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2:아나키즘과 신디컬리즘, 효과적인 대안인가
아나키즘, 신디컬리즘, 전략 *
이 글은 《마르크스21》 10호에 실린 폴 블랙레지의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루시언 반델발트의 논평에 블랙레지가 답하며 쓴 것이다.
1 그의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의 계간지]과 아나키즘(적어도 반델발트와 마이클 슈미트가 《흑염》에서 묘사한 신디컬리즘적 아나키즘)은 사회주의를 “아래로부터의” 자유지상주의적liberatarian 2 운동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반면,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유산 중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계승했고, 그래서 다른 전통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닌과 트로츠키는 “스탈린 체제를 위한 기초”를 놓았으므로 3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이 그들과의 차이점을 깨닫고 그들과 단절해야만 자유지상주의적 신념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글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한 루시언 반델발트의 답변은 혁명적 좌파 내 마르크스주의 진영과 아나키즘 진영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논쟁 같지 않은 논쟁”을 탈피할 만한 첫걸음이라서 아주 반갑다.4 볼셰비즘은 개혁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며 신디컬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었기에 많은 신디컬리스트들의 마음을 끌었다. 이 점은 오늘날 좌파들에게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말이 맞다면 SWP와 그 비슷한 혁명적 조직들은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반델발트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러시아 혁명에 대한 왜곡을 근거로 하고 있어서 과거의 투쟁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것을 방해할 정도다. 어쩌면 이 점 때문에 반델발트는 러시아 혁명기에 볼셰비즘이 한 세대의 아나키스트와 아나키스트적 신디컬리스트에게 의심할 바 없이 커다란 매력을 줬다는 이언 버철의 논평에 진지하게 답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비록 아나키스트나 아나키스트적 신디컬리스트의 소수가 내전 기간에 혁명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긴 했어도,아나키즘, 신디컬리즘, 전략 반델발트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이 노동계급의 자체 해방 개념을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으로 본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경우라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관계부터 틀린 주장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만만찮은 저작들은 모두 이 개념이 마르크스 정치 사상의 핵심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포이어바흐에 대한 제3테제에서 마르크스가 “혁명적 실천을 통해서만 환경 변화와 함께 인간 활동의 변화나 자기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쓴 것,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혁명은 과거의 지배계급을 몰아내기 위해서뿐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하기로는 노동계급이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주체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제1인터내셔널의 규칙에서 마르크스가 “노동계급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쓴 것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듯, 노동계급의 자체 해방은 마르크스의 한결같은 지향점이었다. 더욱이 이 개념은 단지 마르크스의 정치 이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사회 이론 전반에 걸쳐 있다. 그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고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도 총체적으로, 따라서 노동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 비슷한 관점에서 솔 뉴먼이 쓴 저작은 전략에서 전술로의 이 같은 선회가 어떻게 혁명 자체를 거부하도록 이끄는지 보여 준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를 전체totality로서 사고하지 못하므로 혁명을 전체주의적totalitarian 발상이라며 기각한다. 세계를 이처럼 파편들로 보다 보면 결국 (모든 성향의) 정치는 이런저런 형태의 전술들로 환원된다. 7 이에 따라 사이먼 크리츨리는 아나키스트들의 사명은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것을) 무한하게 요구”하며 “저항의 정치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8 이런 관점은 비록 겉으로는 아무리 급진적으로 보일지라도 이 세계에서 변화는 오직 매우 사소하고 지역적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과 사실은 더 흡사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세기 말에 신디컬리즘 자신이 맞서 싸웠던 비관적인 형태의 개혁주의에 더 가깝다. 19세기 말은 제2인터내셔널(1889~1914년)에 속한 이름뿐인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이 보통 1년에 한 번 있는 당대회에서는 혁명적 미사여구를 말하고 일상의 실천에서는 정치를 “전술의 문제” 9 로 국한하던 시기다. 칼 카우츠키 같은 이론가들은 실천과 동떨어진 마르크스주의 미사여구를 이용해 이론과 실천 사이의 점점 더 벌어지는 간극을 메워 보려 했지만, 이런 조직들의 실제 행태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 혁명적 정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개혁주의 비판가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말에 가장 잘 요약돼 있다. 즉,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운동이 전부이고 목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10
