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 창당에 부쳐
이 글은 International Socialism 저널 122호(2009년 3월)에 실린 Alex Callinicos의 “Revolutionary paths: a reply to Panos Garganas and François Sabado”를 이상우가 국역하고 이수현·최일붕이 꼼꼼히 교열을 본 것이다.
1 그들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의 급진좌파가 처한 환경은 매우 다양하다. 몇 가지 점에서는 두 사람과 내 견해가 다르지만, 이런 차이는 매우 사소한 것이다.
파노스 가르가나스[국제사회주의경향 소속인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리더 — 편집자]와 프랑수아 사바도[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의 리더]가 내 글 “급진좌파는 어디로?”에 대해 각각 논평한 글이 이 잡지 지난 호에 실린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SWP) 당원인 우리는 반자본주의신당(이하 NPA)을 열렬히 지지한다.(이제는 해산한 프랑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이하 LCR]의 사바도와 그의 동지들이 NPA 창당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나는 또, 그리스의 반자본주의전선(Enantia) 내에서 동맹을 맺고 있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SEK)과 그 밖의 극좌파 조직들이 신좌파경향(NAR) — 근래에 공산당에서 떨어져나온 가장 중요한 조직 — 과 한데 뭉치는 재편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나는 또, 내 이견을 약간 공손하게 말하고자 한다. 영국의 급진좌파가 최근에 재앙적인 경험을 겪었다고 해서, 유럽 대륙의 다른 동지들에게 그 경험의 교훈을 알려 주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내 견해는 논쟁을 통해, 그리고 NPA의 구체적 발전을 보면서 바뀌었다.
새로운 정당 모델?
논쟁에서 드러난 가장 중요한 점은 “급진좌파 결집체”라는 일반적 용어에 사뭇 다른 두 가지 조직 유형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유형이 모두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급진화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계급투쟁 수준과 좌파의 정치적 전통 덕분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혁명가를 자처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새롭고 더 큰 결집체에서 단결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것이 결실을 맺은 유일한 사례는 NPA다. 이 글 뒤에서도 다루겠지만, NPA의 기본 원칙은 넓은 의미에서 혁명적이다. 그러나 다른 사례들도 있다. 사회자유주의를 거부하면서도 개혁주의와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은 세력들의 경우가 그렇다. 독일의 디링케[좌파], 옛 지도부와 새 지도부가 함께 이끄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PRC), 그리스의 쉬나스피스모스(Synaspismos: 그리스어로 ‘연합’이라는 뜻 — 편집자), 포르투갈의 좌파블록(Left Bloc) 내의 일부 단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르가나스와 사바도는 모두 급진좌파 프로젝트가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반신자유주의” 강령보다는 분명한 반자본주의 강령을 바탕으로 하는 전자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1997~2001년의 프랑스 복수좌파 정부와 2006~2008년의 이탈리아 프로디 정부 같은 중도좌파 연립정부의 부정적 경험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강조한다. 가르가나스는 또, 노동자와 청년의 상당수가 “과거의 전통적 개혁주의”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주장에 타탕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유럽 각지의 계급투쟁과 노동 운동이 다양한 경로를 거쳐 왔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프랑스와 그리스는 유럽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격렬한 사회적 투쟁이 벌어진 나라들이다. 실제로, 그리스에서는 이런 투쟁이 어찌나 격렬하고 끈질겼던지(2008년 12월에 나라 전역을 휩쓴 청년 반란의 거대한 물결을 생각해보라) 유럽 최대의(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진좌파를 탄생시킬 정도였다. 게다가 프랑스와 그리스는 모두 사회민주주의가 다른 세력들과 경합하는 취약한 기반 위에서 좌파의 지배적 세력이 된 지가 고작 수십 년밖에 안 되고 공산당 전통이 강력한 사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자본주의 강령을 바탕으로 한 급진좌파 정당 건설을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이 정당들이 여전히 개혁주의 문제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노동계급 운동 역사의 주요 교훈 하나는 계급투쟁이 발전하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부위가 계급의식적 활동에 끌려들어와서 개혁주의 정치의 기반이 확대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적어도 처음에는 현 상태를 수동적으로 묵인하는 것과 철저한 혁명 사이에 있는 그럴듯한 타협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세기의 위대한 혁명 경험을 보더라도, 러시아 노동계급은 차르 체제 전복 후 처음에는 볼셰비키가 아니라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에 이끌렸던 것이다. 