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와 실물 경제
이 글은 International Socialism 저널 78호(1998년 3월)에 실린 Rob Hoveman의 “Financial crises and the real economy”를 이수현·이원웅·천경록·최일붕(가나다 순)이 국역한 것이다. 들어가는 말에 해당하는 처음 몇 줄은 1998년 아시아 경제 공황에 대한 언급인데, 불필요한 듯해서 생략했다.
자본과 착취
자본주의라는 계급 체제의 바탕에는 두 가지 근본적 분열이 있다. 하나는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분열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과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지배계급 간의 분열이다. 지배계급은 생산·분배·교환 수단을 소유하고 지배한다. 이에 반해 노동계급은 일할 능력(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야 한다. 그 자본가가 누구든지 간에 그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남긴다.
노동자들이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낸 가치보다 더 적게 임금을 주고 뽑아낸 것이 잉여가치(대략적으로 말하면 이윤)다. 따라서 착취는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끊임없이 다른 기업주들과의 경쟁 위협에 시달린다. 경쟁에서 계속 승리하려면 또는 파산이나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되는 것을 모면하려면, 모든 기업주는 노동 시간과 강도를 늘리고 임금을 적게 주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기대 수준, 그리고 특히 집단적 저항이라는 한계에 말이다. 게다가 적절한 노동력 공급에도 한계가 있다.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기업주들은 노동력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그래서 임금이 인하되지 않고 오히려 인상된다.
따라서 기업주들은 더 세련된 기술에 투자해 생산성과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방식으로도 서로 경쟁한다. 생산 비용을 줄여서 가격 경쟁력이 더 있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자본가가 사회 전체의 잉여가치에서 더 많은 몫을 가져갈 수 있고, 그래서 이윤을 더 많이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자본
대체로 실물 경제와 일치하는 생산 자본은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상품 생산에 잉여가치를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자본가는 자신이 벌어들인 이윤을 투자하거나 은행 융자 또는 주식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투자한다(M). 이 자금으로 원료, 기계, 노동력을 사들이고(C) 그것으로 재화를 생산하는데(P), 이 재화의 가치는 거기에 투입된 원료·기계·노동력의 비용보다 크다. 이렇게 생산된 새로운 상품(C’)은 그 상품 생산에 쓰인 노동력과 기계(기계 자체도 과거 노동의 산물, 즉 ‘죽은’ 노동이다)의 비용보다 더 비싸게 판매된다. 그러면 기업주들은 원래 투자했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얻게 된다(M’). 이 과정이 바로 마르크스가 M-C-P-C’-M’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한 산업 자본, 즉 생산 자본의 순환이다.
자본가의 몫으로 돌아가는 가치 증가분은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로 얻어진다. 재화들이 모두 팔린다면, 이 잉여가치는 자본가 계급 전체에게 돌아가서 이윤·이자·배당금·지대로 나뉜다.
화폐
물물교환 경제에서는 물건을 직접 만든 사람들이 그 물건을 다른 필요한 재화와 맞바꾼다. 이 때 교환의 기준은 재화를 만드는 데 들인 노동의 양이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재화의 교환에 화폐가 끼어든다. 자본주의는 상품 생산이 보편화된 체제다. 이 체제에서는 다른 재화와 직접 교환할 목적으로 재화가 생산되지 않는다. 재화는 시장에서 팔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때 생산된다. 시장을 매개해 주는 것이 화폐다. 화폐는 일반적 등가물로서 재화의 가치를 비교하는 수단이자 교환의 수단이고, 가치를 저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처럼 화폐는 사회 전체에서 생산된 것들을 청구할 권리를 나타낸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도 상품이 되며, 노동자들은 일할 능력을 기업주에게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이 임금은 의식주를 구입하는 데 쓰일 것이다.
화폐는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하는 핵심적 구실을 은폐한다. 자본가들은 마치 자신들이 부를 창조한 것처럼 행세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자본가들이 노동계급을 착취해서 돈을 긁어모으고,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서 그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누구를 얼마에 고용할지 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업주들이 주무르는 돈은 극소수의 결정에 노동자들의 운명이 좌우되는 현실의 반영이다.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본가 계급의 이윤이 소비를 절제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웃기는 소리다. 부자들의 생활을 슬쩍 보기만 해도 이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확연히 드러나듯이, 실제로는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산될 수 없다.
