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 *
1 이러한 태도에서 나타나는 실천적 문제들은 이미 본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지난 호들에서 분석된 바 있다. 2 이 글에서는 아나키스트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예전 논쟁들에 나타난 반反정치적 관점의 기원을 살펴봄으로써 최근의 논쟁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할 것이다. 나는 아나키즘과 고전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역사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개괄함으로써, 오늘날 이 두 경향의 만남이 흔히 논쟁 없이 상대방에 대한 풍자만화만 그리는 양상을 뛰어넘기 바란다. 특히, 나는 아나키즘의 합리적 핵심(‘국가 중심주의’ 정치가 반자본주의 운동에 끼치는 악영향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사실은 이 반反정치적 태도 때문에 약화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러한 약점은 이른바 마르크스의 ‘국가 중심주의’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비판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앞으로 보게 되듯이, 이런 주장은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이론이라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를 가리는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이 이론[고전 마르크스주의 ― 옮긴이]이 아나키즘의 실천적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는 점도 흐리고 만다.
오늘날 반자본주의 운동의 한가운데에는 눈에 띄는 모순이 있다. 운동 내부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운동의 특징들 중 하나, 즉 이 운동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3 이 사실은 다니엘 게랭이 자신의 대표작 《아나키즘》[국역: 하기락 역 ― 옮긴이]에서 제기한 주장을 확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랭은 시끄럽고 격렬한 종파적 언쟁만 제외하면, “아나키즘이야말로 진정으로 사회주의의 동의어다” 하고 주장했다. 4 게다가 우리가 노엄 촘스키의 주장(“일관된 아나키스트는 … 사회주의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종류의 사회주의자, 즉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가 될 것이다”)을 수용한다면, 5 아마도 우리는 아나키즘을 핼 드레이퍼가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6 전통이라고 부른 것의 한 변종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1871년, 각각 당시 국제 사회주의 운동과 아나키즘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대표인 칼 마르크스와 미하일 바쿠닌은 모두 파리 코뮌을 자신들의 사회주의 비전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라며 환영했다.7 게랭은 레닌이 기껏해야 자유주의적 요소들과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결합하려고 노력한 “혼란스러운” 인물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8 한편, 촘스키는 마르크스 사상의 특징이 (일관된 아나키즘과 달리) 초기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와 후기의 ‘권위주의’ 사이의 긴장이라고 주장한다. 촘스키는 이러한 긴장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예컨대 로자 룩셈부르크로 대표되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경향과 특히 레닌과 관련된 국가사회주의 경향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촘스키는 비록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경향의 사상이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즘의 요소들과 수렴된다” 할지라도, 국가사회주의 경향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경향에서 너무나 멀어졌으므로 “만약 좌파에 ‘볼셰비즘’도 포함된다면 나는 단호하게 좌파와 관계를 끊겠다”고 주장한다. 9
그러나 드레이퍼는 레닌이 ‘권위주의적’ 정당을 건설했다는 식의 주장들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 아나키즘을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의 일종으로 본 반면,10 이 집단들이 일반으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더 구체적으로는 ‘레닌주의자들’에게 드러내는 적대감의 특징이기도 하다. 11 대체로 아나키스트들과 자율주의자들은 특히 레닌을 지난 20세기에 시도됐다가 실패한 국가사회주의 전통의 주요 대표자라고 비판하는 습관이 있다. 12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을 맺고 있는 정도에 따라 이 진영 내의 이론적·정치적 차이는 대개 마르크스와 레닌의 관계에 집중된다. 즉, 레닌의 ‘권위주의’가 마르크스와 질적으로 다른지, 아니면 단지 마르크스의 ‘권위주의’를 그 논리적 귀결까지 확장한 것일 뿐인지를 묻는다. 자율주의자들은 레닌으로부터 마르크스를 ‘구출해 내려’ 노력한다면, 아나키스트들은 마르크스가 “국가 공산주의의 옹호자”라는 바쿠닌의 유명한 주장을 거론하며 13 레닌과 마르크스를 모두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비슷한 주장들은 현대의 자율주의·아나키스트 집단들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되며,14 그러나 그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를 스탈린주의와 연관지어 혹평하는 더 광범한 자유주의적 비판과 잘 맞는다. 15 그래서 자신의 두툼한 아나키즘 역사서에서 피터 마셜은 바쿠닌이 마르크스를 “국가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한 것은 “예언자적인” 통찰이었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경험은 마르크스가 아닌 바쿠닌이야말로 “역사의 평결에 의해 정당성이 입증됐음”을 보여 준다고도 주장한다. 16
앞으로 보게 되듯이, 바쿠닌의 마르크스 비판은 “어설프다.”비록 이 주장이 피상적으로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더라도, 바쿠닌의 관점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것이 잘못됐을 뿐 아니라 반동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바쿠닌의 주장은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바쿠닌의 주장은 사회가 민주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 간의 정치적 차이의 핵심에는 바로 이 문제, 즉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능성 문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자유와 권위의 관계, 정치 조직 문제, 자본주의에 대한 윤리적 비판의 성격 등에 대한 [둘 사이의 ― 옮긴이] 이견에도 영향을 미친다. 바쿠닌 사상의 이러한 측면은 아나키즘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개념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것을 보여 준다. 일관되지 않은 인간 본성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 약점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이야말로 가장 일관된 형태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라는 주장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킨다.
17 레닌이야말로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매우 중요한 이론적·정치적 기여를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레닌주의 조직들이 무오류라는 말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자율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은 이런 문제들의 사회적 토대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고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정치를 약화시키기 쉽다.