일부 아나키스트들도 이런 관점을 암묵적으로 수용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다 보니 전략적 사고 자체를 거부하고, 그보다 더 ‘민주적’인 대안으로서 모종의 전술 중심적 정치관을 내세우는 토드 메이와 벤 프랭크스도 그런 예다.아나키즘을 많은 전술 문제 처리 방법으로 환원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반델발트와 슈미트의 저작은 아나키즘을 혁명적 전략으로 개념화하고 있다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저항을 혁명으로 발전시키려고 숙고하는 그들의 시도를 환영하면서도, 사회주의적 전략으로서 그들이 제시하는 신디컬리즘적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1 주장한다. 내 처음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것이 내 논지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꼼수로 쟁점을 회피하려는 시도임을 즉시 알아챌 것이다. 객관적 상황이라는 문제는 조금 뒤에 살펴보기로 하자. 이데올로기의 영향력과 관련해서 러시아와 스페인의 차이는, 아직 이런저런 개혁주의 정치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대중에게 혁명가들이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계 있다. 나는 1936년 스페인과 1917년 러시아라는 비슷한 두 혁명적 상황에서 볼셰비키와 스페인 아나키스트가 이 문제에 서로 판이하게 다른 방법으로 대처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1917년 이후 볼셰비키에게 영향을 미친 물질적 제약은 다루지 않았다. 그 쟁점이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정치적 교훈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 글에서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즘을 비판한 것에 반델발트가 답변한 방식은 그러한 문제점을 은폐한다. 그는 내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한다며, 내가 “(스페인 혁명에 대한 평가에서 그러듯이) 아나키즘의 실패는 전적으로 이데올로기 때문이지 상황 때문은 아니라고 단정하는 반면, (러시아 혁명에 대해 평가할 때처럼)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는 전적으로 상황 때문이지 이데올로기 때문은 아니라며 면죄부를 준다”고내 논지는 분명했다. 볼셰비키가 1917년 9월 코르닐로프 쿠데타에 맞서 케렌스키의 부르주아 정부와 ‘공동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볼셰비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노동계급에 의한 진정으로 민주적인 통치라는 의미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의 부르주아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쿠데타에 맞선 대응을 거부하는 초좌파적 태도를 피할 수 있었다. 볼셰비키의 이런 방식이 10월 혁명으로 가는 길을 터놓은 반면, 아나키스트들의 경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거부했으므로 스페인 CNT의 아나키스트들이 볼셰비키처럼 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웠다. CNT가 공화정부에 입각한 것이 아나키즘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이론적 수준에서만 보면 이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CNT 지도부가 정부에 입각한 것은 어떤 현실적인 문제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CNT를 비판하는 아나키스트들이 그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비판은 완전히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스페인 아나키스트들이 프랑코에 맞서 공화국을 방어한 것은 옳다. 그러나 공동전선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같은 개념이 없었던 아나키스트들은 공화국 정치인들이 프랑코와 전쟁을 치르려면 단일한 군사적 체계가 필요하므로 CNT가 공화정부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적절히 반박할 수 없었다.
” 12 트로츠키의 인민전선 정부 비판도 산티얀 같은 아나키스트들의 비판과 본질적으로 같다. 이 점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유익한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럼에도 트로츠키의 주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옹호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대화는 이 개념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야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13
1930년대 여러 아나키스트들이 이 문제에 대한 최초의 답변을 공들여 진술했다. 흥미롭게도, 1936년에는 정부가 프랑코에 맞선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정부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최초 아나키스트의 한 명인 디에고 아바드 데 산티얀은 1940년에는 그 전략이 재앙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 최초 아나키스트의 한 명이기도 했다. “우리는 혁명을 희생시키면 전쟁의 목표도 함께 희생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채 혁명을 희생시켰다. 이런 점에서 반델발트가 아나키즘에는 민주주의 문제에서 내가 지적한 약점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 흥미롭다. 그의 주장이 흥미로운 것은 내가 그 세세한 부분들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가 현실의 복잡다양한 아나키즘을 그의 머릿속에 있는 이상형의 아나키즘에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는 아나키즘과 민주주의가 불편한 관계라는 내 지적을 반박할 때 아나키즘과 민주주의에 대한 웨인 프라이스의 입장을 제시하는데, 그 덕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불편한 주제를 토론할 수 있게 됐다.15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혁명적 상황에서는 “천대받는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해야” 하지만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16 이것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입장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프라이스는 올바르게 간파했다. 아나키스트들과 자율주의자들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마르크스와 레닌도 사회주의자들이 “국가를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오히려 마르크스와 레닌은 반드시 노동자들 자신의 민주적 조직으로 혁명을 지켜야 한다고 봤다. 17 내 글에 대한 반델발트의 반박 글 가운데 더 긴 온라인 버전에서 반델발트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극단적 형태의 민주주의로 이해한다는 나와 리오 차일리히의 거듭된 설명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정의를 받아들인다면(그리고 강조하건대 오직 그럴 때만), 우리는 노동계급의 권력을 옹호하고 그것을 무력으로 지킬 것을 주장한 바쿠닌과 크로포트킨도 ‘노동자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찬성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보면 광범한 아나키즘 전통의 다수가 국가에 찬성한 셈이 될 것이다.” 18
프라이스는 《국가의 폐지》에서 “아나키즘은 국가 없는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19 주장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차일리히와 내가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에 대해 딱히 논쟁적이거나 독창적인 것을 쓰지는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델발트의 논평은 우리가 마르크스를 곡해하지만 않는다면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에 진정한 대화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방법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어 준다.
