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Ⅱ:인종차별과 다문화주의
문화와 다문화주의 *
1 이런 주장이 ‘무슬림이 문제’라는 생각에 확실히 힘을 실어준 탓에 극우 정당인 영국국민당BNP 당수가 자신이 지난 몇 년간 주장해 온 바를 캐머런이 되풀이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2 따라서 캐머런의 연설은 다문화주의가 관용과 인종 간 조화를 추구하면서 사회적 응집력을 강화시키기는커녕 영국 사회의 핵심 가치를 약화시켜 사회의 뼈대를 약화시켰다는 흔해빠진 주장에 힘을 실은 것이었다. [다문화주의가] 목표를 공유해서 공통의 동기를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 불화, 통합 부재를 낳았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가 또다시 공격받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2011년 2월 5일 독일에서 열린 유럽안보회의에서 연설할 때 다문화주의에 대한 낯익은 비판들을 되풀이했다. 캐머런이 연설한 날, 무슬림을 지독히 혐오하는 영국수호동맹EDL이 루턴에서 행진을 시도했다. 이 두 사건이 우연히 겹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를 보며 영국수호동맹이 주먹 쓰는 형사 역을 맡고 캐머런이 담배 주는 형사 역을 맡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캐머런은 자신의 주장에 단서들을 달아서 자신은 극우파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런 단서들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캐머런의 핵심 주장은 다문화주의 때문에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가 성장하고, “우리의 집단적 정체성이 약화하고”, “우리의 가치에 완전히 반하는 방식으로 … 격리된 공동체들”의 행동이 허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3 즉, 무슬림은 이른바 “자기 격리self-segregation”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슬림은 그들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는 차별 정책의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분리된 공동체에서 생활하거나, 차이를 드러내는 표지들을 고집하거나(스스로 얼굴을 가리는 무슬림 여성들처럼), 영어를 배우지 않는 식으로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과 통합되지 않는 편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일부가 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을 뜻하며 함께하는 문화보다 자신들만의 문화를, 우리의 문화보다 자신들의 문화를 우선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들의 근저에 있는 핵심 내용, 즉 외국 문화의 가치들이 ‘우리의 생활양식’을 타락시키도록 놔두고 있다는 주장은 ‘격리된 공동체들’에 관용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전혀 없다. 대니 돌링과 루디 심슨은 5년여 전에 영국에서는 인종 간 뒤섞임이 덜하기는커녕 더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 줘 그런 허구적 주장을 분쇄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적은 내부에 있다’는 생각을 부추겼다.이것이 무슬림의 문제점이라면(이런 주장은 무슬림 차별의 책임을 그 차별의 피해자들에게 지우는 것이다) 다른 문제도 있는데, 바로 다문화주의가 이런 자기 배제와 외국 문화의 공고화 과정을 강화하는 작용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다양성, 배경이 다른 공동체들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명목으로 소수의 가치를 ‘용인’하다 보니 다수의 가치를 소홀히 하게 됐다는 주장이 있다.(따라서 소수인종 공동체들에 대한 다수의 적대감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기묘한 의미에서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 즉, 국가 정책으로서 다문화주의를 폐지해야만 다수는 소수를 받아들일 수 있고 소수는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순응할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는 오랫동안 고통받아 온 다수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 자신이 공식적 관용 정책의 피해자가 됐기 때문에도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캐머런의 말대로 “공세적 자유주의”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무슬림 자신들을 위해 그런 것이다. 이런 주장의 결론은 무슬림은 자신들에게 붙어다니는 “나쁜” 문화에 대해서 “결백”하다는 점을 “입증”해서, 그들 자신이 겪는 차별에 더는 원인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당연히 이것은 무슬림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재판이다.)
문화적 인종차별
4 이 주장은 ‘새로운 인종차별’의 일부가 됐는데, 1983년에 마틴 바커와 앤 비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새로운 인종차별’은 “흔히 ‘영국 문화’와 ‘민족 공동체’에 호소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이민자들이 영국을 외국 문화로 ‘뒤덮을’ 지경이 됐고, 이민자들이 다수가 된다면 [영국] ‘민족의 동질성’이 파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새로운 인종차별’의 핵심에는 문화와 전통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공동체는 곧 그 공동체의 문화, 생활양식, 전통과 다름없다. 이것들이 파괴되면 공동체도 산산조각난다.” 5 제국주의가 중동에 개입하고 나서 테러리즘이 부상하자 과격 우익들이 보기에 산산조각난 사회라는 이미지가 한층 더 절박해졌는데, 특히 2005년 7월 7일 런던 테러 후에 그랬다. 그래서 멜라니 필립스는 다문화주의는 “대규모 이민과 … 이 나라의 유대-기독교적 가치를 겨냥해 세속적 허무주의자들이 시작한 맹공격” 때문에 민족이 해체되는 과정의 일부였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6 그리고 윌리엄 파프는 7·7 테러를 저지른 영국인 폭파범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된, 의도는 좋았으나 재앙적으로 잘못된 다문화주의 정책”의 산물이었다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했다. 7
캐머런의 다문화주의 비판은 거슬러 올라가면 마거릿 대처가 이민과 소수인종 공동체 문제가 부각되자 ‘인종’이 아닌 ‘문화’를 문제로 지목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1978년 ‘월드인액션’ 인터뷰에서 대처는 영국 사람들이 “이 나라가 다른 문화권 사람들로 넘쳐날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상당히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캐머런은 [우익의 견해뿐 아니라] 다문화주의를 바라보는 신노동당의 견해도 많이 받아들였다. 이 점은 그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인종평등위원회Commission for Racial Equality의 전 의장 트레보 필립스와 가깝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는데, 필립스는 2005년에 다문화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를 단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열시키고,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몽유병 환자처럼 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다양함’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공통의 문화는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 … 다양성에 대한 관용 때문에 공동체들이 사실상 고립되도록 방치했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런 공동체에는 특별한 별도의 가치들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레보 필립스가 보기에 영국 사회가 약화된 이유는 다양성에 대한 무분별한 관용 때문에 우리가 주류 밖의 일부 문화 공동체들이 스스로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런 “특별한 별도의 가치들”에 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캐머런이 지난 2월에 주장한 것과 거의 흡사한 주장이다. 필립스, 캐머런, 신노동당과 캐머런식 보수주의가 모두 보여 주는 바는 전통적 보수파의 인종차별이 변하고 있고 그와 함께 백인들만의 영국을 꿈꾸던 것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반反다문화주의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이지만(무슬림을 속죄양 삼는다), 오늘날의 영국이 다인종 사회라는 점을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견해(여성과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는 것과 접목될 수 있다.
9 그러나 실제로는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의 일부 ‘나쁜’ 측면이 아닌 이슬람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슬람 혐오는 ‘문화’에 관한 것만 용인되고 인종차별적 편견, 말하자면 유대인 혐오 비슷한 것으로서는 용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작가 마틴 에이미스는 자신의 관심사는 신념 체계이지 인종 집단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무슬림관觀을 옹호한다.(이 주장은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과 소설가 로난 베넷이 훌륭하게 논파했다.) 10 극우파의 착각을 제외하면 ‘인종’은 더는 ‘우월’, ‘열등’이라는 관점에서 사람들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표지도 수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화는 그렇지 않다.
반反다문화주의는 이슬람 혐오와 딱 들어맞지만,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자신은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캐머런은 무슬림이 실천하는 신앙과 이슬람 극단주의를 구별하려고 애를 썼다. 물론 이것은 분명히 보수당이 포용주의에 헌신하는 ‘현대적’ 정당이라는 매력을 유지할 필요성을 의식한 결과다.(보수당 공동의장 사이에다 와르시[영국 최초의 무슬림 여성 장관]도 저녁 만찬 직전의 한 연설에서 반무슬림적 편견의 수용 가능성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문화, 변화, 자본주의
문화를 단일하고 균일한, 뭉뚱그려진 ‘생활양식’으로 획일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심각하게 잘못됐다. 인류학자들이 가끔 말하듯이, 계급 분화나 갈등이 거의 없고 사회 구조가 비교적 고정된 사회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사회를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역동성, 즉 견고한 것들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자본주의의 성격 때문에, 문화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反다문화주의자들은 문화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며 내적으로 동질적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양식, 즉 영국의 단일문화가 있고, 이것은 ‘그들의’ 생활양식, 즉 소수인종의 단일문화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 둘은 사실상 양립할 수 없다. ‘우리의’ 생활양식이 희석되거나 ‘그들의’ 생활양식이 우리의 생활양식에 굴복하거나 둘 중 하나다.
