중했다. 노동자 정부가 확실히 “대중 투쟁으로 건설”되도록 한다는 엄격한 조건들이 제시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한 정부가 필연적으로 “당장 부르주아지의 완강하기 이를 데 없는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노동자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프롤레타리아를 무장시키는 것이다.”
논쟁이 뒤죽박죽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분적으로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노동자 정당들로만 구성된 정부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트로츠키는 1923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일단 … 노동자 정부라는 … 이 슬로건을 노동자 대다수가 지지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르노델, 주오, 블룸 같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별로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신사 양반들은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어야만 자신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The First Five Year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Vol 2, p173)
안타깝게도 쓰라린 경험을 55년이나 겪고 나서야, 자본주의가 끝장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부르주아지가 참여하지 않는 개혁주의 정부가 가능하고, 흔히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강화하는 데 그런 정부가 이용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노동자 정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보다 먼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무척 예외적이기는 했지만 프롤레타리아의 무장을 가장 기본적인 임무로 삼는 노동자 정부들이 있었다. 가령 1919년 헝가리와 바이에른에서는 부르주아 권력이 사실상 붕괴했고 정부는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슬로건을 기본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노동자 정부가 먼저 탄생했고 나중에야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구조인 노동자 시민군과 노동자 평의회 등을 창설해야 했다.
이 정부들의 주요 인사는 공공연한 혁명가였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부르주아지가 재결집하기 전에 노동자 국가를 새로 창건하는 것이었다. 공산당 지도자 레비네는 제1차 바이에른 소비에트 정부에는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 정부는 노동자를 무장시키고 진정한 노동자 평의회들을 건설할 태세가 돼 있지 않은 중간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비네가 올바르게 주장했듯이 그러한 조처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립을 통해서만이 노동자 정부를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노동자 정부를 더 협소한 기반 위에 세운다면 그것은 반혁명을 부를 것이다.
레닌의 태도도 비슷했다. [1917년 - M21] 10월 혁명 몇 주 전에 레닌은 혁명이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은 소비에트에 기반을 두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밖에 없고 그 정부에서 핵심 직위는 모두 볼셰비키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노동계급 안에서 여전히 소수파라는 것을 인정해 레닌은 만일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이 그러한 정부를 세우려 한다면 볼셰비키는 [노동]계급 앞에서 정부의 실정을 계속 비판하는 ‘충실한 야당’ 노릇을 하겠다고 말했다. 볼셰비키는 그러한 정부의 정책에 책임을 질 수 없으며 그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것이다. 볼셰비키의 과제는 장차 그 정부 대신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세우기 위해, 개혁주의 정당들을 지지하는 대중을 설득해서 볼셰비키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오늘날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유산이지 코민테른 테제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정부에 대한 혁명가들의 전술
좌파 정부가 사회주의로 가는 길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해서 혁명가들이 좌파 정부의 집권 여부에 무관심하지는 않다. 비록 부르주아지가 최전방에서 물러났을 뿐 여전히 경제와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긴 해도 엄청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1940년대 말 이후 공산당과 사회당이 처음으로 정부에 입각하자 노동자 운동의 자신감이(아마 전투성도) 고양됐다. 이렇게 좌파 정부가 당선하면 노동자 운동이 크게 전진할 가능성이 열린다. 대중이 부르주아지의 일시적 혼란을 이용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진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정부는 상황을 진정시키려 할 것이고 부르주아지는 재결집할 것이다. 만일 노동자들이 첫 장벽을 넘어선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장악했다는 환상에 빠져든다면, 다시 말해 노동자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정부에 기댄다면 전진은 대단찮은 개혁에 국한될 것이고, 기력을 회복한 부르주아지는 이 개혁을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역설이 나타난다. 즉, 좌파 정부의 출현이 노동자 운동을 강화시키는 경우는 오직 노동계급이나 적어도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문이 이 정부에 대해 착각하지 않는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운동이 독립적이고 강력할수록 좌파 정부에게서 더 많은 개혁을 얻어낼 수 있다. 노동자 운동이 자신의 고유한 조직 형태들에 의지할수록 노동자 및 그 동맹들과 부르주아지 사이의 세력 균형이 근본적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러나 운동이 국가 권력이라는 구조에 얽매일수록 부르주아 반동의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따라서 혁명가들의 구실은 “좌파 정부 내부에서 그 모순들을 첨예하게 만들겠다고” 좌파 정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입각이야말로 노동자들을 부르주아지에게 얽어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노동자들이 ‘좌파’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착각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부분적·제한적 투쟁들에 모두 개입하고 이를 일반화하고 이끌어야 한다. 설령 이 투쟁들이 좌파 정부의 전략과 충돌한다고 해도 말이다. 