확실히 이런 진술은 종파적으로 일그러진 종래의 ‘논쟁 같지 않은 논쟁’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격렬한 논쟁을 초래할 듯하다. 프라이스조차 레닌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적 해석”이 레닌이 만든 “전체주의적 국가와 서로 모순된다”고 이 쟁점에 대해 반델발트와 슈미트는 신디컬리즘이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개혁주의 성향에 대한 혁명적 반발로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일부 진실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느라 반델발트는 이런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실천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국가론과 중요한 결별을 했음을 무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고타 강령 비판〉과 〈에르푸르트 강령 초안 비판〉에서 독일 정당[사회민주당]이 혁명으로 구체제 국가를 파괴하지 않아도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본 것은 재앙적 실수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초의 지도적 사회주의 이론가 칼 카우츠키는 이를 무시한 채 사회주의 정당이 하나의 조직으로 노동계급의 이질적인 요소를 모두 대변하고자 한 것을 옹호했다. 문제는 이런 부류의 조직에서는 오직 노동계급 내 서로 엇갈리는 정치적 실천들에 눈을 감아야만 이질적인 경향들이 단결을 유지할 수 있고, 특히 노동조합과 의회주의 정당에서 관료적 지도부가 갈수록 더 보수적으로 실천하는 것에 눈 감아야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천에서 이 말은 당내 우파를 끌어안기 위해 좌파를 단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1 이라고 부른 것을 교정하려 하면서 신디컬리스트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산업 투쟁과 전투적 노조 운동을” 22 우위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크만에 따르면, 이런 방식은 마르크스의 주장들 사이에 있는 어떤 모순을 극복하는 것인데, 그 모순이라 함은 한편으로는 새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지를 물리치기 위해 정치 기구를, 즉 정부를 잡아야 한다”고 23 주장하는 것이다. 반델발트와 슈미트에 따르면, 이처럼 [산업 투쟁과 전투적 노조 운동으로] 강조점을 옮기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정치 영역’(국가가 그 중심에 있고, 혁명적 정당이 정치 행동으로 전투를 벌이는 영역)과 ‘경제 영역’(임금과 노동조건에 관계되고 노동조합에 내맡겨져 있지만 당이 지도하는 영역)의 엄격한 분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신디컬리스트는 혁명적 노동조합이 정치적 기능과 경제적 기능을 모두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24
신디컬리즘은 이런 정치 속에서 생겨난 보수화에 급진적 노동자들이 반발한 데서 발전했다. 알렉산더 버크만 같은 아나키스트적 신디컬리스트가 “정치라는 (완전히 썩어빠진) 게임25 더 구체적으로 짚어 보면,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 노동자 운동에 문제가 됨을 깨달은 가장 중요한 이론가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반델발트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이를 부정하는 반델발트의 주장은 마르크스주의가 곧 사회민주주의였다는 등식에 의존한다. 이런 논지는 제2인터내셔널의 개혁주의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신디컬리즘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도 나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개혁주의를 비판하면서 신디컬리즘 비판도 곁들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록 신디컬리즘을 노동계급 내의 혁명적 경향으로서 반겼지만, 신디컬리즘이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주장은 문제도 있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아나키스트들 가운데 프라이스는 버크만이 되뇌이는 마르크스주의 해석이 완전히 틀렸음을 인정한다. 마르크스와 레닌 모두 결코 부르주아 국가 기구를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경제와 정치의 분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반델발트의 논평이 희망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가 모두 자본주의를 넘어 진정으로 민주적인 대안을 위해 투쟁하는 사상임을 서로 인정한다면, 그리고 민주주의가 단지 ‘정치적’ 수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 결정에 대한 사회적 통제도 포함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런 민주주의를 어떻게 쟁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는 기존 국가를 장악(봉기에 의해서건 의회 선거에 의해서건)하는 것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사상에 부합하는 정치적 실천들을 논의하는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26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얽매이는 것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일상적 상황에서 노동력 판매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협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적 협상가 집단이 대두된다. 이런 관료층은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조건을 협상하기 위해 존재하다 보니, 투쟁이 이런 협상의 폭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보수적 장벽이 되곤 한다. 27 이것이 신디컬리즘과 연관이 있는 이유는 신디컬리스트 지도자들이 대체로 보통의 노조 지도자들보다는 전투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실을 하며, 따라서 보통의 노조 지도자들과 비슷한 보수화 압력을 겪기 때문이다. 실제로 1936년에 CNT 지도자들이 취한 행동이야말로 이런 상황의 반영이었다. 28
