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에서 ‘핑크 물결’이 다시 일고 있나?
현재 라틴아메리카는 심각하고 장기적인 위기 속에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이 촉발한 극심한 경기 불황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각국 지배자들의 위기 대응 조처들은 기껏해야 효과가 없거나 재앙을 낳았다.
이 때문에 대륙의 여러 나라들에서 정치적 변화가 생겨났다. 먼저, 오른쪽으로부터의 변화가 있었다. 2017년 브라질에서 극우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집권했다. 2019년에는 ‘핑크 물결’의 대표적 나라들인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서 우파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볼리비아에서는 일시 성공하기도 했다. 콜롬비아 등에서는 우익 무장 세력과 거리 우파들이 활개쳤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런 우파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이 항의의 초점이 되기도 하고, 지배자들의 위기 대응 조처가 반격을 맞기도 했다. 칠레·에콰도르·볼리비아·콜롬비아·페루·과테말라·쿠바에서 대중 시위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몇몇 나라들에서 우파 정부가 위기에 빠지고 때로 교체됐다. 볼리비아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겼던 사회주의운동당MAS이 선거로 재집권했고, 페루에서는 노동운동 지도자 출신 페드로 카스티요가 집권했다. 칠레 제헌의회 선거에서 사회당·공산당이 아닌 급진 좌파들이 만만찮은 성과를 거뒀다. 브라질에서는 현 대통령 보우소나루가 코로나19에 재앙적으로 대응하고 경제도 회복시키지 못해 큰 반발에 직면한 상황에서 전 대통령 룰라 다 시우바가 대선에 다시 도전하려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약 20년 전 좌파적 개혁주의/민족주의 세력의 집권 물결을 가리켰던 ‘핑크 물결’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되살아날지를 주목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에 걸쳐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휩쓴 ‘핑크 물결’은 당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정점으로 여겨졌다.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잇달아 반란이 일어나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무너졌고(아르헨티나·볼리비아), 자본가들의 공격이 좌절됐다(베네수엘라).
‘핑크 물결’ 정부들은 대개 진보적 개혁을 실시했다. 차베스는 이것이 “21세기 사회주의”(2005년 1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에서 한 말이다)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따라서 ‘핑크 물결’이 재림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은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불안정이 당시와 같은 투쟁을 불러올 것인지와 연관이 있다. 또, 개혁주의적 조치들로 현재의 불안정을 야기했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관건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핑크 물결’의 주요 특징을 간단히 추리고, 이를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상황에 비춰 보려 한다.
집권
미국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중 운동 덕분에 ‘핑크 물결’ 정부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대중은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 새로운 희망이 올 것이라는 거짓 약속에 넌더리가 나 1989년 이후 곳곳에서 저항에 나섰다. 1989년 베네수엘라에서 ‘카라카소’ 봉기가, 1990년 에콰도르에서 대중 시위가, 1994년에 멕시코에서는 사파티스타 봉기가 벌어졌다. 2000년대에도 베네수엘라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의 쿠데타 시도에 맞서 대중 시위가 벌어졌고, 볼리비아에서는 수도·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정부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대중 운동은 ‘핑크 물결’ 정부들의 개혁을 추동하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런 운동에서 새로운 대중적 참여 민주주의 시도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는 자본주의 국가를 다른 것, 모종의 민중 권력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했다.
1 때문이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민영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투쟁의 직접적 영향으로 집권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좌파적 민족주의와 ‘제3의 길’류의 온건 개혁주의를 추구했다가, 2002년 자본가들의 반격을 좌절시킨 대중 시위들의 영향으로 좌경화했다. 그 때문에 이 정부들은 인구 중 가장 가난한 부분의 삶을 유의미하게 개선할 수 있었다. 실업률, 문맹률, 영아 사망률, 극빈층 비율 등에서 집권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현격한 격차가 있었다.
