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오늘의 세계 상황
경제 위기, 혁명, 그리고 전쟁에 관한 소문들 *
2011년 하반기에 서구 자본주의를 휘감았던 일촉즉발의 분위기는 지난 몇 달 사이 다소 수그러들었다. 이는 어떤 근본적 사태 변화의 결과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유럽중앙은행ECB 신임총재 마리오 드라기가 2011년 말 개시한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의 영향이었다. 그 내용인즉 유럽 은행들에게 1조 유로 이상의 자금을 3년 만기 대출 형식으로 초저금리에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부실 투성인 데다 올해에 막대한 양의 부채를 차환해야 할 처지인 유로존 은행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그래서 ECB의 이번 조처는 약간의 시간을 벌어 줬다. 그리스 정부가 주요 채권자들과 맺은 [부채 탕감 ― 옮긴이] 합의도 마찬가지 효과를 냈다. 1
2 인도 경제는 2008~09년의 경제 위기 때보다 더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또 다른 거대 “신흥 시장” 경제인 브라질은 2011년 4분기 성장률이 0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밖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다. 영국과 유로존 대부분의 성장률은 지지부진하다. 심지어 수출 강국인 독일 경제도 침체의 문턱에 와 있다. 중국 정부도 자국 경제의 엄청난 호황이 한 풀 꺾이고 있음을 인식한 듯 올해 성장률 목표를 7.5퍼센트로 낮춰 잡았다. 2011년에 중국이 전 세계 철강 수요에서 차지한 비중은 그 전 10년의 15퍼센트에서 8퍼센트로 하락했고 올해에는 4퍼센트로 더 하락할 전망이다.FRB(이하 연준) 의장 벤 버냉키가 새로운 양적완화QE 조처(사실상 연준이 돈을 찍어내서 금융권에 살포하는 것과 다름없는)를 발표하지 않자 세계 증시가 하락했다. 그러다가 일자리와 소매 판매 지수가 비교적 양호하게 나오자 증시가 다시 상승하기는 했지만 연준은 가계 부채 부담 때문에 소비 수요는 여전히 저조하다고 강조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 일자리 수가 앞으로도 매월 22만 5천 개(2월 현재 수치)씩 증가한다면 완전고용은 2025년에 가서야 달성될 판이다. 3
물론 미국의 경우 경제지표들이 살짝 호전된 것이 사실이다. 갈수록 코미디가 돼가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과 더불어 이 같은 경기 호전은 최근 들어 오바마의 발걸음에 힘이 넘쳐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2월 말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EC와 유럽 사법재판소ECJ의 제재를 받게 된다.(그러나 협약을 비준하기도 전에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올해 재정적자 목표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처럼 긴축 기조를 헌법에 못 박으려는 시도(독일의 요구에 따라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독일처럼 자국 헌법에 균형예산 조항을 삽입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 티파티 운동의 주요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가 있는 한편으로, 국가의 또 다른 부분은 경제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양적완화에 대한 시장의 집착은 오늘날의 경제 위기에 대한 부르주아적 관리 방식의 중요한 특징 하나를 말해 준다. 서구 자본주의가 불황에 빠져 있다는 점은 이제 명백하다. 경제학자들은 불황을 “경제가 오랫동안 장기적 잠재 성장률 미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국면”으로 정의한다. 이에 각국 정부는 더 한층의 신자유주의로 대응해 왔는데, 그 형태는 대개 긴축 정책이었다. 이 추세는 새로운 유럽연합 재정협약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신 재정협약에 서명한 나라들(영국과 체코는 여기서 빠졌다)은 재정적자를 GDP의 3퍼센트 이하로 유지할 의무를 지게 되며 이를 위반하면 유럽 집행위원회前케인스 시대 단세포들은 이 점을 깨닫고는 불평을 제기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나라 정부들은 중앙은행들의 이 같은 유연성에 암묵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2월 초 영란은행이 5백억 파운드 규모의 양적완화 조처를 발표하자 래리 엘리엇은 〈가디언〉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영란은행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조지 오스본[영국 재무장관 ― 옮긴이]의 부담이 커졌을 것이다. 지난 18개월 동안 영국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영란은행의 ― 옮긴이] 통화정책위원회가 느슨한 통화 정책을 구사할 수 있도록 재무부가 재정적자를 공략한다는 것이었다. … 그[오스본]는 머빈 킹[영란은행 총재 ― 옮긴이]과 암묵적 합의를 맺었다고 믿고 있으며 총재가 그 합의를 지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
이번 위기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앙은행이 거시경제 관리에서 수행하는 결정적 구실을 드러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정부의 공공지출 축소로 생긴 공백을 메우려고 갈수록 많은 자금을 은행 시스템에 주입해 왔다. 드라기 총재의 LTRO 프로그램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유로존에 강요하는 정책의 경기 위축 효과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독일 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전5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가뜩이나 자신들의 통제를 점점 벗어나는 듯한 국제 질서를 더욱 관리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문제가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역시나 중동이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해 말 총선에서 의석을 휩쓴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이집트 정부와 앞으로 공존할 수 있으리라는 담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미국에 더 급박한 문제는 시리아 혁명 운동과 시리아 정권 간의 유혈 투쟁이다.