마르크스주의와 신디컬리즘이 모두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핵심적 구실을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로자 룩셈부르크가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비판한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독일 사회주의 운동에서 노동조합 관료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던 시기에 룩셈부르크는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얽매여 있음을 지적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29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조합 관료의 보수성이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특수한 산물이라고 설명하지만, 미헬스는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사실상 보편타당한 것으로 격상시키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권력을 향한 본성적 욕구” 때문에 “사람이 만든 모든 조직에서는 과두제 경향이 반드시 수반된다”고 30 주장한다. 미헬스 이론의 주요한 함의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델발트와 슈미트를 비롯한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스스로 약화시킨다. 내가 처음 글에서 아나키즘은 민주주의 문제에서 모순에 빠진다고 지적한 것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반델발트와 슈미트는 이와 같은 [노동조합 관료의] 보수화 경향을 알고 있지만, 이를 자본주의 생산관계라는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지는 않고 오히려 로베르트 미헬스의 “과두제의 철칙”을 끌어들이며 인간 본성 탓이라고 떠넘겨 버린다.(비록 “민주주의를 향한 경향”으로 중화시킬 수 있다는 단서는 붙이지만 말이다.) 따라서 반델발트·프라이스 등이 아나키즘을 민주주의 이론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자기중심적 개인주의가 보편타당하다는 미헬스의 민주주의 비판에 깔린 자유주의적 가설과 단절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노력이 성공하려면 과두제를 향하는 경향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고 초역사적으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서 성장하는 특정 개혁주의 단체들에서 과두제가 생겨나는 사회·역사적인 근원을 구체적으로 들춰내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이럴 때만 신디컬리즘의 진정한 강점과 한계를 다룰 수 있다. 루돌프 록커는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즘을 옹호하기 위해 쓴 1938년의 고전적인 글에서 신디컬리즘이 “정치적 사회주의의 개념과 수단에 반발해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를 완전히 배격하지는 않았지만, 저항의 초점을 “노동자들의 경제적 투쟁 조직”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주장을 얼 포드와 윌리엄 포스터의 1912년작 《신디컬리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개혁주의적 사민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며 산업 노동계급이 직접 전투적으로 나서는 것을 옹호한다. 저자들은 후자가 “진정한 힘”을 지니므로 개혁을 이루는 진정한 원천이며 전자는 “대중 정서의 표현”일 뿐이라고 지적한다.33 신디컬리즘이 이 문제에서 취약하다는 점은 록커가 노동자들의 단결이 거의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은 … 이런 깨달음을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확산시키는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 34 비슷한 문제가 노동계급 개혁주의에 관한 버크만의 논의에도 나타난다. 그는 개혁주의를 단지 노동계급 속에 존재하는 허위의식이라고만 본다. 35 이런 주장은 노동자들을 사회주의로 끌어들이려 하는 데서 선전주의적 방식으로 이끈다.
트로츠키는 이런 관점에 연대를 나타내기 위해 볼셰비즘이 사민주의보다 신디컬리즘과 공통점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볼셰비키와 신디컬리스트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볼셰비키가 노동계급 내 전투적 소수가 어떻게 계급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신디컬리스트들이 옹호하는 파업 같은 직접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36 그러나 혁명적 활동은 신디컬리즘과 단절하는 것도 수반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개혁주의는 노동력 판매 조건(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서 나오고 그런 투쟁이 개혁주의와 노동조합의 관료적 과두제가 성장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신디컬리즘은 개혁주의의 사회적 토대를 심각하게 과소평가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볼셰비키는 개혁주의 정당에 대한 신디컬리즘의 비판에 동의하면서도, 다수의 노동자들이 개혁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제는 다름아닌 신디컬리스트들이 제공한 근본적 통찰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한 세기 전 영국의 신디컬리스트들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후대의 모든 혁명가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기본 명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우리는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표하는 한 노동조합 관료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대표하지 않으면 그들과 독립적으로 행동할 것이다.37 신디컬리즘과 개혁주의적(또는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와 달리, 볼셰비키는 직접행동과 정치 사이의 대립을 뛰어넘는 조직 형태를 제시했다. 신디컬리스트처럼 볼셰비키는 노동계급 내의 진정한 투쟁적 소수를 조직하고자 했다. 이 말은 개혁주의자들과 달리 볼셰비키는 정치 권력을 차지하려고 할 때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고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 기관을 세우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셰비즘은 단지 정치적 개혁주의의 한계뿐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직접행동을 추구하는 신디컬리즘의 한계도 벗어났다. 달링턴이 주장하듯, “(비록) 신디컬리즘은 의회주의에서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지만 … 산업 투쟁을 배타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실제로는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개혁주의의 거울 이미지와 같았다”. 38
랄프 달링턴은 “혁명적 간부 조직과 대규모 노동조합을 둘 다 만들려 한다”는 신디컬리즘의 핵심적 모순을 볼셰비키가 지적했다고 설명한다.39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디컬리즘의 의회 정치 거부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극복하는 실천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결국 개혁주의에 대한 적절한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신디컬리즘적 투쟁은 정치 권력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형태의 직접행동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라는 층위에 갇히게 되고, 그래서 사실상 개혁주의의 한 유형으로 남게 된다.