‘핑크 물결’ 정부들, 그 중에서도 베네수엘라·볼리비아의 급진성은 “차베스와 모랄레스가 자기 나라 대중 운동과 맺고 있는 관계”관계
하지만 이 정부들은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는 그대로 둔 채 개혁을 추진했다. 단일 상품 수출을 통해 세계시장에 의존하던 기존 경제 방식과도 단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혁은 그런 방식에 기대고 있었다. ‘핑크 물결’ 정부들은 원자재 수출 수익에서 국가의 몫을 늘려 이를 복지에 투자했다(이른바 ‘보상 국가’). 행운도 따랐다. 차베스가 개혁 프로젝트 ‘미시온’을 발족하던 2003~2004년과 모랄레스가 집권해 개혁에 나선 2006년은 국제 원자재 수출이 대호황을 이루던 시기였다. 이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주로 힘입은 것이었다. 또,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석유 가격이 급등했다.
수출 수익 자체가 크게 늘었던 까닭에, 복지 지출을 이전보다 곱절 이상 늘렸음에도 경제에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민간 자본들의 자산은 오히려 늘었다. 이런 나라들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들도 호조를 보였다. 서방 기업들은 ‘핑크 물결’ 정부의 국영 채굴 기업과 합작 투자를 늘렸다. 또, 중국이 ‘핑크 물결’ 국가들을 발판 삼아 라틴아메리카 원자재 채굴 및 인프라 사업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2010년대가 되면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연간 투자 총액은 미국을 상회했다.
더 중요한 것은 ─ ‘핑크 물결’을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보는 견해와 달리 ─ 이 나라들에서 착취를 통한 축적 드라이브가 그대로 유지됐다는 점이다. 아래로부터의 경제 통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대개 부차적 산업에서 상징적 수준으로 머물거나 억제됐다.
이 정부들은 지배계급과의 사회적 평화를 추구했다. 애초에 공약했던 주요 산업 전면 국유화는 없었고, 대개 국가가 수출 수익 비율을 더 확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핑크 물결’ 정부를 거치며 채굴 산업에 대한 의존이 외려 더 강해졌던 것도 자본가 계급의 생산수단 사적 소유를 건드리지 않고 개혁 재원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와 사회 운동
자본주의 국가는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공직자가 노동계급 평균 임금을 받도록 강제하지 않았고, 국가 관료들은 대중에게 진정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중과는 이해관계가 판이하게 다른 신생 엘리트 계층이 국가의 운영을 주도했다. 부패도 극심해, 베네수엘라에서는 한 해 석유 수출 수익의 20퍼센트 가까이가 부패로 사라지기도 했다.
군대나 경찰이 해체되고 대중 자신의 기구가 이를 대체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볼리비아에서는 혁명적 대중 운동이 모랄레스의 집권을 가능케 했는데도 그랬다. 외려 베네수엘라에서는 군부가 국가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집단이었다. 볼리비아에서는 바로 그 군경이 나중에 쿠데타를 일으켜 모랄레스를 축출했다.
대중은 국가 정책에 민주적 결정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차베스·마두로 정부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은 이렇게 지적했다.
차베스는 혁명적 수사를 동원해 베네수엘라 사회를 바꾸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차베스 정부의 업적 대부분은 혁명적 국가가 아니라 대개 전통적 자유민주주의 구조를 통해 달성한 것이다.
‘핑크 물결’의 동력이었던 사회 운동은 정치적 주도력을 잃었다. 형식적으로는 공식 기구로 ‘격상’됐지만, 실제로는 ‘핑크 물결’ 정부의 부속물로 종속됐다. 그 과정에서 대안 사회 질서에 관한 논의와 시도들은 차단됐고,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의 요소들은 체계적으로 배제됐다. 예컨대 ‘핑크 물결’의 상징처럼 알려진 제헌의회는, 처음에는 기층 대중의 요구와 모색을 공론화하는 장으로 기능하다가 그 뒤 정책 기조를 위에서 아래로 하달하거나 상층부 정쟁의 장기말 구실을 하는 기구로 변질됐다.