곧, “큰 정부”를 탈피한다는 공식 구호의 이면에는 중앙은행들의 값싼 대출에 중독된 허약해진 금융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하페즈 알 아사드 치하의 바트당 정권과 (2000년부터 통치한)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의 정권은 오랫동안 미국에게 성가신 존재였다. 그럼에도 서방 강대국들은 시리아보다 훨씬 순종적인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에 맞서 지난해에 벌였던 것 같은 군사적 개입을 되풀이할 마음은 없다. 이라크 전쟁의 악몽과 더불어 시리아 사회의 복잡한 종파 분열상에 대한 인식 때문에, 그리고 시리아에 대한 개입이 이웃 나라인 레바논에 파장을 미치고 서방과 이란의 관계 악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서방은 개입을 자제해 왔다. 또한 자신들이 속임수에 넘어가서 리비아 정권 교체를 승인했다고 여기는 러시아와 중국은 UN 안보리에서 시리아에 대한 더 약한 조처도 통과되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나 미국과 걸프 국가들이 시리아 반군 세력 일부에게 여러 형태의 은밀한 지원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사우디와 카타르 등의 걸프 국가들은 이 참에 시리아에 수니파(시리아 인구의 대다수는 수니파다) 기반의 우방 정권을 세우려고 한다.(아사드 정권의 핵심 지지 기반은 소수파인 알라위파로서, 이들이 정권의 주요 군사 기구와 보안 기구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전략적 동등성”을 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버지 아사드는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지배력 확보를,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일체의 타협 방안에 대한 시리아의 거부권 획득을 결연하고도 무자비하게 추구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탓에, 2011년 초 이집트 혁명이 본질적으로 국내의 역학 관계에 좌우됐던 것과는 달리 시리아 혁명에는 지정학의 요소가 덧씌워져 있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과 시리아 혁명은 또한 일련의 복잡한 세력 재편을 촉발하기도 했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핵심 세력인 하마스는 최근까지 다마스커스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사드 정권과 결별하고 시리아 혁명 편에 섰다. 이 반가운 결정에는 그러나 더 깊은 내막이 있다. 하마스는 현재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비록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와 불편한 동반자 관계에 있지만)인 무슬림형제단에서 파생된 세력이다. 하페즈 알 아사드가 저지른 최악의 만행은 약 2만 5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82년의 하마 학살(그의 아들이 홈스에서 벌이고 있는 살육전도 이 모델을 따른 것이다)이었는데, 이 사건은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과 무슬림형제단을 포함한 반정부 세력 간의 내전이 극한으로 치달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무슬림형제단이 사우디와 카타르의 부추김으로 중동 지역 곳곳에서 자기 힘을 과시하며 아사드 정권에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對이란 전쟁 논의는 평소보다 더욱 위험하다. 아버지 아사드는 1978~79년 이란 혁명 직후 재빨리 이란과 동맹을 맺었다.(여기에는 이란을 이용해 자신의 철전지 원수이자 라이벌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현재 이란은 시리아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무기와 군사 고문을 보내는 등 아들 아사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구실을 하고 있다. 사우디가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도 오래 전부터 흘러나왔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정치적 재편에는 종파 간 갈등이라는 흉측한 측면도 있다. 한편에는 수니파가, 다른 한 편에는 소수 종파에 기반을 둔 아사드 정권과 이를 지지하는 이란과 레바논의 시아파 세력이 서로 대립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도부는 시리아 혁명을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이 모든 정황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여기에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란의 핵시설에 선제 공격을 가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점까지 고려하면 실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의도는 물론 중동 지역에서 핵무기 독점권을 지키려는 것도 있지만, 핵심적 동맹인 무바라크를 잃은 상황에서 강력한 라이벌 하나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반면 워싱턴의 분위기는 이란 공격에 호의적이지 않다. 중국이 제기하는 지정학적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세계 전략을 조정하기 바쁜 오바마는 또 한 차례 중동의 수렁에 빠져들기를 원하지 않으며 아프가니스탄 철군 일정도 앞당기고 있다.(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진 최근 사건들은 서방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네타냐후는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을 목놓아 외치고 있는 미국의 대선 국면을 이용해 오바마에게 이란 공격을 지지하도록 압력을 가하려 할 것이다. 그런 탓에 올해에도 중동에서 또 한 차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잿빛 전망 때문인지 좌파 일각에서는 시리아 혁명이 그것을 둘러싼 지정학적 맥락에 의해 중층 결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보기에 서방과 걸프 국가들이 혁명 세력 일부에게 제공하고 있는 지원은 리비아식 정권 교체가 추진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이들은 또한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아사드 정권의 지원을 거론하며 아사드 정권의 “진보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하페즈 알 아사드가 1976년 3월에 레바논 내전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진영과 레바논 좌파가 연합해서 기독교 우파에 맞서 승리하지 못하게 하려고 시리아 군대를 레바논에 투입한 사실과 1983년 11~12월에 시리아 군대가 트리폴리의 파타 투사들을 포격한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런 주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Hanna Batatu는 아버지 아사드 치하의 시리아를 다룬 섬세하고 균형 잡힌 연구에서 하페즈 알 아사드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한나 바타투파타와 시리아 정권의 이해관계가 거듭해서 충돌했던 레바논에서는 아사드가 … 내전에 참여하던 모든 주요 세력에게 돌아가며 지원을 해 주다가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타격을 입혔고, 내전의 양쪽 진영에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양쪽을 모두 약화시키고 결국 레바논 현지의 세력 균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꿨다. 이와 비슷하게 아사드는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팔레스타인 분파들을 가동해서 이들을 통해 독립적 팔레스타인 조직들(PFLP[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와 DFLP[팔레스타인 해방 민주전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파타의 지도력을 잠식하려 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자 그는 파타 자체의 내분을 부추겼다.