11 우선, 모종의 원조 ‘영국’인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듯이 모종의 ‘순수한’ 영국 문화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 땅에 맨 먼저 정착한 이민자들의 문화(이 영국제도英國諸島보다 훨씬 더 광범한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화일 것이다)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 문화 자체는 더 이전 문화들의 산물이었을 것이고, 그 문화들 자체도 생산양식의 새로운 진보에 대응해 변화·발전해 왔을 것이다. 켈트족, 로마인, 앵글로색슨인, 스칸디나비아인, 노르만인의 연이은 이주와 침략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요소들이 더해졌을 것이다.(이 문화들 자체도 로마인들이 그리스 문화를 빌려왔듯이 다른 문화들을 빌려 온 것이었다.) 따라서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모종의 ‘근원’ 문화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문화는 원래 항상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단일문화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여러 이유로 명백히 틀렸다.더 최근의 역사적 시기에 무역이나 정복을 통해 서로 다른 사회 간에 상호 작용이 이뤄졌고, 외국 생산물(차, 감자 같은)이 ‘토착화’해서 영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피시앤칩스[생선살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것과 감자튀김을 함께 먹는 영국 특유의 음식 ― M21]를 제치고 치킨 티카 마살라[매콤한 인도식 닭카레 ― M21]가 영국의 민족 음식이 되는 등 (작고한 노동당 정치인 로빈 쿡이 [외무장관 시절에] 주장했듯이)[그는 치킨 티카 마살라를 “진정한 영국 민족 음식”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수입품들”이 전통적인 영국 음식 문화로 여겨지던 것들을 대체했다.
(현대 세계에서) 문화는, 인구 변화를 포함하는 더 광범한 경제적 변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요소를 흡수하고 옛 요소를 버리면서 끊임없이 변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문화를 불변의 초역사적인 것으로 보는 주장은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관점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일 뿐이다.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지배계급의 견해(마거릿 대처에서 토니 블레어에 이르는 정치인들이 보여 주는), 즉 사회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우리의’ 문화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에 부합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배계급이 어떤 ‘외국 문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그런 도전이 방향을 잃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우익이 공통의 영국 문화에 호소하는 것은 ‘민족의 단결’에 대한 호소, 즉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를 꾀하는 것과 같다.
12 심지어 조지 오웰조차 동일한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41년에 오웰은 《사자와 유니콘》에서 “영국 문명에는 무언가 독특하고 두드러진 것이 있다”고 힘주어 주장하면서, 그 “특징적 단편들”로 “랭커셔의 면방직 공장들에서 나는 덜커덕거리는 소리, ‘대북로Great North Road’[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이어진 대로]를 오가는 화물차들, 직업소개소 밖의 대기자 행렬, 소호가街 술집의 핀볼 기계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 자전거를 타고 가을 아침의 안개를 헤치며 성찬식으로 향하는 나이든 가정부들”을 꼽았지만 오늘날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3 이런 종류의 이른바 “독특한” 문화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와 비슷한 자의적 선택을 한다고 해도 앞으로 70년이 지나면 마찬가지로 사라져 버릴 공산이 크다. 현실은 특정 시기에 영국적 생활양식의 전형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이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모로 보더라도 영국적인 것의 ‘정수’라 할 ‘우리의 생활양식’을 꼭 집어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문화를 “한 국민의 모든 특징적 활동과 관심사”로 요약하려는 시도(우파 모더니즘 시인이자 비평가인 T S 엘리엇이 1948년에 주장했듯이)는 모두 순전히 자의적인 정의를 내리게 되는 문제에 부딪힌다. 즉, 63년이 지난 지금 엘리엇이 영국 문화를 본다면, 전에 그랬듯이 영국 문화를 “더비 경마일, 헨리 레가타[조정 대회], 카우즈[휴양지], 8월 12일[뇌조(雷鳥) 사냥철 개시일 ― 옮긴이], FA컵 결승전, 개 경주, 핀볼 기계, 다트판, 웬즐리데일산産 치즈, 삶은 양배추 조각, 식초에 절인 비트[명아줏과의 풀로, 검붉은 뿌리를 채소로 먹는다], 19세기 고딕 양식의 교회, 엘가[영국의 작곡가]의 음악”으로 볼까?14 이런 “정수”는 흔히 “우리의 집단적 정체성”의 핵심이라고들 말하는 특정 가치들과 결부돼 있다고 여겨진다. 다시 캐머런의 연설을 인용하면 이런 가치들은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민주주의, 법치, 인종·성·성지향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평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이다. 이처럼 (신노동당이나 그것의 캐머런식 변종의) “미래 지향적” 반反다문화주의자들은 소비의 현대적 다양성은 환영하면서도(이것은 영국의 인종적 다양성을 반영한다) 오늘날의 영국을 가능케 한 가치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강하게 반대할 수 있다.[원문 그대로임 ― M21]
그러나 역사적으로 잠정적인 그런 정의들은 대개 의복이나 여가, 사회 규범, 소비 같은 부차적 측면들에 집중하기 때문에 제한적인 것일 뿐, 그래도 여전히 영국적인 것의 어떤 ‘정수’는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웰은 비록 영국의 위선과 야만, 시대착오적 행태를 혹독하게 비판했음에도 “영국 문명의 신사다움”과 “입헌주의와 법치 존중”이 [영국적인 것의] 핵심이라고 말했다.여기서 두 번째 쟁점이 제기된다. 그런 가치들은 “우리의 집단적 정체성”의 어떤 고유한 특질이 아니다. 즉, 그것들은 17세기 영국 혁명으로 시작된, 광범한 다수에게 자유와 권리를 점차 용인하게끔 사회의 지배자들을 강제한 투쟁의 산물이다. 더욱이 이 나라 지배자들이 외국에서는 다른 나라의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국내에서는 저항권에 제한을 가하면서도 그런 가치들을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가치들이 유일하게 ‘영국적’인 것도 아니다. 18세기 미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적 투쟁이 평등한 권리와 자유의 민주적 진보 과정에서 핵심 구실을 했다.
따라서 어떠한 이질성도 뛰어넘은 이른바 통합된 문화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의 문화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공통의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인류학적 정의)는 계급이 생겨나지 않은 사회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계급사회에서 문화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상이한 가치들 간의 충돌이 근본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공유된’ 문화가 어느 정도로 존재할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자신의 헤게모니를 강제할 수 있는 정도에 달려 있다. 따라서 문화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이다. 즉, ‘우리의 생활양식’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특징적인 생활양식을 묘사하는 것(인류학적 의미에서)이 아니라 어떤 두려운 ‘타자’와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이용하도록 고안된, 그리고 [지배계급이 보기에] 달갑지 않은 계급 분열을 뛰어넘는 공통성이라는 환상을 강화하도록 고안된 문화적 특성을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른 문화를 비난하기
‘우리의 생활양식’을 이렇게 고찰하는 태도의 거울 이미지는 이슬람을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단일한 문화로 환원하는 태도다. 우파는 영국 문화의 완벽한 통일성을 강조하면서 영국 문화를 동질화할 때, 자신들이 비난하는 문화도 동질화한다. 따라서 무슬림은 출신 국가와 사회적 배경이 어떻든 그들의 종교 때문에 공통의 문화를 가진다고 가정되며, 그래서 정치적 정체성도 하나라고, 즉 흔히 ‘문명의 충돌’이라는 좀 모호하지만 위협적인 의미의 ‘이슬람주의’ 정체성을 가진다고 가정된다. 이슬람의 이런 이미지보다 더 진실과 동떨어진 것도 없을 것이다. 다른 요인들(국적, 계급, 심지어 개인적 선택)이 무슬림의 의미를 수정할 때 엄청나게 중요한 구실을 한다.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아이자즈 아마드는 이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무슬림이라는 것은 주로 무슬림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을 뜻하며, 기껏해야 더 넓은 민족 문화(이집트, 나이지리아, 레바논, 기타 등등의) 내의 무슬림 하위문화 출신이라는 것을 뜻한다. 반면, 종교 생활은 심지어 독실한 신자의 경우에도 개인의 복잡한 사회적 정체성 속의 많은 요소들 중 하나이며, 이런 사회적 정체성은 항상 구체적이고 따라서 언어, 지역, 관습, 계급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종교 생활은 대개 지역적이고 개인적이다. 이런 하위문화적 무슬림다움subcultural Muslimness 자체는 맥락이나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역사, 지리, 정치, 더 광범하고 다양한 종교적 환경, 물질적 삶의 무수한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덧붙여서, 펀자브 지역 촌락의 무슬림은 알바니아의 시골 지역 무슬림과 매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탄불이나 카이로, 라호르 같은 무슬림 세계의 대도시들에 사는 무슬림과는(신앙심이 깊은 무슬림이더라도) 훨씬 더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프리카 남부의 시골 지역, 개신교의 벨파스트, 가톨릭의 로마, 또는 기껏해야 수많은 사람이 영국 국교회[성공회 ― M21] 출신이라고 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영국을 모두 아우르는 공통의 단일한 기독교 문화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약간 비슷할 것이다. 경제 발전 수준, 도시와 농촌의 격차, 세계화가 미친 영향 같은 다른 요인들이 문화를 형성하는 데서 순전히 종교적인 요인들보다 분명히 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아마드의 논의는 인도 아대륙에 초점을 맞춘다. 수억 명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이곳에서도 상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인도 자체의 무슬림 수가 이른바 무슬림 국가라는 파키스탄(인구의 다수가 힌두교도인 이웃 나라 인도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세속적인 국가이지만)보다 더 많다. 그리고 벵골어를 사용하는 인도의 무슬림이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과 언어와 종교가 같을지라도 그들의 경험은 서로 매우 다르다. 무슬림 인구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인도네시아가 가장 많다) 인도 내에서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이 … 같은 지역의 힌두교도 이웃 주민들과 일상적 문화 습관을 80퍼센트 이상 공유하고, 멀리 떨어진 지역의 무슬림과는 공유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에서도 “압도 다수의 일상생활 문화에는 특히 힌두교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남아 있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불교의 흔적도 두드러진다.”