이는 ‘핑크 물결’ 정부들의 의식적인 선택과 노력의 결과였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는 제헌의회 의원 자격을 특정 정당 소속원으로 제한했다. 집권당인 사회주의운동당이 사회 운동을 용이하게 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사회 운동에 기반한 조직들이 볼리비아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지만 차베스가 기존 통치 구조를 (해체하지 않고) 우회해 개혁을 추진하면서, 사회 운동은 개혁 성과를 방어하려면 차베스를 무비판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3 공산당의 모델을 따라 차베스가 만든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사회 운동을 단속하고 차베스의 정책을 하달·집행하는 구실을 했다. 한때 당원 수가 베네수엘라 인구의 4분의 1에 이르렀던 이 당에는 사회 운동뿐 아니라 출세주의자들, 국가 관료들, 신흥 엘리트들이 뒤섞여 있었다. 당내 논쟁은 개혁에 대한 공격이라 여겨져 대개 제약됐다. 정치적 주도력을 빼앗긴 사회 운동은 부차화됐다. 변화의 동력이 약화됐다. 기존 지배 질서와 그 통치 기구인 자본주의 국가를 내버려 둔 채 사회를 바꾸겠다는 개혁주의 전략의 결과였다.
쿠바전략
‘핑크 물결’ 정부들은 2010년대 중반에 기로에 섰다. 2007년 경제 위기 이후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2013년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핑크 물결’ 정부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구제할지 대중을 위할지 하는 선택에 직면했다.
각국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브라질의 노동자당 정부는 긴축 정책을 본격화하고 빈민들을 공격했으며, 토착농이 아니라 지주를,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을 위한 정책을 폈다. 지지 기반을 제 손으로 파괴한 노동자당 정부는 우파의 정치 공세에 밀려 탄핵됐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의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는 경제를 시장에 더욱 개방했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 영토의 12퍼센트에 이르는 아마존강 인근 아르코미네로주州를 통째로 개방했고, 군부가 운영하는 기업과 다국적기업 159곳이 그곳에 합작 투자를 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는 천연가스 다국적기업들을 끌어들여 볼리비아 동부 개발을 추진했다. 모랄레스가 천연가스 다국적기업들에 맞선 원주민들의 대중 운동 덕에 집권했음을 생각한다면 이는 특히 문제적이었다. 에콰도르의 레닌 모레노 정부는 아수니 국립공원에 대한 유전 개발 제한을 해제하면서 해외 자본을 유치하려 했다.
그 결과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서 1차 생산자 구실을 하던 ‘핑크 물결’ 국가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에 더 깊이 연루됐다. 또, 이 과정에서 재앙적 환경 파괴와 대중(특히 원주민)의 생존권 위협이 뒤따랐다. ‘핑크 물결’ 정부들은 생존권 위협에 항의하는 운동을 억누르고 탄압했다.
대가는 고스란히 대중이 짊어졌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생필품 부족과 물가 앙등을 겪으며 복지가 유명무실해졌다. 인구의 약 10퍼센트가 주변국으로 탈출해 ‘경제 난민’이 됐다. 에콰도르도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극빈층 지원이 크게 줄었다.
진정한 쟁점은 정치 전략의 문제였다. 체제에 도전하지 않고 기존 국가를 이용해 대중에 개혁을 선사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 운동의 급진성과 활력을 이용해 노동계급 대중이 직접 통제하는 사회 체제를 건설할 것인가? ‘핑크 물결’ 정부들은 모두 첫 번째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자신들을 지지했던 사회 세력의 힘을 약화시켰고, 자본가들의 반격을 받았다.
현재
그렇다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불안정 속에 등장한 운동이 체제의 기존 운영 방식과 그 지배자들을 위협하는 급진적 압력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런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개혁 정부를 포함한 정치 지형을 왼쪽으로 추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좌파 정부가 기존의 사회 위기에 대처하며 대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최근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대중 운동은 코로나19로 심각해진 위기에 지배자들이 재앙적으로 대응한 데 대한 반발로 분출했다. 볼리비아·에콰도르·칠레에서는 신자유주의 우파의 공격이 대중의 분노에 불을 댕겼고, 브라질·콜롬비아는 강경 우익 정부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반발이 있었다. 이 운동들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첨예해진 세계적 위기와 그에 대한 반발이라는 국제적 맥락 속에서 벌어졌다.
운동의 쟁점은 저마다 달랐지만, 오랜 위기에서 누적된 광범한 쓰라림과 분노를 연료 삼아 타올랐다. 그래서 투쟁은 대개 대규모였고, 매우 전투적이었다.