독일에서도 뿌리 깊은 개혁주의의 경험과 극좌파의 상대적 취약성 때문에, 1918년 11월 혁명의 첫번째 주요 수혜자가 사회민주당과 독립사회민주당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제국주의 나라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4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는 사바도의 동지들은 브라질 노동자당을 개혁주의 조직이 아니라고 보면서 노동자당 건설을 지원한 바 있는데 그 당이 룰라 집권기에 어떻게 사회자유주의의 버팀목이 됐는지를 떠올려 보라.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숙명론적 결론, 즉 노동자 대중은 결코 개혁주의와 단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볼셰비키는 겨우 몇 달 만에 러시아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를 얻었고, 독일 공산당은 독립사회민주당의 다수를 설득해서 대중적 노동자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례들을 보면, NPA나 그리스 SEK, 영국 SWP보다 훨씬 더 크고 사회적 기반도 탄탄한 혁명적 정당에게도 개혁주의는 여전히 전략적 문제로 남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급진좌파 정당들을 발전시킨 주된 추진력은 사회자유주의를 겪어본 경험에서 나왔다. 토니 블레어, 리오넬 조스팽, 게르하르트 슈뢰더, 로마노 프로디 정권을 경험한 수많은 노동자·청년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낡은 집”을 대체할 대안을 찾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민주주의 같은 개혁주의와 단절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최근의 중도좌파 정부들이 신자유주의를 어찌나 강력히 받아들였던지 노동자인터내셔널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 같은 일부 극좌파 경향들은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 같은 정당들을 더는 개혁주의 정당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런 견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라도, 그런 견해는 노동계급의 다수가 어느 정도는 습관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전통적 부르주아 정당의 더 강경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두려워서 계속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투표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급속한 우경화를 보면 이런 잘못된 주장이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거니와, 이런 우경화로 말미암아 이 정당들의 왼쪽에 커다란 공간이 생겨났다. 이 공간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다양하고, 실제로 다양한 정치 조류들이 이 공간을 채우려 애쓰고 있다.
4 이것은 사실이다. 또, LCR이나 SWP가 자신의 성과를 뭐라고 주장하든 간에 볼셰비키와 달리 우리는 성공적인 사회주의 혁명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대중적 노동자 투쟁조차 지도하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는 스탈린주의의 후유증과도 투쟁해야 한다. 물론 이런 사실 가운데 어떤 것도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청산할 이유는 못 된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함의하는 바는 우리가 단기적으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발전시킨 전략적 개념들을 되풀이하기만 하는 강령을 바탕으로 급진좌파를 재편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전략적 개념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겠다.)
그런데, 제4인터내셔널과 국제사회주의경향이 모두 보존하려 해 온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경향이 지금 이 순간 대중적 세력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사바도는 그 이유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혁명적 상황이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상황을 경험한 지가 30년도 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5 마지못해 그렇게 한다. 그는 디링케 프로젝트의 “좌파 개혁주의적” 성격이나 전에 스탈린주의 정당[동독 공산당]이었던 민주사회당(이하 PDS)이 디링케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강조하면서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프랑스의 상황 덕분에 사바도와 그의 동지들은 LCR의 세 배나 되는 정당을 결성할 수 있었다. 이 정당의 강령은 어떤 점에서는 여전히 전략적으로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명백히 자본주의와의 혁명적 단절을 요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영국과 독일의 노동자 운동을 보면 사회민주주의의 기반이 하도 확고해서 둘을 분간하기가 거의 힘들 지경이다.[영국의 경우 노동운동과 노동당이 같은 것처럼 여겨지고 있고, 독일의 경우 노동운동과 사민당이 같은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뜻 — 편집자] 그래서 독일에서 디링케의 출현이 그토록 중요한 역사적 발전인 것이다. 사바도도 디링케의 출현이 독일 “노동자 운동의 일보 전진”이라고 인정하지만이 모든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사회민주주의가 쇠퇴해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고 그 중 일부가 좌경화했다는 근본적 사실을 무시한다. 물론 디링케의 정치는 좌파 개혁주의다. 그러나 독일의 세력 균형에서 달리 무엇이 가능했겠는가? 다른 곳에서는 독일처럼 중대한 분열이 일어나는 수준까지 분해 과정이 진전되지 않았다. 