화폐는 다양한 상품들 간의 상대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서 노동이 하는 구실도 은폐한다. 상품의 가치는 결국 그 상품을 만드는 데 드는 평균적인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 이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 상품의 상대적 가치를 결정하고 화폐의 가치 자체도 궁극적으로 좌우한다.
그러나 화폐로 표현되는 상대적 가격은 가치로부터 약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피카소가 한 시간 만에 그린 그림은 수백, 수천 시간을 들여 만든 주택보다 훨씬 비쌀 수 있다. 왜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 작품 경매에서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성장률 이상으로 화폐를 찍어내면 일반적 물가 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 이를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수요와 공급의 변화로 상대적 가격이 변할 수도 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마르크스는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수요와 공급이 상대 가격과 자본주의 경제의 동역학에 미치는 영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물건에 사용 가치가 없으면 그 물건에 대한 수요도 없을 것이고, 그 물건을 판매해서 잉여가치를 실현하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물건이 지닌 가치의 객관적 척도는 그 물건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며, 가격은 이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라는 무게중심을 기준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더욱 중요하기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가들이 투자한 가치에 대한 잉여가치(생산 과정의 착취에 따라 결정되는)의 비율이 결국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율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이윤율이 궁극적으로 체제의 건강을 좌우한다.
금융 자본
어떤 자본가들은 이윤이 남아돌아도 당장 마땅한 투자처가 없을 수 있다. 다른 자본가들은 좋은 투자처가 떠올라도 당장 돈이 없을 수 있다. 은행과 주식 시장은 이 두 자본가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이 자본의 금융 순환이다.
금융 시스템 덕분에 자본가들은 자기 회사가 벌어들인 돈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자본가들은 주식 시장을 통해 돈을 모을 수 있다. 그들은 주식 시장에서 주식을 팔아, 그것을 산 사람이 회사의 일부를 소유하고 미래의 이익을 배당금 형태로 나눠 받게 한다. 한편, 자본가들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있다. 또는 채권을 발행해서 금융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채권을 발행할 때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처럼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겠다는 약속을 한다. 지난 25년 간 각국 정부와 정부 산하 기관들은 엄청난 양의 채권을 발행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려 정부 지출을 메우기보다는 돈을 빌려 재정을 충당한 것이다. 미국 정부 채권 시장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 시장이다. 금융 시스템은 이익을 낼 만한 투자처가 있는 기업이나 나라에 잉여 자금을 공급해서 자본주의의 생산력 확장에 도움을 준다.
꿔줄 돈을 마련하려면 은행은 자본가나 다른 사람들의 돈을 끌어들여야 한다. 은행에 돈을 맡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은행은 예금에 이자를 붙여준다. 그래서 직접 생산에 투자하지 않아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M-M’). 그리고 은행은 예금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에게 더 높은 이자를 매기고 그들이 원리금을 꼬박꼬박 상환할 수 있도록 확실히 단속한다. 이 과정도 체제의 본질을 은폐한다. 왜냐하면 생산에 직접 참여하거나 실제 상품을 판매하지 않아도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은행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확장과 복잡한 자본주의 경제의 온갖 거래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의 약점을 드러내는 원천이기도 하다. 은행은 보통 잠시 돈을 빌린다. 예금자들이 금방 돈을 되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잠시’다. 그러나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기간은 길다. 즉, 은행은 빌려준 돈을 단기간에 돌려받을 수 없다. 따라서 예금자들이 미친 듯이 돈을 되찾아가거나 불안해하면 은행은 취약해진다. 그리고 시장 상황이 나빠져 부실 대출이 늘어나도 취약해진다. 1930년대에 미국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은 은행이 망해서 예금이 날아갈까 봐 불안해했고, 많은 은행들은 예금을 인출하려고 몰려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은행 문을 닫아야 했다. 