무슬림 세계 내의 이런 차이, 동시에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뒤섞여 모호해지는 이런 차이 때문에, 어떤 단일한 무슬림/이슬람 ‘문화’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이런 식의 관점은 세속주의의 복잡하고 모순된 근대화 구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종교적 분열(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등)이나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하는 구실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종파 간 일치단결을 강조하고 민속적인 인도네시아 이슬람, 세속적이고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의 다양한 무슬림 하위문화들, 파키스탄의 탄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한 ‘무슬림 민족주의’의 예기치 못한 변화, 방글라데시를 세속 국가로 탄생시킨 동파키스탄 언어 민족주의의 비일관성 등은 모두 그런 정체政體나 문화가 이슬람의 어떤 고유한 성격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관점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보여 준다. 이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 ‘이슬람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슬람주의 일반의 특수성과 새로움을 은폐하는 것이고 무슬림들은 지나치게 이슬람스럽다는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오리엔탈리스트뿐 아니라 종교적 우익도 퍼뜨린 생각, 즉 종교는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따라서 그 문화의 사회적 존속과 정치적 운명도 구성한다는 생각에 굴복하는 것이다.
아마드가 여기서 말하려는 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무슬림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에서조차 무슬림의 단일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그런 정체성을 영국에 거주하는 무슬림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얼토당토않음이 분명하다. 인종차별주의자들 일반은 특히 다문화주의 반대자들은 그러려고 애를 쓰지만 말이다. 그런 시도는 선별적이고 잘못된 무슬림 정체성을 투영할 뿐 아니라 무슬림 정체성을 ‘타자’, 즉 영국적 정체성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적대적인 것으로 투영하기만 한다. 이런 시도는 영국(더 일반적으로는 서구) 문화가 우월하고 무슬림 문화가 열등하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이 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슬람 문화의 여성과 서구 문화의 여성을 대비하는 방식에서다. 전자는 억압받는 자들이고 후자는 해방된 자들인데, 둘의 차이는 머리에 무언가를 두르느냐 안 두르느냐다. 이것은 서유럽 전역에서 지배적인 상징적 담론이 됐는데, 특히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서 아주 극성스럽다. 프랑스에서는 부르카 착용 금지 조처(극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것이 얼마나 상징적인 문제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가 강압적이고 자유를 침해하는 조처인데도 오히려 우리 진보적 사회의 자유liberal freedoms를 입증하는 조처처럼 비치게 됐다. 무슬림 여성들이 거주하는 나라가 무슬림 국가이건 비무슬림 국가이건 간에 그런 담론은 무슬림 여성들의 복잡한 삶의 현실을 간단히 무시하는 것이다. 도시 생활을 하는 수많은 무슬림 여성은 그들의 서구 자매들과 구별되는 복장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에 뭔가를 두르는 행위는 1백여 년 전에 유럽의 중간계급과 상층계급 여성들도 공공장소에서 그랬듯이, 농업이 지배적인 많은 사회의 비무슬림 여성들에게는 어느 정도 규범이다.(또는 최근까지는 틀림없이 그랬다.) 마찬가지로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과는 다른 서구 여성들의 복장이 서구 여성들의 해방된 지위를 나타내는 표지라고 가정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18 그러나 프란시스 알타우스가 지적했듯이, 이런 관행은 이슬람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아프리카 중부 벨트, 주로 아프리카의 뿔 지역과 이집트)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코란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여성 성기 절제는 아프리카 지역에 이슬람이 도입되기 전부터 존재했고, 무슬림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그런 관행은 기독교인들, 애니미즘(정령 신앙)을 믿는 사람들, 일부 에티오피아 유대교도들에게도 있다. 19 이런 현실과 ‘문명사회’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는 관점이 틀렸음을 강조하려고 알타우스는 또한 서구 여성들이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성형수술을 하는 것보다 여성 성기 절제가 문화적으로 더 퇴행적인지를 묻는다. 20
복잡한 현실이 문화적 고정관념으로 환원되는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슬람 문화의 야만성의 사례로서 흔히 여성 성기 절제가 제시된다. 자신의 ‘문화’에 대한 ‘문명사회’의 편견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집단이 무슬림이긴 하지만 똑같은 동질화(그리고 왜곡) 과정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문화’ 운운하는 이야기는 유럽보다 더 넓은 그 대륙에는 유럽인들에게 정복되기 전에 매우 다양한 사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사회들은 계급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회(수렵·채집 사회)부터 원예 사회, 쟁기를 이용한 농경 사회(계급 분화가 막 시작된), 도시와 국가와 깊은 계급 균열이 존재하는 사회까지 아주 다양했다.자본주의 문화의 성격
그렇다면 우리의 논의는 자본주의가 단지 생산 수단과 생산관계를 끊임없이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공산당 선언》에 쓰인 대로), 문화를 포함한 사회 관계들 전체를 끊임없이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문화 변혁은 자본주의가 고정된 ‘생활양식’처럼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고, 기존의 정착민과 다른 지역에서 온 새로운 집단 간의 문화적 차이를 계속 허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영국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의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생활양식에 대한 견해가 똑같아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의 견해는 봉건 사회나 그 전의 생산양식들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견해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상이한 인종 집단의 ‘문화’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고 상반된다고 규정하려는 시도가 틀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상이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동일한 근무 방식으로 계속 끌어들여 그 과정에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동질화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 초 맨체스터의 공장들에 유입된 아일랜드 농민들이 그랬고, 제2차세계대전 후 영국 전역의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하려고 서인도제도와 인도 아대륙에서 온 많은 사람들(무슬림을 포함하는)도 그랬다. 아직 현대적 자본주의로 탈바꿈하지 못한 나라들(비록 이미 자본주의이지만)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습관이 두 세대도 채 안 돼 변한 것을 목격했다. 그들 중 젊은이들은 본토박이 젊은이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그들과 함께 교육받고 일했으며, 본토박이 문화는 새로 온 사람들의 언어 습관과 음악의 요소들을 흡수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사람들을 본토박이와 동일한 근무 리듬에 종속시키는 한은 두 집단의 차이를 없애고 문화를 자본주의의 형상대로 끊임없이 재합성한다.
