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알렉스 캘리니코스 방한 강연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이 글은 올해 7월 방한한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다함께 주최의 대규모 포럼 ‘맑시즘 2011’에서 강연한 것을 녹취한 것이다. 이 강연은 캘리니코스의 방한에 맞춰 출간된 그의 최신작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의 출판 기념을 겸한 것으로, 이 책의 핵심 사상을 다루고 있다.
오늘의 주제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주제다. 제국주의라는 주제는 지난 10년 사이 전 세계 좌파들 사이에서 뜨거운 쟁점이 됐다. 거의 10년 전인 2001년 9월 조지 W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때 부시는 사실상 전 지구적 계엄령을, 즉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원한다면 어디든지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해주는 계엄령을 선포한 셈이었다. 그것에 대한 반발로 세계 도처에서 대규모 반전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지 전쟁에 맞서 저항했을 뿐 아니라 그 같은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고 싶어했다. 그때 바로 제국주의라는 개념이 그 원인을 말해주는 듯했다. 가장 광범하고 초역사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제국주의’란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 눈에는 미국의 행태가 바로 이런 광의의 제국주의에 딱 들어맞는 듯했다. 좌파 진영에서는 보통 제국주의라는 말이 ‘북반구에 의한 남반구 지배’라는 좀더 협소한 의미로 사용된다. 선진국인 부국들이 빈국들을 지배하는 것이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제국주의를 훨씬 더 엄밀하게 정의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제국주의 이론이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1백여 년 전인 1900년대였다.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니콜라이 부하린 등의 제국주의론이 그 시초다. 그들의 목적은 당대 주요국 간의 지정학적 경쟁, 즉 영토와 권력을 둘러싼 갈등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1914년에 일어난 제1차세계대전이 그런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즉,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이 설명하려는 대상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갈등이 아니라 ‘북반구’에 속한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갈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제국주의론의 설명은 그런 갈등이 자본주의의 최신 발전 단계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닌의 유명한 소책자 제목도 《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최신 단계’라는 표현이다. 보통 이 제목을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레닌의 텍스트를 마치 종교적 교리처럼 떠받들던 사람들은 레닌이 묘사한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종적 형태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레닌 자신은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라는 부제목을 썼다. 즉, 레닌은 열강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원인을 자신이 살던 시대 자본주의의 특정 형태에서 찾았던 것이다.
사소한 문구 하나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의도는 마르크스주의가 원형 그대로 대대손손 전수돼야 하는 종교적 교리 같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이고, 따라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데 있다. 내가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를 쓴 것도 바로 그런 비판적 정신에 근거해서였다. 내 책이 이렇게 한국어로 번역돼 나온 것을 보니 매우 기쁘다. 내 책을 구입한 동지들이 오늘 내 강연을 듣고 환불을 요청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경제적 경쟁과 정치적 경쟁의 교차
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백 년 전에 개발한 제국주의론을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계승·발전시키려고 이 책을 썼다. 정직하게 밝히자면 또 다른 영국 마르크스주의자인 데이비드 하비도 나와 매우 비슷한 이론적 성과물을 비슷한 때 생산해 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작업을 표절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관한 내 설명은 무엇인가? 나는 현대 제국주의는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교차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본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먼저, 경제적 경쟁을 살펴보자. 경제적 경쟁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원동력인 이윤과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 간의 경쟁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 착취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자본주의 발전을 추동하는 힘은 자본가들이 서로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쟁탈전이다.
지정학적 경쟁은 이미 언급했듯이 영토와 권력과 영향력을 둘러싼 국가들 간의 경쟁을 말한다. 물론 지정학적 경쟁은 수천 년 동안 지속돼 왔다. 수천 년 동안 도시국가, 왕조, 제국들은 서로 패권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러 지정학적 경쟁이 자본주의 특유의 경제적 경쟁과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19세기였다. 19세기 중후반이 되자 자본 축적의 리듬에 종속되는 통합된 세계경제가 등장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 기업들도 갈수록 국제적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들은 시장·원료·투자처 등을 놓고 국제적으로 경쟁해야 했다. 그런 경쟁을 하기 위해 기업들은 갈수록 자신이 속한 국가의 지원에 기대게 됐다. 그와 동시에, 국가들도 지정학적 경쟁을 하기 위해 자본주의 산업 기반에 기대게 됐다. 근대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철도·기관총·대포 등을 조달하려면 자본주의적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서구 열강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중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다. 그래서 일본 국가가 나서서 산업 자본주의를 육성했다. 국내의 이 같은 사회·경제적 변모에 힘입어 일본 국가는 서구 열강을 모방한 제국주의 국가 노릇을 하게 됐다. 한반도가 일제에 강점당하는 비극도 그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우세한 경제 체제인 상황에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은 서로 융합됐다.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다.
