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기획연재: 왜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에 빠지는가

마르크스의 경제위기론과 그에 대한 비판 *

MARX21

  • 출처: Chris Harman, Explaining the Crisis: A Marxist Re-Appraisal, Bookmarks, 1999, chapter 1 Marx’s theory of crisis and its critics.

  1. Karl Marx, Grundrisse (London 1973), p. 623, 637[국역: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그린비, 2007].
  2. Marx, Capital: One, p. 645. 이하의 《자본론》 인용문은 모두 모스크바판에서 인용한 것이다.
  3. 그렇다고 해서 취업 노동자들이 갈수록 더 빈곤해질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알고 싶으면 로스돌스키의 설명을 보라. The Making of Marx’s Capital (London 1977), pp. 300-303[국역: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 백의, 2003].
  4. Grundrisse, p. 749.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자본론》 사이에는 어느 정도 논조의 차이가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은 경제 위기가 한창일 때 급히 저술한(마르크스는 당시 경제 위기가 체제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미출간 저작인 반면, 《자본론》 세 권은 그 초고를 다시 고쳐 쓰고 편집 체제를 재구성하고 자료와 논지를 더 신중하게 다듬은 (미완성) 저작이다. Rosdolsky, The Making of Marx’s Capital을 보라.
  5. Marx, Capital: One, p. 6.
  6. 예를 들어,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December 1979에 실린 토머스 와이스의 논문을 보라.
  7. 예를 들어, 폴 배런과 폴 스위지가 주장한 독점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 존 해리슨, 이언 스티드먼, 제프 호지슨, 앤드류 글린 등 피에로 스라파의 영향을 받은 신리카도 학파, 그리고 이 스라파 추종자들을 비판한 봅 로손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8. Ben Fine and Lawrence Harris, Rereading Capital (London 1979), p. 64[국역: 《현대 정치경제학 입문》, 한울, 1985].
  9. Marx, Capital: Three, p. 236-237.
  10. Marx, Capital: Three, p. 237.
  11. Marx, Capital: Three, p. 245.
  12. Marx, Capital: Three, p. 248.
  13. Marx, Capital: Three, p. 208.
  14. Marx, Capital: Three, p. 622.
  15. 마르크스는 유기적 구성을 c/v(c=불변자본, v=가변자본)라는 대수적代數的 공식으로 나타냈다. 벤 파인과 로런스 해리스는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에게는 더 뚜렷한 개념인 ‘자본의 가치 구성’이라는 개념(소비된 노동력의 현재 가치 대 소비된 생산수단과 생산 재료의 현재 가치의 비율)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요점은 소비된 자본의 현재 가치가 최초의 투하 가치와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소비된 자본의 가치는 투자된 자본의 가치보다 작아지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자본이 증가할수록 자본 각 단위를 생산하는 데 드는 사회적 필요노동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Fine and Harris, pp. 58-60을 보라.
  16. Marx, Capital: One, pp. 786-787.
  17. 이것은 노동가치론의 귀결이다. 여기서 노동가치론의 타당성을 놓고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독자들은 힐퍼딩이 (뵘바베르크의 영어판으로 재출간된) Karl Marx and the Close of his System[국역: 《노동가치론 논쟁》, 학민사, 1985]에서, 그리고 부하린이 The Economic Theory of the Leisure Classes에서 한계효용학파에게 응답한 내용과 International Socialism, 2nd series, 3호와 4호에서 벤 파인과 로런스 해리스, 그리고 피트 그린이 스라파 학파에게 응답한 내용을 참조하라.
  18. 착취율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착취율이 변할 때 어떻게 되는지는 나중에 볼 것이다.
  19. ‘Alternative perspectives in Marxist theories of accumulation and crisis’, in The Subtle Anatomy of Capitalism, ed. Jesse Schwartz (San Diego 1977), pp. 207-208. 또한 Phillippe van Parijs, ‘The Falling Rate of Profit Theory of the Crisis, a rational reconstruction by way of an obituary’, in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y 12:1 (Spring 1980), pp. 3-4를 비교해 보라. 나는 파레이스가 명백히 성급한 매장 사건의 방조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0. Marx, Capital: Three, p. 269.
