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최근의 경제 위기와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 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
1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너도나도 위기를 바라보는 자기 견해를 내놓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의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비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의는 전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주류 경제학자들도 좋든 싫든 체제의 현실을 설명하고자 씨름해야 했다. 2 그러나 이번 경제 위기는 강단 경제 이론의 빈곤을 드러냈다. 런던 정경대 교수이자 전 영국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인 윌렘 뷰터는 이 점을 매우 솔직하게 인정했다.
의학이 병리학을 통해 진보하듯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도 실제 자본주의의 위기들을 분석하면서 발전해 왔다. 따라서 지금 경제 위기가 폭발하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지난 30년 동안 영미 대학의 대학원에서 가르쳐 온 거시경제학과 금융경제학 과정들은 집합적 경제 행위를 이해하고, 경제 정책에 응용할 수 있는 지식을 쌓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수십 년 퇴보시켰을지도 모른다. 이 과정은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시간 낭비, 돈 낭비였다. 1970년대 이후 주류 거시경제학의 이론적 혁신은 … 기껏해야 자기만족적이고 내향적인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그동안 연구 활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학문의 내적 논리 때문이거나 이미 투자된 지적 자본이 아까워서, 혹은 기존 연구프로그램의 현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묘미 때문이었지, 경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 때문은 아니었다. 공황심리와 금융 불안정성이 첨예한 시기에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막상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경제학계는 무방비 상태였다.이와 비교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성적은 훨씬 낫다. 그럼에도, 경제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은 동일하지 않다. 보통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고립돼 독립적으로 연구한 경우도 많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 몇 달 간 영어사용권에서 발표됐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을 검토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서로 비교하고, 국제사회주의 전통과도 비교해 장단점을 제시하려 한다.
‘실물’과 금융
현 경제 위기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들은 모두 위기의 원인에 금융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나라의 금융 시스템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이번 위기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됐다. 로빈 블랙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중 한 명으로, 패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몇 달 전인 2007년 봄에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달 동안 ‘서브프라임’ 대출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례가 많아졌다. 리먼 브라더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2007년 말에 이르면 서브프라임 대출 중 2천2백50억 달러가 디폴트 상태가 될 거라 경고했다. 그러나 다른 애널리스트들은 그 액수가 3천억 달러에 육박한다고 주장한다. 에퀴티 트랑셰equity tranche(리패키징된 부채 중 가장 신용등급이 낮은 부분)는 이제 업계 사람들에게 ‘독성 폐기물’로 불린다. 애널리스트들은 어느 곳에서 문제가 먼저 터질지 지켜보고 있다. 채무불이행 대란은 자기 집을 잃을 수많은 희생자들에게도 불행이거니와, 주택 시장을 타격해 경제 위기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이 글이 쓰일 당시 ‘서브프라임’은 대다수 언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언론들보다는 관찰력이 더 예리한 〈파이낸셜 타임스〉조차 ‘서브프라임 질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브프라임의] 타격이 주로 그 부분에 한정될 거라는 예상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많다. … 심지어 수많은 월스트리트 은행들이 서브프라임 사업에 뛰어들었더라도 … 경각심을 품을 필요는 없다. 개별 은행들은 작은 위험에 노출돼 있을 뿐이다. 보통 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채권을 손에 쥐고 있지 않고 재설계해 증권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판다. … 증권화는 원래 의도, 즉 위험을 분산하는 구실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7 그러나 블랙번과는 다른 관점에서도 곧 다가올 위기의 윤곽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했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은 2007년 여름호에서 놀랍도록 예언적인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은 우연히도 신용경색이 발생하기 직전에 발표됐다. 이 글은 금융 부문의 성장 원인을, 전후 호황기를 거치면서 하락한 이윤율이 1980년대에 저점을 친 이후로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데서 찾는다. 이 때문에 자본은 대안적 투자처를 닥치는 대로 찾아 나섰다.
〈파이낸셜 타임스〉와는 달리 블랙번은 그 전 수년 동안 세계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자세하게 분석해 왔기 때문에 말하자면 ‘사태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자본가들은 과거에 이윤율이 낮았다고 해서 미래에 거짓말처럼 높은 이윤을 얻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고, 전 세계에서 잉여가치를 끌어 모아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한 프로젝트들에 쏟아부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비생산적 분야의 투기 활동에 불과했고, 그 결과 부동산, 선물 시장, 주식 시장 등에서 거품이 발생했다. … 이런 상황 덕분에, 기업 이윤은 현실과 동떨어져 마구 부풀려졌고, 어느 날 갑자기 숨겨진 문제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블랙번과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대조적인 설명은 현 경제 위기를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두 갈래로 나뉨을 보여준다. 한 쪽은 ‘금융화’의 내적 논리를 강조하며, 금융 위기가 밖에서 ‘실물’ 경제를 강타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금융적 측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금융 팽창과 위기를 낳은 ‘실물’ 경제의 문제들을 강조한다. ‘실물’과 금융을 구분할 때 두 가지 점을 조심해야 한다. 첫째, 금융 성장은 부분적으로 ‘실물’ 부문 기업들이 주도했다. 예컨대 2003년에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전체 이윤의 42퍼센트를 금융자회사인 GE캐피탈을 통해 벌어들였다.
10 최근에 데이비드 하비가 말했듯이, “경제의 ‘실물’적 측면과 ‘금융’적 측면이라 할 만한 것 사이에는 좀더 변증법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11
둘째, 더 중요한 것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금융 시스템은 모종의 순수한 비금융적 자본주의에 접목된 어떤 것이 아니다. 화폐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자본의 구실을 하기 시작하면 자연히 신용 투기와 금융 투기의 가능성도 생긴다.12 ‘금융화’ 과정 때문에 체제의 동역학이 근본적으로 변했는가? 기타 등등. 먼저, 나는 최근의 금융화로 자본주의가 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해석을 검토하려 한다.
진정한 논점들은 다음과 같다. 금융 부문은 경제의 비금융적 부문과는 독립된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가? 현 위기는 과연 새로운 종류의 위기인가, 아니면 비록 금융의 성장 때문에 위기가 한동안 미뤄졌고 독특한 성격을 가지게 됐지만 결국 마르크스가 지적한 경향에서 비롯하는가?로빈 블랙번과 피터 고완 로빈 블랙번은 금융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지금 금융화는 기업 전략에서 개인 금융까지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친다. 신용카드 마케팅이나 모기지 계약뿐 아니라, 학자금 대출이나 개인 연금 등 삶의 상품화가 가속되면서 일상생활에도 금융화가 스며들었다.”