내가 지난 글에서 지적했듯이, 영국에서 우리는 이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노동당 좌파의 사상이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한은(80세를 훨씬 넘긴 토니 벤[노동당 좌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이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데서 드러나듯이) 우리는 그들의 고질적이고 역사적인 취약성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의 지속적인 영향력이 우리를 여러모로 제약한다. 리스펙트가 노동당의 중대한 분열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때 리스펙트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노동당 정치의 영향력은 계속 유지됐을 것이다. SWP가 2003~2004년에 리스펙트를 건설하기 위한 협상에서 가르가나스와 사바도가 옹호하는 모종의 반자본주의 강령을 고집했다면, 리스펙트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실패했을 것이다.(또는 우리를 배제한 채로 진행됐을 것이다.) 그래서 리스펙트라는 연합체 명칭(Respect)에 “사회주의”(socialism)를 뜻하는 단어의 머리글자(s)를 포함시키기도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인종차별·전쟁에 반대한다는 더 온건한 강령을 바탕으로 리스펙트를 건설하려 한 것이 틀렸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최종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도는 옳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당시 영국에서 반자본주의 정당이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6 이는 부당한 비판이다. 다행히도, 실제 상황은 사바도의 주장과 다르다. 우리 경향의 동지들은 중도좌파 정부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원칙적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우리 동지들은 가령 노동자인터내셔널위원회의 독일 조직이 베를린과 기타 지역 사회자유주의 주(州)정부 참여라는 PDS의 잘못된 정책을 빌미 삼아 디링케의 결성을 저지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이 문제에서 〈마르크스21〉 동지들이 틀렸는가? 사바도가 “일보 전진”이라고 인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까? 질문 자체에 답이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 독일에서도 반자본주의 정당은 의제에 올라 있지 않다. 그렇다면 〈마르크스21〉[Marx21이라는 저널을 중심으로 형성된 디링케 내 의견그룹]의 우리 [국제사회주의경향] 동지들이 디링케 건설에 열정적으로 투신했던 것이 틀렸는가? 이 또한 절대 아니다. 그들이 가장 전투적·역동적 방식으로 디링케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옳았다. 사바도는 〈마르크스21〉이 “독일 사민당과 함께 연정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디링케 지도부의 정책을 비판할 때 비교적 부드러운 논조를 취한다”고 비판하는데,7 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세력 균형에서는 반자본주의 좌파가 비교적 유리한 처지에서 멜랑숑과 관계맺을 수 있다. 그럼에도 멜랑숑이 사회당에서 떨어져나온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그것은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가 승리하자 개혁주의 좌파가 겪은 혼란과, 올리비에 브장스노라는 개인으로 표상되는 NPA의 흡인력을 보여 준다.
강경한 강령을 바탕으로 당을 건설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좋은 곳에서도 개혁주의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사바도는 프랑스 사회당 좌파의 지도자이자 2005년 유럽연합 헌법 반대 운동의 핵심 인물인 장-뤽 멜랑숑의 사례를 언급한다. 멜랑숑은 “프랑스판 디링케” 결성을 목표로 최근 프랑스 사회당에서 떨어져나왔다. 사바도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리가 프랑스 공산당과 동맹을 맺자는 멜랑숑의 제안과 계획을 지지하고 그와 함께해야 할까? 공산당은 앞으로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꾸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NPA가 발전하면 사회당뿐 아니라 공산당에서도 분열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 NPA는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에게 NPA 가입이냐 아니면 특정 쟁점을 둘러싼 “고전적” 공동전선 참여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이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NPA가 흥분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정치 무대와 노동자 운동에서 NPA는 상당히 작은 세력일 것이다.(비록 LCR보다는 훨씬 더 크지만 말이다.) 따라서 사회적 투쟁이 실제로 분출할 때 이를 지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NPA의 엄청난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려면, 더 넓은 정치 영역에 기꺼이 개입해야 하고 때로는 다른 정치 세력들과 동맹도 맺어야 할 것이다.(물론 그 중 일부는 개혁주의 세력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NPA 창당대회에서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위한 멜랑숑과의 선거 협정을 거부한 것이 십중팔구 옳았다고 생각한다. NPA가 더 강력한 세력이므로 최대한 빨리 독자적 선거 기반을 구축하고 과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바도의 주장에는 은근히 위험성이 숨어 있다. 