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다른 은행들도 파산하자 이런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친 듯이 돈을 빼갔고, 결국 사람들이 우려한 대로 은행은 망했다. 1930년대 이후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금융 공황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고민 끝에 상업 은행이나 투자 은행의 예금을 정부가 보증해 주기로 했다. 예금 보험을 법으로 보장하기도 하고, ‘걷잡을 수 없는 패닉’으로 예금을 날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아시아 위기[1997~98년 — 옮긴이] 이후 어떤 부르주아 논평가들은 은행 시스템의 공적 성격과 사적 성격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거듭거듭 무모하게 돈을 빌려줘서 금융 위기를 재촉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예컨대 198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의 외채 위기나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파산,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부동산 거품 붕괴 위기, 1990년대 초 스칸디나비아 은행들의 위기, 일본의 거품 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2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경쟁 압력을 무시한 것이다. 은행들은 경쟁 압력 때문에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규제를 완화하면 은행은 더 무모하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다. 또, 이들의 주장은 금융 위기의 위험을 무시한 것으로, 이 위험 때문에 국가는 은행이 파산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는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은행들은 빌려준 돈을 못 받아도 정부가 구제해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마음껏 돈을 빌려주었다. 이런 논평가들은 은행 시스템을 더 투명하게 하고 더 강력하게 규제해야 하고, 무모하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심지어 그런 은행들이 파산하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다.이처럼 국가는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데서 그리고 금융 시스템과 함께 실물 경제도 무너지는 것을 막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은행들이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빠지는 이유를 단지 ‘패닉’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은행이 위기에 빠지고 나서야 ‘패닉’은 확산된다. 자본의 금융 순환이 얼마나 건강한지는 결국 상품 생산을 통한 잉여가치 창출에 달려있다. 금융 자본은 생산 과정에서 창출된 잉여가치를 분배하고 재분배할 뿐이다. 따라서 세계 수준에서 금융 자본의 운명은 생산 부문이 얼마나 건실하냐에 달려 있고, 생산 부문의 이윤율 위기는 정부의 예금 보장 조처로도 극복할 수 없다.
투기
요즘 주식 시장은 신규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 구실을 하기보다는 주로 기존 주식의 가치를 둘러싼 투기 시장 구실을 한다. 만약 금리가 낮고 이윤(따라서 배당)이 높거나 높아지고 있다면, 은행에 맡겨둔 돈을 빼내 주식에 투자한 투기꾼들이 더 많은 금융 소득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주식 시장의 ‘강세’는 생산적인 실물 경제의 이윤 증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식 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시장은 이윤율 증가가 장기적으로 감당해 내지 못하는 수준까지 치솟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기꾼들이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주식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주식 공급량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주식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 주가가 오를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기대가 실현된다. 그러나 곧 시장의 심리나 조건이 변하면, 시장은 ‘조정’을 거치거나 폭락할 것이다. 그런 폭락은 금리가 갑자기 높아져서 은행 예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윤이 줄어들어 배당금도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체제의 다른 곳에서 닥친 충격으로 말미암아 주가 상승 전망이 하락 전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런 요인들이 서로 겹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런던 금융 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사람들도 금융 시장이 중력[생산 부문]을 거슬러 무한정 치솟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시장의 상승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투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주가가 실제로 떨어지기 몇 달 전에 주식 시장을 빠져나온 사람은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볼 것이다. 