앞으로 보게 되듯이, 마르크스는 아나키즘의 인간 본성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이론적 도구를 제공했고, 레닌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마르크스의 비전에 담겨 있는 정치적 함의를 가장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촘스키의 주장과 달리 레닌은 결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전통의 반대편에 서 있지 않았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린 레닌의 모습과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구분해서 보면,직접행동과 국가 레닌의 정치에 대한 ‘열린 마르크스주의Open Marxism’의 비판은 아나키즘이나 자율주의의 주장들과 공통점이 있다. ‘열린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존 홀러웨이는 레닌주의적, 즉 민주집중제에 따른 조직 형태와 고전 마르크스주의자가 ‘국가사회주의자’라는 점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주장한다. 홀러웨이는 “정당이라는 조직 형태”가 문제인 이유는 정당이 “국가를 지향하”므로 투쟁 자체를 “약화시킨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그러한 조직 형태들이 성공을 거두더라도, 국가의 특징인 모종의 ‘위계적이고 소외된 권력 관계’를 재생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홀러웨이의 주장이 개혁주의적인 사회주의 정치 조직들에 대한 설명이라면, 그의 주장은 통찰력 있는 주장이다. 그 정당들은 정말로 자신의 활동을 자본주의 국가의 틀 내로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의 진보적 기반 자체를 훼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홀러웨이는 개혁주의 정당과 레닌주의 정당을 뒤섞어 버려, 너무 성급하게 개혁주의 정당 비판에서 레닌주의 정당 거부로 넘어간다. 이 주장의 명백한 약점은 각각의 전략들에 담긴 서로 다른 내용(볼셰비키는 국가 ‘분쇄’를 목표로 삼은 반면에, 개혁주의 정당들은 국가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레닌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나키스트들이 옳다며, “우리가 국가 폐지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아나키스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20 아나키스트들은 레닌주의 정당들과 개혁주의 정당들에 모두 “국가 중심주의”라는 딱지를 붙여서, 국가 차지와 국가 분쇄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못 본 척해, 사회주의에 대한 레닌의 기여의 핵심을 이루는 해방적 요소를 무시한다. 21
이 목표를 성취하려면 레닌주의 정당들은 정치 활동 방식이 개혁주의 조직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개혁주의 조직들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획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들은 노동자들이 구질서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곳, 즉 노동자들의 작업장에 기반을 둬야 한다.22 따라서 “아나키즘은 종종 노동계급 운동의 기회주의적 범죄에 대한 일종의 응보였다. 이 두 흉물들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였다.” 23 그렇다고 해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유를 위한 투쟁에 아나키스트들이 책임감 있게 관여했다는 사실을 일축했다는 말은 아니다. 트로츠키는 파리에서 알고 지내던 한 아나키스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의 아나키즘은 비록 이론적으로는 잘못된 것이었지만, 자본주의 세계의 악행에 대한, 그리고 이 자본주의 세계에 굴복한 사회주의자들이나 신디컬리스트들의 비열한 태도에 대한,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다운 깊은 분노의 표현이었다.” 24 레닌과 트로츠키는 아나키스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공유했던 “자본주의 세계의 악행에 대한 깊은 분노”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아나키즘의 이론이 그 운동의 성공 가능성을 훼손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레닌은 아나키스트들이 개혁주의 정당들의 실천에 대한 비판을 잘못 일반화해 모든 정치 조직 건설 노력을 죄다 거부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흥미롭게도, 아나키즘의 정치적 약점들은 레닌이 자신의 저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개혁주의의 결점이라고 지적한 것들과 비슷했다. 이 저서는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 내의 개혁주의 조류들(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서구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개혁주의 조류보다 훨씬 더 투쟁적인)을 비판하려고 쓴 책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선거 정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 사용자들에 맞선 노동조합 투쟁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레닌이 러시아의 개혁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선거 중심주의 때문이 아니라, 그 개혁주의가 러시아 체제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항하는 수많은 지역적 투쟁들을 더 광범한 전국적 반독재 운동으로 고양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계획을 실현하려면 이 다양한 투쟁들을 서로 연결해서 지역주의의 한계에 도전하는 전국적인 정치 조직이 필요했다. 이 점이 레닌의 유명한 주장, 즉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단순한 노동조합 활동가가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의 기초다.26 레닌은 바로 이런 경향에 맞서고자, 러시아 전역의 모든 지역적 투쟁들을 한데 연결해서 국가에 대한 전반적 공격으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전국적 정치 정당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정치’ 활동을 거부한 아나키스트들에게 레닌은 그들이 정치 문제를 극복하기는커녕 부르주아 정치가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득세할 수 있도록 방치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아나키즘이 노동자 운동 내에서, (개혁주의적인 노동조합운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치에 대한 부정을 가장해 노동계급을 부르주아 정치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27 정반대로) 노동자들은 낡은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정치적·군사적으로(즉, 국가로서) 조직돼야 한다고 주장해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마지막 자취와 결별했을 때였다. 낡은 국가를 인수하자는 게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기구로 대체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자 국가가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국가라 하더라도 (앞으로 보게 되듯이, 이것은 아주 독특한 유형의 국가이며, 이러한 차이를 인정해 루카치는 이 새로운 노동자 권력 기관을 “반反통치anti-government”라고 불렀다) 28 이 국가의 사회적 내용은 자본주의 국가와는 전혀 다르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유지하려고 군사적·이데올로기적 힘을 사용하는 반면에, 노동자 국가는 인간의 필요 충족에 기반을 둔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억제하기 위해서만 자신의 자원을 동원한다. 노동자들은 자기 아래 있는 어떠한 계급도 착취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장애가 점차 극복됨에 따라 노동자 국가는 “시들어 죽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를 자유의 주적主敵으로 사물 취급해, 계급 권력의 형태적 차이든(자유민주주의와 파시스트 독재는 모두 자본주의 국가의 유형들이지만, 이 둘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 권력의 사회적 내용에서 일어난 더 심오한 역사적 변화든(예를 들어 봉건제 국가,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 국가의 차이 29 ) 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제 사물처럼 취급해 자유의 진정한 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바로 이런 경향이 그들이 지닌 혁명적 정치 개념을 훼손하고 있다.
국가 권력에 대한 이러한 도전이 더 확고한 이론적 기반 위에 놓인 것은 [1917년 ― M21] 10월 혁명 1년 전에 레닌이 (그와 마르크스가 “국가를 인수”해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려 했다는 아나키스트들의 주장과는 이 점은 국가를 우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나키스트들의 글에서 아마 가장 분명히 드러나지만, 아나키즘 내에서 훨씬 더 일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나키스트인 벤 프랭크스는 “현대의 계급투쟁을 다룬 아나키즘적 저작에서는 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보편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구성 요소나 특징에 관해서는 명료함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31 사회에서 형성될 관계들을 미리 보여 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직접행동은 아나키즘의 국가 중심주의 반대가 실천으로 나타난 결과이며, 32 다수의 직접행동 형태들은 다수의 아나키즘에 반영돼 있다. 33
아나키스트들에게 혁명 모델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직접행동 개념에 근거한 것이기 쉽다. 직접행동의 형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데, 아나키스트들은 그것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국가 없는)34 실제로 아나키즘은 자의식적으로 반反정치적인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정치를 (관습적 정의처럼) 국가와 관련된 것으로 여기는 생각에 대한 반발로 봐야 가장 정확하다. 우리가 더 폭넓은 정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식의 반정치도 당연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또한 직접행동을 옹호하는 주장들도 (비록 국가 중심적 주장들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정치적 주장들이다.