  21. 예를 들어 에르네스트 만델은 그의 저서 Late Capitalism (London, 1975), p. 11[국역: 《후기 자본주의》, 한마당, 1985]에서 경제 위기를 겪고 나서 갱신된 고정자본은 “기술 수준이 더 높고”, 따라서 “유기적 구성이 상승한다”고 단언한다.
  22. Marx, Capital: One, pp. 788-789.
  23. Marx, Grundrisse, pp. 750-751.
  24. Michael Kidron, Western Capitalism since the War (London 1968),p.46.
  25. Marx, Capital: Three, p. 280.
  26. 이 주장은 보통 “마르크스를 넘어서야 한다”는 말로, 그리고 생산 과정의 투입물의 가치를 산출물뿐 아니라 가격으로도 전형시킬 필요를 고려해야(마르크스는 그러지 않았으므로) 한다는 말로 표현된다. 흔히들 20세기 초 폴란드 경제학자 폰 보르트키예비치가 이 ‘전형轉形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앤드류 글린은 폰 보르트키예비치의 “생산가격과 이윤율에 대한 연립방정식 해법은 자본가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기술을 도입하면 실질임금이 변하지 않는 한 이윤율은 사실상 상승할 것임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Bulletin of CSE, Autumn1973.)
  27. 이 점은 앤드류 글린이 ‘곡물 모델’을 사용해 이윤율 저하를 반박하려 했을 때 로빈 머리가 글린을 비판하면서 지적한 바 있다.(CSE Bulletin, 1973.)
  28. Fine and Harris, p. 59. 내가 “그들은 … 주장한다”고 말한 이유는 마르크스가 그들만큼 명료하게 구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Capital: One, pp. 774-775를 보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구별이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불행히도 그들 자신은 그러한 구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모두 끌어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나중에 “유기적 구성이 현재 가치로 평가돼야 하는지 아니면 역사적 가치로 평가돼야 하는지에 대한 글린과 머리 사이의 논쟁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p.61)고 말하면서 뒷걸음치는 듯하다.
  29. 최초 투자 비용을 사용해 계산한 이윤율 공식은 r=s/(c+v)다.
  30. 물론 잉여가치가 전혀 생산되지 않아 불변자본의 감가상각을 간신히 충당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또, 소량의 잉여가치가 생산돼 자본가 계급과 그 측근들의 소비를 충당하는 데는 사용되지만 투자에는 쓰이지 않는 더 구체적인 경우(나중에 살펴보겠다)도 있다.
  31. 여기서 오키시오와 히멀웨이트의 수학적 논증에 대한 반증 하나, 즉 안와르 셰이크의 주장(Anwar Shaikh, ‘Political Economy and Capitalism: Notes on Dobbs’ Theory of Crisis’,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Vol. 2, No. 2 (June 1978))을 살펴볼 만하다. 셰이크는 다른 반증들이 고정자본의 존재를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는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셰이크의 수학적 반증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 셰이크는 한 생산 주기로 회전하는 자본이 새 기술의 도입으로 몇 번의 생산 주기를 가진 자본으로 바뀌는(즉, 생산 주기가 1에서 n으로) 경우를 예로 든다. 이런 상황에서 고정자본에 대한 이윤율은 틀림없이 하락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전 기간이 같은 더 큰 고정자본이 있을 때 이윤율이 반드시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32. Marx, Capital: Three, pp. 227 이하를 보시오.
  33. Marx, Capital: Three, p. 234. 이 점에 대한 마르크스의 주장을 온전히 설명한 것으로는 Rosdolsky, p. 398 이하를 보시오.
  34. Sweezy,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 (London 1946), pp. 101-102[국역: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 필맥, 2009].
  35. 이를테면, Okishio, ‘A Formal Proof of Marx’s Two Theorems’, Kobe University Review, No. 18, 1972를 보라. 또한 Ian Steedman, Marx After Sraffa (London,1977)과도 비교해 보시오.
  36. I. Steedman, Marx After Sraffa, p. 64. 또한 pp. 128-129를 비교하시오.
  37. Bulletin of the Conference of Socialist Economists (Autumn 1973), p. 103.
  38. Harrison, Marxist Economics for Socialist (London, 1978), p. 103.
  39. ‘Technical change and the rate of profit’ in Kobe University Economic Review (1961), p. 85 이하.