14 이를 두고 블랙번은 자신이 암묵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적 틀 안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블랙번의 분석 틀은 노동자들의 제한된 소비 능력만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위기의 근원은 간단히 말해 빈곤”이라고 주장했고 중국 노동자들의 소비가 증가하면 “세계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봤다. 15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을 쉽게 설명하는 데서 블랙번만큼 유능한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의 글들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개념들을 별로 참고하지 않으며, 금융계와 연관된 경우에만 경제 체제 전체에 관심을 기울인다. 제프 만은 이렇게 말했다. “블랙번은 가치와 화폐와 자본을 …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셋은 여전히 필수적인 정치·경제적 변수다.”16 《뉴레프트리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또 다른 마르크스주의자인 피터 고완 17 은 금융의 자율성을 더 강조했다. “신용경색을 이해하려면 이른바 ‘실물경제’의 운동이 모종의 ‘금융 상부구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상식적 견해를 뛰어넘어야 한다.” 18 고완이 보기에 금융화는 미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해답이었다. 19 그러나 그는 금융 부문의 성장을 주로 금융 부문 내부의 변화에서 찾았다. 미국 엘리트(와 하위 파트너로서 영국 엘리트)가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그 변화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20 그에 따르면, 미국 엘리트가 금융 거품 문제를 모르지 않았으나 “거품 붕괴 사이사이에 금융 부문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민간 행위자들에게 부과하는 규제들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고] … 거품이 결국 꺼지더라도 은행들은 국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21
그는 일부 글에서 금융의 부상이 금융 자체에서 나온 것처럼 말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본격화된 두 가지 현상 — 소비자 금융의 새로운 원리 도입 및 기관투자가와 펀드 매니지먼트의 부상 — 이 금융화의 밑거름이 됐다.”22 고완은 “2006년, 미국 기업 총이윤의 적어도 40퍼센트가 금융 부문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23 비록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의 25퍼센트만을 차지하지만, 이것[금융 부문에서 나왔다는 미국 기업 총이윤의 40퍼센트 — 옮긴이]은 어쨌든 미국 경제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온갖 거품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 자산 가격 상승을 반영하는 기업 재무제표를 근거로 추정된 이윤은 블랙번 자신이 비판한 “환상의 평가액”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24
그렇다면 금융 시스템은 얼마나 부풀어 올랐을까? 블랙번은 “미국 기업 총이윤 중에서 금융 부문 이윤이 차지하는 몫은 1981년 14퍼센트에서 2001년 39퍼센트로 커졌다”고 지적했다.25 그러나 이 과정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한다. 금융 자체는 가치를 만들지 않으므로, 궁극적으로 금융권의 이윤은 경제의 생산적 부문에서 나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 위기는 ‘가치법칙에 의한 질서 회복’으로서 금융권이 발행한 수표를 생산 부문이 현금으로 바꿔 줘야 하는 국면으로 볼 수 있다. 26
문제는 단지 자신의 기준으로 측정한 금융 부문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의 성장이 실제 축적에 미치는 영향이다. 금융 부문은 생산 부문에서 창조된 가치로 도저히 뒷받침될 수 없는 규모까지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27 블랙번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순수한’ 투자자의 처지에서 보면, 기업 자체가 자산과 부채의 임의적인 혼합물로, 주주 가치 — 그 자체가 투자자들의 변덕을 반영하는 — 를 극대화하려면 조정돼야 할 대상일 뿐이다. 기업과 그 종업원들은 원칙상 처분가능한 일회용품일 뿐이다.” 28 그러나 주주 가치 지키기가 과연 지배계급 전체의 최우선 과제인지는 의심스럽다. 특히, 은행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주주들에게 상당한 손실을 끼치는 정책을 편 것을 보면 말이다. 또, 데이비드 하비는 금융화 이론에 호의적인 책을 썼음에도, 그 책에서 그는 실제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최근 몇십 년 동안 “자본의 실제 소유주인 주주들의 힘이 상당히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29 예컨대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일상적 운영에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지배계급 내에는 긴장이 있고 이는 위기 상황에서 더 격화될 수 있지만, 주주들의 단기적 이득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금융화 관련 일부 해석들은 ‘신자유주의’나 ‘금융화된’ 자본주의가 불러 온 변화를 과장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금융화 주장의 정치적 함의에 주목해야 한다. 고완은 이번 경제 위기를 계기로 우리가 두 가지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생산 부문의 자본축적을 고무하는 공공서비스형 신용 및 금융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경제 활동을 그 자신의 이윤 획득에 종속시키는 자본주의적 신용 및 금융 시스템이다.”31 “해결책은 화폐나 금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적절한 규제 시스템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32 제프 만은 이런 관점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우리의 요지경 세상을 다시 뒤집으려면 가치[법칙]를 길들이거나 가치를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법칙]의 폐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전복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의 분석을 충실히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자는 혁명의 불가피성이 아닌 필요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33
블랙번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적절한 사회적 통제를 받는 금융 시스템은 자본 분배를 돕고, 투자를 고무하고, 소비를 안정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34 물론 혁명에 못 미치는 요구들도 중요하다. 이런 요구들을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집단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깨닫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블랙번에게 이런 요구들과 아래로부터의 투쟁 사이의 관계는 다소 모호하다. 블랙번은 “진지한 반자본주의 정부가 수립돼 … 금융적 이중권력[이 창출되면]” 자신의 처방들이 도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5
블랙번은 자신이 제기한 요구들이 “심각한 경제 위기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일종의 과도적 조처들로서 … 새로 등장할 집단적이고 민주적인 제도들에 도움이 될 사회 기금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코스타스 라파비챠스
36 그러나 이 문제를 장기적 이윤율 위기와 연관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금융화 이론과 관계 있는 또 다른 마르크스주의자인 코스타스 라파비챠스는 금융 부문에만 주목하지 않고 생산적 부문에서 일어나는 축적과 관련한 문제들에도 좀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생산성 향상에서 문제가 있었고, 특히 미국에서 가장 심각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문제는 은행들이 대출을 꺼릴 정도로 실물 부문의 축적이 충분한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생산적 자본이 갈수록 이윤을 [사내에] 유보하거나 공개 시장에서 직접 돈을 빌리는 방식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다. … 은행들은 [기업 대출] 사업에서 밀려나자 수익성 높은 다른 사업을 찾아야 했다.라파비챠스는 미국·독일·일본의 기업 부채에서 은행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근거로 제시한다. 미국은 1980년대 12~13퍼센트에서 1990년대 10퍼센트로, 그리고 2000년대 5~6퍼센트로 줄었고, 독일과 일본은 약간 하락한 이후 30퍼센트 이상[독일]과 40퍼센트[일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 변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성격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미약하다.
39 은행들은 “가치와 잉여가치 창출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분야로 진입했다. … 금융은 급성장하는 동시에 생산적 활동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갖게 됐다.” 40 라파비챠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에 관한 모호한 주장에 기대어 금융의 성장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자본주의 변화 과정을 최근의 정보통신 기술 혁신으로 설명하는 모종의 결정론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최근 몇십 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소비자 대출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금융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노동자 1인당 중개 횟수만 놓고 보면 새로운 기술 때문에 금융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전혀 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에는 전혀 불가능했던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금융 기관 내부 조직, 거래 속도, 금융 공학 실현 가능성, 금융시장 간 연계, 금리 책정과 위험 관리 기법 등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엄청난 수의 개인 차입자들을 관리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42 그런 점에서 생산적 부문의 장기적 이윤율 하락에 주목하는 관점은 어째서 생산적 부문에 대한 투자 의욕이 줄고 금융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는지를 설명해 준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기술 혁신은 새로운 분야에서 이윤 획득을 가능케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혁신은 경제 전반에서 고립돼 발전하는 자율적 과정이 아니다. 특히, 잉여가치가 경제의 여러 분야로 흘러들어 구조조정과 혁신을 촉진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금융화의 원인을 어떻게 봤든, 라파비챠스는 금융화의 결과에 관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산업 자본가가 획득하는 이윤과 산업 자본가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 자본가가 버는 이자는 결국 생산적 경제에서 노동자를 착취해서 얻은 잉여가치를 자본가들이 서로 나눠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파비챠스는 이와 명백히 대조되는 대안적 분석을 제시한다. 그는 오늘날 은행들이 이윤을 벌려고 소비자를 “직접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이 “직접적”인 이유는 그것이 유통 영역에서, 즉 자본주의적 생산 영역의 바깥에서 발생하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착취인 이유는 최소한의 생계를 해결하고자 많은 노동자들이 금융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45 그것은 노동자들이 공급하는 상품, 즉 노동력을 자본가들이 그 가치 그대로 지불하고 구매하면서도 노동자에게서 잉여가치를 추출해 낼 수 있는 비결을 말한다. 착취 과정에서 창출되는 잉여가치는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속임수’를 통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간 동안 노동자가 생산한 새로운 가치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가치(임금) 사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46 이와 반대로, 금융화와 연관된 메커니즘은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47 그래서인지 라파비챠스도 최근에는 논쟁의 소지가 덜한 “금융적 수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금융적 수탈”을 금융 기관들이 “임금과 급료에서 직접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윤을 추출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48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은행들이 개인 고객을 갈취해서 이윤을 버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메커니즘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과연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성격 변화”를 뜻하는가다. 49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서 착취에는 특정한 의미가 담겨 있다.이런 메커니즘 자체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율로 주택을 빌리는 상황을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노동계급이 이런 형태로 엄청나게 갈취당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생필품을 파는 소매업자들도 그런 짓을 저지른다. 이것은 생산 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1차적 착취와 나란히 공존하는 2차적 착취다. 이럴 때 판매와 대출 사이의 차이는 다분히 형식적이고 부차적인 것이며 … 전혀 핵심이 아님을 이 문제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51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늘어났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임금이 상승한다면, 그것은 그만큼의 잉여가치가 생산 부문 자본가에서 대출 부문 자본가에게 이동했음을 뜻한다. 빵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렸을 때(그에 따라 임금도 동시에 오른다면) 그만큼의 잉여가치가 제빵업 부문 자본가에게 이동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임금 상승이 억제되는 상황에서 식료품 가격이 자의적恣意的으로 인상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착취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또, 노동자가 신용카드 빚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의제자본fictitious capital 시장이 축소될 것이고 미래 임금 소득에 대한 은행(과 기타 이해관계자들)의 청구권 중 일부는 휴지 조각이 될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 하에서든 자본주의 기업의 잉여가치 창출이 여전히 체제 전체를 위해서는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높은 금리 적용을 소매업자의 생필품 가격 인상과 비교한 것은 적절하다. 2007년 미국에서 가처분소득의 20퍼센트가 빚 상환에 사용됐는데,데이비드 맥낼리
52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번 위기가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이윤율 위기의 최신 증상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거부했다. 53
경제 위기를 설명할 때 금융화보다 경제 전반의 흐름을 더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서 나는 1970년대 이후를 자본주의가 축적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시기로 보는 논자들에게 집중하려 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데이비드 맥낼리는 단지 금융화에 초점을 맞춰 이번 위기를 설명하려 하면 “왜 이 위기가 금융 시장에 한정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할 수 없고, 위기가 어떻게 세계적 과잉축적 문제와 연관돼 있는지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54 그러나 이윤율을 계산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로버트 브레너가 한 계산을 보면, 미국에서 고정자본의 수익률은 1974년에 10.5퍼센트였는데, 이것은 그 전 시기의 평균인 14~15퍼센트보다 낮은 것이었다. 55 일본과 독일 같은 다른 주요 경제들도 비슷하게 하락했다. 56 앤드류 클리먼은 미국의 평균이윤율을 1941~56년 사이에 28.2퍼센트, 1957~80년 사이에 20.4퍼센트, 그리고 1980~2004년 사이에 14.2퍼센트로 계산했다. 57
맥낼리는 이윤율 회복을 보여 주는 프레드 모슬리의 통계를 들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한다.58 그는 이 새로운 축적 체제의 중심지가 1997~98년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동아시아였다고 주장한다. 그 후에도 성장이 지속된 것은 활발한 축적 덕분이 아니라 신용 거품, 특히 동아시아 경제들이 제공한 신용에 의존한 거품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맥낼리는 금융화와 신용 주도의 성장이 시작된 시기를 1980년대 초가 아니라 1997년으로 잡은 것이다.