이런저런 직접행동을 지지하고 그것에 호소하는 일이 비록 좌파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아나키즘에서 이 전술은 단지 활동가들의 무기고에 있는 여러 무기 중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이 전술은 국가를 거부하는 그들의 관점에서 직접 도출된 것이고, 더 전통적인 정치관觀들과 명백히 대치對置된다.35 이 점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의 직접행동들은 대안 사회의 유형을 여러모로 미리 보여 주는, 비국가적 형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생생하게 구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정치관은 아나키스트나 자율주의자들의 조직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의회주의 정당이나 혁명정당은 각각 국가 권력을 잡으려 하든 아니면 패퇴시키려 하든 국가 쪽으로 향했던 반면, 국가의 대안을 미리 보여 주고자 하는 아나키스트들은 이런 방식 자체를 거부하므로 국가에 맞서는 데 필요한 중앙집권적 정당 형태를 거부한다. 그래서 비록 언제나 같은 형태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보기에 위계적이지 않은 “수평적” 조직 형태를 흔히 취한다. 36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자신이 전통적인 국가 중심 정치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정부에 그 조처를 수정하도록 호소하는 정치를 거부하고, 국가 권력에 맞선 물리적 개입을 그 자체가 대안을 미리 보여 주는 방식이라고 찬성하는 직접행동 개념은 모두 자유지상주의 전통에서 직접 생겨났다.”37 볼셰비즘의 구조가 러시아의 독재를 타도한다는 과제에서 비롯했다면, 또 다른 과제에는 또 다른 구조가 필요하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 권력 획득이라는 목표 자체를 거부하므로, 그에 적합한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적어도 훌륭한 레닌주의자들이기는 하다. 토니 클리프가 지적한 것처럼,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필요한 조직 형태는 당면한 “정치적 과제의 성격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이 주장의 문제점 한 가지는 부르주아적 정치관에 기생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치 이론이 국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나키즘은 그것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는 그 관심사를 단지 도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의 정치관은 매우 달랐다. 《자본론》이 단순한 경제학 연구가 아닌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듯이, 마르크스의 정치는 전통적인 정치관에 대한 비판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국가관에서는 국가를 불변하는 인간 본성의 필연적 결과로 여기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를 특정 생산관계와 결부된 역사적 현상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국가를 없애는 비결은 생산관계, 즉 국가를 지탱하는 동시에 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생산관계를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의 자본주의 국가와 관련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가 인간의 자유를 희생시키면서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지원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소외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연대와 사회주의 의식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창출하는 계급투쟁이나 다른 사회운동들과 국가가 어떻게 관련을 맺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문제에 관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일단 투쟁이 충분히 큰 규모에 도달하면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한 조직적 호위병 구실을 하는 국가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어떠한 아래로부터의 운동도 일단 자본주의에 도전할 만큼 충분히 강력해지면 결국 국가와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2005년 1월 세계사회포럼에서 ― 옮긴이] 존 홀러웨이와 논쟁하면서 말했듯이, “문제는 국가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국인들은 최근 런던의 G20 반대 시위에서 [경찰 폭력으로 ― 옮긴이] 이언 톰린슨이 사망한 사건을 통해 바로 이 주장의 진실성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이 사건은 경찰이 단지 정치적 시위자들뿐 아니라 더 광범한 사람들에게도 일상적이고 체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주었다. 이 사건이, 금융 시스템을 떠받치려고 최근에 실시된 전 세계적인 국가 개입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그 국가들의 일관되고도 일상적인 군사력 사용이라는 맥락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자본주의와 국가 체제 간의 본질적인 연관 관계를 상기시켜 준다. 자본주의 국가는 여러 가지 기능들 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정당화와 사회 통제의 도구, 그리고 경제 조절과 군사 경쟁의 도구 기능을 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며,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국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최근의 전쟁들과 경제 구제 조처들이 거둔 성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일들은 세계화의 영향력이 국가 권력을 약화시켰다는 생각을 확실히 잠재웠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유별나게 국가에 의한 통제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회운동이 현 상황의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만큼 충분히 강력해진다면 국가는 그 운동을 억압할 목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른바 국가 중심주의는 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적에 대한 현실적 평가에 근거한 것이다. 노동자 운동이 중앙집권적 군사력을 가진 상대와 싸워 이기려면 노동자 운동에도 중앙집권적 군사력이 필요하다. 트로츠키가 쓴 것처럼, “권력 장악을 포기하는 것은 그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 즉 착취자들에게 그것을 자발적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역설이게도,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계급투쟁이 매우 높이 고양된 순간들마다 트로츠키의 이 말과 유사한 결론에 이끌렸지만, 그런 시점에조차 부르주아 국가와 노동자 국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그들의 태도가 치명적이었음이 입증됐다. 예를 들어 1936년 스페인에서 주요 아나키즘 단체들은 프랑코의 파시스트들에 맞선 군사적 행동이 단일한 구조 아래 조율되도록 공화국 정부에 가담해야 한다는 압력을 강하게 받았다. 이 정책은 군사적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했고, 그 때문에 불행히도 아나키스트들은 부르주아 국가의 최선두에 서게 됐다. 그런데, 자신들이 이끌고 있던 (그리고 당시 파시즘을 물리칠 가장 강력한 대안이었던) 사회혁명이 그 국가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정부 내에서 부르주아적 파트너들과 단결을 유지할 필요성과 혁명에 필요한 사항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아나키스트들의 혁명적 에너지는 약화됐다. 그와는 반대로, 1917년 러시아에서 유사한 상황에 처했던 볼셰비키는 원조 파시스트인 코르닐로프 세력에 대항해 케렌스키의 부르주아 정부를 방어했지만 부르주아 정부에 가담하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독립성을 유지했다.
41 혁명적 실천을 대하는 이 두 가지 태도는 매우 다른 결과를 낳았다. 스페인 아나키스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무력화하는 데 일조했지만,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와 ‘공동전선’을 구축한 덕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었고 10월의 사회주의 혁명(볼셰비키가 케렌스키 정부 전복을 지도하고 그것을 소비에트 지배로 대체한 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1917년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와 1936년 바르셀로나의 아나키스트들은 미사여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아래로부터의 혁명운동의 ‘전위’를 조직했고, 이 둘 모두 반혁명에 맞서 단결된 군사적 대항 세력 건설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볼셰비키는 노동자 국가와 부르주아 국가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노동자 운동을 강화할 단결 방식과 운동을 약화시킬 단결 방식 사이의 차이점을 더 잘 개념화할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스페인 아나키스트들은 마찬가지로 진정한 단결의 필요성을 인식했을 때, 아나키즘의 일면적 국가관 때문에 결국 국가 내 부르주아적 파트너들과 단결할 필요성에 혁명운동을 종속시키는 재앙적 노선을 따르고 말았다. 42
이 기간 내내 볼셰비키는 코르닐로프를 물리칠 일관되고 가장 강력한 대안을 노동자 평의회(즉, 소비에트)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렌스키는 20년 후 스페인판 케렌스키들[스페인 공화국 주도 세력인 공산당·사회당·급진당 등을 가리킨다 ― 옮긴이]이 그랬듯이 이 노동자 평의회를 짓밟으려 했지만, 볼셰비키는 이것을 새로운 노동자 국가의 맹아로 보았다.43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정치의 예시적 측면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예시의 요소가 제도의 형태로, 그리고 노동계급의 자기조직과 연대의 문화로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또한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내부적으로 분열시키는 동시에, 외부적으로도 다른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집단들과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특히) 레닌은 사회주의 정치에는 이러한 분리에 맞서 싸우는 것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점은 (의식 수준이) 비교적 균질한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집단인 혁명정당과 그 시대의 계급의식 수준에 따라 다소간 분열돼 있는 (전체) 노동계급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당과 계급 간 구분은 확고한 엘리트와 하급 보병 사이의 구분이 아니라, 노동계급 내에 다양한 수준의 계급의식이 존재한다(파업파괴자부터 혁명가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는 천차만별의 의식 수준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혁명정당의 목적은 노동계급의 대다수가 사회주의 의식을 획득하도록 돕는 것, 그리고 노동계급 외부의 다른 집단들에게 바람직한 해방의 모델을 제공하는 노동자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혁명정당이 이 과업에 성공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해산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 냄을 뜻한다. 사회주의는 노동계급 내의 분리, 그리고 노동계급과 다른 피억압·피착취 집단들 사이의 분리를 극복할 때 성취될 것이므로, 성숙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더는 혁명정당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혁명정당은 그 본질상 다른 연대 형태들과 달리 사회주의를 미리 보여 주지 못한다. 