볼셰비즘이 이런 한계를 뛰어넘었기에 《신디컬리즘》의 주요 저자인 윌리엄 Z 포스터를 포함한 많은 신디컬리스트들이 1917년 이후 볼셰비즘에 합류했다. 반델발트와 슈미트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들의 신디컬리즘 옹호 논리에 던지는 근본적 의문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레닌주의에 관한 허상을 넘어
혁명 이론에 대한 레닌의 위대한 공헌 하나는, 좌파가 수많은 낱낱의 투쟁을 이끌지만 그 투쟁들이 파편화돼 정치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실천적 방침을 제공한 것이다.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레닌의 근본적이고 전략적인 기여는 해방을 향한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운동 일체에 내재된 사회주의적 지향을 끄집어 내는 데 필요한 실천상의 정치 문제들을 끝까지 파고 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지역적 규모의 노동자 운동에서 실질적 지도력을 획득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그 운동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활동가들의 통일된 네트워크를 갖춰 다양한 투쟁들이 권력에 도전하도록 모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15년 뒤 레닌은 파리 코뮌에 대한 마르크스의 글을 다시 살펴보면서, 개혁주의적(국가주의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정치 분리를 되풀이한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레닌은 오직 경제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이런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등장한 소비에트, 즉 노동자 평의회가 그런 민주적 질서의 진정하고 자발적인 토대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이 기구들은 사회주의를 예시豫示한다. 20세기에 걸쳐 계급 투쟁이 정점에 이를 때면 이와 비슷한 기구들이 거듭 등장했으므로 지금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기구들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현실적 대안으로서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노동계급이 파편화돼 있고 노동자 투쟁이 부문별로 벌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노동자 평의회가 더 민주적인 사회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노동자 운동 내에서 저절로 확산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 노동자 평의회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맞서 다수를 사회주의 쪽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조직은 사회주의를 예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조직은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자신이 해산할 조건을 스스로 마련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이는 어느 조직이든 스스로 해산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에 매달릴 것이라고 교조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처음 글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주장은 초역사적이고 그래서 비관적인 인간본성론을 깔고 있고, 그에 따르면 모든 사회주의 모델이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레닌을 비판하는 반델발트의 신랄한 어조는 이런 전략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구체적으로, 반델발트는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상황을 들어 레닌을 비난하는 아나키스트들의 흔한 논리를 내세운다. 나와 차일리히를 겨냥해서 그는 우리가 1917년에 레닌이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1917년 이후 혁명이 타락하는 과정에서도 레닌이 마찬가지로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측면에서 이 주장은 당연히 맞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선택은 당연히 혁명 전과 이후 모든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각각의 경우에 그 영향력 크기가 어떻게 달랐고 어떤 다른 선택지가 있었느냐다. 예를 하나 들자면, 1917년 볼셰비키가 내놓은 주요 구호는 “빵, 평화, 토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였다. 여기에는 도시의 식량(빵)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종식시키고(평화) 농민에게 땅을 배분하는 것(토지)인데,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가 부르주아 정부한테서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는 주장이 집약돼 있다. 이 주장에는 커다란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바로 독일에서 혁명이 성공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독일 군대가 계속 전쟁을 수행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1917년 12월부터 1918년 3월까지 독일 제국주의자들과 벌인 협상에서 볼셰비키는 평화와 빵·토지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그들은 평화를 위해 곡창지대를 내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많은 아나키스트와 일부 볼셰비키는 전쟁을 계속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선택은 분명 사태의 전개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에 제대로 답하려면 당시 볼셰비키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42 이처럼 극악한 상황에서 평범한 러시아인들과 새 혁명 정부에게는 물리적 생존 자체가 최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볼셰비키가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상황 전개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일지라도, 혁명 후 러시아의 이런 끔찍한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43 피터 세지윅이 썼듯이, “레닌의 초기 진술에 약점이 있었다는 ‘주관적’ 요소를 원인으로 끌어들이지 않고도 러시아 혁명과 내전의 ‘객관적’ 사회 환경만으로도 대중적 혁명 물결이 무너진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44 레닌의 비극은 [혁명] 정권이 맞닥뜨린 중대한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할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통렬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조건에서 명목상의 권력을 맡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한 반델발트의 논평은 현실적 가능성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가능성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에, 1917년에는 레닌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지만 내전과 이후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됐다. 즉,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레닌은 허우적댔다. 45
경제 위기는 ‘실현 가능한 것’의 폭을 유례없이 좁혀 놓았다. 볼셰비키가 맞닥뜨린 문제들은 이전 어느 시기보다도 더 엄혹한 것이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는 상대적 후진국이었으며, 전쟁과 뒤이은 내전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1920년 들어 산업 생산은 이미 아주 낮은 수준이었던 1913년의 13퍼센트로 떨어졌다. 1913년에서 1921~22년에 이르는 기간에 임금노동자 수는 1100만 명에서 650만 명으로 줄었고 제조업 노동자는 절반 이상 줄었다.” 46 반델발트의 잘못된 논법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사례는 러시아에서 1917년 이후 5년 사이에 그 이전 차르의 보안경찰 통치가 시행된 50년의 기간보다 스무 배나 많은 처형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어떤 대상을 비교하려면 엇비슷한 것끼리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폭력이야말로 내전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러므로 내전 상황이 아니었던 혁명 이전 50년과 내전 시기를 비교하는 것은 황당무계한 일일 뿐이다. 볼셰비키는 “구체제가 자신의 통치를 복원하려고 유혈 낭자한 시도를 하는 것”에 47 대응해야 했던 탓에 내전에 말려들었다. 물론 낱낱의 결정들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겠지만, 볼셰비키가 이러한 내전 상황에서 전반적으로 폭력을 사용한 것을 두고 나무라는 것은 순전히 터무니없는 일일 뿐 아니라, 사실상 혁명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논리를 따르면,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해방령도 똑같이 기각해야 할 것이다. 링컨이 벌인 남북전쟁의 결과로 62만 5000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 숫자는 제1·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 수를 모두 합친 것과 얼추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1640년대 영국 혁명 당시의 사망자 수가 인구 비례로 따지면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세 배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영국 혁명의 성과도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아나키즘을 똑같은 방식으로 기각할 수도 있다. 아나키스트들도 스페인 내전 초기의 몇 주 동안 공화파가 장악한 지역에서 수만 명을 처형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48
혁명 이후 상황에서 레닌이 혹독한 대내외적 위협들에 맞서 다소 임기응변적 방식으로 대응한 것은 사실이다. E H 카도 이렇게 썼다. “[볼셰비키가 내전 시기에 취한] 거의 모든 조치는 비상 사태에 대응한 것이거나 자신들에 대해 예고된 또는 실현된 적대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서 취해진 것이었다.” 49 그러나 스탈린 체제 하에서 벌어진 폭력은 1917년 혁명에 기원을 둔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자취마저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스탈린주의 체제가 “‘새로운’ 생산 방식을 채택하고 새로운 계급을 창출하고 확고히 자리잡게 하려면 유혈극이 필요했다.” 50 이러한 두 시기에 행사된 폭력을 그 사회적 맥락에서 떼어낸 채 동일선상에서 논의함으로써 반델발트는 사실상 역사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그저 지배 형태의 연속으로 파악할 뿐이다.
