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알렉스 캘리니코스 2011년 방한 강연 (2)
대담: 오늘의 세계와 혁명적 좌파
이 글은 알렉스 캘리니코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 한국의 혁명적 좌파 활동가와 나눈 대담을 녹취한 것이다.
Q 먼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에 관한 질문이다. 당신의 공황론과 브레너의 공황론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당신의 공황론에 입각해서 오늘날의 경제 위기를 설명한다면?
1960년대에 선진국의 이윤율이 상당히 하락했다는 브레너의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그렇게 하락한 이윤율이 그 뒤로 단지 부분적으로만 회복됐다는 브레너의 주장도 옳다고 생각한다. 1973년 이후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이 낮았던 것도 이런 이윤율 하락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윤율 하락에 대한 그의 이론적 설명이다. 브레너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증가가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설명을 기각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 1인당 설비 투자 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증가해 이윤율이 저하한다는 것이다. 브레너는 이런 설명을 기각하면서 다양한 이론들을 절충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이윤에 관한 신리카도주의 이론도 차용하고, 자본의 감가상각이 상이한 시대의 다양한 자본들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은근슬쩍 차용하기도 한다. 나는 1990년대 말에 이러한 브레너의 이론을 비판한 글을 쓴 바 있다. 요컨대 나는 브레너의 경험적 연구 결과에는 동의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이윤율 저하와 오늘날의 경제 위기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오늘날에는 세계 각국이 갈수록 금융시장 거품에 의존해서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이윤율이 비교적 낮은 상황이므로 자본주의의 관리자들은 경제성장을 달성할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결국 이들이 찾아낸 방법은 금융시장 거품 덕에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돈을 더 많이 빌리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이러한 구실을 한 가장 최근의 거품은 미국의 주택시장 거품이다. 이 거품이 터지자 서구의 금융 시스템은 거의 파멸 직전까지 갔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지금 이토록 심각하고 장기화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Q 지배계급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갖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치 전략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그들에게는 아무런 전략이 없는 것 같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지배자들이 하는 일을 보면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단적으로 미국은 오바마와 의회 사이의 정신 나간 싸움 탓에 조만간 디폴트를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편 유럽 부채 위기를 해결하려는 유럽연합 지배자들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서구 경제의 양대 축이 실질적인 정치적 리더십 없이 굴러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국이 세계경제를 떠받쳐 줄 것이라는 암묵적 기대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중국 경제는 세계경제의 구원투수가 되기에는 여전히 규모가 너무 작다. 게다가 중국 경제 자체도 과잉 축적 위기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정황들을 보면 세계 자본주의는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Q 당신은 제국주의를 논하면서 고전적 제국주의론 이외에도 세계화론이나 ‘제국’론 등을 다루는데, 그 이유는 고전적 제국주의론이 오늘날의 현실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급진 사상 조류에 연대감을 표하는 차원에서인가?
먼저, 미국 제국주의가 무력으로 자신의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상황이 도래하면서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해졌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이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그에 관한 저작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제국주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해져서 제국주의에 관한 다양한 이론적 논의들에 대응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또한 이 다양한 이론들이 대부분 고전적 제국주의론을 기각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고전적 제국주의론 자체를 검토할 필요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하트와 네그리는 ‘제국주의는 끝났다’고 말하는데, 이때 그들이 말하는 제국주의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론이 말하는 제국주의다.