그러나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패턴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제국주의도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번째 단계는 흔히 고전적 제국주의라 불리는 단계로서, 1870년부터 1945년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그때는 유럽의 거대 식민주의 제국들이 주름잡던 시대로, 주로 유럽 열강들이 자기들끼리 전 세계를 분할해서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식민지가 존재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이 시기의 특징은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슨 얘기일까? 영국은 19세기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였다. 요즘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이것은 영국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영국 제조업이 세계를 지배했다. 그런데 영국이 지구상에서 자국에게 중요한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영국 해군의 뒷받침 덕분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은 두 국가의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미국과 독일이었다. 미국과 독일이 한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구축해서 영국의 경제적 우위를 위협했다. 둘째, 대양 해군을 창설했다. 즉, 독일과 미국은 영국의 세계 패권의 양대 축을 모두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경제적 우위와 해군력의 우위가 상호 보완적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역사가는 영국 지배계급이 20세기 초에 미국과 독일 중 어느 쪽과 싸울지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는 20세기 전반부의 양차 세계대전이 말해 준다. 20세기의 세계 최강대국이 누가 될지를 결정짓기 위해 수천만 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양차 대전 동안 영국은 독일을 상대로 싸웠지만 미국의 도움에 의존해야 했다. 그래서 결국 독일이 패배했지만 그것은 영국의 승리가 아니었다. 미국이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패권국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때부터 제국주의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지속된 이 단계를 나는 ‘초강대국 제국주의’라 부른다. 바로 냉전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 단계 제국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양대 블록 간의 전지구적인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경쟁이다. 이런 경쟁이 제3차세계대전으로 비화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대리전을 낳았다. 한국전쟁은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대리전에 속한다.
그러나 둘째, 이 시기의 또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내가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부분적인 분리’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설명하겠다. 미국이 결국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단지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은 또한 모든 자본주의 선진국들을 자국의 정치·군사적 리더십 아래로 결집시켰다. 미국이 이끌었던 서방 블록에는 북미 지역뿐 아니라 서유럽과 일본도 포함됐다. 이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유 자본주의의 초국적 공간’이 창조된 것과 관련이 있다. 즉,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IMF와 세계은행 등의 국제 기구들을 통해 경제적으로 통합된 것이다.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이런 ‘초국적 공간’을 창조한 것은 그 속에서 미국 자본과 수출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의도로 만든 공간 속에서 서독과 일본 같은 동맹국들이 갈수록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위협하는 도전자로 떠오른 것은 역사의 커다란 아이러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모두 미국이 지배하는 지정학적 블록에 속해 있었으므로 이들 간의 경제적 경쟁이 20세기 전반부에 그랬듯 전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부분적인 분리’다.
그러나 이들 간의 경제적 경쟁은 점점 세계경제를 불안정에 빠뜨리게 된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는 새로운 경제 위기의 시대가 도래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인 제국주의의 세 번째 단계가 1991년부터 시작된다. 냉전은 정확히 20년 전인 1991년 8월에 종말을 맞았다. 소련에서 일어난 실패한 쿠데타가 스탈린주의 제도의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은 경제적 우위 덕분에 냉전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한동안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다. 다른 어떤 국가나 국가 연합도 미국에 맞설 수는 없을 듯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은 계속됐다. 특히 1990년대 말부터는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이 미국의 세계 패권에 대한 잠재적 도전자로 떠올랐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국제 무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미국이 갈수록 기를 쓰며 자신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지키려 해 온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엘리트들은 먼저 초국적 자유 자본주의 공간을 진정 세계적인 공간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과거에는 폐쇄돼 있었던 경제들을 개방시키고 미국 자본과 상품이 유입되도록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동유럽 깊숙이 확장시켜 러시아를 포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미국 지배계급은 자신이 다른 강대국들에 견줘 결정적 우위를 지닌 부문인 군사력을 이용해 자신의 지배력을 고착화하려 했다. 바로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의 진정한 본질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하면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굳힐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부시 정부가 벌인 도박이었다. 중동에 대한 지배가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물론 석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미국보다는 유럽·일본·중국·인도 등이 중동 석유에 훨씬 더 의존한다. 따라서 이라크를 침략했을 때 미국의 의도는 다른 강대국들에 대한 석유 공급을 좌지우지할 능력을 가지려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이 도박은 실패로 끝났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올해 말까지 철수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하루빨리 철군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라크 침공 실패가 불러온 물질적 영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징적 영향이다. 이미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미국의 어느 네오콘은 ‘미국 헤게모니의 정당성 위기’를 언급한 바 있다. 