“레닌-트로츠키 체제가 스탈린 체제를 위한 본보기가 됐다”는 위에서 언급한 반델발트의 주장도 똑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식의 비교는 사회적 맥락을 배제한 채 폭력을 논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사실, 사회적 맥락이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레닌-트로츠키 체제에서 폭력을 사용했던 것은 반혁명군이 혁명 정권에 가한 진정한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1917년에서 1922년 사이에 벌어진 테러는 대체로 혁명과 반혁명이라는 변증법이 부채질한 어찌할 수 없는 내전의 실상일 뿐이었다. 반델발트는 레닌을 비난하는 데 안달이 난 나머지 우파의 오래된 중상모략마저 되풀이한다. 그것은 바로 1917년 10월 혁명 초부터 퍼진, 볼셰비키가 집단 강간을 자행했다는 비방이다. 반델발트는 이러한 악의에 찬 중상을 그 원판대로(볼셰비키가 여성을 국유화하는 포고를 내렸다는!) 제기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극우 이데올로그들조차 그러한 터무니없는 비난을 더는 계속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반델발트는 논란 많은 우익 역사가 블라디미르 브로프킨의 글을 근거로 볼셰비키에게 강간 혐의를 씌운다. 사회주의자라면 브로프킨 같은 출처의 신빙성을 당연히 의심할 텐데(아나키스트라면 레이건주의자가 아나키스트의 시위를 정직하게 묘사할 것이라고 믿겠는가?), 반델발트는 도리어 볼셰비키의 강간을 묘사할 때 브로프킨이 “흔히”often라고 쓴 것을 “일상적으로”routinely라고 바꿔치는 식으로 브로프킨의 반反볼셰비키 논조를 사실상 더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브로프킨이 “구타, 고문, 협박, 강간이 흔했다” 하고 쓴 문장을 반델발트는 “구타, 고문, 강간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고쳐 써놓았다. 브로프킨이 사실상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어떠한 구체적 사례도 인용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런 진술은 이중으로 허위다.52 이런 종류의 반동적 허튼소리는 1960년대의 해방 운동들을 비난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전매 특허다. 좌파의 입장에 서 있는 우리는 그러한 비방을 되풀이하는 사람을 혁명 운동에 대한 믿을 만한 비평가인 양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비방이 거짓임을 폭로해야 한다. 반델발트가 브로프킨을 혁명의 권위자로 인용할 뿐 아니라 이러한 냉전의 전사가 내뱉는 반볼셰비키적 편견들을 강화하는 행태까지 보인다는 사실은 그가 볼셰비키의 활동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얻는 데 관심이 있다기보다 볼셰비키를 흠집낼 수만 있다면 아무리 기이한 비난이고 또 그 출처가 어떠하건 상관없이 가져다 쓰는 데만 열중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브로프킨 책의 다른 대목에서는 실제 강간 사건을 인용하지만, 그 사료의 출처는 볼셰비키가 기록한 강간범 기소 자료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볼셰비키 정권이 테러 수단으로 강간을 이용했다는 증거이기는커녕 강간을 근절하려 애썼다는 증거일 뿐이다! 게다가 브로프킨의 요지는 볼셰비키가 강간범이라는 것이 아니라 혁명 이후에 볼셰비키가 종교와 가족의 가치를 훼손한 탓에 강간이 광범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브로프킨은 볼셰비키 정책이 이른바 페미니스트적이었던 탓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증가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폭로하고 남녀 교제, 가족, 사적인 영역을 공격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실용주의적’ 태도를 조장할 것이라는 점을 볼셰비키는 외면하려 했다”고 썼다.” 53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델발트가 얘기하듯 레닌과 볼셰비키가 내전 시기에 한 일이 모두 옳았다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믿음은 분명 터무니없다. 그보다는, 볼셰비키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러시아 바깥에 사회주의 혁명의 성패가 걸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혁명을 지키기 위해 쩔쩔맸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내전 시기에 볼셰비키가 한 결정들을 두고 그들을 비판할 수야 있겠지만, 기아, 질병, 노동계급 절반의 사망이라는 현실 속에서 “제3의 혁명”을 일으켜 볼셰비키 체제를 더 좌파적인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은 당시에 전혀 현실적인 정치 전망이 될 수 없었다. 54
내전 시기의 볼셰비키의 행태에 대한 좀더 균형 잡힌 서술은 러시아 혁명의 사회사에 관한 선구적 저작을 남긴 윌리엄 H 체임벌린에게서 찾을 수 있다. 적군을 탈영해 백군에 가담했지만 결국 백군의 만행에 질려 버렸다는 한 장교의 말을 언급하면서 체임벌린은 이렇게 썼다. “물론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성자나 청교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행동과 사기는 그들의 적들보다 전반적으로 나아 보였다.55 이러한 상황이었으므로 볼셰비키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비판이 아무리 (추상적으로는) 도덕적 권위를 갖고 있었더라도 아나키스트들은 혁명 러시아에서 영향력이 별로 크지 않았다. 사실, 폴 아브리치가 러시아 아나키즘의 역사에 관해 우호적으로 쓴 글의 결론에서 지적하듯이, 부분적으로는 아나키스트들이 “급변하는 세계의 현실적 요구들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나키즘은 “당대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된 개인들의 소규모 집단”의 “이상적 유토피아”로만 남았다. 56