그리고 옛 LCR과 제4인터내셔널 각국 지부에서 활동하는 그의 동지들이 NPA를 일반적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때때로 주장할 때 그런 위험은 분명히 드러난다. 자신보다 약간 오른쪽에 있는 세력들의 활동을 무시하는 사바도의 태도가 그런 위험을 증폭시킨다. 그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의 지난해 당대회에서 파우스토 베르티노티의 동맹 세력들이 [좌파에게] 패배한 것의 의미를 깎아내린다.(베르티노티는 전(前) 재건공산당 사무총장이고, 재앙적 결과를 자초한 것으로 판명난 프로디 정부 참여를 추진한 장본인이다.) 사바도의 이러한 태도가 제4인터내셔널 회원들의 주도 하에 재건공산당에서 분열해 나온 좌파, 즉 시니스트라 크리티카[비판적 좌파]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시니스트라 크리티카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노선이 자기 오른쪽의 더 큰 세력의 압력에 맞서 자신의 정치와 사상을 예리하게 다듬어야 하는 혁명적 선전그룹을 탄탄하게 건설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니스트라 크리티카가 이탈리아에서 더 강력한 급진좌파를 건설하기 위한 촉매 구실을 하려 한다면 재건공산당 내부의 상황을 더 신중하게 다루고 더 세심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사바도가 포르투갈의 좌파블록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좌파블록 지도부에 제4인터내셔널 회원들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도). 좌파블록은 명백히 NPA와는 다른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 점은 베르티노티가 창설했고 이제는 디링케가 주도하는 유럽좌파당(European Left Party)에 좌파블록이 가입해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유럽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을 일반 모델로 다루는 것은 오류다. 스코틀랜드사회당 지도부가 자신의 당을 모델로 제시한 것은 오류였고,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의] 우리가 리스펙트를 대안 모델로 제시한 것도 오류였다. 나는 NPA의 미래가 훨씬 더 전도유망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각국의 구체적 상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해서 모종의 일국적 실용주의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활동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에는 공통점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 비교하고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대규모 혁명적 정당을 건설하려는 목표를 공유한다. 그러나 각국의 구체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혁명가들과 급진좌파
여기서 우리는 존 리즈가 생각해 낸 유명한 공식, 즉 급진좌파 정당들을 “특별한 종류의 공동전선”으로 봐야 한다는 공식을 떠올리게 된다. 사바도는 이 공식을 길게 비판한다. 그리고 리스펙트 붕괴의 교훈을 둘러싸고 SWP 내에서 벌어진 논쟁을 통해 꽤 많은 SWP 당원들도 이 공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실, 존 리즈의 공식은 일종의 유비(類比)인데, 그것은 서로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 사물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급진좌파 정당은 특정 쟁점이 아니라 폭넓은 강령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공동전선과 다르다.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목표는 전쟁 일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전쟁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달리, 리스펙트는 전쟁과 그 밖의 여러 쟁점들을 연결시키고, 이 쟁점들을 모두 포괄하는 정치 강령을 바탕으로 선거에서 지지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급진좌파 정당은 정치적으로 이질적인 세력들을 끌어모은다는 점에서는 고전적 공동전선과 비슷하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급진좌파 정당들의 강령의 성격이 비교적 개방적이기 때문인데, 일반으로 이러한 강령은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선택을 솜씨좋게 건너뛴다.(물론 NPA의 강령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강령이 현 시기, 즉 혁명가들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급진좌파 정당으로 개혁주의 출신 인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한 시기의 특징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강령의 개방성(사바도가 “불완전한 전략적 경계”라고 부른)은 개혁주의와의 단절을 당 가입 조건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이러한 태도는 옳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정치적 이질성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8 먼저, “최소 강령에 입각한”이란 문구는 사바도 자신이 덧붙인 것이다. 아마 NPA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당의 강령에서 전략적 경계(더 쉽게 말해, 정치적 강경함)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문제다. 당 강령이 반신자유주의인가 반자본주의인가 아니면 정말로 순도 1백 퍼센트의 혁명적 강령인가 하는 문제는 실질적 세력들을 원칙적이고 지속적인 동맹으로 단결시킬 수 있는 기반에 달려 있다.