기존 공동체들과 새로 온 공동체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허무는 이런 과정은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변화로 기존 집단의 문화적 규범 자체가 변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무슬림 문화의 독특한 산물로 여겨지는 것(공공장소에서 여성이 해야 할 옷차림과 몸가짐 등 여성을 특정 역할에 한정시키는 태도)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규범으로 간주됐을 법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실제로 이런 규범의 일부 요소들은 20세기까지도 존속했다.) 자본주의의 역동성 자체가 영국 문화 내의 이런 차이를 파괴했다.(물론 차별을 폐지하지는 않았다.) 아직 자본주의로 흡수되지 않은 지역에서 온 새로운 집단이 [자본주의 사회에] 점점 더 통합될수록, 특히 그들이 노동인구에 포함됨에 따라 그들의 문화도 변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차이를 없애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자본주의는 다른 방식으로도 작용한다. 즉, 자본주의는 일자리와 주거, 복지 혜택 같은 자원들을 두고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든다. 그래서 남아 있는 문화적 차이들 — 종교와 관련된 문제들(복식 예절, 식습관, 가족 형태)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 이 각별히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소속 여부라는 정체성에 따라서 그런 차이들을 보도록 요구받는다. 인종차별주의자와 반反다문화주의자들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 실제의 또는 상상의 차이에서 ‘무슬림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데, 그들의 주장인즉슨 ‘무슬림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영국적 정체성’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리고 이해할 만하게도 무슬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자존감을 지킬 방법으로 스스로 이슬람 정체성을 추구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 세대 전에 흑인들이 인종차별에 맞설 수단으로 흑인의 긍지Black Pride를 천명하고자 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이다. ‘새로 온’ 공동체에서는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가 좌절된 데 따른 충격으로 말미암아 일부가 이른바 전통 문화의 관행에서 안도감을 얻으려는 방향으로 이끌릴 수 있다. ‘통합’ 가능성이 착각에 불과해 이런 관행들이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 돼 버팀목과 인정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만일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는 사람이 있다면 신앙심이 각별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무슬림이 되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것은, 그 개인에게 사회에 속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의 하나다. 이런 식으로 ‘무슬림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과 ‘영국적 정체성’에 집착하는 백인들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전자는 비록 부적절한 대응이고 이른바 고정된 문화들이 대립한다는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어쨌든 인종차별에 맞선 대응인 반면, 후자는 인종차별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종차별을 양해하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를 옹호하기
반反다문화주의는 무슬림(그리고 다른 소수인종 집단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하므로 사회주의자들은 다문화주의를 옹호할 뿐 아니라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는 주장에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어떻게 다문화주의를 옹호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주민 공동체들이 이른바 우월한 문화에 순응하라는 압력을 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우 올바르게도 인종차별 반대 투쟁은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고 좋은 문화는 오직 하나, 즉 영국 문화뿐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한다. 도심 학교들이 영국 인구의 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다문화주의가 초중등 교육의 핵심 특징이 됐다는 점은 별로 놀랍지 않다. 학교들은 포용주의적 태도를 취해 왔고, 모든 학생들이 하나의 영국 문화 혹은 백인 기독교 문화를 고수한다고(또는 고수해야 한다고) 가정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따라서 다른 종교들의 종교적 축제를 인정하고 이주민 집단의 종교, 언어, 문화적 전통을 존중할 여지가 생겨났다. 이런 포용성은 학교 외의 곳에서는 공공기관들, 특히 지방정부에 주로 반영되는데, 이 기관들은 다인종 사회 내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종 서식과 공고문들은 다양한 언어로 인쇄되고 행정관청, 특히 도심 지역의 행정관청들은 지역사회 단체들에 다가가려고 애를 쓰는데, 때로는 그 과정에서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영국 문화가 단일 문화라는 생각에 반대하는 주장은 대안 문화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더 야심적인 시도로 이어졌다. 따라서 학교와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열리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기념행사[흑인들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를 기리는 행사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매년 2월, 영국에서는 10월에 열린다 ― M21]는 노예제와 노예제 종식에 관한 신화에 도전하는 한 방법이고, 무슬림 문화(특히 철학, 과학, 건축 분야의) 기념행사는 무슬림 문화가 서구 유럽 문명보다 열등하다거나 무슬림 문화가 이룩한 성취가 다른 문명을 모방한 것일 뿐이라는 인식에 도전하는 한 방법이 된다.
이런 노력들의 많은 부분은 다른 문화들을 열등한 것으로 깎아내리는 인종차별적 태도에 도전하는 한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다문화주의에는 흔히 한계가 있는데, 왜냐하면 문화를 비교적 고정된 ‘생활양식’으로 보는 똑같은 생각을 항상 뛰어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 반대자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주의의 함정에 빠지고, 문화들이 끊임없이 서로 섞이고 다른 문화를 풍성하게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비록 많은 다문화주의 지지자들이 이 점을 인정하지만 말이다. 다문화주의 지지자들은 다문화주의를 그저 문화 간의 연관과 이 과정에서 사회가 누리는 혜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된 구실, 즉 자본주의가 문화를 동질화하는 동시에 차이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게 된다.
다문화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22 그들이 제기한 문제는 문화적으로 규정된 사회 집단들에게도 인종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개인적 권리를 넘어 법적으로나 공공정책 면에서 사회의 인정이 필요한 권리들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규정하는 용어가 인종에서 문화로 바뀐 것은 개인적 권리에서 집단적 권리로의 변화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국가는 단지 일자리와 주거를 위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보장할 의무만이 아니라 영국 사회에서 문화의 다원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의무도 있다는 것이었다.(영어 외의 언어로 서식을 인쇄하는 것이 한 사례일 것이다.) 법적으로 동등하게 대우받고, 투표하고, 공평한 경제적 기회를 누릴(경제적 장벽이 제거돼서) 시민적 권리는 시민들이 속한 다양한 문화들 사이에서 중립적인 경제적·정치적 틀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영국 다문화주의 이론가들 중 한 명인 비쿠 파레크가 주장했듯이, 현대 사회는 이제 단지 “시민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체들의 공동체”다. 23
이것[문화에 대한 자본주의의 모순된 효과를 이해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다문화주의 이론가들의 연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24 관용은 다른 문화가 행복한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관용이어야 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관점에 따라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권리들이 필요했다. 지난 3백 년 동안 상이한 시점에서 획득한 법적·정치적·경제적 권리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권리들 말이다. 이런 권리들은 개인의 법적·정치적·경제적 권리에 더해 집단의 권리, 즉 문화적 집단이 자신의 문화적 필요를 인정받을 권리였다. 집단의 권리를 인정하면, 문화들 간의 평등이 촉진되고 지배적 문화의 ‘이론의 여지 없는’ 가치들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소수인종 집단 차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국 사회의 문화가 다양해지기 시작하면서, 공적 공간의 중립성이라는 전제와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똑같다는 가정이 더는 당연시될 수 없었다. 문화가 다르면 행복한 삶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그리고 소수인종 집단의 문화에 맞게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록 그런 삶이 다수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잘못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단 하나의 ‘행복한 삶’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개념들 자체가 모두 문화적으로 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용은 이른바 행복한 삶에 대한 보편적 개념(파레크가 다른 곳에서 도덕적 일원론이라고 부른 것) 내의 관용이 아니다.[이런 주장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반론은 집단의 권리와 개인의 권리가 충돌할 때 사회가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화적 관점에 따라 활동할 권리가 인정된 공동체는 그 공동체 내의 개인에게 집단의 권리를 강요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집단의 문화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지배적인 사회집단의 문화적 규범을 채택할 개인적 권리가 공동체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가? 한편으로 개인적 권리는 보편적인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 개인적 권리는 개인적 권리보다 집단적 가치를 강조하는 다른 문화들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듯하다. 다른 문화들에서는 그런 개인적 권리가 낯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모순에서 비롯한 비난이, 다문화주의 때문에 우리가 상대주의의 늪, 도덕적 혼란에 빠진다는, 즉 반동적이고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인 관행들을 수용하라는(심지어 옹호하라는) 요구를 우리가 받는다는 비난이다. 일원론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관점에서 모든 문화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우리가 이런 관행들을 모두 용인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평등주의적 또는 ‘진보적’ 권리들에 근거한 활동, 특히 여성 권리나 동성애자 권리를 근거로 한 활동은 흔히 정반대로 나아간다. 예컨대 자유주의자들이 보편적 가치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억압적 행위를 지지하는 것(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그렇듯이)이다.