그러나 여러 증거들을 보면 이윤율이 부분적으로만 회복됐음(착취율 증가에 힘입은 바가 컸다)을 알 수 있다. 맥낼리는 어쨌든 이런 이윤율 회복 덕분에 새로운 축적 시기가 시작됐고, 바로 이것이 1980년대 초의 경기후퇴에서 최근의 경제 위기까지 “지난 25년 동안 자본주의가 세계적 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59 반면에 동아시아 최대인 일본 경제는 1980년대에 꾸준히 성장했다가 1991년 이후 침체했는데, 이상하게도 맥낼리는 이 점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둘째, 세계 체제가 지난 25년 동안 이번 위기 같은 거대한 위기를 겪지는 않았지만 1990~91년과 2000~01년에 미국에서 심각한 위기가 발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시기 구분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동아시아의 활발한 축적 활동이 주로 1981년에서 1997년 사이에 걸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맥낼리 본인이 “역설(패러독스)”이라고 인정하듯이 중국의 성장률은 1997년 이후에도 매우 높았다. 셋째, 맥낼리는 동아시아 자본 축적과 서구 경제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서구에서 이윤율이 증대한 것이 1997년 이전 시기에 동아시아에 대한 활발한 투자를 낳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적어도 1980년대에는 그런 연결 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동아시아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에는 특별한 변동이 없었고 다른 주요 OECD 국가에 대한 투자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넷째, 1997년 이후 ‘금융화’가 시작됐다는 맥낼리의 주장도 다소 의심스럽다. 1997년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액수의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미국의 신용 팽창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의 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극단까지 치달았던 그 요인들은 1997년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미국에서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981년에서 1987년 사이에 처음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1997년 이후 또 한 번 급격히 증가하면서 2001년 이후 더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기업 이윤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몫이 급증한 시기도 1985~94년과 2001년 이후, 이렇게 두 시기로 나뉜다.《먼슬리 리뷰》 학파 미국 좌파들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잡지인 《먼슬리 리뷰》의 기고가들은 후기 자본주의의 역동성보다는 부진을 강조한다. 이 잡지는 여러 차례 이번 위기를 논평했고,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의 최신 논문들을 짧은 단행본으로 묶어 출판했다. 그들은 미국의 가계 부채 증가와 금융 투기 메커니즘을 자세히 분석하는 등 금융 성장을 깊이 있게 다룬다. 그러나 비슷한 주장을 하는 다른 논자들과는 달리, 《먼슬리 리뷰》의 필자들은 그것이 경제 전반의 문제에서 비롯한 현상이라고 강조하며,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의 표현이라고 보지 않는다. “비록 자본주의 체제가 금융화의 결과로 변했지만, 이것을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볼 수는 없다. 생산 영역에서 축적을 저해하는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64 엄청나게 부풀려진 금융 시스템도 이런 식으로 형성된 또 하나의 낭비적 부문이다. 65
포스터와 맥도프는 이런 “축적 문제”를 1960년대에 폴 스위지와 폴 바란이 처음 제기했다고 말한다. 스위지와 바란은 전후 자본주의가 정체하는 내재적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경향의 뿌리가 독점에 있다고 봤다. 즉, 독점 자본이 형성되고, 이들이 가격을 왜곡해서 초과 이윤을 창출하면 체제가 이를 흡수하는 데 애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과잉 설비 문제가 나타나면서 투자가 둔화되고 잉여를 흡수하고자 무기 생산을 늘리는 등 ‘낭비적’ 지출이 확대된다고 한다.66 그러나 《먼슬리 리뷰》의 견해는 국제사회주의 전통의 견해와 비교해 세 가지 약점이 있다. 먼저, 《먼슬리 리뷰》는 위기를 과소소비의 결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의 기원은 폴 스위지의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점에서 선구적인 《먼슬리 리뷰》의 분석은 토니 클리프와 마이크 키드런과 크리스 하먼 등이 발전시킨 국제사회주의 전통의 분석과 비슷한 것이어서, 이 두 전통의 상호 소통이 커질수록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이다.생산 과정은 그 역사적으로 특수한 형태와 관계 없이 결국은 인간의 소비를 위한 생산일 수밖에 없다. … 생산수단은 그것의 최종적 목표인 소비재 생산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때만 생산된다. … 과소소비론의 진정한 과제는 소비재 수요보다 소비재 생산 능력이 더 빨리 증가하는 내재적 경향이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틀로 봤을 때 생산물에 대한 수요는 소비와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 모두로부터 창출되며, 이런 투자의 일부는 생산수단 자체를 생산하는 또 다른 생산수단에 투입될 것이다. 이 투자 수요를 결정하는 요인은 이윤율 수준이다. 따라서 과소소비(또는 과잉생산)는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위기의 징후로 봐야 한다.