이러한 현실의 함의를 살펴보기 전에, 사바도가 존 리즈의 공식을 비판하며 제기한 구체적 쟁점에 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사바도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최소 강령에 입각한 특별한 종류의 공동전선’이라는 개념 때문에 SWP 지도부가 조지 갤러웨이와의 관계에서 무장해제된 것이 아닌가? SWP 지도부는 리스펙트가 ‘득표에 도움이 되는 무슬림 명망가들과의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SWP 지도부가 리스펙트를 공동전선으로 봤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갤러웨이를 대할 때 무장해제됐는가? 전혀 아니다. 사바도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공동전선 개념을 갖고 있으면 [급진좌파] 정당 내의 긴장에 대해 민감해질 가능성이 크기(사바도는 다른 글에서는 “지나치게 민감해진다”고 말한다) 때문이다. 게다가 간단한 역사적 사실 문제를 지적하자면, SWP와 갤러웨이 사이의 긴장은 이미 2005년 여름부터 증폭되고 있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는 진짜로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것과, 정말이지 갈등의 악영향을 직접 받는 극소수 동지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내지 않다가 너무 늦게야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광범한 단일 사회주의 정당이라는 스코틀랜드사회당 모델을 따르지 않고 또 SWP를 청산하지 않은 것은 매우 옳았다. 우리가 그렇게 했다면, 탈선한 열차에서 뭐라도 건져내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재앙적 실수를 피한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공동전선 공식을 적용한 결과였다. 왜냐하면 공동전선에는 조직된 혁명적 구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9 이러한 주장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왜 우리가 특정 시기에 하나의 공동전선에만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난 10년 동안 SWP는 다양한 공동전선(리스펙트, 전쟁저지연합, 파시즘반대연합, 공공주택옹호, 저항의 세계화)에 동시에 참가했다. 이런 공동전선에서 우리는 노동당 정치를 구현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했다.
사바도는 또, 그 전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더 정교한 주장을 편 바 있다. “반자본주의 정당을 공동전선이라는 틀로 이해하는 것은 종파적 일탈을 낳을 수 있다. 비록 특별한 형태의 공동전선이라도 공동전선이 실현된다면 모든 것을 당이라는 채널을 통해 추진하려는 유혹에 빠져서 행동 통일을 위한 진정한 투쟁을 경시하게 되지 않을까?”급진좌파 정당이 특별한 종류의 공동전선이라는 공식을 옹호했음에도 나는 이 공식이 NPA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NPA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국가와 현재의 국가 기구들을 사회적·정치적 변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이 기구들은 전복돼야 하고, 노동자들과 대중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의 통제를 받는 새로운 기구들이 수립돼야 한다.” 원칙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체제의 논리는 체제를 교화·규제·개혁하자거나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그런 주장이 진지한 것이든 위선적인 것이든 간에 말이다. 그와 동시에, 체제의 논리는 일상에서 복지·민주주의·평화가 주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체제 전복의 조건, 혁명적 사회 변혁의 조건을 창출하는 데 일조한다.
11 이라고 인정하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면, NPA에는 “전략적 강령과 전략적 경계가 있지만 이것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12 사바도는 이를 다음과 같은 말로 정당화한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사례들은 과거의 혁명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의 혁명이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한다. 새로운 세대들은 경험에서 많이 배울 것이다. 그리고 많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13
따라서 사바도가 NPA를 혁명적 정당이라고 말한 것은 옳다. 아래로부터 자본주의 전복을 추구한다는 넓은 의미에서 그렇다. 비록 그가 “이런 정의는 20세기의 혁명적 위기 때문에 크게 부각됐던 1970년대의 [전략] 논쟁에 틀을 제공한 전략적 가설이나 심지어 정치적·군사적 가설이라기보다는 일반적 가설”14 혁명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결정적 요소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매우 일반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21세기의 혁명이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니엘 벤사이드가 “전략적 원점” 15 이라고 부른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혁명적 위기들”을 보면 특정한 전략적 교훈이 있다.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면 자본주의 국가를 강제로 전복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권력과 민중권력 기관들이 국가에 도전하는 기구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 혁명적 정당은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람들의 다수를 설득해서 이러한 목표를 쟁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런 교훈이다. 사바도와 그의 동지들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의 많은 부분이 NPA의 기본 원칙에 담겨 있다.