7 하마스가 걸프 국가들의 돈을 받았다는 좌파 일각의 비난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아랍 정권들의 지원에 의존해 온 것은 오래된 정치적 문제로서 PFLP와 DFLP 같은 이른바 좌파 그룹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하마스가 아랍 정권들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이는 파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1991년 걸프 전쟁에서 이라크에 맞선 미국 주도의 연합에 동참했던 정권을 “반제국주의적”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다. 바타투가 보여 주듯이, 아사드 부자의 정권은 그 종파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부르주아지의 국내적·지역적 이익에 봉사해 왔다.
바타투는 1983년 트리폴리에서 어느 팔레스타인 여성이 했다는 “잊지 못할” 말을 인용한다. 그 여성은 “하페즈 알 아사드는 이스라엘보다 더 이스라엘적이다!” 하며 절규했다.8 중동의 민중항쟁은 언제나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들의 경비견 이스라엘)과 현지의 지배계급이라는 두 개의 적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시리아 혁명은 이러한 변증법의 최신 사례이며, 그러한 변증법이 시리아에서 어떤 형태를 띠느냐에 따라 혁명이 파멸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가 튀니지 혁명 때부터 취해 온 입장을 수정할 이유는 못 된다. 곧, 우리는 지금도 아랍 혁명을 지지하고 서방의 개입에는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시리아 혁명의 복잡다단한 측면들을 다루는 논문을 본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 ― 옮긴이]의 다음 호에 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제기되는 정치적 물음은 “시리아 정권에 맞서 진정한 민중항쟁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답은 명백히도 그렇다는 것이다. 시리아 정권이 현재까지 약 8천 명을 살육했음에도 혁명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경이로울 따름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이 있다. 서방과 걸프 국가들이 리비아에서 그랬듯이 시리아 혁명도 가로챌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도 “그렇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리아 민중을 학살하는 아사드를 지지할 명분은 될 수 없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3월 중순 워싱턴으로 가던 중에 자신은 “아래로부터의 혁명보다는 아사드가 제거되는 [정치적 ― 옮긴이] 변화”를 원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시리아 대중에 대한 서방 지도자들의 두려움을 보여 준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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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ex Callinicos, ‘Rumours of crisis, revolution and war’, International Socialism 134(Spring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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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글을 비평해준 앤 알렉산더Anne Alexander, 조셉 추나라Joseph Choonara, 개릿 데일Gareth Dale, 드니 고다르Denis Godard, 조니 존스Jonny Jones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파노스 가르가나스Panos Garganas와의 인터뷰를 녹취하느라 수고해준 크리스천 후스비예르그Christian Høgsbjerg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
- Hook, 2012. ↩
- Stiglitz, 2012. ↩
- Elliott, 2012. 긴축 정책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더 일반적인 논의는 Callinicos, 2012를 보시오. ↩
- Milne and Mackenzie, 2012를 보시오. ↩
- Batatu, 1999, p320 (transliteration altered). ↩
- Batatu, 1999, p321 (transliteration altered). ↩
- Parker, 2012. ↩
참고 문헌
Batatu, Hanna, 1999, Syria’s Peasantry, the Descendants of its Lesser Rural Notables, and their Polit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Callinicos, Alex, 2012, “Contradictions of Austerity”,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36.
Elliott, Larry, 2012, “There’s a Case for Ending QE but will the Bank of England Listen?”, Guardian (5 February),www.guardian.co.uk/business/economics-blog/2012/feb/05/case-ending-qe-bank-england
Hook, Leslie, 2012, “China’s Appetite for Steel Cools as Building Slows”, Financial Times (9 March).
Milne, Richard, and Michael Mackenzie, 2012, “Drastic Funding Transfusions Risk Leaving Banks Hooked”, Financial Times, Special Report on Debt Capital Markets (13 March).
Parker, George, 2012, “Cameron meets Obama to plot Afghan Endgame”, Financial Times (13 March).
Stiglitz, Joseph, 2012, “The US Labour Market is Still a Shambles”, Financial Times (12 M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