  40. Bulletin of CSE (Autumn 1974).
  41. “만약 1노동시간이 6펜스로 표시된다면, 12시간의 1노동일에는 6실링[1실링은 12펜스 — 옮긴이]의 가치가 생산될 것이다. 현재의 유력한 노동생산성으로 이 12노동시간에 12개의 상품이 생산된다고 가정하고, 이 상품 한 개에 소비되는 원료와 기타 생산수단의 가치가 6펜스라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상품 1개의 가치는 1실링이다. 즉, 6펜스는 생산수단의 가치이고 6펜스는 이 생산수단을 가공할 때 새로 부가된 가치다. 이제 어떤 자본가가 노동생산성을 갑절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 가정하자. 만약 생산수단의 가치가 변하지 않았다면 상품 1개의 가치는 이제 9펜스로 떨어질 것이다. … 노동생산성이 갑절로 됐는데도 1노동일은 전과 마찬가지로 6실링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다만 이 새로운 가치가 이제는 갑절의 생산물에 분배될 뿐이다. … 이 상품의 개별 가치는 이제 그 사회적 가치보다 낮다. 즉, 이 상품에는 사회적 평균 조건 하에서 생산된 대다수의 같은 상품들보다 더 적은 노동시간이 들어 있다. … 그러나 상품의 현실적 가치는 그 상품의 개별적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다. 다시 말하면, 상품의 현실적 가치는 각각의 경우 생산자가 그 상품에 실제로 소비하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그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측정된다. 따라서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는 자본가가 자기 상품을 그 사회적 가치인 1실링으로 판매한다면, 그는 그 상품을 개별적 가치보다 3펜스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것이고, 따라서 3펜스의 특별 잉여가치를 실현하게 된다.”(Capital: One, pp. 316-317.)
  42. 이 사례의 3단계를 보면, 글린, 해리슨, 오키시오, 히멀웨이트의 주장이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만약 어떤 종류의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이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어서 대체할 기업이 없다면, 그 기업은 새 기술을 도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술 도입으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하고 이윤율이 저하한다면 말이다. 그 기업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상승시키도록 자극하는 유일한 요인은 노동비용의 상승일 것이다. 노동비용이 상승하면 이윤율은 떨어질 테니까 말이다.
  43. 이 점은 Fine and Harris, pp. 84, 60-61에서 잘 다루고 있다.
  44. Marx, Capital: Three, p. 244.
  45. Marx, Capital: Three, p. 244.
  46. 이것은 이 책의 보론에서 다루는 ‘장기파동’, ‘구조적 위기’, ‘헤게모니 위기’ 이론가들이 제시한 주장의 함의다. 그것은 또, 파인과 해리스가 발전시킨 견해의 함의이기도 한 것 같다. 비록 그들의 견해는 많은 부분에서 지금까지의 내 주장들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말이다.[‘보론’을 보고 싶은 독자는 Chris Harman 1999, Explaining the Crisis: A Marxist Re-Appraisal, Bookmaks, pp 122-154를 보시오. — 옮긴이]
  47. 이것은 복잡한 과정을 매우 개략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더 자세히 다룬 것으로는 Nigel Harris, ‘World Crisis and the Systems’, IS, old series, 100, 그리고 ‘Asian Boom Economies’, IS, 2nd series, 3을 보시오. 또한 Chris Harman, ‘Poland and the Crisis of State Capitalism’, IS, old series, 93-94를 보시오. 그리고 Nagel Harris, Of Bread and Guns (Penguin 1983)도 보시오.
  48. 체제의 노화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마이클 키드런이 발전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The Wall Street Seizure’, IS, old series, 44를 보시오.
  49. Marx, Capital: Three, chapter 14, pp. 232-233.
  50. Len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국역: 《제국주의론》, 백산서당, 1986]을 보라. 이에 대해 브라운(Barratt Brown, Essays in Imperialism, p. 35)과 키어넌(Kiernan, Marxism and Imperialism, p. 29)은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 해외투자로 영국에서 빠져나간 자금보다 더 많은 돈이 이자로 되돌아왔으며, 따라서 이 자금 유출은 투자처를 찾는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방법이 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처음에 해외투자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영국에는 투자처를 찾는 자금 풀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투자 수준도 더 높았을 것이고, 따라서 유기적 구성도 올라갔을 것이다. 이 추가 투자는 해외투자와 마찬가지로 영국에 소득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리 되면, 전에 투자처를 찾던 많은 잉여가치가 유출되고 난 후의 실제 유기적 구성보다 더 높은 유기적 구성 상황에서 영국 내 투자처를 찾는 자금도 더 많았을 것이다. 결국 해외투자로 빠져나간 자금보다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됐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해외투자는 영국의 축적 문제를 완화시켰다.