69 과소소비를 강조하는 그들의 경제위기론은 그래서 오히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마이클 칼렉키와 후대 좌파 케인스주의자들의 이론에 크게 의존한다. 70 그래서 예컨대 국제사회주의 전통은 군비 지출같은 낭비적 영역이, 축적에 투입될 잉여가치의 일부를 빼돌림으로써 이윤율 하락 압력을 완화하는 구실을 한다고 강조한 반면, 포스터와 맥도프는 과소소비 경향을 완화하는 구실을 한다고 강조했다. 71
그러나 포스터와 맥도프는 독점 자본이 가격을 왜곡해서 “잉여”를 늘린다고 전제하므로 마르크스의 경향적 이윤율 저하론을 수용할 여지가 별로 없다. 둘째, 《먼슬리 리뷰》 전통은 경제의 정체 경향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들은 거대 기업의 형성으로 잠재적 경쟁자들이 해당 산업에 진입하기 힘들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신규 진입자로서는 기존의 거대 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충분한 미래 수익이 기대된다면 금융 시스템이 그만한 자금을 선뜻 몰아줄 수도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일본과 아시아의 “호랑이들”[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 옮긴이], 그리고 오늘날 중국에서 볼 수 있듯이 금융 시스템은 종종 국가의 도움을 받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73 《먼슬리 리뷰》 전통은 이런 유형의 경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제국주의 경쟁을 보는 《먼슬리 리뷰》의 시각 때문이다. 《먼슬리 리뷰》 전통은 제국주의를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나타나는 국민 경제 간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주로 제3세계 수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 74 포스터와 맥도프는 논문 모음집에서 자신들은 미국 자본주의 분석에 집중했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75 제국주의 간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 세계 체제의 발전 궤적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나라들의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심지어 미국 경제조차도 1980년대 초 위기 직후와 1990년대 중후반에 부분적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76 이 아니라 독점이라고 상정하면서 가치법칙의 구실을 부차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하비는 스위지와 바란의 《독점 자본》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마지막으로, 《먼슬리 리뷰》 전통은 비록 자본주의의 변화된 측면들에 주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렇게 관찰한 결과를 마르크스주의 가치 이론과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먼슬리 리뷰》 전통은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을 경쟁(마르크스는 경쟁이 가치법칙을 강제한다고 봤다)경쟁에서 독점으로, 독점에서 국가 독점으로의 이행은 확실히 경쟁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그에 따라 가치법칙의 조절적 힘도 약화시킨 듯하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런 결론을 내렸다. 예컨대, 바란과 스위지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의 기초인 경쟁적 모델을 단순히 땜질하고 손보는 정도에 만족할 수 없다. … 독점 단계의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독점의 의의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단순히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요인으로 모델에 도입할 수 없다. 우리는 독점을 분석의 핵심으로 설정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경쟁적 모델’을 폐기한다면 당연히 가치법칙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바란과 스위지는 가치법칙을 미련 없이 폐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처한다. 문제는 다른 모든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을 의문시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핵심인 가치법칙만 따로 포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로버트 브레너
로버트 브레너는 자본주의 체제의 최근 추세를 실증적으로 자세히 파헤친 또 한 명의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는 여러 강연과 논문에서 현 위기를 설명하는 세련되고 자세한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이번 위기가 단지 금융 위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현 위기를 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은행과 자산 시장 붕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은 문제다. 재무장관 폴슨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버냉키를 위시한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현 위기를 단지 금융 부문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기저의 실물 경제는 건강하다고, 이른바 ‘펀더멘탈’은 양호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79 투자가 지지부진한 데다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공격해 임금이 억제되면서 전반적 수요가 낮아졌고, 이 같은 수요 공백을 부채 증가로 메워 왔다는 것이다. 일련의 주식시장 거품과 금융 거품이 체제를 계속 지탱해 줬다. 80 그러나 이윤율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회복됐을 뿐이다. “비금융 기업은 … 이윤율을 상당히 올릴 수 있었지만 그것은 1990년대의 이미 낮아진 이윤율 수준에도 아직 미치지 못한다.” 81 따라서 브레너가 보기에 이번 경제 위기는 다양한 상쇄 메커니즘이 없었다면 진작에 발생했을 지연된 위기인 것이다.
브레너는 1970년대 이래 투자 수준이 낮았던 것은 낮은 이윤율 때문이라고 본다. “선진국 경제의 역동성이 약화된 것은 이윤율이 대폭 하락했기 때문이다. 제조업 부문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만성적 과잉설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윤율이 하락한 1차적 원인이다.”82 좀더 선진적이고 효율적인 최신 설비가 해당 분야에 도입되면 오래된 ‘매몰sunk’ 자본을 보유한 기업들은 시장 지분을 유지하고자 가격을 인하하거나 아니면 과잉설비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이윤(자본가의 총투자에 대한 수익)은 줄어든다. 브레너는 1960년대 중반부터 일본과 독일 수출기업들의 경쟁 압력을 받아 온 미국 제조업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뒤, 바로 이 부문에서 이윤율 하락이 경제 전체의 이윤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을 내린다.
낮은 이윤율을 강조하는 것을 포함해 브레너와 국제사회주의 전통의 분석틀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차이도 있다. 대표적으로, 브레너는 이윤율이 낮은 원인을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연령과 효율성이 각기 다른 고정자본을 보유한 자본 블록들 간의 경쟁이 초래한)에서 찾는다.이런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프레드 모슬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아이러니이게도, 브레너의 이론은 바란과 스위지가 《독점 자본》에서 내놓은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물론 겉보기에는 상반된 이론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두 이론은 모두 이윤율이 경쟁 정도에 의해 결정되거나 독점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을 공유한다(경쟁과는 반비례 관계, 독점과는 정비례 관계). … 마르크스에게 … 개별 부문의 경쟁 정도나 독점 정도는 경제 전체의 총이윤양이 개별 부문에 분배되는 비율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것은 총잉여가치의 양이나 총이윤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84 안와르 샤이크는 꼼꼼한 실증적 연구를 근거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설령 제조업 부문의 경쟁이 격해져 공산품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그 공산품을 활용하는 자본가의 처지에서 보면 이는 요소 투입 비용이 그만큼 하락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한 부문의 이윤율 하락은 다른 부문의 이윤율을 높여줄 수 있다. 그러므로 제조업 부문의 경쟁을 완화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 그런 방식으로는 다른 부문에서 제조업으로 잉여가치를 약간 뺏어올 수 있을 뿐이다.“과당 경쟁”이 상대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으며, 상대가격의 변화는 어쨌거나 이윤율과는 상관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지속적 “과잉설비”가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똑같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설비 가동률 변동을 (부분적으로) 조정했을 때조차도 이윤율은 계속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 경험적 증거들은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이 주요 경제 3국[독일과 일본과 미국] 모두에서 나타난 전후戰後 축적의 본질적 특징이었음을 시사한다.
86 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런 설명 방식을 거부한다.
따라서 이윤율 하락에 대한 대안적 설명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에게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간단히 말해, 공장·기계·원재료에 대한 투자를 분자로 하고 임금을 분모로 한 비율)이 고도화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한 결과로 총투자에서 잉여가치 창출의 원천(마르크스는 “산 노동”이라고 불렀다)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다. 불행히도 브레너는 자본가가 “자기 자신의 이윤율을 감소시키는 기술을 스스로 도입한다” 그러나 개별 자본가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투자를 해서 자신이 판매하는 개별 상품으로 구현된 가치를 줄이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고 단기적으로 시장 지분을 늘리고 이윤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 자본가가 도입한 혁신이 해당 부문 전체로 확산되면 가격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이윤율도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결국 해당 부문의 자본가들은 모두 그 새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설사 결과적으로 이윤율이 낮아지더라도, 신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다른 경쟁자들이 모두 가격을 낮출 때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기 때문이다. 낮은 이윤율이라도 어쨌든 제로 이윤보다는 나은 것이다.88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국제사회주의 전통의 분석은 뒤에 가서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나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을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적용한 두 명의 이론가들을 먼저 검토하려 한다.
이 같은 설명을 거부하는 브레너는 그 대신 체제 발전의 특정 국면에서 상호 경쟁하는 자본 블록들이 흥망성쇠 하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에 기초를 두고 위기를 낳는 경향들을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그런 경향들이 실현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취하는 특정한 구조적 형태들”을 설명하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앤드류 클리먼
89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이윤율을 회복하고 성장기에 쌓인 모순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메커니즘으로 경제 위기를 이해한 마르크스의 입장과 일치한다.
앤드류 클리먼은 브레너처럼 현 위기의 근원이 1970년대에 발생한 문제를 털어 내지 못한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 실패에 있다고 주장한다. “현 위기는 1970년대 중반의 세계적 경기 침체 와중에 자본이 충분히 파괴되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종종 적대적 행위자들의 갈등이 경제 위기를 통해 해소되기도 한다. 위기는 언제나 현존 모순들에 대한 일시적이면서도 강제적인 해결책이 된다. 위기는 교란된 평형 상태를 얼마 동안 원상회복시켜 주는 폭력적 분출인 것이다.
기계·원료 등 요소 가격이 폭락하고 온갖 기업들이 도산하며 노동자들의 임금과 조건이 공격받는 경제 위기 상황은 생존한 기업들의 이윤율을 높여줄 수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연간 3백만 달러의 이윤을 벌 수 있고 투자 자본이 1억 달러라면 이 기업의 이윤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에 새로운 소유주가 자본 가치 파괴 덕분에 그 기업을 1억 달러가 아니라 단돈 1천만 달러에 인수한다면 그 기업의 이윤율은 30퍼센트로 아주 양호해진다. 이 같은 메커니즘은 새로운 호황을 불러오는 강력한 동력이다. 실제로 전후 호황은 대불황과 제2차세계대전이 낳은 자본 대량 파괴에 힘입어 가능했던 것이다.