달리 말하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국가들이 미국의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길 것처럼 보였던 시기에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라크에서 그랬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의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제 위기[2008년의 ― 옮긴이]는 미국의 패권을 더욱 약화시켰다. 그 이유는 첫째, 다름아닌 미국이 이번 경제 위기의 진원지였기 때문이다. 즉, 세계 지배계급의 처지에서도 미국은 지정학적 불안에 더해 경제적 불안마저 조장하고 있는 골치거리로 보이게 됐다. 둘째,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더 빨리 경제 위기에서 탈출했고 또 그만큼 더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기 회복은 다른 여러 나라의 경기도 함께 회복시켰다. 그 중에는 독일·일본·남한 같은 선진국도 있고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원료 수출국도 있다. 그래서 경제 위기 과정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경제적·지정학적 질서가 어느 정도 재편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우리가 20세기 초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뜻한다. [20세기 초의 독일·미국이 그랬듯이 ― 옮긴이] 중국은 미국의 경제적·지정학적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을 봐도 이 점이 드러난다. 물론 해군력 증강은 중국 지배계급의 처지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중국 경제는 인도양과 말라카 해협을 거쳐 중국 본토로 유입되는 엄청난 양의 원료와 석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지배계급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태평양뿐 아니라 인도양까지 줄곧 지배해 온 것에 대해 명백히 불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중국 해군 전략도 태평양에서 미군 세력을 지금보다 훨씬 동쪽으로 밀어내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말에 미 국방부는 중국이 항공모함을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그런 미사일을 사용할 만한 적수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다. 미국은 주된 군사력 투사[국경 밖으로 군사력을 보내 다른 나라를 위협하거나 전투를 치를 능력 ― M21] 수단으로 항공모함 전단 예닐곱 개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양 연안의 파키스탄·스리랑카·버마 등지에서 자국이 이용할 수 있는 항구 수도 늘리고 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이 각별히 사악한 것은 아니다. 미국만이 세계 5대양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해군력 확장은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서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중국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계속 수입하도록 미국에게 돈을 빌려 주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1914년까지 영국과 독일 사이에도 긴밀한 경제적 교류가 있었다. 영국은 독일의 주요 투자자였고 독일은 영국에게 두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였다. 자유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무역과 투자가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단순 반복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중·미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볼 만한 필연적 근거는 없다. 중국과 미국 지배자들 모두 그런 전쟁이 전 세계는 물론이고 자기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을 연구한 많은 역사가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가 하나 있다. 제1차세계대전의 참전국 지배자들도 딱히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논리에 떠밀려 결국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미 전쟁이 필연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매우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들 때문이 아니라 주요 강대국들의 무시무시한 군사력과 제국주의적 야욕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을 상기해 봐야 한다.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제1차세계대전이 각국 정부의 실책이나 사악함에서 비롯한 것도 아니고, 우발적 실수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제1차세계대전이 바로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 논리가 낳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세계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파괴하는 것만이 세계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1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진실이다.
질의에 대한 답변 (질의 생략)
1. 네그리가 《제국》에서 편 핵심적 주장은 자본과 국민국가 간의 관계가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유럽연합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유럽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국민국가들 간의 이해관계 갈등 때문에 어떤 해결책도 채택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브라질·인도 같은 ‘신흥국’ 경제는 국민국가와 자본의 긴밀한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2. 세계체제론은 자본주의 역사에 장기적 파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국가 간 헤게모니 이동이 매번 같은 형태를 취한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의 역사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본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내 책에서 훨씬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3.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경제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으로 시작됐다. 시장의 힘을 강화하고 노동자들을 파편화시키면 이윤율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었다.
4. 부시의 도박이 실패했음에도 미국이 계속 도박을 감행할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미국이 앞으로도 도박을 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또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다. 퇴임하는 미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최근 연설에서 “차기 국방장관이 누가 되든 간에 아시아에서 미국이 또 한 차례 지상전에 개입해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병원에 가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는 자신들이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나머지 세계가 미국을 추월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 중국의 도전에 부응하기 위해 역량을 재배치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프레데터 무인기와 특수 부대를 이용한 요인 암살 등 저강도 전쟁의 형태로 전쟁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조차도 재앙적인 선택이기는 마찬가지다. 프레데터 무인기를 이용한 폭격은 지금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계속 불안정에 빠뜨리고 있다.