하지만 전투성이 자동으로 사회 변화를 위한 급진적 추동력 ─ 모랄레스가 2006년 이전에, 차베스가 2002~2003년에 사회 운동에서 얻었던 것 같은 ─ 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4 에 매달렸다. 이 제헌의회가 어떤 개헌안을 논의할지조차 결정돼 있지 않다.
예컨대 2019년 칠레에서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 규탄으로 시작된 강력한 시위·파업이 놀랄 만한 전투성을 보였다. 한때 좌파 정당이었지만 막상 집권했을 때 긴축과 민영화를 추진했던 사회당과 공산당은 이 운동에서 별다른 구실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파 정부를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갔던 이 운동은,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와 개헌안을 논의할 ‘제헌의회’ 의원 155명을 선출하는 지리한 선거 과정으로 수렴됐다. 투쟁의 섟을 죽이고 대중의 참여를 투표 수준으로 단속하는 과정을 주도한 것은 사회당과 공산당이었다. 2017년 출범했던 좌파 정치 연합 ‘광범전선’도 아래로부터의 운동 건설보다는 제헌의회 선거정치 리더십 문제는 브라질의 경우가 더 두드러진다. ‘핑크 물결’과 가장 느슨하게 연계돼 있던 룰라의 노동자당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등에 업고 집권했음에도 전임자들의 경제 정책을 답습했다. 그리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 투쟁을 억눌렀다. 미국의 부시 정부와 협력해 아이티에 파병하기도 했다. 룰라는 볼리비아 민중이 “가스 전쟁” 당시 볼리비아 천연가스 국유화를 요구했을 때도 이에 반대하며 브라질 자본의 이익을 옹호했다. 이는 전혀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고, 전략적 선택의 결과였다. 결국 노동자당이 연루된 대규모 부패 스캔들은 브라질 노동계급과 사회 운동의 사기를 심각하게 떨어뜨렸고, 우파의 정치 공세는 보우소나루 집권으로 이어졌다.
보우소나루 3년을 거치며 브라질의 경제·사회 위기가 중첩·심화되면서 상층부부터 정치 불안정이 시작됐다. 이 영향으로 보우소나루 취임 이후 최초로 대규모 전국적 시위가 잇달아 벌어졌다. 하지만 대중 운동은 룰라의 2022년 대선 보조 부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반反보우소나루 대중 시위는 룰라의 재선 출마와 의회 내 정쟁을 응원하는 데에 주로 배치되고 있다. 룰라는 대권 도전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우파 일부와 동맹을 도모하고 있다(개중에는 노동자당 정부 탄핵과 룰라 구속을 주도했던 자들도 있다). 이런 정치 방향을 따르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운동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유일하고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 대목에서 페루의 사례를 살펴보자. 2021년 6월, 교사이자 노동조합 지도자 출신 대통령 페드로 카스티요가 우파 후보 게이코 후지모리를 꺾고 당선했다. 카스티요는 2017년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한 80일간의 교사 파업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페루의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해지며 쇼우강 이에로 페루 광산 광원들의 무기한 파업을 비롯해 여러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촉발된 상황을 배경으로 집권했다.
카스티요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선거에 임했지만, 당선 이후 자본가들과 우파와 거듭 타협하고 있다. 카스티요가 취임 후 한 최초의 조처 중 하나는 총리를 춤비빌카스주州에 보내 대규모 광원 파업을 종식시킨 것이었다. 카스티요는 “우리는 차비스타[차베스 지지·계승자]도, 공산주의자도, 극단주의자도 아니다”라며 거듭 지배자들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우파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 않고 거리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타협이 가리키는 방향은 위험하다. 카스티요 이전에 페루에서 ‘사회주의 정부’로 여겨졌던 오얀타 우말라 정부도 임기 내내 우경화해 긴축과 신자유주의를 페루인들에 강요했던 바 있다.
이와는 다른 대안적 전략을 제시한 급진 좌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는 ‘핑크 물결’ 정부들의 개혁주의 전략에 설득력 있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의 ‘비판적 차베스주의자들’이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그런 급진 좌파들은 대개 독립적인 혁명적 정치 전략·운동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실제 벌어지는 사건과 운동의 외부에서 주변적·부차적 구실밖에 하지 못했다.