25 경합하는 가치들에 대한 공통의 기초는 문화 간 대화를 통해 확립될 수 있다.
이런 모순에 대해서 파레크는 실용주의적 해답을 내놓았다. 이하는 그의 주장이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느슨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즉, 우리 자신의 관점을 규정하는 문화적 요소를 우리가 인식한다면 특정한 문화적 관행을 비판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파레크가 보기에 문화는 닫혀 있는 것도 아니고 내적 역동성이 없는 것도 아니므로, 대화를 통해 문화 충돌을 평가할 공간이 열릴 수 있다. 상호 인정이라는 공통의 담론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함정, 즉 문화가 이른바 초超문화적 기준들에 맞지 않다고 해서 그런 문화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공통의 평가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문화 충돌을 결코 평가할 수 없다고 보는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는 오로지 선험적인 보편적 가치라는 독한 약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완전한 차이를 그저 칭송하기만 하는 도덕적으로 무관심한 태도이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를 추구할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경합하는 문화적 관행들(소수 집단의 문화든 다수 집단의 문화든)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그러나 내 생각에 파레크의 견해에도 여전히 한 가지 문제점이 남아 있다. 파레크의 견해는 보편성의 근거를 합리적인 사람들 간의 합의(문화적 신념 체계가 무엇이든 간에) 의지 비슷한 것에서 찾는 듯하다. 이런 견해는 문화적 오만(특히 지배적 문화의 오만)에 도전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합리적 논증이 문화적 주관성 또는 상호주관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 모순된 태도를 함축한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또 다른 한계를 보여 준다. 즉, 거의 모든 다문화주의자들이 다문화주의 정치를 시민권이라는 측면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유주의적 의회 민주주의의 이론 틀 안에서만 정치적 선택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단일문화적 시민권 개념을 다문화주의적 개념으로, 즉 한 종류의 영국식을 다른 종류의 영국식으로 대체할 것인가에 집착할 뿐, 영국식이 왜 필요한지는 묻지 않는다. 영국 사회에서 문화의 다양성이 인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당연히 사회주의자들도 흑인 운동 선수가 몸에 영국 국기를 두르는 것을 흑인이 사회의 일원이 될 개인적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새로운 영국식을 찾는 것은, 정치인들이 관용, 다양성, 민주주의라는 이른바 영국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을 무슬림을 비난하는 구실로 이용하는 동시에 훨씬 더 반동적인 이민 정책도 추진하는 것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결코 못 된다. 또한 그것은 진정한 평등을 위한 투쟁을 무장 해제시킬 수 있다.
다문화주의 비판
27 그의 주장은 이렇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아시아인들,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들, 백인들이 인종차별과 고용·주거·사회복지상의 차별에 맞서 함께 투쟁한 덕분에 문화적 다양성이 번성할 수 있었다. 이런 단결 투쟁은 1960년대 말 차별금지법 도입을 강제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다문화주의가 제도화하면서 그 자체의 문제를 낳았다. 즉, “다문화주의는 반인종차별주의적 뿌리와 활동을 잃어버렸다. 다문화주의는 더는 아래로부터 투쟁의 성과가 아니라, 위로부터 부과된 정부 정책이 됐다.” 28 시바난단이 다른 곳에서 주장했듯이 이런 변화는 1966년 노동당 정부 내무장관 로이 젠킨스가 유명한 연설을 한 뒤에 나타났다. 그 연설에서 젠킨스는 통합을 “동화라는 획일적 과정이 아니라 상호 관용의 분위기 속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인종차별적인 이민법이 추가돼 평등한 기회가 사문화하자 “‘문화적 다양성’(그리고 이 문화들을 ‘문화적’ 다원주의 체계로 통합하는 것)이 강조됐다. 인종차별은 인종 억압과 착취의 문제, 인종과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와 그것의 용인 가능성 문제가 됐다.” 29
이런 비판에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비판이 갈라져 나왔다. 하나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서 인종관계연구소Institute of Race Relations의 암발라바너 시바난단이 제기한 비판이다. 시바난단과 그의 동료 연구자들은 1981년 브릭스톤, 톡스테스, 브리스틀 등지에서 소요가 일어난 뒤에 다문화주의의 제도화가 다시 한 번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본다. 소요 사태는 경찰의 “제도화한 인종차별” 때문이었지만 스카먼Scarman이 이끈 조사단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들은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 공동체가 직면한 “인종적 불리함”이 문제라고 봤다. 따라서 영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아니라 사회 내 “문제 집단”을 겨냥한 해결책이 제시됐다. 이런 집단들을 문제시하는 것의 한 측면은 그들을 문화적 측면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인도제도 출신 가족들”이 불리한 이유는 그들의 문화 때문이었다. 즉, 아버지가 없고 롤모델이 부족한 그들의 문화가 저조한 학업 성취, 범죄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경찰의 인종차별적 불심검문과 인종차별적 편견이 반영된 학교 정학 처분에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 가족은 실패하는 문화적 성향이 있다”고 여겨지게 됐다.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들의 ‘생경한’ 문화가 그들이 빈곤한 핵심 이유라면 영국 사회는 자신의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을 것이다.”31 이런 의존 관계는 (이주민 집단들을 문화적으로 고립시키고) 일부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분열을 심화시키고 분노를 자아내기만 했다.
문화주의culturalism가 자원을 얻기 위한 근거가 됐다. 시바난단이 1980년대의 반反경찰 소요에 대한 정부 대책을 분석하면서 주장했듯이, “[정부 대책은 ― 옮긴이] 문화적 필요를 충족시켜서 불평등과 불의에 맞선 투쟁들을 그런대로 피해 가려 했다.” 특정 문화를 대표한다는 집단들에게 돈이 흘러 들어갔다. 다양한 집단들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혜택을 얻으려는 경쟁적 투쟁의 일부”가 되면서, 시바난단이 “문화주의 또는 인종주의ethnicism”라고 부른 것이 반인종차별주의를 대체했다.그로 말미암아 특정 인종의 필요와 문제를 근거로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정부 지원과 정부 보조금을 얻기 위한 쟁탈전이 일어났다. 그런 쟁탈전은 한편으로는 인종적 차이를 심화시키고 인종 간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종의 정의를 확장시켜 다양한 민족·종교 집단도 포함시켰는데, 중국인, 키프로스인, 그리스인, 터키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유대인, 무슬림, 시크교도도 인종에 포함시키다 보니 인종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다.(물론 정부 기금을 얻는 수단으로는 의미가 있었다.)이렇게 다문화주의가 국가 정책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즉 다문화주의의 공식적인 반反인종차별주의는 제도화한 인종차별에 전혀 도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록 다문화주의가 인종차별 반대 투쟁에 백인들을 더 폭넓게 참여시킨다는 시야는 때때로 협소했지만 말이다.
자본주의 덕분에 다문화주의가 회복된 것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문화비평가 슬라보예 지젝에게서 나왔다. 지젝은 다문화주의가 현재 상황에 대한 급진적 도전이기는커녕 세계화 시대 자본주의의 논리라고 주장한다. 일단 국민국가를 근거지로 삼은 자본주의가 그 필연적 결과로서 자신의 식민지 나라들과 식민 지배(복속시키고 착취하는) 관계를 맺고 나면, 이제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운동 과정의 최종 순간, 즉 “오로지 식민지들만 있고 식민 지배를 하는 나라들은 없는 식민화의 역설”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는 “식민화하는 권력이 더는 국민국가가 아니라 바로 세계 기업이다.” 따라서 지젝은 세계 자본주의가 이상적 형태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인 다문화주의를 만들어 낸다고 결론짓는다. 다문화주의는
일종의 공허한 세계적 입장에서 각각의 현지 문화를 다루는 태도인데, 마치 식민 지배자들이 식민지 주민들을 다루듯이, 즉 그들의 관습을 면밀히 연구하고 ‘존중해야’ 하는 ‘원주민’ 다루듯이 대하는 태도다. 다시 말해, 전통적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세계 자본주의의 자체 식민화의 관계는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와 다문화주의의 관계와 똑같다. 즉, 세계 자본주의가 식민 지배하는 본국이 없는 식민화의 역설을 포함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다문화주의는 멀리 떨어져 후원하는 유럽중심주의, 그리고/또는 특정 문화에 뿌리를 두지 않은 채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다문화주의는 인종차별이 자신을 부인否認하고 뒤집고 자기지시하는 형태, 즉 ‘거리를 둔 인종차별’이다. 다문화주의는 타자를 자기폐쇄적인 ‘진정한’ 공동체로 여기면서 타자의 정체성을 ‘존중한다.’ 다문화주의자는 그런 공동체와 거리를 유지하는데, 그런 거리 두기가 가능한 것은 다문화주의자가 특권적인 보편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는 인종차별 자체의 입장에서 구체적 내용을 모두 제거한 인종차별이다.(다문화주의자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다. 다문화주의자는 자기 문화의 특정한 가치들을 타자와 대립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문화주의자는 다른 특정한 문화들을 합당하게 인정할(그리고 깎아내릴) 수 있는 특권적이고 공허한 보편성의 요소로서 이런 입장을 유지한다. 다문화주의가 타자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형식이다.