따라서 이윤을 위한 경쟁이 생산 부문에서 과잉 생산을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위한 경쟁이 과잉 투기도 낳는다. 투기꾼은 시장의 상승세가 반전되고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투자 자금을 빼내가려는 ‘멍청이’들이 많기를 바란다. 주식 시장은 오늘날 금융 투기장 중에서 비교적 작은 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튤립에서 돼지고기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거래되는 가치의 측면에서 봤을 때 오늘날 최대의 투기판은 외환 시장이다. 1993년 국제결제은행의 조사 보고서를 보면, 비교적 평온했던 1992년 4월의 하루 평균 외환 거래 규모는 8천8백억 달러였는데, 이는 1989년의 6천2백억 달러에서 겨우 42퍼센트 증가한 수치였다. 반면에 1986년부터 1989년 사이에는 하루 평균 외환 거래 규모가 갑절로 늘었다. 8천8백억 달러가 실감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면, 외환 시장에서 약 2주 동안 거래되는 돈이 미국 연간 GDP(1년 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가치의 총합)와 맞먹고 약 두 달 동안 거래되는 돈은 세계 전체 생산량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거래량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1995년 3월에 달러 거래량은 1조 2천9백억 달러였고, 이는 1989년보다 7천억 달러 늘어난 것이다. 이 외한 거래량의 극히 일부만이 국제 무역과 직접 관련이 있다. 환투기꾼들은 실물 경제 변화의 영향을 받는 한편으로, 주식 투기꾼들과 마찬가지로 실물 경제의 흐름을 크게 부풀릴 수도 있다. 앞으로 다루겠지만, 환율의 변동은 실물 경제에 매우 파괴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경제 위기
경제가 호황이고 이윤이 많으면 많은 기업주들은 기꺼이 투자해서 생산을 늘린다. 이런 좋은 조건을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주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주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계획적으로 투자가 늘어나 버리므로 원료나 기계, 노동자가 부족해져 이것들의 비용이 올라간다. 한편, 늘어난 투자로 생산된 상품의 가격은 떨어질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올라가고 가격이 떨어지면 이윤은 줄 수밖에 없다. 이윤이 줄면 일부 기업들은 파산해, 투자 지출이 감소하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한다. 과잉생산에 따른 이윤 감소로 이렇게 지출이 줄면 이윤은 더 줄고 위기는 악화된다. 이 과정은 호황에서 불황으로 넘어가는 순환 주기인데, 자본주의는 과잉생산으로 거듭 위기와 경기후퇴에 빠진다. 과잉생산은 자본주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본주의 전의 계급 사회에서는 주민 대중의 필요가 충족될 만큼 재화가 생산되지 못하는 과소 생산 형태로 경제 위기가 일어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과잉 재화의 형태로 경제 위기가 일어난다. 이 과잉은 주민 대중의 필요가 충족돼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주들이 일정 수준의 이윤을 남기면서 그 잉여 재화를 판매하지 못해서 생겨난다.
금융 위기
생산 부문의 이윤이 줄면, 자본의 금융 순환이 악화돼, 전체 위기가 심화된다. 뇌물이나 연줄이 작용하지 않는 경우 대출 결정은 대출을 받는 사람이 제때 이자를 낼 수 있고 제대로 원금을 갚을 수 있는지에 따라 이뤄진다. 대출이 이뤄지면, 유휴 자본이 이용돼, 투자가 늘어날 것이므로, 결국 대출이 늘어나면 과잉생산 위기가 심화된다. 은행은 기업이 얻을 이윤을 보고 대출해 주는데, 기업의 이윤 기대치가 현실화하지 못하면, 기업은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대출이 ‘부실’해진다. 최악의 경우 대출금이 회수될 수 있고, 그러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기업이 부도나고, 그 기업 종업원이 정리해고되고, 기업 자산이 차압당하고, 일부 채권자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그 자산이 ‘재고처분’식 가격으로 처분된다. 이처럼 금융 시스템은 호황을 확장하고 연장시켰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위기도 그렇게 만든다.
5 신용 경색이 일어나면 여신(與信)이 줄고 경제적 지출도 줄면서 위기가 더 심화된다. 또한, 차입자들이 더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은행은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경제는 더욱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은행이 다른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을 상환하지 못하거나, 자신에게 대출해 준 은행이 대출금의 이자를 인상하거나, 은행이 손실 보는 은행에게는 더 대출을 하지 않기로 하면 은행 자신이 곤경에 처하게 된다.