92 관찰 이윤율은 이 극한을 향해 계속 하락하다가 위기로 자본 파괴가 일어나면 다시 상승할 것이다.(물론 실제로 자본 파괴가 일어날 수 있을 때의 얘기다.) 클리먼의 정식은 본질상 이윤율의 구체적 움직임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윤율이 움직여야 하는 방향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축적률과 산 노동 증가율이 일정 수준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클리먼은 축적률과 산 노동 증가율이 아마도 장기적으로는 변함없을 거라 믿는다. 93 그의 주장은 이윤율 저하 명제를 완전히 거부한 다수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을 겨냥한 것인 듯하다. 94 그러나 (최근 이 잡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기고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포함해) 이윤율 저하 명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실제 변동과 그것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적으로 분석한 것이 더 유용하게 느껴질 것이다.
클리먼은 “관찰” 이윤율과 “기저” 이윤율을 구분한다. 그는 후자가 두 가지 변수로 결정되는 수학적 극한이라고 주장한다. 산 노동 증가율과 가치 축적률이 그 둘인데, 클리먼은 두 변수가 대체로 일정한 수준에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95 그러나 동시에, 왜 체제의 모순들이 이번에는 자본 파괴를 통해 해결되지 못하는지 의문이 든다. 클리먼은 정책 입안자들이 경제 위기 때 자본이 파괴되도록 방치하려 들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96 그러나 이런 설명은 다시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의 자본주의 발전 궤적에 대한 설명과 결합돼야 하며, 어째서 정책 입안자들이 과거 위기 때보다 지금 더 자본 파괴를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 점은 뒤에서 곧 살펴볼 것이다.
물론 방법론의 문제를 떠나서, 자본 파괴의 구실을 설명하는 클리먼의 핵심 주장은 유효하다.안와르 샤이크
안와르 샤이크는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을 분석하는 데서 이윤율의 중요성을 다른 누구보다 강조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다. 샤이크는 현 위기를 “위기의 지연 또는 가짜 호황으로 변질된 구조적 위기”의 결과로 규정한다. 1970년대 이후 시기는 체제가 산출한 이윤량은 늘었으나 이윤율은 “기본적으로 부진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샤이크는 최근 몇십 년간의 축적 과정을 이해하려면 이윤율과 함께 금리의 지속적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축적을 고무하는 것은 이윤율이 아니라 자금 조달 비용인 금리를 빼고 남은 이윤율이다. 만약 이윤율이 변함없는 상태에서 금리가 하락한다면 축적 동기는 지속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인위적으로 조장된 동기일지라도 말이다.” 우대금리(기업들이 신경쓰는 금리)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점진적으로 상승했고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급상승했고, 그 뒤로 장기적으로 조금씩 하락했다. 이것은 “기업가 이득”(이자 지급을 뺀 이윤을 지칭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자본론》 3권에서 사용한 용어)에 기초한 “가짜 호황”을 창출했다. 또한 금리의 장기적 하락 덕분에 적어도 처음에는 노동자들의 부채 상환액이 크게 늘지 않으면서도 얼마 동안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가능했다.
통찰들을 종합하기
이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언급된 여러 이론가들의 통찰들의 도움을 받아, 자본주의가 노쇠해지면서 나타나는 변화 분석과 마르크스 가치 이론의 엄밀성을 종합하는 것이다.
99 이런 지출은 축적에 투입될 잉여가치 중 일부를 자본의 순환 과정에서 유출시키는 구실을 하면서 체제 전체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100
자본주의가 노쇠해질수록 경제에서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부문이 커진다. 예컨대 국제사회주의 전통은 전후 장기 호황에서 군비 지출이 한 구실을 강조했다. 두 냉전 초강대국 간 군사 경쟁으로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군비 지출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이것은 “상시군비경제”를 창출했다. 상시군비경제는 몰락의 씨앗을 자체 내에 품고 있었다. 전후 호황기 동안 군비 지출이 비교적 낮은 “비군사적 국가자본주의”(대표적으로 일본과 독일)가 등장한 것이다. 이 나라들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수출 산업에 투입한 덕분에 해당 부문에서 주요 군비 지출국들을 가격 경쟁으로 앞질렀다. 이런 도전자들의 등장과 미·소 군비 감축 이후, 군비 지출은 여전히 절대적 액수로는 높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세계 경제 성장률에 발맞추어 늘어나지는 않게 됐다.102 또, 공공의료나 교육처럼 ‘간접적으로 생산적인’ 분야도 있다. 이런 항목의 지출은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 필요한 종류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수적이다. 103
그 밖에도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여러 종류의 지출이 나타났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 경제에서 군비 지출 증가보다 더 고르게 나타난 현상이었고, 이후에 수그러들지도 않았다. 광고비 같은 비생산적 지출이 여기에 포함된다. 낭비적 지출 증가는 체제를 안정시킬 수도 있지만 그런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개별 경제에는 부담이 된다. 예컨대, 프레드 모슬리는 194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이윤율이 하락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비생산적 노동 증가를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만큼이나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만약 전후 시기에 모든 잉여가치가 생산적 부문에 투자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세계 경제가 더 빨리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임금 대비 설비투자 비중도 그만큼 더 빨리 높아졌을 것이고, 따라서 이윤율도 더 빨리 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잉여가치의 상당 부분이 비생산적 부문에 투입됐고, 따라서 성장이 느린 만큼 이윤율 하락 속도도 느렸다. 그 덕분에 전후 호황은 자본주의 역사상 전례 없이 오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위기가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세계가 오랜 호황을 거치면서 많이 변해 있었다. 특히, 마르크스가 발견한 자본의 집적(자본의 점진적 축적)과 집중(인수·합병) 과정을 통해 단위 자본(기업) 규모가 훨씬 커졌다.106 이렇게 위험이 커졌기 때문에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그토록 엄청난 공포를 자아냈던 것이고, 미국의 대형 자동차 기업 GM과 크라이슬러 파산을 통한 구조조정 과정에 국가가 그토록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것이다. 107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체제가 숨 고르기를 하고 잠시 동안 일정 수준의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바로 그 메커니즘, 즉 경제 위기가 갈수록 체제에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대형 다국적기업 한두 개가 붕괴하면 경제에서 수익성이 나쁜 부분만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이 괜찮은 부문들까지 동반 침몰하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은 국가와 금융 시스템에 더 긴밀하게 유착됐으며, 금융 부문의 팽창은 이 문제를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108 자본 파괴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일시적이고 국지적 호황을 넘어선 체제 전체의 영속적 호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체제의 여러 지역들이 경제 정체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히 크다.
그러나 위기가 체제를 휩쓸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자본주의 국가들이 더욱 두려워하게 됐다고 해서 체제가 영구적 정체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 경쟁과 함께 여전히 경쟁적 축적 체제라는 본성이 있다. 경쟁자들이 시장 진입에 필요한 자원을 끌어모을 때까지 대기업들이 가격 결정 권한을 좀더 행사할 수 있더라도 이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109 그러나 노동자들을 공격한 것으로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이윤율을 회복시켰을 뿐이다. 110
클리먼과 브레너의 주장처럼,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충분한 양의 자본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오히려 위기를 지연시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면서 체제 전체로 확산될 모순들이 더 첨예해졌다. 1980년대 이후에는 착취율이 크게 높아졌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노동일이 늘어 “제조업 노동자들은 1982년에 비해 2002년에 거의 2주 더 일한다.”금융, 의제자본, 실물 축적
위기를 지연시킨 또 다른 메커니즘은 자본가와 일부 국가들이 이윤이 별로 남지 않는 생산적 경제 바깥에서 투자처를 찾는 과정에서 금융이 성장한 것이었다. 금융 성장은 세 가지 효과를 냈다.
111 만약 이윤율이 높다면 기계류와 원료 등에 대한 수요가 넘칠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제한된 소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율이 낮고 투자 수준이 낮은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제한된 소비력이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 같은 곳에서는 부채, 특히 가계 부채가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이 “최후의 시장”이 돼서 자본주의가 계속 굴러갈 수 있도록 수요를 제공할 수 있던 것이었다.