혁명정당은 오히려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서 (필요한, 일시적인) 도구일 뿐이다. 44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심이 이른바 ‘국가 중심주의’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면, 그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의 기반으로서 노동자 평의회를 강조하는 것은 예시豫示, prefigurative 정치[한 운동단체가 추구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 단체 내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조직 방식이나 사회관계를 가리킨다 — 옮긴이]와 마르크스의 이른바 도구적 정치관을 대립시키는 것이 지나친 단순화임을 보여 준다.45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고 아나키스트들은 다른 한 가지 전망(직접행동)만을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체제를 바꿀 잠재력이 있는 곳, 즉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또한 이 점을 뛰어넘어서, 특정 정세에서 특정 전술들을 구체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그들은 아주 간단한 기준, 즉 그 전술들이 노동계급과 다른 피억압·피착취 집단의 자주적 행동과 자신감, 정치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그 전술들의 적용 가능성을 판단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한편으로는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행동에 나설 때, 이것은 개혁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두 전술 가운데 어느 것도 좌파가 직면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분명히 이 둘 모두 엘리트주의의 한 변종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의회주의 정치도 직접행동도 혁명 정치의 최고봉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둘 중 어느 것도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경우 모두에서 활동가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나란히 함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신해서 행동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이 점에서 보면, 직접행동을 교리처럼 여기며 그에 전념하는 것은 개혁주의적 국가 중심주의 문제의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의회주의적 엘리트주의의 이면일 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드레이퍼는 아나키즘이 급진적인 말은 많이 하지만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의 일종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특별히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엘리트주의의 위험에서 면제돼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위험은 흔히 다른 원인에서 비롯한다. 특히 노동자 투쟁이 저조한 시기에는 그 투쟁에서 수혈을 받는 단체들은 종파주의에 빠지기 쉽다. 46 아나키즘 단체들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면, 직접행동을 유일하게 급진적인 전술로 선택해 구체화하는(프랭크스는 이 점을 아주 잘 드러내어 “전체의 작은 일부가 그 전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47 ) 것은, 엘리트주의와 대리주의(활동가들이 광범한 사회운동 대신에 자신들의 활동을 대용품으로 채택하는 경향) 경향에 도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경향을 강화하기 쉽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약점은 아나키즘과 연관된, 겉보기에 놀랄 만한 또 다른 문제, 즉 아나키즘은 더 폭넓은 민주주의 개념을 포용하는 것에 관해 침묵해 버린다는 문제를 조명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의 핵심 활동(다수를 사회주의로 설득하려는 노력)으로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주요 원칙은 신축성이다. 진정한 국가 ‘사회주의자들’은 한 가지 전망(봉기를 일으켜서든 의회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든 정부를 바꾸자는 전망)만을48 하지만 고든이 뒤이어 지적하듯이, 아나키즘은 국가에 맞서서 개인의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허용하므로 아나키즘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49 이와 비슷하게, 조지 우드콕도 이렇게 주장했다. “아나키즘을 극단적 형태의 민주주의로 여기는 것보다 더 잘못된 개념도 없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주권을 옹호한다. 아나키즘은 개인의 주권을 옹호한다.” 50 좀 더 최근에, 루스 키너는 민주주의에 관한 한, 아나키즘에는 만장일치에 대한 욕망 외에는 이렇다 할 내용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만장일치라는 것은, 키너가 잘 지적하듯이, 조 프리먼이 1960년대 미국의 아나키즘적 페미니스트 운동을 분석하며 지적한 유명한 특징 ― 그가 구조 없는 독재 51 라고 부른 것, 즉 구조 없는 집단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구성원들(보통은 중간계급에 속한)이 그 집단 내부에서 사실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 ― 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에 취약하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내놓은 요구들이 마르크스주의가 국가에 관심을 쏟는 이유의 한 측면이라면, 다른 측면은 민주주의 문제다. 아나키스트들과의 논쟁을 보면, 이 문제에는 서로 다른 두 측면 ― 혁명 조직 내의 민주주의와 (혁명 전과 후) 사회의 민주주의 ― 이 있다. 아나키즘의 반권위주의는 언뜻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뜻하는 듯하다. 실제로 아나키즘 이론가인 우리 고든[인디미디어에 관여하는 이스라엘 아나키스트 ― 옮긴이]은 이렇게 말했다. “활동가들의 집단적 절차 관행을 활성화하는 몇 가지 가치들과 민주주의 이론의 더욱 급진적인 목표의 특징적 가치들 사이에는 주요한 유사점들이 있다.”52 ) 혁명 조직을 건설하는 취지는 부분적으로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함이다. 즉, 지도부와 정책은 최상의 노선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바뀔 수 있다. 사실, 건강한 혁명 조직들은 광범하고 다양한 운동들에서 개인들을 한데 모으게 되므로, 이 조직들은 운동 전체와 특정한 지역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놓고 (개인들이) 논쟁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이러한 논쟁은 다양한 운동들을 통합해서 자본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더 폭넓은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그를 통해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울 수 있게 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아 정당이 이 교훈들을 구체적으로 운동 내에 관철시킬 수 있게끔 해 주는 매우 귀중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논쟁은 행동을 위한 것이므로 언젠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결정이 날카로운 논쟁을 통해 도달하는 합의(이는 더디기 이를 데 없는 합의와는 사뭇 다른 종류의 합의다)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논쟁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 실시되는 투표에 의한 것이든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주적이고 따라서 중앙집권적인(만일 투표가 의미 있는 것이려면, 다수의 의견이 관철될 수 있어야 한다53 오히려 그러한 문제들은 사회주의 활동에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특징이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떠한 형태의 급진적 정치 조직(아나키즘 조직들과 자율주의 조직들까지도 포함해서)에도 공통으로 존재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이 미래 사회 상을 미리 보여 주는 형태가 아니라 투쟁의 무기라는 사실은, 그 정당의 내부 구조 문제가 효과적인 행동 수행력 문제보다 덜 중요하다는 점을 함의한다. 그럼에도 효과적인 행동을 하려면 또한 열린 논쟁이 필요하므로 내부의 민주주의는 이런 조직들에 꼭 필요한 특징(적어도 외부의 제약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이다. 논쟁과 행동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은 이런 종류의 구조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불행하게도, 합의 추구라는 아나키즘의 대안은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에서만 가능하며, 그러한 집단이 더 일반적으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의견 분열에 면역이 돼 있을 때, 즉 그들이 이미 종파이거나 또는 종파로 변질될 때만 거듭 되풀이될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이 지적한 문제들이 민주집중제 조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프랭크스는 레닌주의 정당들 내의 종파주의 경향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조직들의 유감스럽게 우스꽝스런 목록을 제시한다.)인간 본성과 사회주의
54 이 말은 찬찬히 생각해 보면, 스탈린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선견지명 있는 경고라기보다는 사회주의뿐 아니라 민주적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것 자체가 일절 불가능하다는 함의를 가진 매우 의미심장한 진술이다. 바쿠닌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아나키즘이 사회주의의 자본주의 비판과 자유주의의 사회주의 비판을 종합한 것이라는 자주 인용되는 주장을 검토해 보는 게 유용할 것이다. 55
민주주의 문제는 아나키즘의 더 근본적인 문제, 즉 아나키즘의 인간 본성론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주의 자체에 관하여, 19세기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은 “보통선거권은 반혁명”이라고 불평했고, 비슷한 사상을 가진 러시아의 바쿠닌은 “모든 정치 조직은 결국 자유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주장하면서 민주주의의 거부를 밝혔다.56 사람들이 본성상 이기적이라는 자유주의의 가정을 따르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소외된 권력(국가) 외에 다른 사회조직을 생각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때 국가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필수불가결한 보증인인 동시에 그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에게 국가는 토머스 페인의 적절한 표현처럼 “필요악”이다! 어떤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인간 본성에 대한 더 낙관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이 관점을 급진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아나키즘은, 어떤 형태를 띠든 악惡일 수밖에 없는 국가가 실제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러나 아나키즘이 민주주의 논의에 침묵하는 것은 민주적인 정치 구조는 결국 국가가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유의 부정”일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관점을 반영한다.