주요 대출 기관의 일부인 은행은 예금자들의 예금을 빌려 예치한다. 예금은 은행의 ‘부채’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은 예금자들이 맡긴 이 돈을 차입자들에게 대출해 준다. 이 대출금은 은행의 ‘자산’이다. 은행 예금자들에게 일정한 지급 보증을 제공하고, 은행이 멋대로 대출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국제적 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은행의 자본(은행이 명목상 갖고 있는 돈의 합계로, 주주들이 낸 주가와, 거래 수수료 등 은행의 이익으로 이뤄진다)과 은행의 자산(대출) 사이의 비율은 이 기준에 들어야 한다. 대출이 부실해지면 결국 은행은 그 대출금을 감가상각비로 처리해야 한다. 대출의 감가상각 처리는 은행의 자본에 대한 청구금액인 것이다. 이는 은행 자본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 자본 총액이 작을수록 은행의 대출 한도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서 부실 채권이 늘어나면 은행 대출은 줄고, 결국 ‘신용 경색’이 일어난다.투기와 위기
생산 부문의 과잉생산으로 생겨나는 문제들은 투기 과잉으로 악화될 수 있다. 투기 열풍으로 자산 가치(기존 보유 주식·부동산·상품 등의 가격)가 급증하면 과잉생산을 일으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개발업자들은 고무돼 건물이나 주택을 더 지으려 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런던에서는 사무실 공급이 크게 늘어난 적이 있다. 막대한 개발 이익을 좇아 빌딩 건축은 대책 없이 급증해, 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해, 마침내 빌딩 사무실이 다 차려면 25년이 지나야 한다는 추산까지 나왔다. 이러한 과열의 결과, 또 ‘로손 호황’[1980년대 말 영국의 수석 경제장관 나이절 로손의 경기부양책을 가리키는 용어 — 옮긴이]의 과열 경기를 식히고자 정부가 올린 대출 금리 인상 조치로 말미암아 상업용 부동산 거품 경기는 터지고야 말았다.
투기꾼들이 사기를 멈추고 팔기를 시작하자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그에 따라 은행들은 자신의 대출에 대한 담보물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부동산 등 담보물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출금 회수와 여신 관리 강화는 자산 가치를 더 떨어뜨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투기 과잉은 자본의 금융 순환에 붙박이처럼 내재하는 것이라는 점과 자본의 금융 순환은 전체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양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본의 생산 순환과 금융 순환을 구분해야 하지만, 생산 부문의 자본가들이 투기도 하고 투기꾼들이 생산에 투자도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영국 경제 문제들의 원인을 금융시장이라고 콕 집어서 따로 이야기하는데, 이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기업주들 전부가 이윤을 좇아 어디에든 달려들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계획적 경쟁이 노동계급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투기 과잉과 이후의 투기 거품 붕괴가 항상 실물경제를 침체시키거나 실물경제 전체에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1987년 위기
1987년 세계 주요 주식 시장에서 급등한 주가는 투기꾼들의 정서가 바뀌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즉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 해결 방안을 놓고 미국과 서독 정부가 손발이 안 맞는다는 것을 투기꾼들이 눈치챈 것이다. 서방 정부들은 주요 주식 시장 주가가 25퍼센트 하락한 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이 실물 경제 침체의 신호탄이 될까 봐 벌벌 떨었다. 서방 정부들은 미국과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 사이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하면 조만간 경기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이제 그 예측대로 시장이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던 것이다.
1987년 위기는 1980년대 내내 팽창한 실물 경제의 근저에 있는 문제가 표출된 것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1985년의 짧지만 중요했던 세계 경제 침체에서 잠시 드러났다. 그러나 정부는 이 위기에 감세와 금리 인하로 대응했다. 이를 통해 소비와 투자, 투기 욕구를 부추기려는 것이었다. 서방 정부들의 대처로 실물 경제는 2년 더 팽창했지만 부동산과 증권에 대한 투기가 촉진됐다.
국가의 구실
1987년 세계 주식 시장의 위기는 세 가지 사실을 보여 줬다. 첫째, 금융 부문에서 일어난 주가 폭락 같은 큰 사건이 늘 실물 경제 침체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사건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체제라는 점을 보여 주긴 하지만, 거품이 꺼진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실물 경제에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둘째, 국가는 금융 부문이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 구실을 한다. 국가는 금융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거기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고 [체제를] 떠받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는 세 가지 방법을 쓴다. i) 대규모 예금인출사태(뱅크런)를 막기 위해 지급 보증을 서고, 대형 은행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은행이 부채를 갚지 못할 때 구제해 준다. ii) 케인스적 처방을 따라 금리 인하, 감세, 정부 지출 확대를 추진해 경기를 부양한다. iii) 케인스적 처방이 아니더라도 전후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대체로 정부 지출 규모가 컸다. 이것은 신용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수요 감소 효과를 제한할 것이다. 흔히 이것을 ‘자동 안정 장치’라고 부른다.
