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다윈과 진화론 *
올해는 찰스 다윈 탄생 200년, 《종의 기원》 출간 150년이 되는 해다.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 유물론적 세계관의 발전에 한 획을 그었고,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됐다. 이 글은 다윈을 둘러싸고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논란을 살펴보고 있다.
2009년은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인 동시에 다윈을 세계적인 유명 인사 혹은 악당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 책,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이기도 하다.
다윈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연과학자로 알려진 인물인데, 그런 인물치고는 세간의 평판이 너무나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다윈을 온화한 현자로 묘사(최근 방영된 BBC 특집 〈찰스 다윈과 생명의 나무〉에서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다윈을 그렇게 그렸다)하는 반면 기독교 우파 쪽에서는 끊임없이 다윈을 비방한다.
〈가디언〉은 최근 종교계의 싱크탱크인 쎄오스Theos[신神을 뜻하는 그리스어 낱말]가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를 보면 영국인 중 “겨우” 절반만이 다윈의 진화론이 십중팔구 진실이거나 분명히 진실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22퍼센트는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을 받아들인다. 달리 말해, 22퍼센트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종을 신이 손수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다윈의 업적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다. 학교에서 ‘지적 설계론’을 진화론과 동등한 비중으로 가르치라고 요구해 온 세력들이 특히 다윈의 유산을 부정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 때문에 애튼버러가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진화론의 올바름을 입증해 준 다윈 이후의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다루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한 듯하다.
1 로서, 생물학적 진화를 근거로 “열등한” 인종을 제국주의적으로 지배하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을 합리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좌파 진영에서도 다윈을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다윈의 사상이 일련의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그 발단은 19세기의 ‘사회다윈주의’훨씬 더 최근에는 사회생물학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을 ‘유전자가 시켜서 한 일’로 환원해서 설명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설명 방식이 지닌 반동적 함의가 어떤 것인지는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존 명령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에 비유한 리처드 도킨스의 사례가 잘 보여 준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다윈과 직접 관련은 없다. 사회다윈주의는 《종의 기원》이 출판되기 전에 이미 등장했다. 특히 “적자생존”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낸 자유주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그 주역이었다. 사회다윈주의는 다윈의 진화론이 아니라 일찍이 프랑스 동물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가 내놓은 진화론에 의존했는데,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다윈의 이론과는 사뭇 다를 뿐 아니라 상충되기까지 했다.
다윈은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었다. 탁월한 다윈 전기를 쓴 바 있는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와 제임스 무어는 최근에 《다윈의 신성한 대의Darwin’s Sacred Cause》라는 새 책을 냈다. 이들은 다윈이 1830년대에 비글호로 세계를 일주하던 중 남미에서 노예제를 목격하고는 얼마나 격분했는지를 묘사한다.
그리고 다윈은 영국으로 돌아온 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주창했다. 그는 자기 노트에서 흑인이 백인과는 다른 종에 속한다는 생각을 이렇게 비판했다. “흑인을 다른 종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노예 소유주들이 아닌가? 단일한 조상에게서 나온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다윈 이론의 핵심에는 단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진화 과정 속에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종의 기원》은 두 가지 기본 명제를 확증하려는 시도였다. 첫째는 다윈이 “변이를 수반한 유전”이라 부른 종의 진화가 실제로 일어난다는 명제였다. 다윈이 살던 시대의 기독교 정설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것이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물 종을 신이 설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연에는 역사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에는 이런 관념이 신빙성을 잃게 됐다. 지질학적 연구 결과 지구 자체에 역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지층 깊숙이 묻혀 있던 멸종 동식물 화석도 세상에 드러났다. 그것들이 현생 동식물의 조상임은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생명체가 진화했다면, 즉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 발전·변화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난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다윈의 둘째 대大명제인 자연선택 이론이 들어온다. 자연선택 이론은 세 가지 전제를 기초로 진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다윈의 말을 빌리면, 첫째 전제는 “어느 종이나 생존 가능한 개체 수보다 훨씬 많은 개체가 태어나[므로] … 생존 투쟁이 자주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때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은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둘째,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일지라도 서로 조금씩 다르며 그런 다름(변이)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셋째, 이런 변이 가운데 일부를 물려받은 개체는 그 덕분에 특정 환경에서 다른 개체들보다 번식하기에 유리해진다.