먼저, 기업의 상품 판매를 원활히 해줌으로써, 즉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된 ‘잉여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과잉생산에 의한 위기를 방지했다.둘째 효과는 자산 가격 거품을 일으켜 마치 이윤율과 체제의 역동성이 회복된 듯한 착각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이윤이 활로를 찾아 금융권으로 몰리자 마르크스가 ‘의제자본’이라고 부른 것의 축적이 시작됐다. 의제자본이란 있지도 않은 자본이라거나 모종의 사기를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생산될 가치 일부를 요구할 수 있는 일종의 ‘청구 증서’다. 의제자본이 그 소유자에게 정기적인 수입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 때문에 그것은 마치 실제 자본 —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창출하고자 생산에 투자하거나 현행 금리로 대출해 줄 수 있는 — 처럼 보인다.
112 마르크스는 청구 증서가 심지어 “순수한 의제자본이 아닌 경우에도 … 그런 증서의 자본 가치는 전적으로 착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생산적 기업의 주식은 단지 “그 자본을 상징하는 소유 증서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증서들이 실제 자본이라는 착각을 경계했다. “자본은 두 번 존재할 수 없다. 즉, 한 번은 해당 기업의 자본 가치에 대한 소유 증서(주식)로, 또 한 번은 그 기업에 실제 투자된, 혹은 투자될 자본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113
의제자본의 고전적 사례로는 소유자에게 미래 세수의 일부를 약속하는 정부 채권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기업들이 발행하는 주식이 있다. 주식은 주주들에게 기업이 창출할 잉여가치의 일부인 배당 지급을 약속한다.114 주가지수는 다른 종류의 금융 투자와 비교해 그것이 수익을 얼마만큼 보장해 줄 수 있는지에 따라 오르내릴 수 있다. 주식과 기타 의제자본의 가격이 이런 식으로 유동적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투기를 벌일 수 있다.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해 사들였다가 나중에 이윤을 남기고 파는 것이다. ‘거품’ 경기 때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이 일에 달려들며 그 과정에서 의제자본의 가격이 올라간다. 예컨대, 어떤 기업의 주가는 그 회사가 소유한 공장과 설비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의제자본은 거래될 수 있다. 사실,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그것은 실제 자본의 운동 법칙과는 구분되는 “그 자신의 운동 법칙”에 따라 유통된다.115 또, 비록 의제적 축적 자체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지만 다른 생산적 부문의 발전을 자극할 수 있다.(예컨대 런던 시티[금융가] 곳곳에 문을 연 스타벅스 지점에서 커피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생산적 노동자다. 그들의 고객들은 종종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체제가 역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착각을 더한층 조장할 수 있다.
자산 가격 상승과 연관된 ‘의제적 축적’ 과정은 해당 기업들, 특히 금융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부풀려 이윤이 창출되고 있다는 착각을 조장할 수 있다.금융 성장의 셋째 효과는 이윤율 저하 압력을 더한층 줄여 준 것이었다. 이는 금융 부문 자체가 낭비적 부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금융 부문에서 사용되는 건물이나 지급되는 임금 등은 비생산적이다. 즉, 그것은 새로운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므로 생산적 자본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금융 성장은 전후 호황기의 군비 지출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의 ‘유출구’ 구실을 했다. 그러나 금융권이 동원한 자금이 모두 그런 식으로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견지에서 봤을 때, 은행은 “이자 낳는 자본”을 모아 산업 자본가들에게 대출하고, 산업 자본가들은 그 돈을 잉여가치 창출에 사용하고, 창출된 잉여가치 중 일부를 이자 형태로 은행들에게 상환한다. 이때 ‘의제적 축적’은 실제 축적으로 전환된다.
만약 라파비챠스 등이 주장하듯이 은행이 산업 자본보다 노동자들에게 대출하는 데 점점 더 열의를 갖게 됐다면, 앞의 그림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 은행은 가계 대출을 해서 노동자의 미래 소득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노동자가 고용주에게서 임금 인상을 따내지 않는 이상 이것은 사실상 노동 착취율을 높이는 효과를 낸다. 반면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따내는 경우에는 고용주가 자신의 잉여가치 하락을 감수하고 노동자의 빚에 부과된 이자를 대신 지불해 주는 셈이 된다. 이렇게 획득한 은행 이자 수익은 생산적 투자에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117 더 크게 보면, 온갖 의제자본 시장들이 창조되거나 확대됐고, 경제 전반에서 창출되는 잉여가치와 이들 시장 간 연관성이 갈수록 희박해지면서 이런 자산들의 시장 가격도 기저의 가치 창조 과정과 무관해져 갔다. 118 투기적 거품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 시장들이 그나마 잉여가치의 일시적 ‘저수지’ 노릇을 할 수 있었다.(이는 상시적 ‘유출구’와는 다른데, 왜냐하면 저수지에 저장된 가치 중 일부가 생산으로 다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산을 처분하고 생긴 돈이 생산적 기업으로 갈 수 있다.) 거품 하나가 꺼지면 더 큰 거품을 새로 키워야 했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해 의제자본 시장들이 실물 경제의 잉여가치 창출 전망에 맞춰 조정될 위험은 항시 존재했다.
그러나 금융 자본이 투기가 아닌 생산 활동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예컨대, 최근 몇년 사이에 모기지 등 부채들은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증권으로 재포장됐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이 증권의 미래 가치를 놓고 도박을 벌였다. 또, 채무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채권자가 드는 보험인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졌다. 이것들도 투기 대상이 됐다.119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제적 축적과 실제 축적을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만약 마구잡이로 투기를 벌인 은행이 도산하면 동시에 생산에 투자하기 위해 그 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도 같이 쓰러질 수 있다. 만약 체제의 작동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금융 기관들이 손실을 보고 도산할 위험에 처하면 국가가 구제에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 국가는 경제의 생산적 부문이나 노동자들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려 할 것이다. 120
의제자본 파괴는 위기를 통해 자본의 가치가 파괴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된다. 이론상 그 과정은 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 과정(예컨대, 기업들이 주가가 폭락한 경쟁자들을 인수하는 경우)을 촉진시키거나 미래 가치에 대한 청구 증서 중 일부를 제거해, 생산 자본에 얹힌 부담을 덜고 미래의 경기 확장을 가능케 하는 다리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바로 이 때문에, 지난 30년 동안 경제의 생산적 부문을 괴롭힌 고질적 문제들이 이미 밝히 드러났고 체제를 간신히 굴러가게 한 신용들이 회수됐는데도, 금융 부문에서 진행되는 붕괴는 생산적 부문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금융 팽창은 기껏해야 위기를 지연시키는 ‘상쇄 경향’에 불과하며, 그 효과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 같은 단기적 처방의 대가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부채 확대, 중-미 간 무역 불균형과 금융 불균형 증가, 엄청난 규모의 거품 형성 등 엄청난 경제적 불균형으로 되돌아왔다. 바로 이런 식으로 불균형이 계속 증가했기 때문에, 일단 지연된 위기가 터지자 그 충격은 가공할 만한 속도와 파괴력으로 세계 곳곳을 강타한 것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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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seph Choonara, “Marxist accounts of the current crisis”, International Socialism 123 (Summer 2009).