셋째, 금융 시장이나 국가가 국내 경제의 동향과 상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고 국제 경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몇 마디 소문과 그에 따른 군중심리로 급변하는 정서 때문에 금융 시장은 날마다 요동친다. 또, 문제의 뿌리를 뽑기 위한 정부의 조처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통화 위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여러 가지 통화가 있다.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한 가지 통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통화가 다른 것은 국가가 자국의 통화 정책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핵심은 단기 대출금리를 조절하는 것이다. 한편, 그 국가 고유의 통화는 주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약 25년 간 서방의 주요 무역국 통화의 상대적 가치, 즉 환율은 브레턴우즈 협약으로 고정돼 있었다. 브레턴우즈 협약은 금을 기준으로 달러의 가치를 고정하고, 기축통화인 달러에 다른 통화의 가치를 고정했다. 이 시기에 다른 시기보다 환율이 안정됐다. 서방 경제 전체의 성장에 비해 국제 무역이 더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초가 되자 고정환율제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수출에 비해 수입이 지나치게 많아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었다. 이는 서독과 일본의 경쟁력이 증대하고 미국이 베트남전에 쏟아붓는 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가는 보통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를 둔화시킨다. 그래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강조하려 한다. 또는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면 수입품 가격은 비싸지는 반면, 수출품 가격은 싸진다. 미국 정부는 자국 경제를 둔화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없었다. 당시 달러는 고정환율제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바깥의 달러 보유자들은 ‘달러가 곧 금’이라는 명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 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달러와 금의 연계를 포기하고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브레턴우즈 협약을 지탱하길 포기해야 했다. 전후 장기 호황기에 미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성장이 더뎠고 군비 지출이 줄었던 것도 주요한 원인이었다.
1973년이 되자 통화의 교환 비율이 멋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74년, 전후 첫 위기를 맞은 실물 경제의 불안도 가세하면서 문제가 더 악화됐다. 한 통화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수입품 가격이 급등해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그러다 통화의 가치가 갑자기 오르면 수출품 가격이 올라 경쟁에서 밀려나고 자국에는 수입품이 밀려 들어왔다. 이는 국내 제조업자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었다.
이윤을 빨리 더 많이 얻으려는 환투기가 성행하며 환율은 더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는 환율을 잡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썼다.
첫째, 자국의 통화가 외국 통화로 교환되는 과정에 정부가 직접 뛰어들었다. 흔히 이것을 ‘외환 관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환율 시장과 IMF는 외환 관리를 그만두라고 다그쳤다. 그래야 경제 위기가 엄습해 오면 다른 환율로 마음대로 갈아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외환관리를 못 하게 되자 정부는 원하는 통화 가치를 유지하려고 중앙은행이 쌓아 둔 외국 통화로 자국 통화를 사들였다. 이를 통해 국가는 투기꾼들을 쫓아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투기꾼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기만 하면, 정부가 자국 통화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올릴 수 있었다. 이런 조처를 취하고도 자국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앙은행은 큰 손실을 입을 것이었다. 심지어 중앙은행이 쌓아둔 외국 통화를 다 써버리면 외국에서 꾼 돈을 갚지도 못할 판이었다.
셋째, 국가는 금리를 높이거나 낮추어서 투기꾼들을 유인하거나 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국내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정부가 금리를 낮추고 그래서 차입 비용을 줄이면 인위적 경기 부양이 될 것이고 정부가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침체할 것이다.
정부는 요동치는 환율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러나 환율을 예전처럼 고정할라치면 더 큰 곤경에 처하곤 했다. 보수당 집권 18년 동안 환율이라는 해묵은 문제는 계속해서 말썽이었다.