  51. 이 점과,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체제를 안정화하는 데서 역사적으로 일시적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저작 The Accumulation of Capital의 커다란 장점이다. 그러나 그녀는 제국주의가 이윤율에 미치는 효과라는 측면에서 제국주의의 구실을 보지 않았다. 룩셈부르크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R. Luxemburg and N. Bukharin, Imperialism and the Accumulation of Capital (London, 1972)에서 부하린 편과, Tony Cliff, Rosa Luxemburg (London, 1980)[국역: 《로자 룩셈부르크》, 북막스, 2001]을 보시오.
  52. Len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te of capitalism 그리고 Nicolai Bukharin, Imperialism (London, 1972).
  53. 레닌과 부하린은 군비 지출이 마르크스의 법칙에 미치는 효과를 주목하지는 않은 듯하다.
  54. Shane Mage, The ‘Law of the Falling Rate of Profit’, its place in the Marxian theoretical system and its relevance for the US Economy (PhD thesis, Columbia University, 1963), p. 228.
  55. Marx, Grundrisse, pp. 750-751.
  56. ‘Rejoinder to Left Reformism’, IS, old series, 7 (Winter 1961-62)를 보라.
  57. IS, old series, 27, p.10,
  58. Kidron, Capitalism and Theory (London, 1974), p. 16.
  59. Kidron, Capitalism and Theory, pp. 16-17. 처음에 키드런은 ‘누출’이 자본 집약적 재화의 누출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동 집약적 재화의 누출은 반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인정했듯이, 둘 중 어느 형태의 누출도 추가 투자에 쓰일 수 있는 잉여가치의 양을 감소시킬 것이고, 따라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과 이윤율 저하를 상쇄할 것이다.
  60. Ernest Mandel, The Inconsistencies of State Capitalism (London, 1969), pp.4, 6.
  61. Ernest Mandel, Late Capitalism, p.288.
  62. Ernest Mandel, Late Capitalism, p.289. 그가 언급한 논문은 ‘The Inconsistencies of Ernest Mandel’, in IS, old series, 41이다.
  63. 키드런 자신도 문제를 약간 혼동하고 있다. 그는 비생산적으로 소비되는 상품을 창조하는 노동 자체는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한다. 나는 이 정의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IS, old series, 76의 Capitalism and Theory에 대한 내 평론을 보시오.)
  64. 이것은 데이비드 야페의 지지자들이 영국 국제사회주의자 단체(International Socialists) 내에 있을 때, 보르트키예비치를 원용하는 주장을 송두리째 비판한 논거였다. 예를 들어 Dan Siquerra, ‘Marx, Bortkiewicz and IS’, IS Internal Bulletin (April 1972).
  65. 보르트키예비치의 공식은 결국 체제의 총이윤은 총잉여가치와 같지 않다거나 총가격은 총가치와 같지 않다고 시사했다. 보르트키예비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노동가치론이나 이윤율 추세와 관련해 노동가치론에서 끌어낸 결론은 대체로 쓸모없음이 입증됐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66. 특히, 연립방정식의 사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산이 ‘연립적으로’(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일어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다.