1917년에 가능했던 선택은 볼셰비키 아니면 원조 파시스트 세력에 해당하는 백군, 이 둘 중 하나였다.(10월 혁명 이전 임시 정부는 그저 이 두 사회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위태롭게 유지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지는 192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57 둘째, 어쩌면 더 중요하게는, 볼셰비즘을 자코뱅주의의 변형으로 치부하는 것은 10월 혁명을 앞두고 레닌이 건설한 당이 노동계급 다수를 사회주의 쪽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러므로 혁명 직후 상황의 볼셰비키 통치가 1793~94년에 정점에 이른 프랑스 혁명 자코뱅 정권을 여러 측면에서 닮아 갔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이러한 과정을 스탈린주의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첫째, 스탈린은 볼셰비키 당을 숙청하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1939년 무렵 단지 1.3퍼센트의 당원만이 1917년 이전에 가입한 사람들이었고, 1917년에 당원이었던 사람들의 93퍼센트는 더는 당원이 아니었다. 또한 당원의 70퍼센트가 1929년 이후 가입한 사람들이었다.결론
” 58
불행히도 반델발트는 내가 처음 글에서 제기한 실체적 쟁점들을 두고 토론하기보다 레닌(과 마르크스)에 관한 허수아비를 세운 뒤 비판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에 응답한 이번 글의 본론에서는 이러한 왜곡들을 반박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지만, 결론에서는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중요한 전략 논쟁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글에서 다룬 많은 논쟁에 좌파들이 개입했던 당시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 세계가 매우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체계적인 임금노동 착취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에 반델발트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사회주의 단체는 다른 무엇보다도 노동계급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장도 여전히 유효하다.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주의의 사슬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곳에서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이러한 과제를 달성하자면 정치 단체가 필요하고, 정치 단체의 성격은 그것의 기능에 달려 있다. 즉, 무엇을 위해 그러한 정당이 필요한지 알아야만 어떤 종류의 정당이 필요한지도 알 수 있다. 개혁주의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지역구와 의회 일정에 맞춰 조직된 반면, 반란을 이끌고자 하는 정당은 국가를 장악하겠다는 동일한 목적을 단지 더 전투적인 방식으로 추구한다. 그 반면에 [아나키스트의] 직접행동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모델을 예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아나키스트 “정당”은 매우 다르게 조직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주의와 직접행동주의는 비록 겉보기에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된 것으로 보는 경향을 동전의 양면처럼 반영하고 있다. 두 방식 모두 무력화된 정치를 물신화한다.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국가주의 정당이라는 반델발트의 주장은 우리[마르크스주의자]도 그러한 한계에 갇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처음 글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코뱅주의/블랑키주의를 대조함으로써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밝혔다. 우리의 목적은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다수를 사회주의 쪽으로 끌어들이고 옛 국가를 파괴하고 그것을 민주적 권위를 지닌 노동자들의 기관들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터인데, 일부는 선거 활동일 수 있고 일부는 직접행동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전략이란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기획으로, 과거와 현재의 투쟁에서 배운 교훈들을 이론적으로 일반화하고 실천을 통해 창조적으로 적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신디컬리즘은 그 의심할 나위 없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관료화의 압력에서 벗어나지도, 노동조합 내 혁명적 소수와 나머지 사이의 관계를 적절히 설정하지도 못한다. 그 반면에 볼셰비즘은 당과 계급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러한 구분에 기초해 소수인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의 다수를 노동자 권력의 대의 쪽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개념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러시아 혁명 시기에 볼셰비키는 노동계급의 다수를 소비에트라는 아이디어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분명 사회주의자들에게 유용한 좋은 교훈들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혁명적 시절의 코민테른(4차 대회까지)의 경험도 이 시대의 활동가들한테 필수적인 자산이 될 만하다.
반델발트가 자신의 글에서 레닌(과 마르크스)의 정치에 대한 흔한 왜곡을 되풀이한 것의 핵심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운동들에서 교훈을 습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의 글이 가진 주된 장점은 그가 아나키즘을 혁명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전략으로 개념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나는 아나키즘 이론에 자유주의의 요소들이 아로새겨져 있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구실을 한다는 내 주장을 바꾸지 않을 테지만, 반델발트가 이러한 난국을 넘어서려 하는 것은 대환영이다.