최근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 이론을 재해석한 책[《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책갈피, 2011 ― 옮긴이]을 냈다. 그 책에서 나는 고전적 제국주의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했다. 나는 특히 레닌과 부하린이 각각 살짝 다르게 정식화한 제국주의론이 과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가장 설득력 있다고 본다. 그러나 레닌과 부하린의 이론에도 중요한 약점이 하나 있다. 둘 다 루돌프 힐퍼딩이 《금융자본》[국역: 《금융자본론》, 비르투, 2011 ― M21]에서 분석한 특수한 자본주의 형태에서 제국주의가 비롯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힐퍼딩이 말한 금융자본은 은행들이 산업을 지배하는, 오늘날로 치면 ‘조율된 자본주의’라고 부를 만한 자본주의 형태의 특수한 사례였다. 그런데 이렇게 제국주의를 금융자본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이론에는 항상 문제가 있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에서는 단 한 번도 은행이 산업을 지배한 적이 없었다. 20세기 후반 미국이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로 떠오르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미국 경제는 갈수록 금융자본 모델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자본론과 결부된 제국주의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이 점은 몇십 년 전에 조반니 아리기가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제국주의를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결합으로 이해하는 훨씬 더 추상적인 정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제국주의를 이렇게 정의하더라도 제국주의를 특정한 자본주의 발전 단계의 산물로 봤던 고전적 제국주의론의 기본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나의 정의는 제국주의를 특정한 자본주의 형태와 결부시키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지정학적 경쟁에는 자본축적이나 경제적 경쟁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논리가 있다고 본다는 차이도 있다. 이는 제법 새로운 관점이다. 나만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하비도 나와 거의 동시에, 그러나 나와는 독립적으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2003년에 어느 학술대회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 둘 다 대략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데 서로 놀랍고 반가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내가 제국주의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된 1차적 동기는 네그리 등과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Q 네그리의 《제국》에서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줄 만한 부분이라거나,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제국주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논의를 부활시킨 책이 아마도 《제국》이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제국》은 유용한 책이다. 또한 그 책의 정치적 어조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공산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희열’을 이야기한 책 말미의 유명한 문장은 그 전 수십 년간 의기소침해 있던 마르크스주의 좌파들의 정치적 자신감 회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에 어느 정도 개인적 호감이 있다. 그러나 《제국》의 이론적·정치적 내용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Q 1999년 시애틀 시위 이후의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의 의의는 매우 크다. 반자본주의 운동을 통해 좌파는 수십 년간의 패배를 떨쳐내고 부활했다. 반전 운동은 한마디로 역사상 가장 큰 시위 운동이었다. 2003년 초에는 전 세계에서 적게 잡아도 3천5백만 명이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그런데 반전 운동 초창기에 우리는 이 운동이 보여 주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급진화 수준과 노동자 투쟁의 수위 사이에 격차가 있음을 지적했다. 달리 말하면, 반자본주의·반전 운동이 계급투쟁보다 앞서 나갔다. 그 말은 곧 조만간 계급투쟁이 상승해서 운동을 뒷받침하거나, 아니면 운동이 계급투쟁 수준으로 다시 가라앉게 될 것을 의미했다. 불행히도 후자의 상황이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대안세계화 운동이 2005년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유럽의 대안세계화 운동 진영에 만연했던 잘못된 정치 노선이 이러한 몰락을 가속시켰다. 이 정치 노선은 특히 수평적 네트워크와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중시했는데, 이 점은 역설적으로 정직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대안세계화 운동이 자신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정립하지 못한 것도 운동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대안세계화 운동 내부에 이 모든 약점이 없었다 해도 노동자 투쟁이 고조되지 않는 한 이 운동은 십중팔구 쇠퇴했을 것이다.
한편 반전 운동은 놀라울 정도로 오래 지속됐고,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은 확실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전히 높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반전 운동 진영에는 일종의 체념이 확산됐던 듯하다. 사람들이 ‘전쟁은 나쁘지만 우리가 그것을 멈출 힘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 반전 운동은 급격히 쇠퇴했다. 여기서도 반전 운동 내 일부 진영의 잘못된 정치 노선이 운동의 쇠퇴를 부채질했지만, 그것이 쇠퇴의 근본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운동이 처음 촉발한 급진화 효과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반자본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사고가 꽤나 광범하게 퍼져 있다. 즉, 비록 반자본주의·반전 운동이 쇠퇴했지만 그 운동들이 보여 준 급진화의 영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Q 자본주의의 폐지는 지구적 수준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입증됐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세계 혁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전 세계로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의 핵심부인 제국주의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주변부에서 먼저 혁명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불균등성 때문에 일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결국 국가와 타협하거나 개량주의의 길로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것이 현실인 것을 어쩌겠는가? 자본주의의 불균등·결합 발전 때문에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혁명이 일어나기가 더 쉽다. 그러나 이런 나라에서 일어난 혁명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나라로 확산돼야 한다. 이는 우리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다.
나는 혁명이 성공한 나라의 정부가 그저 혁명의 확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혁명 정부는 다른 나라의 혁명을 선동하는 구실도 할 수 있다. 차베스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은 그가 이런 일을 했을 때였다. 차베스는 유엔에서 부시가 연설한 직후 부시를 지옥에서 온 악마에 빗대서 ‘아직도 이곳에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날 하루는 전 세계 대다수 사람들이 차베스의 팬이었을 것이다.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이라크인에게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차베스는 그런 구실을 일관되게 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그가 카다피를 편들고 나선 것은 자신의 지지 기반 이탈을 자초한 행위였다. 아랍 민중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혁명 정부의 잘못된 정치 때문에 혁명 정부의 고립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일국에서 시작된 혁명의 고립 가능성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에 러시아 혁명 당시보다 오늘날의 여건이 더 유리한지 아닌지를 자문해 볼 수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의 여건이 훨씬 유리하다. 나는 인터넷에 관한 온갖 예찬론을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노르웨이의 파시스트 살인마 브레이비크에 관한 소식을 [빠르게 ― 옮긴이] 전해 듣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더 긍정적인 예로, 이집트 혁명은 전 세계를 감전시키다시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이집트 혁명을 목도하면서 ‘제발 우리 나라에서도 저렇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집트 혁명의 정치적 효과는 구체적으로 스페인과 그리스 등지의 광장 점거 운동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혁명 운동의 불균등성이라는 문제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이를 극복하기가 한결 더 쉬워졌다.