그렇다면[이처럼 지젝에 따르면 ― 옮긴이] 다문화주의는 체제에 저항하기는커녕 체제와 공모하고 있다. 다문화주의는 인종차별 반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종차별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지배적 문화가 주장하는 거짓 보편성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찬찬히 따져보면 자본이 문화를 전유하고 종속시키는 데 이용하는 거짓 중립성임을 알 수 있다. 시바난단이 다문화주의를 비판한 이유가 정부 정책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면 지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문화주의를 국민적 자본주의 단계를 넘어선 최근 단계 자본주의의 필수적 공범으로 여긴다. 그 증거로 스카이텔레비전이 중국에서 현지 문화를 ‘존중’한 것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이 시장을 지배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문화주의가 간접적 인종차별이라는 증거는 히틀러 숭배자인 레니 리펜슈탈이 누바족을 ‘존중’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리펜슈탈의 사진은 누바족의 순수한 ‘타자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누바족과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더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닉 그리핀은 익살 조로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추구할 권리가 있듯이 영국 사람들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도 일종의 뒤틀린 다문화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젝의 주장은 도매금으로 싸잡아 매도하는 것인 듯하다. 문화적 우월성이라는 인종차별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다문화주의적 학습법을 지지하는 교사가 도대체 어떻게 세계 자본주의의 공범 노릇을 하는 ‘간접적’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평등주의와 다문화주의
35 이하는 배리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평등이라는 사상은 문화적으로 규정된 사상(서구의 사상)인가, 그래서 (비서구) 문화에는 적용될 수 없는가? 물론 서구 문화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유럽중심주의를 의심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평등과 관련해서 문제는 서구의 자유주의 사회 밖에서도 평등이 적용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의 자유주의 사회 내부가 결코 진정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문화주의 접근법은 이 점을 놓칠 수 있고 문화 간 대화를 추구하다가 일부 수상쩍은 결론에도 이를 수 있다. 배리는 이렇게 말한다. “각 문화가 저마다 자족적인 도덕적 세계를 이루고 있다”면 “어느 한 문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화 충돌을 다룰 여지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보편적 인권” 원리를 거부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실용주의로 빠지게 된다. 즉, 문화가 영향력이 있다면 그 문화의 가치들도 타당하다는 것이다(“일종의 결과론”). 따라서
문화주의의 문제점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평등주의적 비판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 브라이언 배리의 비판이 가장 영향력이 있다.그런 주장은 … 인권에 대한 관심이 지역적 편견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제기된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일부 나라들은 인권을 짓밟아 가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다수 다문화주의자들은 배리의 결론을 물론 거부하겠지만, 파레크조차 약간 수상쩍은 양보를 한다. 예를 들어, 파레크는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를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아시아 사회들은
사회적 조화와 응집력, 도덕적 합의, 가정의 화목, 경제 발전 같은 집단적 목표들을 추구하길 원한다. 그리고 이런 목표들에는 다양한 종류의 권리가 포함되고 자유주의 사회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보다 개인적 자유를 더 많이 제약하는 조처들도 포함된다. 비록 이 목표들 중 일부와 그에 따른 제약 조처들이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많이 받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목표들에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파레크는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가 동아시아 나라들의 지배자들이 문화적 전통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면, 현지 지배계급들의 정치에서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보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38 배리는 집단과 문화 사이에 무언가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반대로, 다문화주의자는 문화가 말하자면 타고난 것이고, 따라서 집단과 달리 마음대로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문화와 집단의 이런 차이점에는 분명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화도 모종의 집단적 권리가 있어서 그 문화 내의 개인들이 원하면 그 권리를 준수해야 한다는(따라서 그들이 원치 않으면 그 권리를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배리가 보기에 집단의 권리라는 생각은 심지어 해로울 수 있다. 그것이 문화 집단 성원들의 이견을 억누르거나 반동적 관행을 수호하는 데 사용된다면 말이다. 다문화주의 정책은 또한 자원 배분을 문화 집단에 맞춤으로써, 빈곤층 일반의 삶을 개선하려는 재분배 정책에 역행할 수 있는데, 문화 집단의 성원들 중 일부가 그런 자원을 다른 사회 성원들보다 더 많이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회와 자원의 전면적 평등을 지지하는 연합을 건설하기 위한 조건을 다문화주의가 얼마든지 파괴할 수 있다.” 39
배리의 일반적 주장은 건강한 자유주의가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옹호하므로 그런 자유주의만으로도 차별에 반대하는 충분한 보장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의 권리에 관한 한 배리는 다음과 같은 고전 자유주의의 견해로도 충분하다고 단언한다. 즉, “개인들은 자신의 소속 집단 외부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려고 만들어진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단체를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두 가지 단서가 붙는다. 하나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배리의 비판이 몇몇 효과적인 논점들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비판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한에서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자유주의적 견해다. 이 견해를 노동조합 운동에 적용하면 효과적 투쟁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약화된다. 집단적 전투성(그리고 그것을 추구할 ‘권리’)의 핵심은 바로 기업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노동자 투쟁의 집단적 권리 문제에서는 결함이 있다. 사실,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집단의 권리 문제에서 그렇다.
둘째 문제점은 보편성과 관련이 있다. 다문화주의 이론이 이 점에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리의 해결책이 옳은 것은 아니다. 보편성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즉,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국가는 보편적 가치들의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후진적 문화 관행에 맞서 보편적 가치들을 대변한다고 자처할 수 없다. 현대 의회 민주주의 국가가 아무리 자유주의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평등을 옹호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은 착취당하는 사람들과 억압당하는 사람들(그들의 문화가 무엇이든지 간에)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지배계급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국가일 뿐이다.
다문화주의와 투쟁
따라서 국가에 호소하기는 쓸모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앞서 언급한, 문화와 관련된 어려운 문제들에 비춰 보면 이 점은 분명하다. 다문화주의를 상대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진정한 다문화주의자는 아무도 억압적 관행이 ‘문화’의 일부라고 해서 그런 관행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문화주의자들이 정부의 상명하달식 주도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대안을 항상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부들이 야만적인 제국주의적 개입이나 국내에서 인종차별적 억압을 부추기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확실한 사실은 정부의 주도력이 모두 역효과를 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억압자에게서 나오는 주도력은 저항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40 위로부터 강요하는 변화를 지지하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 간의 아래로부터 단결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다. 또, 억압받는 공동체 내의 보수적 인사들(원로들)이 공격받는 문화의 수호자로 비치게 돼 그들의 권위가 강화될 것이다.
이 점은 여성 성기 절제 반대 투쟁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아프리카 정부들은 그 관행을 법으로 금지하려 했을 때 저항에 직면했는데, 특히 전후戰後 수단에서 조산사들이 정부의 금지 조처를 피하려는 부모들의 어린 딸들에게 성기 절제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을 때 그랬다. 더 최근에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성기 절제 시술 반대 운동을 벌이자, 그 시술을 받은 소말리아 여성이 이렇게 반발했다. “만일 소말리아 여성들이 변한다면 그것은 우리 소말리아 여성들에 의한 변화일 것이다. 그들[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한다면, 그것은 할례가 좋다고 생각하는 흑인이나 무슬림을 모욕하는 것이다. 조언은 좋지만 명령은 싫다.” 성공했던 경우 그것은 현지 활동가 집단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전통에 대한 도전은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나왔다.억압 문제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유럽 사회의 갈등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는데,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과 ‘후진적’ 무슬림이 대립하는 것이 그렇다. 지젝은 네덜란드의 무슬림 공동체에서 동성애 혐오 주장이 거세지자 이에 반발하는 동성애자 공동체가 점점 반反이민 민족주의 정당들 편으로 돌아서고 있는 현상을 논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적을 하고 있는데, “순전한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관용 노선”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물론 무슬림을 포함해 모든 사람은 종교적·성적 생활양식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단순한 주장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정치적 힘의 근본적 격차다.”