그 주장이 겉보기에는 매력적이지만, 그러한 종합에는 근본적 어려움이 있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매우 상이한 정치적 방향을 가리키는 매우 다른 인간 본성론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그 분석의 출발점으로 원자화되고 이기적인 개인을 가정하는 반면, 사회주의, 적어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인간 개성의 사회적 성격을 인정한다.57 그러나 데이비드 몰런드가 고전적 아나키즘의 인간 본성론을 철저히 분석하면서 주장하듯이, 사회적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성공적으로 종합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인간 본성론을 한데 모아 어색한 조합, 즉 자유주의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개념과 좀더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을 한데 묶어 일반화함으로써 “인간 본성 문제에 대해 해결 불가능한 교착 상태”를 낳아 버린 어색한 조합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58 이와 반대로 마르크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종류에 의해 인간의 개성이 형성된다고 인식했으므로 현대 개인주의의 사회적·역사적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고, 민주화가 반드시 새로운 형태의 부자유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개인의 자유의 영역과 본질을 확장시킨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59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조직이 권위를 함축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바쿠닌과 같은 의견이었지만, 사회 자체가 곧 조직이므로 권위가 없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모든 아나키스트들이 이처럼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단순한 인간 본성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비록 이런 인간 본성론이 지난 세기에 미국의 아나키즘 내에서는 지배적인 목소리였지만, 유럽의 아나키즘은 훨씬 더 사회적인 인간 본성 개념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프루동과 바쿠닌, 특히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연대의 정신으로 뒷받침된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자유가 공동체적 개인이라는 관념을 통해 매개되는 유기적 통일체로 인식되는 사회에 대한 폭넓은 신념”을 분명히 말한 바 있다.60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어떤 사회에 대해 던지는 주요 질문은 ‘그것의 특징은 모종의 권위인가(그 대답은 항상 ‘그렇다’일 것이다)’가 아니라, ‘권위가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그것을 통제하고 있는가’다. 헤르버트 마르쿠제가 말했듯이, 마르크스는 권위의 종말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권위의 완전한 민주화를 기대한 것이다. 61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권위에 대항한 투쟁이라기보다는 비민주적 형태의 권위를 타파하고 그것을 민주적 대안으로 바꾸려는 투쟁이다. 자유주의와 아나키즘은 인간성의 사회적 측면을 국가라는 소외된 형태 외의 다른 것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반면에,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오직 집단적 조직을 통해서만 자신들을 해방시킬 수 있으므로 그들의 연대는 자신들의 소외에 대한 구체적인 민주적 대안을 지향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엥겔스는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장차 사회 혁명의 결과로 정치적 국가, 그리고 그와 함께 정치적 권위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이것이 곧 사회 조직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정치적 성격(소외된)을 잃게 되고 그 대신에 행정 기능의 민주적 통제라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사회 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진화하므로 사회 자체가 역사적 성격을 갖는다. 우리가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려 한다면, 우리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그 사회가 나타내는 구체적 성격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선사시대의 수렵채집자들에게 사회는 개인이 속한 작은 집단이었을 것이다. 그와 달리, 오늘날 우리는 국제 분업이 특징인 세계 속에 살고 있으므로 우리의 사회는 지구 전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문제들의 해결책은 전 지구적인 것이다. 지역적 활동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투쟁에서 꼭 필요한 요소지만, 최종적 성공은 오직 전 지구적 규모에서 사회를 민주화해야만 얻을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이 마르크스의 또 다른 범죄라고 여긴 것, 즉 중앙집권제의 물질적 기초는 국가 중심주의를 매우 좋아했다는 점이 아니라 바로 이 점이었다.63 를 반박한다. 마르크스는 정치 활동 초기부터 줄곧 정반대를 주장해 왔다. 즉, 해방을 위한 투쟁의 성공은 단지 정부를 바꾸는 것으로는 이뤄질 수 없고, 훨씬 더 근본적인 사회운동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중앙집권제가 사회의 물질적 변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나키즘의 또 다른 신화, 즉 마르크스는 “정부 형태를 바꾸기만 하면, 또는 사회주의자들이 정부를 통제하기만 하면” 자본주의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신화파리 코뮌
마르크스가 정부 교체만으로 충분히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신화에 합리적 핵심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 요구 제기 문제, 즉 정부에 개혁들을 요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제1인터내셔널의 아나키스트들과 벌인 논쟁으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64 그래서 영국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은 마르크스는 개혁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에(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개혁을 획득하고 새로운 입법을 요구하며 행동했을 때 그들은 “정부 권력을 강화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억압하는 데 사용됐던 그 권력을 그들 자신의 대리 기관으로 변모시켰다”고 주장했다 65 ), 그를 비판한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의 위의 말은 그를 개혁주의자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지만, 66 그런 말들은 그가 노동계급 내에서 사회주의 의식을 발전시키고 강화하려고 노력한 과정의 일부로 봐야 한다. 콜린스와 아브람스키가 제1인터내셔널에 대한 중대한 연구에서 지적했듯이, 마르크스는 “노동조합 투쟁은 노동자들이 완전한 해방을 향해 가는 도중에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필요한 국면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67 국가에 대한 요구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었고, 마르크스는 노동시간 단축 같은 개혁들을 그 자체로도 이로운 것이고, 또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장기간의 사회주의적 변화 과정의 일부라며 지지했다.
프루동과 바쿠닌의 인간 본성론에서 추론해 보면, 두 사람은 모두 국가와 정부의 소멸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조화가 존재한다고 믿었다.68 바쿠닌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가의 정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세력을 조직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69 그리고 피터 마셜 같은 아나키스트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이 코뮌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례로 받아들인 것을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일축했지만, 70 실제로 코뮌을 개념화하는 데서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아나키즘이다.
이 사실은 파리 코뮌에 대한 마르크스 자신의 언급에 매우 명백히 나타나 있다. 아마 마르크스의 파리 코뮌 분석이 그를 ‘국가사회주의자’라고 보는 신화를 날려버렸으므로, 그 분석은 마르크스의 정치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선입견과도 잘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이 단순히 기존의 국가 기구를 인수해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없음”을 보여 준 생생한 사례가 코뮌이었다고 주장했는데도71 또는 더 단순하게 말하면 노동계급의 지배라고 72 설명했다. 그리고 비록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상황을 노동자 국가로 묘사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국가”라는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몇 년 후 엥겔스가 “코뮌을 겪은 후에는, 국가에 관한 모든 헛소리는 그만해야 한다. 왜냐하면 코뮌은 더는 진정한 의미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73 고 논평했듯이 말이다. 노동자 국가는 이전의 모든 국가들과 달리 소수의 지배가 아닌 다수의 지배를 나타내므로, 더는 착취적 사회 관계들을 유지하는 전문적 강압 기구가 아니다. 그리고 비록 코뮌이 이 점을 보여 줄 만큼 충분히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이러한 구조조차 부르주아 반혁명의 위협이 줄어들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코뮌을 분석하면서, 비록 국가 권력의 낡은 구조가 (적어도 파리에서는) 분쇄됐지만, 노동자들이 그 낡은 구조 대신 세운 것은 권위의 부정이 아닌 자신들의 지배였다고 지적했다. 즉, 코뮌은 파리에서 (겉으로만 그럴듯한 의회 권력이 아니라) 진정한 권력을 가진 “노동계급 정부”였다. 그는 바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74 사실에 비춰 보면, 그가 어떻게 코뮌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크로포트킨은 몇 년 후에 바쿠닌과 매우 유사한 입장에서, 코뮌의 주요 실패 요인은 대의제 구조를 받아들인 탓에 의회제 정부의 전형적인 해악들을 재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크로포트킨은 코뮌의 약점이 그 지도자들이 아니라 코뮌이 받아들인 ‘체제’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75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보면, 크로포트킨이 바쿠닌보다 더 일관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즉, 코뮌은 대의제 정부 형태를 유지했고, 따라서 아나키스트가 반대해야 할 또 다른 사례, 즉 국가에 불과했다. 이러한 혼합에 마르크스가 덧붙인 것은 ‘국가 중심주의’ 옹호가 아니라, 비록 코뮌이 국가와 정부 형태의 여러 측면들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단 새로운 계급이 권력을 잡자 그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인식이었다. 혁명 문제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또 다른 신화, 즉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자코뱅주의의 일종이라는 신화도 날려버린다.