요약하자면, 혁명가의 임무는 좌파 정부에 대한 좌파적 야당 세력을 조직하는 것이고, 국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혁명적 좌파가 전술적으로 좌파 정부를 옹호하거나 어쩌면 그 정부의 특정 조처들을 옹호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정부가 우파의 공격을 받거나 부르주아지가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으려고 그 정부를 공격할 때가 그런 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혁명정당이 취해야 하는 근본적 태도가 모호해져서는 안 된다. 즉, 노동계급의 권력 형태들을 발전시키는 전략은 확고해야 한다. 당연히 그 권력 형태들은 정부를 왼편에서 전복하고 이를 노동자 국가로 대체하기 위해, 여전히 존재하는 부르주아 국가 권력과 충돌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혁명가들은 칠레 좌파처럼 노동자와 쁘띠부르주아지 운동과 대립하는 인기 없는 정부 정책을 때때로 옹호하는 듯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 결과, 우파 세력이 이러한 운동을 자기들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절연하기
개혁주의 노동자 정당의 집권 가능성은 특히 부르주아 정당들이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을 때 많은 노동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한 정부는 근본적 사회 변화의 전제 조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혁명가들은 우선 이것이 환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노동자 정당들이 정부 권력을 차지하면서도 국가를 그대로 둔다면 노동자들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둘째, 동시에 많은 노동자들에게 이 환상은 계급의식이 성숙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사회가 노골적인 자본주의 기준에 따라 운영되지 않고 오히려 노동계급이 사회를 지배하게 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혁명가의 임무는 계급의식의 발전에 바탕을 두는 동시에 좌파 정부의 구실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혁명적이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여러분은 좌파 정부가 노동계급에게 이롭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여러분과 함께 투쟁하면서 여러분의 견해가 옳은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여러분의 정치 지도자들을 맹신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의 투쟁에 의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좌파 정부나 노동자 정부라는 슬로건을 신통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슬로건은 우리가 지지하면서도 노동자 투쟁을 발전시킨다는 우리의 전반적 정치에 종속되는 전술적 슬로건이다.
우리의 임무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나서도록 하는 슬로건을 제기하는 것이고, 개혁주의 노동자들과 단결해서 행동하고, 그 투쟁 속에서 ‘좌파 정부’에 대한 착각을 깨는 것이다. 계급의식은 무엇보다 행동 속에서 변한다.
이탈리아의 혁명적 좌파가 “이탈리아 공산당과는 다른 전략”을 말하는 것이 실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전복하려 하지 않고 그 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탈리아 자본주의가 국제수지 위기에 직면하자 그 해결책으로 여신제한과 수입 통제 정책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국제수지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이탈리아가 자본주의 체제와 절연해야 하고, 그 전제조건은 국내의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이탈리아 좌파는 기본적으로 국민국가적 입장을 채택해, 영국, 일본, 독일의 동료 노동자들을 희생시켜서 이탈리아의 위기를 해결하려 한다. 일국이 수입을 통제하면 타국의 실업률이 증가한다.
더 일반적으로 보면 혁명적 좌파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적 전략을 제안해서는 안 되고 자본주의의 전복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위기의 결과들에 맞서 싸우는 전략은 제시할 수 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등에 반대하는 전략들 말이다. 그러한 전략은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가지고 있는 힘을 발휘해서 대중 세력으로서 추진할 수 있다. 그러한 투쟁은 노동자들의 조직과 의식을 강화할 수 있고 자본주의 전복을 향하게 된다. 그러한 운동에서는 혁명가들과 대중적 개혁주의 정당의 지지 기반 사이에 단결이 이뤄지게 된다. 이렇게 부분적 목표를 위한 단결된 행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개혁주의와 절연시킬 수 있다. 노동자들은 그 지도자들이 지지 기반과 자본의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개혁주의와 단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좌파의 생각과 달리 노동자와 개혁주의 사이의 절연은 개혁주의 강령을 더 급진적으로 만들어 제안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노동자들은 [개혁주의적 좌파와 혁명적 좌파가 내놓은 ― 옮긴이] 두 가지 개혁주의적 강령(그 중 AO와 PdUP의 강령은 영국 공산당의 강령보다 우파적이다) 중 개혁주의자들이 제시한 강령을 선택할 것이다. ‘좌파 정부’의 주요 세력은 혁명가들이 아니라 이탈리아 공산당일 것이고 따라서 그 강령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은 공산당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혁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은 그러한 강령을 둘러싼 투쟁에서 단결할 수 없고 서로 논쟁만 벌일 것이다.
이탈리아 좌파는 AO가 겨우 3년 전에 경고한 바로 그 함정에 빠졌다. 당시 AO는 이렇게 말했다.
혁명가들은 정부에 참여하려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조언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개혁주의 전략의 꽁무니를 쫓게 되고 혁명적 과정을 개혁주의자들의 행동에 맡기는 꼴이 된다. 이것은 자체 조직화의 수준과 정치 모두에서 자율적 혁명 전략을 세우려는 노력에 반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조언은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는 근원이 될 것이다.(AO 4차 대회 테제들, p75)
AO가 자신의 원래 전략을 빨리 되찾을수록 이탈리아 좌파가 내부의 혼란을 불식하기 시작할 수 있는 때도 더 빨라질 것이다.
MAR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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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hris Harman & Tim Potter, ‘The worker’s government’, SWP International Discussion Bulletin, No. 4,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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