결국 긴장은 네덜란드의 상층 중간계급 동성애자들과 착취받는 가난한 무슬림 이주민들 사이에 조성돼 있다. 다시 말해, 무슬림의 반감을 사실상 부추기는 것은 동성애자들을 소수 특권층(무슬림을 왕따 취급하고 착취하는)의 일부로 여기는 무슬림의 인식이다.
지젝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즉 누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도 내놓는다.
따라서 우리는 동성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여러분은 이민자들을 사회적으로 돕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공산주의자가 하듯이 이민자들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투쟁을 조직하고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가? 따라서 그런 긴장을 해결할 방안은 다문화주의적 관용과 이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두 공동체를 모두 가로지르고, 각각을 모두 분열시켜서 내부 대립을 조장하고, 그러면서도 두 집단의 홀대받는 사람들을 단결시키는)을 추구하는 공동의 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통찰을 확장하면, 계급이 열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문화들의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의 수단으로 차이를 이용하는 자본주의의 한 경향에 맞서 싸우는 데서 자본주의의 다른 경향이 미치는 영향, 즉 자본주의는 그 피착취자들의 배경이 무엇이건 간에 그들이 핵심적 구실을 하도록 몰아간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지젝은 각 집단의 홀대받는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공동 투쟁의 명분으로 보편성을 내세우지만, 우리는 그 말을 바꿔서 유일하게 진정으로 보편적인 계급인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자본주의는 새로운 공동체들을 흡수하고 그들을 기존 공동체들과 나란히 착취라는 공통의 운명에 종속시킨다. 그러면 그 문화적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노동계급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서 엄청난 공통점이 형성된다. 그러나 착취 자체만으로는 오직 그림의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문화적 배경과 관계 없이 공통의 노동계급 이해관계를 얼마나 의식하게 될지는 착취에 맞선 투쟁의 규모에 달려 있다. 그러나 투쟁이 없을 때는 문화가 분열을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로 바뀔 수 있다. 지금 벌어지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격은 자본주의 사회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주민의 일부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능동적·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태도와 그것을 수동적·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태도 사이에 투쟁이 벌어진다. 그 둘 사이의 투쟁은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날 수 있는데,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이 옛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에 맞선 저항의 전통은 노동조합 투쟁과 좌파 정치의 영향력을 통해 구축됐고, 이 전통은 지배계급 사상의 헤게모니가 만들어 낸 수동성과 의존의 전통과 대립한다. 이런 사정은 기존의 공동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이주민 집단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 경향은 밖을 향하는 것이고, 다른 경향은 이른바 ‘전통’ 문화라는 안전 지대로 후퇴하는 것이다. 두 경향 중 어느 경향이 우세할지는 결정적으로 인종차별에 맞선 저항의 전통이 문화적 장벽의 파괴를 부추기는가 아니면 그런 장벽의 강화를 부추기는가에 달려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후진적인 문화적 관행에 맞서 싸운답시고 ‘계몽된’ 지배계급과 공모해서도 안되고, 문화적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관행을 용인해서도 안 된다. 문화적 자기 결정권을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문화 내의 후진적인 요소에 맞선 투쟁에도 헌신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열등한’ 문화에 반대해 ‘우월한’ 문화를 장려해서는 안 된다. 계급이라는 공통의 요인(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서로 섞어 주는)이 모든 반동적 관행에 맞선 아래로부터 공동 투쟁의 가능성을 창출한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어려운’ 문화 문제들과 씨름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출발점은 계급이지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억압자를 지지해서는 안 되고(그들의 문화가 아무리 ‘우월’하더라도) 항상 피억압자들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그들의 문화가 아무리 ‘후진적’일지라도 말이다.)
레닌, 문화, 민족주의
억압받는 민족의 민족자결권에 대한 레닌의 논의는 소수인종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누릴 자유에 관한 문제와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레닌의 적대감은 러시아 문화가 우월하다는 생각에 대한 확고한 적대감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는데, 레닌은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과 그들이 자신의 문화를 추구할 권리(예를 들어 비러시아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교육받는 것)도 옹호했다. 그렇다고 해서 레닌이 피억압 민족들의 민족주의에 무비판적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레닌은 단지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조야한 표현(예를 들어 대大러시아 국수주의)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세련된’ 부르주아 민족주의도 비판했는데, 레닌이 말한 세련된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피억압 민족의 ‘민족적·문화적 자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인즉, 이 세련된 민족주의는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이 억압 민족의 노동자들보다 ‘자기 민족’의 지배계급과 공통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결정적으로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 투쟁에서 계급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한 민족의 노동계급과 부르주아지를 단결시키고 다른 민족의 프롤레타리아끼리 서로 분열하게 한다.” 레닌은 더 나아가, 피억압 민족의 문화조차 계급 분단선을 따라 분열돼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민족 문화’가 아니라 국제 문화를 지지한다. 국제 문화는 각 민족문화의 일부만을 포함한다. 즉 각 민족 문화에서 일관되게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요소만을 포함한다. ‘민족적·문화적 자율’ 구호가 민족의 문화적 통일성이라는 착각으로 노동자들을 속이는 것과 반대로,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지주, 부르주아지, 쁘띠부르주아지의 ‘문화’가 지배한다. 우리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구호들 중 하나인 민족 문화에 반대한다. 우리는 완전히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의 국제 문화를 지지한다.레닌은 이러한 생각을 차르 치하 러시아의 유대인들의 지위에 적용했다. 그는 그들을 “가장 억압받고 박해받는 민족”으로 정의했다.(여기서 레닌이 말한 민족은 오늘날 의미로 ‘공동체’를 뜻한다.) 레닌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누릴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유대인 지도자들과 기업인이 내건 유대 민족 문화라는 구호에 반대하고 유대인들의 국제주의를 지지했다. 유대 민족 문화 구호는 유대인이라는 신분이 세계의 후진적 지역에 갇혀 있는 후진성의 반영인 반면, 유대인들의 국제주의는 유대인들이 현대 세계로 들어섰음을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레닌이 말했듯이 “[유대인들의 국제주의 구호에서] 유대 문화의 위대한 세계적·진보적 특징들이 드러난다. 즉, 유대 문화의 국제주의, 이 시대의 진보적 운동에 대한 지지 말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무슬림에게도 같은 주장을 적용할 수 있다. ‘민족적·문화적 자율’에 대한 레닌의 강력한 비판은 다문화주의를 비계급적 방식으로 개념화하는 것의 한계를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
문화와 보편주의
문화에 관련해서 마지막 고려 사항이 하나 남아 있다. 트로츠키는 문화의 모순된 성격을 지적했다. 인류를 자연에 대한 의존에서 해방시키는 기술과 정신적 능력은 모두 꾸준히 축적됐지만, 어느 시대건 착취자들이 그런 축적물을 독차지했다. 다시 말해, 문화는 보편적 혜택인 동시에 지배계급의 특수한 소유물이었다. 문화의 진보(더 정확히 말하면 진보 가능성)가 뜻하는 바는 계급투쟁이라는 동력 덕분에 보편적인 것이 확대되고 특수한 것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자본주의적 ― M21] 문화의 도래[18세기 말 이후 ― M21]는 엄청난 진보였다. 모든 개인들이 평등하며 자기 결정권을 갖는다는 생각은 사회 생활에서 암울하고 후진적이고 미신적인 것들 일체에 도전하는 기초였다. 그러나 이런 ‘보편주의’는 결코 부르주아 문화의 경제적 기초, 즉 끊임없이 점점 더 심화하는 착취에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르주아 문화는 ‘계몽주의’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야만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다녔다. 즉, 야만은 부르주아 문화가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이성적인’ 가치를 명분으로 부르주아 문화 득세 전의 문화를 박멸하는 것을 정당화한 방식이었다. 제국주의는 그런 이데올로기적 추진력의 가장 분명한 표출이었다. 그리고 최근 다시 돌아온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계몽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데 ‘실패’했다고 자신이 규정한 사람들과 문화들을 정복하고 악마화하고 있다.