반대로, 바쿠닌이 자신을 “모든 정부와 모든 국가 권력의” 적이라고 선언했던자코뱅주의, 블랑키주의, 마르크스주의
76 마르크스의 이른바 권력 의지에 관한 바쿠닌의 헛소리는 한 쪽으로 제쳐 놓더라도, 자코뱅주의 혐의는 중요한 것이며 논박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정부 교체만으로도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국가 중심주의자였다는 주장은, 그가 프랑스 혁명의 가장 극단적인 국면에서 활동한 자코뱅주의 혁명가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혐의와 관계 있다. 예를 들어, 바쿠닌은 《국가 중심주의와 아나키Statism and Anarchy》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마르크스는) 교육에 의해서든 타고난 천성에 의해서든 자코뱅주의자이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상은 정치적 독재다” 하고 주장했다.77 로베스피에르는 실제로 자신의 사회적 기반의 제한적 성격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비록 그가 이론적으로 적절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공익이 “개인들의 단점과 결함”을 바로잡는 교정책으로서 사회에 강요돼야 한다고 믿게 됐다. 78 그래서 민주주의를 열렬히 옹호했음에도 로베스피에르는 “민주주의가 위로부터 지도돼야 한다”는 생각뿐 아니라 “민중의 자발적·혁명적 열정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거의 무조건 고수했다. 79 공식적으로는 민주적인 그의 정치와 그의 제한된 사회적 지지 기반 사이의 바로 이 모순 때문에 혁명에 대한 외부의 군사 개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포정치가 생겨났다.
1793년부터 1794년까지 1년 동안, 자코뱅 당원들은 프랑스 혁명의 최전선에 있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지도를 받던 이들은 정부를 이끄는 동안 모순된 처지에 놓여 있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루소가 말한 “일반 의지”의 도구로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어떻게 공익(공동선)이 존재할 수 있으며 어떻게 대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결코 적절하게 다룰 수 없었다. 사실, 자코뱅 당원들은 일반 의지를 대표하기는커녕 이른바 상퀼로트라는 도시 “소상인들, 수공업자들(장인과 직인을 모두 포함해서), 하인들, 날품팔이들”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잡았으며, 또한 그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대변했다.80 레닌에 대한 이와 같은 언급은 “프롤레타리아의 조직과 완전히 일체감을 느끼는 자코뱅주의자, 즉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자각한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다”라는 81 레닌의 유명한 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구절은 레닌이 적어도 자코뱅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로, 그리고 그 때문에 러시아 혁명도 프랑스 혁명처럼 공포정치로 끝날 운명이었다는 증거로 자주 인용돼 왔다. 그러나 레닌이 그렇게 쓴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자코뱅주의를 먼저 거론한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혁명 정치를 전면 폐기하고자 했던 개혁주의자들이었음을, 그리고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코뱅 당원들처럼, 그러나 사뭇 다른 상황에서) 지배 질서에 가장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82
다니엘 게랭은 비록 혁명이 반드시 독재로 타락하고 만다는 생각을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자신의 정치에 내재한 “코뮌적” 측면과 “자코뱅적” 측면의 긴장 관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레닌은 자코뱅의 길을 따라 훨씬 더 멀리까지 나아갔다고 생각했다.83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신의 초기 저술들에서 이미 헤겔의 자코뱅주의 비판에 의지했다. 헤겔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국민 “성향과 종교”의 사전 변화에 근거하지 않는 비전을 위에서 아래로 사회에 강요하려는 시도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보았다. 84
매우 열렬한 마르크스 연구자이던 레닌에게, 자코뱅주의가 출현한 사회 조건과 현대 사회주의의 출현을 뒷받침한 사회 조건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기본이었을 것이다. 미셸 뢰비는 마르크스가 분명히 로베스피에르의 “역사적 위대함과 혁명적 에너지”를 존경했지만, 자코뱅주의를 “사회주의 혁명 방식의 모델이나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히 거부했다는 점을 지적한다.85 오히려 그는 혁명 지도부와 민중 사이의 이 간극은 혁명의 일반적 특징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반영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정치와 자코뱅주의의 질적 차이를 지적하면서 부르주아 혁명과 현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구분했다. 86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혁명이 막 생겨나고 있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기존의 전前자본주의적 국가 사이의 모순이 발전해 일어났고 그 혁명이 성공하면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제거됐다고 보았다. 비록 이 혁명들은 일반으로 전근대적 위계질서와의 진보적 단절이라는 특징이 있었지만, 한 지배계급으로부터 다른 지배계급으로의 권력 이양이라는 특징도 있어서, 그 지도부와 민중 사이에 모순 관계를 포함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같은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에는 어떤 형태의 대중 행동도 없었다. 반대로, 영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일어난 ‘아래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은 하층 계급의 참여를 통해 승리했지만, 결국은 [독일 사례와 ― 옮긴이] 마찬가지로 빈민층을 권력에서 배제했다. 이와 달리,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을 위해 일으키므로(“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이뤄 내야 한다” 87 ) 그 혁명의 실행이나 결과 모두 질적으로 훨씬 더 민주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인정했지만, 자코뱅주의가 혁명적 프로젝트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88 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동시에, 더 일반적으로는 사회 전체에서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헤게모니가 관철되도록 투쟁해야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혁명 전략의 핵심은 새로운 사회세력의 출현(자본주의의 성장, 그리고 그와 함께 현대 노동계급의 성장) 위에 세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마르크스의 혁명 전략은 더 나은 세계를 실현하려 했던 이전의 어떠한 (위로부터의, 국가 중심주의의) 노력들과도 다르며, 왜 혁명가들이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게 그토록 중요하다고 마르크스가 생각했는지를 설명하는 데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사회주의 혁명이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면,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상황이 다른 혁명적 순간들을 만들어 낸 조건들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차이에 대한 마르크스의 구분은, 그와 로베스피에르 사이에 끊어지지 않은 궤적이 있다는 주장에 담긴 근본적 문제점을 보여 준다. 로베스피에르와 달리, 마르크스는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익(공동선)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직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만이 (다른 계급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소외를 해결할 대안 체제를 지향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현대 사회주의가 오직 현대 노동계급이 출현한 후에야 가능해졌다면, 이 가능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운동 내부에서 지도력을 획득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이 적어도 두 측면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내에서 사회주의의 헤게모니89 엥겔스는 파리 코뮌 이후에 블랑키주의자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사회주의 모델은 계급투쟁이나 사회주의 자체의 역사적 기초 등에 대한 적절한 설명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므로, 그들은 “정서적으로만 사회주의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드러나지 않은 자코뱅주의자라는 주장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엥겔스는 혁명이 “소수 혁명가들이 감행하는 기습”이어야 한다는 블랑키의 제안을 거부했고, 블랑키주의자들의 (자코뱅주의적) 방식은 ‘독재’로 끝날 ‘한물간’ 혁명 모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90
마르크스와 달리, 자코뱅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회주의자들도 19세기에 있었다. 마르크스는 그들의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사회주의자 블랑키는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행동하는 소수 혁명가 엘리트 집단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아나키즘과 블랑키주의의 차이를 초월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아나키즘처럼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블랑키주의처럼 낡은 국가를 전복하는 데서 사회주의자들의 지도력이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사회주의적 지도력이 현실 운동에 위로부터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 운동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이다. 트로츠키가 주장했듯이, 지도와 자발성을 대립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동일한 동전의 양면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92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개념은 마르크스주의를 온갖 형태의 국가사회주의뿐 아니라 아나키즘의 국가 중심주의 반대와도 구분짓게 하는 결정적 특징이다. 마르크스와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아나키스트들은 목표는 똑같지만 수단이 다를 뿐이라는 몇몇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93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아나키즘 이론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사회적 권위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들처럼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기 위해 싸우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진보를 위해서는 때때로 국가의 행동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미국에서 보건의료 개혁에 반대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국가 중심주의 반대 미사여구들을 떠올려 보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주적’은 바로 국가라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비역사적인지” 알 수 있다. 94
혁명 문제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5년에 정교하게 발전시킨 일반 모델의 한 측면을 완성시켰다. 그들은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배계급을 타도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그 계급[노동계급 ― 옮긴이]은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오래전부터 눌어붙은 오물을 모두 떨쳐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적합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아나키즘 이론의 자유주의적 측면은 자유와 권위의 관계를 제로섬 관계로 묘사하는 반면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가 사회 조직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오직 모종의 조직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유와 권위는 서로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들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즉, 권위가 민주화될 때 자유가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우리의 목표가 권위의 한 형태라면, 그 반대는 권위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비민주적인 권위다.