Q 자율주의자들의 국가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몹시 혼란스러운 것 같다. 홀러웨이의 책 제목이 ‘권력을 잡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국역: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갈무리, 2002 ― M21]다. 마치 국가 권력 문제를 우회해 갈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홀러웨이의 말은 곧 우리가 혁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혁명은 관두고, 사람들이 해방된 생활 방식을 추구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틈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저작에서 그는 아테네의 어느 공원을 이러한 해방된 공간으로 묘사한다.
진정한 문제는 이 사회의 부가 한 무리의 서로 경쟁하는 기업들과 국가들의 수중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자본주의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일부 자율주의자들은 우리가 충분히 많은 ‘틈새’를 만들어 내면 자본주의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지배계급은 당연히 반격을 가할 것이다. 특히 국가를 동원해서 그러한 ‘틈새’를 봉합하려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도 전후 호황과 복지국가가 만들어낸 틈새를 봉합하려는 시도였다. 결론적으로, 홀러웨이에 대한 우리의 답은 ‘우리는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답은 ‘우리는 노동계급이 기존 국가 권력을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의 정치 권력을 창조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Q 좌파의 공백을 자율주의자들이 메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반으로 말해, 자율주의자들은 개혁주의 좌파와 혁명적 좌파들의 약점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직된 세력으로서 자율주의자들이 지닌 힘은 나라마다 다르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자율주의자들이 비교적 약하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존재 덕분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조직된 자율주의자들보다는 상식 수준에서 존재하는 연성 자율주의 관념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오늘날의 운동에서는 특히 청년층 사람들이 인터넷 등을 매개로 한 수평적 네트워크에 매력을 느끼며 정당들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1차적으로 개혁주의 좌파와 스탈린주의 좌파의 역사적 과오 때문이다.
Q 당신은 혁명가들의 개입 수단으로서 혁명 정당, 리스펙트 같은 급진 좌파들의 공동전선,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공동전선, 이렇게 세 가지 동심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심원concentric circle 개념은 특정 시기의 상황에 들어맞았다. 대중적 반전 운동이 등장했고 노동당의 이라크 전쟁 참전 때문에 노동당에 대한 급진 좌파적 대안이 필요했던 상황 말이다. 나는 동심원 개념을 무슨 이론으로 제시했던 것이 아니라 SWP 당원들이 노력을 집중해야 할 세 가지 영역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 당시에는 적절한 개념이었던 듯하다. 사실 세 영역에 모두 신경 쓰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SWP를 챙기는 일이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일각에서는 SWP가 반전 운동과 리스펙트에 개입하는 것이 SWP를 키우기 위한 책략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SWP가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동심원이라는 비유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히 오늘날의 조건에는 맞지 않는다. 리스펙트의 잔존 세력은 보기 처량할 정도로 쪼그라들었고, 반전 운동도 과거지사가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과는 다른 쟁점들이 정세의 초점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와 정부의 긴축 공세,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이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동심원에 대한 비유는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무의미하다.
Q 프랑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반자본주의신당NPA으로 거듭난 것을 두고 이른바 ‘범좌파 정당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신은 NPA 결성을 혁명 정당 건설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는가, 아니면 혁명 정당에서 멀어지는 과정으로 보는가?