↩
- 이 현상은 주류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독일에서 《자본론》 판매량이 일곱 배나 늘었고, 일본에서 《만화 자본론》이 성공하고, 상하이에서 《자본론》을 뮤지컬로 제작중이라는 사실 등이 보도됐다. 뮤지컬 감독은 이 뮤지컬이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트렌디하고 재미있고 교육적인 극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 예컨대 그레이엄 터너Graham Turner의 2008년 저작이나, 아니면 좀 더 우파적인 관점에서 쓰인 것으로는 마틴 울프Martin Wolf의 최신 저작이 있다. 이에 대한 논평으로는 Callinicos, 2009를 보라. 터너의 책에 대한 논평으로는 Murphy, 2009를 참조할 것. ↩
- Willem Buiter, “The Unfortunate Uselessness Of Most ‘State Of The Art’ Academic Monetary Economics”, Maverecon (2009.3.3), http://blogs.ft.com/maverecon ↩
- 정치경제학에서 IS 경향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흥미로운 논평으로, 같은 주제로 열린 최근 토론회에서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발표한 내용을 들어 보라. www.isj.org.uk/?s=resources#alexseminar에서 들을 수 있다. ↩
- Blackburn, 2007a. 이 글은 2007년 2월 27일 주가가 짧은 기간 동안 가파르게 폭락한 직후 쓰였다. “리먼 브라더스 애널리스트”의 경고는 특히 아이러니하다. 1년 반 뒤 리먼 브라더스는 독성 자산 부담 때문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그 전의 최대 기록인 월드컴 파산보다 6배, 엔론보다 10배나 컸다)을 기록하며 침몰했다. ↩
- “Subprime Sickness”, 〈파이낸셜 타임스〉(2007.2.23). 2008년 9월에 이르면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두 은행이 상업 은행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
- 예컨대 Blackburn, 2007b을 보라. ↩
- Harman, 2007, pp157-158. ↩
- Blackburn, 2006, p44. ↩
- Marx, 1972, pp338-343; Lapavitsas, 2003, pp66-70. 역사적으로 신용은 생산적 자본보다 먼저 나타났다. “이자 낳는 자본 또는 그 옛 이름인 고리대 자본은 … 자본의 태고적 형태였고, 자본주의 생산양식 전부터 존재했다.” — Marx, 1972, p593. ↩
- Harvey, 2009, p18. ↩
- 나는 Choonara, 2008에서 후자를 주장했다. ↩
- Blackburn, 2006, p39. ↩
- Mann, 2009, p120. ↩
- Blackburn, 2009, pp129-130. 블랙번은 Turner, 2008에 근거를 두고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터너의 저작은 신용 거품의 기원을 경제의 전반적 상태, 특히 노동자 임금 억제에서 찾는 장점이 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의 유명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포함해 축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향들도 고려해야 한다. 블랙번은 자신의 입장이 로버트 브레너, 앤드류 글린과 조반니 아리기 등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고도 주장한다.(이에 관해서는 Blackburn, 2008, pp65-66을 보라.) 그러나 이 이론가들은 이윤율 하락의 원인에 대해 제각기 다른 견해를 보인다. 예컨대 Moseley, 1999, pp132-133에서 모슬리는 글린과 브레너의 입장을 서로 대조하고 있다. ↩
- Blackburn, 2008, p85. ↩
- 이 잡지가 제작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피터 고완이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
- Gowan, 2009, p5. 고완은 ‘상식적 견해’와 이렇게 결별해야 위기의 책임이 미국의 주택 소유자들 같은 “실물 부문의 행위자들”이 아니라 “새로운 월스트리트 시스템”의 “새로운 행위자들”에게 있음을 바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더 광범한 경제의 일부인 ‘옛’ 자본가들(미국 노동자들의 반대편에 있는)은 과연 책임이 없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Gowan, 2009, p6. ↩
- 패니치와 진딘은 Panitch and Gindin, 2009에서 고완과 비슷하게 주장했다. “현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적 금융의 역사적 동역학과 모순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 미국발 금융 위기의 기원은 생산 영역에서의 이윤율 위기에 있지 않다.” 그들은 다른 글에서 “새로운 월스트리트 시스템”의 발전으로 1970년대의 이윤율 위기가 사실상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Panitch and Gindin, 2006을 보라. 이에 대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비평은 Callinicos, 2006을 보라. ↩
- Gowan, 2009, pp7-9. ↩
- Gowan, 2009, p21. 또, Brenner, 2004를 보라, 여기서 브레너는 그 자신이 “주식시장 케인스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등장이 이윤율 회복 실패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한다. ↩
- Blackburn, 2006, p39. ↩
- Gowan, 2009, p7. ↩
- Blackburn, 2008, p69. ↩
- 나는 ‘생산적 경제’를 마르크스의 용법을 따라 이윤과 이자 지급의 기초인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경제 영역을 가리킬 때 사용할 것이다. ↩
- Husson, 2008, p2. ↩
- 크리스 하먼은 Harman, 2008a에서 그런 주장들을 특히 신랄하게 비판했다. ↩
- Blackburn, 2006, p43. 또한 Lapavitsas, 2009b, p20도 참조할 것. ↩
- Harvey, 2005, p33. ↩
- Gowan, 2009, p21. ↩
- Blackburn, 2008, p84. ↩
- Blackburn, 2008, p106. ↩
- Mann, 2009, p126. ↩
- Blackburn, 2009, p128. ↩
- Blackburn, 2009, pp133, 134. ↩
- Lapavitsas, 2008a, p11. ↩
- Lapavitsas, 2008b, p19. 더 자세한 설명은 Lapavitsas, 2009b, pp14-19을 볼 것. ↩
- Lapavitsas, 2009a, p13. ↩
- 이 대목에서도 실제 증가율은 때때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가파르다. Lapavitsas, 2009a, pp14-17의 그래프들도 그렇다. ↩
- Lapavitsas, 2008b, pp17-18. ↩
- Lapavitsas, 2009b, pp12. ↩
- 많은 혁신은 금융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했다. 예컨대 Panitch and Konings, 2009, p69를 보라. ↩
- Fine, 2008, p3. ↩
- Lapavitsas, 2008a, p15. ↩
- Choonara, 2009, pp29-35. ↩
- Marx, 1970, pp164-172. ↩
- 물론, 라파비챠스는 이 점을 Lapavitsas, 2009b, p10에서 인정하고 있다. ↩
- Lapavitsas, 2009b, p8을 보라. “직접적 착취”란 말은 특히 혼란스러운데, 마르크스는 이 개념을 생산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착취를 가리킬 때, 즉, 라파비챠스와 정반대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Marx, 1972, p244를 볼 것. ↩
- Lapavitsas, 2009b, p13. ↩
- Marx, 1972, p609. ↩
- Lapavitsas, 2008b, p19. ↩
- McNally, 2008, p4. ↩
- McNally, 2008, p3를 보라. 짐 킨케이드는 Jim Kincaid, 2008에서 이를 훨씬 더 강력히 주장했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경제의 기본 흐름은 이윤 증대, 산출량과 자본축적 수준의 증가였다. 생산성 향상은 이윤율을 잠식하지 않았다.” 내가 이 주장을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것은 현 경제 위기 전에 개진됐기 때문이다. 하먼은 Harman, 2008b에서 이 주장을 비판했다. ↩
- McNally, 2008, p4. 예컨대 Moseley, 2008, p171도 참조할 것. 그의 주장이 발전해 온 궤적을 보려면 Moseley, 2003을 볼 것, ↩
- 경제분석국Bureau of Economic Analysis 자료를 토대로 계산했다. ↩
- 이 점과 브레너의 연구 방법에 대한 꼼꼼한 비판을 보려면 Shaikh, 1999를 참조할 것. ↩
- Kliman, 2009, pp3-4. ↩
- McNally, 2008, p4. ↩
- McNally, 2008, p10. ↩
- Liu, Chow and Li, 2006, p3. 심지어 그 후 절정에 도달했을 때조차 일본과 남한을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규모는 OECD 국가들 간의 FDI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작았다. UNCTAD, 2006, pp39, 82도 참고할 것. ↩
- 예컨대 Foster and Magdoff, 2009, pp47, 55의 그래프들을 보라. ↩
- Foster and Magdoff, 2009. 단행본으로 편집된 논문들 중 일부는 www.monthlyreview.org에서 볼 수 있다. ↩
- Foster and Magdoff, 2009, p77. ↩
- 그들의 ‘독점 자본주의’ 개념 설명으로는 Foster and Magdoff, 2009, pp63-65를 보라, ↩
- Foster and Magdoff, 2009, pp83-84. ↩
- IS 전통의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Harman, 1984를 보라, ↩
- Sweezy, 1970, pp162-186. ↩
- Carchedi, 1991, pp184-186; Carchedi, 2009; Fine and Harris, 1979, p79. 또한 Cliff, 2001, p106도 참조할 것. ↩