95 바쿠닌의 유명한 예측을 폭로한다. 이미 봤듯이,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96 그리고 (매우 이상하게도)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도 97 바쿠닌의 이 말을 관료화의 위험성을 설득력 있게 경고한 말로 인용해 왔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로베르트 미헬스[막스 베버의 제자로 20세기 초와 1930년대에 저술했던 독일 사회학자. 사회민주주의자였다가 제1차세계대전 후 파시스트로 전향했다. 모든 조직은 어떻게 시작했든 결국 과두제로 끝난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 옮긴이]의 유명한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말의 선구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필연적으로 지배 엘리트들을 만들어 낸다. 98 던컨 핼러스는 이런 식의 주장이 민주집중제 조직에 적용되면 “세속화한 원죄설” 99 비슷하게 돼 버린다고 논평한다. 즉, 원죄설이 우리에게 고난으로 가득 찬 삶을 선고하듯이, 모든 조직이 자유를 부정한다는 아나키즘 사상에서는 자본주의의 진보적 대안에 대한 희망을 별로 찾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나키즘 사상의 형식적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주장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의 국가는 “매우 소수의 신종 귀족이 대중을 상대로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가 되고 말 것”이라고 했던결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이러한 목표들을 위해 서로 다른 수단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실은 그들의 목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봤듯이, 아나키스트들이 국가를 뛰어넘어 자연스럽고 초역사적인 사회적 조화를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회관계의 출현을 바탕으로 한 사회의 완전한 민주화로 여긴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직접행동을 통해 자유를 미리 보여 주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내에서, 그리고 (반자본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노동계급 쪽을 향하며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한다. 직접행동에는 느슨한 연방제적 조직 구조만 필요하지만, 국가에 맞서 사회를 민주화하려는 투쟁에는 자원을 집중시켜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도 중앙집권적인 전투 조직이 필요하다. 아나키스트들은 이것이 상명하달식 지도부 모델을 수반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정당이 성공하려면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대변해야 할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운동의 편협한 부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지도부 모델은, 클리프가 주장했듯이, 모종의 관리통제주의나 지적 엘리트주의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투쟁 속의 동지 관계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혁명정당은 외부에 있는 노동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혁명정당은] 전술을 난데없이 만들어 내서는 안 되며, 대중운동의 경험에서 배워서 일반화하는 것을 으뜸가는 임무로 삼아야 한다. …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근거해 사회를 재편하려는 노동계급의 본능적 충동을 의식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101 최근의 반자본주의자들처럼, 신디컬리스트들은 “의회주의의 특징인 타협과 기회주의 형태의 ‘정치’를 극도로 경멸했다.” 102 부활한 마르크스주의 운동도 비록 신디컬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개혁주의적 좌파의 기회주의 정치를 혐오했지만, 마르크스의 폭넓은 정치 개념을 재활용함으로써 신디컬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와 룩셈부르크의 저작들에서 영감을 얻은 이 운동은 특히 레닌의 1917년 저작인 《국가와 혁명》에서 최고의 정치적 표현을 발견했다. 《국가와 혁명》은 국제 사회주의 운동이 개혁주의로 전락한 것의 지적 기원을 마르크스의 국가 비판이 제2인터내셔널 내에서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에서 찾았다.
클리프는 이 지도부 모델을 아무 근거 없이 도출해 내지 않았다. 그것은 제1차세계대전 종전 무렵 잠시 마르크스주의가 부활했던 것을 연구해서 얻은 교훈이었다. 이 운동은 전쟁 전에 개혁주의에 대한 반발로 노동자 운동 내에 나타났던 신디컬리즘 조류와 유사한 뿌리에서 나왔다. 신디컬리즘은 아래로부터 계급투쟁이 부활한 것의 뒷받침을 받았고, 부르주아 정치의 대안으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개념과 함께 프루동과 바쿠닌의 직접행동 개념을 원용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궤적은 20세기 초반의 이 부활한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즘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모두 보여 준다. 그는 1919~20년에 토리노에서 〈신질서L’Ordine Nuovo〉라는 사회주의 신문을 발행한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이 신디컬리스트처럼 행동했다는 비판에 ‘그렇다. 신디컬리스트들처럼,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 내에서 점차 득세하는 개혁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맞서서 우리 그룹은 “추상적” 지도력 모델을 제공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정말로 자발적인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사회주의의 기반을 두려 했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약점(그람시가 보기에 신디컬리즘의 더 일반적인 약점)은 〈신질서〉가 토리노 노동자들과 남부 이탈리아 농민들의 요구를 연결하여, 이탈리아 국가를 전복하고 노동자 평의회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104 이 목표와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가 추구했던 레닌주의적 수단은 ‘국가사회주의’라는 딱지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람시는 〈신질서〉 시기의 장점을 바탕으로 이 약점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스트들처럼, 자신의 실천을 평범한 노동자들의 일상적 투쟁에 바탕을 두려 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이러한 관점을 정치적 전략으로 확장시켜서 광범한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할 뿐 아니라 민주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도 목표로 삼았다.그람시의 전략은 마르크스의 인간 본성 개념과 그 필연적 결과인 긍정적인 민주주의 모델을 전제로 하고 있다. 레닌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에 기여한 바는, 좌파가 사회 전체에서 다수를 설득하고 낡은 국가를 분쇄하려면 민주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그람시는 바로 레닌에게서 정치를 배웠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 둘의 기여는 아나키즘의 비일관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에 근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반자본주의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에게 풍부한 교훈을 주는 원천으로 남아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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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aul Blackledge, ‘Marxism and anarchism’, International Socialism 125(Winter 2010).