이런 가정들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같은 종에 속하면서 공통의 환경에서 살고 있는 어떤 개체군을 생각해 보자. 해당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를 높이는 변이를 물려받는 개체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그 개체군 내에서 다수가 될 것이다. 다윈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런 생존 투쟁의 결과로서, 일단 발생한 변이는 그것이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그리고 어떤 원인에서 비롯했을지라도, 한 개체가 다른 생명체나 외부 환경과 맺은 한없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해당 개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일반으로 그 개체의 후손들에게 유전될 것이다. 이런 변이는 그것을 물려받은 후손들의 생존 가능성도 높여줄 것이다. 주기적으로 태어나는 수많은 개체들 가운데 오직 소수만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각의 미미한 변이가 쓸모 있는 경우에 보존되는 원리를 나는 자연선택이라고 부른다.”
자연선택 이론의 중요한 한 가지 요지는, 변이라는 것이 해당 생명체의 환경 적응도를 높이고자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창조론자라면 신이 우리에게 앞을 볼 수 있게 해주려고 눈을 설계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윈이 보기에 인간의 눈은 “자연선택이라는 매우 느리고 간헐적인 과정”, 그러니까 개별 생명체들을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미미한 변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발달했다. 각각의 변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는 어떤 의식적·무의식적 의도와도 무관하다.
오늘날에는 유전자가 부모에서 자식으로 유전될 때 유전자 코드(DNA 염기서열 중 동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단백질의 합성에 관여하는 부분)에 나타나는 미세하고 무작위적인 변형이 변이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어떤 변이가 해당 생명체의 환경 적응도를 높일지 아닐지는 순전히 운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윈의 관점에서 진화는 맹목적이다. 그의 관점에서는 무작위적인 유전적 변이와 환경 변화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야말로 각자 생존 투쟁의 장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는 다종다양한 생물 종들이 범람하게 된 원동력이다.
다윈은 19세기 초의 경제학자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에게서 “생존 투쟁”이라는 개념을 빌려 왔다. 맬서스는 식량 생산보다 인구가 더 빨리 증가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사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로 갈리는 것은 불가피했다.
다윈과 동시대 사람이었던 칼 마르크스는 “다윈이 짐승과 식물의 세계에서 같은 시기 영국 사회의 모습 — 분업, 경쟁, 새 시장 개척, ‘발명’, 맬서스 식 ‘생존 투쟁’으로 점철된 — 을 발견한다는 점은 괄목할 만하다”고 논평했다.
사실, 다윈은 생존 투쟁이라는 개념을 “넓고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꼭 한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 간 생존 투쟁이어야 하는 건 아니고, 환경에 맞선 개별 생명체의 생존 투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든 생존 투쟁은 존재한다. 한 개체가 같은 종에 속한 다른 개체와 벌이는 투쟁이든, 다른 종과 벌이는 투쟁이든, 물리적 생활 환경에 맞서 벌이는 투쟁이든 간에 말이다.”
마르크스는 다윈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종의 기원》은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서 역사 속의 계급투쟁을 위한 자연과학적 기초를 제공해 준다”며 호평했다. 1883년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도 그의 위대한 동료이자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다윈을 비교했다. 그것은 합당한 비교였다. 마르크스는 왕과 ‘위인’을 역사의 권좌에서 밀어냈고, 인간 사회가 그 안에서 생산이 조직되는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으로 바뀐다는 것을 보여 줬다. 반면 다윈은 신을 권좌에서 밀어냈다. 다윈 덕분에 우리는 생명의 다양성과 충만함을 신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맹목적인 자연선택의 결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종의 기원》의 마지막 문단에서 다윈이 말했듯이, “이런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