- 그들도 위기 때 자본의 “감가”로 이윤율이 회복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예컨대, Foster and Magdoff, 2009, p20을 보라. 동시에 그들은 마르크스의 다음 구절을 인용했다.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장벽은 자본 그 자신이다.” 이 문장은 《자본론》 3권 제3부에 실린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은 《먼슬리 리뷰》의 필진들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있다. “자본과 그것의 자기 확대는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며 생산의 동기이자 목표다. 생산은 오직 자본을 위한 생산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생산수단은 결코 생산자 집단의 생활 과정을 꾸준히 확대하기 위한 수단인 것만은 아니다.” — Marx, 1972, p250. ↩
- 예컨대 Foster and Magdoff, 2009, pp12-20를 보라. ↩
- Foster and Magdoff, 2009, pp42-44. ↩
- Brenner, 1999와 해당 문헌의 참조란들을 볼 것. ↩
- Harman, 2007, pp151-152. ↩
- Foster and Magdoff, 2009, pp41, 75-76, 87. ↩
- Foster and Magdoff, 2009, p21. ↩
- Choonara, 2009, pp21, 68-70, 77. ↩
- Harvey, 2006, p141. 스위지는 자신이 단지 가치 이론을 “변형”시켰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가치 이론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모습으로 변형시킨 셈이다. Howard and King, 1992, p120을 보라. ↩
- Brenner, 2009. ↩
- Brenner, 2008. ↩
- 예컨대 Brenner, 2004를 보라. ↩
- Brenner, 2008. ↩
- 그는 Brenner, 2006, pp27-40에서 자신의 접근법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비판으로는 Historical Materialism의 4호와 5호의 특집을 보라, 그 중에서도 Harman, 1999, Callinicos, 1999, Moseley, 1999, Shaikh, 1999, Carchedi, 1999이 특히 읽을 만하다. ↩
- Moseley, 1999, p139. ↩
- Moseley, 1999, p145. ↩
- Shaikh, 1999, p115. ↩
- Brenner, 2006, pp14-15을 보라. 특히 그는 각주 1번에서 마르크스의 주장을 거부하는 근거로 오키시오 정리를 들고 있다. 오키시오에 대한 비판으로는 Kliman, 2007, Carchedi, 1999, Shaikh, 1999을 보라. ↩
- Shaikh, 1999, pp121-122을 보라.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한 개론서로는 Choonara, 2009, pp68-78를 보라. ↩
- Callinicos, 1999, pp18, 25-28. ↩
- Kliman, 2009, p1. 이전에 클리먼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이번 위기의 진행에 관한 유용한 논평을 기고했다(물론 그 당시에 기획된 글들이 다 그랬듯이 이 글도 이후 사태 전개를 따라잡지 못했다). Kliman, 2008. ↩
- Marx, 1972, p249; Choonara, 2009, pp79-82. ↩
- Kliman, 2009, p1을 보라. 브레너는 Brenner, 2009에서 이렇게도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바로 위기를 통해서 이윤율을 회복하고 좀더 역동적인 자본축적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 현 위기 덕분에 지금껏 미뤄 온 재편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1930년대 대불황에서 빠져 나와 경제가 회복하는 데서 제2차세계대전이 한 구실에 관해서는 Freeman, 2009를 보라. ↩
- 이 극한의 정확한 지점은 불변자본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고정자본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유동불변자본인지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한 수학적 증명은 Kliman, 2009의 참조란을 보라. ↩
- 사적인 서신 내용. ↩
- 클리먼은 Kliman, 2007, 7장에서 이런 공격에 맞서 마르크스의 입장을 탁월하게 옹호한다. 카르체디도 Carchedi, 2009에서 왜 이윤율이 하락하는지를 설명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훌륭하게 설명한다. ↩
- ‘자본 파괴’라는 용어가 과연 정확한지 논쟁이 있다. 데이비드 하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자본의 ‘감가’, ‘탈가치화’, ‘평가절하’, 또는 심지어 ‘파괴’라고들 말한다. 마르크스나 그의 저작의 번역자들은 이 표현들을 비일관되게 혼용했다. 나는 이들을 다음의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자본 파괴’는 사용가치의 물리적 훼손을 뜻한다. 또, ‘자본 평가절하’는 주로 현대적 의미로, 즉 자산의 화폐 가치 변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할 것이다. … 그리고 ‘자본 감가’는 자본의 물리적 형태가 손상되지 않고도 거기에 구현된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 유실될 때에 한해서 사용할 것이다.” Harvey, 2006, p84. ↩
- Kliman, 2009, p1. ↩
- 예컨대 www.project.org/images/graphs/Prime_Rate_1.jpg를 보라. ↩
- 모든 인용문은 Shaikh, 2008의 녹취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
- 예컨대 Kidron, 1970을 보라. ↩
- Choonara, 2009, pp134-137을 볼 것. 하먼은 Harman, 1984, 3장에서 군비 지출의 구실을 상세히 분석했다. ↩
- 예컨대, 현재 미국 군비 지출은 GDP의 4~5퍼센트 수준이다. 1950년대 말에는 10퍼센트 수준이었다. 2007년 세계 군비 지출은 세계 GDP의 2퍼센트다. ↩
- 미국에서 얼마나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 광고에 쓰이는지에 관해서는 McChesney, Foster, Stole and Holleman, 2009의 통계들을 참조하라. ↩
- Choonara, 2009, pp45-49. ↩
- Moseley, 2003, pp217-218. ↩
- Choonara, 2009, pp90-95. ↩
- “[금융의 성장이 가져온] 효과로 국가의 힘이 시장에 종속되기는커녕, 오히려 [금융에 대한] 정치적 개입의 필요성(금융 불안정으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라도)과 실효성이 더욱 커졌다. … 그 결과 ‘대마불사’ 체제가 차근차근 구축됐다. 덩치가 너무나 크고, 다른 부분과 밀접히 연관돼 있어서 무너질 경우 체제의 다른 부분도 함께 끌어내릴 위험이 높은 금융 중개 기관들은 미국 국가, 특히 재무부가 유사시에 도와 주리라고 믿고 설칠 수 있었다.” Panitch and Konings, 2009, p72. ↩
- 하먼이 Harman, 2007, pp151-152에서 지적했듯이, 최근 몇십 년 동안 “위기를 통한 구조조정”이 부분적으로는 일어났다. 안와르 샤이크는 Shaikh, 2008에서 1970년대 위기의 비슷한 측면을 지적했다. “1980년대에 경기회복이 가능했던 것은 실업, 파산, 기업 도산, 실질임금 하락 등의 덕분이었다. … 이들은 생존 기업들의 이윤율을 크게 높였다.” 샤이크는 이것과 일본 경제 위기를 대조한다. 그는 일본에서는 국가가 기업 도산 격화를 가로막았고, 그 때문에 위기가 훨씬 더 장기화됐다고 주장했다. ↩
- 심지어 가장 극단적 형태의 독점 체제인(가치법칙이 “부분적으로 부정된”) 옛 소련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에서도 경쟁과 축적의 압력은 사용가치의 생산 노력, 특히 군비 생산 노력으로 표현됐다. Cliff, 1996, 7장을 보라. ↩
- Moody, 2007, p34. ↩
- 더 자세한 논의로 Harman, 2007을 보라, ↩
- Marx, 1972, p244. ↩
- 이들은 Marx, 1972, pp465-468에 열거된 사례들이다. ↩
- Marx, 1972, p466. ↩
- Marx, 1972, p465. ↩
- 물론 이 과정은 종종 불투명했다. 런던 금융가에서 행해지는 금융 연금술에 대해서는 Lancaster, 2009를 보라. ↩
- Fine, 2008, p3. ↩
- 초대형 보험사인 AIG를 무너뜨린 것은 결국 자신이 발행한 신용 파생상품이었다. 연기금 같은 기관들이 신용부도스와프를 이용해 안전 자산에만 투자하도록 한 법률 조항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Carchedi, 2009를 보시오. ↩
- 어떤 때에는 창출된 자산이 너무 복잡하고 독특해 그것을 거래하는 시장이 존재하지 못했다. 그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그것의 값어치가 얼마일지 그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은행이 보유한 자산들(상당수는 재무제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의 가격이 그것의 ‘시장’ 가격보다 턱없이 낮은 상황을 초래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최근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1백53억 달러 손실 발표와 시티 그룹의 1백87억 달러 손실 발표는 “많은 전문가가 오랫동안 의심해 온 것을 확인해 줬다. 즉, 은행들은 2007년 서브프라임 손실로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많은 은행은 독성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으로 너무 큰 손실을 입어 거의 1년 이상을 사실상 파산 상태로 지냈다.” 〈파이낸셜 타임스〉(2009.1.18). ↩
- Perelman, 2008, 특히 이 책의 pp29-31을 보라. ↩
- 예컨대, 영국 정부는 은행들을 구제하면서 최소한 5백억 파운드의 손실을 입었음을 인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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