5. 남한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도 남한은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했다. 그런데 남한 지배계급이 단지 ‘미제의 꼭두각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남한 지배계급은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협조하고 미국의 충성스러운 동맹으로 행세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경쟁이 지금보다 훨씬 치열해지더라도 남한이 현재의 친미 노선을 계속 고수할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6. 미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더 끌어올리려 하는 이유에 관한 김하영 동지의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그것은 미국이 아시아 전역에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중국은 남중국해의 섬 몇 개를 놓고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데, 작년에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러한 갈등이 심화하지 않도록 하는 데 미국의 이해관계가 있다면서 선의의 중재자 구실을 자임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오만한 짓이 또 없다. 남중국해에서 누가 어떤 섬을 차지하든 미국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개입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하나는 미국이 앞으로도 아시아에 남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미국이 보호막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7. 중-미 간에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 그것이 과연 국지전에 그치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내 생각에 중국은 어떤 전쟁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영향권을 태평양에서 지금보다 동쪽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태평양의 몇 개 군도를 해군 거점으로 이용해 왔다. 중국은 이 중 두 번째 군도보다 더 동쪽으로, 즉 태평양 한가운데까지 미군 세력을 밀어내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전략의 첫째 문제점은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둘째 문제는 중-미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거기에 사용할 무기를 재래식 무기에 한정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이 감히 아시아 근방에서 전쟁을 치를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전쟁의 대가를 비싸게 만들려고 한다. 문제는 아무리 그런 식으로 사태를 통제하려 해도 어느 순간 상황이 순식간에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분위기 진작을 위해 한 마디 보태자면, 그래도 핵무기가 사회주의 혁명에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핵무기의 문제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가들이 이윤을 획득하려면 물질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도 물질 문명을 다 파괴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또한 물질적인 것들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그런 노동계급을 멸망시킨다면 자본가들에게 아무리 튼튼한 핵 방공호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이윤의 원천을 잃게 될 것이다.
8.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관한 질문을 했는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단지 중국이 한국과 가깝기 때문은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부상이 의미하는 바를 궁금해 한다. 다행히도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에는 이 중요한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분석의 틀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또한 제국주의가 유포하는 신화들 이면의 진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영국이 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우월한 정치 제도 덕분이 아니라, 영국에서 최초로 산업 자본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은 영국에게 커다란 군사적 우위를 안겨줬고, 그 우위는 다른 나라들이 영국을 따라잡을 때까지 지속됐다.
9. 소련은 결코 헤게모니를 가진 적이 없다. 소련 제국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청중 한 명이 주장한 것과 달리 ― 옮긴이]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무력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에는 어느 정도 동질성이 있었다. 이에 견주면 중국 지배계급에게는 이데올로기의 동질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유교 사상과 마오주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등의 사상들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뿐이다.
10. 제국주의 이론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결합된 경쟁 논리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리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 상대적 약소국이라 할지라도 자기 지역에서는 모종의 제국 행세를 하고자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도 틀림없이 아시아의 지역 강국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11. 이런 경쟁 논리가 중국의 행동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중국이 갑자기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중국이 식민지 경험이 있음에도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로서 행동하는 것은 바로 이 경쟁 논리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 지배계급의 야심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중국은 단지 투자처를 찾거나 원료 공급원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도 제국주의 논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예컨대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미국 영향권에서 떼어내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점만 보고서 두 손 들고 환영할 수만은 없다. 물론 세계 최대의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에게는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고전적인 제국주의적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런 제국주의 국가 간 갈등에서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서로 투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니라 이들 바깥에 있는 세력에게 눈을 돌린다. 이 대목에서 세계체제론이 역사 발전을 순전히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갈등으로만, 즉 세계 자본가 계급 내부의 갈등으로만 설명한다는 최일붕 동지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우리는 국가 간 패권 다툼이라는 공식 바깥에 있는 세력, 곧 노동계급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한 국가를 위한 마르크스주의적 전략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 대신 인류 전체를 위한 혁명적 전략을 말한다.
청중석의 누군가 지적했듯이, 이라크 전쟁에 맞선 반전 운동은 제국주의에 맞선 진정한 국제주의적 운동이 어떤 모습일지를 힐끗 보여 줬다. 거대한 반전 시위들이 열렸던 2003년 초에 <뉴욕타임스>는 어쩌면 이 세상에 두 개의 슈퍼파워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논평했다. 하나는 미국, 다른 하나는 세계 여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두 번째 슈퍼파워는 세계 여론도, 중국도 아닌 세계 노동계급이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