다문화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이런 과정에 맞선 저항의 일환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가치가 계몽사상의 보편주의에서 유래했으므로 더 좋다는 생각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저항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를 추구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그런 옹호 자체가 계몽사상의 한 측면이다. 비록 그것이 후진적인 문화 관행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이성적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착취 자체라는 ‘비이성’에 어떻게 맞설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만 노동계급 혁명으로 계급사회가 최종 파괴돼 진정으로 보편적인 인류 문화가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특정 문화 내의 진보적 요소들이 모두 그 보편적 문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격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전망은 새로운 다문화적인 영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보편적 인류 문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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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areth Jenkins, ‘Culture and multiculturalism’, International Socialism 131(Summer 2011)
↩
- Cameron, 2011. ↩
- Griffin, 2011. ↩
- Dorling, 2005; Simpson 2005. 돌링은 “격리segregation”와 “고립isolation”을 구별하는데, “격리”는 “한 집단이 나라 전체에 고루 퍼지기 위해 현 거주지를 이전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로 측정되며, 이 비율은 “모든 소수자 집단에서 하락”하고 있다. 다른 한편, “고립”은 “특정 집단의 개인들이 자기 집단 내의 다른 개인들을 만날 빈도”로 측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장 “고립”된 집단은 기독교인들이며 무신론자들이 그 뒤를 잇는다. 그리고 가장 “격리”된 종교 집단은 유대교도와 시크교도이며 무슬림이 아니다. 통계를 볼 때 “영국에서는 어떠한 게토 지역도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돌링의 결론이다. Mahamdallie, 2005도 보시오. ↩
- Thatcher, 1978. 마거릿대처재단이 밝히고 있듯이, 그라나다 TV의 인터뷰 녹취록에는 [내가 인용한 BBC 자료의 문구(people of a different culture)와 약간 달리]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people with a different culture”로 나와 있다. ↩
- Barker and Beezer, 1983, p125. ↩
- In Ashley, 2006. ↩
- Pfaff, 2005. 이 점에 대한 더 상세한 논의로는 Modood, 2007, pp10-14를 보시오. ↩
- Phillips, 2005. ↩
- Warsi, 2011. 그래서 캐머런은 강경 우파의 주장, 즉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비타협적인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평화적이고 법을 지키면서도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무슬림들과 흉악한 지하드 전사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매개 구실을 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주장과 거리를 둔다. Melanie Phillips, Ashley, 2006에서 재인용. ↩
- Eagleton, 2007; Bennett, 2007. ↩
- 캐머런의 문화관觀을 논박한 마이클 로젠의 뛰어난 글은 Rosen, 2011을 보시오. ↩
- Eliot, 1948, p31. 의미심장하게도 엘리엇은 1930년대 초에 단일문화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고 ‘외국’ 문화의 존재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그가 살던 시대에는 무슬림이 아니라 유대인이 그런 위험 요인이었다.) “인구는 동질적이어야 한다. 즉, 둘 이상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에서는 그 문화들이 극히 내향적이 되거나 모두 불순물이 뒤섞이게 된다. … 인종적·종교적 이유들이 맞물려, 자유롭게 사고하는 많은 유대인을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로 만든다.” Eliot, 1934, pp19-20. ↩
- Orwell, 1971, p75. ↩
- Orwell, 1971, p81. ↩
- Ahmad, 2007, p1. ↩
- Ahmad, 2007, p2. ↩
- Ahmad, 2007, p2. ↩
- 나는 여성 할례female circumcision나 여성 성기 훼손female genital mutilation 대신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여성 할례라는 말은 그것이 남성 할례male circumcision와 문화적으로 비슷함을 함축하는 반면, 여성 성기 훼손이라는 말은 그런 관행에 문화적 의미가 없음을 함축한다. 두 용어 모두에 대해 논란이 지속돼 왔다. ↩
- Althaus, 1997, pp130-131. ↩
- Althaus, 1997, p132. ↩
- 이 부분은 크리스 하먼의 연구에 빚지고 있다. ↩
- 나는 뒤에 이어질 내용에서 캐나다 정치철학자 윌 킴리카의 연구를 무시했다. 그의 연구는 선구적이긴 하지만, 새로 온 이주민 공동체들(유럽의 다문화주의가 형성된 조건)의 권리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정착한 집단들(예를 들어,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권리를 다루는 데 방향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로는 Modood, 2007, pp3-9를 보시오. ↩
- The Parekh Report, 2000, pix. 파레크 보고서Parekh Report는 ‘다인종 영국의 미래에 관한 위원회a commission on the future of multi-ethnic Britain’ — 러니미드 트러스트[인종 평등을 추구하는 영국의 독립 싱크탱크 ― M21]가 설립하고 파레크가 의장을 맡은 — 에 기고한 여러 사람들의 합작품이다. 이 인용문은 파레크의 이름으로 작성된 머리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고서 전반은 파레크의 생각을 보여 준다. 또한 Modood, 2007를 보시오. 다문화주의에 대한 그의 분석도 파레크의 분석과 유사하다. ↩
- Parekh, 2000. 파레크는 이 책의 한 장章에서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일원론적 전통을 길게 살펴보는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개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와 다양성을 옹호한 19세기의 위대한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조차 행복한 삶의 열쇠는 오직 자유주의에만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파레크는 그 장을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끝맺는다. 모든 형태의 도덕적 일원론은(그는 마르크스주의도 여기에 포함시킨다) “자신이 선호하는 생활양식 밖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여겨 다른 생활양식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거나 아니면 평화적 수단이나 폭력적 수단으로 다른 생활양식을 [자신이 선호하는 생활양식에 ― 옮긴이] 동화시키려 한다.”(p49). ↩
- 파레크는 특히 여성 할례와 일부다처제를 다룬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악마의 시》에 대한 무슬림의 비판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논의한다. ↩
- 이런 사례의 하나는 Modood, 2007에서 볼 수 있다. Modood의 해석, 즉 문화는 본질주의(문화를 어떤 단일한 획일적 실체로 보는)적으로 이해해서도 안 되고, 내적으로 너무 이질적이어서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이해해서도 안 된다는 관점은 세속주의와 종교에 대한 그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매우 유용하다(비록 프랑스 상황과 무슬림의 히잡 착용 문제에 대해서는 파레크의 분석이 훨씬 더 풍부하고 정교하지만). 그러나 다문화주의적 정책 제안에 집중하는 Modood의 해법은 좌파 정치인들(그는 고든 브라운도 여기에 포함시킨다!)이 보이는 관심을 이용해 더 포용적인 국민적 정체성을 창출하려는 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
- 특히 Sivanandan, 1990를 보시오. 《저항의 공동체들Communities of Resistance》에 수록된 글들은 대부분 처음에 《인종과 계급》 저널에 실렸다. 시바난단은 이 저널의 초대 편집자였다. ↩
- Sivanandan, 2006. ↩
- Sivanandan, 1990, p80. 여기에도 젠킨스의 연설이 인용돼 있다. ↩
- Kundnani, 2007, p45. ↩
- Sivanandan, 2006. ↩
- Sivanandan, 1990, p94. ↩
-
예를 들어, 반나치동맹Anti Nazi League에 대한 논평(Sivanandan, 1990, pp88-89)과 노동조합원들(함축적 의미상 ‘백인’)이 1976-77년의 그런윅Grunwick 파업 투쟁*을 장악해서, “그들 자신의 관심사를 충족시키려고”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했고 그래서 그 투쟁을 망쳐 버렸다는 주장(Sivanandan, 2006)을 보시오.
* 필름 가공업체인 그런윅 공장에서 주로 아시아계 여성 이민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 임금 격차 해소, 인종차별 중단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 ↩ - Žižek, 1997, p44. ↩
- Barry, 2001a; 또, 파레크 보고서를 즉시 반박하려고 쓴 배리의 글도 보시오. Barry, 2001b. ↩
- Barry, 2001a, p281. ↩
- Parekh, 2000, p139, 강조는 나의 것. ↩
- Barry, 2001a, p148. ↩
- Barry, 2001a, p325. ↩
- Althaus, 1997, pp130-132. ↩
- Žižek, 2011, p138. ↩
- Lenin, 1963, p116. ↩
- Lenin, 1964, p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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