↩
- 이 글의 초안을 읽고 논평해 준 콜린 바커, 알렉스 캘리니코스, 조셉 추나라, 크리스틴 고튼, 특히 크리스 하먼에게 감사한다. 크리스 하먼의 상세한 논평은 여전히 관대하면서도 최고의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그는 영감을 주는 멘토였다. 이 에세이를 그에게 바친다. ↩
- 예를 들어,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Callinicos and Nineham 2007, p93이 있다. ↩
- 파리 코뮌에 대해 좀더 일반적으로,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한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의 해석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싶으면, Gluckstein 2006, 특히 pp181-207을 보시오. ↩
- Guérin, 1970, p12. ↩
- Chomsky, 1970, pp xv, xviii. ↩
- 드레이퍼는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정신”이라고 부른 매우 유명한 구분, 즉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스탈린주의와 개혁주의)”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고전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했다. Draper, 1992, pp2-33. ↩
- Draper, 1992, pp6, 11; Draper, 1999, p187. ↩
- Guérin, 1970, p86. ↩
- Chomsky, 2005, pp182-184; 그리고 레닌주의는 결국 “독재와 반동”으로 귀결됐을 뿐이라는 버크맨의 주장을 보시오. Berkman, 1989, piv. ↩
-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아나키즘과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유사성에 관해서는 Franks, 2006, p12를 보시오; Day, 2005, p10. ↩
- 예를 들어, Franks 2006, p15를 보시오. ↩
- 예를 들어, Franks, 2006, p226. ↩
- Bakunin, 1990, p143. ↩
- Callinicos, 2003, p299. ↩
- 마르크스주의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에 합리적 핵심이 있다면, 그것은 20세기 들어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목소리들 중 가장 강력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먼 야만적인 체제를 이끌었던 국가 중심주의자들(스탈린주의든 아니면 마오주의의 일종이든)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비전이 옛 스탈린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 참칭에 대한 내재적 비판의 기초를 제공했고(Thomas, 1980, p122), 그리고 본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가 오랫동안 스탈린주의 정권들과 마오주의 정권들이 결국 자신들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레닌 사상의 조악한 짝퉁을 잘 활용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의 변형들일 뿐이라는 주장을 해 왔으므로, 여기서는 같은 주장을 반복하지 않겠다.(예를 들어, Harman, 1990을 보시오.) ↩
- Marshall, 2008, p305. ↩
- Blackledge, 2006. ↩
- Holloway, 2002, pp11-18. ↩
- Lenin, 1968, p304. ↩
- Molyneux, 1986, p76. ↩
- 특히 Lukács, 1971, pp295-342를 보시오. ↩
-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듯, 아나키스트들(또는 최소한 그들 중 대부분)은 조직 건설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를 국가 권력 획득과 관련된 것으로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치 조직을 거부한다. ↩
- Lenin, 1993, p32. ↩
- Trotsky, 1921. ↩
- Lenin, 1961b, p423. ↩
- Lenin, 1961a, p328. ↩
- Marshall, 2008, p25. ↩
- Lukács, 1970, p63. ↩
- 사회주의 정치에서 이러한 구분의 중요성을 개관한 것은 Hallas, 1979, chapter 3을 보시오. ↩
- Franks, 2006, p262. ↩
- 랜덜 암스터Randall Amster를 포함한, 아나키즘에 관한 최근의 학술 선집의 공동 편집자들은 “프루동이 요구한 국가 없는 사회는 아나키즘 사상의 특징이 됐다”고 주장했다.(Amster and others, 2009, p3) ↩
- Woodcock, 1962, p28. 프랭크스는 직접행동이 “현대 아나키즘의 실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Franks, 2006, p17) ↩
- 콜린 워드Colin Ward는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평화주의 아나키즘, 환경 아나키즘, 아나키즘적 페미니즘이라는 목록을 만들었다.(Ward, 2004, pp2-3, 그리고 Franks, 2006, pp12-18도 보시오.)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경향 아나키스트인 머레이 북친은 라이프스타일 아나키스트들의 “구조나 조직, 대중 참여 등을 오만하게 비웃는 마음가짐, 유치하고 우스꽝스런 장난질”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Gordon, 2008, pp25-26에 재인용된 Murray Bookchin) ↩
- Franks, 2006, pp116-124. ↩
- Graeber, 2002, p62. 또한 Gordon, 2008, pp17; Woodcock, 1962, pp28; Franks, 2006, p115를 보시오. ↩
- Franks, 2006, pp196-259. ↩
- Cliff, 1986, p84. 또한 Le Blanc, 1990, p44를 보시오. ↩
- Callinicos and Holloway, 2005, p117. ↩
- Harman, 1991, p13, 또한 Harman, 2009, chapter 4를 보시오. ↩
- Trotsky, 1973, p316. ↩
- 마르크스주의에서 소비에트의 중요성과, 소비에트와 혁명정당의 관계는 Gluckstein, 1985, pp212-246을 보시오. ↩
- Durgan, 2006, pp165-6; 1981, p104-110; 2007, p.88; Trotsky, 1977, pp646-668. ↩
- Franks, 2006, p100. ↩
- Harman, 1996. ↩
- 아나키스트들을 좀더 공정하게 평하자면, 레닌을 20세기의 블랑키주의자로 환원하는 그들의 경향은 이 문제에 대한 몇몇 최고 수준의 학술적 논의와 일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Miliband, 1977, p155를 보시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비판으로는 Blackledge, 2007, p78를 보시오. ↩
- Barker, 2001, p42. ↩
- Franks, 2006, p118. ↩
- Gordon, 2008, p69. ↩
- Gordon, 2008, p70. ↩
- Woodcock, 1962, p30. ↩
- Kinna, 2005, pp114-115; Freeman, 1970. ↩
- Löwy, 2005, p23. ↩
- Franks, 2006, p212. ↩
- Marshall, 2008, p23, p296. ↩
- Goodway, 1989, p1; Chomsky 1970, pxii; Marshall, 2008, p639. ↩
- Marx, 1973b, p84. ↩
- Morland, 1997, p3. ↩
- Morland, 1997, pp188-189. ↩
- Collier, 1990, p41. 마르크스가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의 아나키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어떻게 인간 본성의 역사적 개념을 발전시켰는지를 보려면, Blackledge, 2008, p134를 참조하시오. ↩
- Engels, 1988, p425; 1990c, p227; Marx, 1974b. ↩
- Marcuse, 2008, p87. ↩
- Marshall, 2008, p305. 마르크스는 바쿠닌의 “어린아이 같은 어리석음”을 비판했던 논평에서, “급진적인 사회 혁명은 그 전제조건으로 경제발전의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 달려 있다”고 썼다. (Marx, 1974b, 334.) ↩
- Kinna, 2005, p31. ↩
- Kinna, 2005, p8. ↩
- Fernbach, 1974, p17에서 재인용된 Marx. ↩
- Fernbach, 1974, p17. ↩
- Collins and Abramsky, 1964, p101; Gilbert, 1981, p90와 비교하시오. ↩
- Marx, 1974c, p206. ↩
- Bakunin, 1973, p263. ↩
- Marshall, 2008, p301. ↩
- Marx, 1974c, pp206, 208, 212. ↩
- Draper, 1987, p29. ↩
- Engels, 1989b, p71. ↩
- Bakunin, 1990, p136. ↩
- Kropotkin, 2002, pp237-242. ↩
- Bakunin, 1990, p182. ↩
- Rudé, 1988, pp94-5. ↩
- Israel, 2001, p717. ↩
- Soboul, 1977, p107. ↩
- Guérin, 1989, p.121. ↩
- Lenin, 1961c, p383. ↩
- Le Blanc, 1990, p83. 마르크스의 이른바 자코뱅주의에 대한 현대 개혁주의의 비평을 보려면, Bernstein, 1993, p36를 참조하시오. ↩
- Löwy, 1989, p119. ↩
- Hegel, 1956, pp446, 450, 449. Marx, 1975, p413와 비교하시오. ↩
- Taylor, 1975, p437. ↩
- Marx, 1973a. ↩
- Marx, 1974a, p82. ↩
- 이 개념에 대한 아나키즘의 끔찍한 비평을 보려면, Day, 2005, pp6-7를 참조하고, 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강력한 응답을 보려면, McKay, 2009를 참조하시오. ↩
- Draper, 1986, pp37-8. ↩
- Engels, 1989a, p13. 또한 마르크스주의와 블랑키주의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Lenin, 1964, p47을 보시오. ↩
- Trotsky, 1977, p1017. ↩
- Marx and Engels, 1970, p95. ↩
- Kinna and Prichard, 2009, p272; Guérin, 1989, p119. ↩
- Arblaster, 1971, p181. ↩
- Bakunin, 1990, pp178-179. ↩
- Chomsky 1970, pp ix; Ward, 2004, p5; Marshall, 2008, p305 ↩
- McNally, 2006, p348. ↩
- Thomas, 1980, p252. ↩
- Hallas, 1996, p40. ↩
- Cliff, 1996, pp7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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