  67. Anwar Shaikh, in Jesse Schwartz, ed., The Subtle Anatomy of Capitalism, pp. 106 -107; Miguel Angel Garcia, ‘Karl Marx and the formation of the average rate of profit’, International Socialism, 2nd series, 5. 두 글 모두에서 총가치와 총가격의 괴리, 총이윤과 총잉여가치의 괴리가 나온다. 이러한 괴리의 이유는 전혀 신비할 게 없다. 평균가격은 유기적 구성이 상이한 서로 다른 자본들 사이에서 이윤율이 균등화할 때 형성된다. 높은 유기적 구성으로 생산된 생산물들의 가격은 그 가치보다 높고, 낮은 유기적 구성으로 생산된 생산물들의 가격은 그 가치 이하로 떨어진다. 노동자들의 소비재가 높은 유기적 구성으로 생산된다면, 그 가격은 가치 이상으로 상승하겠지만, (사치재나 생산수단처럼) 자본가들에게 가는 상품은 가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회적 생산물의 계급 간 분배는 약간 달라질 것이고, 총이윤도 달라질 것이다. 방정식에서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총가격은 총가치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마르크스는 ‘논박당한’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의 차이는 임의적이지 않다. 후자는 전자에 의존하며, 이론상 후자는 전자로부터 계산될 수 있다. 셰이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Marx’s theory of value and the transformation problem’, in J. Schwartz, The Subtle Anatomy of Capitalism, p. 125에서). “먼저 가격이 가치에 비례한다면, 한 부문의 총가격은 그 부문의 유기적 구성도가 사회적 평균보다 더 낮은지(또는 더 높은지)에 따라 그 부문의 화폐 비용가격에 비해 하락(또는 상승)하게 마련이다. 그 부문의 특정한 화폐 이윤율이 일반 이윤율과 일치한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격이 가치와의 엄격한 비례에서 벗어나면 일반적 화폐 이윤율이 일반적 가치 이윤율과 계속 동일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 상품의 가격 총계는 사회적 생산물을 형성하는 상품들의 총 가격이다. 반대로 비용가격의 총계는 전체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상품들(생산수단과 노동력)의 총가격이다. … 비용가격의 총계는 사실상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의 총가격이다.” 그 경우에는 상대가격이 조금만 변해도 총 화폐 이윤이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총 화폐 이윤은 화폐로 환산한 생산물의 총비용에 달려 있는데, 이 비용은 가치로 환산한 생산물의 총비용과는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셰이크는 그 편차가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가치론과 자본주의 동역학의 전반적 타당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생산에서 유래하는 가치와 유통 과정에서 가치가 취하는 형태인 화폐가격을 신중하게 구별”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구별하고 나면, 화폐의 크기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치 크기와 항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p.125.) 왜냐하면 “직접가격[가치에 비례하는 가격]과 생산가격의 편차처럼, 가치 이윤율과 화폐 이윤율의 편차는 체계적이고 확정적이기 때문이다. … 화폐 이윤율이 가치 이윤율과 함께 변할 것이라는 점은 증명할 수 있다.”(p.134.)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가치 이윤율의 추세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 가치 이윤율은 다시 화폐 이윤율의 추세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 자신이 다음과 같이 주장한 이유였다. “가격이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사회적 자본의 운동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개별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가치의 몫이 그들 각각의 투자나 그들 각각이 생산한 잉여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환되는 총생산물의 양에는 변화가 없다.”(Marx, Capital: Two, p.393.) 그러나 셰이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개별 자본의 관점에서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 상이한 가치 형태들은 개별 자본에 상이한 효과를 미치며, 이 상이한 효과는 축적과 재생산의 역동적 과정에 대해 상이한 함의를 지니게 된다. 체제는 화폐가격의 실제 움직임을 통해 조절된다. 따라서 생산가격 및 생산가격과 가치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구체적 분석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 길을 따라가는 첫 단계(‘전형 문제’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 유일한 단계)는 직접가격에서 생산가격을 도출하는 것이다.”(Shaikh, p. 127.) 오키시오도 1974년 논문에서 셰이크와 동일한 주장을 했다.(‘Value and production price’, Kobe University Review, 1974, pp. 1-2.) 오키시오는 마르크스의 표식을 확장해서 다음을 보여 준다. “비용가격의 생산가격으로의 전형을 고려할 때는 마르크스의 두 번째 명제, 즉 모든 부문의 총잉여가치는 총이윤과 동일하다는 명제가 대체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총잉여가치는 120이지만 총이윤은 114인 경우를 예로 든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이윤율이 균등화하면 생산가격으로 환산한 비용가격이 가치로 환산한 비용가격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오키시오는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례에서, 제II부문은 임금재 부문이고, 제I부문은 생산재 부문이다. 제II부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평균보다 낮고, 제I부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평균보다 높다고 가정하면, 제II부문의 생산가격은 그 가치보다 낮고, 제I부문의 생산가격은 그 가치보다 높다. 