LCR은 NPA로 용해됐기 때문에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혁명 정당 없이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NPA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우리는 이것 때문에 혁명 조직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NPA가 결성된 배경을 알게 되자 마음이 놓였다. NPA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사바도와 나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지면 상에서 이런 문제들을 토론한 바 있다. 일단 NPA의 강령은 혁명적이다. 전신인 LCR의 강령만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강령이다. 한때 NPA는 기적을 일궈낸 듯했다. 혁명적 강령을 가지고도 LCR보다 더 크고 광범한 정당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적이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최근 NPA는 매우 심각한 여러 문제에 봉착했고 현재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한 가지 문제는 말년의 LCR과 NPA가 갈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선거 활동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NPA가 2009년 초에 성공적으로 창당할 수 있었던 것도 2007년 대선에서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보인 활약에 빚진 바가 컸다. 그러나 창당 이후 NPA는 선거 공간에서 부진한 성적을 면치 못했다. 물론 혁명 정당에게 선거 실패는 세상이 무너질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SWP가 참여했던 선거 연합인 리스펙트는 공중분해됐지만 SWP는 여전히 그런대로 잘 해내고 있다. 그동안 반파시즘 운동, 학생운동, 정부에 맞선 파업 등에 적극 개입해 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NPA도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나 연금 개악 반대 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나섰다면 충분히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년의 LCR은 조직적으로 투쟁에 개입하는 전통을 완전히 상실했다. 물론 LCR과 현재의 NPA에는 현장에 깊이 뿌리 내린 대단히 훌륭한 활동가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NPA는 특정 캠페인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결합시키지는 않는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황당한 이유이지만, NPA 자신도 조직적으로 어떤 투쟁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자율성(자발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둘째, 이것은 NPA가 선거에서 고전하는 부분적인 이유이기도 한데, NPA를 주도하는 세력은 자신들의 바로 오른쪽에 있는 세력을 매우 적대적으로 바라본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과 좌파당에 대한 적개심이 크다. NPA가 이들을 적대시했기 때문에 이들은 ‘좌파 전선’을 결성함으로써 자신들이 프랑스 급진 좌파의 단결을 표방하는 세력이라고 내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NPA가 아니라 좌파 전선이 점점 사회당 왼쪽의 공백을 메우게 됐다.
마지막으로, NPA는 상시적 분파들을 허용하는 조직 구조internal regime를 LCR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러한 구조를 취하는 목적은 당내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토론이 더 어려워진다. 모든 쟁점을 둘러싼 논쟁이 분파 간의 투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일들이 모두 잘 되고 있다면 이러한 조직 구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NPA가 부양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조직 구조 때문에 당이 내부 논쟁으로 마비되고 있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SWP는 지난 몇 년 동안 NPA와 협력을 강화해 온 터라 더욱 아쉬운 마음이다. NPA의 위기는 유럽의 혁명적 좌파를 약화시킬 것이고, 프랑스 극좌파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전 세계의 혁명적 좌파에게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NPA의 위기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Q 혁명적 정당을 건설하는 방법과 관련해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혁명적 정당을 건설해야 할까?
혁명적 정당을 건설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할 수 있고, 또 각 나라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려면 남한의 계급 간 세력 균형, 민주노총의 내부 상황, 민주노동당의 행보, 정권의 대응 등 온갖 구체적인 변수들을 따져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의 혁명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이곳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좌파들이 민주당의 헤게모니에 포섭되는 것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은 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어떤 조직적 틀을 통해 저항해야 할지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다함께 동지들이 SWP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여 온 것처럼 우리도 다함께 동지들의 판단을 신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Q 당신은 《반자본주의 선언》에서 트로츠키의 이행기 강령을 다뤘는데, 이행기 강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부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행기 강령을 마치 신주 모시듯 한다. 1938년에 트로츠키가 쓴 이행기 강령을 신봉하거나, 아니면 이행기 강령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마법처럼 어떤 운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우리는 코민테른 초기에 개발된 이행기 강령[이하 ‘전환적 강령’ ― M21]이라는 개념이 유용하다고 봤다. 우리는 또한 전환적 강령을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고 필요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수는 계급 간 세력 균형과 혁명가들의 영향력 등이다.
Q 《반자본주의 선언》에서는 이행기 강령으로 열한 가지 요구를 제시했는데, 이것들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 뒤로 더 추가된 것은 없는가?
당연히 수정해야 한다고 본다. 원래의 열한 가지 요구 사항 중에는 환경 보호에 관한 추상적인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동안 일부 SWP 당원들의 노력 덕분에 영국 노동운동 내에서는 ‘기후 일자리’ 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후 일자리 요구는 경제 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결합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요구다. 경제 위기와 관련한 요구도 필요하다. 유로존에서 이는 부채 상환 거부, 유로존 탈퇴, 은행 국유화 등의 요구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아일랜드의 국제사회주의 경향 동지들은 선거 연합 두 곳에 참여하는데, 둘 다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제법 훌륭한 강령을 제시했다. 현재 상황은 위기가 워낙 깊기 때문에 뭔가 대안을 제시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적 강령은 단지 세계적인 경제 위기뿐 아니라 위기가 각국에서 발현되는 형태까지 고려해서 구체적으로 작성돼야 한다. 예컨대 유로존 탈퇴 요구는 아직 독자적 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무의미한 요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