물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전략적 유산이 오늘날 얼마나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다.부차적이지만 중요한 다른 교훈들도 있다. 예를 들어, 레닌이 특히 《‘좌파’ 공산주의 — 유아적 혼란》에서 발전시킨 교훈들이 그렇다. 즉, 다수 대중을 설득하려면 혁명가들이 노동계급 대중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심지어 이 단체가 흔히 (기껏해야) 개혁주의 지도부 하에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하고, 특히 공동전선 전술이 필요한 부문적 요구를 둘러싼 투쟁들에서도 능동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민족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과 관련된 복잡한 쟁점들도 있는데,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1~4차 대회에서 이런 쟁점들을 둘러싸고 매우 유용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스탈린주의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도 있다. 이 교훈은 사회주의 혁명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제공한 민주주의보다 더 진보적인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는 근본적 진실을 재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레온 트로츠키가 “대리주의”라고 부른 것도 거부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수를 설득하는 과제를 회피한 채 게릴라 전위부대에 의존해서 권력을 장악하려는 전략(이 지점에서 내가 사바도와 올리비에 브장스노에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브장스노는 21세기 게바라주의를 강력히 지지한다)이 그런 “대리주의”의 사례다. 그리고 전략 문제라기보다는 분석의 전제가 되는 문제로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구체적 계급 구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융합을 분석하고 종합한 것으로서, 우리가 21세기에 사회주의 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런 전략적 교훈과 분석이 오늘날의 혁명의 성격을 낱낱이 규명할 거라는 생각은 최악의 교조주의일 것이다. 많은 문제가 사실,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전략적 유산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수불가결한 준거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바도와 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전략적 유산이 NPA나 그 비슷한 정당의 강령적 기초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NPA 당원들이 이러한 혁명적 유산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미래의 전략·전술 논쟁에 그런 유산이 도움이 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리가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다.
16 둘째, “현재의 세력 관계에서 LCR 출신자들이 NPA 내에서 따로 조직을 꾸리는 것은 새로운 정당 건설 과정에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가는 러시아 인형 체제가 만들어져서 불신과 역효과만 나타날 것이다.” 17
진정한 문제는 어떻게 이것을 실현할 것이냐다. 지난 글에서 나는 급진좌파 결집체 내에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조직적 경향을 형성하거나 자율적 당 조직을 독자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바도는 이것이 때로는 올바른 선택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NPA의 경우에는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틀렸다고 주장한다. 첫째, “NPA는 넓은 의미에서 반자본주의적·혁명적 성격이 있고, LCR의 입장과 NPA의 입장이 대체로 동일하기 때문이다.”18 는 사바도의 주장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십중팔구 맞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NPA 결성이라는 구체적 맥락에서는 좋은 주장이다. NPA는 옛 LCR의 질적 확장과 변형이기도 하고 정치와 지도부 수준에서 둘 사이에는 상당한 연속성도 있다. 게다가 새 정당에서 LCR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들이 끊임없이 따로 모이면 위험한 “편가르기” 분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작은 연못 속의 큰 물고기 신세는 SWP가 리스펙트 내에서 씨름했던 난제다. 우리의 독자적 조직을 유지한 것이 절대적으로 옳았지만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비결이 아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또, “현재 NPA의 정치적 경계를 볼 때 관료들의 개혁주의 경향이 당에 가입하거나 구체적 조직 형태로 결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그럼에도 지난 글에서 내가 제기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NPA가 성공할수록 안팎에서 개혁주의의 압력을 받기가 더 쉬울 것이다. 이러한 압력에 대처하는 일은 흔히 어려울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명확성과 전술적 유연성을 결합해야 할 것이다. 