따라서 각 부문에서 생산가격으로 환산한 불변자본 부분의 평가액은 그 가치보다 높고 가변자본 부분의 평가액은 그 가치보다 낮다.” “우리의 사례처럼, 불변자본이 가변자본 전체보다 더 크다면, 비용가격을 생산가격으로 평가할 때 비용가격 전체의 총계는 증가한다.” 그러나 “가치로 측정된 잉여생산물의 양을 생산가격으로 다시 계산하면 … 이것은 생산가격으로 이미 계산된 총이윤과 동일하다. … 120과 114라는 양이 다른 이유는 동일한 잉여생산물을 다르게 계산했기 때문이다. 즉, 전자는 가치로 그리고 후자는 생산가격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다를 뿐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이 이윤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p.6.) 가치의 가격으로의 전형 문제를 셰이크와 매우 비슷하게 설명한(비록 출발점은 달랐지만) 가르시아가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의 ‘편차’라는 문제를 피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그는 전형 과정에서 착취율(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의 측정 단위, 즉 잉여가치율)이 변한다고 가정한다. 이것은 현실적인 가정이다. 가치의 가격으로의 전형은 노동자들이 실질임금으로서 소비하는 사용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재화들의 가격에는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사회 전체의 부에서 노동력에 지출돼야 하는 비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르시아의 계산과 셰이크·오키시오의 계산이 다른 것은 사실은 설명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가르시아의 방법은 이윤율을 좌우하는 것이 기본적 가치 관계라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가르시아의 두 번째 논점은 생산수단 생산 부문과 임금재 생산 부문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실제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는 것이다. 생산수단 중에는 아주 높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으로 생산된 몇몇 품목(예를 들어 강철 제품)도 있지만, 원료와 반제품(노동집약적으로 생산되는)도 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생산물은 생산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고 임금재로 쓰일 수도 있다.(전기, 석유, 식료품 — 이것들은 동물을 사육하거나 공장에서 가공 처리될 때는 생산수단이고, 노동자들이 직접 구매할 때는 임금재다 — 건물, 자동차 등등.)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가르시아의 주장은 지나치다. 그는 사치재 부문의 유기적 구성이 평균보다 높은 상황에서 이윤율을 분석할 때는 자신의 방법에서 결론을 끌어내지 못한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다.
  68. 제III부문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이 미치는 이 독특한 효과는 폰 보르트키예비치가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립방정식 해법 때문에 폰 보르트키예비치는 평균 이율율이 먼저 하락했다가 상승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하락과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서 서로 상쇄한다고 보게 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발견한 제III부문의 효과를 간단히 일축해 버린 여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실수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69. Marx, Capital: One, p. 544.
  70. Marx, Capital: Three, p. 293.
  71. Marx, Capital: Three, p. 296.
  72. 일국적 수준에서 자본주의에 조언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국가지출의 ‘수익률’을 산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고등교육에 대한 로빈스Robbins 보고서”를 보라.
  73. Mike Kidron, Western Capitalism since the War (London), 1968), p.40.
  74. N. Bukharin, ‘Address to the Fourth Congress of the Comintern’, in Bulletiin of The Fourth Congress, vol. 1, Moscow, 24 November 1922, p. 7.
  75. 내가 ‘새로운’ 차원의 경쟁을 말한 것은 전에는 그런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자본주의 초기의 ‘중상주의’ 시대에 자본주의는 국가의 활동에 긴밀하게 의존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고전학파 정치경제학자들을 따라, 자본주의가 자립적 체제가 되면 이런 의존이 쇠퇴할 것이라고 보았다. 요점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서자, 국가에 의존하는 현상은 마르크스가 예견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증대했다는 것이다.
  76. Marx, Capital: Three, pp. 292-294.
  77. 예를 들어, Mandel, Late Capitalism, p.292~293을 보라.
  78. Western Capitalism since the War (London, 1968)과 Capitalism and Theory, (London, 1974)에서 마이크 키드런이 한 주장과 내가 ‘Better a Valid Insight than a Wrong Theory’, IS, old series, 100에서 응답한 것을 보라.
  79. 1943~44년에 독일과 영국 모두 그랬다. 또, 스탈린 치하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소련과 관련해 이 주장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것으로는 Tony Cliff, State Capitalism in Russia (London, 1974)[국역: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국가자본주의론의 분석》, 책갈피, 2011]를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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