MARX21
주
- 1980년대에 미국의 주택조합인 저축대부조합(S&L)의 악성 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고객들에게 예금을 지급할 수 없는 조합이 많아졌다. 그러자 1930년대에 처음 제정된 법률에 따라 연방정부가 나서서 파산한 저축대부조합을 대신해 최대 10만 달러까지 예금을 돌려줘야 했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모두 5천억 달러 이상의 혈세가 투입됐다. 탐욕·무능·정경유착으로 얼룩진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아니다)은 L J White, The S&L Debacle (New York, 1991)을 보시오. ↩
- 예컨대, 1998년 1월 6일치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M 울프(Wolf)의 글 “왜 은행이 위험한가”(Why Banks are Dangerous)를 보시오. ↩
- D Henwood, Wall Street (London and New York, 1997), p45.[국역: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 사계절] ↩
- 마르크스의 경제 위기 이론은 여기서 짧게 개괄한 것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의 다면적인 이론은 지난 150년 동안 부르주아 경제학이 내놓은 어떤 위기 이론보다 훨씬 더 뛰어난데, 세 권의 《자본론》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설명한, 유용하지만 쓸데없이 잘난 척하는(마르크스에 대해서도 그렇고 마르크스 이후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경제 이론을 탐구해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책으로는 S Clarke, Marx’s Theory of Economic Crisis (London, 1994)를 참조하시오. 클라크는 《자본론》에서 완전히 일관된 이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과, 위기 분석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과 상쇄 경향 법칙의 상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론》 3권(London, 1981) 제3부에서 개괄적 설명이 나오는 이 법칙은 자본주의의 장기적 추세에 적용된다. 호황/불황 순환은 세계 이윤율의 일반적 추세가 비교적 높게 유지될 때도 일어난다. 그러나 1970년대 초 이후 그랬듯이, 이윤율의 일반적 조건이 나빠지면 호황/불황 순환이 훨씬 더 뚜렷해지고 특정 나라들은 장기간의 정체와 위기 심화를 경험할 수 있다. 1970년 이후 심각한 세계 경기 침체가 세 차례 있었다. 1974~75년, 1979~81년, 1990년에 그랬다. 1990년 이후 (전후에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경제였던) 일본 경제가, 그리고 1990년대 초 이후 유럽의 주요 경제 대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모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또 다른 세계 경기 침체의 직전인지도 모른다.[참고로 이 글은 1998년 초에 씌어졌다. — 옮긴이]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과 상쇄 경향 이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A Callinicos, The Revolutionary Ideas of Karl Marx (London 1997)[국역: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책갈피] 6장을 보시오. 마르크스의 이론을 현대 자본주의에 적용한 사례로는 크리스 하먼의 Economics of the Madhouse (London, 1997)[국역: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 책갈피], ‘Where is Capitalism Going?’ International Socialism 58 and 60[국역: 《오늘의 세계 경제: 위기와 전망》, 갈무리], Explaining the Crisis (London, 1983)[국역: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풀무질]을 보시오. ↩
- 일본에서는 은행이 미실현 이익[아직 판매되지 않아 그 가치가 실현되지 않은 상태의 이익으로, 손익 계산을 불확실하게 한다는 이유에서 원칙적으로는 회계 장부에 올릴 수 없게 돼 있다]의 45퍼센트를 자기자본에 포함시키는 것이 허용된다. 1980년대 말에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은행의 자본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자본 규모가 커지자 은행은 대출을 늘릴 수 있었다. 그런 대출의 일부는 주식 시장에 다시 투자돼 은행의 자본 규모를 더 증대시켰고, 그래서 은행은 대출을 더 늘릴 수 있었다. 은행 대출은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흘러가기도 했고 실물 경제의 생산 증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 부르주아 경제평론가들은 거의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1980년대 말에 금리가 오르고 생산 부문에서 과잉생산이 나타나자 거품이 터졌다.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은행의 자본 규모도 급감했다. 은행은 대출을 삭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은행의 악성 부채도 급증했다. 1998년 1월 도쿄 주식시장에서는 니케이 주가지수가 15,000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이하로 떨어지면 일본 은행들은 주식 손실을 드러내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자 1980년대 말 신용 창출의 선순환을 불러왔던 시스템이 이제는 디플레의 악순환을 낳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본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던 바로 그 때 말이다. ↩
- 군비 지출이 장기 호황을 지탱하는 구실을 한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M Kidron, The Permanent Arms Economy, IS reprint number 2 (London, 1989)를 보시오. 장기 호황과 1970년대 초 이후의 불안정기에 대한 포괄적 분석은 C Harman, Explaining the Crisis (London, 1983)을 보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