우리는 그런 시도를 다음과 같이 맞이한다. 좋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우고, 투쟁 속에서 동지로서 우리 사이의 견해 차이를 토론하고, 사회를 사회주의적으로 변혁하는 데 적합한 전략을 분명히 밝히도록 하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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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aul Blackledge, ‘Anarchism, syndicalism and strategy: A reply to Lucien van der Walt’, International Socialism 131(Summer 2011).
↩
- 마이크 헤인즈와 알렉스 캘리니코스에게 감사한다. 지면이 충분치 못해 내 글에 대한 이언 버철의 답변에 대해서는 적절히 다루지 못했다. 추후에 그가 제기한 쟁점에 답변하겠다. ↩
- 본 논문에서 ‘자유지상주의’는 권위주의 또는 국가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 옮긴이. ↩
- Van der Walt 2011a, pp201-204. ↩
- Avrich, 1967, p196. ↩
- Marx, 1976, p732. ↩
- May, 1994, pp1-15; Franks, 2006, p98. ↩
- Newman, 2001, p2. ↩
- Critchley, 2007, p89. ↩
- Cliff, 1975, p254. ↩
- Bernstein, 1993, p190. ↩
- Van der Walt, 2011a, p203. ↩
- Brouï and Tïmime, 2008, p208. ↩
- 스페인에 대해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방법으로 지킬 수 있고, 또 지켜야만 한다. 그래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대체하는 과정을 차곡차곡 진행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과정에서, 서로 어깨 걸고 싸울 때조차도,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아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정부에 입각하지도 않으며, 완전한 비판의 자유를 누리고, 인민전선에 속한 모든 정당과 완전히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 Trotsky, 1973, p257. ↩
- Van der Walt, 2011a, p198. ↩
- Price, 2007, p172. ↩
- Price, 2007, p10. ↩
- 반델발트와 달리, 프라이스는 마르크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실체가 분명하고 현대적인 형식의 민주주의인 반면 “아나키즘과 민주주의의 역사적 관계는 상당히 애매모호하다”는 점도 알아챘다. ─ Price, 2007, pp49; 165. ↩
- Van der Walt, 2011b. ↩
- Price 2007, p50. ↩
- Harman, 2004, p31; Schorske, 1983, p115. ↩
- Berkman, 1989, p60. ↩
- Darlington, 2008, p233. ↩
- Berkman, 1989, p77. ↩
- Van der Walt and Schmidt, 2009, p141. ↩
- 국가에 대한 쟁점에서, 마르크스와 아나키스트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학술적 아나키스트가 쓴 최근의 변호를 보려면 Karatini, 2005, pp165-184를 참고하시오. ↩
- Luxemburg, 1970a, p72. ↩
- Cliff and Gluckstein, 1986. ↩
- Darlington, 2008, p224; Hallas, 1985, p82. ↩
- Van der Walt and Schmidt, 2009, p189. ↩
- Michels, 1962, pp326; 50. ↩
- Barker, 2001. ↩
- Ford and Foster, 1990, p20. ↩
- Hallas, 1985, pp35-37. ↩
- Rocker, 1989, pp85, 116, 124. ↩
- Berkman, 1989, p63. ↩
- the Clyde Workers’ Committee 1915에서. Cliff and Gluckstein, 1986, p34에서 재인용; Darlington, 2008, p221도 보시오. ↩
- Darlington, 2008, p167. ↩
- Darlington, 2008, p245. ↩
- Van der Walt and Schmidt, 2009, p13; Darlington, 2008. ↩
- Gluckstein, 1985; Barker, 1987. ↩
- Van der Walt, 2011a, p203. ↩
- Nove, 1992, pp89-110. ↩
- Lewin, 1968, p17; Harman, 2008, p427도 보시오; Mayer, 2000, p49. ↩
- Sedgwick, 1992, p13. ↩
- Harris, 1968, p152. ↩
- Carr, 1950, pp161, 168과 chapter 7, 더 일반적 진술로는 Mayer, 2000, p258. ↩
- Haynes and Husan, 2003, p49. ↩
- Durgan, 2007, p80. ↩
- Mayer, 2000, pp312, 253, 13, 239, 309-313. ↩
- Dunayevskaya, 1988, p227. ↩
- 볼셰비키가 강간을 일삼았다는 주장의 유일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다음뿐이다: “다음에 다양한 사례들이 제시돼 있다. ‘TsKa: Ko vsem chlenam partii, ko vsem mestnym organizatsiyam’, Iz Partii No 4 (May 1923)” ─ Brovkin 1998, pp24, 227. ↩
- Brovkin, 1998, p119. ↩
- Chamberlain, 1952, p461. ↩
- Haynes and Husan, 2003, pp49-61. ↩
- Haynes, 1997; Mayer, 2000, p244. ↩
- Avrich, 1967, p253. ↩
- Harris, 1978, p272; Harman 2008, p477. ↩
- Luxemburg, 1970b, p419. ↩
- Cliff, 1975, pp253-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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