더 넓게 보면, 적어도 1848년 이래로 대중 투쟁에 직면한 혁명가들의 경험은 모두 이런 압력이 투사들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초좌파주의에 대한 오래된 논쟁, 중간주의·신디컬리즘, 보르디가 류의 회피적 순수주의의 유혹, 착취와 억압의 관계에서 비롯한 문제들(히잡 착용을 둘러싸고 우리가 벌인 논쟁의 핵심 쟁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배경 출신자들은 어느 반자본주의 정당 내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개진해야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자생성은 항상 지도의 상이한 요소들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신당의 문제는 전략적·전술적 결정을 긴급하게 내려야 할 때 이 상이한 요소들이 어떻게 당의 대응 방안을 결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의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상명하달 식으로 강요하거나 NPA의 모든 회합을 종파적 다툼으로 만드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신당에서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혀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도록 스스로 조직화하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19 NPA가 옛 LCR의 혁명적 내용을 많이 넘겨받았다는 점 때문에 상황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당장 LCR 출신이 아닌 NPA 당원들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전략적 유산을 공개적·비판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는 정치 교육이 시급히 필요하다. 훌륭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지인 〈뜻밖의 사건〉(ContreTemps)과 LCR의 저널인 〈공산주의적 비평〉(Critique Communiste)의 통합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로,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저널이 아무리 훌륭해도 교육과 논쟁이라는 훨씬 더 광범한 과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 20
따라서 “다른 좌파들을 전진시킬 수 있는 정치적 이니셔티브와 교육의 원천인 혁명적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파노스의 주장은 옳다.지금까지 내가 단 이러한 단서들은 사바도와 그의 동지들이 시작한 모험의 중요성을 내가 인정하는 것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우리는 그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들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기도 하다. 똑같은 문제들과 씨름하고 서로 토론하고 협력함으로써, 우리는 서로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한 이러한 토론과 논쟁이 이 과정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주
- Sabado, 2009; Garganas, 2009; responding to Callinicos, 2008. ↩
- Garganas, 2009, p154. ↩
- 가르가나스는 이런 조류의 하나로 자율주의를 거론하면서 “청년들은 ‘노동당 좌파’의 사상보다는 자율주의자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썼다. 이것은 많은 유럽 나라들에서 명백히 사실이다. 그러나 자율주의자들이 정치 권력 문제를 회피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의 사상은 흔히 모종의 개혁주의와 잘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런던과 아테네 유럽사회포럼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우파와 자율주의자들이 결탁한 것과, 재건공산당 지도자 파우스토 베르티노티가 자신의 우경화를 감추기 위해 자율주의의 미사여구를 사용한 것이 이를 보여 준다. 이 쟁점에 대한 자세한 논의로는 Callinicos, 2004를 보시오. ↩
- Sabado, 2009, p149. ↩
- Sabado, 2009, p144. ↩
- Sabado, 2009, p146. ↩
- Sabado, 2009, pp145-146. ↩
- Sabado, 2009, p146. ↩
- Sabado, 2009, pp146-147. ↩
- “Principles Fondateurs du Nouveau Parti Anticapitaliste”, February 2009, http://tinyurl.com/NPA2009 ↩
- Sabado, 2009, p148. ↩
- Sabado, 2009, p148. ↩
- Sabado, 2009, p149. ↩
- 이 논쟁에 대한 두 가지 기여로는 Callinicos, 2006, Callinicos, 2007. ↩
- Bensaïd, 2004, p463. ↩
- Sabado, 2009, p152. ↩
- Sabado, 2009, p152. ↩
- Sabado, 2009, p151. ↩
- Garganas, 2009, p155. ↩
- 이것과 관련한 하나의 사례는 LCR 내의 국제사회주의경향 지지자들이 시작한 평론지 〈무엇을 해야 하는가? Que faire?〉이다. 이 평론지는 NPA가 출범할 때까지 귀중한 토론 공간 노릇을 했는데, 앞으로도 모든 경향에 속한, 또는 아무 경향에도 속하지 않은 활동가들에게 개방적인 폭넓은 토론의 촉매를 자임한다면 NPA 내에서도 여전히 유용한 구실을 할 수 있다. ↩
참고 문헌
Bensaïd, Daniel, 2004, Une Lente Impatience (Stock).
Callinicos, Alex, 2004, “The Future of the Anti-Capitalist Movement”, in Hannah Dee (ed), Anti-Capitalism: Where Now? (Bookmarks).
Callinicos, Alex, 2006, “What Does Revolutionary Strategy Mean Today?”, IST International Discussion Bulletin 7, January 2006, www.istendency.net/pdf/ISTbulletin7.pdf
Callinicos, Alex, 2007, “’Dual Power’ In Our Hands”, Socialist Worker, 6 January 2007, www.socialistworker.co.uk/art.php?id=10387
Callinicos, Alex, 2008, “Where is the Radical Left Going”, International Socialism 120 (autumn 2008), www.isj.org.uk/?id=484
Garganas, Panos, 2009, “The Radical Left: A Richer Mix”, International Socialism 121 (winter 2009), www.isj.org.uk/?id=513
Sabado, François, 2009, “Building the New Anticapitalist Party”, International Socialism 121 (winter 2009), www.isj.org.uk/?id=512