부분적으로 이는 잘못된 정치 때문이다. 이 좌파들은 대중의 자생적 운동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고 모종의 자율주의 정치를 받아들였다. 기성 좌파들이 신자유주의 지배자들에 타협하고 종종 대중을 배신한 반면, 대중의 자생적·전투적 운동은 그런 좌파들에게서 자유롭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순수한’ 대중 운동은 정치적 타락에 오염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인식 때문에 급진 좌파들은 ‘핑크 물결’ 정부들이 대중 운동을 단속할 때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위기와 그에 대한 우파의 재앙적 대처의 영향으로 정치 불안정이 심화하는 상황에 도움이 될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핑크 물결’의 특별한 점은 그저 개혁주의 정부의 집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부의 집권과 개혁을 아래로부터 급진화 물결이 추동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핑크 물결’ 정부들은 체제에 도전하기보다 타협을 도모하고, 진정한 동력이었던 아래로부터 급진화를 추동하기보다는 단속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것이 그 정부들의 가장 중요한 한계였다.
그런 점에서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가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 대중 투쟁이 아니라 군부를 중심으로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가 우파와 타협하다가 우파에 의해 쫓겨났는데도 모랄레스보다 훨씬 더 온건한 인물(사회주의운동당 소속)이 신임 대통령이 된 것은 운동이 정치적으로 경계해야 할 점이다.(물론 미국의 후원을 받는 우파들이 이 정부들을 공격하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오늘날 정치 불안정은, 팬데믹으로 첨예해진 체제 위기의 여파 속에서 일어나는 대중의 분노와 양극화(와 급진화)의 표현이다. 물론 나라마다 그 수준은 불균등하고 각 나라의 저항들도 나름의 약점과 한계들이 있을지라도 그런 분노가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사회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그런 분노가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지속성 있는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하고, 그 과정에서 기존 ‘핑크 물결’의 가능성과 한계 모두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은 전략이 진지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전략이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면, 자본주의 한계 안에서 사회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궁극적으로는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로 이뤄진 중핵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주
- 캘리니코스 2008. ↩
- 추나라 2006에서 재인용. ↩
-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쿠바 국가가 ‘핑크 물결’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비록 쿠바도 베네수엘라가 주도한 라틴아메리카의 ‘대안적 무역’의 일부였고, 차베스가 피델 카스트로를 개인적으로 깊이 존경하고 카스트로의 공산당 모델에 따라 자신의 정당을 만들었지만, ‘핑크 물결’ 시기에 쿠바에서는 어떤 형태의 대중적 급진화 물결이 나타나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공치사와 달리, 쿠바가 ‘핑크 물결’ 정부들과 맺은 관계는 의료진 수출 및 석유 수입 등 무역 부분과 이를 통로 삼아 쿠바식 상명하달 정치를 수출하는 것 정도로 제한돼 있었다. 관련해 Gonzales 2016을 보시오. ↩
- 제헌의회 선거에서 광범전선이 적잖은 의석을 차지한 것은 사실(26석)이다. 하지만 이는 우파 여당이 속한 선거 연합(37석)이나 사회당·공산당 주도의 선거 연합(28석)보다 적은 숫자다. ↩
- 김준효 2016을 보시오. ↩
참고 문헌
김준효 2016,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 대통령의 탄핵: 노동계급의 이익을 못 지켜 우파의 정치 공세도 못 막다’, <노동자 연대> 181호.
추나라, 조셉 2006,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21세기 혁명》, 다함께.
추나라, 조셉 2017,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였을까?’, <노동자 연대> 274호.
추나라, 조셉 2019, ‘세계적 투쟁의 새 물결’, <노동자 연대> 310호.
캘리니코스, 알렉스 2008, ‘반란의 라틴아메리카’, <맞불> 80호.
패로우, 알리스터 2019, ‘라틴아메리카 우파의 부상’, <노동자 연대> 275호.
Gonzales, Mike 2016, The new Cuba: myths and realities, ISJ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